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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 공지영이 유럽의 수도원들을 돌아 보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적은, 일종의 나를 찾아가는 길의 기록이다. 그 궤적을 따라 기행문을 남겼는데, 여느 기행과 다른 점은, 이 여행의 시작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으나 진행과 결말은 마치 정해진 예정에 맞춘 것처럼 맺어지고 있다는 특이함을 보인다.
그래서 객관성을 잃고 있는 글이 되고 있기도 하다. 보고 느낀 것을 자유롭게 적지 못하고, 작가의 감성이 흘러가는 궤적이 너무 굵게 드러난 책이 아닌가 한다.
객관성을 잃고 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세상에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말이다. 낯선 이방인을 만나서 그토록 살갑게 구는 <테러블리 해피> 수준의 극도의 감정 표현의 이면에서는 인간 사는 일, 모두가 고통 아닌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울고 웃고 용서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 그런 것을 깨닫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여성작가 공지영의 장점이다. 여기서 특이하게도 여성작가란 말은 좋은 뉘앙스로 썼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종교든 마무리는 같다는 것. 달라이 라마가 종교란 친절한 마음이라 한 것이나 '사람을 향해 웃어주는 것, 이보다 큰 기도는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종교의 표현은 다르지만, 고해를 이겨내는 과정으로서 또 나를 찾아가는 길로서의 종교를 만나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것이다.
나그네처럼 떠도는 우리 삶에, 수도자들의 삶은 왠지 신비로워 보일 듯도 하지만, 야곱의 이야기처럼 백삼십년 사는 동안 얼마 되지는 않으나 살아온 나날이 궂은 일 뿐이었다고는해도, 수도원 내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철창을 지르고, 봉쇄시킨 상태에서 나를 찾는 길을 따르는 일을 밟은 궤적은 역시 범상한 발자국은 아니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의 마음에 노예가 되어 평생을 피해자로 여기며 살기 쉬운 이 세상에서, 공지영은 그 잘사는 그래서 부럽기 짝이 없는 유럽 사람들이 왜 수도원에서 진실을 찾고 있는지 잘 읽어내고 있다. 물론 수도원의 수녀님들은 늙었고,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없다지만,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주변인들을 통해 비춰주고 있어서, 이 책은 기행문으로서도, 종교적인 책으로서도 읽어볼만한 책이라할 만하다.
종이가 두툼하지만 색이 은은하게 들어가서 예쁘긴 하지만, 비교적 값이 비싼 편이다. 이백 오십페이지에 만원이란 돈은.
어떤 책에서 우리는 감정적 협박자(FOG, fear, obligation, guilt)에 의하여 두려움, 의무감, 죄책감에 휩싸여 살기 쉬우며, 그 결과 감정의 노예가 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느님 안에서 두려워할 것 없고, 죄책감 느낄 필요 없으며, 불필요한 의무감에 시달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작가의 여정에 발길을 함께 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