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이 없는 비전은 꿈에 불과하며,
비전이 없는 실행은 시간만 보내게 한다.
비전이 있는 행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Jeol Barker
비전이 있으나 실행력이 약한 사람은
몽상가(dreamer),
실행력은 있으나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맹목적 실행자(Doer),
비전도 없고 실행력도 없는 사람은
방관자(uninvoled)에 불과합니다.
(이승주, 전략적 리더십에서 재인용)

비전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비전수립, 공유,
그리고 실행이 결합되어야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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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서 차지하는 논술고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사고력을 넓히는 방안으로 어지간히 뿌리를 내려 다행스러운데,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머리를 싸맬 걸 생각하면 마음이 좀 짠하다. 일상적으로 머리를 싸매는 내 직업에 비추어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글로 밥을 벌었으면 최소한 겁은 먹지 말아야 하거늘 번번이 떤다. 엄살을 넘어 갈수록 어렵다. 더구나 우리 또래는 종이에 쓰고 PC 자판을 치는 두 세계를 사는 까닭에 날로 새로운 IT 언어에도 정도껏 신경을 써야 한다. 생물이나 다름없는 말의 현대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논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체질화된 자기네 언어를 접고 기성세대의 관용어에 더 많이 머리를 쓰는 셈인가.

<글쓰기, 무슨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종이에 찍힌 재래의 숙어와 인터넷에 나도는 말이 피차 뜨악하고 낯선 건 사실이지만, 중간에 통역을 세워야할 지경으로 언로가 막힌 형국은 아니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한층 중요하다. 작은 예문을 든다.

산 날망에 앉아 양지녘 고샅을 바라보며 눈물 훔친다.

바탕 화면의 익스플로라에 커서를 가져가 클릭하는 내 손가락...

어떤 싯귀(詩句)와 산문의 대비인데, 날망, 양지녘, 고샅은 순수한 우리 말이다. 익스풀로라, 커서, 클릭은 인터넷 용어다. 짧은 묘사속에 글을 지은 이의 나이가 벌써 넘나든다. 후자는 곧 ‘저놔’(전화) ‘어이엄다’(어이없다) ‘ㄱㅅ’(감사합니다)로 튈지도 모른다. 문법 파괴, 세대 단절을 걱정하게 만들거늘, 그런 시기가 오래 갈 리 만무다. 그랬다가는 ‘셤’(시험)에 붙기도 전에 먹통 대접을 받을 것이므로, 때가 되면 저절로 가라앉을 ‘끼’로 돌려도 될 게다.

과도한 이분법으로 세대를 가른 지난날의 경험으로 감히 낙관하거니와, 나이가 어리거나 젊을수록 언행이 생급스럽다는 발상 또한 문제다. 아이들이 없으면 웃을 일이 없다는 속담은 그들의 순진한 마음을 두고 하는 소리거늘, 때로는 그것이 사물의 본성을 귀엽게 일깨우기도 한다. 그런 보기를 최근의 한겨레신문에서 읽었다.

크레파스나 물감의 색깔 표현 가운데 하나인 ‘살색’을 아홉 살에서 열네 살짜리 소녀들 여섯이 ‘살구색’으로 바꿨다는 기사가 그거다.
“우리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 신기하다”는 녀석들의 탄성이 환히 웃는 사진과 함께 빛났다. 그 동안의 곡절이 제법 길다.
살색은 황인종인 한국 사람의 피부색을 뜻하는 것으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의 의미로 오해될 수 있어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4년 전에 이미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 격인 김해성 목사가 제기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산업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연주황’으로 고쳤다. 그러자 중학교 2학년인 김민하양 자매(김 목사 딸)와 친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주황색은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다. 이는 크레파스나 물감을 자주 쓰는 어린이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자 인권침해이므로, 알기 쉬운 살구색으로 바꿔 달라”고 말이다.

소녀들의 ‘당돌한’ 소청도 재미있지만 그걸 ‘호락호락’ 들어준 관청의 유연한 자세 역시 예전과는 엄청 다르구나 느꼈다. 아이가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처럼, 기왕의 ‘살색’이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에겐 차별을 표징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걸 확인하는 아침이었다.

<섬세한 색깔 감각, 세상을 바꿀 수도>

색깔 이름(KS)을 정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혹해서 찾아간 기술표준원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금 사용 중인 색 이름이 천여 개나 된다. 명색 글장이를 자처하는 내가 아는 색명은 그중 얼마나 될까. 부끄러운 가운데, 본래 이름과 동식물 등의 이름을 함께 쓰도록 한 것이 많아 반가웠다. 노란색은 병아리색, 초록색은 수박색, 진한 빨강은 루비색 따위로 폭을 넓혔다.

우리의 자랑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 추출과 젓가락 민족의 손재간을 잠깐 언급한 적이 있거니와, 색깔에 대한 섬세한 감각 또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정도다. 그런 안목으로 우리는 다시 무엇을 이루어 세상을 들었다 놓을까. 아무려나 ‘색깔론’ 갈등은 질색이다. 더 이상 그런 일로 소모적인 입방아를 찧지 않는, 잘난 사회를 열어가고 싶다.

글쓴이 / 최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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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과 2등의 차이
1. 올림픽 100미터 경기
올림픽 100미터 경기에서 우승과 2등은
불과 0.01초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 0.01초의 차이가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한 사람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든다.

이처럼 1등과 2등의 차이는 엄청나다.
기업에서 같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세계적인 명품을 만드는 일류 회사와
그저 평범한 수준의 물건밖에 만들지 못하는
이류 회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 야구와 수익률
타율이 0.250인 타자는 12번에 3번의 안타를 치고
타율이 0.333인 선수는 12번에 4번을 친다.
따라서 타율이 0.333인 선수는
0.250인 선수보다 매 12번당
1번 정도 더 안타를 치는 셈이다.
이 같은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타율 .250인 타자의 연봉은
17만 5,000달러인 반면
0.333인 타자의 연봉은 150만 달러이다.

-이성용, ‘트랜스포매이션 경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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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5-05-2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마음가지고는 "행복으로가는 비단길" 되긴 힘들겠는데요.^^
아마 올림픽 2등은 1등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웃겨줄지 모릅니다.책도 더 많이 읽을지도 모르죠.이류회사 직원은 아마 동료들과 덜 경쟁하며 동료가족들과 함께 주말이면 산에 오를지도 모릅니다.서로 김밥도 싸고... 2할 5푼치는 선수는 집에서도 야구배팅연습하는 3할타자보다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 줄지 모릅니다. (모든 이야기가 다 반대일 수 도 있지만요)
이야기 하고자 하는바는... 저건 다 수치에 불과 하다는거..그게 행복으로 가는 비단길을 만들어줄 수 없다는 거죠.이왕이면 1등하는게 좋다는 거는요.돌려말하고, 교양있는 지식인 답게 완곡하게 말하고,주변의 평등주의사상에 욕먹지 않기 위해 살짝 언저 말하고....다 그렇게 말해도....결국 1등해라.그게 좋다.는 말아닐까요?
강압적으로 1등을 강요하는 것과 완곡하게 말하는 것의 차이는 종이한장이고 초등학교 졸업장 가진 아이들이라면 그말의 뜻을 다 알죠/ 역시 경영마인드는 맘에 안들어요/인간은 빠지고 효율과 통계순위만 있는 ...그게 다 인간을 위한거라는 착각에도 빠져있는....

글샘 2005-05-2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서재에 모아두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때,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고 저런 이야기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학급 경영에도 획일적인 것만으론 미묘한 아이들의 마음을 반영할 수 없기도 하고... 틴에이저들에게 어떨 때는 '공부, 그 까짓거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위로해 줄 때도 필요하지만, '네 능력으로 이런 성적을 받는 건 이해할 수 없어.'하는 채찍질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자연은 변하지 않는 개체에 대해 무자비하다.
생명체든 기업이든 상관없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누구나 다 죽고 만다. 유근관 서울대 교수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자연의 법칙에서
적자(適者)는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조직과 사람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지 알면서도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합니다.
간절히 변화를 갈망한다면
변화방법을 몰라서 죽어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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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소원 사계절 아동문고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동화 3
이오덕 엮음 / 사계절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이오덕 선생님 생전에 남, 북, 연변의 동화를 모아 놓으신 책이다.

전자 책이 있어서 클릭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재미있다고 권해준 책이다.

북한 아이들은 어떤 동화를 읽고 있는지, 이오덕 선생님 말씀대로 어린이들의 동화가 서로 달라지면 그만큼 격차가 생기는 것이고, 아이들이 동화를 통해서 생각을 같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읽었다.

남한의 동화에 비해서 북한이나 연변의 동화는 훨씬 목적의식적인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표제 작품이 된 세 번째 소원만 해도 백 오십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 그 주제는 명확하다.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

이런 지당한 훈계를 심어주는 소설이 북녘에서는 아직도 유행인 모양이다. 어떤 아이가 일요일이 길고 긴 나라를 가고 싶어했지만, 결국은 지금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임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그런데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맨날 카트라이더에 영웅온라인에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즐기고, 버디버디에서 채팅을 하며, 인터넷으로 숙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발전된 것인지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소원 세 가지를 빌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시간을 늘려달라고 할까, 젊게 만들어 달라고 할까, 돈을 많이 달라고 할까, 높은 지위를 달라고 할까, 유명인이 되도록 해 달라고 할까...

역시 행복은 이런 것들이 충족된다고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집중해서 나의 지금, 여기를 <정념>, 바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 되리라. <올바로 보는 정견>, <올바로 생각하는 <정사>와 함께... 요즘 공부하는 불교의 팔정도가 행복찾기의 시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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