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 독일과 일본 그 두 개의 전후
타나카 히로시 지음, 이규수 옮김 / 삼인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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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지샤(東志社)대학 인문과학연구소가 1992년 개최한 심포지엄 '과거 극복과 두 개의 전후-일본과 독일'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일본어 책의 제목은 <전쟁책임, 전후책임>이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독일의 전쟁 책임이 상당히 객관적으로 진전된 반면, 일본은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면서, 민족성의 탓이나 '일본놈'들의 우익 탓으로 돌려버리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일본이 자신들의 전쟁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지 복잡하지만 다양한 원인들을 일본인 자신들의 목소리로 밝히고 있는 것에 대하여 공감을 느낀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일본인들 자신도 미래의 모습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이 나치의 살육에 대한 가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데 반해, 일본은 원폭의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독일은 주변국들과 교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철저한 보상에 힘을 기울인 반면, 일본은 전후 친미 종속 체제로 가면서 아시아를 탈피하는 경험을 가졌고,
그래서 할아버지, 아버지 대부터 사죄와 보상을 해온 독일인들은 현재도 처벌을 멈추지 않는 반면,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일본은 손자 대에 와서 책임의 소재를 묻기 어렵다는 측면을 갖고 있다.
독일은 전후 즉시 연합군이 진주하여 자료를 철저히 확보하였지만, 일본에는 2주나 지나 점령군이 진주하여(일본인들의 처절한 대항에 두려웠을 것이다.) 자료를 인멸할 시간을 벌었으며, 미국은 731 부대의 인체 실험 연구 성과를 배타적으로 독점하고자 재판을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막았다.
세계사적으로는 독일은 냉전의 시대 6개월 이전에 이미 전범 재판에 들어갔으나, 일본은 냉전의 1년 반이나 뒤에 재판이 시작되어 미국의 정책에 놀아나다 보니, 천황에 대한 처벌도 면책으로 돌아서고 일본의 자주적인 전쟁 책임의 시대는 사라져 버리게 되었으며,
특히 한국 전쟁이라는 특수를 통하여 급속도의 성장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일본 내  거주하던 조선인, 중국인들에 대한 보상은 제외하였고, 인육식(일본군을 내팽개쳐 두어 사람 고기를 먹은 사건) 사건을 조장하는 등 일본군 지휘관들이 일본 군인들에 범한 범죄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일부 군부의 몫으로 돌려 열등한 천황의 전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차의 나라, 고요한 정원을 가진 나라, 꽃을 사랑하는 나라, 하이쿠의 간결한 문학적 완성에서 보여 주는 和의 일본 문화와 극한적으로 대조를 보이고 있는 전범으로서의 일본.

여기에 50년대 이후의 동 아시아 제 국가들의 특수성(독재와 폭력으로 얼룩져 자국의 이익보다는 정권의 유지가 급급하던)에 따라 일본의 전후 문제 해결은 아직 아득해 보인다.

종전 40주년을 맞아, 일본의 나카소네(中曾根) 전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몰지각한 행위를 자행한데 반해, 서독의 대통령은 기념 연설을 통해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과거 극복>을 역설한 대조적인 행동은, 어떠한 경위에서든 일본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이다.

1980년대 불거진 교과서 파동(일본은 동아시아를 지켜주었다. - 영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 주었으니깐, 아,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서정주는 얼마나 감사의 헌시를 바쳤던지... 노천명도...)이후로도 끊이지 않는 망언, 그리고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잔학성에 대한 부조리를 이 책에서는 일정 정도 <미래의 책임>으로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 의견들이 역사 학자들의 논문이고 양심적인 몇몇 사람들의 논지에 불과할 뿐이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아직도 피해자 의식에 파묻혀, '우리가 왜 배상을 해야해? 우리가 가장 큰 원폭의 피해자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몇 년 전 일본어 공부에 빠져 있을 때, 일본 동화를 많이 읽었는데, 원폭의 참상, 그 가난과 역경의 시대, 시련과 아버지 부재의 시대에도 꿋꿋하게 버텨낸 어린이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동화들을 읽은 일본의 젊은이, 어린이들은 당연히 <일본은 가장 큰 피해자>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될 듯 하다. <731 부대에 대한 이야기, 동료의 살코기를 먹였던 정신대 이야기, 사체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웃음짓던 난징의 일본군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교과서나 어린이들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왜 전후, 철저한 전쟁 책임, 전후 책임을 지지 못했던지... 의 규명에 이 정도의 논문이라면 충분한 답이 되었을 것이지만, <미래 책임>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살아 내서 찾아야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박정희 정권이 김종필 특사를 보내 온 나라를 벌집을 만들어 놓고 도장찍어온 그 부끄러운 돈을 새마을 운동의 미명으로 합리화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역사는 알아야 힘이 된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열 수 있다. 우리 역사책이 단군할아버지가 터잡으신 기원전 2333년 전의 <신화의 세계>에서 빨리 탈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암기 위주의 삼국,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역사는 제발 현대사 중심의 역사, 주제가 있는 역사 교육으로 변모하길 바란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이들 교과서는 태조의 업적, 세종의 업적만 외우고, 우리 조상들이 훌륭했다는 것만 강조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을 볼 때, 우리 교과서는 너무 <과거 지향적>인 교과서인 것 같다. 이래서는 일본에게 돈 내놓으라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후손들은 아무 말도 못하게 될 것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든다. 그저 왕인 박사가 천자문 가르쳐 준 것과 담징이 호류지 금당벽화 그려준 것으로 자위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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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5-20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추천해 놓고 날 밝으면 읽을겁니다.
졸려요....

히피드림~ 2005-05-20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이 모든 악덕의 한가운데, 일본에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는 미명아래 일본에게 거의 아무 책임도 묻지 않은 미국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 리뷰 잘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글샘 2005-05-2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의 01:34도 대단하지만, 펑크님의 02:30은 더 대단하군요. 인간이 활동할 시각이 아닌 시각인데... 저도 이런 시각까지 뒹굴고 싶은 소망이 있네요. 여름방학이 되면 저도 반드시 해 보겠습니다.ㅋㅋㅋ
관심이 있으시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히피드림~ 2005-05-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예리하시네요. 저는 누가 글 올리면 글 올려진 시각부터 봅니다. 그런 분이 또 계시다니 반갑네요.저는 자정이전에는 졸립지가 않아요.

글샘 2005-05-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리 축엔 못 들죠. 오히려 곰탱이 같은 데는 자신 있는데... 저도 자정 전에는 여간해서 안 자는데, 새벽 두시 반에는... 다음 날을 위해서 자야죠. 반갑슴다.

울보 2005-05-2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왜 리뷰당선이 되셨는지 알겠네요,,
축하드립니다,저도 보관함에 넣겠습니다

글샘 2005-05-28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리뷰 당선이 되었단 말씀입니까? 확인해 볼게요.ㅋㅋㅋ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 읽어 보세요. 우리가 일본을 무조건 욕하면서, 민족성이 더럽다는 둥, 원래 저질 인간들이라는 둥 하는데,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잖아요. 일본인들의 현재의 추한 모습의 원인을 이 책은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좋은 책 같습니다.

달팽이 2005-06-0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아야겠군요...글 잘 읽고 갑니다. 요즘은 전공인 사회과학 책도 잘 안 읽는데...선생님 통해서 또 책 읽어야겠다는 생각 나는군요..

깍두기 2005-06-0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집니다. 이책 꼭 사보고 싶네요.

글샘 2005-06-02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저도 사실은 전공인 국어 관련 책은 별로 안 읽는답니다. 남의 전공이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외도랄까...
신깍두기님... 사서 보시든, 빌려 보시든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책이니까요. 사실 우리가 무턱대고 일본을 미워하고 무시한 지 너무 오래되었더든요.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장 자끄 상뻬 그림, 다니엘 오퇴유 글 / 이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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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니엘 오퇴유,
<마농의 샘>에 나오는 영화배우라는데, 외국인 얼굴 구별에 심한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그의 사진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어린 시절, 유랑 극단에 속해 떠돌던 시절의 그림을 어둡지 않게 적어내는 성장소설이다.

극장을 놀이터 삼아 놀기도 하고, 성당에서 장난을 쳤다가 곤란한 경험, 사춘기의 달콤한 추억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고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가난하지만 무언가로 충만했던 꿈의 시절, 마법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밝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밝은 파스텔 톤으로 처리하고, 크레용의 거친 질감과 환한 햇살의 밝은 빛으로 감싸안은 소설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같이 밝게 한다.

꼬마 니꼴라, 좀머 씨 이야기에서 만났던 장 자끄 상뻬의 그림도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배우가 쓰는 소설, 뭔지 치열한 삶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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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5-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외국인 얼굴 구별에 심한 장애라....
다 비슷비슷해 보이시나요?
유럽 사람들은 한국,중국.일본 사람 구별 못하거든요.
우린 딱 보면 아는데....
근데요...유심히 보면 비슷해 보여도 무슨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있답니다.
한번 유심히 살펴보세요.재미있답니다.

글샘 2005-05-2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심히 볼 일이 없어서겠지요. 저도 어린 시절 외교관이 꿈이던 때가 있었는데...
아마 외교관이 되었다면, 증상이 좀 나아졌을는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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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5-05-20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초등학교 6학년... 광주에 있었습니다.
제 가족 중에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훗날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내 어린 날의 광주가 떠올랐습니다.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진짜 사과하라고 그리 떠들고 있지만, 광주 사람들은 그 당시 가해자들에게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라고... 용서 비는 사람 없어도 그냥 용서하고 있습니다...ㅜㅜ

글샘 2005-05-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국민에 대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피해는 누가 보상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보상이 되기나 하는 걸까요? 광주가 이처럼 오랜 추억이 되어버리고, 일부에서 경축탑을 세우는 등 잊혀져 가는 사건이지만, 아직도 그 오월의 십자가는 민족 정기가 되어 형형하게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틱낫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옮김 / 두레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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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러 생을 통하여
삶과 죽음이 있어서
나고 죽고 나고 죽는다.
살고 죽는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다.
살고 죽는다는 생각이
죽는 순간
참된 삶이 태어난다.

틱낫한 스님의 책 중에서 가장 뜨거운 책이다. 스님의 책은 보통 평온하고 고요하기 그지없는데, 이 책은 베트남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뜨거운 입김들을 불어 넣은 책이므로 고요할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25년 전, 살육의 현장의 사진들을 바라보면 이십 년 전 뜨겁던 대학 생활이 되살아온다.
광주의 십자가는 매년 한반도를 달구었고, 그 범죄자를 단죄하는 데 실패한 나라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삶은 죽음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빛을 내며 타오르는 촛불이 방을 비추면서 길이를 짧게 하듯이... 그러나 그 초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듯이... 초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나의 사념일 뿐.

살고 죽는다는 생각, 모든 고통의 시작과 끝인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죽이는 순간, 참된 삶이 태어난다는 역리는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묘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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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치는 밤 읽기책 단행본 9
미셸 르미유 글 그림,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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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책은 가로보다 세로가 길다. 정사각형을 오려내고 나면 얼만큼의 종이가 남을 만큼...

이 책은 반대로 가로가 더 길다. 그리고 아이들이 여러 번 읽어도 해어지지 않도록 두툼한 종이를 쓰고 있다.

지은이 미셸 르미유는 캐나다인이고 불어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불어로 읽으면 얼마나 부드러운 발음으로 숑숑대면서 읽힐까...

상당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거리까지 달려간 책이다.

천둥치는 밤, 한 소녀는 개 한 마리와 둘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 생각들은 현실감이 없기도 하고, 상상 속의 공상들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이다.

누구나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자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게 마련이지만, 대개 끝도없는 잠의 시작과 맞물려 잊혀져 버리기 십상이다.

잠못 이루는 밤이 아닐지라도, 늘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는 철학책, 종교책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이 이런 철학적 사변들을 자유롭게 확대해 나가는 것이 곧 국가의 인문학적 인프라를 공고하게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 책을 많이 권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절판이란 붉은 글자를 보는 순간, 우리나라의 인문학적 인프라가 얼마나 좁은지를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철학을 가르치지 못하는 우리 나라 같은 처지에선, 정말 삶은 무엇인가, 삶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하는 철학 선생의 진지한 질문에 '삶은 계란'이라는 엽기적인 답을 한들, 그것 또한 우리의 얕은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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