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의 아이들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송희 옮김 / 문학수첩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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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환상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오에 겐자부로의 사고가 가장 잘 드러난 이야기라고 하겠다. 별로 재미는 없다.

타임머신의 기능을 하는 나무속에서 삼남매는 시간 여행을 한다.

미래와 과거의 자리에 서서,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는 모두가 현재에 이어져 있음을 되새긴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결국, 현재, 바로 지금 여기 뿐이라는 것.

얼마 전 읽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새로운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가 결국 이 글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낡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어 주어야만, 앞으로의 일본이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는 일본 왜곡 역사교과서에도 반대하고, 난징학살, 종군 위안부의 은폐의 자세를 비판하는 지식인이다. 특히 그는 히카리라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영향이 이 소설에도 잘 드러난다.

일본의 삶이 우리와 많이 다른 것은 인정하지만, 자기들의 과거사를 감추려는 '낡은 사람'들의 태도는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바라 보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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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여유, 그리스 - 역사여행가 권삼윤의 그리스 문화기행
권삼윤 지음 / 푸른숲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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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카사 비양카(카사 블랑카라고도 한다. 원래 카사는 집, 블랑카는 하얀이란 뜻이니, 하얀 집이란 뜻, 카사 블랑카란 도시도 있고, 백합 비슷한 화려한 꽃도 있다.)에 도발적으로 꽂히는 포두줏빛 푸른 바다라고 할 수 있다.

바로 포카리 스웨트 광고에 등장하던 그 푸른 바다와 흰 집들 말이다.

언젠가 한 번 그리스의 따가운 햇살(이건 내가 별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을 등에 맞으며, 선글라스 없이는 바라보기 힘든 카사 비양카의 백색 집에서 잠을 자고, 우리 동해보다도 푸른 디오니소스의 바다를 가 보고 싶다.

권삼윤은 여행가다. 그런만큼, 이윤기의 그리스를 읽는 눈에 비하면, 깊이가 없다. 여행가이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보이고, 특히 가슴 큰 그리스 여인들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독자가 별로 원하지 않는 이야기들.

그렇지만, 구석구석 다양한 곳을 여행하기에 깊이있는 생각을 듣기 보다는, 시원한 바다와 어우러진 그리스 풍경이 멋드러지게 펼쳐진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깎아지른 벼랑위에 지어진 수도원들이다. 오천 년 전에 지었다가 이제는 다 무너져 버려 열주나 주추만 남은 신전터의 썰렁함에 비하면, 반지르르한 바위 꼭대기에 독수리마냥 사뿐 올라 앉은 수도원을 보면, 그리스 정교든 뭐든 종교의 종류에 관계치 않고, 거기 살아가면서 자기와 맞서 보았던, 그리하여 우리 존재의 가벼움의 질량을 비교해 보았던 치열한 삶들을 상상하게 된다.

루사노 수도원, 성삼위일체 수도원, 발람 수도원 같은 수도원들과, 수도사들이 바위벽을 타고 올랐던 그물 망태를 바라보노라면, 색다른 경험에 가슴 뛰는 지은이와는 다른, 삶에 대한 종교에 대한 경건함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경험이다.

신화의 나라, 고대 문화를 꽃피웠고, 도시 생활을 이룩했고, 예술 속에서 살았던 나라, 그리스,
푸르른 지중해에 둘러싸인 발칸 반도의 나라, 올림픽의 근원지이며, 포도주와 올리브의 나라, 그리스.

역사 여행가란 사람의 발걸음 따라 아직도 오늘 새벽을 살고 있을 지중해변 카사 비양카 속의 그이들의 삶을 조금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조금 아쉬운 것은 감출 수 없다. 역시 책을 쓰려면, 글맛을 살릴 줄 알아야 하고, 전문적인 일가견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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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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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은 지 오래건만, 간혹 짙은 담배 연기 내뿜는 영화를 보면 흡연의 유혹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 소설은 정말 드물게, 청주를 땡기게 하는 소설이다.

60대 후반의 선생님, 30대 후반의 제자가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된다.

그리고 정말 신선하고 담백한 사랑을 나눈다.

작가는 일본어의 부드러움, 그리고 뭔지 아쉬움을 남기는 뒷맛을 잘 표현한다.

번역에서도 그 맛이 함뿍 묻어 나고 있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도의 사랑이다.

인간과 인간이 상대를 정말 <인간>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는 느낌.

따끈한 청주 한 잔이 그리웁게 만드는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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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설산
임현담 지음 / 초당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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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 여섯 먹어, 왜 살지? 너는 누구냐. 의문이 생겨, 느닷없이 인도로 떠났던 사람.

그이가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 스승을 찾아 떠도는 이야기다.

확실히 인도에서 하층민들 다비하는 모습이나 쳐다보던 <텅빈 인도>편에 비해서 영적으로 충만해가는 과정을 배우고 온 느낌이 강하게 밀려든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거리는 세상을 벗어난 히말라야, 그 설산 위에서 옷도 버리고, 음식도 버리고, 오로지 형형한 눈빛 하나로 살아가는 지적 스승들을 만난 이야기는 졸리운 봄날 오후에도 정신은 행복하게 했다.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가르치다보면, 근검을 자식들에게 일깨우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의 눈과 입이 유혹에 약해서 맛있는 것을 탐한다고. 뱃속에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변해버릴 것을 탐욕스럽게 갈구한다고. 검소해야 한다고. 검소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구나. 배운 오후.

눈쌓인 예봉이 날카롭게 하얀 배경으로 짙푸른 하늘빛만 형형한 사진에서, 잿빛 인도에서 휑한 가슴 쓸어안던 저자의 마음이 더욱 깊은 진리에 다가가고 있음을 선뜻하게 느낄 수 있다.

먼 옛날, 누군가가 히말라야에 앉아있던 붓다에게 깨달음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이 돌아왔다.

차라이베티 : 걷고 걸어라...

털실로 버선을 짜주던 천사 프랑스 여대생을 생각하며, 덩치만 어른이지 정신연령은 유아 수준인 우리 대학생들을 돌아보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옴기리바바지라는 구루(?)를 우연히 만나 좋은 음식을 먹어라, 좋은 말을 해라, 좋은 걸음으로 걸어라, 잠을 적게 자라는 배움을 듣는데, 그의 이야기가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이야기란 직접화법으로 듣는 것과 간접화법으로 읽는 것에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리라.

옛날 중국 탕왕의 욕조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지.

날마다 그대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그 형형한 정신을 되새기며, 저자가 잠들기전 외우던 기도문을 나도 읊조려 본다.

이제 나는 내 의지와도 상관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떠납니다.

삶의 휴식과도 같고 죽음과도 같은 세계로 떠납니다.

내 모든 것을 당신 손 안에 드리오니 깨어나는 새 아침까지 함께하여 주소서.

진실로 나를 만나고 싶은 날, 껍데기같은 하루하루를 만나는 너풀거리는 꽃잎처럼 가볍고 초라한 오후,
히말라야에서 쩡하고 울리는 소리는 크레바스 벌어지는 소리인지,
삶이란 너를 만나는 것이란 걸 깨우치는 다원적인 신의 할인지...

저자 덕분에 수도자들의 삶의 태도와, 일상에서 삶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만날 것인지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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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5-0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은, 눈빛은 어떠하여야 깊어지는 걸까요? 인도에 잠시 내렸던 사람으로 갑자기 부끄럽네요. 이 나이도, 또 철없이 굴렀던 나의 대학시절도... 그래서 갑자기 요 생뚱 맞은 질문이 나왔나봐요. ^^

글샘 2005-05-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가 그랬잖아요. 너 자신을 알라고. 그럼 그분은 아셨냐면, 당신께서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고 하셨거든요.
자신에 대한 탐구를 놓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영혼과 눈빛은 인생의 경륜에서 우러나는 광택일지도 모릅니다.
 

챔피언은 경기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챔피언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 있는
소망, 꿈, 이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 전 헤비급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챔피언은 공식적으로는 타이틀 매치에서 결정되지만,
오랜 꿈과 희망, 집념 그리고
한발 한발 꾸준히 내딛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연습에 의해 이미 만들어집니다.

사람과 기업, 모두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상 정복은 요행이 아니라
준비된 자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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