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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생이 아이를 망친다 - 내일을여는교육 15
가나모리 우라코 / 내일을여는책 / 1996년 3월
평점 :
품절
십년 전에 출간되어 벌써 절판되어 버린 책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런 책들은 책을 만나는 일이 우연하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는 데 대해 어느 교사도 저항하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다. 또 새로 전근온 학교는 아직도 교사가 교실에 불쑥 들어가서 아이들 머리 검사를 하고 가위와 바리깡으로 뒷머리를 흉하게 파먹는다. 칠십년대엔 면도칼로 밀었던 데 비하면 인간적인가?
일본의 상담심리학자가 학교에서 부정적인 교사들의 언행때문에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사례를 담담히 적고 있는 책이다. 상담의 과정과 결과이므로 객관적이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내겐 참 주관적인 인상을 남겼다.
우리 나라에선 교사가 학생을 망친다는 기사를 쓴다면 <교육계 죽이기>라고 저항할는지 모른다.
대학 입시 광풍으로 매년 많은 수의 고등학생(심한 경우 초등도)이 목숨을 끊고,
가끔가다 미친 교사들이 촌지 수수로 물의를 빚으며,
아직도 학교에선 교사의 폭력이 횡행하며,
국가가 형식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조장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으며,
보충수업, 자율학습의 미명하에 학생들의 일조권은 제한당하고,
수업에서 소외된 학생들의 비행으로 학교는 붕괴에까지 이른다.
일본의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상을 본다면 참으로 잘 따라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의 교육과정을 견학하고 온 나로서는 정말 심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대학 입시 문제가 심각하고, 일류대를 지향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울대처럼 무기력한 대학은 아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학급당 학생 수가 많지만(우리 나라보다 많다) 영어, 수학처럼 단계형에서는 더 많은 교사가 투입되며, 특활이나 특기적성에도 많은 강사가 투입된다.
가진 것 없는 우리 나라에서 순응적 테크노라트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교육에서 발생한 갖가지 문제점들(비리, 폭력, 입시 위주 일변도)은 아직도 상존하면서, 제도적인 변용만 몇 가지 부린 것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 한 데 문제가 있겠지만, 교육부, 그들만 과연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 듯 하다.
학생들을 단체적으로 교육하는 현장에서 관료적인 교육 관료(지들끼리는 교육전문직이란 미명을 쓰지만, 장학관과 장학사, 교장, 교감 들은 내가 보기엔 별로 전문직이 아니다.)들과 퇴폐적인 갖가지 부조리한 시스템의 중간에서 학생들을 비교적 성공하는(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 애 보다 더 - 서태지, 교육 이데아) 미꾸라지 속의 용들을 만들어 보려는 <교육 행태>로 우리는, 아니 나는 연꽃같고 우주같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는가.
한창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발달이 따르지 못하는 <덩치는 나보다 크지만 생각은 얼라같은 아이들>에게 재생산 시스템의 한 <나사 조립공>으로서 기능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정 정도의 불량품 인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어제 토요일 마지막 시간, 영어 시간에 우리 반 꼴통 두 놈이 도망을 갔다. 입학한 지 한 달 반 만에 결석도 2,3번 했고, 자다가 늦게 온 적도 요즘 몇 번씩 있는 녀석들. 학생부에서 흡연으로 지도하려 해도 뺀질거리고 도망다니는 녀석들. 화가 났다.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 나머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죽도록 패줄까? 아님 부모를 부를까? 말로는 안 먹힐텐데...
... 하던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 풀렸다. 어차피 그 연꽃들에게 해결책은 없다. 토요일 마지막 시간,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듣고 있기 싫었을 것이고, 깐깐한 영어 선생이 만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녀석들의 집에는 녀석들을 지도할 부모는 없다. 가정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한 녀석은 작년에도 다른 학교를 자퇴한 경력이 있다. 이 학교를 관두는 건 아주 쉬운 문제다. 이제, 복학생 꼴통들을 감싸안는 <쎈스> 정도는 담임이 가지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신 건 아닐까? 이 책이 도서관에서 눈 빛내며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느 정도 권위적일 필요는 있다. 우리 나라처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떠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 대해 학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교사의 권위가 수업의 질을 보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권위만으론 학생들이 입는 상처를 다독거려줄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걸 쇠뚜껑으로 덮어 놓고, 그걸 철항아리로 덮어 놓고, 그걸 하늘로 알고 살아왔다.
다른 반보다 출석률이 높으면, 다른 반보다 공부를 잘 하면, 다른 반보다 입시 성적이 좋으면 난 훌륭한 교사였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나를 채찍질하는 책, 역시 책은 진정한 우리 인생의 <멘토>이다.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이렇게 서늘하게 다가온 아침.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