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민족사 불교경전 1
불전간행회 엮음 / 민족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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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둘리에 도우너라는 외계인이 나온다. 그 외계인은 바이얼린처럼 생긴 우주선을 타고 현을 켜면서 '깐따삐야'라고 소리치면 시공을 초월한 이동이 가능하다. 깐따삐야가 별 의미없는 소리라고 치부했는데, 화엄경을 읽다보니 특별한 의미가 읽힌다.

화엄의 범어 명칭은 간다-뷔하이다. 간다는 잡화(雜華)를, 뷔하는 엄식(嚴飾)을 의미한다. 즉 이름없는 꽃을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꽃으로 법계를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것. 세상에 이름 없는 작은 꽃에서도 무한한 우주의 생명이 약동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화엄경의 깨달음인 것이다.

서른 네 챕터로 나누어져서 <불도를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중생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제기하는 것이 큰 내용이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과 무산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었으나, 화엄경을 소재로 차근차근 설법을 한다면 무한한 세계를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멋진 화엄경 설법을 만나고 싶다.

특히 마지막의 선재동자의 입법계품은 그 열렬한 구도정신이 돋보인다. 법정 스님의 입법계품 설명이 있던데 기회가 되면 그 책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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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희망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종말입니다.
절망의 암흑을 벗어나는 데 있어 오직 한 개의
당신 촛불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한 개씩의 촛불을 밝힌다면 암흑은 순식간에
광명의 대낮이 될 것입니다."

- 오그 만디노의《아카바의 선물》중에서 -

* 사망의 골짜기에도 희망은 존재합니다.
음침한 절망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지 못할 뿐입니다.
같은 상황인데도 어떤 사람은 절망을 보고, 어떤 사람은
희망을 봅니다. 누군가 먼저 희망의 촛불을 들면
다른 많은 사람도 따라서 촛불을 들게 됩니다.
절망은 절망을 낳고 희망은 희망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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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4-1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안개와 황사가 봄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래도 길은 보입니다.
길........희망으로 가는 길이겠죠?

글샘 2005-04-1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사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느님이 게시가 아닐까요?
희망으로 가는 길에서 주어진 테스트 같은 것.
 
이런 선생이 아이를 망친다 - 내일을여는교육 15
가나모리 우라코 / 내일을여는책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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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에 출간되어 벌써 절판되어 버린 책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런 책들은 책을 만나는 일이 우연하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는 데 대해 어느 교사도 저항하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다. 또 새로 전근온 학교는 아직도 교사가 교실에 불쑥 들어가서 아이들 머리 검사를 하고 가위와 바리깡으로 뒷머리를 흉하게 파먹는다. 칠십년대엔 면도칼로 밀었던 데 비하면 인간적인가?

일본의 상담심리학자가 학교에서 부정적인 교사들의 언행때문에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사례를 담담히 적고 있는 책이다. 상담의 과정과 결과이므로 객관적이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내겐 참 주관적인 인상을 남겼다.

우리 나라에선 교사가 학생을 망친다는 기사를 쓴다면 <교육계 죽이기>라고 저항할는지 모른다.

대학 입시 광풍으로 매년 많은 수의 고등학생(심한 경우 초등도)이 목숨을 끊고,
가끔가다 미친 교사들이 촌지 수수로 물의를 빚으며,
아직도 학교에선 교사의 폭력이 횡행하며,
국가가 형식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조장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으며,
보충수업, 자율학습의 미명하에 학생들의 일조권은 제한당하고,
수업에서 소외된 학생들의 비행으로 학교는 붕괴에까지 이른다.

일본의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상을 본다면 참으로 잘 따라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의 교육과정을 견학하고 온 나로서는 정말 심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대학 입시 문제가 심각하고, 일류대를 지향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울대처럼 무기력한 대학은 아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학급당 학생 수가 많지만(우리 나라보다 많다) 영어, 수학처럼 단계형에서는 더 많은 교사가 투입되며, 특활이나 특기적성에도 많은 강사가 투입된다.

가진 것 없는 우리 나라에서 순응적 테크노라트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교육에서 발생한 갖가지 문제점들(비리, 폭력, 입시 위주 일변도)은 아직도 상존하면서, 제도적인 변용만 몇 가지 부린 것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 한 데 문제가 있겠지만, 교육부, 그들만 과연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 듯 하다.

학생들을 단체적으로 교육하는 현장에서 관료적인 교육 관료(지들끼리는 교육전문직이란 미명을 쓰지만, 장학관과 장학사, 교장, 교감 들은 내가 보기엔 별로 전문직이 아니다.)들과 퇴폐적인 갖가지 부조리한 시스템의 중간에서 학생들을 비교적 성공하는(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 애 보다 더 - 서태지, 교육 이데아) 미꾸라지 속의 용들을 만들어 보려는 <교육 행태>로 우리는, 아니 나는 연꽃같고 우주같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는가.

한창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발달이 따르지 못하는 <덩치는 나보다 크지만 생각은 얼라같은 아이들>에게 재생산 시스템의 한 <나사 조립공>으로서 기능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정 정도의 불량품 인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어제 토요일 마지막 시간, 영어 시간에 우리 반 꼴통 두 놈이 도망을 갔다. 입학한 지 한 달 반 만에 결석도 2,3번 했고, 자다가 늦게 온 적도 요즘 몇 번씩 있는 녀석들. 학생부에서 흡연으로 지도하려 해도 뺀질거리고 도망다니는 녀석들. 화가 났다.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 나머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죽도록 패줄까? 아님 부모를 부를까? 말로는 안 먹힐텐데...

... 하던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 풀렸다. 어차피 그 연꽃들에게 해결책은 없다. 토요일 마지막 시간,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듣고 있기 싫었을 것이고, 깐깐한 영어 선생이 만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녀석들의 집에는 녀석들을 지도할 부모는 없다. 가정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한 녀석은 작년에도 다른 학교를 자퇴한 경력이 있다. 이 학교를 관두는 건 아주 쉬운 문제다. 이제, 복학생 꼴통들을 감싸안는 <쎈스> 정도는 담임이 가지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신 건 아닐까? 이 책이 도서관에서 눈 빛내며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느 정도 권위적일 필요는 있다. 우리 나라처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떠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 대해 학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교사의 권위가 수업의 질을 보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권위만으론 학생들이 입는 상처를 다독거려줄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걸 쇠뚜껑으로 덮어 놓고, 그걸 철항아리로 덮어 놓고, 그걸 하늘로 알고 살아왔다.

다른 반보다 출석률이 높으면, 다른 반보다 공부를 잘 하면, 다른 반보다 입시 성적이 좋으면 난 훌륭한 교사였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나를 채찍질하는 책, 역시 책은 진정한 우리 인생의 <멘토>이다.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이렇게 서늘하게 다가온 아침.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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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다릴 앙카 지음, 류시화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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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널러, 바샤르 ... 이런 낯선 말이 이 책엔 등장한다.

사실 그 말은 별 뜻 없다. 다릴 앙카라는 사람이 우주의 혼의 주파수를 맞추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종의 영매라고 할 수 있다. 바샤르는 그 영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별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걸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다 웃고 말았다. 믿는다는 것이 뭔가 싶어서...

사실, 믿음이란 것이 별것 아니지 않은가?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하고 떠드는 할머니들을 지하철에서 많이 만났다.
선생님은 믿을 수 없는 학생을 격려하는 척하면서 한 마디 던진다. "난 너를 믿는다."
바람핀 남자 친구 또는 남편이 여자친구 또는 아내에게 식상하게 하는 말, "날 그렇게 못 믿어?"

믿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을 그렇다고 강하게 세뇌시키는 강화 행동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강화된 착각 말이다.

그러나, 저 제목은 얼마나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지... 이 책을 읽으면서 중반 이후론 평범한 내용도 많았지만, 제목은 정말 맘에 들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가슴 뛰는 삶. 내가 언제 가슴이 뛰어 봤던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 가슴이 뛰었나...

초등학교 시절, 만화 속의 환상을 보면서 가슴 떨린 기억이 난다.
가난하고 평범한 현실과 너무도 다른 꿈속의 세계.
그리고 대학교 입학하고 미팅을 기다리면서 가슴 뛰었던 적이 있지만, 결과는 너무도 뻔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할 때 참 가슴이 많이 뛰었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가슴 뛰었고, 요즘도 3월 2일 아침이 되면 1년에 한 번씩 가슴이 뛴다. 올해는 어떤 운명들을 만날 것인지...

우주의 기운, 바샤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다른 사람의 거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충분히 자기 자신을 사는 일. 이거, 많이 듣던 말이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 부처의 자비, 예수의 사랑, 그런 거 아닌가. 생기긴 다르게 생긴 듯 하지만, 그 파도의 속에는 바다라는 본질이 든 것. 바샤르라는 가상의 신비로운 믿음의 대상을 상정하여 우리 삶의 파도들의 거품들을 들여다 보는 작업은 일정정도 신선한 방식이다.

가슴이 뛰는 일, 그것은 우리를 위한 길이고,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일을 하면 우리의 삶이 매우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난 요즘 도서관에 새 책을 빌리러 가면서 가슴이 뛴다. 나를 기다려 줄 책들.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 빛나는 책으로 보이려고 보이지 않게 키높이를 하는 책들. 까치발한 책들 중에서 몇 권을 고르는 일은 즐거운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바샤르가 남긴 말 중에 심장에 남는 말이 있다.

물건을 떨어뜨리면 줍는가, 주으려고 노력하는가. 나를 만나는가, 만나려고 노력하는가.

해답은 이미 당신들 내면에 있다.

 

물건을 떨어뜨리면 주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몸이 심하게 불편한 상태가 아니라면. 그저, 대뇌의 큰 노력 없이 주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수련, 마음 공부, 종교 등의 <말, 말, 말>을 가지고, 그 <지혜, 반야, 다르마>를 배우려고 갖은 꾀를 쓰지 않는가. 노력하는 체 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닌데... 그저, 주으면 되는 것인데...

 

금강경에서 읽던 말을 바샤르에게서 듣는 기분은 묘하다. 공부를 오래 한다고 알아 지는 것은 아니다. 몰록 어느 순간 알아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사도, 도사도, 부처도 모두 죽이라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님의 앞에 나타난 그 많은 나환자들은 모두 죽어가는 육신이었지만, 썩어가는 시체의 부패하는 냄새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던 것이다. 그것을 만나면 되는데, 우리는 만나려고 <노력>만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말고, 는...(나의 그림자가 우리라고 아이들에게 늘 가르치면서, 난 불리할 때면 툭하면 우리를 걸고 나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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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 - 심장에 남는 사람 노래 : 장윤희 작곡 : 김덕수 작사 : 리춘구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http://cafe.naver.com/gungukmn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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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4-18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랫말이 아주 정열적입니다. 직선으로 내닫는 표현어휘들이 딱 제 스탈입니다.

어제 찍은 사진 한 장을 드리면서 심장에 남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하루가 되시라고...^^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글샘 2005-04-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제 예쁘게 벚꽃이 피고 있군요. 여긴 벌써 다 졌답니다. 지난 주말에 경주에 자전거를 타러 갔더랬는데, 거기도 거의 졌더군요.
심장에 남는 사람, 이런 직지인심(直指人心)하는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순수한 사회가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 주소에서 노래도 들었는데, 인상적이었습니다.
멋진 벚꽃 사진 감사히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