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백색. 각 교수들마다 나름의 평가기준을 갖고 학생들이 제출하는 리포트를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가지 기준을 관통하는 보편적 기준은 있게 마련. 내용의 구성, 논리적 증거의 사용, 글 쓰는 기초(문법, 구조, 철자법)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A학점부터 F학점까지 각각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인과관계는 무엇일까.

◇불만족스러운 페이퍼 … D F

D나 F로 채점되는 페이퍼는 글의 구조가 없거나 모호하거나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것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페이퍼에는 글 쓴 사람이 주어진 주제를 이해한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단락들은 유기적이지 않다. 또한 내용의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른 언어 아니면 같은 말로 반복한다. 결정적으로 D나 F로 채점된 페이퍼는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의 모순과 틀린 문법, 오자로 가득하다.

◇주장에 대한 증거제시 부족 … C

C로 채점된 페이퍼는 글의 구조는 명확하지만 내용이 모호하고 지루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 C 페이퍼는 주장에 대한 증거를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가끔은 증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끔 내용의 모순이 나타나며 문법이나 철자가 틀린다. 그러나 이러한 문법과 철자의 잘못이 없는 페이퍼도 C로 채점될 수 있다.

◇문장·문단의 일관성 결점 … B

B로 채점된 페이퍼에서 교수는 학생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훌륭하고 재미있는 주제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주제는 깔끔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쓰여진 명백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 되어진다. 가끔씩 문장이 깔끔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경우를 발견하게 되지만 그러한 문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이 연결될 수 있다.

B페이퍼의 문단은 때때로 일관성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의 중심 주제를 향해 있다. 이 페이퍼는 항상 내용의 구조가 명확하다. 철자법도 좋고 구두법도 정확하다. 또한 논의될만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페이퍼의 주제를 흐리는 여담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리고 페이퍼를 시작할 때 말한 것이 논의되었다는 것을 알리면서 글을 마친다.

◇생동감있고 정확한 주제 전달 … A

A로 채점된 페이퍼는 B로 채점되는 페이퍼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내용이 생동감 있고 적당한 속도가 있으며 때때로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다. A 페이퍼는 일관된 문체를 가지고 있으며 내용들이 모두 정확하게 하나의 주제를 향한다. 이런 페이퍼에서도 교정봐야하는 에러와 오자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오자가 발견하더라도 교수로 하여금 그것은 단지 우연한 실수였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페이퍼를 읽으면서 교수는 학생의 노력과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교수는 학생이 교수의 의견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 의견들을 전달해준 언어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을 확신한다.

(출처=이화여대 교수학습센터home.ewha.ac.kr/∼ec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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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 - 깨달음으로 가는 외길
대우 지음 / 현암사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그 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 그 곳은 없다. 부처도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대우 스님의 법강을 적어 놓았다.

지난 번 읽은 선으로 읽는 금강경이 <너무 쉽게> 풀이되어 있어서, 참 고마웠는데, 이 책에는 그 책보다 좀 어려운 말들이 많이 튀어 나왔다. 과학에 비유를 든 것도 많고... 한자어도 어려운 것이 많고... 선문답도, 게송도 낯설고 어렵다.

그렇지만 요지는 하나다. 선 지식이란 것은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나가는 것이라는 하나. 그리고 그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 이 둘이 하나라는 사실.

어리석게도 이런 책을 읽으면, 뭔가 알아간다는 착각이 들고, 나를 비우고 있다는 망상을 한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도다.

오늘은 적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적게 먹으려고. 적게 먹으면 어떻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저 적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고혈압에는 체중 감량이 필수라는데...

살을 빼려고라기 보다, 체지방이라도 자꾸 뭔가를 가지는 건 미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꾸 뭔가 생각을 한다.

오늘은 교사의 일기 검사가 사생활 침해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사람들이 왈가왈부가 많다.

난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아들이 1,4학년 때, 선생님께서 일기를 열심히 읽어 주시고 아들을 인정해 주자 아들의 문장력은 엄청 자랐다. 내가 불러준 것도 많았지만,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들어 적었다. 선생님이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일기 검사는 프라이버시 침해 보다는 훌륭한 의사 소통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이 2,3,5,6학년때 선생님은 싸인만 해서 돌려 준다. 아이들은 이럴 경우 일기 쓰기가 노가다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은 그나마 엄마, 아빠가 제 일기 읽는 낙으로 사는 줄 잘 알기 때문에 잘 쓴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기가 제 본심의 모두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교육적으로 일기 쓰기 검사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권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선생님들은 정말 일기를 효과적으로 교육에 활용했다. 그치만 대부분의 게으른 교사들은 일기 검사를 핑계로 자습을 시키고, 대-충(요즘 세간에 이 말이 유행이다. 까잇거, 대충하면 되지, 뭐.) 읽어 보고 싸인만 해 버리는, 아 며칠마다 한 번씩 검사하고 말더라. 아무리 멋진 일기를 써도, 아무리 솔직한 일기를 써도 칭찬 한 마디 안 내비치는 교사들. 천지로 많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 좋은 거라면 발전 시킬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한다.

선생님들, 일기 검사 하세요.
선생님들, 수행 평가 하세요.
선생님들, 청소 감독 하세요.
선생님들, 싸움 못 하게 하세요.

일기 검사가 학급 운영과 학습 단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하고, 나머지 교사는 안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정말 걱정되는 건, 이제 학교장들은, 그 어리석고 힘없는, 용심으로 가득한 자들은

선생님들, 일기 검사 하지 마세요.

라고 지시할까봐 두렵다.

학교마다 자율성은 있어야 한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대 의견이 좀 있다 한들, 학교가 하겠다는 고집도 좀 있어야 한다. 자율성과 강제성은 다르다. 자율성에는 토론과 합의, 그리고 책임과 권리가 따르는 것이고, 강제성은 일방적 지시와 의무만 따르는 것이다.

학생들의 머리를 교사가 잘라버리는 것은 강제성에 가깝다. 그렇지만 토론과 합의, 책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자율성은 인정해야 한다.

무엇이 옳다, 옳지 않다는 것.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들에는 반드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끼어든다. 어리석게도 나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옳다고 한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성을 낸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욕심을 부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도 어리석게도 팔을 뻗친다.

옳다는 말도 없음을, 물처럼 흐르면서 흐르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도 정지된 학교라는 프레임 속에서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얽매여, 하루하루 중생으로 살아간다.

마음에 종이 나면 여러 법이 생기고, 마음에 종이 사라지면 여러 법이 사라진다는데... 심생종 종법생 심멸종 종법멸...

그래도 따스한 햇살 가득 받은 화안한 벚꽃나무 아래서 싱그럽게 뛰어다니는 황금기들을 바라보는 곳에 산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이 중생은 행복하다. 아, 다시 교사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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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 2009-01-07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의 저자'대우거사'와 '선으로 읽는 금강경'의 '대우스님'을 혼동하셨네요...
각기 다른 저자이신데요...
게다가 저는 이책을 아무리 읽어도 중생살이를 행복하게 잘꾸려나가는법을 일러주고 계시지는 않던데요. 오히려 모든 판단이나 사고 생각자체를 멈추고 곧바로 그 생각의 당처로 직입하여 본래의 자신을 알라하시더군요...
한번 더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담임 통신 2005 - 3호                                       부산공고 1학년 기계과 1반


목표를 세웠으면, 도전하자.


우리 반 친구들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다.


1. 내 인생에 지각하지 말자.

오늘은 8시 10분에 지각자 체크를 했다. 어떤 학생은 8시 10분은 너무 이른 시각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아, 명심(銘心, 마음에 새김)해라. 세상은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하는 피곤한 쳇바퀴 속임을. 어떤 집단에서든 정해진 시각에 맞춰 출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니, 오히려 출근 시간보다 이삽십 분 일찍 출근해서 청소도 하고 그날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 보통의 직장인들이란다.

부디 수요일에는 지각자가 한 명도 없기를 빈다. 정말 그 날은 굵은 몽둥이로 종아리를 다섯 대씩 때릴 예정이다.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교 시간도 제 맘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번 주는 부디 8시 10분을 모두 지켜 주기 바란다.

대신, 수목금토 나흘간 지각자가 한 명도 없다면, 다음 주부터는 지각자 체크 시각을 8시 30분으로 늦춰주마. 나흘간 종아리를 맞는 사람이 생기면 등교 시각은 점점 앞으로 당길 것이다. 혹독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단체 생활에서 나 혼자의 잘못으로 나 혼자만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수단이니 제발, 지켜주기 바란다.

담임이 멋대로 되도록 놓아 두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아이들이 있을지 모르나, 세상에 가장 불쌍한 인간은 ‘이별한 인간’이 아니라 ‘잊혀진 인간, 기대받지 못하는 인간’임을 배우기 바란다. 너희에게 기대하는 것은 제발 들어라.


2. ‘나’를 사랑하자.

국어 시간에 ME의 그림자가 WE라고 했던 거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나빠, 우리 반은 별로야,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우리 아빠는 무능력해... 핑계로 돌리는 <우리>는 <나>의 그림자일 뿐이란다. 세상을 사는 것은 그림자가 아니지. 바로 <나>다. It's ME. 바로 ‘나’란 말이다. 부처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셨다. 온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내가 최고 잘났다는 왕자병 환자의 발언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내가 하는 노력’이 세상의 모든 것임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우리 학교에 대해서 불평하기 전에, 내가 지금 여기서 바라볼 수 있는 저 꽃송이를 느낀다면, 우리 가정의 가난에 불만갖기 전에,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나를 계발할 수 있다면,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부처고, 모두가 하느님의 우주다. 그만큼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은 빛이고 별이고 꽃송이 같은 존재란 말이다. 꽃이 찡그리는 거 봤어? 늘 웃으며 살아라. 지나간 과거의 <그들>을 탓하지 말고, <지금, 여기의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인 것이다. 멋진 진학을 꿈꾸는 학생, 지금 여기의 나를 돌아보라. 멋진 취업을 원하는 친구, 지금 여기의 나를 느껴보라. 멋진 미래의 씨앗을 심고 있는가?

 

3. 중간 고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 단추는 모두 엉터리가 된다. 처음은 그만큼 중요하다. 첫 중간 고사. 고등 학교 시험 중 제일 중요한 시험이다. 그런데, 다들 잘 치고 싶다는 의욕은 있지만, 잘 칠 계획을 세우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전산 숙제를 하는데, 2진수, 8진수, 18진수로 만들 줄을 모른다. 그게 바로 시험 문제이거늘... 모르면 잘 아는 친구에게 물어 보고, 베끼더라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간 고사 준비임을 모르는구나... 어리석은 학생아. 25일-28일까지 시험이니까, 9일부터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주에는 영어와 수학을 복습, 또 복습해야 한다. 실업계 시험 문제가 쉽기는 하지만, 평균 100점이 나오게 내지는 않는다. 2+3을 내지는 않는다. 적어도 교과서 문제는 다 풀 수 있고, 교과서 영어 문장은 중요한 것은 줄줄 외워서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2주 정도 기간을 잡아서 <제 1차 학습> 1주일은 전 과목의 시험 범위를 죽- 읽어 본다. 그리고 컨닝 페이퍼를 만든다.(이 컨닝 페이퍼를 실제로 쓰면 큰일난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로 압축된 시험에 출제 가능성 높은 것들은 적는 컨닝 페이퍼는 시험 1주일 전에 완성하라. 컨닝 페이퍼의 형식은 과목에 따라 다르다. 어쨌든 전과목의 컨닝 페이퍼를 만들어라. 시험에 나올만한 걸로 정확히 추출해서. 무식한 놈은 잘하는 친구의 컨닝 페이퍼를 베껴라. 베낀 놈이 원본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험 범위는 정확하게 알아 두는 것은 기본이다. <제 2차 반복 학습> 시험 1주 전부터는 문제집도 풀고, 컨닝 페이퍼의 내용을 정확하게 암시한다. 시험 감독이 엄하므로(감독이 2-3명), 컨닝 페이퍼는 볼 수 없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문제집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꼭 봐라. 프린트만 달달 외워서는 만점을 받을 수 없다. <제 3차 반복 학습> 그리고 시험치기 전날에는 다음날 칠 과목의 컨닝 페이퍼를 충실히 챙기고, 배부한 프린트, 노트를 확실하게 반복 학습한다.

이렇게 세 번을 보고 시험에 임한다면, 인문계 진학한 친구들이 침을 흘릴 대학 진학, 주변의 어른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부러움을 흘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멋진 아내 감도 얻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밝은 미래에 가까워진다.

학원을 믿지 마라.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 전문가가 도와줄 수 있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법. 선생님을 믿고 최선을 다해 컨닝 페이퍼를 만들어 활용해라.


4. 인생은 유도의 낙법 연습이다.

낙법은 유도의 기본이며, 낙법은 넘어지는 연습, 지는 연습, 실패하는 연습의 반복이다. 한 술 밥에 배부른 사람 없다. 처음부터 성공하겠다는 꿈은 너무 뚱뚱하다. 넘어져도, 또 넘어져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목표를 가진, 도전하는 사람.


마지막 부탁, 이 종이 버리지 마라.


召命 동산에 목련이 만발한 봄날,


책임 회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고등학교 생활을

멋지게 완성해 나가길 바라는 담임 선생님이 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진 않지만,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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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4-0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런 글을 받다니 정말 행운아들이네요..
특히 ME의 그림자가 WE라는 말씀 깊이 와닿네요.

글샘 2005-04-0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짜식들, 나같은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너희는 얼마나 운이 좋으냐... 하고요. 어리석게도... 요즘엔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을 갖게 된 우연했던 내 삶의 갈림길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열여덟 나이에 고지식했던 제가 그 때는 별로 인기도 없던 교직을 택했던 <대사건>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고,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난 일을 날마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례자의 꽃밭 그림, 소설을 읽다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우선 김점선에 마음이 끌렸고, 최인호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이 시리즈는 특이하다. 박완서, 황석영, 이청준, 김주영의 소설들마다 한 화가씩 붙어서 소설가는 몇 대목을 발췌하고, 화가는 느낌을 그리는 방식으로 책이 꾸며졌다.

김점선은 꿈과 본능, 그리고 자유 사이의 긴장과 화해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최인호는 인간 소외의 문제, 개인과 사회의 갈등, 성장 소설을 쓰고 있었다.

요즘은 긴 것보다는 짧은 것, 읽기 보다는 읽어 주기가 유행이다.

이 책도 그런 의도로 재창조를 시도했지만,  소설의 다이제스트화와 그림으로 이해 돕기는 일정 정도 실패하고 있는 듯 하다. 소설의 의미와 발췌문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점선의 직관과 한눈에 읽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예쁘게 생긴 나쁜 아이, 나와 나 안의 나 2와 1/2은 자아와 또 다른 자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술꾼의 이미지는 전쟁, 호환, 마마와 같은 재난이 이젠 가족 붕괴의 시대로 이어지는데 아픔은 여실히 느껴진다.

동화의 상징을 띤 마광수와 같은 표현을 김점선은 잘 잡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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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 망설이는 사람 3초에 결정하는 사람
사가와 아쓰시 지음, 신윤록 옮김 / 이가서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보고, 망설이지 말고 결정해라... 뭐, 이런 류의 처세에 대한 안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은 상당히 특이하다.

미국방성의 자료 수집 방법의 하나로, "리모트 뷰잉"을 쓴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온 몸이 센서가 되어, 직감을 기르는 일련의 훈련을 거치면, 초능력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말 그대로 <멀리서 볼 수 있는>, <투시>의 힘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어리면 어릴 수록 뷰잉의 힘은 크다.

우리의 복잡한 이성에 대치하는 기술로써의 리모트 뷰잉, 생각하면 안 되고 그야말로 온 몸으로 본능적인 직감을 이용해서 감각을 잡으라는 것이 요지다.

나처럼 의심병 많은 사람은 해 보지도 않고 과연 그럴까? 하고 머물기 쉽다. 저자는 그걸 믿고 미국까지 가서 배워 왔다니...

내가 처음 아이들에게 9품사를 가르칠 때, 중학교 1학년에게 어떻게 9품사의 이름만이라도 외우게 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앞글자를 따서 9품사를 외우게 하고, 그 기능들도 가능하면 묶어서 외우게 할 만한 이야기를 떠올리려고 고민고민 했는데, 결국 수업시간이 임박해서도 명쾌한 이야기가 없었다.

이제, 곧 수업 시작인데 화장실에서 갑자기 앗,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부랴부랴 교무실로 와서 백지에 이야기 얼개를 적었고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감동적으로 쉽게 외우는 수업을 경험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만 않아도, 그러기 위해서 늘 메모장을 가져 다닌다는 이하윤 류의 <메모광>도 있을 수 있으나, 여러 모로 쓸모 있는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서재에 기록하고 옮겨 두는 방편도 아주 쓸모있다. 요즘엔 학급 일기에 적어줄 말이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을 때, 내 서재의 페이퍼들을 죽 둘러본다. 그러다 보면 예전에 적어 두었던 기록들이 다른 시각에서 <나 좀 써 주세요.> 하며 떠오른다.

이성보다 혁명의 사고를 믿고 계발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해 준 책이지만, 새롭긴 한데 이 책을 읽고 뾰족하게 새로운 것을 얻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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