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21세기를 맞은 우리 나라의 대차대조표다.

이십대의 태반은 백수고, 사십오세에 정년을 맞고, 오십육세에도 돈을 벌고 있으면 도둑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은 우리의 경제 지도가 얼마나 암울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3D 직종에는 종사하지 않으려 한다고 힐책하기도 한다. 모두가 불만만 가득하고 해결책은 없다. 싸가지가 없어서 슬픈 것은 그래서 결국은 이태백이다.

그들이 왜 싸가지가 없게 됐는지... 삶의 철학도 없고, 깊이 생각하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직업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초중고대학교 생활을 통해 경쟁, 경쟁, 오로지 경쟁을 통한 출세만을 주입받아온 것이 싸가지의 원인이 된 것이고, 칠십년대 조국 근대화의 기수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면서 내 자식만은 풍족하게... 하는 모토로 살아온 것이 싸가지 없는 젊은이들을 양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어린 어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니면 군대를 다녀 와서도 아직 명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된 우리들은 먹고 살아야 하므로, 그 절대 명제 앞에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고, 도망을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은 여유가 생긴 이 어린 어른들이 방황하는 것은 일견 행복해 보이고, 좀 부럽기도 하다. 고민없이 직업을 갖고, 무작정 달려왔던 내 20대를 돌아볼 때... 그 때 내가 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지 못했던지... 아내와 더 드라이브를 즐기지 못했던지... 그 젊은 나이에 책을 많이 읽고,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지... 왜 세계 여행을 꿈꾸지 못했으며, 왜 일본어 하나 제대로 익혀두지 못했던지...

보통의 상담이 '위로'투라면, 이 상담은 상당히 혁신적이다. <명료화와 직면>이 이 상담의 주요 재료다. 문제점을 직접 대면하게 하고, 명료하게 해 줘서 '오늘, 지금'할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작가는 상당한 사랑을 담고 있고 철학적으로도 사려 깊은 분이다. 그의 넓은 생각에서 깨우침을 얻는 젊음들이 '저 좀 따끔하게 혼내 주세요'하는 메시지를 끝도 없이 던지고, 그분의 꾸짖음을 받고, <카타르시스>의 후련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느 상담책보다도 진지한 인생 상담의 지침이 담겨 있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 애정이라는 속을 듬뿍 담음 샌드위치같은 상담책이다. 그의 상담 홈페이지에서 옮긴 글들이라니 더 현실감이 느껴진다.

그의 비수처럼 날카롭고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생생한 '할'을 몇 마디 옮겨 본다. 읽고 읽어 아이들에게 나도 날카롭고 따스한 카운슬러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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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모두 다 해치우는 자, 이것이 진정으로 자기 꿈을 실현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꿈이 가장 추해질 때는 현실 도피용으로 도용할 때입니다.


실천과 인내와 도전 없이 자신감만 있는 것을 <과대 망상>이라 한다.


자존심은 자신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사용하라.


20대가 왜 그렇게 취직하기 어려운가? 사람들은 불경기라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20대들은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확실하게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겁은 많아서 실패는 무진장 두려워하고, 무엇이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않으며, 눈은 높아서 자기가 하는 일도 주변의 현실도 모두 못마땅하고, 시시껄렁하고, 옛날 사람들처럼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돈을 벌 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가장 혈기왕성해야 할 20대가 그런 식이니까 사회가 무기력해지고 경제가 침체되어 불경기가 오는 것입니다.


남탓, 시대탓, 환경 탓하는 것 만큼 구제 불능의 바보는 없다.


당신들, 정말, 왜들, 그렇게도 경험으로 진리를 찾기를 두려워 한답니까?


진정한 돈의 노예는 돈 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 돈은 벌 줄 모르는 사람.


어떤 대가도 두려워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안정된 직장’입니다.


대학이 후진 것은 멋진 대학생이 없기 때문, 당신이 바로 멋져야 할 바로 그 대학생. 답답한 현실, 피하지 않고 내가 바꾼다.


발전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사람은, 자존심이 상했을 때 스스로 자기 편을 들어서 상황을 합리화해 버리는 사람. 내 잘못이 아니야, 사회가 잘못됐어, 환경이 불공평했어...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입니다. 오늘, 당연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무시당한 당신을 인정하고, 그 수치를 결코 잊지 말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그 날까지 줄기찬 노력을 하는 당신으로 변화하십시오.


정말 가난한 것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최선의 노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잊지 않는 것’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됐어요”란 말은 적어도 마흔이나 일흔 살쯤에 하는 것. 그 이전에 그런 말하면 엄살. 젊음에는 어떤 한계도 없다.


열심히 꿈꾸라. 단, 그 꿈이 희망이라면 당신은 건강하고 진보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고, 그 꿈이 몽상이라면 당신은 현실 부적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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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02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었어요. 동감입니당~~
 
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난 이 이야기가 픽션같다. 그리고, 정말 픽션이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래도 넌 픽션 같다. 정말 작가가 지어낸 멋진 명상 소설이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미국인들이 학살한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메시지와 호주 참사람 부족의 메시지는 참 많은 공통점을 준다. 그들은 잘난 체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도 잘난 것 없음을, 그리고 무탄트(돌연변이) 우리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땅에서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알려 준다.

미국에서 멀쩡하게 의사를 하다가, 불현듯 호주에서 들어온 제의에 따라 호주로 날아간 지은이는 희한한 납치를 경험한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참사람 부족과 서너 달 간의 여행에 합류하고... 비통한 참사람 부족의 후손 단절 선언을 듣게 된다. 현실로 돌아와 행복해 하면서도 그는 다시 그 여행을 그리워한다.

그는 시험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은 시험을 치르는 일이란 단순하면서도 인정하기 어려운 진리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시련을 시련으로 여기지 않고, 신비한 체험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소유의 물건을 빼앗기고, 불살라지는 과정을 통해 분노할 뻔 했지만, 그는 <물건이나 자신이 가진 어떤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 말로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 걸음>임을 배운다. 소중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임을...

여행 중에 견디기 힘든 파리떼의 공격에, 미용실에서 하듯이 온 몸을 내 맡기고 파리들의 애무를 즐긴다. 근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것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무조건 나쁘다거나 힘들다고 평가한 것을 반성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말보다 텔레파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고, 외과 수술에서 주술적 요소가 담긴 특효약 치료를 경험하는 의사. 62인의 호주 원주민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은 마치 티몬과 품바와 함께하는 라이언킹의 <심바>의 경험처럼 극적이고, 복잡한 구성을 이루는 픽션에 가깝다. 낯모르는 카페에서 그날 있지도 않던 점술가가 예언을 남긴 것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도 그렇고,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신비로움과 우연의 일치 치고는 작위적인 듯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거울이 없음이 의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석 달간 변변한 세수 한 번 하지 못한 멋쟁이. 정비석의 산정무한에 <거울이 태어나면서 세상의 비극은 시작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우리는 자기의 시선, 남의 시선에 얼마나 <나의 본질>을 빼앗기게 되는지... 내 마음의 흔들림 없는 평화로움을 거울에게 얼마나 많이 빼앗기고 마는지... 비단 백설공주의 못된 왕비뿐 아니라, 우리도 얼마나 거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하며 살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새삼 차도르 속에 감춰진 자유로움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란 레스토랑이 인기다. 넓은 매장과 다양한 할인, 그리고 맛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영업 전략은 유사한 티지아이나 베니건스에 비해 탁월한 면이 있다. 그래서 아웃백은 유난히도 많이 늘어난다. 그런데, 그 아웃백(호주의 '오지'라는 말)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백호주의>의 피해자들이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며 비통해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지 않았던가. 그 아웃백에서 원주민들이 즐기던 스테이크를 질겅거리며 우리는 우리가 최고의 문화인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았나...

작가는 여행을 마치고 원주민들에게 <두 가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속된 사람과 참 사람의 두 가슴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런 책을 통해서 세례를 얻고 정화되어 두 가슴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올해 인문계 고교에서 실업계 고교로 전보 발령이 났을 때, 처음엔 좀 원망스러웠고, 다음엔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랐다. 아직 실업계 근무도 해 보지 않고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일 주일을 아이들과 보내고 나니, 일반계 고교에 비해 훨씬 아이들이 싹싹하고 여유가 있다. 수업 시간에 똑똑한 척은 못하지만 참여도는 아주 높다. 내가 문학을 십육년 동안 가르치면서도 몰랐던 진리를 아이들이 헛소리를 통해서 들려준다. 예를 들면,

선생님 : 자, 그러면 (가)에 나온 신문 기사와 (나)의 시에 나온 언어의 차이는 뭐죠?
엽기학생 : 네, (나)의 언어는 그 때 그 때 달라~요.(컬투 버전, 이런 통찰력은 지식과는 다르다.)
선생님 : 아, 엄청 훌륭한 학생입니다. 그럼 시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엽기학생 : 아, 시는 마음 속에 있는 거~죠.(정말 엽기적이지만, 난 이런 번득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지혜,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간절히 빌다 보면, 다시 그는 <당신이 신에게 말하느라고 바쁘면, 신의 목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다>고 해서 나를 명상으로 되돌리곤 한다.

'인간이 삶이라는 거미줄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 한 오라기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인간이 거미줄에게 가하는 모든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고 한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우리는 겸손해 져야 하고,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의 말처럼 인간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고 나아질 비전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안타까운 메시지를 조용히 듣고, 명상에 잠기자. 그리고 한 번에 한 사람을 돕자...

왜 무탄트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부른 노래가 단 한 사람 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
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밖에는 도울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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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부처 -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의 만남
토마스 J. 맥팔레인 엮음, 강주헌 옮김 / 황소걸음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과학은 세계를 물질적으로 파악하고, 종교는 정신적으로 파악하는 양분적 시각에 잡혀있던 나에게, 현대물리학은 그 선입견을 깨버렸다. 과학과 종교가 상반된 이원론적 위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로 파악하게 하는 책이다.

이책에는 물리학의 개념들이 많아서 문과형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공>의 개념으로 대략 이해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착각했다.

장자의 "그대의 삶은 유한하지만 깨달음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대는 결국 위험에 빠질 것이다."는 말은, 우리의 지식으로 세계를 단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일깨워준다.

"여래(진리에 도달한 사람)가 항상 개념과 개념에 담긴 뜻을 사용하더라도 제자들은 그 개념과 뜻의 비실재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래가 법을 설할 때 일상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개념은 강을 건널 때만 사용하는 뗏목과 같은 것이다. 강을 건넌 후에 떳못은 더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버려진다. 따라서 사물과 사물에 대한 자의적 개념도 해탈을 얻은 후에는 철저히 버려야 한다."는 부처님의 비유는 기고만장하기만 한 현대과학이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던가를 반성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란히 달리는 철길이 지평선 가까이에선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전혀 상반된 세계일 듯한 이야기들도 시점에 따라, 시각에 따라 그 만남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을 가르쳐 준 책이다. 그렇지만, 역시 내겐 어렵다. 아인슈타인과 물리학의 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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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수들 중 최고만을 골라
서른 명만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 보세요.
그 팀은 곧바로
또 하나의 MS로 비상할 겁니다.
유능한 인력이 빠지고 나면 모든 상품들은
순식간에 퇴물이 되고 말 겁니다.
남은 사람들도 의욕을 잃어버리고 함께 일한다는
즐거움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 MS가 너무 독점적 지위에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빌 게이츠의 답
아주 오래전인 1947년,
당시 P&G 회장이던 리처드 듀프리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누가 우리의 돈, 건물, 브랜드를 남겨놓고
직원들을 데리고 떠난다면
우리는 망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더라도
직원들을 남겨둔다면
우리는 10년 안에 반드시 일어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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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자의 서
허일범 외 / 불교춘추사(불교영상회보사)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가와므라 아쯔노리(河邑厚德)와 하야시 유카리(林由香里)가 서양에 '티베트 사자의 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실제 티베트에는 갈 수 없었지만, 그 전통이 유구히 이어지는 라다크에서 '사자의 서'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잘 적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태어남과 죽음은 각각 인생이란 선분의 한 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내 생각이 많이 틀렸다고 느낀다. 태어남은 없던 선분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고, 죽음이 갑작스런 선분의 소멸도 아닌 것이다. 원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었고, 그리하여 내가 생긴 것이고, 내 육신이 수명이 다하면 다시 세계로 이어지는 것이 나의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空>이다.

공이란 것이 이렇게 뇌리에서는 그럴 듯하게 그려지다가도,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고 나면 막상 머릿속의 사념은 '말짱 황'이 되어 버리곤 한다.

티베트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면,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략의 야만성이 잘 드러난다.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달라이 라마는 중국인을 용서한다니...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죽음의 책>이란 '사자의 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발도)에 대한 이야기다 부처님께서는 연옥같은 거 없다고 하셨지만, 티베트 밀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다.

사자의 머리맡에서 <육신의 죽음 이후에 계속 진행되는 일>을 지키며 49일 동안 사자의 서를 읽어 준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자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덜 두려워하고 자연스럽게 <호스피스>에 익숙해지는 환경이 될 법도 하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관념적으로 이겨낸 슬기가 담긴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지어진 책이라서 제본 상태가 조잡하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꽉 잡고 있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요즘 나온 책들로 읽었다면 훨씬 부드럽게 읽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정말 별스러운 죽음에 대한 관념과 의식에 대해서... 예전엔 사람이 죽으면 우선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 준비를 하고, 피붙이들이 다 모이면 <염>을 한다. 그리고 입관하여 삼일이나 오일이 지난 뒤(박통은 구일장을 지냈다, 죽고나서도 끈질긴 집착...) 선산으로 모셔 하관하고 토장을 한다. <好喪(호상)>의 경우 정말 동네 축제가 될 만도 하다.

그러나, 요즘의 <죽음>은 정말 번잡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황동규는 <풍장>을 하고 싶다고 했을까... 일단 죽고 나면 병원의 <영안실>을 잡기 위해 모든 인맥이 동원된다. 핵가족으로 생활 양태는 바뀌었는데도 관념적인 문화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사례라 할 것이다. 그래서 영안실을 잡고 나면, 영안실 옆의 식당에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그리고 또 손님 접대할 젊은이들을 섭외해야하고... 장지를 잡아야 된다. 선산이 있더라도 거리가 멀면 상당한 부담이 되고, 공동묘지를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노인네들이 성당에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다던가... 저녁이 되고, 문상객들이 오면 상주는 절을 받고, 곡을 하고, 술상을 차리게 한다. 이 일이 이틀 계속 되면 상주는 그야말로 탈진하게 된다. 마지막 발인날은 아침 일찍부터 선도차, 장지와 연락을 취해야 하고... 시간에 맞춰서 장지 도착해서 방위 잡고, 포크레인 진도 맞춰 매장하고... 떡이되어 돌아온다...

내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장례지낼 걱정하고, 그 숱한 절차들을 거치고... 그 비싼 땅에 묻어 놓고, 아내와 자식 죽고 나면 공동묘지 인부들이나 간혹 와서 벌초할 그런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다. 공병우 박사님이 그러 하셨듯이, 내 죽고 나면 이왕 풍장 해주지 못할 바에야, 그저 기증할 수 있는 거 있으면 모두 기증하고, 대학병원에 줄 수 있는 것 있으면 다 주고, 그러고 나중에 나중에 쓸모가 정히 없어질 무렵에는 고이 모아서 화장하고 이 작고 푸른 별 어딘가에 훌훌 뿌려버리면 내 죽은 육신이야 어차피 쓸모 없는 것을... 가벼이나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난 정말 간단하게 죽고 싶다. 내 죽고 나서 울어줄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한다는 것 자체가 집착이고, 소유에 대한 불쾌한 욕망이 아닐는지... 우리 산하를 뒤덮은 고봉밥과 같은 반원형 무덤떼를 보면, 이천 년 불교 국가였던 나라치곤 희한하게 육신에 집착하는 우리를 발견하고, 죽은 자가 산 자의 땅을 그렇게 차지하고 앉은 걸 보면 소유욕의 삐뚤어진 발현을 보는 듯 불편하다. 하긴 요즘은 장례예식장과 납골당을 만든다고들 하긴 하지만, 그 또한 <장삿속>의 놀음에 지나지 않아 보여 죽음에 대해 얽매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 그렇네. 살아 있을 때, 그야말로 삶은 맘껏 누리고, 죽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가벼이 휘~~~이~~~ 떠나가면 그만이리.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고 나니, 황동규의 <풍장1>이 새삼 반갑고, 동지를 만난 듯 읽힌다.

풍장 1

                                      황 동 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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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츄리 2005-03-0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후세계 또한 내가 살아있을적 만든 관념의 연장선일 뿐이라는게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듭니다. 철들고 난 이후로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고 싶냐? 남자로 태어나고 싶냐?" 고 물을 때 "다시는 안 태어난다"고 말하는데...... 아마 힘들겠네요.
풍장이라......

코마개 2005-03-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랑에게 항상 말해두는데요 내가 죽으면 그냥 입던 옷 입혀서 가능하면 이불에 둘둘 말아(산사람이 보기 괴로우면 싸구려 관이라도 쓰던가) 죽은 그날로 가지고 나가서 산에 나무 밑에 뭍어버리라고...죽어서 거름이라도 보태주고 죽고싶다고. 화장하면 가스라도 쓰고 죽을 터이니 죽는 순간까지 소비하며 죽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집에 와서 누가 물어보거든 죽었다고 간단히 대답해 주라고.

글샘 2005-03-0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츄리님... 다시 안 태어나려면 죽음이 끝이라야 하는데,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면 어떡하죠? 가볍게 살아야겠습니다.
강쥐님... 현행 법상 신랑에게 사체유기죄를 뒤집어 씌우시고 싶진 않으시겠지요? 그러니깐 황동규도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으로 가라고 가르쳐 주잖아요. 무인도로 가야 한다고... 인간들은 그렇게 죽음에 대해 어수선한 존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