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3 - 삼국 시대 -하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3
이현세 만화, 김미영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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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기존의 역사서들과 차별성이라면,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국심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역사에 대한 팔이 안으로 굽게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최대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 등에 자료들을 많이 배치하고 있긴 하지만, 어느 것이 옳고 일본은 나쁘다는 식의 발상은 보이지 않아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쉬운 제목들을 통해서 역사의 포인트들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고구려를 <민족의 방파제>라고 부른다든지, 삼국의 이합집산을 <어제의 친구, 오늘의 적>으로 표현하는 등은 역사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많이 듣던, 시대를 잘 드러낸 중요한 표현들이다.

이차돈의 죽음이 신화화된 배경도 객관적으로 상세히 풀고 있으며, 백제의 앞선 문화도 일본에 전수해 줘서 우리가 옛날엔 일본보다 잘났다는 관점보다는 삼국의 예술 수준을 잘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 시기가 삼국의 각축이 두드러진 시기이므로 전투씬에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었으나, 안시성의 싸움이나 황산벌 싸움 들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단순한 애국심을 뛰어넘는 <역사를 보는 시각>임을 가르쳐 주는 것도 시원시원한 글이다.

6학년으로 올라가는 아들 녀석도 이 책을 단번에 죽 읽더니 반색을 한다. 전에 사 주었던 역사 만화에 비해 쉽게 읽히고, 그림도 멋지다는 게 아들 녀석의 평이다. 사진 자료가 틈틈이 나오는 것은 아들과 박물관 간 셈치고 같이 도록을 보면서 읽으니 일석 이조가 되는 셈이다.

부모들이 같이 읽고, 퀴즈 형식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금상 첨화일 것 같다. 책의 끝에 있는 연표가 단속적인 느낌이 든다. 각권은 떨어져 있는 시기별 역사일 수 밖에 없지만, 연표는 한 줄로 붙어있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10권의 연표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의 책이지만,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마지막에 오엑스 퀴즈라든지, 가로세로 퍼즐 같은 것을(이런 자료들은 국사 선생님 홈페이지 등에 많이 있을 것이다.) 수록해 준다면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역사 공부도하고, 박물관 여행도 떠날 수 있는 책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판촉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끼고 국토를 순례하던 우리 국민들을 되살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만화를 끼고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역사 안내서로써 필요한 일일 듯 하다. 단순한 객관적 역사 서술만도 힘든 일이겠지만, 그걸 흥미롭게 만화화하는 것도 좋은 발상이다. 주문이 많은 듯 하지만, 역사 서술은 과거를 기술하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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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05-01-2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책에 귀한 조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10권이라는 대장정을 가는 길에, 두루두루 짚어보아야 할 중요한 지점들인 것 같습니다. 이후의 작업에 글샘 님의 말씀을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책꽂이에 묻히지 않고, 아이들의 손에 들려 역사 여행에 동참하게 되기를 저희 또한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번 제3권을 출간하며, 삼국시대의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구요. 이것저것 한 권의 책에 담고 싶은 것이 많지만, 그 와중에서도 제 색깔을 분명히 갖는 책이 되기 위해 중심을 잡아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아무쪼록 제 색깔이 분명하면서도 다양한 것을 담는(너무 이상적인가요?^^) 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샘 2005-01-22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가는 열 가지를 알면서 한 가지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열 가지를 다 전달하려는 욕심이 앞서면, 독자는 책에서 소외당하기 쉽거든요. 다양한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은 최대한 자제하시고, 제 색깔이 분명한 훌륭한 책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역사이야기가 끝없이 많은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와 고대국가에서는 <신화>와 <전설> 같은 <설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이 책들에선 그런 설화에 대한 터치가 상세하면서도 바람직한 방법으로 해석을 가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칭찬을 했습니다. 남북국 시대의 발해 문화는 자료가 적은데 일본과의 관계 같은 것이 어떻게 그려질 지 기대되고요, 고려시대의 불교 이야기, 무신란, 대몽항쟁, 조선시대의 정치철학과 성리학, 양대전란과 후기사회의 모습도 흥미진진하게 그려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답니다. 시작이 반이라니, 좋은 책 기대합니다.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2 - 삼국 시대 상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2
이현세 만화, 김미영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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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리뷰에서 썼듯이, 이 책의 장점은 피상적인 이야기의 해석을 재미있게 붙여 주어, 정확한 역사 인식의 확립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권에서 우리가 잘 아는 도미의 아내 이야기를 해석하는 부분은 여느 역사책에서 접하기 어려운 좋은 부분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이 2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림이 시원시원하고, 적절한 지도와 함께 역사 안내서로써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책이다.

2권에서는 그림을 두 가지만 꼬집어 보겠다.

18-19쪽에 보면, 삼국이 각각 자기 나라의 역사서를 편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당시라면 당연히 중국에서 한자가 유입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한자로 책을 집필했을 것이다. 한자라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적어내려가는 것이 올바른 그림일텐데... 아쉽게도 세 나라 모두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적는> 희한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 111쪽에 보면 수로왕 강림신화가 나와있다. 허황후의 등장도 재미있게 풀이되어 있는데, 흠이라면, 엄지가 앉아있는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크게 나누어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김해의 알봉 근처라면 남방식 고인돌을 그려 줘야 하지 않을까? 부산의 복천동 고분군의 모습을 보면 웅장한 북방식 고인돌은 보이지 않던데...

내가 역사 지식이 부족하면서 시비를 가리려고 드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 책을 만드는 역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해 올바른 그림으로 교정이 필요하다면 교정해 주기 바란다.

비쥬얼 세대의 장점은, 우리처럼 줄글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아도, 만화나 비디오를 통해 세상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인데, 잘못된 비쥬얼 자료는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틀린 역사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우>만은 아니기에, 잘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심정으로 잘된 책에 질책의 말을 남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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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1-2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2권의 담당 편집자입니다.
날카로운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부분 중에 역사서 편찬 방향은 곧 수정하겠습니다.
고인돌의 형태는 전문가의 확인을 받는 대로 반영하겠습니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올바른 역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글샘 2005-01-22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시비거리를 적은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아끼는 마음에서 적은 거니깐, 좋은 관심이라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책 만드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 - 선사 시대와 고조선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
이현세 만화, 김미영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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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녹색지팡이에서 모니터링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방학 중에는 시간이 충분해서 책을 보내줘서 재미있게 읽었다. 느낌은, 아주 좋다. 초등학생들이 읽기 좋도록 만화로 되어 있는데, 먼 나라 이웃 나라 처럼 글자가 많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람들이 초등학생들이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요즘 아이들을 좋겠다. 세계 명작도 만화로 보고, 그 어려운 그리스 로마 신화도 만화로 몽땅 외울 정도로 정독을 할 수 있고...

특히, 역사 이야기는 신화와 달리 재미가 없는 측면이 많다. 너무 야사로 흐르면, 정사에서 멀어지고, 그렇다고 다루지 않고 날림으로 만들면 역사가 아니고... 간혹 아이들의 고전 만화를 보면, 너무 코믹하게 그리다 보니 실제 이야기가 어떤지는 별로 기억이 안 나고, 유행어나 농담 따먹기가 주류인 만화들도 보인다. 삼성출판사의 <만화 한국사 이야기>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림이 별로 인상적이지 못하고, 지식 위주의 전개가 아이들의 눈을 쏙 끌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책이었다.

그와 달리 이 책의 장점은, 이야기 전개가 부드럽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신비한 역사 책을 넘기면서 역사 속으로 빠져 든다는 것. 그리고 그림이 전문 만화가의 섬세한 것이라, 질리지 않는다는 점에 끌린다. 그리고 전문적인 설명을 챕터 사이에 <역사 박물관> 코너로 삽입한 것도 돋보인다. 다양한 사진과, 도록, 상세 설명은 어려운 선사시대를 아이들 옆에 자연스레 옮겨 놓는다. 사실 아이들 데리고 박물관에 가는 건, 정말 고역이 아닌가.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숙제로 설명을 베끼는 걸 보면 안쓰럽다.

역사책 속의 어려운 말들이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통해 등장하고, 그 숱하게 말도 안되는 신화들 속에 숨은 의미를 꼼꼼하게 풀어 주는 대목은 이제까지의 역사책이 보여주지 못한 한계를 뛰어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꼼꼼하게 읽어 달라고 해서 나름대로 열심히는 보았는데, 몇 가지 부족한 점이 보인다.

 1권에서 꼭 고쳐야 할 부분. 이미 판매중이라도 꼭 수정해야할 부분이 하나 있다. 82쪽의 청동기 시대가 서기 1000년 경으로 적힌 것은 <서기전 1000년 경>으로 반드시 수정하기 바란다.

79쪽의 도구 사용법에서 '양끝에 줄을 멘'은 '줄을 맨'으로 맞춤법이 수정되어야 하고, 169쪽의 '쇠뇌'라는 철제 농기구는 '쇠로 만든 뢰(쟁기)'이므로 '쇠쟁기'로 적어 줬음이 타당할 듯 하다.

뻔히 아는 이야기인 듯 해도, 역사는 읽을수록 배우는 것이 많다. 그리고 특히 처음 역사를 접할 때, 정확한 지식을 쉽게 이해시키는 것은 고구려사 왜곡보다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의미가 분명한 이즈음, 이런 책이 간행된 것은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읽기 쉽고, 내용도 풍부하고, 다른 책과 달리 상세한 역사 해석이 돋보이는 책. 이제 3권까지 나와 있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봐도 흠잡을 데가 없는 <티 하나 없는 옥>을 욕심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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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2005-01-2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예리한 지적에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쇠뇌는 농기구가 아니라 무기로 알고 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풀려서 화살이 튕겨져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요?

글샘 2005-01-2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제가 다시 쳐다봐도 농기구로 보이는데요, 전문가에게 한 번 알아보시길...
 

요즘 모든 기업들이
종교적 믿음처럼 신봉하고 있는
‘고객은 항상 옳다’라는 말은 완전히 틀렸다.
그것은 종업원을 배신하는 것이다.
고객 중에는 기내에서 폭음을 하고
이유없이 직원을 괴롭히는 등
해를 끼치는 이들이 있다.
가치 있는 고객들만이 항상 옳고,
그런 고객만이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
- 사우스웨스트 항공 허브 캘러허 전 회장
‘모든 고객이 항상 옳다’라고 강조한다면,
직원들은 단 한 사람의 고객에게라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큰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을 벗겨줌으로써,
허브 캘러허는 종업원들로 부터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직원들을 위해서
불량(?)고객을 해고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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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1-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말이군요..^^ 퍼갈께요~

하이드 2005-01-2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추천 꾸욱~ ^^

marine 2005-01-22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글샘님 저도 이 말에 진짜진짜 동의합니다 고객이 항상 옳다고요? 천만예요 전 써비스직이라 고객들을 응대하다 보면, 이건 일 문제를 떠나서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납니다 써빙하는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자기는 돈을 받고 음식에 관해 최상의 써비스를 해 줄 의무가 있지만, 그 사람이 나를 돈으로 산 것도 아닌데, 인간적인 모욕을 퍼부으면서도 써비스 정신 운운하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구요 고객이 왕이다는 것은, 일에 국한된 부분에서만 그렇지, 기본적인 예의나 인간적인 부분에서까지 직원을 종 취급하는 건 아주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제 사장님이 고객 앞에서는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의라 일하는데 피곤해 죽겠습니다

글샘 2005-01-2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장인 정신이 부족한 말이죠.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라는 둥... 서비스는 고객이 원할 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긴 하지만, 자기를 없애는 서비스는 <비인간의 영역>을 만들 공산이 크지요. 학교에서도 언제부턴가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소비자 위주의 교육, 교육서비스란 찌꺼기 같은 말들이 난무합니다. 학생들은 얼마나 도도한지, 한 대 맞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그 소비자들은 정말 기본이 안 돼있는 경우에도 우대받아야 하는 건지... 이런 걸 생각하는 게 철학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말에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이 많은 걸 보니, 이 말이 문제가 있긴 하군요. ^^
 
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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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아주 오래된 농담'이란 박완서의 장편 소설을 읽고, 생뚱맞다는 둥 디립다 깐 적이 있다. 그 소설을 정말 맘에 안 들었다. 그러면서, 박완서는 역시 단편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빌려 본 책이 그미의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읽고 난 느낌은 역시 그미는 훌륭한 단편 작가였다는 거다.

장편과 단편의 가장 큰 차이는, 장편 소설은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궤적이 날줄과 씨줄로 얽혀들면서 인생의 복잡 미묘함을 드러내는 만화 영화와도 같은 소설이고, 단편 소설은 단일 구성으로 인생의 단면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정물화 같은 그것이다.

박완서의 순간을 포착하는 눈은 정말 존경할 만 하다. 농촌이 해체되면서, 도시의 핵가족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 <노인>의 문제를 <노인>으로서 정말 시니컬하게 포착하고 있다.

환갑이 된 나이에도 소녀와 같은 감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마른 꽃>, 그러나 그미는 결국 스스로 소녀가 아님을 인정한다. 허긴, 늙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일이다. 겉모습은 늙었대도, 속마음은 다섯 살 어리석은 아이 그대로임을...

딸네서 사는 친정 어머니가 아들네 가서 구박 받다가, 치매에 걸린 후 무당 집에서 살게 된다는 <환각의 나비>. 환상과 서사 사이에서 현대의 노인의 위치를 좌표로 보여준다.

중년 여자의 과거 이야기를 멜랑콜리하게 적은, <참을 수 없는 비밀>

병 수발에 지친 자식들의 이야기,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정말 무서운 비유 아닌가.

평생을 어리석은 교사로, 권위적인 교장으로, 멋대가리 없는 남편으로 고생에 고생을 하며 살지만, 남은 것이라곤 삐적 마른 다리에 숱하게 생긴 모기 물린 자리를 쓰다듬으며 느끼게 되는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 <너무도 쓸쓸한 당신>

이 작품집의 수작, <그 여자네 집> 지금은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좋은 작품, 낭만적인 젊은 시절의 꿈과 정신대 문제를 엮은 탁월한 작품. 그 중에도 만득이와 곱단이의 이야기는 박완서가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꾼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문화의 차이와 이민 동포들의 머릿속의 조국을 그린, <꽃잎 속의 가시> 

갑자기 생긴 돈으로 수직상승을 꿈꾸는 <공놀이하는 여자>

소설가로 미국에 강연회를 꿈꾸다, J-1비자 발급 문제로 감추어졌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J-1비자>, 그리고 맨 끝의 컴퓨터로부터 소외된 이야기, 꽁트 <나의 웬수 덩어리>

착착 달라붙는 어휘들과, 적절한 묘사와 비유, 그리고 적절한 <여성들의 어투로 이루어진 대화>는 단편 소설의 멋, 인생의 날카로운 단면들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마치 다큐멘터리 작가의 흑백사진과도 같은 감동, 죄책감, 연대의식, 위기감을 공감하게 하는 소설집이라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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