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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자서전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깊이있는 수필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자서전을 한 편 만났다.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이란 부제가 붙은 에릭 호퍼의 자서전은 읽는 내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비록 내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고,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그의 의지와 뜻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또렷한 사상과 정신을 가질 수 있고, 떠돌아 다니면서도 독서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구축해 나갔던 떠돌이 철학자. 레스토랑 웨이터 보조원, 농장의 품삯 일꾼, 사금 채취공 등의 밑바닥 삶을 전전하며 생의 풍족함을 누렸던 그에 비하면, 하나라도 더 가지지 않고서는 만족감을 모르는 현대인들의 멍청한 삶이 극명한 부조리로 대조되는 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
물론 괴롭던 시절도 겪긴 했지만, 명상과 독서를 통해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일견, 수도승들의 가난과 명상, 정진과 통하기도 하고, 오히려 구속받고 제약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승려들에 비하여, 훨씬 자유 의지에 의하여,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답게 사는 법을 삶을 통하여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전기를 스물 일곱 편의 에피소드로 엮고 있다. 그 대부분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남들의 이야기다. 남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잠시잠깐 느낀 생각들을 적는 것. 이것이 자서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의식적으로 가벼운 삶을 만들고, 세계를 변혁하려 했던 이들의 전기와는 확연하게 다른 가벼움이 이 책에는 스며 있다.
물리적 중량도 아주 가볍다. 재생지로 만든 이 책은 편안히 누워서 읽기 좋을 만큼 가볍고, 즐겁고,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