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에 자신을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정직한 패배 앞에 당당하고 태연하며,
승리의 때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본분을 자각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깨닫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이끌지 마시고,
자극받아 분발하도록 고난과 도전의 길로 인도하소서.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게 하시고,
실패한 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마음이 깨끗하고 높은 이상(理想)을 품은 사람,
남들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웃을 줄 알면서도 우는 법을 결코 잊지 않는 사람,
미래를 향해 전진하면서도
과거를 결코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 모든 것들 외에 그에게 유머 감각을 주소서.
그리하면 항상 진지하면서도
결코 지나치게 심각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소서.
그리하면 진정한 위대함은 소박하며,
진정한 지혜는 열려 있으며,
진정한 힘은 너그럽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그 애가 이런 사람이 되었을 때
저는 감히 그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 김동호의《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중에서-

* 맥아더 장군이 마흔여덟살에 얻은 아들을 위해 드린 '아버지의 기도'  전문입니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꼭 물려줄 것은 집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물려줘도 그만, 안 물려줘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물려줘야 할 유산이 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혼(魂)'입니다. 평상시엔 모르고 지내다가도 자식들의 인생에 악천후를 만났을 때 섬광처럼 나타나 갈 길을 보여주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혼, 아버지의 기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검은 꽃, 하도 유명해서 참고 읽었다. 솔직히 3/4 지점까지 갔을 땐, 차마 마저 읽지 못했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려면, 그 글을 한 번 읽어서는 안 되고, 읽은 느낌을 다시 되돌아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솔직히 이 소설을 되돌아볼 거리가 없다. 그저 별것 아닌 작가의 별것 아닌 작품에 '뇌쇄적'이란 형용사를 쓴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의 무뇌적 판단에 혐오감이 들 뿐이다. 아니, 그저 빨리 잊고 싶다.

<유한자 인간의 기품과 슬픔 뇌쇄적으로 그려,>

김영하의 검은 꽃은 뇌쇄적인 작품이다... 감상주의에 빠지지도 않았고... 모험담에 유혹당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일시'와 '낯설게 하기'라는 모순된 기법을 하나로 융합시켜나가는 가운데 정념의 '두 무한'을 인간 정신의 높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처럼 세워놓았다. ... 최고 수작 운운 , 심사위원들의 평

이들 문화 권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최고로 뽑은 작품은, 그야말로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

검은 꽃. 세상에 없는 꽃. 그런데 최고의 상을 주다니... 병신같은 세상... 하며 작가는 그들 심사위원들을 비웃고 있는 '다중이'라면 차라리 사랑스러우련만, 이 작품으로 그를 다시 평가하라니... 유구무언이다.

그간 우리 역사소설이, 특히 민중소설이 역사를 유목적적인 방향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도덕적으로 그리고 있었던 경향이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유구하게도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 벽초 홍명희의 아름다운 언어 속에서 펄떡거리던 임꺽정의 핏줄기가, 황석영의 장길산의 육중한 분노가, 박경리의 토지에 얽힌 조선 사람들의 삶의 지평이... 개인을 민족의 범주 안에서 재단질 해 온 경향이 짙었던 것은 사실이고, 역사 속에서 우리 개인들은 그러했다. 우리 역사에 개인주의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를 정치화 시키고자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런 어거지를 부리는 건, 정말 싫다.

작가는 후기에서 나는 1905년 생이다. 라고 착각하며 자랑스레 쓰고 있다. 그리고, 제아무리 대단한 상상력도 누군가의 피로 씌어진 한 줄의 1차 자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354쪽)

그런데, 작가는 사소한, 그러나 1905년 생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몇 가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1910년 8월 16일, 식물처럼 연명하던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하고 데라우치를 조선 총독에 임명하였다...(242쪽)  1905년 생이라면 그 날짜를 결코 잊지 못한다. 경술국치일이 며칠인지... 저승엘 가서라도... 아 그가 유카탄 반도에서 그 시절을 보냈으면, 모를 수도 있겠나?

그리고 그가 희화하하였던 황실의 인물이 적은 편지를 사람들이 읽어내는 것도 우습고(한자일 것이 뻔한 일인데...), 21세기에도 일어나기 힘든 몸섞기가 벌써 백년 전에 그것도 황실의 법도를 배웠을 법한 사대부집 숙녀에게 저질러 버리는 작가는 조선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내시에게서도 아닌, 일본인과 주인공의 동성연애는 지나치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소재다. 1차 자료들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거 아닌지...

이 글의 해설을 쓴 남진우는 이 소설을 몇 번은 읽었을 터인데, 밑줄 그어가며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의 해설은 제법 그럴 듯 하다. 김영하의 정치색을 잘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개인의 상상력의 자유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오만한 작가의 모습을...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고, 역사라는 일람표 위에 갈겨 쓴 낙서처럼 인간 집단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 한여름에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 그 존재는 현실인가 꿈인가, 좋은가 나쁜가. 귀중한가 무가치한가? - 로베르트 무질, [통카]

인간 존재를 너무 국가나 민족과 흡착시키려 했던 민족주의 시선을 끈적끈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나타난 지 오래 되었다. 그 이들의 행동 양식을 보면, 저 독재 시대의 순수시와 참여시 논쟁과도 비슷할 정도로 <극우 자유주의>에 집착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화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다. 로베르트 무질의 이 말은, 로베르트 무질이 무너져가는 오스트리아를 보면서, 세계대전의 페시미즘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허무하게 느낀, 결국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과연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했던가>를 비판적으로 적은 것인데, 김영하의 이 소설의 흐름과 유사한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다.

해설자는 이 소설을 <소문자로 씌어진 역사>라고 적었는데, 역사는 원래 소문자로 쓴다. history.

대문자로 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이다. I.

이 소설을 제대로 해설하려면, <소문자로 씌어진 개인의 역사>라고 했어야 옳지 않았겠나...

해설자가 이 소설을 <기존의 통념을 배반하는 역사소설>이라고 하고 있는데, 기실 이 작품은 <역사>를 깨 부수고, 개별자로서의 인간 존재가 더 우선한다는 작가의 <새로운 척 하는 역사 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써 기존의 소설 형식을 빌려 왔을 뿐이라 생각한다.

100가지를 조사하고, 1000가지를 알고도 한두가지 형상화하기 어려운 것이 소설이었다면, 이 작가는 열 가지 정도 조사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걸, 하나도 빼먹지 않고 소설 속에 서술하고 싶은 병을(글을 써본 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자기 새끼 죽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부추기는 세력이 있어 더욱 자신감을 가지는 듯 하다.

날카로운 관찰력(강과 산이 있어 우리 조국을 강산이라 한다는 등)과 신선한 표현 등 아까운 재주가 있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나, 십년 뒤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붓을 좀 쉬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필력을 길렀으면 한다. 이제 김영하는 읽지 않으려 한다. 그런 걸 절독(切讀) 이라고나 할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1-16 0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01-17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반갑습니다. 처음 뵙네요. 젊은 분들은 김영하를 좋다고들 하시던데... 읽어 보고 어떤지 의견을 말해주시길...

블루 2005-01-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 쓰신 리뷰를 보니 저는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 한거같습니다.전 재밌었고 그냥 그렇게 사라져간 사람들이 슬펐을뿐 많이 뭐가 틀렸는지도 몰랐거든요.좀 잘난척하고 차가워보이는 김영하가 그냥 좋아보였을뿐...

글샘 2005-01-2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어떻게 읽는 게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난 저 사람 글이 너무 싫어지는 계기가 된 책이구나. 원래 왕자병끼리는 남 잘난 척하는 거 보기 싫어하거든...^^

2007-11-1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연애가 아니라 동성애지요.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글을 쓰는 지혜가 아닐까요. 동성애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이들 덕분에 숨어 살았지요.

Kaiela 2015-06-0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꼰대가 따로 없군요
 

첫째, 불살생 : 남의 목숨을 빼앗거나 해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둘째, 불투도 : 허락 없이 남의 재물을 가지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셋째, 불사음 : 절제 없이 성적인 잘못을 범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넷째, 불망어 : 잘못된 말. 즉 거짓된 말, 꾸민 말, 이간질하는 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다섯째, 불음주 : 술, 마약 등 사람의 정신을 취하게 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

첫째는 우리 식단에서 가능한 한 육식을 줄여야 한다. 둘째는 쉽게 행동할 수 있는 것. 셋째는 사마리아가 판치는 우리 문화에서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고, 넷째는 가족과 직장 동료, 상사에 대해 잘 저지르는 말이며, 다섯째는 술권하는 사회인 우리 사회에서 정말 지키기 어려운 계율이다. 머리깎고 절로 들어가기 전에 다 지키기 어려운 공부지만, 마음에 두고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한 공부이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1-1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발견====>'허락 엇이'...^^
흠, 넷째는 저도 가끔 실행하고 있는 사항이군요...

글샘 2005-01-1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가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있어야 할텐데... 늘 마음의 평화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죠...^^ 쉽지 않지만...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농담?'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나는 박완서의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그의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조곤조곤 수다떠는 가벼움과 주절주절 신세한탄하는 쉽게 읽히는 그것이고 쫄깃쫄깃한 질감마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교과서에 실린 <그 여자네 집> 같은 작품이나, 그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같은 수필류는 그의 문체를 좋아하게 해 주었다.


그의 단편은 좋아하는 반면, 그의 장편소설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거의 자전 소설에 가까운 글들로 시작해서, ‘논픽션의 한계를 픽션에서 극복한,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얻은’ 사실을 토로하기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 투의 전쟁 이야기를 어려서 신물나게 먹었기 때문에 지금도 식상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소설은 소재가 특이하게도 의사, 돈, 가족 이런 거다. 이 소설을 읽은 나의 느낌은 한마디로 <생뚱맞음>, 그 자체였다.

요즘 한 개그 프로에서 유행어로 쓰이는 ‘생뚱맞다’의 뜻은 사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생뚱맞다 ꃰ하는 행동이나 말이 상황에 맞지 아니하고 매우 엉뚱하다.

        ¶ 맞선 보는 자리에서 일부러 생뚱맞은 얘기를 해서 신부 될 여자를 골탕 먹이는 일 말예요.≪최일남, 숙부는 늑대≫                        [한컴사전 참고]


우리 사회에서 의사란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부’, ‘중산층’, ‘권력’ 뭐, 이런 것 옆에 늘 있다. 영화 <우리 형>에서 일수놀이하는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의사 아들처럼.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에 나오는 그런 절친한 의사를 둔 사람은 드물 것이고... 그렇지만, 이 소설의 의사의 시점에서 소설을 서술하는 것은 그에게는 역부족인 듯 하다. 의술이나 인술, 고단함, 이런 것 보다는 늑대의 시간을 즐기는 일탈자, 아, 가끔은 아내와 현금을 두려워하는 개가 되기도 하는 초라한 존재다.


그리고, 왜 이 소설에서 재벌 같잖은 것들이 등장해서 재벌처럼 행세하는지... 그 의사놈의 형은 왜 10억을 쾌척하는지, 왜 저토록 박제화되어 생동감없는 소재들이 작가의 뇌리에 준거 집단으로 박혀 있는지... 그닥 설득력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가족 문제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건 박완서의 주특기다. 그런데, 여기서는 가정의 유대감이 느슨해지는 현상을 반영한 듯도 하면서, 오히려 재벌 집안과 의사, 졸부 형님의 등장으로 가정 해체 현상과 일탈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의사와 돈과 가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에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으면 즐거운' 그런 것이 아주 가벼운 농담으로 들릴 지는 몰라도, 의사는 너무 멀고, 돈은 나랑 인연이 없고, 가족은 그저 데면데면한 보통 독자들에게는 너무도 생뚱맞은 농담이 아닐까... 얼마 전에 시사 프로에 비윤리적인 의사와 비윤리적인 기자들이 등장했는데, 의사들의 변명을 사람들이 아주 싫어했던 사건을 봐도, 이게 농담으로 듣긴 어려운... 그런 느낌.


그러나, 그는 역시 단편 작가여서, <치킨 박>의 대목에서는 잠시 심금을 울리는 필력을 보이기도 하고, 이 작품의 전편을 휘감고도 남음이 있는 현금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린 현금(現金)과 낭만주의의 추억이 되어버린 현금(弦琴)의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불타오를 듯한 능소화 이야기로 환상적 낙인을 찍어 버린다. 어린 시절 낙인과도 같은 시린 추억을 강렬한 주홍빛 시각적 이미지로 그린 데는 성공해서,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참을 그 꽃을 슬라이드 쇼로 감상하고 말았다.


그는 역시 잘 쓰는 작가다. 그러나, 결국 이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은, 이 작품을 왜 <조선일보>에 싣지 않고, <실천문학>에 실었는지... 이해가지 않는 거리만큼의 생뚱맞음이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진강아, 너 왜 흐르지 않는 거니?
너 때문에 우리 물고기들이 숨이 막혀 죽겠어."
은어는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났다.
"넌 정말 사랑이 없구나. 너를 믿은 우리가 바보야."
"은어야, 사랑이 뭐니?"
"네가 흘러가는 것이 사랑이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게 바로 사랑이란 말이야."
"그래?"

- 정호승의《항아리》중에서 -

* 사랑은 거창한 것도, 요란한 것도 아닙니다.
강물이 그렇듯, 그저 잘 흘러가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매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에서 깊은 사랑과 감동을 느낍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1-1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흘러 가는 것이 사랑인데 그 사랑을 너무 모르고 살고 있답니다.

글샘 2005-01-19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처럼 알라딘을 사랑하고, 알라딘에서 사랑받는 분도 드물지 않을까요? 부디 그 자리를 놓치지 마시길... 강물이 흐르듯, 여우님 서재에도 기쁜 산골 물소리 첫사랑으로 흐르기도 하다가, 고난의 여울에서 물결치기도 하다가, 바다에 다 와가는 저녁 강에 붉은 노을로 타들어가기도 하다가 하겠지만, 그저 흘러가는 게 <사랑>의 본모습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