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자기치유 -상
존 카밧진 지음 / 학지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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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의 방학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방학이면 교사들은 집에서 뒹구는 줄 아는데, 일반계 고등학교(소위, 인문계)는 평소와 비슷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어떤 학교는 오후 5시까지 자습도 시킨다. 지난 몇 년간 바쁘게 사는 게 좋은 건 줄 알고 정신 없이 살다보니,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고, 오히려 방학중이 더 바빴다.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은 거라곤 혈압 오른 거, 비죽이 내어미는 뱃살, 마흔이라는 나이에도 아직도 혹하는 어리석은 나만 남았다. 그래서 이번 방학엔 죽을 힘을 다해서 보충수업에서 빠졌다. 처음엔 어떻게 놀까 머리를 많이 굴렸다. 아들과 둘이서 절에 가서 도를 닦을까 어쩔까... 하다가 요즘은 아들과 둘이 종일을 논다. 삼십 년은 젊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노는 게 전혀 지겹지가 않다. 둘이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밥도 해 먹고, 느긋하게 독서도 즐기고... 아이도 행복하단다.

이 책은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의사인 존 카밧진의 명상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스트레스, 고통,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치료(caring)가 아닌 치유(healing)요법을 8주 과정으로 시행해 본 결과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끝없는 보이지 않는 경쟁, 끝장날 듯한 스트레스, 그리고 운동 부족으로 오는 질병과 심리적 불안감, 공황... 이런 것들이 반복 순환되면서 인생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에서 보여주던 가난하면서도 순박한 웃음들은, 부유하면서도 강파른 인상들로 변화하는 현대, 질병도 그만큼 많아진다. 병원에 병문안이나, 조문객으로라도 가 보면, 세상에 아픈 사람이 그렇게도 많은가 놀라게 된다. 그러고 잠시 '아,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운동해야지...'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나오면서 싸-악 잊고 산다.

병원에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을 치유해 주기 위해 8주간의 요법을 사용한다.

제1,2주 : 호흡과 보디 스캔

제3,4주 : 보디 스캔과 요가

제5,6주 : 정좌 명상, 요가 명상

제7주 : 개별적 정좌, 요가명상 혼합

제8주 : 공식 명상의 마지막 주인 동시에 스스로 훈련을 시작하는 첫 주(이 주는 여생동안 계속되는 주)

요즘 놀면서 아들을 따라 찜질방에를 처음 갔다. 후끈후끈한 한증막에 조용히 누워있으면서(어떤 때는 아줌마들의 수다로 방해받기도 하지만) 나의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 아무 생각 없는 시간이 이렇게 필요한 것인지... 역시 몸이 쉬라고 할 때는 쉬어야 하는 거다. 혈압이 160을 순식간에 넘어버리고, 한 번 넘어간 혈압이 내려오지 않아서 30대에 혈압약을 먹게 되니 이게 뭔가 싶었다. 정말 필요한 때 나타나 준 이 책을 보면, 한 편 신기하다. 어떻게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던가. 도서관엘 자주 가도 그 코너엔 잘 안 갔는데... 공학 서적 옆에 이런 명상 관련 서적을 두다니... 나를 치유해야 하는 시간에 고맙게도 나타나 준 이 책에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우연을 가장해 만남을 주선하시는 장난 좋아하시는 그분의 존재를 믿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건강이란 말에는 전체를 의미하는 뜻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전체는 통합이다. 체계나 유기체의 모든 부분들이 내적으로 결합하여 완전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전체성이란 언제 어느때나 존재하며, 그 치유과정이란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마치 모리 선생님처럼. 나를 이해하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나를 모질게 채찍질했던가... 이 책은 특별하지 않아서 좋았다. 새로운 것이 없어서 좋았다. 명상이란 그저 주의를 집중한 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관찰함에 따라 자기라는 존재의 올바른 내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과정이므로 인위적인 자세나 동작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나를 관찰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아인슈타인의 편지의 한 토막이 인상적이다. : "인간이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한 부분이며,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한정된 한 부분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자신의 신체 부위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 의식에 대한 일종의 착각이다. 이 착각은 일종의 감옥과 같은 것으로서, 이곳에 들어가 버리면 개인적 욕망이나 매우 가까운 주의의 몇 사람에 대한 애정에 의해 속박되게 된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와 자연 전체를 아름다움으로 널리 포용하기 위해서는 자비심의 범위를 넓혀, 이 착각의 감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착각의 감옥으로부터 당신을 해방시키고, 내적인 안정을 얻기 위한 기초를 마련해 준다."

9점 과제란 것이 있다.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이런 아홉개의 점을 네 개의 직선을 사용하되 연필을 떼지 말고 한번 그어진 선분 위로는 다시 반복하여 그리지 말고 아홉 점을 연결하라는 문제. 이 문제의 해결에는 습관적 인식을 탈피하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는, 세상을 하나의 전체로서 체계를 보려고 하는 <시스템 관점(system view)>이 필요하다.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인데, 나는 작은 낱낱의 프로그램에 얼마나 집착했던지...

치유란, 치료라기 보다는 관점의 변화였다. 치유란 나 자신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완전성을 인식하는 과정인 동시에 나 자신이 모든 것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성을 인지하는 것이란 말이다. 무엇보다 치유란 나 자신의 내부에서 평화를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한다. 화내지 말고, 원한 갖지 말고, 지비로 충만하고, 나 자신에게 친절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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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1-1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슴다^^ 방학이라니 넘넘 부럽구요...퍼갈께요~
 

 
과거 100년의 노벨상 수상자를
면밀히 관찰한 경험적 지혜로 볼 때,
개인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용기, 도전, 불굴의 의지,
조합, 새로운 시점, 장난기,
우연, 노력, 순간적 번뜩임과 같은
9가지 항목이 필요하다.
- 노벨박물관장, 스반테 린드퀴비스트 (Svante Lindqvist)
경영 현장에 있어 가장 난해한 부분이
구성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 입장에서도 창의성은 뭔가 특별한
선천적 능력이라고 지레짐작하여
개발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 9가지 항목은
그리 어렵거나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독창성을 갖고 있기에,
인간은 창의적 동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누구나 창의성을 개발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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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록의 언어영역 학습법
이석록 지음 / 다른우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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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러본 사람들이라면, 언어영역의 광범위함에 기가 질려본 일이 있을 것이다. 언어영역은 범위도 넓고, 고난도의 문제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작년까지는 시간도 많이 부족했고... 다른 과목에 비해서 공부를 어지간히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는 과목이 언어영역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는 <국어>과목만을 배운다. 물론 국어 과목에는 언어영역의 다양한 장르가 모두 등장하긴 하지만, 국어를 배운 것만으로 언어영역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리다. 2학년에서 보통 문학을 주 4시간 정도 배우는데, 결국 학생들은 3학년 올라 가서야 언어영역을 대비하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언어영역은 19년간(엄마 뱃속에서 부터 엄마의 언어 활동을 태아는 듣고 있었다) 익혀온 언어 능력을 한 시간 반 동안의 시험으로 판별하는 것은 시도 자체가 무리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쨌든 그 시험의 난도는 정말 높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국어 교사이면서 고3 지도를 연거푸 몇 년 한 나로서도 예순 문항을 꼼꼼하게 풀어 만점을 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 솔직히 만점 내지 최고점을 받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수학에는 정석이나 개념원리가 있고, 영어는 듣기와 독해, 그리고 간단한 문법이면 되는데... 언어영역에 대한 이런 참고서는 진작에 필요했다. 이제서야 이런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아쉬우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석록 선생님은 고등학생들이라면 숱하게 만났을 강사다. 그리고 이 책을 지금의 중3들이 읽으면 제일 좋다. 주변에 고등학교 진학하는 동생이나 친구나 조카가 있다면 이 책을 무조건 사주기 바란다. (아, 그 동생이나 친구나 조카가 공부와 담 쌓은 사람이라면 예외일 것이지만...) 예비 고교생이라면 고1,고2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독서량을 늘리고, 문학을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접해볼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1인 학생이 있다면, 이 책을 사 주되, 반드시 조건을 달아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데 너무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라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점. 이런 책 사주면 형광펜으로 밑줄 치면서 읽어댄다. 이런 책은 공부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책인데, 그런 아이들은 이런 책에 목숨건다.

그리고 이제 고3이 되는 고2가 이 책을 볼 때는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은 고3을 위한 책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이 권하는 대로 언어영역을 공부하면, 재수한다. 그만큼 언여영역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언어 영역을 잘 하고 싶어하지만, 결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기껏 놀다가 2학기가 되면 모의고사를 마구 풀어댄다. 실력이 없으면서 모의 고사만 마구 쳐대는 것은 스트레스를 돈주고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언어영역은 기초가 실력이다.

이 책은 언어 영역의 원리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언어 영역을 잘 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 많이 쓰고, 많이 읽게 하는 것이다. 아니, 스스로 많이 쓰고 많이 읽는 자만이 언어 영역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언어 영역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해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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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차 있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확신에 찬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을 키우고 상대방도 그럴 수 있게 만든다.
그들은 상대방의 강점을 위협이 아닌
자신의 재산으로 여긴다.
확신에 찬 사람은 상대방을 수용하고
자신과 같이 변화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방도 이 세상에서 자신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 스티븐 스토웰, 최치영의《윈윈 파트너쉽》중에서 -

* 아무리 작은 일도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큰 일을 이루려면 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강점을 인정해 주고,
서로의 약점을 가려주고 보완해 가면서 성취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함께 성장하고 승리하는
윈윈(Win-Win) 파트너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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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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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이 책을 읽은 게 7, 8년 전쯤 된다. 그 때 수학선생님들이랑 맨날 술마시러 다니다가, 어떤 수학선생님이 이 책을 재미있다고 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좋았던 문구들을 어디에 적어두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그럴 때가 있다. 십 년 전쯤의 일이 아련히 기억날 때가. 그래서 그 책을 뒤적거려 보기도 하고, 그 비디오를 빌려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온 집을 뒤져서 그 물건이 없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그 편지를 읽기도 하고...

이 책을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했던 기억이 나서 도서관에서 만난 김에 다시 내쳐 읽었다.

그 때 내가 어떤 구절에 반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히로나카의 성실성, 솔직함, 담백함 이런 데 매료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의 글은 수학자의 글 그대로다. 잉여된 감정도 없고, 논리가 결핍된 부분도 없다. 정확히 자기가 생각한 그만큼을 적어낼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상당히 딱딱하고 맛이 없는데도 수학자의 글이라고 이해하고 보면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우리 나라에선 딱딱해서 맛을 느끼지 못했던 바게뜨가, 프랑스에선 그 나름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었듯이...

우선, 그는 상당히 교육자로서의 생각을 많이 적고 있다.

좋든 나쁘든 간에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어떤 교과서에도 씌어져 있지 않은 살아 있는 본보기이며, 자식들은 무의식 중에 부모의 인생관에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이 구절은 학부모들 만나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아이들을 야단치려고 학부모를 소환하면, 늘 후회한다. 아, 아이가 부모보다 낫구나. 하고... 최근 몇 년간은 진학 상담을 위한 경우 외에는 절대로 학부모를 소환하지 않는다. 내 이런 생각을 모르고, 아이들은 엄마한테 전화한다면 설설 긴다. 흐흐, 어리석은 것들...) 아이들의 성장에는 절대적으로 자기 편에 서 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던 스폭 박사의 육아서를 인용하는 그의 시선은 교육자의 철학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실용적인 수학을 가르치는 걸 보고 깨달은 바가 많다. "소비자를 위한 수학" 같은 교과과정은 일본은 물론 우리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자율성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다. 모든 걸 꽉 죄어 놓고선 자율적으로 운영하라고 하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다.)

그리고 젊은 독자들에게 주는 교훈, 장래를 결정하려고 할 때에 쓸 수 있는 여러가지 정보가 있다. 예컨대 '성적이 이 정도니까 저 대학의 이러한 학과에 진학하자.'든지, '이러한 직종이 유망하니까, 이 기업에 취직하자.'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정보로부터 필요를 도출해서 진로를 결정한 사람은, 그 결정이 욕망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디에서인가 좌절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학문을 하고 싶다. ", "나는 이 일에 종사하고 싶다. "라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학문할 사람들에게 진로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고 있다.

사람이 계속 배워나가기 위해서는 작은 것이라도 '성공 경험'을 많이 쌓아 올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창조의 단계에 들어가서도 적용된다. 작은 것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기분이 좋아지고, 그 쾌감이 다음의 보다 큰 창조를 불러오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아이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많이 '실패 경험'을 쌓아 올리고 있는가. 나는 그 실패 경험을 벌주는 심판관은 아니었던가를 깊이 반성하게 해 준 말이었다. 아이들이 어떤 성공 경험을 통해 긍정적 비전을 형성할 지는 교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에게 실패 경험 보다는 성공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교사. 아, 얼마나 어려운가...)

그는 지식을 불교의 '인(因)'과 '연(緣)'으로 설명한다. '인'이란 것은 근원이란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이 내적인 인에 대해서 외적인 것이 '연'이다. 내적 조건인 '인'과 외적 조건인 '연'이 결합해서 모든 것이 생겨나고, 이 결합이 해소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우리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체험적 지식 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로 자기 자신 속에 축적되어 '인'을 만든다. 그 '인'이 '연'을 얻어서 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단이 되고 길이 만들어 진다.(나는 내 아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고 싶다. 그것은 '인'이 될 것이다. 같이 읽고, 같이 운동하고 하는 모든 것이... 그것이 나중에 친구라는, 선생님이라는, 사회라는 '연'을 만나 열매맺게 되겠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내가 좋은 연이 되길 바라기도 하고...)

그는 공부하는 목적을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즉,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라는 말. 공교육에서 너무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만으로 공부의 내용을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비자 중심의 교육, 이해찬 세대 교육이 얼마나 좋아하던 말인가.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로 바뀌고 있으니 교육도 변해야 한다던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로 점철하던 철학없던 이 나라의 <교육인적자원부>의 빈약한 상상력. 하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자원으로 취급하는 시각 자체가 얼마나 교육에 몽매한 존재들인지... 히로나카 선생은 불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잊어 버리는 과정을 인간만이 가진 <여유>라고 <여유있는 해석>을 가한다. 우리가 미분적분을 배운 것이 전혀 필요 없어도, 그 사고 방식은 미시적, 거시적 구성과 연관있는 것이고, 기계처럼 필요한 것만을 쪼로록 뽑아내는 것은 이제 컴퓨터가 할 일이지, 인간이 할 일은 아닌데 말이야...

그리고 그는 늘 겸손하게도, 스스로 뛰어난 수학자라고 여기지 않고, 대단한 노력가라고 평가한다. 수학의 노벨상이란 '필드상'을 수상했으면서도 말이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 얼마나 겸손한가. 아니, 오히려 그는 스스로 수학의 천재가 아님을, 그러나 수학에 대한 관심, 애정, 노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음을 웅변하는 것이리라.

창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욕망인데, 그가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유연성을 가지라는 것, 둘째, 욕망은 자기 내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자기 자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사회 풍조라든가, 유행이라든가, 혹은 매스컴이 제공하는 정보라든가 하는 것으로 형성된 경우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 셋째, 창조는 실제 만들어 보아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는 것.(프랭클린의 말을 빌리면, 어떤 것이든 창조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는데... 마치 어린아이처럼. 갓난 아기가 성장하면서 더없이 예쁠 때도 있는가 하면, 미운 일곱 살도 있다. 부모가 예쁠 때만 아이를 키우고 밉다고 하여 키우는 것을 포기할 수 는 없다. 창조 또한 마찬가지다. 출발 시점의 모습이 설령 갓난아기와 같이 유치하고 보잘것 없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키워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아이를 다 키워 놓고서야 사회에 대한 그 아이의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줄 때 소심심고(素心深考)라고 적어준다.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생각하라.

학자로서의 그의 질박하고도 고매한 인격에 존경의 염을 품었던 것 같고, 새삼 책을 읽으면서 그의 깊이에 감동하게 된다.

수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알라딘과의 인연에 감사한다. 그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다시 읽고 싶었는지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지만, 내 머릿속에 든 상념들을 지우개가 지워버리기 전에 기록하고 싶다는 내 주관적인 <인>이 알라딘 서재라는 <연>을 만나 이런 시원찮은 글발이나마 적게 된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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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1 22:01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