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학교의 행복 찾기
여태전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경남 산청에 간디학교가 있다. 경남교육청에선 골칫거리라고 인가해주지 않으려고 했던 골치아픈 학교다.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그 골치아픈 학교를 애정을 가지고 관찰했다. 기록은 상당히 객관적이고, 잘 짜여져 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3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간디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꿈꾸지 않으면>

 

이 노래는 이 학교에서 지어 부르는 노래다. 간디학교의 싹은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신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임금님이 벌거벗었음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떨어져 나간 것이다. 희망이란 불씨만을 안은 채.

 

한국 교육의 구조적 모순을 인식한 간디학교 사람들은 교육이란 문제를 언제까지 정부, 제도 탓으로만 돌릴 수 없었다. 비판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 아이들이나 우리 자신에게 인생이 너무나 짧고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인생은 정말 소중한 것이고, 그러기에 너무 짧다.

간혹 아이들 중에, 살아갈 일이 끔찍해요... 라는 말을 듣는다. 그 아이들에게 인생은 정말 소중한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무 길고 지루한 것인지도...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야, 인생은 소중하고, 짧아서 허투루 살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래서 산골로 가서, 부유하지 않게 살고 있다.

 

‘사랑과 자발성’ - 간디학교에서 자발성이 없다면 그곳은 이미 자율학교도 아니고, 대안학교도 아니다. 자발성과 관심이 곧 사랑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게 한다.

‘행복과 탁월성' -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믿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희망이란 불씨를 소중하게 안고 가야 한다.

 

물론 간디학교는 보통의 여느 학교처럼 순탄하지 않다.

학생 모집부터, 교사의 질, 교사의 고용과 보수 지급,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학부모의 참여. 이 모든 면에서 보통 학교들처럼 매끄러운 매너리즘을 따를 수 없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1회용이다. 수업도 한 번으로 끝이고, 축제도 한 번으로 끝이고... 그러나, 우리 삶이 원래 한 번으로 끝인 것 아니었던가? 자기 자식에게 그토록 마음 졸이는 것은 결국 자식의 인생은 일회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의 진로지도를 그 아이에겐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불성실하게 할 수 있을까?

 

보통의 교사들은 공교육의 보수적 매너리즘에 빠진 채, 성실함 정도로 그 빈 틈을 메워보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코트는 결국 어느 순간엔가는 단추를 다시 열어야 함을 느끼게 하듯이, 개인의 성실함만으로 그 구조적 모순의 갭을 메우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임을 그들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도 실패하고 있다. 그러나, 실패만이 성공의 어머니임을, 에디슨에게 2000번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었을 때, '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오. 2000번을 시도했을 뿐'이라고 했음을 기억한다면, 그들의 실패는 우리 교육의 훌륭한 하나의 대안이 될 것임을 믿을 수 있다. 비록 그 길이 멀고 험할지라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 어려운 세상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외치는 교사들이 있음에... 그리고, 스스로 자율적이지 못함을 질타할 줄 아는 간디인들이 있음에... 그들은 꿈이 없는 곳에, 삶도 없음을 잘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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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느티나무 >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이노 지음, 조숙영 옮김, 르네상스, 2004


어느 가족 이야기


   니콜라스 에스코바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자택에서 매우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니콜라스는 TV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여섯 살 꼬마였다. 이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니콜라스는 이렇게 물었다. "이모는 누가 죽였어?"


-124쪽



가난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낭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조용하게 살 수도 없고, 조용함을 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나는 법을 잊어버린 암탉의 날개처럼 걷는 법을 잊어버린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쓰레기를 먹으며 마치 음식이라도 되는 양 돈을 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마치 공기라도 되는 양 10원 한 장 내지 않고 똥을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텔레비전 채널 두 개를 놓고 하나를 택할 자유외에는 아무런 자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기계와 함께 열정적이고 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항상 다수지만 항상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265쪽



농담이야 2


   모스크바를 빠져나오던 차 한 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잔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운전자는 이렇게 신음했다.


" 내 메르세데스...... 내 메르세데스......"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 차가 무슨 소용이요? 팔 하나를 잃어버린 걸 모르시겠소?"


팔이 잘려 나간 자리를 쳐다보며, 그는 이렇게 흐느꼈다.


"내 롤렉스...... 내 롤렉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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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선생, 드디어 인권교육하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인권교육분과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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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리뷰 제목이 개인의 실명(알라딘 내의 실명^^)을 거론해서 당황스러우셨나요? 그러면 무시하고 읽지 마시죠.(라고 말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죠?)

며칠 전에 해콩 선생님의 서재에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해콩 선생님은 학교의 민주화를 위해서 노심초사하시는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아직 경력은 많지 않지만, 경력이 짧다고 뭐를 아느냐는 노친네들의 논리는 늘 오류를 범한다. 경력이 길어 지면, 날카롭지 못하다. 날카로움이 무뎌지고 마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문제점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 긴 경력을 무기삼아 억압에 나선다.

학교 내에서 남교사가 많으면 <여교사회>가, 여교사가 많으면 <남교사회>가 있다.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발버둥이리라. 그런데, 내가 본 여교사회의 노친네 중, 상당수는 젊은 여교사를 억압한다. 선배의 이름으로. 이건 완전히 깡패 저리가라다. 남교사회도 마찬가지다.

해콩 선생님의 서재에 간혹 들러 보면, 사설 모의고사를 거부할 권리, 방학중 보충학습을 받지 않을 권리, 야간자율학습을 안 할 권리 같은 말들을 듣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거의 불문율로 굳어져서 쉽게 말 꺼내기 어려운 소재들이다.

나도 십여 년 전에는 여름방학책으로 배를 불리는(이 짓거리는 최근까지 성행했던 것이다.) 교총과, 매일 지시전달만 하는 직원회의, 군대식 제식훈련을 통한 맹목적 투철한 굴종의 정신과 잘난 놈을 위해 못난 놈은 희생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우는 운동장 조회 등에 문제제기를 했던 적도 있지만, 요즘은 투덜거리고 씨벌거리며 넘어갈 뿐이지,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지각하는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짜식들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는 좁쌀영감이 되어 갈 따름이다.

이 책은 작년쯤 도서실에 들어온 책이다. 그런데 내가 도서실에 책 빌리러 갈 때마다, 눈에 띈다.(크기가 커서 잘 보인다.) 거의 선생님들도 빌려가지 않았던 듯, 책은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런 책을 눈에 불을 켜도 읽었을 내 교사 초년 시절을 떠올리면, 일 년이 되도록 이 책을 알고만 있었던 것은 녹슨 것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해콩 선생님의 글들을 요즘 몇 편 읽다가,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로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단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고 넘어갔던 나를 반성한다.

인권. 사람답게 살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꿈틀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주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동지가 되어주자는 말이다.

나는 국어과 교사이지만, 수능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을 주로 하게 된, 그리고 그걸 능력으로 여기고 사는 한심한 선생이다.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수능에도 유리하단 것을 알지만, 학생 중심의 활동을 능력이 안 되고, 귀찮아서 못하고 있는 선생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너무 무기력하다. 전교조는 교육의 희망이 되지 못한지 오래다. 올해 위원장 선거와 지부장 선거에서 1번이 모두 낙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여긴다. 투쟁 위주의 전교조, 원칙과 교조적인 지도부는 현장에서 유리되어버리는 것이다. 학교에선 모의고사를 쳐야 하는데, 다들 쳐야 한다는데, 전교조는 늘상 거부 방침만 반복하는 녹음기였지 않은가. 밤 열 시까지 자습하고, 아이들은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학원으로 독서실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초주검이 돼서 돌아오는데, 영교시만 겨우 없앤다고 해결책이 생기진 않는다.

학생들의 인권을, 교사들의 인권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주로 워크북 형태로 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활동을 안내하는 부분이 상당부분이다. 사실, 처음 책을 접할 때엔, 인권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이 책을 죽 읽고 난 지금은, 인권은 아무 것도 아닌, 관심의 다른 말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 가사 노동에 대한 관심, 학생과 학교 운영에 대한 관심... 일개 평교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다. 그러나,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과, 아무 것도 못 하지만, 동료를 모으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모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큰 일이란 것을 깨닫게 해 준 해콩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리뷰가 이상하지만, 독후감에는 특정 인물에게 편지 형식으로 쓰는 독후감도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해콩 선생님이나 땅콩 선생이나 콩의 일종이었군. 음. 콩과 인권에 대해서 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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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1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샘... 무슨 말을 어떻게 드려야할지..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사설모의고사 때문에 맘고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독거부 정도에 머무르고 패배감에 젖어 지금은 그냥 받아들이려고 맘 먹은 상태에서 이 글을 보니 너무 부끄럽고..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힘'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샘 2004-12-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일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우리 생활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 거대한 교육이란 시스템 안에서 우린 작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하드웨어를 쉽게 무너뜨릴 순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조금씩, 조금씩 바꾸려는 깨작거림만 해도 우리에겐 중요한 변화를 줄 수 있고, 아이들에게 큰 변화의 씨앗을 심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

해콩 2004-12-1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의 《고향》 중에서 -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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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실력


자기의 실력을 감출 줄 아는 것이야말로
크나큰 실력이다.

- 라로시푸코의 《잠언과 성찰》 중에서 -


한때 <자기 PR시대>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실력은

자기 능력을 감출 줄 아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남 모르게 자기 실력을 쌓으라는 뜻과도

상통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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