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유혹 - 예술의 유혹 02 예술의 유혹 2
힐러리 프렌치 지음, 최윤아 옮김, 유현준 감수 / 예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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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담 출판사에서 나온 예술의 유혹 두번째 책이다. 작년에 자연반 담임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건축을 맛보여 주려고 학급문고로 사 놓았던 책이다. 머리 좋은 아이들이 요즘 너도나도 의대, 약대로 진학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미래는 암담하다. 의사 약사는 우리에게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돈을 갈취하는 쪽이지. 아무튼 아이들이 생산성 있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최대한 유도하는 것이 내 의도였으니, 학급문고를 운영하다보니, 아이들의 관리 소홀로 책이 절반 이상 분실되고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던 책이어서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건축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흐름을 개략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사진이 잘 배치된 책이다.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요목요목 잘 정리한 책일 지도 모르지만, 나같은 문외한에겐 좀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외국 배우들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듯이, 바로크, 로코코 등등 세계사 시간과 미술 시간에 들었던 문화적 외국어들은 아직도 아무런 정리도 없이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그림 위주로 주--욱 훑어보면서, 문학이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이 원리이듯, 건축도 그렇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용적이고 고전적인 건축물들이 미적 구조물로 변화하다가, 다시 규모를 키우는 쪽으로 변모하고, 다시 새로운 의식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방향으로, 다시 해체주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오락가락하면서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오가는 것이었다. 아-트와 테크닉의 결합으로서의 아키텍처(건축)을 보여주는 책으로 건축사를 충실히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노출이라고 생각한다. 형이나 누나가 있는 아이들이 선행학습에 노출되어 어깨너머 배운 풍월로 공부를 수월하게 할 수 있듯이, 전공에 관한 이야기들도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자주 노출되도록 해 준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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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가 있는 풀꽃 이야기
신춘행 지음, 김은정 그림, 김태정 사진 / 예림당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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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다른 풀꽃 이야기에 비해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우선 초등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꽃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적어 준다. 그리고 김태정 선생님의 사진과 간단한 설명들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학습 도감으로서의 유익함과 동화로서의 재미를 한꺼번에 간직한 보기 드문 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숱하게 많지만, 식물 도감 같은 책이나 학습 사전 류는 너무 설명에만 치우쳐서 어린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으며, 이야기책은 그저 이야기만 간단하게 수록되거나 그림으로 때우는 식이 많아서 식물의 다양한 생태를 접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어 왔다.

그런 점들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성공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그 이름이나 생태를 알기 어려운 꽃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 가령, 조팝나무, 참오동, 며느리밥풀, 옥잠화, 쑥부쟁이, 과꽃, 치자나무, 자귀나무, 솜다리, 붓꽃 같은 꽃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꽃 100가지 같은 책들이 어른들도 읽어내기 어려운 도감의 성질을 띤 반면, 요즘 아이들에게 점점 전문성을 기르는 책들이 출간되는 것은 수요자를 잘 읽어낸 능력의 향상이라 볼 수 있으며, 한국 출판계의 성장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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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1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태정 선생하고는 1990년대 초반에 인연이 잠시 있었지요..그 분의 꽃 이야기를 저도 한 번 훗날 해야겠군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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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나? 있을까? 과연 이 작가는 '나'가 어떤 존재인지 상상해 본 것일까? 따뜻한 물 속에다 몸을 담그고 혈관의 액체를 빨리 순환시킨 다음 동맥을 그으면, 나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나'란 '나'의 본질이란, 그렇게 내 이 칠십 킬로그램짜리 몸뚱아리에 한정된 것이란 말인가. 껍데기를 안고 다니는 나, 이 나의 껍질이 나라면 나는 나를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나란 말이냐.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껍질처럼, 우리가 뼈다귀와 수분, 또는 줄이고 싶어하는 체지방과 단백질 세포들에 불과하다면 내 몸의 순환을 멈추는 일은 단순하다. 옥상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고, 깊은 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껍질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세대가 가벼워졌다고는 해도, 그렇지, 늘상 엘리베이터이 끼어있는 가엾은 존재로 사는 것이 나라고 해도. 그렇게 허둥거리고 산다는 것이 늘 싸구려 자판기 커피잔처럼 무가치하고 금세 식어버리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토록 쉽게 목숨을 포기하는 것은 권리하고 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종교인들은 신의 존재를 역설하면서, 신의 뜻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범죄라고 지껄이기도 하지만, 신의 존재 이전에, 나는 '나'란 존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것이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늘 나의 본질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라보는 대타적 존재로서의 '나'이지 않았던가. 나는 한 사람의 남편이고, 아이의 아빠고, 부모의 자식이고, 형제의 형제고, 사위고, 자형이고, 동서고, 제부고, 선생님이고, 동료교사고, 후배고, 선배고, 제자도 되고, 강사도 되고, 대학원생도 되고, 교통위반자도 되고, 손님도 되고, 행인도 되고, 도서관 출입자도 되고, 국민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 다 젖혀 두고, 나는 무엇인가. 그러고도 나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면, 나는 껍질이다. 죽어도 되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를 파괴할 권리를 세 편의 그림과 얽어서 역설한들, 그 권리가 긍정되지는 못 한다. 세 번의 경험 또는 실험을 통해 결론을 내린 것은, 귀납추리의 논리가 될 수 없다. 유비추리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설이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는 제목부터 도발적으로 논리적인 양 지껄이고 있다. 아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그에게 우리는 설득당해서는 안 된다. 정말 '나'를, '나의 본질'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글을 쓰진 않을 것이다.

그는 외로워보인다. 사진 속에서도 몇몇의 행인들을 배경으로 외로워보이고, 그의 글의 편린들에서 비치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함석조각같은 반짝이는 빛깔들도 차가워보인다. 개똥철학의 레고들을 조합해 놓은 듯한 글들은 간혹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에게 결론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센(千)과 치히로(千尋)는 한 글자 차이지만, 본질을 놓쳐버린 치히로는 목욕탕 때밀이일 뿐이다. 가치로운 삶을 추구하지 못하는 치히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전혀 예감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존재인 센. 그러나 치히로는 원래 사랑받는 딸이었고, 단란한 가정의 훈기를 느끼는 존재였다. 우리는 센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허상인 센을 과감히 떨치고 '자기의 치히로'를 찾아야 한다. 하쿠가 그런 말을 한다. '절대로 자기 이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치히로를 잊고 센으로만 살아간다면... 자기를 파괴하고 싶을 것이므로... 

차라리, 황지우의 글들에서 나는 훨씬 나와 유사한 고민을 읽는다. 김영하의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을 읽어 놓고, 다른 유사한 풍의 작가들보다 훨씬 덜 지겹게 읽어 놓고 이런 화풀이를 하는 것은 포스트 모던의 방향상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

                                                                         황 지 우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다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 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쌍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 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 주면서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 도

영하 이십 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 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어떤가, 김영하씨. 아름답지 아니한가. 자기를 파괴하지 않고도 흐린 날, 주점에 앉아 나무를 바라볼 만도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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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17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국어 교사이신가요?

특히, '본질을 놓쳐버린 치히로는 목욕탕 때밀이일 뿐이다'란 부분이 마음에 와 닿네요. 김영하 소설 그저 재미있게만 읽었었는데.... 황지우 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 처음 만났는데, 마음이 저립니다. 서재 즐겨찾기 했어요. 앞으로 자주 올께요.

글샘 2004-12-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네. 국어교사가 직업이긴 하지만, 글을 잘 쓴다는 소린 별로 듣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낯선 말이군요. ^^ 그래도 칭찬은 들으면 기분 좋은 일이에요. 그쵸?

코마개 2005-01-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국어선생님 이시구나. 저도 그 직업이 부러웠는데 아이들을 매우 싫어하는 관계로 생각만 해봤습니다. 김영하의 책중에 포스트잇에 보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책이 영화엔가 나오는 장면을 서술한 글이 있습니다. 읽어보셨는지? 전 한참을 깔깔대고 웃었답니다.

글샘 2005-01-04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선생님. 참 매력적인 직업이죠? 전 그런 주제는 못 되지만... ^^ 전 김영하를 싫어했는데, 가끔은 그런 객관적이고 쿨한 글이 편할 때도 있더라구요.

2005-01-17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

자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키우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 김흥숙의《그대를 부르면 언제나 목이 메이고》에 실린 시 <사랑>(전문)에서 -

* 딱 두 줄 짜리 짧은 시지만 여운은 길게 남습니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며,
화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결혼 기념일이다. 벌써 12년이나 같이 살아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마침 결혼 기념일인 오늘 이 글이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배달되어 왔다. 자라는 사랑. 키우는 사랑. 그렇다. 사랑은 만들어 가는 것이고, 잘 자라게 돌봐줘야 하는 것이고, 잘 키워서 행복을 피우는 것이 사랑이다. 끊임없이 나를 변화하게 만드는 아내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잘 자라준 아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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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이상이 높던 다산,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도 바랐습니다. 그런 모든 꿈을 다산은 공직자들에게 걸었습니다. 공직자들만 청렴하고 깨끗해지면 원하는 세상이 온다고 굳게 믿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500권이 넘는 다산의 저서는 대부분 공직자들에게 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선 4지(四知)를 가르쳐줍니다. 내가 알고 있고, 네가 알며,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있어 아무리 비밀스럽게 주고받는 뇌물일지라도 반드시 들통이 날 수 밖에 없음을 고지해줍니다. 다음으로 4외(四畏)를 가르쳐줍니다. 공직자라면 감독관청과 정부를 두려워하고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하라고 고합니다. 감독관청과 정부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두려워하면서, 가장 무서운 백성과 하늘은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공직자들을 책망까지 했습니다. 

  다음으로 징계권을 지닌 공직자들에게는 4형(四刑)을 고해줍니다. 하급관료가 죄를 지어 형벌로 징계할 때에 네 가지로 구분하여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상형(上刑)이니 민사(民事)에는 가장 무거운 형벌을 내리고, 공사(公事)에는 중형(中刑)을, 관사(官事)에는 하형(下刑)을 내리고, 사사(私事)에는 일체의 징계를 하지 말라고 고합니다. 

  그러면서 민사, 공사, 관사, 사사가 무엇인가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합니다. 백성들의 이해(利害)에 관한 일에 잘못하면 가장 무거운 상형, 징계권자 개인의 일에 공직자가 잘못한 경우에는 일체의 징계를 금하라는 권고이니 너무도 타당한 주장이 아닌가요. 군수나 시장의 집안일이나 가족의 일에 하급관료가 등한하고 실수를 했기로서니 처벌을 한다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사지, 사외, 사형의 원리만 제대로 이해해서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면 세상이 얼마나 깨끗해지고 맑아지겠습니까. 이 시대의 공직자들도 다산의 고함에 귀 기울여 실천으로 옮겨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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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1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과 실제 사이엔 무수한 갭이 존재한다는게 제 구차한 변명입니다..^^

글샘 2004-12-1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공직자시군요. ^^ 아니, 06시 09분도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입니까? 아직 깜깜할 시각 아닌가요?

저도 분류하자면 공무원인 셈인데... 국민의 교육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인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제... 물론 갭은 있더라도, 제 나름의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려는 창의력, 우리 공직사회엔 그런 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