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간혹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초임 시절, 질문만 하면 "잘 모르겠는데요(영구 버전)"하고 앉아버리는 아이들을 만났고, 요즘엔 '하자하자', '느낌표' 같은 프로들을 안 보다가는 당황스런 때가 간혹 있다.

그러다 보니 느낌표 도서라고 광고가 된 책들은 어찌어찌 하다가 거개 읽게 되었다. 이 책도 그래서 읽어 보아야지 하고 있다가 우연히 내 손을 거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왜 이 책이 느낌표 선정도서인가?하는 화증이 우러나는 거였다.

느낌표는 청소년층부터 일반층까지 누구나 읽어볼 만한 작품들을 추천하려는 목적을 가진 프로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책들은 대부분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아직 유용주라는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의 표지에 보면, <가장 가벼운 집>, <크나큰 침묵>의 시집을 낸 사람이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요즘 비판해버린 책들 중, 안도현의 <사람>, 곽재구의 <낙타풀의 사랑>,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처럼 시인이 잡문을 적은 것을 깐 것이 많은데,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 김훈은 시인은 아니구나.)

이 책도 시작은 꽤 괜찮았다. 제법 묵직한 상념들로 페이지를 채웠다.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부분은 유용주가 단편적으로 습작처럼 휘갈긴 글들인가 본데, 시골 사는 이의 걸음걸이가 잘 묻어난다. 두번째 장의 글들도 제법 괜찮았다. 작가가 살아온 가시밭길같은 삶을 한 번 울부짖어 보고 싶기도 했을 거고, 베니어(우리 동네에선 베니다라고 하는데)판에 얽힌 추억들과 아내와 딸 사랑 이야기는 진솔한 이야기를 채워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문체는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민의 독서인화'를 주장하는 느낌표 도서로는 너무 무거운 문체다. 그는 스스로 무식하다고 어려운 말 모른다고 하지만, 그의 말투는 결코 쉽지 않다. 그가 나중에 장산리 왕소나무에서 인터뷰한 명천 이문구 선생의 소설을 읽어 보면 쉽게 읽히는 말투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삼 년 전에 이문구의 소설이 수능에 난 적도 있지만, 이문구의 문체는 결코 어렵지 않고, 시골 영감님의 조곤조곤한 말투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유용주의 말투는 아직도 잰체하는 문학자연하는 시인들의 그것이지, 잘 알아듣기 어려운 새나오는 발음이지만 정감 넘치는 진득한 영감님의 그것에 미치자면 한참 멀었다. 그의 시를 읽지 않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조금 실례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이 맘에 안 들어서 떠벌여 보는 소리다.

장산리 왕소나무를 읽으면서는 <이문구>를 파고싶단 생각이 울컥 들었다. 난 이문구를 참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명천선생의 글을 많이 읽지는 못한 것 같다. 며칠 유용주가 퍼마시는 막걸리처럼, 희석식 소주처럼, 캡틴큐와 맥주와 노가리처럼... 이문구 선생의 글들을 청탁불문하고 두주불사로 퍼마셔서 취해, 명정의 생활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나도 건강검진을 받기만 하면 가장 곤란한 항목이 감마지피티다. 늘 최대 허용치의 두 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해서 재검 요망~! 통보를 받지만, 철없던 십 년 전에 한 번 재검 받아보고, 그 후로는 간 적이 없다. 아마 내 간 세포는 좀 많이 죽어 나올 것이다. 자주 마시진 않지만 마시기 시작하면 몸이 이기지 못할 만큼 마셔버리고 마는 멍청한 내 머리를 몸이 용서해 주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몸을 만들어서 기회주의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더라도 내 간뎅이는 내 두뇌회전을 봐주지 않고, 재검 통보를 찍어댔을 거다. 그렇지만, 나도 고주망태처럼 술 마시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린다. 정말 활명수라도 하나 마시지 않고서는 안정이 안 되는 글이었다. 글쓰는 이들의 괴기한 이야기들은 숱하게 듣고 읽었지만, 난 그런 괴벽을 사랑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늘 술자리에서 2차를 빠지는 두뇌 회전이 작동하지 못하고, 마지막 차까지 대뇌가 작동되지 못하면서 소뇌만 움직이는 상황에 빠져버리는 나를 다음 날 혐오하게 되는 내 주벽도 용서하기 싫을 때가 많다.

그의 글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거미가 짓는 집이란 글이다. 이면우라는 시인의 시집에 적어 준 발문인 모양인데, 난 이면우 풍의 시를 좋아한다. 유용주의 글을 한참 읽고, 욕하고, 이문구와 이면우를 칭찬하는 나도 참 모자란 인간이다. 글을 이 따위로밖에 읽지 못하는 삐뚤어진 눈을 가진 걸 보면... 이 책의 작가가 이 글을 읽을 확률은 극히 적지만, 작가에게 쪼꼼 미안하기도 하고...(전에 이런 확률을 무시한 작가가 있었으니... 조금 무섭기도 한 세상이다.)

잘 읽은 시 한 편 옮기며, 책을 읽은 경의를 표하자..............................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집어오니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면우,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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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입니다.한 번도 만난적은 없지만 제가 이 책을 읽은 느낌과 거의 유사하군요...첨엔 좋았다가 나중에 싫어진 이상한 책...아니 글을 읽는 제가 이상한 거였겠지요 뭐...^^

글샘 2004-12-0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서산 어디 산다고 하더군요. 십년 전에 해미읍성 간 적 있었는데, 참 좋았어요. 남 욕할 때, '너도 그렇지, 응?'하고 맞장구쳐 주면 욕할 맛이 납니다. 욕듣는 사람은 두 배로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요. ^^ 즐거운 한 주 되시길...
 

대대적인 입시 부정. 선후배팀, 대리시험, 학부모 주도, 학원장 주도, 브로커... 정말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제까지 무사히 넘어간 팀은 얼마나 많았겠으며,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 졸이며 올해 수능보지 않은 것을 얼마나 안도하랴.


300명의 점수가 무효화된다고 한들, 그들이 과연 어떤 아이들인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아이들이 과연 무얼 잘못했는지... 정말 이 아이들만의 잘못인지...


수능은 언어60, 수리30, 외국어50, 탐구 과목당 20, 제2외국어 30문항으로 수학 5-6문항 외에는 모두 5지선다형으로 된 시험이다. 정말정말 운이 좋아서 찍은 것이 다 답이 된다면 수학15점 정도 외엔 모두 맞출 수도 있다. 그래서 해마다 수능 치고 나면, 30-50점이 떨어진 학생과, 비슷한 폭으로 오른 학생들이 등장하게 된다. 찍어서 실력을 판가름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객관식 시험이 갖는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입시 부정도 이 찍는 제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봐야 한다. 대학 입시를 객관식 선다형으로만 치르려고 하는 것이 수능의 첫번째 구멍이다. 논술 답안을 문자로 보낼 수는 없을텐데...


수능의 두번째 허점은 수능이 1년에 1회밖에 없는 시험이란 데 있다. 그래서 한 번 모험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시험이란 잘 칠 수도 있고, 못 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처럼 대학 입학이 남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큰 나라에서 그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독관은 그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험생의 얼굴을 보는 것도 미안하다. 그 사소한 사설시험인 토익시험도 시험치기 전에 본인확인 시간이 있는데, 수백억을 들이는 국가시험에 본인확인조차 않은 것은 직무유기를 교육부에서 조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수능이 제 기능을 하려면 1년에 2,3회 쳐서 평균을 내든, 성적이 좋은 과목을 취하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탐구영역을 30분으로 제한해서 20문항 출제하다 보니깐, 1문제만 틀리면 3등급이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수능을 유지하려면 이틀 정도로 나누어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수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가 고등학교 교육을 죽인다는 점이다. 수능을 위해서 달려가야 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현실은 대외적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는 고비용 저효율(무효율)의 소모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대학은 손 대지 않고 코 풀 수 있다. 수능 점수도 국가가 제공하고, 내신성적도 고교가 제공한다. 사교육의 팽창을 두려워해 본고사를 못 보게 한다는 것은 주객전도이며 어불성설이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점은 인식하면서도 누구도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여야 하는데, 고식지계로 일관한다. 제도를 조금 뜯어고치는 걸로는 미래의 청사진을 찍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가 세계 150위 안에도 못 든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는 그 대학이 세계 150위에도 못 드는 건 문제다. 그런데, 그것은 서울대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인 것이다. 정말 좋은 학생을 보내고, 정말 좋은 교수가 정말 좋은 환경에서 가르치고 배워서 그 학생들이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내가 보기에 나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대가 민족의 대학으로 우뚝 서지 못하고, 단순한 개인적 신분 보장의 기회로 여기는 것이 문제다.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우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를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대가 모든 면에서 1위라는 것이다. 법대도, 경영대도, 의대도, 음대도... 서울대가 1위를 해야 하는 것은 농대나 공대처럼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학과이거나 인문대나 자연대처럼 학문의 깊이를 담보해야할 국책사업으로 서울대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서울대에서 경영대, 사회대, 법대, 의대, 예술대 같은 단과대는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범대의 경우는 서울시립대같은 곳으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연세대에는 경영대처럼 그 나름의 특화된 학과를 남기고 불필요한 학과들은 과감히 구조조정할 수 있을 것이고, 고려대는 법대를, 한양대는 공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문어발식 대기업 형태의 종합대학의 형태는 60년대 개발 모형에나 적합한 것이다. 이제 특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대학입시는 대학에서 주관해야 한다. 고등학교는 입시 업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충실한 운영, 그것이 고등학교의 주요 안건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토론하면서 생각을 이끌어내고, 창의성을 계발시킬 수 있는 논문이나 논술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교사가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포트폴리오를 수시모집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고, 교사의 양심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대학 입시만 중요한 게 아니고 대학은 정말 학생을 공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학가가 술집 골목으로 휘청거리게 만든 것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굴절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독서를 하고, 생각을 하며, 교류를 하고, 생활을 가질 때 비로소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인데, 제도를 조금 바꾼다고 입시 부정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사회의 너무도 많은 측면들과 연관된 입시 부정. 교육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교육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깨작거리고 아랫돌빼서 윗돌 고이는 임시방편을 이번에는 과감히 떨치고, 정말 미래가 보장되는 청사진을 교육부가 구상하고 있으면 좋겠다. 무슨 수를 쓰든 남들보다 잘 해야 하는 제도에서 양심과 창의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해면처럼 흡수력이 강하다. 섬세하게 그 환경을 꾸며줄 필요가 있는 거다.


무식하게 진급을 위해 달려갔던 자들이 외국 순방을 하고 나면 꼭 이런 말을 한다. "외국 선생들은 신분도 불안정하고(매년 계약직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처럼 툭하면 잘린다.), 월급도 우리보다 높은 수준이 아니며, 수업은 우리보다 훨씬 많다." 왜 그들은 신분이 안정적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라고 할까. 물론 우리나라 일반계 학교에 계약직으로 교원을 채용한다면, 수능 이외의 과목(예체능, 실과과목)의 교사들이 대거 교사직을 잃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다. 그게 무서워서 선택중심 교육과정이라 해 놓고도 교사를 선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월급이 많단다. 우리는 겸직 금지가 되어 있다. 나는 솔직히 돈을 좀 더 벌어야 한다. 부모님 유산 없이 한국에서 집 한 채 마련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줄 다 알지 않는가. 퇴근 후 투잡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와 우리 사회(퇴근 후에도 회식이란 연장근무가 천지인)를 비교할 순 없다. 그들은 수업 시간이 많을 뿐이지, 가르치는 학생 수는 우리보다 훨씬 적다. 그리고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교재연구를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잡무도 많고 아침 8시부터 밤10시까지 아이들을 감독해야 하는 일도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수업이란 것이 많은 부분 학생들의 연구를 보조해주는 시간으로 쓰일 수 있다. 우리처럼 문제집을 죽으라고 풀고, 수능 끝나고 나면, 산더미처럼 문제집 쓰레기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수능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제공받아서 답안을 작성하는 행위,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리고 재수생은 교육청에서 접수를 할 수 있는데 대리응시자가 그 사진으로 접수하고 응시해도 아무도 적발할 수 없다.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우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받을 정신적 고통은 제도와 국가에 대한 심각한 저항과 불신으로 남지 않을까. 작년까진 무사히 넘어갔는데, 재수없게... 하면서 말이다.


범죄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수능 부정을 일벌백계의 기회로 삼으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점을 겸허하게 수용해서 정말 새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위기 관리 능력이 철저한 나라였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 신화창조 시간에 '로만손 시계'가 나왔다. 오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서 세계적 명품의 회사가 된 로만손 시계. 그들은 철저한 연구와 시장 조사, 제품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동에 신제품을 납품한 지 1년만에 홍콩의 모조품이 들어와 위기를 맞는다. 그들은 그리스와 터키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일본의 텃밭 러시아에 러시아인들의 취향을 연구하여 아성을 무너뜨린 이야기다. 작은 신화 뒤에는 숱한 눈물과 진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위기 관리 능력이 우리 나라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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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12-1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비연 2004-12-15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한번쯤 더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글샘 2004-12-16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은 아니구요. 하도 나라가 하는 짓이 한심해서 넋두리 한 거랍니다. 삼백명을 0점 처리하는 거 말고는 아무도 반성하지 않고 있잖아요. =3=3=3
 
 전출처 : 해콩 > 새들,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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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안도현 지음 / 이레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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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은 시인이다. 내 생각엔 시인이어야 한다. 동화나 잡문으로 성공할 작가는 아니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면, 시를 쓰면 좋겠다. 난 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가 품고 있는 넉넉한 품이 포근해 보이고, 때론 화끈하고 날카롭게 뜨겁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다른 글들은 그의 명성에 상처를 줄까 걱정이다. 이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유사한 잡문이라 생각되는 건, 밥벌이를 위해 명성을 팔아먹는 현장을 들켰기 때문이리라.


이 책도 첫 장은 좋다. '하늘에 다리를 놓는 연날리기' 같은 글은 꽤 수필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다. '내 시의 사부, 백석'이나 '일 포스티노'같은 글들도 꽤나 감상이 잘 묻어난 글이라 칠 수 있다. 그런데, 3,4장에 가서는 아무래도 밥벌이의 지겨움이 묻어나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글에서 하늘에 다리를 놓는 연날리기는 내 마음 속에 한없는 향수와 상념의 실타래를 풀어놓아 주었다. 어린 시절 실이 다할 때까지 저하늘 높이 오르던 연을 바라보던 아무생각 없던 동심의 나를 돌아보게도 하고, 곧 졸업식에서 이별의 말을 전해야 할 날이 올 때, 이런 글 한 편 적어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한 점 연이 되어, 세상을 다 가져라. 연이 처음 바람을 맞아 둥싯 떠 오를 땐, 공중이 낯설고 때론 흔들리고, 까불까불하다 처박히기도 하지만, 그 연이 곧 바람을 안고 바람과 어울릴 줄 알게 되면 저 하늘 높이 한 점 연이 될 수 있다. 그 연은 바람과 팽팽히 맞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연에는 바람이 스쳐지나갈 수 있도록 바람구멍도 넉넉하게 마련해 두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그의 면모를 잘 느낄 수 있는 글은 역시, 시다.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해직교사 출신인 그는 자연에, 사람에 낮게 다가가고, 바로 그 자신이 강물이 될 수 있는 섬세한 심성인 것이다. 그의 글이 비유를 많이 감싸안을수록, 깊은 은유의 늪으로 언어들을 감고 들어갈수록 그의 언어는 빛난다. 투박하게 연탄재에 '너'를 직유하더라도 그의 탁월한 시 구성력은 감동적일 수 있다. 이런 책 엮지 말고, 시를 썼으면... 그가 바라는 대로 부자는 못 되더라도, 좋은 시인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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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곤궁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1801년 음력으로 11월 22~23일 쯤 역적죄인 신분으로 다산은 머나먼 바닷가 강진읍에 도착합니다. 무서운 전염병 환자라도 만난 듯, 사람이면 모두 문을 부수고 담장을 넘어뜨리며 달아나 상대도 해주지 않을 때에, 어느 주막집의 늙은 노파가 다산이 거처할 집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천추에 칭송을 받아야 할 의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강진읍내의 동문 밖 샘거리에 있던 흙으로 지은 토담집이었습니다.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 주린 배에 밥과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잠을 자고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천한 집안인 아전들의 아들들을 가르칠 수가 있었던 곳이 바로 흙담집 초가삼간의 그 집이었습니다. 누추한 주막집, 그곳이 다산의 학문이 익어가던 요람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의재란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며 살아가던 방이다.


생각은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하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용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하면 곧바로 엄숙함이 엉기도록 해야 한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많다면 곧바로 그치게 해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후중하게 해야 하니 후중하지 못하다면 곧바로 더디게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 방의 이름을 ‘네가지를 마땅하게 해야 할 방’(四宜之齋)이라고 했다. 마땅함(宜之者)이라는 것은 의(義)에 맞도록 하는 것이니 의(義)로 규제함이다...” 1803년 음력 11월 10일 동짓날 그날 <주역>의 건괘(乾卦)를 읽었다는 날짜까지 밝혔습니다.


  생각, 용모, 언어, 동작 등 학자가 지녀야 할 태도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다면 철저하게 반성하고 올바르게 규제하면서 학자적인 행동으로 돌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외부에 대한 선포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비좁고 누추한 방이지만 하늘 우러러, 그리고 땅을 굽어보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마음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선비다운 주장이었습니다. 이 방에서 다산의 상례(喪禮)와 주역의 연구가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이지만 생각하면 매우 의미가 큰 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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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초당 뒷곁의 뚝뚝 떨어지던 동백꽃의 산화가 생각나는 글입니다. 늙은 여인네의 따사로운 마음이 지식인의 허울을 앞섰군요.

글샘 2004-12-0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예전엔 나이가 벼슬이었고, 지혜의 표상이던 때도 있었나 봅니다. 저도 다산의 꼿꼿한 의기보다는 누추한 방이지만, 훌쩍 줄 수 있었던 마음의 넓이가 아름다웠습니다. 벌써 트리를 세우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