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입시 부정. 선후배팀, 대리시험, 학부모 주도, 학원장 주도, 브로커... 정말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제까지 무사히 넘어간 팀은 얼마나 많았겠으며,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 졸이며 올해 수능보지 않은 것을 얼마나 안도하랴.
300명의 점수가 무효화된다고 한들, 그들이 과연 어떤 아이들인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아이들이 과연 무얼 잘못했는지... 정말 이 아이들만의 잘못인지...
수능은 언어60, 수리30, 외국어50, 탐구 과목당 20, 제2외국어 30문항으로 수학 5-6문항 외에는 모두 5지선다형으로 된 시험이다. 정말정말 운이 좋아서 찍은 것이 다 답이 된다면 수학15점 정도 외엔 모두 맞출 수도 있다. 그래서 해마다 수능 치고 나면, 30-50점이 떨어진 학생과, 비슷한 폭으로 오른 학생들이 등장하게 된다. 찍어서 실력을 판가름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객관식 시험이 갖는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입시 부정도 이 찍는 제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봐야 한다. 대학 입시를 객관식 선다형으로만 치르려고 하는 것이 수능의 첫번째 구멍이다. 논술 답안을 문자로 보낼 수는 없을텐데...
수능의 두번째 허점은 수능이 1년에 1회밖에 없는 시험이란 데 있다. 그래서 한 번 모험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시험이란 잘 칠 수도 있고, 못 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처럼 대학 입학이 남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큰 나라에서 그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독관은 그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험생의 얼굴을 보는 것도 미안하다. 그 사소한 사설시험인 토익시험도 시험치기 전에 본인확인 시간이 있는데, 수백억을 들이는 국가시험에 본인확인조차 않은 것은 직무유기를 교육부에서 조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수능이 제 기능을 하려면 1년에 2,3회 쳐서 평균을 내든, 성적이 좋은 과목을 취하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탐구영역을 30분으로 제한해서 20문항 출제하다 보니깐, 1문제만 틀리면 3등급이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수능을 유지하려면 이틀 정도로 나누어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수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가 고등학교 교육을 죽인다는 점이다. 수능을 위해서 달려가야 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현실은 대외적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는 고비용 저효율(무효율)의 소모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대학은 손 대지 않고 코 풀 수 있다. 수능 점수도 국가가 제공하고, 내신성적도 고교가 제공한다. 사교육의 팽창을 두려워해 본고사를 못 보게 한다는 것은 주객전도이며 어불성설이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점은 인식하면서도 누구도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여야 하는데, 고식지계로 일관한다. 제도를 조금 뜯어고치는 걸로는 미래의 청사진을 찍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가 세계 150위 안에도 못 든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는 그 대학이 세계 150위에도 못 드는 건 문제다. 그런데, 그것은 서울대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인 것이다. 정말 좋은 학생을 보내고, 정말 좋은 교수가 정말 좋은 환경에서 가르치고 배워서 그 학생들이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내가 보기에 나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대가 민족의 대학으로 우뚝 서지 못하고, 단순한 개인적 신분 보장의 기회로 여기는 것이 문제다.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우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를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대가 모든 면에서 1위라는 것이다. 법대도, 경영대도, 의대도, 음대도... 서울대가 1위를 해야 하는 것은 농대나 공대처럼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학과이거나 인문대나 자연대처럼 학문의 깊이를 담보해야할 국책사업으로 서울대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서울대에서 경영대, 사회대, 법대, 의대, 예술대 같은 단과대는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범대의 경우는 서울시립대같은 곳으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연세대에는 경영대처럼 그 나름의 특화된 학과를 남기고 불필요한 학과들은 과감히 구조조정할 수 있을 것이고, 고려대는 법대를, 한양대는 공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문어발식 대기업 형태의 종합대학의 형태는 60년대 개발 모형에나 적합한 것이다. 이제 특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대학입시는 대학에서 주관해야 한다. 고등학교는 입시 업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충실한 운영, 그것이 고등학교의 주요 안건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토론하면서 생각을 이끌어내고, 창의성을 계발시킬 수 있는 논문이나 논술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교사가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포트폴리오를 수시모집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고, 교사의 양심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대학 입시만 중요한 게 아니고 대학은 정말 학생을 공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학가가 술집 골목으로 휘청거리게 만든 것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굴절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독서를 하고, 생각을 하며, 교류를 하고, 생활을 가질 때 비로소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인데, 제도를 조금 바꾼다고 입시 부정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사회의 너무도 많은 측면들과 연관된 입시 부정. 교육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교육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깨작거리고 아랫돌빼서 윗돌 고이는 임시방편을 이번에는 과감히 떨치고, 정말 미래가 보장되는 청사진을 교육부가 구상하고 있으면 좋겠다. 무슨 수를 쓰든 남들보다 잘 해야 하는 제도에서 양심과 창의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해면처럼 흡수력이 강하다. 섬세하게 그 환경을 꾸며줄 필요가 있는 거다.
무식하게 진급을 위해 달려갔던 자들이 외국 순방을 하고 나면 꼭 이런 말을 한다. "외국 선생들은 신분도 불안정하고(매년 계약직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처럼 툭하면 잘린다.), 월급도 우리보다 높은 수준이 아니며, 수업은 우리보다 훨씬 많다." 왜 그들은 신분이 안정적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라고 할까. 물론 우리나라 일반계 학교에 계약직으로 교원을 채용한다면, 수능 이외의 과목(예체능, 실과과목)의 교사들이 대거 교사직을 잃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다. 그게 무서워서 선택중심 교육과정이라 해 놓고도 교사를 선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월급이 많단다. 우리는 겸직 금지가 되어 있다. 나는 솔직히 돈을 좀 더 벌어야 한다. 부모님 유산 없이 한국에서 집 한 채 마련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줄 다 알지 않는가. 퇴근 후 투잡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와 우리 사회(퇴근 후에도 회식이란 연장근무가 천지인)를 비교할 순 없다. 그들은 수업 시간이 많을 뿐이지, 가르치는 학생 수는 우리보다 훨씬 적다. 그리고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교재연구를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잡무도 많고 아침 8시부터 밤10시까지 아이들을 감독해야 하는 일도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수업이란 것이 많은 부분 학생들의 연구를 보조해주는 시간으로 쓰일 수 있다. 우리처럼 문제집을 죽으라고 풀고, 수능 끝나고 나면, 산더미처럼 문제집 쓰레기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수능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제공받아서 답안을 작성하는 행위,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리고 재수생은 교육청에서 접수를 할 수 있는데 대리응시자가 그 사진으로 접수하고 응시해도 아무도 적발할 수 없다.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우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받을 정신적 고통은 제도와 국가에 대한 심각한 저항과 불신으로 남지 않을까. 작년까진 무사히 넘어갔는데, 재수없게... 하면서 말이다.
범죄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수능 부정을 일벌백계의 기회로 삼으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점을 겸허하게 수용해서 정말 새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위기 관리 능력이 철저한 나라였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 신화창조 시간에 '로만손 시계'가 나왔다. 오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서 세계적 명품의 회사가 된 로만손 시계. 그들은 철저한 연구와 시장 조사, 제품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동에 신제품을 납품한 지 1년만에 홍콩의 모조품이 들어와 위기를 맞는다. 그들은 그리스와 터키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일본의 텃밭 러시아에 러시아인들의 취향을 연구하여 아성을 무너뜨린 이야기다. 작은 신화 뒤에는 숱한 눈물과 진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위기 관리 능력이 우리 나라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