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수필 범우문고 70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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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김용준의 수필이 나온다. 두꺼비 연적을 사게 된 이야기. 김용준의 글맛이 함뿍 묻어 나오는 글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작년 수능에 김용준의 "게"가 등장했다. 김용준의 수필을 별로 읽을 기회가 없던 나로서는 언젠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그 책을 읽는다. 두꺼비 연적과 게에서 느꼈던 그의 깊이를 다른 글에서도 함빡 젖도록 느껴보고 싶었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책을 다 읽도록, 게와 두꺼비에서 읽히던 수묵화와 같은 글들은 찾기 어려웠다. 더우기, 그의 호가 근원(近園)이라, 혜원, 단원 들처럼 풍류와 멋이 깃든 이름일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원래 남의 흉내나 내는 재주 정도 부리는 원숭이에 가까운 近猿이었는데 좀 흉해서 바꿔본 거란다.


사실은 김용준의 수필이 가진 맛은 내가 기대했던 선비의 풍류와 아취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어렵던 식민지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겪어야 했던 글쟁이들의 비애, 비관, 좌절들이 그의 글에는 흠뻑 젖다 못해 땟국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김용준에 대해서 지나친 환상을 가졌다가 그를 읽고 나서 투덜거리는 것은, 마치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하고 나서 투덜거리는 것과 류가 비슷하다 하겠다.


매력적인 면이 있어서 그를 찾았다가, 그가 가진 개성은 사실 그 매력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역시 사람은 속속들이 알지 못할 때 훨씬 진한 매력이 풍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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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사놓고는 다 읽지 못했던 책입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가 봅니다.

 
닥터 노먼 베쑨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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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Dr. Norman Bethune). 1991년에 실천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그 분의 전기가 발간되었다. 새파란 나이의 나는 이 책을 밤새워 읽고 울렁이는 가슴을 잠재울 수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부터 부산시에서 독서인증인지 뭔지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라고 난리법석이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책읽을 시간을 주는 게 순서인데... 아무튼 그 계기로 우리 반 학급문고에 새로나온 예쁜 책을 꽂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독서발표대회 심사때도 이 책의 독후감을 숱하고 읽었다. 우연히 책꽂이에 얹혀 있던 이 책을 어제 집어 들고, 다시 밤 늦게 그분을 읽었다.


여전히 나에게 반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전기였다.


의사였던 그는 폐병을 앓게 되면서 흉부외과 의사로 성공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는다. 그러다 성공한 의사의 부와 극빈자들의 가난 사이에서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읽게 된다. 진실이란 종종 명백히 상충된 현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의 말처럼, 세계의 모습은 모순덩어리였던 것이다. 그는 스페인 전선으로 건너가 공화파의 편에서 파시스트와 맞서 싸운다. 세계의 모든 모순들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제국주의 일본과 기회주의 장개석과 맞서 싸우고 있는 중국 인민들에게로 날아가 국제주의자로서의 친구가 된다. 백구은 선생이 되어...(중국인들의 명명은 간혹 감탄할 만 하다. 코카콜라를 可口可樂, 입이 즐거울 만한 음료로 부르는 것들. 베쑨을 白求恩, 우리를 구하는 은혜를 베푸는 백인 의사 선생)


그는 진정 의사로서의 길을 걸었던 위인이다. 병을 고치는 작은 의사, 환자를 고치는 중간 의사가 아닌, 사회를 고치는 진정 큰 의사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정지해 있는 의사가 아니었다. 늘 질병과 의술 도구를 연구하는 연구자요, 화가요, 과학자요, 몽상가이며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한 사상가였던 그는 죽음의 현장에서 비로소 삶을 이끌어내는 신의 분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그는 지도자의 요건으로 조직력, 지도록, 감독력을 꼽았다. 전체와 세부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키고 지도하며, 계획의 진행을 끊임없이 검토, 시정, 실천에 의한 이론의 수정이 그 내용이며, 지도자는 오로지 일, 일, 일에 투철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의 노예가 되어 산다는 것은 지도자 이전의 비인간적인 행위로 지탄받을 만 하지만, 전시의 그의 삶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투철함이라 하겠다.


그는 유서에서 유감스럽게도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분처럼 세계의 움직임을 정확히 간파했던 이가 마흔 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뜬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명분은 '국가의 영예를 위한 전쟁'이지만, 속내는 원료와 시장, 이윤이란 것을 명확히 하였다. 지금도 가진자들은 테러와의 전쟁, 폭력과의 전쟁이란 미명으로 침략전쟁, 식민지정복전쟁,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장 유망한 프랜차이즈는 전쟁인 것이다. 그들은 교환보다는 절도가 더 값싸며, 구입보다는 학살이 더 수월함을 알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친절하고 사려깊어 보이는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이윤이 축소되기만 하면 무자비해지고, 야수적이 되며 망나니처럼 무정한 사람으로 변해 버린다. 그들이 살아있는 한, 이 세상에는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 그들이 바로 부상을 입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악의 축, 미국을 본다면 적확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는 단순한 의사의 차원을 넘어선 성인의 도를 실천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소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도를 이룰 수 있고, 개신교의 가르침처럼 너를 버리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정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그의 다음 말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은 커다란 능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無私(무사)정신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모두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던지는 중요한 인간, 완전한 인간, 덕있는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진정 큰 의사였고, 큰 스승이었다. 그의 삶을 늘 반추하며 삶의 전류가 끊어진 채 살지 않으려는 각오로 몇 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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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12-01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친구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님의 리뷰를 보니 그 때의 감동이 떠올라지네요..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04-12-01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책은 정말 두꺼운데도 단숨에 읽히는 책이에요. 그만큼 감동적이기 때문일겁니다. 근데, 이 시각에도 안주무시네요^^

책읽어주는보아스 2018-11-1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금번에 읽겠습니다. 좋은 글로 읽고 생각하도록 자극받고 갑니다.
 
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
티피 드그레 지음, 백선희 옮김, 실비 드그레, 알랭 드그레 사진 / 이레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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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이다. 고등학교 때, 어느 선생님께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고등학생이 해서는 안될 짓이다고 역설하신 후로 텔레비전을 자의 1/1000, 타의 999/1000 정도로 멀리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주초고사를 준비하노라면, 그 시대의 무료 문화 감상 기회인 주말의 명화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그렇지만 주초고사를 새벽에 준비할 각오하고 보았던 명화들도 간혹 있었다.


자취하던 시절에도 텔레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내 친구는 에프엠 정도였다. 요즘에도 텔레비전을 보는 기회는 별로 없지만,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은 늘 내 시선을 끈다. 그 이유가 뭔지... 이 책을 보면서 우연히 떠올릴 기회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어린이 대공원의 동물원에 근무하시는 김정만 아저씨(이제 할아버지가 되셨을)가 동물의 속성에 대해서 설명하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타잔에서 보여주던 그 야생은 바로 우리 혈액 속에 흐르는 뜨거운 헤모글로빈의 본능이 아닐까? 그 붉은 색의 철분 성분이 함유하고 있는 비린내의 본능과 따스하고 보드라운 털의 모성 회귀 의식이랄까. 뭐, 말을 붙여 보자니 그렇다는 거지, 뾰족한 이유 없이 동물의 왕국은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책, 티피이야기는 사진만으로도 재미있다. 난 이 책을 서점에 서서 열 번은 읽은 것 같다. 볼 때마다 신선하고 따스한 사진들이 정답다. 이제 티피와 난 잘 아는 사이 같다. 마치 티피가 코끼리와 친구인 것처럼.


아프리카의 부드러운 칼라하리 사막에서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옮긴 것도 힘겨워 했을 티피가 딱딱한 바위의 도시 빠리에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기사자 무파사 입에 손가락을 물리기도 하고, 타조를 타기도 하는 야생의 소녀, 티피...


덕분에 동물의 왕국을 잘 봤다. 물론 영화배우인 코끼리와 연출가인 아빠의 인위도 작용했겠지만, 왕뱀, 치타, 카멜레온과 친구가 된 항온동물 티피의 나체는 내가 볼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누드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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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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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읽고싶지 않았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고,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울궈먹기 판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에서이다.


어제도 이 책을 읽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들이 서점에서 책을 다 읽기를 기다리며, 그림책을 하나 주워 들고 한참을 읽었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싫은데 읽을 것이 없었다. 목전의 서가에 유태인의 교육철학 등등이 있었는데 이 책이 꽂혀있기에 별 생각 없이 뽑아 들었다가 내친김에 끝까지 읽고 말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음... 역시다. 이 글의 작가는 남자다. 그것도 애정결핍을 많이 겪어본 남자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성에서 온 남자는 이성적이고, 금성에서 온 여자는 감성적이라는 편파적인 주장을 이토록 이분적으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공감가는 부분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 문제를 안고 동굴로 들어가려 하고, 혼자서 끌어안고 술을 마시고 다닐 때, 여자들은 전화통을 붙들고 수다를 떤다. 이런 현상적인 면은 그가 날카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는 면을 보여주긴 한다.


정작 나의 불만은, 그가 남자들을 화성에서 온 냉철한 이성적 존재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미의 여신 비너스처럼 따스하고 감성적인 존재라는 것이고. 남성과 여성이 다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남성도 여성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고, 여성도 남성적인 이성을 가질 수 있다. 너무 차이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영업사원이 익혀야 할 미덕이기는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버려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여성은 관심을 끌려하고, 이해받기 원하며, 존중받고 싶어하고, 헌신하고 싶어하며, 공감받기 원하고, 재확인하고 싶어한다. 이에 반해 남성은 신뢰를 중시하며, 인정받고 싶어하고, 감사받기 원하며, 찬미되길 추구하고, 찬성에 기뻐하고 격려에 힘이 생긴단다. 그럼, 남성은 관심이 없어도 무관하고, 이해받지 않아도 되나? 존중받을 필요 없고, 헌신하는 남자 없다? 공감은 필요없고, 재확인하는 건 여자같이 쫀쫀한 짓이다? 그 반대도 난 불만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딴지를 거는 것은, 그를 오해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분적인 사고 방식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까 우려해서이다. 인간은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복합적 존재이다. 어떤 속성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금세 다른 면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속성을 바꾸긴 어렵다고 하더라도, 남자는 여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환원론적 입장을 펼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쌈빡할 지 몰라도, 남녀관계에는 별로 도움이 될는지 의문이다.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보면, 그의 이분법적 논리 전개가 그의 생각의 일부분임을 이야기하는 듯하기도 하다. "감정은 빙산과 같다. 우리는 대가 아주 작은 조각만을 인식하지만, 나머지 거대한 부분은 물 속에 잠겨 있다."고. 남자의 모습과 여자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달라 보인다. 행동 양식도 달라 보이고, 말투도 상당히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 인간의 거대한 부분은 잠겨있어 알기 어렵다.


그의 책이 도움이 되는 유일한 경우는, 대화는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지만, 언쟁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울리는 경우에만 이런 이론들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난 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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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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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은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인데, 전체를 읽기는 처음이다. 하긴 전체라고 해도, 십분 정도면 모두 읽을 수 있다. 그 뒤의 설명, 부연들은 장 지오노의 원작을 이해하기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힘은, 그가 나무를 심었다는 것(친환경적)과, 그는 철저히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한 사람이라는 것(민중적), 그리고 자신이 이룩한 일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철학적) 같은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데서 우러나는 힘이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라도, 우리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상당히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학습된 것을 정답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正), 어느 날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불현듯 깨닫고 이제까지의 정답을 부인할 수도 있다(反). 이 正과 反의 변증법적 통일체로서의 인간, 合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한 반환경적 조건과, 이런 환경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숱한 국가적, 집단적 음모들, 여기에 맞서야 할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이야기처럼 간단히 보여주는 글도 없다. 여기에 이 글의 환경 소설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난 이 글을 읽으면서, 교사로서의 나, 선생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 아무 사심없이 매일 열 개씩의 정갈한 도토리를 심고 있었던가. 그 도토리들이 간혹은 말라 죽고, 상하기도 하겠지만, 매일매일 성실하게 도토리를 심는 자세로 아이들 곁에서 살고 있었던가. 위에서는 어떤 허투른 짓을 해서 학교를 휘두르더라도, 늘 평상심을 잊지 않고 오늘도 열 그루의 나무 묘목을 옮기는 교사였던가. 그리고 내가 해냈던 것은 잊고, 할 일만 성실하게 해 낼 수 있는 그런 선생이었던가... 아이들이 숲이 되고, 산 속의 메아리로 살아갈 만큼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산새가 되고, 시냇물이 되어 살고 있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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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1-0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책보다 바디오가 더더 멋있답니다. 으뜸과 버금에서 판매하는데 전 그 비디오 보고 며칠을 두고 두고 생각했답니다. 참 멋진 그림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