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풀의 사랑 - 어른들을 위한 동화
곽재구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낙타풀은 아주 보잘것 없는 풀이다. 사막에서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어 잎사귀도 가시로만 남아 버린 못난 풀인데, 낙타는 이것조차도 없어 입안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면서도 뜯어먹는다는 풀.

곽재구 시인은 낮은 것들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적어 주신 분은 소설가 임철우이다. 내가 대학 시절 제일 좋아했던 임철우와 곽재구. 이 커플은 사평역에서 만난다. 서로 마음이 되고 몸뚱이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 따사로운 톱밥 난로와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

어른을 위한 동화가 한창 나오던 때가 있었다. 80년대 시와 소설의 시대가 지나고, 90년대 시가 잠자던 시기, 시인들은 너도나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철학적인 듯, 몽환적이고, 감동적인 듯, 감상적이었던 책들이었다. 80년대에 울리던 마음의 거문고 줄을 여전히 기억하는 세대는 그 작가의 이름들에 현혹되어 동화들을 읽었다. 그러나, 동화도 아니고 풍자문학도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철학적이지는 못했던 많은 작품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슬픈 시대를 표상하는 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곽재구가 포구 기행을 너머, 세계로 발을 딛었다. 이 동화의 배경은 사막과 불모지... 이런 것들이 꽤 된다. 사평역이 아주 작은 간이역이듯, 사마르칸트, 티벳 같은 마을들도 또다른 사평역에 다름아니다. 그곳에는 낙타풀들이 살고, 여전히 사과 한 광주리 안고 귀향하는 초라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고, 단풍처럼 스쳐 지나가는 차창을 달고, 보잘 것 없는 삶들이 피고 진다. 마치 낙타풀 같은 존재들이, 존재의 이유도 모른채...

동화로서 성공하려면, 우선 몇 가지 요소가 성공적으로 엉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것이 주제와 소재의 조응이다. 표현은 나중의 문제라고 본다. 이솝의 우화들이 수천 년을 넘어 생명력을 더하고 있는 것은 적절할 주제들이 적절한 소재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동화들은 끈적거리지 않는다. 주제의식은 소재들과 유리되어있기 쉽다. 어찌 보면 수피즘식 억지를 부리는 듯도 하다.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들이 많이 녹아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수필도 아닌 동화라는 장르에선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화의 또 하나의 성공 요소는 이야기의 전파력이다. 동화를 읽고 다른 이에게 이 이야기를 안 해주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어야 성공하는 동화일 것이다.

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적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이 리뷰들은 나의 독서일기이기에 몇 자 적기로 한 거다. 곽재구가 기행이나 동화를 쓰지 말고, 다시 그 정신으로 처절한 시들을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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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시가 되어 간다. 기도도 한 시간 가량 한 것 같구나. 내가 교회 다니는 사람도 아니니, 이 기도는 우리를 있게하신, 그분께 간절히 드리는 말씀이다.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한 부처인데, 특별히 어떤 대상에게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다만, 너희가 무명의 어둠에서 눈을 감은 부처들로 보이는 어리석은 선생님이 노파심에서 올리는 기도인 만큼, 너희의 눈을 번쩍 뜨고, 혜안을 밝혀 시험을 잘 치고, 잘 마무리하자는 의도에서 바치는 기도이다.

심바를 찾으러 갈 선아공주, 날라.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지. 이제 내일 선생님을 못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더라도, 씩 웃으면서, 잡념은 툭 털어버리고 시험에 몰두할 수 있길 바란다. 좋은 성적 거둬 와서 꼭 부모님 바라시는 국립대 입학의 꿈을 이루길...

우리 반의 마스코트 또치. 친구들이 장난쳐 대도 늘 언니처럼 받아주고, 지현이와 함께 꾸준히 자리를 지키던 믿음직한 친구. 수능에선 본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수시에 붙은 부산대, 성신여대 툭 차버리고 교대로 진학해서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끼다란 키의 너구리.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전통문화학교 붙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혹시 모르니, 수능에서 정말 좋은 성적 얻어 오길 바란다. 혜진이처럼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역사 선생님이 된다면, 선생님도 든든한 후배겸 제자겸, 동료가 될 것이다.

단단해 보이면서도 제일 마음이 여린 수민이. 영계댁 계속 유지하려면 좋은 점수 얻어서 원하는 대학 가야 한단다. 요즘 영계들은 시원찮은 암탉들은 쳐다도 보지 않잖아. 마음이 많이 힘들었겠지만, 오늘 시험은 정말 운이 따르고, 실력껏 치는 시험이 되길 바랄게.

우리 반에서 가장 뿌리가 튼튼한 어린이, 조지. 지현이가 선생님을 바라볼 때면, '난 저런 선생님이 안 돼야지.'하는 부정적 타자로서의 내가 아닌가, 뜨끔하다. 지현이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성적도 한창 물이 오르고 있으니, 든든하다. 아무 걱정이 없다.

남학생들이 가장 좋아할 분위기, 이슬이. 실력에 비해서 성적이 따라주지 않았던 3학년 생활을 비웃는다는 듯이 하늘을 찌를 듯한 점수를 받아오기 바란다. 서강대 신방과 정도는 가지 말까 고민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아닐까? 화이팅!!

머리를 잘 쓸어 넘기는 나발이. 별명과는 딴판으로 나발 대신 첼로를 공부하는 멋쟁이. 장한나처럼 이맛살 찌푸리고 검은 드레스 입고, 현을 켜는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높이 따올 수 있는 만큼 따오기 바란다. 긴장하지 않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장난끼 많고, 친구 좋아하고, 아토피 싫어하는 코미나. 아파서 한 해가 힘들었지만, 선생님은 미나가 우리반이어서 좋았다. 재수없는 생각 말고, 올해 대학 갈 수 있도록, 네 실력을 막강하게 발휘하기 바란다. 능력시험은 능력 있는 어린이가 잘 친다는 명언을 잊지 말고...

자연반에서 넘어온 귀여운 혜원이. 친구들이 혜원이 아플 때나 웃을 때는 귀엽다고 하지만, 이젠 당당하게 무시무시한 성적을 얻어와서 친구들 콧대를 팍 꺾어 주기 바란다. 책상과 책 표지에 네가 제발 2등급 나와 줘야 내가 가고 싶어하는 학교 가지... 하던 기도가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반의 마지막 타자, 광. 역시 光이 동양에선 최고다. 수능 잘 치라고 화투패의 광을 주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 숨은 실력자는 최후의 순간에 비밀 병기를 동원해서 성공을 이루는 법이다. 맨 처음에 비밀 병기를 쓰면 재미없잖아. 자, 이제 오늘은 비밀 병기, 개봉 박두!!!

너희 서른 다섯(시험 치는 놈은 서른 여섯) 딸들에게 석 줄씩만 기도를 올려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구나. 내일도 종일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심정이 되어 선생님도 빌어줄게. 부디, 잘 보고, 잘 풀고, 잘 찍고, 잘 치르고 고사장 정문을 홀가분하게 나오기 바란다.

그리고 오랜만에 허탈한 마음을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달래 보기 바란다. 선생님은 다시 너희를 날려 보낼 준비를 하며, 너희 앞날에 푸른 하늘, 맑은 날씨만 펼쳐져 있기를 빌며 한 해를 마무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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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우리 딸들을 생각한다. 이제 내일이 아니라 오늘 아침으로 다가온 시험.-.-;;;

달려라 가쇼. 땡그란 동그라미 얼굴도 잘 그리는 모범생 가쇼. 선생님이 준 모범상장이 온 집안의 가보가 되었겠지? 선생님이 올해 가장 잘 만난 제자 중 하나인 만큼, 가쇼는 지난 모의고사만큼만 받아 오렴. 씩씩한 마음과 꾸준한 자세가, 가쇼의 장난이 아닌 점수를 예고한다.

예쁜 얼굴에 간혹 터프한 연기 대상 후보, 영자. 연기할 때 보면 금세 새새덕거리고 장난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한 맹인 연기를 보여주었지. 영자의 연기를 돋보이게 해 줄 좋은 대학을 골라 가자꾸나. 최선을 다하고, 영자의 총명한 머리를 확실히 보여주길...

우리반 반장님, 스위트미네. 감수성이 예민해서 쉽게 흔들리기도 하지만, 독하게 마음먹으면 해내고야 마는 네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바란다. 3학년 와서 쑥쑥 나와주지 않던 모의고사 점순 다 잊고, 오직 하나만 기억하자. 실전에 강한 것이 나의 주특기다.!!!

곱상한 소녀파, 공부쟁이 양지. 큰 소리로 웃는 것도 별로 못 봤을 정도로 고개 숙이고 땀흘린 보람이 오늘이면 나타날 거야. 양지가 흘린 땀들은 벌써 공기중에 가득 찼단다. 오늘 시험 무지무지 잘 보고, 양지가 헷갈려서 찍는 건 전부 정답이길... 음지는 가고, 양지의 시대가 온다.

정말 열심히 일 년을 살아온 혜란. 속상해서 울기도 많이 했지만, 혜란이의 눈물과 노력은 헛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혜란이의 세포 하나 하나에 살아서 앞으로 살아가는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하느님은 스스로 도운 혜란이를 가상히 여겨 꼭 도와주실 것이다.

엽기 선생님의 엽기 제자, 뻥, 봉애. 긴장하지 않기가 주특기인 뻥애는 3학년 내내 가장 탁월한 끈기를 보여준 친구였다. 선생님이 작년에 병문안 간 걸 기억해서라도 반드시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뻥애네 노래방에 우리 반 단체로 가려면, 꼭 좋은 점수 받아와야 해!!

이미 대학에 갔지만 돈이 아까워서 수능을 쳐보겠다는 하이바. 칠지 안 칠지는 모르지만, 이미 입학이 확정된 만큼,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기회가 되었길 바래.

딴 딴따단. 딴 딴따단. 손잡고 결혼행진곡을 부르며 다니는 불륜(?)의 사제지간, 햇님. 햇님이가 좋은 대학 못 가면 선생님이 마음 아플거야. 튼튼한 몸과 마음에 걸맞게 좋은 성적을 얻어 오길 바란다. 시험만 잘 쳐 오면 햇님이 소원대로 100번도 더 놀아줄게.

배달의 민족, 배달의 기수, 사자머리 임쏘. '수능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는 명언처럼 수능보다 인생이 중요함을 아는 간뎅이로, 수능 정도야 간단하게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최고 약점인 영어를 찍는대로 다 맞추는 기염을 토하길... 영어 잘하는 애 옆에 앉아서 듣기라도 잘 베끼길...ㅜㅠ;;(이상한 선생님의 기도)

사슴같은 눈을 한, 사슴같이 기다란 새다리 유리. 요즘 친구들과 좀 틀어져서 힘들었을 것이다. 비록 유학 준비로 바쁘더라도, 그리고 수능 성적이 별 필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기 바래. 한예종 시험도 잘 준비하고...

우리 반에서 글씨가 제일 예뻐서 복도에서 단어장을 주워도 글씨체만 보고도 찾아줄 수 있는 깔끔이 혜림공주. 늘 웃고 너그럽게 마음쓰는 따쓰함이 수능 성적도 따뜻하게 데워서 올려 주길... 친구들이 대학 합격하면 같이 눈물 흘리며 기뻐하던 아름다운 마음에 하느님도 감동하실듯...

이과반에서 문과로 옮겨서 사회탐구가 조금 낯설었을 혜림이. 사관생도가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시험엔 운이 없었지. 그래도 요즘 성적이 날로 오르고 있으니, 이 추세라면 어떤 점수가 나올지 선생님도 예측이 어려운 친구. 기대해 보겠어.

인어공주 같은 머리에 인어공주만큼 눈물 많은 근영이. 수시 2학기에 면접도 잘 봤으니, 긴장하지 말고 차근차근 풀고 오기 바래. 친구들이 합격해서 울어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근영이가 합격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좋은 점수 얻어 오시라.

자, 다음 마지막 열 명의 딸들에겐, 잠시 후에 기도를... 너무 한꺼번에 빌면, 하느님도 천지신명도 오늘 밤엔 암기 사항이 너무 많으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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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달 반 동안 심한 멀미를 하며 같이 항해해 온 서른 다섯 딸들아. 다섯 명의 딸들은 이미 항구에 안착해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고... 이제 내일이면 너희가 1년간 준비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여덟시간 정도 남았구나. 너희의 배를 지휘한 선장으로서, 너희를 바라보면 많은 회한을 삼킬 수밖에 없다. 늘 그렇지만, 지나놓고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려니 한다.

배멀미가 특히 심했던 녀석들도 내일만은 좀 편안히 시험치르길 간절히 바란다. 시험치기 전날, 너희에게 무슨 말이든 해 주고 싶었지만, 너희에게 무슨 말이 격려가 되겠느냐. 무슨 말이 귀에 들어 오겠느냐. 어차피 흔들리는 배 안에서 배의 움직임과 함께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전쟁같은 항해임에랴.

수능만 마치면... 하는 생각 많이 해 보았으리라. 어떤 앙케이트에서 시험을 마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푹 쉬는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걸 보았다. 푹 쉬어라. 쉬어야 하리라.

그러나, 내 딸들아, 더 중요한 것은 수능이란 건, 아주 작은 항구의 하나일 뿐, 그것이 우리 항해의 목표는 아니란 걸 인식해 주기 바란다. 너희가 고등학교 3년을 흔들리는 뱃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내일 저녁 항구에 도착해서 뭍에 잠시 내리면 육지 멀미도 심할 것이다. 배를 오래 타다보면, 육지에서 멀미를 한다. 허탈하고 허전하고, 무엇을 위해 이 젊은 날들을 헤매었던지... 눈물도 흐를지 모른다.

이제 여덟시간 뒤면 차근차근 시험지가 너희에게로 간다. 아직 너희들 중 스무 명은 잠자리에서 뒤채이고 누웠으리라.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선생님 말대로 열 시엔 이불 속에 누웠겠지. 그리고 조금 피곤해도 낮잠자지 않고 공부했으리라. 그렇다고 쉽게 잠들지 않고, 자다깨고 몇 번 뒤척이다보면 다섯 시가 오고, 여섯 시가 오겠지.

너희 서른 다섯 이름을 생각하면 나도 오늘은 잠을 쉽사리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귀엽고 곰살맞은 율동이 어울리는 샛별공주, 그 앙징맞은 표정과 익살에 알맞게 귀여운 그림들도 잘 그리던 공주님. 시험 잘 봐서 캐릭터디자인 계통의 학과로 진학하길 바란다. 하이바와 또치 그림은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우리 반에 드문 소녀표, 노부랭이. 누군가는 메기라고 놀리지만, 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시험도 잘 치고 올 거다. 디자인 공부하랴, 시험준비하랴 바빴는데, 이제 그림만 그리면 좋겠다. 김밥은 여전히 많이 사먹어야 하겠지만.

부잣집 맏며느리감(너희들은 싫어할 말이지만) 스타일의 미희,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촐싹거리지 않는 든든함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심리학 계통 공부도 좋겠고, 미희라면 공무원시험이나 고시 준비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날개를 얻기 바란다.

내가 늘 예쁘다는 어트랙터, 끌개 두뽀. 두고 보면 선생님이 끌개라고 한 이유를 알 날이 올 거다. 두뽀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조금 게으른 적도 있었지만, 요즘 긴장해서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바란다. 오답노트 만든 것이 모두 출제되기를...

늘 말이 없이, 얼굴과 노트가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민정이. 처음에는 자는 줄 알고 깨운 적도 많았지. 든든한 미희와 함께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민정이는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어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학년 와서 상당히 성숙(?)한 듯한 수바. 일본어를 차근차근 공부할 수 있으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겠지. 수능을 통해서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되도록 좋은 성적 얻어오길 빈다. 선생님이 햇님이의 질투를 극복하고 태워준 덕을 갚으려면 잘 치는 길이 수다.

본성과 다르게 부끄런 웃음을 웃는 수영이. 늘 웃는 모습처럼 긴장할 것 하나도 없이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차근차근 풀 수 있을 것이다. 잘 치고 와서 원하던 한양대에도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기 바란다. 네가 바라는 점수만큼 좋은 결과 있기를...

강직하고 감성적인 미녀, 이은공주.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하느님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수능정도의 시련은 가뿐하게 이겨낼 지혜는 이은공주가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막판의 독서실 실력을 실제 점수로 이은 공주가 되길 바란다.

조용하다가도 간혹 터프한 두식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한 것이 좋은 결과를 얻게 할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부는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지? 친구들 모두모두 기원하고 있는 좋은 점수 얻을 수 있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길...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문희. 언제나 멀뚱한 얼굴로 '응'하면서 재미난 표정을 하던 그 여유로움과, 칠판에 붙어 있는 어떤 분필 가루도 한 획의 지우개의 압박으로 퇴치하던 팔힘을 과시하여 튼튼한 점수를 얻어 오길 바랄게. 잘 치고 체크무늬 스카프 엎어쓰고 푹 자렴.

우리 반에 드문 또하나의 소녀표, 박수. 요즘 눈이 퉁퉁 붓도록 열심히 하는 만큼 모의고사 성적은 안올라서 기운이 떨어져 보였는데, 내일만은 박수의 평소 모습을 되찾아서 의욕적으로 문제와 싸워 승리해 돌아오기 바란다. 즐거운 뻥애의 삐삐머리가 되기 위해서...

새침데기 쌍둥이 재희. 마음도 몸도 따라주지 않아서 마지막엔 조금 힘들었지? 수시 2학기도 아직 불투명한 상태고 말야. 까짓거, 수능대박으로 재연이랑 같이 즐거운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잖아. 정시에도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시험 잘 치고 오길 바랄게.

요즘 공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는지, 얼굴이 달뎅이가 된 토끼님. 3학년 들어 꾸준히 오르는 성적이 이번 수능에선 깜짝 놀랄 정도로 깡충깡충 뛰어 오르면 좋겠다. 점수가 좋아야 미술도 더 잘 되지 않겠니? 뒷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높이 한 번 뛰어 올라 보렴.

아, 14번 토끼까지 빌다보니 시간이 꽤 됐군. 가쇼군부텀은 좀있다 다시 빌게. 모두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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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 천천히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책
풍경소리 글, 정병례 전각 / 샘터사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얄팍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글자가 적은 책을 읽고 싶었다. 한 페이지 읽고, 가슴에 책을 얹고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책을 만났다. 천천히 나를 들여다 보게 되는 책, <풍경 소리>

말하지 않으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도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수없이 뇌까려야 하고, 너 없으면 못산다고 말로 주절거려야 하는 이 "빠롤(실현된 발화)"의 시대에, 이 책은 말하지 않아도 거기에 그렇게 있는 것들, 있어왔던 것들을 이야기한다.

샘터 같은 책들에 간결하게 실렸던 글들인 듯, 특별한 주제의식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실어 두었는데,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아이들이 12년간 학교를 다닌 것을 불과 언어60문항, 수리30문항, 영어 50문항, 사회/과학 80문항의 220문항으로 판가름 한다는 것이 언어도단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아파 한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다고 한다. 아이들이 아픈 이유는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배를 타면 배멀미를 하듯이. 배멀미는 파도치는 대로 흔들리는 배와 흔들리지 않으려는 몸의 관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뱃사람들은 멀미를 하지 않는다. 뱃사람들의 전정기관에는 파도치는 대로 흔들리는 배와 같은 리듬의 움직임을 느끼고 예정대로 흔들 수 있음에. 그들은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육지에 다다르면 멀미를 한다고 한다. 수험생은 온 몸이 밥이 되어 밥을 먹는 정신으로 시험과 하나가 되어야 아프지 않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 저녁이 되면, 60만 이상의 수험생은 이제 겨우 적응된 바닷생활에서 뭍으로 내려오게 된다. 육지멀미. 이것은 또 얼마나 심할 것인가.

최선을 다해 온, 우리반 서른 다섯 명의 수험생들이 내일 아침, 모두 좋은 결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뜻한 것보다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반 간뎅이 큰 IMSSO말대로 '수능은 내 인생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지녔기 바란다. 내일 아침 고사장 앞에서 아이들 손이나마 잡아주고 나면 조용한 절에라도 가서 서른 다섯 이름을 되뇌며 그들의 마음에 안정이 깃들기를 기도해야 하리라.

원효 스님의 말씀 중, 옷을 짓는 데는 작은 바늘이 필요한 것이니, 비로 기다란 창이 있어도 소용이 없고, 비를 피할 때에도 작은 우산 하나면 충분한 것이니 하늘이 드넓다 하더라도 따로 큰 것을 구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작고 하찮다 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지니 그 타고난 바와 생김생김에 따라 모두가 다 값진 보배가 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이다. 간혹 나더러 당신은 왜 선생님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모두가 다 값진 보배가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답할 수 있다. 나의 쓰임이 선생님이라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바친다. 이것이 성패의 갈림길이다. 중요한 것은, 온 힘을 바친다는 것이다. 세상의 오욕에 나부끼지 말고, 온 몸이 바위가 되어 온 몸을 바쳐야 사소한 하나라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더럽고, 불공평하다고 투덜댈 것 없다.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수레를 탓해야 하는가, 소를 다그쳐야 하는가. 내 몸을 바쳐 내 마음을 다그쳐야 탁한 세상에 앞으로 나아갈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가 부처냐고 묻는 물음에,

"부드러운 사람이 부처지"

어떤 것이 부드러움이냐고 재차 물으니,

"여유롭고 한가하면서도 고요하고 섬세한 것, 서걱거리는 것이 완전히 제거되어 자연스러움 그 자체인 것, 원만하고 원융한 그것이 부드러움"이라는 가르침은 골수에 새겨두고 반추해야할 화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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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1-1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힘을 바쳐야 한다..나는 너무 게으르게 살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글샘 2004-11-2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둥아리만 살아서 적어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작 온 힘을 바쳐야 할 때, 세상이 너무 슬퍼서 아이들을 외면하고, 저를 다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수레가 나아가지 않는 현실에서 수레를 탓하지 말고, 소를 다그쳐야 할 때입니다. 내 온 몸을 바쳐 다그쳐야 할 때입니다. 진심을 모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