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
김종근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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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때던가 봤던 달리의 '시간의 영속성'이란 그림이었다. 자신을 천재로 알다 간 미술가 달리의 삶을 잘 조명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1부는 아버지의 시각으로 어린 시절을, 2부는 달리의 시각으로 그의 삶과 갈라와의 만남, 그리고 예술 정신을, 3부는 비평가의 시각으로 달리를 분석하고 있다.

부산 BEXCO에서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100주년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전시회가 있었다. 달리의 브론즈들이 먼저 나를 맞았다. 나는 이런 전시회가 싫다.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조각이나 그림들, 그리고 나를 조롱하는 듯한 달리의 시선이 구석구석 숨어서 관음증을 즐기고 있고, 사람들은 달리를 좋아한다, 존경한다는 메모지들을 수두룩하게 붙여 둔다.

쉬르리얼리즘의 중심에서 회화와 조각, 의상 디자인까지 그의 현실을 초월한 감각은 프로이트의 전령이 되어 상업주의와 연을 맺는다. 이 책을 읽는다고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초월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달리의 그림들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한 것, 그리고 갈라와의 사랑에 관한 부분은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자체가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들 달리를 친숙하게 느끼기는 어렵다. 달리를 읽고, 그의 작품들을 보았지만, 왠지 그 자신이 세상의 배꼽이라는 공언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로 시작하는 이상의 날개가 품은 허언으로 들려 씁쓸하다.

뭔가 이해할 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소리지르고 싶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고. 그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그리고 벡스코의 멋드러진 초현대식 외관과 대조적으로 추하게 드러난 전시장 바닥은 손님이 왕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손님을 조롱하는 행태로 밖에 볼 수 없었다.

 

2.24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리의 그림, 환각제적 투우사.

그런데, 이런 좋은 그림들은 전시회장에 하나도 없었다. 불쾌한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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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2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평단문화사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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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자전거 여행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가 온 몸으로 느낀 것을 깎은 듯한 문장력으로 조각한 글이었기 때문에. 그의 칼의 노래를 읽었을 땐 실망이었다. 소설가로서는 뭔지 1%쯤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딱 보는 순간, 아, 이거 지겹지만 밥벌려고 엮은 책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억지로 다 읽은 지금은 내 처음 느낌이 옳았다는 데 감탄한다. 이 책은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서 일단 페이지를 억지로 늘인 느낌이고, 허접한 글들에 비해 종이 질이 너무 고급이다. 이런 책은 십중팔구 내용보다는 형식을 앞세우고, 작가의 유명세를 앞세워 밥벌이로 엮은 책일 공산이 크다는 게 내 경험이다.

김훈의 미덕이라면, 문장이 아름답다는 것 말고, 그의 <편애>와 <솔직>에 있다. 그는 싫은 것을 싫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보편 타당한 것에 마음 쓰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편애>하는 작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밥벌이의 지겨움'은 이 책을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솔직한 심정으로 이해해 주자.

그의 편애는 참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아날로그에 대한 편애. 아직도 연필로 쓰기 지우개로 지우며 글을 온몸으로 밀어나가며 만드는 연필에 대한 편애. 그의 날카로운 눈에는 연일 계속되는 시위 속에서도 평화로운 점심시간의 시위대의 도시락, 번을 갈면서 먹어야 하는 전경들의 식판, 그리고 배달해 먹는 기자들의 짬뽕 속에서 자기 목구멍으로 넘어가야 하는 밥의 처절한 정직성을 읽어낸다. 그리고 아무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보다 오래살아 그의 가는 모습을 바래다 주고 싶다는 대목도 공감할 만하다.

그의 자연인으로서의 면모는 자전거 여행에서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번에서도 고형렬의 글에 대한 독후감은 괜찮았다. '연어들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몸을 준 몸을 서로 마주보지 못한다. 이 끝없는 생명의 반복인 무명과 보시는 인연이고 그 인연은 세상의 찬란한 허상이다.'고 쓴 고형렬의 글에서는 눈물이 나려 할 만큼 생명의 본질을 꿰고 있었다. 김훈을 통해서 이런 글을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라파엘의 집에 대하여 인사동의 지식인이 보여주는 양면성도 경쾌하고 신랄하다.

그러나 여러 지면에 마구 뒤섞인 글들을 엮어내다 보니, 제법 찮은 표현인데도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것들은 짜증스럽게 했다. 일관된 흐름이 없이 감상적인 글, 사색적인 글, 시사적인 글 들이 뒤섞인 것은, 마치 현대 화가가 페인트를 온 몸으로 뒤범벅을 하면서 퍼포먼스라고 깝죽대는 꼬락서니를 보는 듯한 불쾌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니 내 독서 경향이나 독서 일기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것이 내 글들을 책으로 묶지 못하는 이유가 되겠지.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어 준 것은 김훈이란 이름에 대한 예우였다고 할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꽤 괜찮은 표현이 하나 둘 나올 것이라는 기대로... 밥벌이의 구차함이니까 좀더 관대해져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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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1-12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달아놓으신 제목도 만만치 않고 마지막 맺으신 결론도(밥벌이의 구차함이니까 좀더 관대해져 볼까나.) 만만치 않군요. ^^ 저도 이 책은 좀 별로였어요.

글샘 2004-11-2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과격했지요? ^^ 저도 김훈을 나름대로 좋게 평가했는데... 이 책은 정말 관대하게 읽은 책이랍니다. 반가워요.^^
 
증기기관차 미카 어른을 위한 동화 13
안도현 글, 최성환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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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이란 이름을 믿고 읽어봤는데, 지나치게 많은 <생각>들을 우겨넣으려 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 형식 말고, 그저 간명한 시로 쓰거나, 수필로 썼더라면 그 생각들을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을.

할아버지와 증기기관차 미카 사이의 교감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속도의 배신이다. 현대는 속도를 가져다 준 만큼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속도는 약탈을 불러오고, 속도는 왕따를 불러오고, 속도는 이기심을 발동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빨리빨리 '느림'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빨리 달리면서 볼 수 없는 것들을 천천히 가면서는 보고 빙긋이 웃게 된다. 자동차를 타는 것 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세상을 보기에 좋고, 자전거보다는 걷는 것이 세상 구경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빨리빨리 살지 않으면 쉬이 직장에서 '짤리고 마는' 불행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산다는 게 내가 나를 이끄는 것이어야 하지만, 속도가 붙은 삶은 삶이 나를 끌고 다닌다.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 버리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공허함만이 가슴을 칠 뿐. 증기기관차에서 까먹던 삶은 계란은 추억을 환기한다. 한겹씩 벗길수록 생생하게 살아나는 추억의 맛을 이끌어 주는 삶은 계란.

서로 그리워하면서 나란히 갈 수밖에 없는 철길을 보며, 기억이 가물가물하는 경의선 정거장들의 이름을 되뇌어보는 할아버지와 미카는 통일의 미래를 기다리며 같이 깊은 잠이 든다.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므로, 할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서 조용히 녹이 슬어 가는 일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미카와 함께 편안한 잠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힘이 세다고, 스스로 힘이 세다고 떠벌이는 사람들은 조용히 녹이 슬어가는 일의 아름다움 따윈 안중에도 없겠지? 아주 작은 나사못 하나가 기관차를 끌고간다는 그 깊은 이치를 모르는 자들은 빨리빨리 달릴 생각만 할 뿐이지, 바닷가에 아무 의미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 파도의 이치란 걸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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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 예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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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베케트 수녀님의 글은 참 편안하다. 그런데 이해인 수녀님의 글처럼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고 때로 격정적이고, 때로 매혹적이다.

이 책은 영국에 있는 여섯 개의 미술관을 순례하고 수녀님의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하는 책도 있지만,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이 아니다.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루브르 박물관은 식민지 역사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이 책에도 유럽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약탈의 냄새가 없어 좋다. 그리고 그 미술관들의 외관을 잔디밭과 함께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노라면, 마치 내가 그 한적한 잔디밭에 드러누워 대서양의 섬나라 햇살을 따스하게 받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 섬나라의 일년 중 절반은 을씨년스런 겨울이지만,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정말 따사로워 보였다.

수녀님을 사로잡은 많은 그림들 중, 나를 사로잡은 그림을 몇 점만 기억에 남기자.

주세페 데 리베라의 '데모크리토스'라는 작품을 보는 순간, 아, 이 작가가 추구하는 정신 세계는 이런 것이구나'하는 예술의 진실성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 화가가 모델로 삼은 사람은 며칠을 이 자세로 버티고 있어야 했겠지만, 부스스한 머리칼에 터프해보이는 표정, 소매가 해어지긴 했지만, 책을 뒤적이고 있는 지적인 손매와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세의 구도는 '조르바'가 현존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그림이었다. 문학에서만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도 진실성을 느낀 작품이랄까?

얀 리벤스의 '예술가의 어머니'도 맘에 든다. 수녀님이 적은 대로, 아무 설명 없이도,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연륜과 노인의 독서, 그 찡그린 콧날에서 우러나는 삶에 대한 외경이 사무치게 와닿은 그림이다.

숱한 남자 화가 중 홍일점으로 '골로빈 백작부인'을 그린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의 작품도 명쾌한 붉은 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림, 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는 그림은 전과 같지 않게 해 준 수녀님의 설명이 돋보인 그림도 몇 편 기억에 남는데,

구에르치노의 '감옥에 갇힌 성 요한을 방문한 살로메'의 설명은 한 편의 그림이 갖춘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했다. 갇힌 자의 밝고 편안한 공간과 자유로운 자가 얽매인 창살의 대비는 삶의 의미를 깊이 깨우치는 글이다. 수녀님의 글이 좋은 이유는 삶의 깊이를 아는 분이기 때문이다. 늘 밝은 쪽만 바라보는 수녀님의 글은 삶에서 동떨어지기 쉬운데, 웬디 수녀님의 글을 읽다보면,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은 편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의 '타르귀니우스와 루크레티아'도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작품을 일별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캐치할 수 있다. 이 점 역시 '큐레이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수녀님의 설명 없이도, 감동적인 작품,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바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잡아낸 그림이다. 역시 르누아르라는 생각이 든다. 르누아르의 시력은 평범한 사람보다 빛에 반응하는 세포가 몇 배 발달했던 것이 아닐까. 어쩜 보이지 않는 봄의 공기의 흐름까지도 인지하고 그려내는 것일까... 존경의 념이 저절로 우러나는 그림이었다.

웬디 수녀님과 함께한 간단한 여행이었지만, 비록 고등학교 도서실이 부족하더라도 이런 책을 서점에서 사 보지 않고  빌려 볼 수 있는 처지인 것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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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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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는 참 많은 외국어가 등장했다. 생전 처음 듣는 나라들과 사람들의 이름은 내 경험의 선을 훨씬 넘어섰고, 무식한 나는 늘 세계사에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도 중국 역사는 그나마 만만했는데, 이름이나 지명이 한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청나라만큼은 아니었다. 누르하치 같은 말들은 만주말이어서 낯설게 느꼈던 기억이 나고, 청조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덕망높은 유교 군주 강희제와 화려한 대외원정으로 전 아시아에 청조의 평화를 각인시킨 건륭제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낀 옹정제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다. 강희제의 아들이면서 건륭제의 아버지인 옹정제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 독재 군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바보들은 박정희가 그런 모범적인 독재 군주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박정희가 ‘대한 늬우스’에서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며 벼베기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세뇌시킨 탓이리라 여긴다.

독재에 대한 향수는 민주주의가 늘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없고, 중우정치의 형태로 몽롱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믿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것이 상당히 발전된 정치형태임을 인정하면서도 노무현처럼 힘없는 정치가야말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독재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노무현보다 더 나약한 정치가가 속출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찐-한 맛의 찌개에 익숙해 있었던 건 아닌가. 건강을 위해서 싱거운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죽어봐야 저승을 아나? 조심할 필요가 있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동양의 특별한 독재 정치를 나름대로 성실성으로 밀어붙인 옹정제, 그의 밀정정치는 철저하게 이루어졌지만, 독재자의 양심에 맡기는 밀정정치는 늘 불안하게 마련이다.

이 책은 소설을 읽는 것 이상의 흥분을 자아내는 이상정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옹정제에 대한 애정이 가득 든 글이라 볼 수 있다.

옹정주비유지(雍正硃批諭旨) 112책은 옹정제의 지방 정치에 대한 고심의 결정체다. 그가 지방관들과 끊임없이 문서를 주고 받은 것을 집대성한 훌륭한 보물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나라의 ‘실록’과 비견할 만한 명작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철학은 ‘爲君難 군주가 되는 일, 지극히 어려운 것’, ‘原以一人治天下 천하가 다르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不以天下奉一人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같은 의지의 표명에서 잘 드러난다. 아름다운 전제군주.

田文鏡(톈원징)같은 사람의 투명하고 철저한 세금징수는 옹정제와 뜻을 맞춰 업적을 남겼고, 李衛(리웨이)를 신임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대목에서는 독재자의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오르타이와는 만주족으로서 허심탄회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법률에만 의존해서는 불공평해질 우려가 있고, 법률 초월해야 공평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마치 어느나라 재판소의 관습법 운운하는 대목도 눈의 띈다.

 

과연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독재보다 나은 체제라면, 정말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혈세를 받아먹고 놀고먹는 의원놈들 보고 있으면 혈압이 저절로 올라서 신문을 끊은 지 몇 년인데, 요즘은 인터넷 뉴스가 눈을 괴롭혀서 인터넷도 끊어야 할 판이고... 공화국이라면 공화정을 펼쳐야 하는데, 공민을 위한 정치가 공화국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처한 밑바닥의 슬픔, 아무도 국민을 돌보지 않는 통치는 공화국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 가진자들의 횡포에 간혹 골든벨을 울리는 소녀가 등장하더라도, 개천에서 용 나기는 예부터 힘든 일이어서 그런 속담이 생기기라도 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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