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생의 미담으로 새삼 화제가 된 <도전! 골든벨>. 이제 이러한 미담 때문에, 비판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어 더욱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 방식은 그간 국가보안법 폐지 퀴즈 대회에도 응용되고 각 디지털 컨텐츠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점 뒤에는 나쁜 점이 그림자 같이 있음을 잊을 수 없다.

<도전! 골든 벨>은 장학퀴즈 같은 프로그램보다 월등한 매력이 있다. 혼자 잘 났다고 문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친구,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감동과 매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의 단결을 유도하는데 친구 선후배뿐만 아니라 선생님까지 얼싸안을 수 있으니 흔한 기회가 아니다.

그럼 이들이 어떤 문제를, 무엇을 위해 맞추고 있는 것일까? 학생들은 항상 학교, 전체 학생들이 고생했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골든벨에서 무엇을 빛내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는 것일까?

<도전! 골든벨>은 우리 암기교육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골든벨을 울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암기력이나 단편적인 지식을 누가 많이 알고 있는가이다. 여기에 운이 매우 중요하다. 아는 문제가 나와야 하니까 말이다.

여기에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은 없고 자신의 생각도 없다. 창조적인 지혜가 요구되는 지식정보화 시대는 무엇인가. 지혜는 아니더라도 삶에서 성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면 안 되는 것일까? 영어도 암기 교육을 그대로 반영한다. 청취와 그것에 대한 단답식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보에 대한 맞춤만이 있을 뿐 지혜에 대해서는 배제된다. 이렇다고 하면 낙후된 북한의 프로그램보다 못하다.

더구나 교육 문제는 전혀 없고 사제지간의 사랑과 정만이 강조된다. 공교육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지, 아니 사립학교의 문제들은 관심사가 아니니 여기에서는 그만해두어야 할 듯싶다.

여기에 현란한 볼거리 제공을 위해서 대중문화의 따라하기, 그것의 재생산만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창조적이고 자생적인 문화가 실종된 지 오래다. 아무리 신세대 선생님들이 많다지만 학생뿐만 아니라 이제는 선생님들이 유행가나 요란한 춤을 보여준다. 그럴수록 시대감각이 뛰어난 선생님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위해서 문제를 맞추는가. 무엇보다 <도전! 골든벨>이 장면 곳곳에서 강조하는 것은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다. 학생들은 공공연하게 이러한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입시 교육만을 시키는, 억압적인 교실 문화가 존재하는 학교, 그러한 학교들을 위해서 학생들은 학교 명예를 빛낸다면 그렇게도 열심히 한다.

더구나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학교 간의 경쟁이 존재한다. 그리고 학교에 따라 보이지 않는 치열한 준비가 이루어진다. 일부 학교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사전에 열렬하게 준비를 한다고 한다. 학교의 명예를 빛내야 하니 말이다. 골든벨을 울린 학교를 만들기 위해 감동과 아름다움은 그 하위에 속한다.

그러다가 이번의 고학생과 같은 학생의 미담이 알려지면 세상에 <도전! 골든벨>과 같이 좋은 프로그램도 없다. 여학생에게 장학금이 주어지고 여러 가지로 관심을 가져주니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고학생의 고생이 안타깝고 아깝다.

글·김헌식(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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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11-1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비평 너무 진부합니다.퀴즈 프로그램을 토론처럼 할 수 도 없구. 엄청난 인력,예산 경험을 가지고 실패한 실험을 하고 있는 대입제도에서도 지혜를 평가하지 못하는데...일주일에 한번씩 만들어내는 1시간 짜리 프로그램에서 지식말고 지혜를 평가하라니요.대학생 <퀴즈아카데미>가 나왔을때 부터 진부하게 써먹던 단어들을 그래로 끌어왔네요.여기 나온 퀴즈란 말대신 수능이란 말로 대치 하면 이 비평은 대한민국 수능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그리구 퀴즈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교육문제까지 이야기해야하나 의심이 가는군요.마치 농업인 모임에 가서 대중문화의 선정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뭐라하는 것 같습니다.학교의 위상이야기를 하는데...그런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실제 골든벨을 울렸다고 그 학교가 현행 입시위주 교육하에서 최고로 뛰어난 학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입시에서 잘나가는 강남학교들에서 골든벨이 얼마나 나왔는지는 모르겟으나 그닥 많지는 않을 겁니다.오히려 강남권과 특목고등에 기죽어 사는 평준화 학교들이 일회적이나마 축제분위기 만드는 정도 효과겠지요. 얼핏보면 논리적이고 그럴싸 해보이지만 빨리 쓰고 원고료나 받자는 -그리고 논리적이지도 못한-그런 짜내기형 비판입니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읽었던 김주영의 성장 소설에 독설을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

현기영의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일관하는 텔링의 기법을 쓰고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담담하게 서술하는 가운데, 성장의 원형이 살아나오기 시작한다. 그 원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그것이다.

눈물은 내려가도 숟가락은 올라간다는... 그 삶의 처절한 본연의 모습을 이 작품처럼 능청스럽게 녹여낸 수작도 드물 것이다.

제주 섬의 슬픈 역사와 아스라한 전설이 녹아든 소설, 그 역사 속의 죽음과 삶들의 슬픈 모습과, 전설 속의 꿈과 좌절들, 제주 섬의 역사에서 뗄 수 없는 장두 이야기, 여신의 이야기들을 통해 자연 속의 삶과 인재(人災)로서의 전쟁이 얽힌 어린 시절이 눈물많은 '아니마'를 형상화시키도록 운명지어졌던 것일까?

성장 소설이 흐르기 쉬운 서정성의 도랑을 작가는 제주라는 섬의 향토색을 통해 서사성의 교량으로 일구어냈다.

영화 '친구'가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조폭의 의리'로 흐를 수 밖에 없었듯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제주도 방언은 이 소설을 자연스레 제주의 역사와 공간으로, 그 특이한 자연의 내음새와 삶의 모양새들을 억척스럽게 증언하도록 기능하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와 제주도 방언. 사투리는 표준말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는 반면, 방언은 특정 지역의 말을 일컫는 용어임을 볼 때, 서울 표준말과 충청, 전라, 강원, 경상도 사투리는 지역적인 차이보다 표준말로 정하고 아닌 정도의 차이인데 비해, 제주 방언은 지역적인 격차가 큰 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제주도 사투리라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도 억척스레 작용하는 섬사람들의 원점회귀의식을 생각하면 제주 땅은 뭍에 비겨 모성의 향기가 유난히 강조되는 곳인 듯 하다.

오십오년 전 전도민의 1/3이 몰살당했다는 '한라산'이란 시가 불과 십오년 전에 필화를 불러온 것을 보면 우리 역사의 이면에서 억지로 잠재워진 숱한 비화들은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것들이 숱할 것이다. 그 한들이 지치고 지치다 농익어 툭 터진 이런 작품들은 단순히 문학적 가치로만 따질 수 없는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이 단순한 성장 소설로만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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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0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똥깅이의 이야기를 통하여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그나마 접할 수 있는 책이지요. 그런데 제가 놀라웠던 일은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4.3항쟁이나 제주의 엄청난 학살 사건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거였습니다. 그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개인의 역사로 치부해 버린 탓이 크지만요.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아, 이 책은 암튼, 역사적인 현실적 맥락으로 볼 때 너무 아쉬운게 많은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샘님 리뷰는 아주 투명하게 쓰셨군요...말간 감식초처럼....^^

글샘 2004-11-2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기영씨가 생략한 아쉬운 부분들은 그 분이 다른 책에서 천착했던 부분입니다. 제 글이 말간 것이 아니라, 현기영씨의 이 소설이 말간 제주 바닷빛일겁니다.
 
상대를 읽는 사람 상대에게 읽히는 사람
유키 유 지음, 박연정 옮김, 류기정 그림 / 예문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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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참 재미있었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 책은 서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면서 읽게 되었는데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글을 잘 썼다는 느낌이 남는다.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남들 앞에서 주눅이 들 때, 애인의 마음을 얻고 싶을 때, 조금은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가볍게 읽어볼 만은 하다. 그런데 사서 보기엔 조금.

특히, 임팩트 3은 역시 서론으로 놓일 만한 글이다. 이것만은 정말 잘 쓴 부분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3에 약하다. 알라딘이 좋은 이유 세 가지. 첫째, 둘째는 일반적인 이야기로.. 셋째는 적극적인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사는 데 가끔 재미삼아 양념을 칠만하다. 짓궂은 3초 이야기도 괜찮았다. 상대의 시선을 3초간 응시하다 먼저 비키는 쪽이 이긴다. 타임 캡슐의 꿈.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약속을. 신데렐라처럼 상대의 소망을...  팔짱의 원리를 이용해서 상대를 부드럽게,  아몬드 크런치처럼 어렵고 딱딱한 일은 쪼개보고, 칵테일 만들기처럼 여러 가지를 섞어서... 상대를 야단치면서 어르고, 감싸주면서 따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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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내 꿈 하나 살아있는 교육 3
윤구병 지음 / 보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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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은 어쩌다보니 십년 전 책을 자주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은 자꾸만 우울해진다. 교실의 모습은 10년 전과 별반 바뀐 것이 없으므로...


윤구병은 상당히 개방적이고 급진적인 철학자다. 특히 교육 운동에 관심이 많다. 그는 남녀평등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자는 남자답게, 남자는 여자답게’를 외친다. 하긴 우리 사회에서 인간 해방의 질곡은 얼마나 깊은 골이던가. 그래서 그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운동에 관심이 많다. 정직한 글쓰기, 가치있는 글쓰기를 외치시던 꼿꼿한 선생님.

그리고 소외받는 삶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가장 상처받은 영혼에 가장 큰 사랑이 깃들 수 있습니다.’는 말로 나타나듯.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를 이야기하듯, 사회가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사는 동안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늘 더 많다는 것 - 이 소박하면서도 근본적인 깨우침이 바로 가난의 선물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그는 천상, 운동가다. 그의 운동은 위에서 이뤄주는 ‘개혁’의 탈을 쓴 개량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건강한 ‘변화’다. 이집트의 건축가 하싼 파티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건축’에 드러난 메타포처럼.


문화는 뿌리에서 샘솟아

초록빛 피와 같이 세포에서 세포로

온갖 새순에, 잎과 꽃과 눈에 스며,

비가 내리면

젖은 꽃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내음으로

우러나 대기를 채운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사람들 머리에

쏟아 부은 문화는

곧장 눅눅한 설탕처럼 엉겨 붙어,

사람들을 설탕 인형으로 바꾸고

생기를 주는 소나기가 몸을 적시면

끈적거리는 찌꺼기로 녹아 없어지게 한다.


모순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다.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 감독(?, 자율과 감독의 자가당착)하는 날. 한 바퀴 돌아보고, 에프엠 라디오를 틀어 놓고 책을 읽는데, 교무실 밖, 자판기 커피 뽑는 소리, 칠십 년대 여공들이 타이밍을 먹던 그 심정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그 여공들의 헛된 몸짓들과 다를 것이 무엔가. 천성산 도롱뇽보다 못한 아이들, 도롱뇽들에게는 지들 죽는다고 삼보일배 하시고,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시던 엄마같은 스님이 계셨는데, 나는, 청와대 앞에 천막이라도 치고 싶다. 청와대 앞에 수천, 수만의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천막을 치고 삼십일, 오십일 굶어서 지쳐 쓰러져서, 이 고리를 끊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이 도롱뇽보다 못한 아이들이 하늘 한 번 쳐다볼 시간이라도 있을까? 건물에도 일조권이 적용된다는데... 한국의 고등학생은 건물보다 못해서 일조권도 없이, 희부연 형광불빛 아래서 시력만 떨어진다.


어느 여고 2년생의 글은 이십 년이 지났어도 유효하다. 공순이보다 못한 수인(囚人)의 삶.


노동이다, 노동/ 아니, 징역 3년의 선고를 받은 죄수에게 던져진 가혹한 형벌이다.//

새벽녘 어제의 달이 미처 지지도 않은/ 무거운 하늘을 이고/ 돌 캐러 간다./ 죄수 번호 21060 소속 00 여자 수용소/ 손이 부르트도록 머리가 깨지도록/ 돌을 캔다./ 선생님들은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열심히 쉬지 말고 파 보라고 하시지만/ 내 앞에 쌓이는 건, 내 손에 쥐어지는 건/ 쓰잘데 없는 자갈뿐이다.//

어쩌다가 가짜 금강석이라도 캐는 날이면/ 모두들 고함치며 함성을 지른다./ 무엇을 위한 기쁨인지/ 누구를 위한 기쁨인지/ 나 같은 바보는 모른다.//

‘사랑’이란 단어, 잊어버린 지 오래고/ ‘꿈’이란 풍선, 터져버린 지 오래다./ ‘보물찾기-대학’/ 지각이 아무리 변화해도 돌이 대학이 되진 않는데.../ 나 같은 바보는 모를 세상이다.//

돌 캐러 간다./ 오늘도 돌 캐러 간다./ 얼마나 많이 캐내야/ 얼마나 많이 복종해야/ 얼마나 많이 참고 울어야/ ‘대학’을 캐낼 수 있을까/ 아니, 이 수용소를 탈출할 수 있을까...//

‘땅 땅 땅...’/ 소름끼치는 소리, 저 끝없는 돌 캐는 소리/ 무의미한, 쓰잘데 없는/ 21060 가슴에 달린/ 죄수 번호의 명예(?)를 위해/ 허공을 위해/ 돌을 캔다./ 땅 땅 땅... / 오늘도 내일도 쉼 없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멍청한 사람은 모든 로고스에 파닥거린다.’고 했다. 로고스는 말, 풍문, 보도 같은 남들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에는 눈을 감고, 정말 로고스에 파닥거리지 않았나, 레드컴플렉스, 노무현이 멍청하다, 박정희 신드롬, 억울하면 출세하라. 대학가면 살 수 있다는 로고스에 파닥거리다 새장 안에서 피투성이인 채 스러지는 존재일 뿐인 것들이...


도롱뇽보다 못한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려 커피에 중독되는데, 누가 위에서부터, 아래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힘을 기울이고 있는가...


한때, 전교조가 교육희망이던 때가 있었다. 전교조가 합법화되면, 뭔가 될 줄 알았다. 전교조 합법화는 ‘로고스’에 불과했다. 교실에 아이들이 30명 수준이면, 수업이 될 줄 알았다. 그것도 마찬가지 로고스였고, 핵심에서 머나먼 것이었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다. 미래를 위해 이제 목숨을 걸고 투자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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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님으로서 고독과 아픔과 사랑이 잘 묻어난 글입니다. 아래로부터의 건강한 변화를 부디 샘님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분이시라고도 믿고요...

글샘 2004-11-2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롱뇽보다도 못한 아이들에게 제가 도와 줄 건강한 변화란... ㅠ.ㅠ 비관적이네요.
 
산하여 나의 산하여 - 감성시인 고은의 북한 순례기
고은 지음, 김형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유홍준 교수와 함께 북녘 땅을 밟고 쓴 기행.

유홍준 교수의 적확한 묘사, 적절한 자료의 인용과 어우러진 풍부한 입담의 교술성에 비하여, 고은의 이 글은 감격에 치우쳐 오히려 감상이 부족한 글이 되고 만 느낌이다. 차라리 그의 시들은 좋은 작품이 있는 반면, 정말 시가 나와야 할 장면에서 얼버무리거나 입을 닫아버린 부분이 많아 불만이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지리지라고 알고 있는 이중환의 택리지의 한 대목이 얼마나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미적 감상을 갖추고 있는지...

산 복판에 정양사가 있고 절 안에 헐성루가 있다. 가장 요긴한 곳에 위치하여 그 위에 올라 앉으면 온 산의 참 모습과 참 정기를 볼 수 있다. 마치 구슬 굴 속에 앉은 듯 맑은 기운이 상쾌하여 사람의 장위 속 티끌 먼지를 어느 틈에 씻어버렸는지 깨닫지 못한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자연이 아니라 차라리 예술인 금강산에서 옥구슬처럼 흐르는 옥류, 길이 편안한 장안, 푸르디 푸른 청천, 조선 천하의 풍류처 삼일포 뱃놀이를 잡아내는 그의 시선은 역시 시인의 그것이었다.

똑같은 모국어를 쓰는 축복을 아직 간직한 분단 국가. 하루 아침에 통일이 이루어질 지 모르는 운명을 지닌(이 점에서 나는 많은 통일론의 지적 성과들을 믿지않는다)던 그의 시각은 차라리 솔직하여 공감을 얻었다.

김형수의 시원스런 사진맛과 어울린 이런 글은 중앙일보에 연재되었을 때는 감격에 겨워하는 멋을 느낄 수 있었으나, 책으로 묶은 것은 무리한 작업이었다는 생각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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