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들이 꾼 꿈 중에서

가장 예쁜


하도 예뻐

잠에서 깨어나면서도

놓치지 않고

손에 꼭 쥐고 나온


마악

잠에서 깬 들이

눈 비비며 다시 보고,

행여 달아나 버릴까

냇물도 함께

졸졸졸 가슴 죄는


보랏빛 고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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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그랬었구나

나더러 그냥 이만치 떨어져서

얼굴만 바라보라고,

그러다가 행여 마음이 끌리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향내나 맡으라고


짐짓 사나운 척, 네가

날카로운 가시를

찌를 듯 세우고 있는 것은


하지만 내가 어찌 참을 수 있었겠니?


떨리는 손 끝으로

조심조심 쓰다듬어 보니

그 뾰족한 가시마저

이렇게 보드라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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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너 거기에 있었니?


친구와 헤어져 혼자 가는 길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낯설지 않은 얼굴


너 거기 그렇게

정말 오래오래 서 있었구나?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만큼 자란 키


내가 웃음을 보이지 않아도

반가워 먼저

소리 없이 웃음 짓는


네게서, 참 좋은 향내가 난다

참 좋은 향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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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이맘 때, 고딩 1,2학년 애들이랑 연극제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든 권한을 맡겼더니(자율적인 선생님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무지한 선생님이라서) '청춘예찬'이란 대본을 구해왔다. 욕설이 난무하고, 조금은 나이들어 보이는 연극. 애들은 어려운 대본을 나름대로 수정해 가면서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문제아에게 사회과인 담임 선생님께서 '그리스인 조르바'란 책을 읽어 오게 숙제를 내 주신다. 그 문제 학생은 이 책을 읽어낸다. (지금에사 이야기지만, 정말 대단한 고등학생인가보다. 이런 책을 읽어 내다니. 그런 정도의 수준인데 학교에서 왜 문제아가 됐을까?)

그리고 그 학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물레를 돌리는 데 걸리적거린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린 사내, 여인들의 치모를 모아 베개를 만든 사내, 그리고 자유를 생각하고 누렸던 사내... 조르바. 난 조르바처럼 될 수 없는 것일까?" 결국 학생은 자퇴를 하고 찻집에서 일하는 간질병 환자와 사랑을 나누며 인생을 고뇌하고, 조르바를 읽히던 선생님은 사표를 던지고, 호주의 널따란 풀밭으로 자유를 찾아 떠난다.

선생님에게도 학생에게도 자유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연극반 아이들이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열두시까지 새벽한 시까지 수위 아저씨랑 싸워가면서 만들어냈던 그 어설픈 연극이 바로 그들에게는 '자유'였던 것일까?

자유롭다는 것은 구속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구속, 관습의 구속(요즘처럼 관습이란 말이 짜증스럽게 하는 적도 없었다.), 언어의 구속, 관계의 구속, 도덕의 구속, 질서의 구속... 끝없는 구속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숨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조르바의 여행을 따라나섰던 지난 며칠간은 부끄럽고 무기력한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반신욕 하는 욕조 안에서 조르바가 바라보던 지중해를 상상하는 것은 따가운 햇살에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상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지만, 푸르른 하늘과 바다, 하이얀 집들의 그리스 풍경을 아무리 떠올려도 내 삶의 구속들에 조르바의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새장안의 새가 그 좁은 문으로 드나들듯, 우리 일상속의 구속틀은 이런 작은 작품들로 숨통을 틔어주는지도 모른다.

 = = = = = = = = = = = = = = = = = = = =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던가.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나는 내 키 높이를 열심히 재고 있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사람의 키 높이란 늘 같은 게 아니라서 말일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나같이 고독한 상태에서 보면 사람이란 개미처럼 보이는 게 아니고 그 반대로 엄청난 괴물(생명을 생성시키던, 탄산가스와 썩어가는 식물로 포화 상태가 된 대기를 호흡하던 공룡이나 익룡 같은)로 보이는 법이라네.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떠돌이 노동자의 합숙소지. 자네가 즐겨 입에 올리던 ‘국가’와 ‘인간’ 같은 개념. 나를 매혹시키던 ‘초국가’, ‘인간성’ 같은 개념은 이곳의 파괴적인 강력한 입김 속에서도 같은 가치를 갖는다네. 우리는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 것 같아 이따금 몇 마디 음절로 소리를 지르지만 때로는 음절이 되지도 못하거나, ‘아!’, ‘그래!’ 같은 불확실한 소리로 끝나 버리기가 일쑤라네. 그러고는 그들의 입김에 부서져 버리는 거지. 이렇게 해체되어 버리고 보면 아무리 고귀한 사상이라도 겨를 잔뜩 채운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아서 겨 속의 강철 용수철이 드러나 버리곤 한다.

부처가 ‘나는 깨달았다.’고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마는, 유쾌하고도 변덕스러운 조물주를 사귄 나머지 나는 이제 내가 맡은 역에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충실할 수 있을 것.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무 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의 신비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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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2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파란여우 2004-10-2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조 안에서 지중해의 파란 물결을 떠올리시는 글샘님의 풍부한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만화로 보는 한국설화 3
이근 지음 / 계림닷컴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다.

만화로 쉽게 접할 수 있고, 이야기 구성도 비교적 잘 된 편이다.

중고생들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자료로 씀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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