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는 왜 거미줄에 안 걸려
라 퐁텐 지음 / 디자인텔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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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고전읽기라는 미명하에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이솝 이야기를 달달 외우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군사문화 시절이라 어린이들 모아놓고 고전읽기 경시대회를 했다. 난 우화를 읽으면 그 시절 생각이 난다. 더운 여름날 선생님과 오밀조밀 모여앉아 글을 읽고 선생님께서 문제를 내시면 사뭇 정신없는 이야기에서 답을 찾아 내던. 난 그 때 선생님이 예쁜 여선생님이어서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았지만, 여름방학 내내 땀흘리며 대회에 나갔던 일은 지금도 기분이 별로다. 아무 생각없이 나간 부산시 대회에서 떨어진 건 당연한데, 아무 생각 없는 3학년인 내가 그 대회에 나간 것도 신기하고, 그 대회에서 상을 탄 다른 아이들도 신기하다. 어떻게 그 아이들은 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일까...

오랜만에 우화를 읽으면서 우화는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화는 풍자를 위하여 우의적으로 쓴 이야기라고 가르치는데, 우화의 핵심은 풍자에 있다. 지금 생각하면 노예였던 이솝이 주인에게 비꼬아댔던 풍자의 수준은 정말 대단했다. 프랑스의 라 퐁텐드의 우화는 조금 낯선 것도 있지만, 봉건시대의 지혜가 들어있다.

당나귀와 주인 ; 밭일을 하는 당나귀가 새벽이 오는 것을 보고 '수탉은 아침에 노래만 하면 되지만, 나는 늑장을 부릴 수 없어. 장에 내다 팔 야채를 싣고 가려면 언제나 새벽잠을 설쳐야 해.' 당나귀의 불평을 들은 주인은 구둣방 주인에게 당나귀를 넘겨 주었다. 무거운 가죽과 지독한 냄새는 불만투성이 당나귀에게 충격적이었다. '옛 주인이 그립구나. 머리만 돌려도 그를 따라갈 텐데. 그 곳에는 야채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지천이었는데. 이 주인은 회초리만 휘두르니.' 불쾌한 구둣방 주인은 당나귀를 숯장수에게 팔아 버렸다. 숯을 잔뜩 지고 가면서 그는 또 불평을 했다. 그러자 운명이 화를 냈다. "또 뭐야? 너 같은 불평은 유명하다는 군주들도 갖고 있어. 누구든 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줄 아나. 나는 허구한 날 네 불평만 들어야 하니?"

운명이 옳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만족하는 법이 없다. 현재를 늘 불평한다. 자신의 운명에 늘 불평하는 자는 어떤 상황이 되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늑대와 어린 양 : 어린 양이 목을 축이고 있었다. 먹을 것을 찾고 있던 배고픈 늑대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누가 내 물을 흐려 놓으라고 했지? 네 행동은 벌을 받아 마땅해." 늑대는 호통을 쳤다. "늑대님,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저는 늑대님의 옹달샘에서 스무 발자국이나 떨어진 곳에서 목을 축였어요. 제가 늑대님의 옹달샘을 흐려 놓다니요." 어린 양은 있는 힘껏 변명을 해댔다. "시끄러, 너는 작년에도 내 샘을 흐려 놓았어." 늑대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이제 막 엄마 젖을 떼었단 말이에요." 어린 양은 계속 변명을 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네 형이 그랬겠지." 늑대는 좀처럼 믿지 않았다. "저는 형제가 없어요." "그렇다면 네 가족 중 누군가 그랬겠지. 게다가 너를 치는 목동이나 개들이 나를 얼마나 귀찮게 하는 줄 알아? 그 벌을 네가 대신 받아야겠어." 늑대는 어린 양의 설명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숲으로 물고 가 버렸다.

이유가 분분한 자가 이길까?

예리한 그림들과 함께 중세의 삶을, 그 팍팍하던 계급 사회를 잘 보여주는 우화들이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 꼭지들을 되씹으면서 역사는 발전하는가, 사람의 삶은 과연 나아지고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생각으로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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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가르치는 독설
피에르코랑 / 디자인텔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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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오래된 서사시, Le Roman de Renart 이야기다.

르나르라는 여우를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피에르 코랑이란 작가가 입심 좋게 채록해서 책으로 엮었다고 하는데... 프랑스어를 통해 느껴졌을 법한 감동은 우리 말로 느낄 수 없음이 아쉬웠다. 우화이지만 서사시인 이런 작품은 역시 그 나라 말을 도구로 해서 읽어야 맛진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고 지금 프랑스 말을 공부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삼 년을 두고 중국어를 공부할 원을 세웠기 때문에. 한비야가 일 년에 이룬 경지를 삼 년에 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인 줄은 안다. 그렇지만 삼 년 정도면 고급 수준은 안 돼도 중급 수준은 이를 수 있단 걸 알기 때문에 욕심을 가져 본 거다.

우리 고전의 옛날이야기처럼 늑대와 여우는 골탕먹일 궁리로 늘 교활하다.

그리고 위선과 부도덕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너무 도덕적이지 않았나? 우리 소설들 속의 도덕적 인물들처럼 춘향이, 심청이, 흥부같은 존재들은 너무 어리숙하지 않았던가. 놀부처럼 경제적 욕구를, 변사또처럼 법을 준수하려는 기준을, 뺑덕어멈과 같은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임을 이야기하던 꾀쟁이 토끼나 호랑이를 속였던 해와달이 된 남매 이야기들이 우리 역사엔 많이 살아있었다.

우리도 꾀쟁이 토끼를 놀부를 뺑덕어멈을 살릴 부분을 살리고, 배울 부분은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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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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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단하다. 바람의 딸로 세계를 걸어다닐 때만해도, 그는 오지 탐험가였고, 사람냄새 좋아하는 글쟁이 정도로 여겼다.

이번 중국 견문록은 어학 공부를 좋아하는 내게 정말 좋은 연수기록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돌봐야 할 가정이란 게 없지만, 만약 나에게 가정이 없었다면 정말 훌쩍 어디론가 가버렸을 것만 같은 책이다.

나도 요즘 중국어를 시작해볼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정말 중국어를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깊이 든다. 중국은 무서운 나라고, 대단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엄청난 지하자원과 인력 자원(올림픽을 휩쓰는 그들의 인력), 올림픽을 기회로 세계 대국으로 성장할 나라이다.

몇 년 전에 경험한 관광지들은 낙후된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미래의 우리 나라를 생각한다면 중국어를 미리 학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미처럼 독한 마음을 먹고 공부해야한다. 일본어를 몇 년 해서 자격증까지 따 보았지만, 역시 취미삼아 느긋하게 한 것이라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독해에만 능숙해 졌을 뿐. 이번에 중국얼 공부할 때는 큰 소리로 외워가면서 공부해야지. 전에 중국어 학원 한 달 다닐 때는 재미있었는데 그 성조는 우리에겐 정복이 불가능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본능에서 우러나는 성조와 권설음.

자, 301구부터 암기해서 나도 내년쯤엔 HSK라도 쳐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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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0-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님은 별표 다섯개를 주신단 말이죠? 전 읽어 보았지만..별점 다섯개는 못 주겠더라고요. 자신에게는 충실하게 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는데, 하지만 왠지 그녀의 글은 설득력의 컨셉이 너무 약해요. 전문적인 글쟁이꾼이 아니라서 그런거겠지만요.

글샘 2004-10-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라도 그 독한 공부자세를 보니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더라구요. 외국가서 사는 외로움도 가산점을 줘서. 실컷 공부해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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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촐촐하게 내리는 아침. 아파트 입구에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사립초등학교 아이들이

줄을 선대로 분홍빛, 하늘빛, 붉고 노란 빛 우산들이 새초롬하니 비를 맞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 빛깔들은 내 망막에 아른거린다.

그 빛들은 아마 0.1초 가량 내 망막에 스쳤을 뿐인데...

 

간혹 이렇게 순간적인 느낌이 오래 남을 수 있다.

아니면 오랜 동안 잊고 살다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푸른 바다에 비낀 노을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옛친구처럼 아련한 기억들.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싶은 아침이었다.

어린아이들 우산을 보고, 이 책의 삽화들이 생각났나보다.

파트리크 쥐스킨스 자신을 좀머씨에 대입시킨 것일까?

 

우리는 이 사회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맺고 살지만, 그

 연관이란 것은 아주 연약한 실과 같은 것이 아닐까.

좀머씨처럼 살아도 - 걷고 중얼거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

사는 것이고, 죽을똥말똥 아둥바둥 살아도 사는 것인데...

 

따가운 햇살이 피부에 따끔거리지만, 금세 찬바람에 스러지는 '여름'처럼 'Sommer'씨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물속나라로 조용히 사라진다.

글쎄, 우리는 너무 장렬하게 전사하기를 바라는 거 아닐까.

 

꼬마가 죽음을 앞두고 친구들과 가족들의 애도, 축복, 집회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 사회적이지만 '동물'인 인간에게 죽음이란 '향수의 그르누이'와 '좀머'씨처럼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런 죽음이 아닐까. 공

 

병우 박사님의 죽음을 떠올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스러운 죽음.

마치 사자나 들소들이 죽음을 예감하고 조용히 단식을 청하며 평화로이 잠드는 영면처럼...

 

어린아이의 파스텔빛 감성과, 평생 짐을 지고 사는 좀머씨의 아픈 정신과,

 삶의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이성을 느끼는 쓸쓸하면서도 가득찬 가을비 내리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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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치료다 -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의 본질, 아이들의 치료사, 교사와 부모를 위한 영적 안내서
루돌프 슈타이너 지음, 김성숙 옮김 / 물병자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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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의 교육학은 여느 사회학 범주의 교육학을 초월한다. 보통의 사회학은 학생을 지도 대상으로서의 인간으로 파악하지만, 슈타이너에게 학생은 '영혼'이다.

특히 장애 아동의 질환을(간질, 정신질환, 도벽 등) 신체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부조화로 보고, 이것을 교사가 파악하여 치료할 수 있음을 증거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육학이라기 보다는 의학 서적이라고 해야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슈타이너가 아동의 영혼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장면은 자세한 것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치료교육자는 언젠가 그 아이가 죽은 후에 신들이 행할 일을 현재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도교사의 명상을 강조한다. 지도교사는 매일 밤, '내 속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 '나는 신 속에 있다.'는 명상을 취한다. 점은 원이고, 원은 점이다. 점은 원 안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면서, 그 원은 다시 점 안에 포함된 존재이다.

어린아이는 7년마다 새 옷을 갈아입는다는 의견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그리고 유물론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정신'의 개념을 카르마(업)와 육화(윤회, incarnation)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도 설득력이 강하다. 영혼이 신체에 결합하여 개성체가 되는 것은 수육과정, 즉 incarnation process라는 것이다.

교육의 황폐함이 밝혀진 현 시점에서 슈타이너의 교육 사상은 단순한 개별적 교수법이 아닌 가장 본질적인 부분, 즉 인간 존재와 정신의 실존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늘 깨어있는 교사에게 시사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지식을 주입하던 소품종 대량생산식 교육의 패러다임이 노마드(유목)적 문명전환의 시대의 교육으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슈타이너의 인간을 위한 교육, 영혼을 살피는 교육이 우리 교육에도 접목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곧 교육개혁에 착수한다고 하는데, 우리 교육엔 너무 비전이 없다. 청사진이 있고, 그 설계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되는 개혁이라면 지금의 부조리함도 참고 희망을 가질 수 있으련만, 우리 교육에 희망은 너무도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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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19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보이는 것만을 쫓아온 우리들의 삶과 교육에서 보이지 않는, 하지만 보이는 우리세상을 만들어가는 보다 중요한 것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교육관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눈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파란여우 2004-10-19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선에서 계시는 분이니 어련히 잘 아시겠습니까마는 사회의 모든 기초는 교육이라고 봅니다. 그 기초가 기존의 지식이나 방식만을 주입하는 제도는 이제 정말 개혁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글샘 2004-10-20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교사가 학생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말 가르치는 이로서의 teach-er로 전락하겠지요. 선생으로서 학생의 영혼을 돌보는 마음... 마음공부가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여우님... 오랜만에 오셨군요. 포도가 건포도가 돼가네요. 일선- 이거 군대용어 아닐까요? 전쟁터의 가장 앞선 말이에요. 하긴 일선에서 아이들과 치르는 전투는 힘겹다는 점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지요. 후방에서 지원이 없으면 일선의 전투는 너무 힘들답니다. 위에서의 개혁을 포기한 지 오랜지라, '나부터' 교육혁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