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바로 봅시다 - 성철스님 법어집
성철 지음 / 장경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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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돈오점수(頓悟漸修).

깨달음은 짬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돈오의 순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노력의 한계를 느낀다. 변증법에서는 양적변화가 질적변화를 가져온다는 유물론적 접근을 하고 있지만, 유심론, 특히 불교에서는 질적 변화를 일으킨 후에 양적 변화가 필요하단다. 돈오 이후에 점수...

성철스님의 유명하신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이 산이듯, 물이 물이듯, 나 하나하나는 모두 부처고, 현실 이대로가 절대 선이다. 세계는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불생불멸). 내가 본래 부처임을 먼지낀 명경에 비유하신다. 먼지가 끼어 있어도 거울임은 변하지 않는 것. 눈을 뜨고, 깨달으면 그 뿐인 것을. 눈을 감고 3독에 싸여 있다는 것.

욕심, 성냄, 어리석음(탐, 진, 치, 貪瞋癡)이 우리 눈뜸을 방해하는 요소다. 그래. 욕심, 이 욕심이 나를 얼마나 어리석게 하는지. 욕심이 없다면 성냄도 없을 것을...

그래서 스님께서는 이 욕심(탐)을 없애려면 '남을 위해 살아라'고 가르치신다. 남을 위해, 나를 가장 해치는 자를 위해 삼천배를 올리라는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가르침을...

그래서 세상 명예와 이익, 부귀영화와 거꾸로 사는 것이 깨끗한 나를 만드는 길이라고 하신다. 논어에  나오는 종심소욕불유구를 인용하시면서... 나이 칠십이 되니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하여도 가로막힐 것이 없다는.

심원해자 심애호(深怨害者 深愛護). 참으로 수도를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 최고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누더기를 입고 다니시며, 동굴 생활을 하신다는, 그래서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하시는 좌우명을 가지셨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은, 영욕에 부유하는 내 탁한 영혼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알라딘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신 몇 분의 글들을 읽다 보면 공부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8년 동안 한 번도 드러눕지 않고 잠도 앉은 채로 잤다는 경력과, 영독불일중 5개 국어에 능통하시다는 신비의 요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 분의 가르침은 참으로 간명하였다. 원수를 부모 모시듯 사랑하라.

깨달음의 순간이 오기까지 나같은 중생들은 차근차근 읽고 되뇌는 작업이 필요하리라. 욕심을 없애고, 남을 위해 살아라. 남을 위해... 욕심을 없애고, 삼천배 하는 정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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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0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보는 관이 깊어질수록 큰스님의 말이 더욱 마음에 찐득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관이 깊어지고 깊어지도록 늘 마음 속에 가시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샘 2004-10-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교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 편이랍니다. 물신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종교환자들이 많아서요. 그러나 삶의 진리는 종교와 통해있다고 생각합니다.
큰스님의 말씀들이 아직은 도덕처럼 들립니다. 곱씹어가면서 내면화하려고 여기 몇 가지 적어 둔 건데, 살다보면 또 잊고 살겠지요.
욕심을 없애고, 해 놓고 돌아서면 화내고...
마음 속의 가시... 깊이 심어 두겠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회고하며 쓴 학생의 글.
상당히 학교의 본질에 접근해 있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느끼는 것을 적기까지는 얼마나 갈등했을까. 그러나 그 갈등의 해결책이 없었던 것이겠지... 난 이런 아이들 앞에 서기가 점점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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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 년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꽤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결코 학교에서의 가르침이라든가 소위 사회화 기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학교는 정말 싫었다. 그래, 그 싫은 곳에서 3년간을 견디어 온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그 기간 동안 '초연함'을 얻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지껄여야 되고 억지로 웃어야 한다. 착하게, 원만하게, 조용하게. 그런 것들로 완전 무장이 되어 있다가 교문을 나서는 순간 벗어버리면 참 편리했겠지만, 어쩐지 견딜 수 없는 얇은 가면은 갈라지더니 파편이 돼서 나를 여기저기 흠집을 내놓기 시작했다.
1학년 때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께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다. '예술가는 이해해 줄꺼야.'라는 당치도 않은 발칙한 생각이었다. 2학년 때 역시 학교 내 사람들이 모두 머리에 흐물흐물한 덩어리를 달고 다니는 게 보였다. 3학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수능 잘 쳐서 대학을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학교는 수능 공부를 위한 장소였다.
물론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뭔가 유쾌한 일이 있었겠지만, 그다지 떠올리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머리를 쥐어짜내서 생각해낸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솔직히 지난 3년간 나는 많은 것들을 보았고 배웠고 생각하고 읽었고 놀랄만큼 자랐지만, 나의 '자람'과 학교와는 그다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안타깝다.
그렇지만 나를 좋아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간혹 가다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건 시시한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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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0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라는 시기가 그런것 같아요. 무엇엔가 대해서 아는척 하고 싶고, 냉소적인 척 하고 싶고, 나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들 속에 섞여 사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아무리 남과 다른척 해도 그 아이의 진심은 "사랑받고 싶다"의 다른 표현임을.
정말 뛰어난 아이도, 뒤떨어진 아이도 모두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야 할지 교사인 우리 자신들도, 아이들도 잘 모르고 살아가죠.
시시한 학교에 다녀야 하는 건, 아이에게도 교사에게도 불행이죠. 하지만, 세상을 바꾸긴 어렵죠. 마음을 바꾸는게 더 쉽다는 것을 이 아이가 빨리 깨달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글샘 2004-10-0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달라보이는 아이는 사랑이 필요한 거죠. 저는 사랑은 표현하지 않아도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니까요. 학교가 무기력하고, 심심한데, 그리고 학교에는 너무 권위적인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아이들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최소한 권위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야죠. 아이들이 마음을 바꾸는 게 쉽다는 걸 배우는 곳이 교육하는 곳이어서는 안 될텐데요... 걱정입니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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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십년 쯤 전이었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었다. 두 권의 만화로 되어있었는데,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쥐'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라면, 이제 그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된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형상화는 추상의 한계를 극복하는 힘을 가졌다. 이스라엘의 역사나 유태인의 역사, 팔레스타인 전쟁 등을 책으로 읽었을 때 느꼈던 그들의 삶은, 폭동, 희망없음,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과의 대치... 뭐 이런 무미건조한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시종 기분이 께름칙하다. 바로 비오는 날씨와 진흙탕 때문이다. 이런 것을 비평에서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배경의 역할이라고 할까? 그리고 너무도 어린 나이에 죽음, 고문, 수모, 팔을 부러뜨리기(이것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죽음보다, 고문보다...), 그리고 돌을 던지고, 다시 고행의 길로...

우리의 80년대가 희망을 향한 투쟁의 시기였다면, 그들의 삶은 하나에서 열까지 비참하고 희망 없는 투쟁의 현실이다. 리얼리즘이 가지는 힘이란 이런 것이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만화. 죽고, 또 다치고, 총에 맞고, 죽음마저 죽음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비통함, 그리고 침묵과 벽.

통곡의 벽.(누구를 위한 통곡의 벽인가.)

그 벽 앞에서 통곡하다가, 흐느낌마저 잦아지다가, 고개를 든 히잡을 쓴 여인의 눈초리에선 독기가, 복수의 광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후세인만이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킨 멋쟁이라는 말을 읽을 때, 9.11 테러를 보고 환호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의 마음이 바로 김수영의 <풀>이 아니었을까.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조 사코가 취재하는 내내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길 원했듯이, 나도 사실은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음에 안도하고 있다는 걸 난 안다. 그러나, 안사르와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곳에는 영원히 평화가 올 수 없음을. 그러나 언젠가는 결론아닌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음을 예감하며 이 무거운 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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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게 되는 날이 오기를
"전쟁"을 하면서 인류 혹은 민주를 위해서라는 웃기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리뷰를 읽다보니 그 만화를 보던 때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0-0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지적대로 누구를 위한 통곡의 벽일까요...
실상 역사의 진보를 믿긴 믿어야겠단 생각을 꾸역꾸역 하면서 이 책을 읽었어요.
이슬람 문명권에 무지했던 경계가 조금씩 뭉개지는 것도 진보라면 진보랄 수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서도...
어느새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추천!

글샘 2004-10-0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참 무거운 책이었지요. 그이들의 진창같은 삶을 보면서 정말 이런 다큐멘터리를 남기기도 어렵겠구나 했답니다.
내가 없는 이 안님/ 우리나라가 너무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살았지요. 사실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만도 않았는데요.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중국의 학자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데... 분단된 후로 우리는 섬나라 사람들이 되었으니.. 빨리 통일이 되어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질 것 같네요.

sarac 2010-09-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좋은책들 많이 알고갑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점은...리뷰가 거의 대부분 책에대한 내용보다는 책 제목만 말씀해주시고 갑자기 개인적인 생각을 나열하기때문에..책에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아쉽네요
 

우리는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허무와 좌절이 예상 외로 쉽게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고 작은 아픔에도 쉽게 포기하게 되는게 우리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약한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의 약함을 아는 순간부터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유혹이나 어려움이 닥칠 때

스스로를 흔들리지 않는 것에 매어 둘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란 내 마음이 알고 있는 참 기쁨입니다.

여기에 생각의 밧줄을 걸어 두면 온갖 유혹이 몰려 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 정용철의 희망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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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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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도 내 안의 파시즘이 아닌 '우리 안의 파시즘'이다. 우리 민족은 순수함, 오염되지 않은 것을 영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섞일 기회가 없었으며, 섞이거나 다른 것은 화냥년, 트기(혼혈), 왜놈, 쪽바리, 뗏놈, 코쟁이, 검둥이, 산업연수생으로 멸시해 온 역사를 가져왔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난삽하다. 다양한 주제를 묶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잡다한 주제의 글을 섞어 놓으니 제목이 무색해져 버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머리말과 처음글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와 박노자의 '한국의 군사주의', 김근의 '언어 안의 파시즘', 마지막 문부식의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은 제목과 부합하고, 나머지 글들은 왠지 읽기 어색하다.

나도 386세대이긴 하지만, 파시즘 하면 정말 할 말이 끝도 없다. 우리에게 끝도없이 주입된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의 그것과 그 재생산 구조로서의 학교의 파시즘, 가부장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합리한 부담감, 군대 사회의 연장인 남성들의 음주 문화와 퇴폐적이고 강압적인 한국의 회식문화까지... 어느 하나 파시즘의 짙은 악취를 풍기지 않는 것 없다.

내가 요즘 가장 혐오하는 것이 회식이란 이름으로 빚어지는 연장 근무이다. 핵가족화되는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직장은 대개 무슨무슨 명목으로 회식이 잦다. 이것은 파티의 개념도 아니고, 축제의 개념도 아니다. 실컷 퍼먹고 마시다가 2차 3차 가면서 먼저 간 놈들 욕하고 씹는다. 이런 데 빠지면 뺀돌거린다고 취급하고, 직장에서도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자기들과 다르면 '틀려빠진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무서운 광기의 문화.

어쩌다가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오늘 인터넷 뉴스에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크게 났다.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교사가 중고생의 머리를 훼손하는 것은 이 나라 구석구석 비일비재한 일인데... 그거 뉴스에 다 난다면 아홉시 뉴스는 자정 넘길걸... 우리 학교들은 아침마다 학생부 교사들과 선도부(간부들)의 위압적인 도열을 통과해야 한다. 교사들과 눈을 다정하게 마주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정신나간 놈 아니고는 그러기 쉽지 않다. 학생 지도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파시즘. 교문에서 단속하는 사항은 정말 정신나간 짓거리다. 명찰이 있나, 넥타이는 맸나, 양말은 신었나, 1분도 지각하지 않나, 머리를 염색한 놈은 없나... 난 정말 학생부가 싫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교실에는 여덟 줄로 질서정연하게 줄맞춘 책상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운동장에서 군국주의 냄새 물씬 나는 전체 조회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각종 시상(상 타는 놈은 늘 정해져 있다. 물론 박수만 3년 치는 놈들도 늘 정해져 있다.), 교장선생님 말씀, 교가 제창, 폐회, 그리고 학생부장 말씀, 학년부장 말씀, 욕설이 난무하는 건 예사고(야, 이색기야, 줄 똑바로 안서? 열역학 제2법칙에서 물질의 운동은 엔트로피,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했거늘...) 간혹 비라도 내려서 교실에서 조회를 하면 학교장은 상당히 불쾌해 한다.

권력이 강하다는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라고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단다. 정말 무서운 것은 80년대의 파시즘이 아니다. 그 때는 어정쩡하던 나도 파시즘에 적나라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즈음은 정말 사회 구석구석 레드컴플렉스와 파시즘의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있음을 볼 때 정말 무서운 권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 학교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한겨레 21과 씨네 21을 학교 예산으로 정기구독하려고 했다. 학교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서는 그런 책은 안 된다고 하셔서 현재 옥신각신 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 책들을 읽어 보기라도 했을까? 한겨레라는 말에 레드 바이러스라도 붙어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들의 눈에는 빨간 신호들이 들어온 상태다. 불온 문서를 도서관에 비치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이왕에 구독하던 우리교육도 심의 한다는 소문이다. 정말 아뜩하다. 월간조선을 구입해봐야할까? 어쩐다고 한겨레라는 말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단 말인가.

하긴 얼마 전 보수 꼴통들이 모인 자리에 개량한복을 입고 갔더니(난 보통땐 잘 안 입는데, 그 날은 발표한다고 큰 맘 먹고 추석 다음 날이라 입고 갔는데...) 유명한 대학 교수가 '자네 전교존가?'하고 바로 물었다. 내가 아무 생각없는 듯이, '네' 했더니 상당히 불쾌해했다. 웃기는 짜장도 이 정도면 심하지 않은가.

'수직적인 지배의 아비투스를 수평적인 우애의 아비투스로 대체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는 이 말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지배 담론의 파시즘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평화의 세상을 희구하는 것이 혁명이란 말인게다. 그런데, '아비투스'란 말을 아무 주석도 없이 휘갈겨 쓴 것은 수평적인 우애의 행동일까? 대학 나와서 선생까지 하고 있는 내가 인터넷에서 아비투스(habitus)의 뜻을 찾아 한 시간을 공부한 그 어휘를... 정말 요지경이란 생각 뿐이다.

\ \ \ \ \ \ \ \ \ \ \ \

다음은 네이버 검색에서 찾은 <아비투스>의 설명이다.

.....부르디외는 '객관적인 계급구조와 행위자들의 취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발견해, 구조와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란 개념을 사용한다. ..  이것은 문화가 계급과 지위의 차이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 기제이다. .....

whowho96님의 블로그에서 찾은 <아비투스>의 간단한 설명.

아비투스는 사회적으로 틀지어진 일정한 성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향은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인식, 판단, 행동 양식들의 혼합물이다. 아비투스는 학교교육, 가족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을 통하여 만들어진 사고, 인지, 행동, 그리고 습관의 무의식적 틀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식 및 행위고조 체계'인데, 일상적 삶을 통해 형성되고, 형성된 아비투스는 다시 일상적 생활을 규정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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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0-0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가 아니라 군대죠. 또 다른 군대. ㅜㅜ

드팀전 2004-10-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이 책이 나오고 일상적파시즘에 대한 논쟁이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임지현,문부식을 필두로한 당대비평과 김진석교수의 사회비평 논자들간의 논쟁이었지요.당시 아주 재미있게 이 논의를 지켜봤던 기억이 나는군요.거기에 또 임지현의 조선일보 기고와 관련해서 강준만아저씨의 강단좌파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어쨋거나 한가지 국가주의와 조직우선 사고가 만연하 우리 근대의 모습에 일상적 파시즘 논의는 의미있는 문제 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로드무비 2004-10-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멋져요.
잘 읽고 갑니다.
옛날 당산동에 전교조 사무실이 있었는데
제 여동생도 부산에서 학교 선생이랍니다.^^

글샘 2004-10-1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 맞아요. 군대아닌 군대. 교복에 조회에... 폭언과 폭행까지...
드팀전님/ 파시즘은 논의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거였죠. 블랑카를 바라보는 우리 안의 파시즘. 무섭습니다.
로드무비님/ 전교조도 하나의 파시즘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일하는 유연함이 있어야 파시즘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