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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표지에는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 그 감동의 기록'이라고 적혀 있어서 헬렌과 스코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헬렌이 쓴 자서전이고, 그의 생에서 가장 굵직한 선은 스코트의 그것이었다. 젊은 시절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던 헬렌이 우연히 스코트와 만나 살아낸 오십 여년의 이야기, 헬렌에게서 듣는 스코트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죽음에 관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공병우 박사'를 꼽는다. 그분은 진정 죽음을 자유롭게 맞으신 분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당신의 시신을 후학들에게 기증하신 그 큰 사랑은 자유로운 영혼이 누리는 마지막 사치가 아닐까.
난 간혹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죽는다. 주변에 가족과 지인들이 서로 연락을 하고 모여들어 끼리끼리 술을 마시며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한다. 구차하다. 그리고 비싼 영안실에서 오들오들 추위에 떨다가 낯모르는 녀석들에게 질끈 동여매인채 입관되고, 덜컹거리는 버스 트렁크에서 쳐박혀 있다 화장터 뜨거운 불가마로 들어간다. 이런 건 죽는 게 아니다.
"나는 동물들이 흔히 택하는 죽음의 방식,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어나와 스스로 먹이를 거부함으로써 죽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이것은 스코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헬렌의 기록이다. 황동규가 풍장에서 노래한 것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놓치기 싫은 구절들을 기록함으로써 그에게,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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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가을 산을 어떻게 혼자 넘나. 우리 둘이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평범한 우정 이상이 있었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미처 몰랐던...
속된 삶 -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성공하고 유명해진다.
양심을 지키는 삶 - 소명에 따라 행동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정의롭게 된다.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
네가 일을 시작할 때 다음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곧 사람은 경제적인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문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이다.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지적인 완성에 도움이 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교훈을 젊은 시절에 마음에 새겨두는 것은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품은 사람은 그의 세대에서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 하지만 홀로 된다고 해서 후회하는 법이 없다.
1.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2. 나는 사교춤과 야회복을 포기하며 이것들로 대표되는 생활을 멀리하겠다.
3. 나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성공적인 강연자 노릇을 포기하겠다. 윌리엄 하드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두세 가지 그럴듯한 보기를 들어 주제를 설명한 다음 극적인 몸짓을 써서 끝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며 돌아오기 마련이다.”
4. 나는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드높이는 일에 헌신하겠다.
톨스토이와 자기 포기, 소크라테스와 이성의 법칙, 소로와 간소한 생활, 마르크스, 엥겔스와 착취에 대한 저항, 간디와 비폭력, 부처와 무애, 빅토르 위고와 인도주의, 예수와 사회 봉사, 공자와 중도, 리처드 버크와 우주 의식, 윌트 휘트먼과 자연주의, 에드워드 벨라미와 유토피아, 올리브 쉬라이너와 풍자...
희망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나으며, 가장 위대한 성공은 일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삶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면, 당신을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성취해야 할 것이 바로 실패였다.
스코트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지배계층의 프로젝트 : 착취
- 기술 : 1. 물건축적 2. 마약제조 3. 속임수
- 결과 : 1. 지배계급에 종속 2. 망각 3. 타락과 붕괴
자유론자의 프로젝트 : 해방
- 기술 : 1. 검약 2. 금욕주의 3. 목표 설정
- 결과 : 1. 자립 2. 에너지 보존 3. 성장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때에,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스코트는 그냥 마시고 떠들 뿐인 ‘파티’에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을 낮게 보았으며, 거기서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할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하고서 곧 나왔다. “제가 쓸모가 있을 때만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 그런 초대에 보통 하는 응답이었다.
놀이와 재미에 대해서는 어떤가. 흔히 받은 그 질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놀이이자 즐거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스코트는 ‘재미’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나친 재미는 모든 일을 메스껍게 한다. 재미보다는 유쾌함이 좋고, 유쾌함보다는 행복이 낫다.’
풍장(風葬)1
- 黃東奎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시집 ꡔ풍장ꡕ,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