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천님의 김제동연구 #1
 
TV 연예 프로를 잘 안보는 관계로 연예인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오늘, 이즘 뜨고 있다는 김제동에 대해 논한다고 하는 일이 과연 적절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딸 아이 보고 있는 프로를 곁다리로 보며 웃다가 ‘아! 진정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인간상이구나!’하고 느꼈기에 우선 보이는 몇 가지만 언급하겠다.

------------- 김제동 신상 ------------------
이름 : 김제동
출생 : 1974년 2월 3일
신체 : 키: 171cm, 체중: 65kg
가족사항 : 1남 5녀 중 막내
학력 : 계명전문대 관광과
데뷔 : 1994년 문선대 사회자
출연작 : KBS 폭소클럽, SBS 야심만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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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말 우리 이웃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평범 중의 평범한 사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떴다.
그냥 뜬 것이 아니라 대박을 터뜨릴 정도로 떴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나의 분석을 전개해 보았다.

1. 김제동식 대인관계 유지법

김제동은 솔직하다.
자신의 가난을 감추지 않고 자신의 못남을 감추지 않고 자신의 치부를 오히려 장점으로 치환시키는 능력이 있다.
누구나 김제동을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는 아무리 마주 하여도 김제동 자신의 잘난 점을 부각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김제동보다는 잘났으며 김제동보다는 가진 게 많은 것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김제동을 만나면 도대체 두렵지 않다.

사람들은 언제나 열등감을 가질 때 증오심과 시기 질투가 작용하는 것이다.
김제동은 애초부터 상대방이 자신을 만났을 때 우월감만 가지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김제동의 인기의 비결 중 제1은 자신의 낮춤이다.

2. 김제동식 언어구사법

김제동은 촌철살인의 언어 구사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무한한 노력의 결과이면서도 부단한 연구와 연습이 따르지 않으면 가동되지 않는 프로의 것이다.
김제동의 언어 순발력을 보노라면 선천적이라기보다는 멈추지 않는 노력이 더 많이 보인다.
홈런왕의 홈런 신기록에 우리는 환호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을 알지 못한다.
밤마다 수천 개의 노크 배트를 휘둘러야 하고 우리가 휴식하는 시간에도 체력 증진을 위한 그들의 개인 연습이 없이는 야구장을 뒤흔드는 환호성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같이 김제동의 숨은 노력을 보아야 한다.

어떤 어법이 이 시기와 이 장소에 가장 적절한가 하는 부단한 연구가 없다면 ‘김제동 어록’과 같은 개인 어록이 회자될 리 없기 때문이다.
실제 김제동 어록을 살피면 대부분 고사성어나 위인들의 일리 있는 말씀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창작한 내용도 상당수 있으나 대부분 응용, 활용한 것이거나 이미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유독 김제동이 입에 올리면 그게 히트되고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까닭이 무언가?
장소와 시간과 만나는 사람들과 그것을 듣는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새로운 재생산 매카니즘이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또 김제동은 이즘 시대에 맞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잘 활용한다.
사람에게 감성적으로의 접근이 더 잘 먹히는 시대이니 만큼 유머러스한 스피치나, 목소리, 태도, 표정, 미소, 이미지 등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데도 뛰어나다.
오버가 아닌 겸손 자세로 있다가 어정쩡한 태도로 액션을 취하면 좀 어설픈 듯한 그 모습이 사람들의 접근을 더 쉽게 해주는 것이다.

3. 김제동식 데이터베이스

김제동의 머리는 아주 훌륭한 데이터베이스다.

대개 인간의 두뇌는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구조의 데이터 관리를 하고 있다.
가장 간단한 홑알 구조 - 이것은 ‘A는 B’라고 하는 단순 사실을 기억하고자 하면 그 지식 하나만을 달랑 저장한다.
대개 어린 아이들의 구상적 기억이 여기게 속한다.
또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의 단순 기억도 여기에 속한다.

조금 나은 구조가 선형 구조다.
한 가지 사실과 두세 개의 지식이 결합된 구조인데 일반적으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다.
사고 능력이 처지는 사람들은 이 선형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현재까지 가장 발달한 데이터 관리 방식이 트리 구조이다.
아무리 복잡한 지식이라도 이미 저장된 데이터 그룹의 하부 디렉토리를 구성하여 묶어 놓으면 구성과 검색이 자유스럽다.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이 트리형 구조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데이터 관리 구조상 최고의 효율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김제동의 머리도 트리형 구조이며 컴퓨터를 닮았느냐고?
아니다.
김제동은 감히 컴퓨터가 따라 올 수 없는 인간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김제동의 두뇌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로서는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름하여 그물망형 두뇌 구조다.

김제동은 새로운 지식이 공급되면 어느 디렉토리의 하부에 그 데이터를 분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검색 시스템에 의해 관련된 모든 데이터와 수평적 관계를 성립해 놓는다.
마인드 맵핑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선형이나 트리형 구조의 맵핑이 아니라 입체 구조인 그물망형 마인드 맵핑 구조이다.

김제동의 데이터라 함은 문자나 기호화된 지식만 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감각, 소리, 느낌까지도 전부 데이터가 되어 저장된다.
김제동이 인용하는 말 속에는 자주 효과음이나 흉내와 느낌을 포함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언뜻 대단히 복잡하여 효율이 떨어질 것 같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컴퓨터에 공급된 지식은 컴퓨터 자체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2진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언제나 데이터의 문자화 기호화가 필연적이지만 김제동의 처리 방법은 가장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비언어적인 기억 소자(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이웃집에 불이 났다.’라는 상황을 기억한다고 하자.
컴퓨터는 문자열로 바꾸어 한 줄 기억하면 끝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불이 났다.’라는 문자열로 기억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뜨거운 열기, 붉은 화염, 불자동차의 사이렌 소리, 희생자 가족들의 울음소리들로 기억되는 것이다.
인간이 기억하기 쉬운 구조는 문자나 기호가 아니라 이미지(소리, 느낌, 감각, 감성까지를 포함하여)인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문자를 사용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자가 없었던 시대의 기억력이 더 우수했다.
오늘날도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역사는 전부 이야기식 기억으로 전수해 주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기억력은 놀랄만한 양과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 한다.

인간은 정보 교환의 필요성을 인식해서 그 수단으로써 언어와 문자를 개발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애초부터 기억요소로 삼은 것은 문자가 아닌 이미지라는 것이다.
컴퓨터는 인간보다 문자나 기호로의 치환이라는 가공 단계를 하나 더 거치는 셈이다.
그러니 김제동이 활용하는 인간 두뇌의 효율에 컴퓨터가 감히 따라 올 수 없음은 당연지사다.
[여러분들도 댁의 자녀 학습에 문자나 기호화된 교과서의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이미지로 치환시켜 받아들이도록 훈련시켜보라. 학습 효율이 열배는 뛸 것이다. - 하시라도 문의하시면 자료 풍부함.]

4. 김제동식 재생산 매카니즘.

모든 데이터의 관리는 올바른 분류, 강력한 기억, 빠르고 효율적인 검색 시스템, 그리고 재생산 매카니즘들이 결부되어야 우수하다고 한다.

김제동의 머리 속에서 어떤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다하면 복잡한 트리구조의 라인을 따라 검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상황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다.
그물망형 데이터 구조가 아니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관리 구조이다.
이 데이터 중에서 그 장소와 시간, 상황, 대상의 사람들에 대한 파악과 동시에 선별된 데이터가 자신의 언어 구조와 결합하는 것이다.
언어 순발력, 촌철살인의 몇 마디 말의 재생산 시스템은 이렇게 가동되는 것이다.

김제동의 눈빛을 보자.
안경을 벗어 보이며 못났다고 한 바로 그 눈이다.
김제동의 눈은 언제나 빛나고 있다.
김제동의 눈은 항상 주시하고 있다.
눈빛이 살아 있다는 것은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가장 인간적인 그의 인간형 컴퓨터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가동된 결과물을 내 뱉을 때의 표정을 보았는가?
사람들은 일제히 집중하여 기대를 한다.
항상 기대보다 더 극적인 말들을 뱉어내는 그의 입을 보는 것이다.
김제동의 말은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 가장 훌륭한 방법을 사용한 재생산물이다.

5. 김제동식 논리 구조(귀납적 추론의 귀재)

김제동은 남보다 먼저 말하는 법이 별로 없다.
아니 먼저 얘기하는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언제나 듣고 있다.
그 시간에 김제동의 가치는 올라간다.

먼저 남의 말을 들어 주는 겸손함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일으킨다.
요즘같이 제 말만 하는 세상에서 들어 주는 일이야 말로 대단한 인간 관리의 장점이다.

정치마당에서 ‘마지막 결론을 내는 사람은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듣는 동안 김제동의 인간형 컴퓨터는 부단히 가동되어 데이타베이스의 분류 검색 재생산 시스템까지 다 거친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야심만만’이라는 프로에서 유달리 김제동만이 순위를 정확히 맞히는 까닭을 단순히 ‘김제동의 머리가 좋다.’라고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가동된 결론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정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김제동식 경험 구조(즐거움을 가미한 기억으로 저장).

가난한 김제동
못난 김제동,
뛰어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고생 많이 한 사람이다.

그의 경험을 보면 책을 몇 권을 써도 부족할 만큼 어려운 환경을 디디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언제나 즐거운 얘기 밖에 없다.
현실은 고통스러웠으되 그 고통을 즐거움으로 치환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오히려 데이터베이스를 두뇌 속에 구축할 때부터 아예 즐거운 기억으로 저장시킨다.
아니면 그런 얘기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술술 나올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일을 회상할 때는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김제동은 웃음으로서 나타낸다.
신선하지 않은가?
서울 처음 와서 택시 잘 못 타서 헤멘 얘기도 술술..
이 나이되도록 서울 구경 한번도 못한 바보인 자기를 의식했다면 나올 수 없는 얘기다.
누구나 김제동의 앞에 서면 더 가진 자가 된다.

김제동은 낭만적이다.
그의 언변은 종합적인 낭만 시스템이다.
낭만은 즐거움을 동반한다.
즐거움의 구성은 역논리와 짜릿한 감성의 표출이다.
역논리란 무논리와 다르다.
논리를 알아야 역논리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도 구상을 알아야 비구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김제동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인간형컴퓨터에서 완벽한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역논리를 생성한다.
어느 누가 이런 시스템을 따라 갈 수 있겠는가?

대개 감성에는 선천적 요소, 경험하는 환경에 의하여 생성된 요소. 자신이 노력하여 다가가는 요소 등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면 이 세 가지의 모든 감성 요소의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이는 김제동 밖에 없다.
가진 것과 겪은 것과 노력한 것의 융합은 눈에 보이도록 선명하다.
그만큼 노력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과물을 보면 그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아! 새로운 낭만파의 등장이여.

-- 김제동을 보며
가장 인간적인 시스템을 이용한 인간형 컴퓨터의 소유자다.
그는 개그맨이나 어설픈 방송인이 아닌 고도로 인간적인 면이 집적된 인간형컴퓨터 모델이다.
그의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는 순발력만 가지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창작물이다.
누구의 언어를 차용했던 누구의 사유를 대치해 왔던 오늘 그는 가장 낭만적인 창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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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에 올려진 글이다.법천님을 알지 못하지만 분석능력이 대단하시다.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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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6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제가 깁제동의 왕팬입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멋진 글을 보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퍼갑니다.^^

글샘 2004-09-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제동이란 사람, 참 멋있지 않나요?
전 그 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저 사람이 국어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안 잘수도 있겠다...고요.
국어선생님이 맨날 농담 따먹기만 연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정말 그렇게 정신 번쩍 나는 수업이 되도록 연구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김제동 참 좋아해요.
그런데, 왕팬이 깁제동이라 하심은... 너무 흥분하신 듯.

로드무비 2004-09-08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깁제동이라니!ㅎㅎㅎ
이벤트에도 응모하려고요.^^

북극곰 2012-05-0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나뭇꾼님글에 올려놓으신 거 보고 따라왔다가
"깁제동" 대화보고 빵~ 터져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샘 2012-05-08 20:13   좋아요 0 | URL
ㅋㅋ 근데 왜 죄송하신데요. ^^
 

▶ 초식형 인간으로서의 김제동
김제동이 초식형이라니...
김제동이 풀만 먹고 산다는 얘긴가?
그게 아니다.

무릇 동물들은 초식성과 육식성으로 나뉜다.
초식성 동물과 육식성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눈의 위치와 어금니의 생김새다.
사자, 치타, 표범 등 육식성 동물의 두 눈은 얼굴의 전면에 위치하여 눈의 사이가 가깝다.
목표로 하는 먹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사슴, 기린, 소 등 초식성 동물은 두 눈의 사이가 너르다.
항상 자신들을 노리는 육식성 동물들을 살피기 위해서다.
올빼미, 부엉이, 독수리 등 육식성 조류의 두 눈 사이는 가깝다.
공격적이며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기러기, 쇠오리, 비둘기 등 초식성 조류의 두 눈 사이는 넓다.
참으로 착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가?

사람도 같다.
두 눈의 사이가 가까운 사람들은 육식형 인간으로...
두 눈의 사이가 너른 사람들은 초식형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관상학에도 나오지만 육식형 인간들의 성향은 공격적인 면이 많고, 초식형 인간들의 성향은 내성적, 수동적이며 성품이 부드럽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김제동이 안경을 벗으면 초식형 인간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나 강호동의 얼굴과 비교하면 더욱 확연하다.
김제동이 남을 공격하는 액션을 취하더라도 하나 무섭지 않은 것은 그가 초식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 좋은 강호동이라 하더라도 약간의 액션만으로도 그에게서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육식형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김제동은 소나 사슴과 같은 성품을 가진 초식형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오며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에게든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다.

▶ 말짱 뇌짱으로서의 김제동
말짱, 뇌짱...
무슨 말인지 금방 알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로 하여 김제동을 따를 자 감히 없다할 정도로 그의 언어구사법은 극적이다.
온통 얼짱, 몸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외모가 아닌 것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이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
얼굴이나 몸과 같이 선천적이며 외모지상주의에만 얽매어 있는 사회현상에서 그만큼 가치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작은 눈, 못난 얼굴, 작은 몸, 구부정한 자세, 숏다리 임에도 불구하고 게스트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호감을 나타내며 장래의 신랑감으로 은유를 하는 등 새로운 짱의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얼굴 잘 생기고 멍청한 인간,
긴 다리에 몸매 쫘악 빠지고 모자란 인간,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도 골이 빈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정말 인간적인 수단인 말로써 승부를 거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김제동의 인기는 그가 김제동이기 때문이다.
김제동만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캐릭터는 기존의 인기 공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가 뇌짱인 이유는 설명이 길 필요가 없다.
누구나 그를 보고 머리가 좋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물론 가정환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그런 인재를 인재로서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만 달달 외운 인간, 문제풀이에만 매달려 공식만 적용시키려는 인간들만 양산 시키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재 발굴에 있어서는 제로에 가까운 비효율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뇌짱으로서의 그의 두뇌 활용법은 이 나라 미래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열린 교육이니 어쩌니 하여 교육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이 때 그의 학습 방법을 교육에 반영하여 교육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올 법하다.
그의 두뇌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그 운영법은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슈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생활, 경험, 인간관계 뿐 아니라 보이는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학습 대상이다.
교과서에만 묶여 있는 공적 교육의 맹점을 학습자의 시야를 확장함으로 해서 지식의 양과 깊이와 그 활용도를 넓히는 모범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만의 학습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극적으로 극복한 표본이 김제동인 것이다.
이만하면 김제동 연구소 하나 따로 차려서 이 나라 교육을 뒤바꾸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요리사로서의 김제동
낚시 채널에서 라면 먹는 걸 봤다.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이 미치게 맛있단다.
때마침 나는 아침 먹은 직후라 배불러 있었기에 다 불어 터진 라면에 끌릴 리가 없었다.
요리란 이렇다.
제 배 부르면 쳐다보기도 싫은 법이다.
그런데 그 곳에 김제동이 있었다면...
아마 나는 내 배 부른 것도 잊고 그 라면이 먹고 싶었을 거다.
그렇다.
어떤 음식도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자 - 김제동이다.

그가 요리를 잘 하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이 먹으면 무조건 맛있을 것 같다.
이보다 더한 요리사가 또 있는가?
어떤 음식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재주는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가 요리를 잘 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또 있다.
음식은 우리가 입에 맞도록 잘 가공하여야 영양섭취도 쉽고 양도 많이 먹을 수 있다.
배고프다고 배추 한포기 생으로 먹고 날고기 한 근을 그냥 씹어 먹지는 않는다.
갖은 양념을 하여 적당히 익히고 조리하여 보기 좋게 상에 올려놓아야 잘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입에 맞는 음식에서는 벼라별 재주를 다 부리면서도 기타 생활에서는 이런 가공 법칙을 전혀 적용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당장 지식의 습득과정만 해도 김제동식 입력방법을 가동하면 그 효율이 몇 배로 불어날 것이다.
아이들 공부하라고 하면 교과서 문장 외우기에 전념하다가 그 재미없음에 포기해 버린다.
몇 시간이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도 머리 속에 입력된 정보는 ‘0’ 상태다.
그건 문자를 문자 자체로 입력 시키려 하니 날배추 한포기, 날고기 한 근을 생으로 먹는 것과 같다.
문자라는 지식을 만나면 양념을 하고 익히고 우리 두뇌가 잘 섭취할 수 있는 갖은 방법으로 조리하여 섭취된 김제동의 지식은 바로 살아있는 요리다.
그 요리의 조리사가 바로 김제동인 것이다.
같은 재료 같은 맛의 요리를 만들어도 김제동이 요리하면 그리도 맛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의 어록에서 이미 체험하지 않았는가?
김제동에게는 "지식 가공 요리사"라는 신종 자격증을 수여해야 한다.

여러 상상력과 연상법을 이용하여 재가공된 지식을 즐거움이라는 양념을 가미하여 자신의 수평적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시킨다.
그의 정보 가공력에서부터 입력 시스템, 정보 저장 방법, 재생산 매카니즘에 대해서는 ‘김제동 연구 1편’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는 세상사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입맛을 알기에 그의 요리방법은 성공을 하는 것이다.
정녕 그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떡볶이를 같이 먹어도 까물어치게 맛있게 먹는 비법을 그는 알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깜빡 죽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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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아는 김제동

사랑의 정의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김제동만큼 적절한 표현을 찾아 나타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김제동은 사랑을 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렇게 절절한 사랑의 표현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어록의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사랑이란 무언가?
남녀간의 사랑만 사랑인가?
사랑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원천적인 모습은 어떤 것인가?
역사 이래로 인간의 공감을 극적으로 끌어낸 수없는 명작들 중에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 러브스토리 - ‘사랑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 빙점 -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 하는 것이다.’
아예 성경을 인용하자.
- 고린도 전서 13장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 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보라.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은 나눔과 베품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완성이다.
사랑은 가진 것을 나눌 줄 알고 베푸는 법을 알면 거기서 얻어지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도 같다.
김제동 인용하는 사랑에 대한 명언 명귀들의 공통점은 다 이에 기초한 것들이다.
그러니 공감할 수밖에..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김제동의 말에 공감하고 감동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는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욕구와 항상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거기서 일어나고 슬픔과 불행의 씨앗도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정녕 사랑한다면 제 욕심의 10%만 챙기고 90%를 주라.’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제 욕구만 챙기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려면 ‘뭘 가진 게 있어야 나누어 주지.......’ 라고 생각하는가?
가진 자가 더 나누고 베풀 줄 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거지들 중에서 압구정동 거기가 가장 가난하단다.
가진 자들은 움켜 쥘 줄만 알았지 아무도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 없는 자들이 오히려 조금씩이나마 쪼개어 같이 쓸 줄 안다.

김제동은 원천적으로 가난을 겪었고 많은 식구들 틈에서 같이 부대끼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래서 잘 나눈다.
나누고 나서 그 나눔의 결과를 같이 즐기는 여유까지 있다.

마지막으로 김제동의 멘트 하나.......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경상도 남자가 가장 하기 힘든 말로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인생을 아는 김제동

김제동은 솔직 담백 겸손하다.
김제동에게서는 천재라거나 미남이라거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건장함은 없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편안함만이 묻어난다.
‘뚝배기 장맛’
그렇다.
그건 된장 맛이다.
그의 사투리도. 그의 말투도, 그의 미소도, 그의 어눌한 액션도 다 된장 맛이다.

그의 편안함에는 평범한 ‘대중으로서의 나’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
1남5녀 중 막내인 그는 생후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누나들 손에 자라면서 고등학교 시절 공사장 막일과 룸살롱 웨이터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그는 “돈을 많이 벌면 트럭을 동원해 꼭 집 앞 시장에서 할머니들께서 파시는 나물을 싹쓸이해 사고 싶었다”고 고백할 만큼 고생을 해봤다.
10여 년간 가슴에 별처럼 간직하고 있는 열병 같은 사랑도 겪어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주 솔직 담백하다.
그 어려운 삶의 질곡을 거쳤으면서도 그것을 나타내는데 한번도 주저함이 없었다.
다음 글은 김제동도 보았으면 좋겠다.
그가 이렇게 살아온 게 아닌가 한다.

“벽에 부딪치면 발밑을 쳐다보세요.
신은 잡초나 벌레로 모습을 바꾸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발밑을 쳐다보면서 신이 가르쳐 준 길로 걸어가세요.
왜 나에게는 따뜻한 햇살이 비추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밝은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휩싸일 때는 발밑을 쳐다보세요.
햇살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콘크리트 틈새에서도, 기를 쓰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한줄기 잡초가 보이지 않으세요?
또한 어두컴컴한 그늘 속에서도 묵묵히 기어가고 있는 작은 벌레가 보이지 않으세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부딪치면 발밑을 쳐다보세요.
신은 틀림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때로는 벌레처럼, 때로는 잡초처럼 살아오다가, 마침내 그는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 小眼者平天下(소안자평천하) 작은 눈을 가진 자가 천하를 평정하리라.-
- 꿈을 꽉 붙들어라. 스스로 의심하여 그 꿈이 사라지게 하지 말라.-

김제동의 인간미를 알 수 있게 한 그의 일기를 인용한다.
“몇일 전 대구 내려갔다가,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 갔다가 그 술집에서 저에게 술에 약간 취해서 ,제가 중요한 통화를 하고 있을 때 막무가내로 잡아당긴 분에게 약간의 화를 낸 것이 오늘 갑자기 좀 맘에 걸립니다.
혹시 제가 처음 가졌던 마음보다 요즘 저도 모르게 연예인이 돼 가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제 조금 건방이 드는 건지....
그러지 않도록 처음 출발하고 , 노력하고, 어떤 경우에서도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절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한 사람 , 한 사람 모두에게 다 잘 할 순 없을지라도 , 무대위에 서서 이야기 할 때 절 바라봐 주셨던 많은 분들의 눈동자를 잊지 않고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받았던 소중한 생각과 웃음과 고마움들을 방송을 통해서 좀 더 많은 분들에게 돌려드리고자 했던 , 그리고 제일 가까운데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했던,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제가 가진 소중한 신념들이 깨지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진정 감사함을 놓치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던 것이다.

-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다.
인간의 영혼은 고통의 숨결 속에서 발육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반대말입니다. - 에셀 바하 -


▶철학을 아는 김제동

그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철학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웃음이 웃음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어록이 널리 회자 되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철학의 깊이도 적지 않다.
탄탄하다. - 다른 표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초가 잘 마련된 철학이다.
도대체 어찌 이 젊은 사람의 철학이 어찌 이리 단단할 수 있을까?

똑같은 이유로 그의 삶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항상 행복한 사람들은 항상 즐거운 기억만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도 슬프고 힘든 추억이 있다.
예를 들어 자가용을 못 타서 100m를 걸어간 것만 해도 엄청난 고통이었다는 식이다.
불행이라고 느끼는 일의 깊이가 달라 진정한 의미의 인생은...절대로 알 수 없다.
배고픔의 고통을 아느냐고...
누군가 밥 굶어 봤다고 떠들지만 아무에게나 철학으로 재생산되는 건 아니다.
진정 밥을 굶는다는 일의 고통은 오늘 저녁을 굶으면서 내일 아침 때꺼리가 없고 점심도 저녁도 해결할 일이 막막하다는 절박감이 더해 올 때다.
철학은 이럴 때 생겨난다.
항상 단 맛 나는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쌀알 한 톨을 씹을 때의 달콤함을 모른다.
절실하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아름다움들이다.

고난과 갈증을 겪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코 겪은 일을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양식의 변화야 여러 가지겠지만 ‘고난을 잊지 않고 있음’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새로운 재생산물을 우리는 창조로 보아야 한다.
김제동의 창조력의 바탕에는 그가 겪은 우리 서민들의 경험들이 다분히 깔려있다.
그래서 김제동은 아는 것이 많다.
자신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리고, 낮추고, 슬픈 경험을 자연스럽게 토로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바탕은 그의 철학적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최민수가 말했다지. 김제동에게...
“너는 동양의 탈무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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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의 유럽 기행

 

교육청의 예산으로 유럽을 돌아보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모두 네 나라를 구박십일일동안 여행하였다. 오랜만에 푹 쉬면서 맘껏 이런저런 혼자의 생각을 할 기회가 주어져 정말 행복했다. 그 생각의 편린들을 몇 달 후면 놓치게 되기 쉬워 간단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제1일. 해를 따라 서쪽으로

2004년 8월 10일 부산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내려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것이 오후 두 시. 지금의 내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어 배는 더부룩하고, 시속 1000킬로미터로 날아도 해를 따라잡지 못한 대한항공은 이제 석양을 보며 날고 있다. 바다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의 구획진 논밭과 짙푸른 흑해를 날개 아래 드리운 하늘 위. 늘씬해 보이는 날개는 자세히 보면 수많은 나사들로 조립되어 있다. 비행기 날개 조립 나사공 이야기를 떠올린다. 너무 머리가 좋으면 꾀를 부려서 나중에 박는 나사는 불량이 되고 결국 사고를 부른다고, 해서 늘 아이큐 70의 사람을 나사공으로 뽑는다던... 제잘난 맛에 살던 내 어리석음이 구름처럼 흩어진다. 양력의 원리를 이용해서 뜨고 난다는 비행의 원리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큰 쇳덩이가 떠서 난다는 사실만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도 시속 천킬로미터라니... 마이클 무어의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를 읽다. 지루한 열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어준 무어에게 땡큐. 2004년 10월의 부시2를 위해 그는 투쟁의 깃발을 든다. 멍청한 백인들의 아집을 폭로하고, 진정한 자유주의 국가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우렁찬 양심인듯 하면서도 왠지 소외되어 보인다. 무서운 범죄자가 지배하는 나라. 그리고 국민들의 대다수가 자유주의자인 나라. 그러나 지도자가 없는 나라, 미국의 모습은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구름으로 무섭고 두려움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영국의 런던 히드로(Heathrow) 국제공항에 내린 것이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한시, 현지 시각은 9시간 뒤지만 썸머 타임을 적용해서 여덟시간 뒤가 된다. 도착한 시각은 오후 다섯시 경. 인천에서 찌는 듯한 더위를 등지고 왔는데 런던의 날씨는 선선한 전형적 초가을 날씨였다. 동심원 구조로 된(중심이 1 zone, 다음이 2 zone...) 런던의 첫 인상은 숲이 우거진 평원이었다. 산이 보이지 않는 잉글랜드 지역의 평야와 잘 가꾼 나무들, 오래된 나무들... 그런 것이 부러웠다. 영국은 특이하게 차량이 좌측통행하는 나라다. 그래서 횡단보도 건너기가 신경쓰인다. 하지만, 금세 적응되었다. 그 이유는 차가 뜸하면 무단횡단 해도 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차보다 우선이라는 생각. 재미있는 것은 차선을 자로 잰듯이 반듯하게 그리고, 글씨도 각지게 고딕체로 쓴 우리 도로표지와는 다르게, 삐뚤삐뚤하게 차선을 긋고 글씨를 썼다는 것이다. 달라서 재미있는 것도 있고, 낯선 것도 있다. 시차가 적응이 안 되어 새벽 세 시 정도 되어 자다. 첫날은 서른 두 시간을 산 셈이다. 9000보 걷다.

 

제2일. 전통의 도시 런던

잠을 설치고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런던 엑셀지구 노보텔에서 자고 그 앞의 빅토리아 도크위의 삐걱거리는 다리를 건너 캐닝타운(통조림 공장이 많아서 canning town.) 주택가로 조깅을 나가다. 조그만 공원을 잠궜다가 여섯시 십분에 열었다. 여기도 잠그지 않으면 관리가 안 되는 모양이다. 공원 안의 놀이터가 예뻤다. 작은 공원이지만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발길에 채이는 아침 이슬들, 그리고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다니는 것은 외국 여행의 또 한 재미였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결심한 것이 일정상의 여행은 그 나라의 과거를 보는 역사기행이기 쉽지만, 나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숙소 주변을 돌아 보며 그 사람들의 사는 현재의 모습을 보고 오리라던 것이었기 때문에... 매일 달렸다. 우리가  카드에서 자주 만나던 집앞과 창가의 제라늄, 장미, 이름도 모를 숱한 예쁜 꽃들... 이름이 없어도 그대로 예쁜 그 존재들을 보면서, 팍팍한 우리 삶을 돌아보았다. 우리도 오십년 전에는 집안팎과 세상이 온통 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식민지와 전쟁이 남긴 폐허와 복구 뒤의 아스팔트, 시멘트 건물들의 팍팍한 모습이란...

영국대사관에 있는 문화원을 방문하기로 되어 우리팀은 단독으로 지하철로 이동하였는데, 자동판매기에서 티켓도 끊지 못하는 우리를 켄싱턴 공대에 다닌다는 제닝스라는 친절한 학생이 표를 끊어주고, 우리를 갈아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런던 지하철을 튜브라고 하는데, 정말 좁고 냄새나는 심히 견디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우연히 앞에 선 아가씨가 등에 문신 새긴 것을 봤는데, 災(재앙재)자를 새겨 신기해했다. 알고는 달고다니지 못할 글자인데... 지하철에서 나오는데 티켓이 걸렸다. 곤란해하는 일행을 본 띵띵한 역무원이 웃으면서 'jump'하는 것이었다. 뛰어넘으라니... 잠시 후 웃으며 그 역무원은 카드를 대서 통로를 열어 주다. 대사관 가는 길을 몰라 곤란해하다가 다시 그 띵띵한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안내판으로 가서 찾아주었다. 우연이었을까. 친절한 영국인 두 명을 만난 것은.

빅토리아 거리를 따라서 대사관을 찾았다. 하루만인데도 태극기와 우리나라말이 그리도 반가웠다. 이화성 문화원장님께서 영국의 교육제도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골자는 자생적 교육이 발달하였고, 지방자치제의 효율성이 학교에도 침투되어 있다는 것. 공교육이 부실하기는 하지만, 신뢰감을 잃지는 않고 있다는 것. 기반이 다르므로 우리와는 다른 것을 인정하고 우리 교육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주5일제 개념은 공휴일이 요일개념이고, 휴가도 종교적 유대와 동일성이 기반이 된 것이므로 우리처럼 음력과 날짜를 정하는 공휴일과는 다르다는 것. 환담을 나누다가 대사관 앞의 알버트라는 전통 영국식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다. 물도 돈 내고 사먹는 나라. 아, 벌써 우리 나라가 그리웠다. 음식은 비싸고 배만 불렀다. 맛은... 느끼(유목민족의 습성때문인지 맛내고 조리하는 것은 꽝이다)- 재미있는 점은 종업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중간에 바꾸거나 취소를 하면 주인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no problem!' 하면서 눈치보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영국인들을 보며, 역시 영국은 노동자가 즐거운 나라란 생각이 든다.

원장님과 헤어지고 교환교수로 윔블던에 머무시는 교원대 함수곤 교수님과 사모님을 만나다. 런던까지 와서 관광을 못하고 교육 토론만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내심 불만이었는데, 함교수님은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채셨는지 가이드를 자청하시며 런던의 구석구석을 짧은 시간에 구경시켜 주셨다. Buckingham 궁의 근위병 교대식은 못 보았지만, 그 통로인 몰(moll), 근위병들의 숙소를 지나, 세인트 스미드 파크를 지나 영국 국회의사당 건물에 도착, 빅벤 구경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도 식민지 정책을 폈으므로 흑인들도 많이 보이고... 험한 일 하는 데는 흑인들이 많다. 마음껏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은 실컷 했다. 살색도 많이 봤다. 다들 내 놓고 돌아다니니 아니 볼 수 없었다. 돌아다니다가 화장실을 만나면 무조건 들어갔다. 런던에는 거의 유료화장실이므로 가이드가 가라면 무조건 가라는 것이다. 화장실 소변기가 따로 없고, 물 흐르는 시설만 된 소박한 것이 맘에 들었다. 찰스황태자와 다이애나 비가 결혼했다는 웨스트 민스터 사원(Abbey)을 보고, 타워가든 파크의 조용한 잔디밭을 지나 로댕의 깔레의 사람들이란 유명한 조각상을 보고, 템즈강변에서 바람쐬다. 골든 주빌레 브리지(환갑이라나)를 건너 워털루브리지(비비안리가 나오는 영화 애수의 배경이 된 다리, 영화의 원제도 워털루 브리지) 지나 트라팔가 광장 가는 길에 템즈 강변에서 십여명의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을 구경했다. 온 몸에 색을 칠하고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그들의 모습은 어지간한 런던 여행으로는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런던의 어지간한 곳에서는 늘 보이는 런던 아이(London eye), 빠리는 에펠탑으로 돈 벌고, 런던은 런던 아이로 돈번다는 관람차. 줄이 한없이 길었다. 그렇게 프랑스와 견원지간이라면서도, 필요한 기술은 옮겨다 쓴다는 합리주의자들. 넬슨 제독의 동상을 뒤로 하고 국립 미술관으로 가서 터너, 루벤스 등의 그림을 감상하다. 식사는 차이나타운의 일식집에서 간단하게 먹다. 차이나 거리의 國泰民安 넉자가 영국인들의 사고와 상반되며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의 민안국태의 정신과. 함교수님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영국에 빗대어 18세가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도 자녀에게 의존하는 사회적 의식이 공교육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고 진단하셨다. 사회적 분위기가 자식에게 과다한 기대를 하지 않고 독립시키는 것만이 한국 교육의 해법이지, 국가적 차원의 접근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 임방크먼트역에서 긍정적이고 소탈하고 친절하고 늘 젊으신 함교수님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숙소로 돌아오다. 안내원에게 어디서 갈아타냐고 묻기까지는 완벽했는데, 히어링이 도대체 안 되는 것이었다. 영어 공부 하려면 똑바로 해야된다는 깨달음. 그리고 하이드 파크, 대영박물관, 타워브리지는 다음을 기약하고 밤비내리는 런던의 마지막 밤에 엽서를 두 장 쓰고 골아떨어지다. 33000보 걷다. 아우, 다리야~~~.

 

제3일, 도버 해협을 건너 빠리로

6시 10분 전 기상하다. 아침을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하고 전쟁을 떠나는 모든 장병들이 모인다는 워털루 역에서 8시 12분발 Eurostar를 타다. 11시 47분 빠리의 Gare de Nord(북역) 도착.(1시간 시차 적용으로 2시간 반 승차). 식사 후 베르사이유 왕궁을 보다. 입구의 가로수 조경, 루이 14세와 16세의 이야기가 얽힌 방들, 프레스코 벽화와 아름다운 기하학적 정원의 조경, 연못과 조각상들의 아름다움. 도저히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어 눈으로 마음에 깊이 들이마시다. 궁전 입장에 단체는 더 비싸다는, 개인 관람객을 고려한 재미있는 발상. 궁전 입장할 때부터 멀리서 축포처럼 들리던 천둥 소리는 정원(궁전에서 내다볼 때 그 아름답던 기하학적 문야의 정원을 보려면 돈을 따로 내야하지만 정말 옆에서 본 정원은 별거 없었다. 영악한 빠리)을 구경할 즈음, 급기야 포병 출신 나폴레옹의 축포답게 거센 소나기를 드리웠다. 궁궐 통로 컴컴한 곳에 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냄새를 풍기며 비를 긋는 중에도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는 그들의 개인주의는 도저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였다. 버스를 타고 기욤의 시로 유명한 미라보다리를 지나 다이애나 비의 죽음이 있던 지하도를 지나 빠리의 무지개를 보며 centre de Ponpedu(뽕삐두 문화 센터)를 견학하다. 푸른색의 환기관, 녹색의 수도관, 황색의 전기배관, 적색의 통로를 건물 외관으로 노출한 사고의 전환이 특이했지만, 화장실이 좁고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은 그들의 음식 문화가 물기가 적은 그것이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우리와 많이 달라서 불편한 점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제9호교(pont neuf)를 지나며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프랑스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버스가 고장 나서 지하철로 유로식당이란 한식당으로 이동하다. 빠리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그걸 사왔으니깐. 홀리데이 인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다. 역시 멋진 조깅코스와 산책로가 닦여 있다. 이 길을 달리지 못했다면, 피곤해서 골아떨어지고 일어나기도 힘들었으리라. 16000보 걷다.

 

제4일, 빠리의 정신, 프랑스의 혼

Paris의 중심 시떼섬의 노트르담 성당을 관람하다. 영혼의 무게를 다는 조각상과 순교자 생드니의 조각이 인상적이다. 생드니 지방은 98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스타디움이 있다는데 8만명 수용의 규모에 절반이 천만원짜리 암표로 채워졌단다. 아, 지리적 조건의 유리함이여. 우리나라 월드컵에는 비행기 탈 시간이 없어서라도 구경오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성당 안을 돌며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보다. 초를 켜는데 작은 것은 2유로, 좀 큰 것은 5유로다.(믿음의 척도는 헌금의 액수다.) 자본의 각박함. 소르본느 대학을 간략히 보고, 국립 도서관을 보다. 그 넓은 공간에 책을 세운듯한 건축물, 채광을 위한 커텐용 나무, 중간의 친환경적 나무숲...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장실의 소변기였다. 소변기에 똥파리를 그려서 '한 걸음 앞으로...', 'one step ahead...',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같은 구차한 문구들을 일거에 처리한 기발한 상상력. 오줌으로 똥파리를 맞추다보면 튀어나갈 염려 없음. 역시 Paris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파리였던 셈이다. 빠리는 하수도가 발달해 있기로 유명하다. 공화국 광장의 마리앤느 동상을 보고 또 먹는다. 자주도 먹고 많이도 먹는다. 빠리의 독특한 점은 차선이 좁은데 체증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캉스 기간이기도 하지만, 주차위반을 하면 135유로(190만원)의 벌금을 낸다니... 주정차 위반 안 할 밖에... 그리고 이 사람들은 아직 이메일보다는 우편이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La poste를 써붙인 노란 우체국차들이 상당히 자주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모바일 폰을 얼굴에 착 붙이고 다니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은 영국, 빠리에서는 볼래야 볼 수가 없다. 걸으면서 전화를 해야할 정도로 애정결핍은 아닌 삶이라 그럴까. 우리나라의 휴대 전화 문화는 연구 대상이다.

오후에는 몽마르뜨(순교자의 언덕)의 성심성당(여기는 10유로짜리 초도 있었다)을 돌아보고 화가의 거리를 둘러보았다. 로마의 포석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날마다 두 번씩 물청소를 한다는 2200킬로미터의 하수도를 가진 빠리의 깨끗한 도로를 보며 샹젤리제(낙원의 들판) 거리를 지나 콩코드 광장을 한 바퀴 돌다. 이 광장에서 1400명의 목이 잘린다. 루이16세, 마리앙트와네트, 로베스 피에르, 그리고 단두대를 만든 기요틴까지. 그래서 이 광장을 피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이집트 람세스 2세때의 오벨리스크를 도적질 해다 이 광장에 박아 놓다.

나폴레옹의 60번의 승전을 기념한다는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을 보다. 50m 높이, 폭 45m의 건축물은 보기에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개선문은 파리 구시가지의 중심으로 모두 방사상의 12개의 방향으로 길이 뻗어있다. 대단한 도시 계획이다. 불과 십년도 안 된 해운대 신시가지의 길들이 난개발로 엉망진창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미래를 생각하는 안목이라 할 만하다. 파리의 그 유명한 하수도는 하루에도 두 번 한다는 물청소를 감당한다. 빅토르 휘고의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을 쫓던 그 하수도...

루이16세에게 성을 빼앗겼다던 후께(Fouguet)는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전하고 있는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며 프랑스 삼색기처럼 적색과 청색으로만 이루어진 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잘 팔리지만 하나씩만 판매한다는 루이비통 가게도 재미있는 풍속도였다. 파리의 구시가지의 중심이 개선문이라면, 신도시의 중심이 라데팡스이다. 1층은 녹지와 건물이고 지하 1층으로 도로가, 지하2층으로 지하철이, 지하 3층은 고속 지하철이, 지하 4층은 고속 도로가 뚫려 있다는 신개념의 도시. 개선문과 일직선상에 놓인 신개선문은 우리 일행은 기가 팍 죽어 조용하게 했다. 미학적이고 실용적인 건물들, 그 기준은 현대적 디자인 감각인 것을 보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를 반성하게하는 건물들이었다.

파리의 서른 일곱개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와 나폴레옹 무덤을 보고 그랑 빨레(Grande palace, 대궁전)와 쁘띠 빨레(Petit palace, 소궁전), 드골 동상을 지나 한국인 식당(Bon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입을 다시고 Eiffel탑을 관람하다. 철거를 생각하고 지었다는 철골구조물이 백년 뒤의 파리를 상징할 줄은 몰랐다지만, 우리의 엑스포 공원은 오래 우려먹을 목적으로 지었지만 철거를 고려해야할 상황인 건 정말 마음 아픈 일이란 자괴감으로 시원한 파리의 경치도 그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면서 프랑스 말, 영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등의 끝에 우리말이 나오는 걸 듣고, 우리 관광객의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실감했다. 하긴, 유람선 선착장엔 우리말 팜플렛도 구비되어 있다.

유람선을 타고 도는 동안 구경한 파리의 다리들은 세느강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록하게할 만 했다. 한강 철교들의 강파른 각도의 견고해 보임과 비교한다면 넉넉한 돌기둥들은 아홉 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한강 다리들을 안쓰럽게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밤 늦게 파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Moulan Rouge(물랭 루즈, 빨간 풍차, 이 풍차를 보면서 개선문이 서있는 열두거리를 떠올렸다.)를 구경가다. 값은 100유로(140,000원). 남들 가는 데 돈 아깝다고 안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따라갔다가 좀 후회했다. 우선 종일 걸은 피로가 몰려들어 밤 열한 시 반부터 시작하는 쇼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고, 삼십분은 족히 서 있었을 긴 줄은 정신을 쏙 빼 놓았다. 자리는 좁고 불편한데 극장 내부도 구질구질해 보이고... 드디어 쇼가 시작되었는데, 무희들이 간혹 가슴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기도 하지만, 음악은 빠리 사랑이고, 주제는 에로티시즘을 가장한 내셔널리즘이었다. 샴페인은 맛있었고 춤보다는 서커스가 멋있었다. 18612보 걷다.

 

제5일. 아듀 빠리

오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다. 자유로운 관람 시간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모나리자도 보고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관람하며 설명도 들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루브르에 베르메르의 그림 코너가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한 것이다. 영어 블로슈와 일어판은 있는데 우리말은 없었다. 그 커다란 루브르 박물관의 화장실은 정말 좁고 불편하다. 이 사람들은 화장실이 그렇게 필요없나? 하긴 빠리에서나 런던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거기 화장실이 있으므로 의무적으로 갔던 기억 뿐.

리용 역(Gare de Lyon)에서 말로만 듣던 TGV를 타고 스위스로 갔다. 오후 2시 38분 출발 6시 11분 Geneve CFF역 도착. 그 넓은 유럽 대평원을 지나며 양떼를 구경하며 하마 도착하려나 하던 제네바는 정말 멀었다. 나중에 지도로 확인해 보니 제네바는 스위스 서쪽 끝의 도시였다. 제네바는 프랑스어 문화권이며, 스위스는 아직 유로를 쓰지 않는다. 지폐를 받긴 하는데 동전은 모두 프랑뿐이다. 그랑쁘리 호텔에서 짐을 풀고 시간이 남아 Le Reman(레만호) 호반에서 C1소주를 마시다. 몽블랑 다리 옆의 145m 대분수가 인상적이다. 투명하게 맑은 강물은 빙하 녹은 물이라 차가워보이는데,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깨끗하고, 숱한 백조와 오리떼는 여유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18000보 걷다.

 

제6일. 광복절 아침의 제네바

6시에 기상해서 레만 호수까지 달리다. 방파제에서 일출을 감상했다. 일출의 멋은 역시 해뜨기 전의 설레임과 기다림. 동명일기를 읽으면서 해뜨는 부분이 뒷부분의 장엄한 일부분에 불과한 이유를 늘 궁금해 했거늘,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느낀다. 해뜨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여유로움과 사색의 시간은 일출의 순간에 느끼는 장엄한 감격과는 또다른 하나의 소품이었다. 한여름이건만 고도가 높아 그런지 아침공기가 싸늘하다. 하늘의 비행기들은 궤적을 남기는 것이 인상적인 제네바. 해가 솟아오르며 긋는 물기둥은 내 마음을 충분히 누그럽게 해 주었다.

아침을 먹고 인근의 초등학교를 방문하다(Ecole primier francois). 학교같지도 않은 작은 건물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답게 칼뱅(Kalvins), 쯔빙글리(Ziwingly)들이 등장하고, 우린 삐아제 영감님의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루소의 생가를 지나 유엔의 각종 기구들을 버스 안에서 일별했다. 멀리 보이는 몽블랑(Mont Blanc)은 오늘따라 선명했는데, 몽블랑을 제네바에서 1박 하며 보는 것은 정말 행운이란다. 그만큼 이동네 날씨가 안 좋다는 건데, 몽블랑을 보는 사람은 1년간 운이 좋단다. 유엔 사무국 앞의 Broken chair는 지뢰로 다리를 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시위용으로 놓은 조형물인데, 이 평화로운 아침에 마음아픈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잔디 공원에서의 따가운 햇살은 이곳 사람들이 햇살만 보면 옷을 벗어 제끼고 일광욕을 하는 이유를 느낄 만 했다. 버스를 타고 융프라우를 오르기 위해 인터라켄(Interlaken, Thunersee와 Brienzersee 호수 사이라는 뜻)으로 이동하다. 이곳은 독일어권이다. Jungfrau(처녀)부터가 독일어권임을 알게 한다. 이곳도 유로를 쓰지 않고 CHF(체하 프랑, 헬베티아족의 연합이란 뜻으로 스위스의 국가 명칭은 꽁페드데쑝 헬베티아의 약자를 써서 CH를 쓴다고)를 쓴다. 민우와 아내의 옷을 하나씩 사고, 숙소에서 마지막 남은 쏘주를 동을 내다. 26,000보

 

제7일. 처녀봉 융프라우요흐 등정. 그리고 아우피더젠...

일찍 기상해서 일정이 시작되어 달리진 못하고 조금 걸었다. 산록의 경사가 가팔라 그런지 작은 시냇물도 우렁찬 소릴 낸다. 주변부의 풀들은 우리의 그것과 흡사하다. 융프라우의 아우쯤 되는 융프라우요흐를 오르다. 이곳은 유럽의 지붕이라는 알프스. 융프라우는 4158m이고, 우리가 오른 융프라우요흐는 3454m 높이의 산이다. 우리가 묵은 그린덴발트 동네를 버스로 출발해 로이터부룬넨 역에서 인클라인 기차라는 톱니 달린 협궤기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 타고 정상까지 오르다. 엊저녁에 보던 아이거산의 북벽과는 또다른 빙하덩이들을 보며 오르는 눈맛이 시원하다. 빌헬름텔에 나오던 가난한 스위스가 악조건의 국토를 호조건으로 바꾼 인간 승리의 현장을 돌아보는 우리에게 수수하고 진솔해 보이는 가이드는 그들의 노력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그 고생끝에 이루어진 세계 제일 부국이라는 결과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가난을 감내해야하는 현실을 가르쳐 주었다. 해발 2061m의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협궤기차로 그룬트 역으로 돌아오다. 알프스 산록의 숱한 들꽃들. 높이 자라지도 못하면서 가멸차게 솟아오르는 그 힘들은 이 산을 왜 오르는지, 충분히 감격하게 해 주었다.

오래오래 달려 이탈리아로... 버스로 국경을 넘기는 처음이라, 국경에서의 검색 경험을 기다렸으나, 버스는 무사통과. 우리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이리라. 자기들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테니깐.

밀라노로 들어서면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건물에 한 낙서들이다. 낙서를 그대로 두고 사는 사람들. 대단하다. 또 한 사람. 우리가 이태리에 온 것을 열렬히 환영했던 여자가 있었다. 첫날 우린 그 여인을 수십번 만났다. 중요한 두 곳만 가린 인티미씨미의 여인. 오늘은 6,000보 걷다.

 

제8일, 로마 입성.

밀라노를 달릴 때는, 안토니오 그람시 거리를 보고 싶었다. 마침 우리 숙소인 크라운 호텔에서 멀지 않다고 나와 있어 찾아 봤지만, 그람시 거리는 만나지 못했다. 불구의 몸으로 전면전과 국지전 이론을 편 헤게모니 이론의 창시자, 그람시. 우리 반 급훈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를 떠올리며 낙서의 도시 밀라노를 달리다.

밀라노는 패션으로 유명한 도시다. 명품가로 유명한 스카라 극장과 7번째로 크다는 그로테스크한 대성당. 그리고 성을 하나 구경하고 피렌체로 달리다. 도미니끄라는 기사 녀석은 젊은 녀석인데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기만하다.

영어로는 플로렌스라고 한다는 피렌체(Fiolenza)는 내륙이라 그런지 찜통더위였다. 피렌체에서는 십자가 대성당과 그 유명한 정과 열정 사이의 주무대, 두오모 대성당이 인상적이었다. 피렌체의 특징은 낙서를 많이 지웠다는 점이다. 처음엔 낙서가 없어서 낯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다 지워버린 것이다. 사기꾼같은 가이드 녀석의 불친절과 무식한 안내를 받아가며 하는 여행은 인내심을 길러주는 좋은 점과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여 수명이 단축된다는 나쁜 점이 공존한다. 오늘은 종일 여덟 시간을 버스를 탔다. 오전 나절은 밀라노에서 피렌체로, 오후는 다시 로마로... 역시 이탈리아는 긴 나라였다. 그런데 고속 도로를 달리며 줄곧 한 생각이 우리 고속 도로와 풍경이 비슷하다는 거였다. 나중에 그 날라리 가이드 녀석(이름은 기억하지만 밝히지 않겠음)의 이야기로는 우리 고속 도로가 이태리 기술이란다. 워낙 신용이 안 가는 녀석이라 믿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차창으로 날아드는 풍광은 정말 우리 나라의 그것 그대로였다. 야트막한 산지들이 줄곧 따라오는 도로의 정취를 얼마만에 맛본 것인가. 런던 평야와 유럽 대평원의 무미건조함, 그리고 갑자기 다가왔던 스위스의 고산기후. 다만 우리에겐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따르는 길이라면 이태리의 그것은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일색이고, 건초 말아놓은 두루말이들이 인상적이란 것 정도. 저녁 나절에 로마로 입성했다. 로마의 첫 인상은 역시, 낙서의 도시. 밀라노에서 익숙했던 낙서는 피렌체에서 지워졌다가 로마에서 살아났다. 그리고 피렌체와 로마까지 따라와 우릴 반겨준 그 여인 인티미씨미. 오랜만에 순두부, 상추, 불고기를 맛본 비원은 맛있는 식당이었다. 수백년은 된 듯한 수도원 건물을 개조했다는 도무스 마리애 호텔에서 여장을 풀다. 17,200보.

 

제9일. 시오노 나나미의 연인, 로마를 만나다.

드디어 만보기가 고장나다. 너무 써먹었나보다. 도무스 마리애 호텔의 주변은 멋진 공원이 있다. 다시 로마에 가면 이 호텔에서 묵고 싶은 곳이다. 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풀잎 가득 맺힌 이슬에서 우러나오는 훈향. 공원 구석엔 마약쟁이들이 버린 듯한 주사기들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공원의 잔디들은 정말 인상적이다.

시오노 나나미, 그녀의 연인 로마를 만나다. 그녀는 로마인들의 무엇에 반해 로마에 그렇게 목매다는 것일까. 사진으로나 보던 콜롯세움을 직접 보니 별 감흥은 없었다. 마치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황룡사터의 주춧돌들을 볼 때 느끼는 그런 황량감. 사진으로 본 웅장함은 그 건물에서 우러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콜롯세움 옆의 무너진 집터들을 지나면서 내 눈 앞에는 일곱 언덕의 로마인들이 웃고 지나가는 시뮬레이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골목들을 잠시라도 걷는 행위는 수천 년 전의 늑대의 젖으로 자란 로물루스, 로무스들의 아들 딸들과 만나는 일이었고, 네로와 카이사르를 알현하는 공간이었다. 로마에 오니 시간의 개념이 혼돈스러웠다. 이 공간에서 만보기가 고장난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고대의 목욕터를 보고 그 정교한 대리석으로 만든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다시 로마인들의 환영이 내 옆을 지나다녔다. 벤허의 전차경주장 시르쿠스 막시무스, 베네치아 광장(무쏠리니의 연설로 유명한)과 스페인 광장의 카푸치노. 소매치기 많다는 이태리에선 경찰이 많아서 그런지 소매치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치안이 잘 되어있다는 제네바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파키스탄 계 비슷한 소년 세 명에게 지갑을 뺏겼다가 내놔, 임마를 외치며 되찾은 이야기가 오래 회자되었다.

만보기 수치로 18,000보 걷다. 실제로는 30,000보 가량.

저녁때 스페인 광장(이 광장 계단은 로마의 휴일로 아주 유명해졌다.)에서 산 포도주 두 병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갖다.

 

제10일. 로마의 예술사

발목이 조금 시큰거리고 짐도 싸느라 조깅을 쉬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위한 줄은 길고도 멀었다. 박물관의 조각상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트로이 목마의 입성을 반대하던 예언자 라오콘 상의 꿈틀거리는 입체감이란... 성바오로 대성당 관람. 바티칸 시티는 별도의 국가로 관리되는 신기한 공간이다. 우리 나라의 소도쯤 되던 신성한 공간으로 보였다. 대성당 안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 창조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변화에는 후각이 가장 먼저 적응한다던가. 처음 런던에서 튜브를 탔을 때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맡았던 노린내가 이제 그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사람과 앉았어도 전혀 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프레스코화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던 대성당을 나와, 천재 미켈란젤로의 위업을 곱씹다. 근위병이 입은 옷도 그가 디자인한 것이라니... 대천재를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평준화 일색으로만 가는 관주도의 우리 교육을 생각하면 암연히 수수로운 마음이다. 사기꾼 같은 녀석의 가게를 들렀다가, 판테온을 관람하다. 천장에 구멍이 뻥 뚫인 신비로운 건축물. 피에타가 쉬고있는 집. 상승하는 기류 덕에 소나기가 내려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는 그 웅장한 신들의 터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이마에 상처를 입은 마약 중독자로 보이는 집시가 담배를 구걸하러 다니다가 우리 일행이 주었더니, 사우스 코리아 오케이, 노쓰 코리아 배드를 연발하는 걸 보고 씁쓸한 기분이었다. 나보나 광장의 분수들을 보며 이태리에서 먹어봐야한다는 젤라띠를 먹다. 노천 까페의 광장 나보나 광장은 로마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광장이란다. 햇살이 따가워도 그늘만 찾아들면 서늘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그들이 찾은 생활의 지혜가 이런 노천 까페들을 만들었으리라. 그리고 마지막 관광지는 뒤돌아서서 동전을 던진다는 트레비 분수. 서양의 분수들이 수직으로 솟구치는 역행의 의미를 가졌다면, 트레비 분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낭만적인 분수다. 동전 하나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둘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셋을 던지면 만나고싶지 않은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재미있는 말을 듣고, 난 시오노 나나미와 인티미씨미를 만나러 다시 오기 위해 영국돈 1페니를 던졌다. 그리고 로마 공항으로 출발. 로마 공항에서 땀을 뻘뻘흘리며 면세를 받으러 다닌 기억은 이번 여행의 최대 위기였다. 자칫하면 국제 미아가 될 뻔했던 로마 공항의 식은땀나는 추억.

 

9박 11일의 마지막. 아듀 인티미씨미!

돌아오는 대한 항공에 오르니 우리 아가씨들이 반가운 낯으로 맞는다. 집에 다 온 기분이다. 인티미씨미는 그렇게 우리와 헤어졌다.(인티미씨미는 이태리에서 수백번을 만난 속옷 광고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고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잠이 들었다. 저녁 여덟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열한시간을 날았다. 로마 시간으로 아침 일곱시면, 우리 시간으로 오후 두 시. 출발하던 날 여덟 시간을 벌었으니, (빠리에서 한 시간 까먹고) 돌아올 때는 일곱 시간을 까먹어야 하는 걸. 솜뭉치 같은 몸뚱이를 끌고 꿈과 같은 열하루를 마감하며 집으로...

 

길고도 짧았던 이번 여행의 제일의 친구는 역시 내 운동화였다. 런던에서, 빠리에서, 알프스의 제네바와 그린델발트, 그리고 이태리의 밀라노, 로마에서 내 발과 함께 달려 준 헤드 운동화는 오래 되어 엄지발가락이 삐져나오려고도 했지만,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들로 내 내면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리고 유럽 여행을 통해서 꼭 읽고 싶었던 책들, 보고 싶었던 영화들, 다시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진 못하지만,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위스 편과 열 권 읽고 쉬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들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숱한 건축물들과 조각품들, 프레스코화들을 두고두고 잊기 어려울 것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국비를 들여 여행하게 된 고마움을 녹여 내일부터는 아이들에게 더 훌륭한 세계인이 되도록 안내하는 미래인이 되어야겠다.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그들만큼 될 수 없다. 우리 안에서 우리의 것으로 우리를 채우는 길 뿐.

난 내 두번째 외국 여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첫번째는 아내와 아들과 동행했으니 아들에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번엔 아들 녀석이 좀 더 자라면 읽히고픈 유일한 욕심에 간단하나마 정리해서 남기는 것이다. 언젠가 민우가 이 글을 읽고 시야도 넓히고 아빠의 사랑도 느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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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9-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융프라우...부럽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융프라우에 집착을 많이 한다죠. 아마 어릴적 달력 사진으로 보았던 환상적인 이미지 때문에...무엇보다 루브르에 가신것이 가장 부럽습니다. 화장실이 좀 나쁘면 어떻습니까. 루브르인데...^^ 풍성한 여행이셨던 것 같아 좋군요.
 

담임통신 2004-5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장미보다 탐스런 숙녀들에게...

선생님의 다섯 번째 잔소리.
이제 잔소리 듣는 것도 익숙해 질 때가 되었겠지?
잔소리와 쓴소리를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 말은 누가 남긴 명언이냐면, 선생님이 한 소리다.
제목을 한 번 읽어 보렴.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너희는 태어난 지 열 여덟해 가량 되었다. 자라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안 좋은 일은 꼭 내게 일어난단 말이야.' 이러면서 자신을 머피의 법칙의 주인공으로 여긴 적이 있을 것이다. 수학에서 통계적으로 따질 때, 머피의 법칙은 당연한 거라고 한다. 열 군데의 계산대 중에서 내가 선 줄이 가장 잘 빠질 확률은 10%, 반면에 내가 선 줄이 다른 줄보다 느릴 확률은 90%지.
우리 교실에서도 마흔 명의 숙녀들이 앉아 있으니, 영어를 가장 잘 하는 학생도 1명이란다. 내가 우리 반에서 영어를 가장 잘할 확률은 1/40*100=2.5%다. 그럼 내가 영어를 가장 잘하는 경우가 아닌 확률은 97.5%인거지.
너희가 무얼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나날을 살고 있는지, 선생님은 참 궁금하다. 그렇다고 너희들과 매일 면담을 하고 수다를 떨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 반 친구들 중, 운이 좋은 사람은 그 가능성을 선생님이 발견하고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아주 낮은 거란다.
선생님은 1년에 수십 명의 제자를 맡고 있지만, 국어 선생님으로는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지만, 선생님이 발견할 수 잇는 빛나는 친구들은 기껏해야 1% 정도밖에 안 되는 거지.
너희가 살아오는 18년 동안 '너희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을 이미 만났을 수도 있고, 아직 못 만났을 수도 있고, 부모님이 그 분들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어준 사람을 만나고 못 만나고의 차이가 아니라, <너희 안에는 아무리 어두운 속이라도 반드시 빛나는 부분 1%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부터 이 말을 품에 품고 살아라.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내 안의 빛나는 1%. 그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고, 누가 일깨워줄 수도 있단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들이 일깨워주는 계기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혹은 받아들이더라도, 훗날 기억할지도 모르고, 계속 내 안의 빛나는 1%를 생각하며 살다가, 누군가가 너희의 1%를 건드리는 순간이 오거든 깨닫기만 하면 된다. '아, 나의 빛나는 1%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 이런 순간을 '행운이 온다'고 말한다.

기말고사 준비로 날마다 힘들겠지만, 모두 웃으며 힘내자. 우리 반 친구들은 다들 잘 웃어서 좋다. 오늘 체육 선생님도 우리 반 활발하다고 칭찬을 하시더구나.(욕이었나?) 스트레스 풀 땐 확실히 풀고, 공부할 땐 정말 정신 번쩍 차리고 하는 친구들이 되자. 기말고사 준비 철저히 하기 바란다. 시험 범위를 재빨리 세 번 읽겠다는 각오로. 어두운 99% 말고, 빛나는 1%를 늘 생각하렴.

이성으로 비관하기 쉬운 유월 열엿새, 담임선생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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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9-0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샘님네 반 학생이 되고 싶어요.장미보다 아름답지 않다해도..^^

글샘 2004-09-0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우리 반 애들한테 제가 아름답다고 하진 않았답니다. 탐스럽다고 했지요. 우리반 애들이 한 덩치 하거든요. 정말 탐스런... 장미들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