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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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감옥 속에 핀다고 실망하지 않고, 건물 구석진 먼지 틈새에 뿌리 내리는 잡초, 잡스런 풀들, 예쁜 꽃 피우지 못해 이름도 얻지 못한 잡초들, 그 잡초들의 이야기.

지구상에 15만 가지의 풀 중 이름이 있는 것은 3천 종이란다. 14만 칠천 종의 잡초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런데 서울대 나온 농업 학자가 그저 환경에 관심을 갖는다면 당연한 학술 서적이니 우리가 읽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벌써 리뷰를 쓴 사람만도 이백명이 넘는 것을 보면, 그가 농학자가 아닌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 있겠다. 아차. 상업적 책읽기, 느낌표 도서였단 걸 간과해선 안 되겠다.

난 재생지 책이 참 좋다. 우선 가벼워 좋고, 눈이 피로하지 않아서 좋다. 난 주로 형광등, 스탠드 아래서 글을 읽는 시간이 많아서 번득거리는 코팅지는 눈에 아주 해롭다.

인생이란 그렇게 웃기는 것이다. 그가 서울 농대를 졸업해서, 그 사회과학이 풍미하던 80년대 중반에 무사히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 와서 어디 적당한 대학의 사회과학대학에 전임 자리라도 땄다가 해직 교수가 되고 했더라면, 지금쯤 상당한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게다. 아마 환경운동가가 되진 못했을 지도 모르고. 그러나 간첩으로 살아온 십여년은 그를 농부로 만들어 버렸다. 땅에 대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옥살이.

서준식의 옥중 서한을 읽고 있는데, 솔직히 지겹다. 아직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많은 글을 적고, 상당부분은 원칙적인 이야기들을 적고 있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생경하게 느껴지는 편지들이 많다. 요즘 생각 같아선, 지금처럼 진도가 안 나가면 조만간 포기할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옥중 서한이지만, 황대권의 글은 훨씬 원숙미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벗어난 자연이 그 속에 있다.

팔십년대 말에 나온 노래 중에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하는 노래가 있었다. 감옥 속에 핀다고 한탄하지 말고 꽃을 피우라던 노래. 그 당시 대학 다니던 우리에겐 감옥은 하나의 닫힌 미래였다.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숱한 풀들, 관목과 교목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곧 생명에 대한 성찰에서 우러난 진심이었다. 늘 만나는 잡풀들, 그 속에 내가 있고, 내 삶이 있고, 내 세포와 혈액들이 속해있는 이 우주가 담겨 있다.

늘 '우리꽃 백가지, 우리 나무 백가지, 도감들'을 읽으면서 알고 싶은 건 많지만, 정말 이 분야는 쉽게 도전할 염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건, 괭이밥. 자주 보던 건데 몰라보던 녀석이어서 반가웠고, 지금도 먹고 싶은 마이산에서 먹었던 비름나물.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다.

이론으로만 환경 사랑하는 잡스런 인종들에 비하면, 그의 청순함은 오히려 눈물겹다. 감옥에 갇힌 '다른 생각'이 부른 절창. 갇혀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호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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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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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는 '천상' 선생님이다.

 안준철 선생님이 쓰신 글을 전에 인터넷을 통해 읽은 적도 있고, 아이들에게 소개해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읽게 되니, 역시 사랑이란 것도 급수가 있고, 경력이 있고, 체계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선생님은 역시 나보다 한 끗발 위시다. 한 급수 높으시고, 한 경력 하신다. (여기서 한 급수는 무한급수이다.)

제목에 '아이들'이 크게 인쇄되어 있다. 마음이 뭉클해온다. 선생에게 아이들은 존재의 이유 아니던가. 사소한 포인트의 차이에서도 아이들은 존재론적 가치를 드러낸다.

난 오늘도 가녀린 여자애들 팔뚝을 뭉툭한 30센치 자로 찰싹찰싹 때려 주었다. 어제 수업에 도망간 죄로. 덕분에 오늘 오후 자습 시간엔 교실 가득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공부하는 애들 뒤에서 안준철 선생님의 글을 읽자니 도저히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다. 혹시 애들이 이 책을 어깨 너머로라도 읽고 '선생님은 뭐하는 거예요?'하고 묻는다면, 난 사표라도 내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역시 사표를 낼 필요는 없다. 안준철 선생님의 글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늘 성공하고 있는 해피엔딩인 것으로 보이지만, 선생 경력 십오년이 넘은 내 눈에는 행간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고민들이 더 인간미로 다가왔다. 선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받게 되는 아이들의 상처와, 교사 중심의 학교에서 당하는 아이들의 패배, 굴욕, 굴종, 반항, 증오의 보이지 않는 커리큘럼들.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새로 받을 때의 서운함과 설레임, 날마다 패배하는 교사의 무거운 어깨와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는 빈 심장의 사랑. 졸업식 마치고 아이들을 다 돌려 보낸 뒤 빈 둥지를 잠그며 느끼는 우울증.

난 실업계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없지만, 아이들이 두렵다. 내가 아이들을 포기하게 될 것이기에 두렵고,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고, 무엇보다 삶에 지기만 한 아이들을 만나서 싹을 틔울 자신이 없어서 두렵다.

안준철 선생님의 들풀이란 시를 분필통 뒤에 오년을 붙이고 다녔더니 너덜너덜해 졌다. 가끔 뒤집어져 있는 분필통을 보며 나를 부끄러워했는데,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 마음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 눈빛으로 알고, / 따스히 흘러 /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 화사하지 못하여 / 키에 가리워 / 먼 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 한번 더 다가섰으면 /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여름방학도 없이 매일 아침 여덟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학교에서 형광등 불빛 밝히며 형광지공을 쌓는 우리 반 마흔 명의 꽃송이(아, 한나는 수시1로 합격했으니 39명)들에게 내일은 맛있는 점심이라도 사 줘야 겠다. 그리고 해운대 바닷가 가서 미니 소풍이라도 시켜주고싶다.

샛별이, 효정이, 미희a, 미희b, 민정이, 수빈이, 수영이, 이은이, 현주, 희야, 수진이, 재희, 혜성이, 인혜, 자영이, 민혜, 예원이, 지선이, 혜란이, 선애, 세령이, 지윤이, 햇님이, 소연이, 유리, 혜림이, 또 혜림이, 근영이, 선아, 지영이, 지윤이, 혜진이, 수민이, 지현이, 이슬이, 나혜, 미나, 혜원이, 40번 지선이까지(서른 아홉 명 외우느라 한참을 걸렸지만, 번호대로 외운 게 대견하다.) 마지막 여름 방학을 잘 보내고 올 가을엔 머지 않아 열매 맺은 가을을 향하여 좋은 결실 가지길 기도한다.

내가 대학 시절에 이상석 선생님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읽고 감동에 젖어 저자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답장도 받았고.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나의 '교사 성적표'는 정말 볼품 없다.

십오년 동안, 주변의 선후배들의 나쁜 점은 곧 배웠으며, 좋은 점은 비판하는 교사였고, 불평이 많았으며,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교사였다. 그러나, 이제 좀 알만도 하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가르쳐 왔던가를, 그리고 정말 교사는 어떻게 살아 보여야 하는지를 요즘 몸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 십년 정도만 더 배우면 나비가 되어 아이들에게 날아가 앉을 수 있을 것이다. 안선생님처럼 꿀벌처럼 벌집을 만들어 로얄제리를 만들진 못할지라도, 그저 나비로 꽃들의 가루받이에 나풀나풀 옮겨다니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리라.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 that's why they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신비지만, 오늘은 선물이라고, 그래서 오늘을 프레즌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아이들과 날마다 온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돼서 행복한 밤이다.

내가 초임 시절에는 방학 때, 아이들이 그리운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면서 방학에는 아이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개학이 두려워지기도 했고... 요즘은 방학이 없는 일반계 있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기다려 질 때도 있고... 이제서야 철이 들어가나 보다.

어떤 상품 광고처럼, 정말 "교사라서 행복해요"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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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4-07-3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라서 행복해요.. 라고 '아직도' 말할 수 있다니 진심으로 마음 깊숙히 부럽습니다. 초심을 잃는 것이 두려워야 되는데, 아이들이 두려워 교실로 돌아갈 것이 두려운 저는, 영원히 덜큰 미숙한 교사인가 봅니다. 그래서 늘, 두렵고 우울합니다. T.T

책읽는나무 2004-07-3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라서 행복하시다구요??
글샘님의 반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글샘 2004-08-01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방학 중인 토요일. 방학중인데도 매일 학교를 나오는 방학아닌 방학. 우리 반 아이들 두 명이 수시 1학기에 합격을 했습니다. 지영이랑 세령이랑. 나도 기쁘고, 합격한 아이들도 기뻐서 울고, 옆의 친구들도 감격해서 같이 눈물을 뿌리고... 그런 모습이 아름다워 모두 같이 닭갈비집 가서 점심을 볶음밥으로 먹었습니다.
자기들 즐기기도 벅찰텐데, 아무 것도 해 준 거 없는 담임한테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한 통이랑 5천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 사서 쥐어주더군요. 고맙다면서.
십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보다 더 귀한 도서상품권 한 장.
오늘은 정말 교사라서 행복했답니다. 삼천원짜리 밥을 사십명 사 줘도 십만원이면 되는데, 아이들과 느끼는 밥맛은 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꿀맛이었답니다.
이제 남은 서른 일곱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피곤해도 힘을 내야죠.
제가 초심을 잃지 않은 걸 대단하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일 아닐까요. 가능성 덩어리인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일.

해콩 2004-09-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충, 야자, 수능, 결국은 대학.. 실업계 4년 근무 후, 인문계로 옮긴지 2년째 인문계 담임 경력 1년차인 제겐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아이들이랑 '살아가고 싶은데, 삶을 나누고 싶은데' 어떤 아이들은 제게 자신을 감시하고 감독해 달라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합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중심 못잡고 늘 갈팡질팡하는 담임입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지는 못하면서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를 떨치지 못하는.. 희망과 노력과 성공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아이가 있는 것 같아 (혹은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실업계 아이들이 생각나서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어차피 그런 곳이라고 하기에는 안준철 선생님의 글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인문계 아이들도, 실업계 아이들도 행복한 오늘을 살아갈 수 없는 현실...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대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못랐으니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 징 기 스 칸 ----
 
산다는것,
 
정말 쉽지 않습니다. 험난하기만 합니다.
가정에서 시달리고,
직장에서 눌리고,
사회에서 충격 받고,
가는 곳마다 사방 어느 곳에도
고분고분한 내 편은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도전하십시오!
위협에 도전하십시오!
 
도전하는 당신,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코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에 승리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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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4-07-30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방학이라 좀 한가하신가요?
'산다는 것'을 읽고 힘이 불끈불끈 솟아 납니다.
'도전하는 삶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평소에 저도 하고 있습니다.
단지 도전하는 것이 넘 힘들어서 자꾸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건강한 여름 나시길 빌겠습니다. ~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1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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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을 영어로 'dog's day'라고 한단다. 伏자에도 사람인과 개견자가 들어 있고, 복날 수난을 당하는 견공들을 생각하면, 우연의 일치 치고는 희한하다 할 수 있다.

겨울의 대표별 시리우스(큰개자리)는 우리 이름으로 천랑성이라고도 한다(영어로는 dog star). 큰개자리가 겨울을 대표하는 별자리인데, 한여름에는 태양과 함께 별이 떠오르게 된단다. 이 별을 보고 그 해의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는... 그래서 개의 날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개의 별의 날이겠지.

복날 저녁에 시리우스를 떠올리는 기분은 조금 묘하다고 할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처음 접할 때는 뭐 이런 황당한 소설이 다 있나 하고 생각했지만, 몇 챕터 넘어가자 롤링의 상상력에 반하고 말았다. 머글과 포트키, 그리고 스퀴치 게임은 정말 대단한 작가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7부작은 좀 무리인 것 같다. 5권에서 벌써 이렇게 헐떡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다섯 권으로 낸 출판사는 정말 얄미웠다. 영문판을 보면 작은 글자로도 충분히 한 권으로 낼 수 있는 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3권까지는 솔직히 지겨워서 돌아가실 뻔 했다. 그래더 5권까지 사 놨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몇 달 만에 읽었다. 4,5권은 후루룩 읽을 수 있었지만, 잔인하고 너무 평면적인(결말이 뻔한, 반전이 없는) 이야기들이 지루한 느낌이었다. 다 읽고 나니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과 조앤롤링도 돈 많이 벌었으니, 유리 가면의 작가처럼 그만 절필하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포터의 탄생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성공한 것 아닐까. 9와 3/4 승강장이라든지, 해그리드가 다루는 다양한 동물들, 덤블도어와 말포이, 볼드모트로 이루어지는 갈등 구조와 론과 헤르미온느라는 친구들의 우정까지는 거의 완벽한 구도였지만, 이제 청소년이 된 해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기엔 7부작은 너무 길다. 영화도 3편에 들어서면서 재미가 뚝 떨어졌다는 평과 함께, 역시 울궈먹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번역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물론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 했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저속한 말들을 남발한 경향이 짙고, 1,2권의 번역이 재미를 반감시킨 거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든다. 원본 읽기를 시도하다가 말았지만, 롤링의 '상상력 결핍(want)'과 역자의 '빨리 번역할 필요(want)'가 빚어낸 불협화음이라고 강하게 의심한다.

해리포터 6편을 사는 것에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한 권으로 애장본을 펴낸다면 또 몰라도 이번처럼 여섯 권으로 찍어내는 6편을 사는 오류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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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죽었다. 죽었다기보다는 갑자기 나무토막이 되었다. 특별히 말썽을 부리거나 못된 짓을 일삼는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기쁘게 해 주는 그런 아이도 아니었다. 언니와는 달리 성적도 시원찮아서 아예 큰 관심을 쏟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 더욱 애절하게 나무토막이 된 아이를 붙잡고 제발 다시 살아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나무토막에 두 눈이 생긴 것이다. 가만 보니 죽은 딸아이의 눈과 똑 닮았다. 그 눈으로 무언가 절실하게 말을 걸어온다. 옆집 아이처럼 쌍꺼풀이 진 예쁜 눈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 나무토막일 뿐이지만 딸아이의 눈을 보자 죽었던 아이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기쁜 마음에 밤새도록 눈으로 대화를 나눈다. 딸아이의 눈이 이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부모의 마음은 다시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귀가 있어 이쪽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무토막에 입이 생기고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말을 한다. 비록 나무토막이지만 딸아이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귓바퀴도 분명 딸아이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 간절함이 다시 하늘에 닿았는지 딸아이의 볼그레한 뺨이 돌아오고 봉긋한 가슴도 생겼다. 배꼽티를 입고 있어서 배꼽도 보였다. 늘 그것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싸움도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왜 배꼽티를 못 입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손이 돌아오고 발도 돌아왔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도, 허리도 돌아왔다. 이제 나무토막은 없어지고 거기에 온전한 사람이 서 있다.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꿈을 꿀 수도 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 말이다. 이 놀라운 기적에 부모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가 않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놀라운 기적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아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 온다. 여전히 중간 이하의 성적을 받아 온다. 영어나 수학 문제를 푸는 머리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명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시 살아났는데 이게 무슨 대수냐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지닌 몸과 생명의 경이로움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딸아이의 눈과 입술과 귀와 엉덩이와 허리와 손과 발은 더 이상 놀라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웃집 아이에게도 있는 너무도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류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옆집 아이에 비하면 딸아이가 초라해 보이기만 한다. 그 초라함이 자신의 것이 되기 시작하면서 딸아이에게 다시 미움이 돌아갔다.

바로 그날 밤, 딸아이가 다시 나무토막으로 돌아가 버렸다. 부모는 통곡을 하다가 가만 꿈에서 깨어난다.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 - - - - - - - -

선생이 학생에게 잘못 가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옳게 공부를 해야 한다.

교사의 일은 보석 찾기, 아이들 스스로 가슴 깊이 숨겨진 것들을 찾아 내어 그 휘황한 광채에 황홀해하는 모습을 보는 일, 그것은 교사에게 허락된 최고의 보람이자 즐거움이지만 학생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지 앟으면 불가능한 일

아이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죄다.

오늘 꽃이 피지 않았다고 내일도 꽃이 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생명이 있는 한 따사로운 햇볕과 바람만 있으면 꽃은 피어나게 마련이다.

얼굴이 예쁘거나 성실한 아이를 귀여워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도, 교사라면 교육적 상상력으로 칭찬의 조건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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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3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퍼갈께요..

드팀전 2004-07-3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휴가때 오대산 상원사을 다녀왔습니다. 상원사에는 가장 오래된 동종이 하나 있지요.국사시간에 배웠던... 종은 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더군요. 그 틈새로 얼마나 돈들을 던져 넣었는지.바닥에 100원짜리가 수두룩하데요.도대체 왜 돈을 던져 넣는거지요?
어쟀건 아이와 부모들이 함께 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아이의 부모 동전을 아이에게 주며 아주 교육적인 목소리로 ... " 던져서 종을 맞춰봐.무슨 소리가 나는지..."
아주 교육적으로 훌륭하신 부모님이더군요. 보고 있다 열받아서 한 소리 했습니다.
'아주머니 그다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것 같은데요..."

애들 망치는 건 부모 맞습니다.그러고도 아이 한테는 공부잘해라 뭐 잘해라 뭐 잘해라하지요.
정신차리고 교육받아야 할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들인것 같습니다.

밀키웨이 2004-07-3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별님 서재 거쳐서 왔습니다.
퍼갈께요, 근데 눈이 쪼매 아퍼서 글자색은 수정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일단 수정해서 올리구요, 혹시나 마음에 아니 드시면 서재주인 보기로 말씀해주세요 ^^
인사도 미처 못드리고 퍼가기부텀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

글샘 2004-08-0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은 인성이 올바른 인간이기 전에 적자생존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인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비교 대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지 않을까요.
정작 포기하고 싶어지는 건, 그 아이들일테니깐요.
아이에게 요구하기 전에, 사랑부터 주는 마음을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공부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