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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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애가(고3)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이 책을 읽고 있기에, 빼앗아 두었다가, 연휴에 읽어 보면서 빼앗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이런 책이라면 언어영역 문제집을 디립다 푸는 것보다 유익할 수도 있을 것을. 그렇지만 한편으론 당연하게 생각한다. 조금도 늦추지 않고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임을 가르치는 것이 또한 교사의 몫이니.

여름방학이라지만 여름방학은 아이들에게 없다. 이제 백이십일 남은 입시를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할 시기. 그렇지만, 한편으론 대학이란 곳은 단순한 진학이 아니라, 자기 전공을 찾아 길을 떠나는 '초심자의 행운'을 기대해야 할 곳인데, 꿈을 생각해야 할 때인데...

살렘의 왕이란 분으로부터 "자아의 신화"를 들은 주인공 산티아고. 작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느낀 목표를 향한 꾸준한 정진이 생각나는 주인공 이름이었다. 코엘료는 그 길을 떠올리며 주인공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알 수 없는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 준다. ......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다.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 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하낟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잊혀진 꿈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어린 왕자와 같은 알레고리(우화)처럼 보이지만, 어린왕자의 알레고리에 비해서는 직접적인 어조로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어린 왕자가 심오한 것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거나 '밀밭에서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길들여진 여우' 이야기가 가지는 풍부한 은유 때문이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며 인생을 모험가의 시각으로 살라고 훈계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고 하면서 우리 삶의 임무를 명쾌하게 부여하고 있다.

작가는 후기에서 연금술사를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

둘째,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 버리는 사람들.

셋째,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란, 철학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비밀을 알고, 자신의 삶에 철학적 감동을 나날이 부여하는 삶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내야 할 인생의 사막에서 '나란, 나의 본연의 모습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여 메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를 까마귀 같이, 독수리의 밝은 혜안과, 피라미드의 맑은 정신으로 삶을, 꿈을 곱씹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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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7-1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만만하게 선물할때 좋더라구요. 현대판 어린왕자이자 또 보급형 짜라투스트라 인거 같기도하고..^^

글샘 2004-07-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책들이 쓸데없이 하드카바란 생각이 듭니다. 선물하긴 좋지만, 읽고 나면 그렇게 까지 할 가치가 있었던 책일까... 하는.
저도 선물할 때 많이 쓸 거 같네요.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란 의미를 주도록...

비연 2004-07-1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권 선물했지요..이만하면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데 괜챦은 작품이다 싶어서요. 근데 글샘님 말씀처럼 하드커버는 늘 부담임다. 요즘 넘 하드커버가 많다는 느낌. (코엘료의 '11분'도 하드커버였는데..이건 좀 아깝더군요..ㅋ)
 
독수리의 눈 힘찬문고 20
론 버니 지음, 지혜연 옮김, 심우진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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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방학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책들을...

이 책은 지난 해 부산시교육청 초등학생 권장도서였는데, 애가 잘 안 읽어서 머리맡에서 잠자리에 읽어준 책이다.

어렸을 때, 서부의 총잡이 시리즈를 보면서 자란 우리들의 머릿 속에는 웨스턴 분위기가 낭만적이고 멋지게만 보였다. 카우보이 모자와 멋진 줄 날리기, 검게 그을린 피부, 이에 반해 검붉은 피부의 홍인들은 기습적으로 주인공을 파괴하려는 미개인들에 불과했다........ 이 제국주의자의 시각으로 인디언들을 바라보던 세계가 포카혼타스, 늑대와 춤을, 라스트 모히컨 등 인디언 들의 삶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은 유효했고, 애정어린 시선도 벌써 인디언들이 거의 멸종한 시점의 박물지적 시각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을 때만 해도,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가 흑인 여자가 나왔는데, 그 아이를 원주민이라고 불렀다. 우린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백호주의라는 횡포는 살상과 파괴, 반문명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올림픽이라는 평화의 제전에 원주민을 내세운다고 해서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동화의 주인공 독수리의 눈, 구답은 한순간에 온 가족을 백인들에게 잃고 만다. 동생 유당과 먼 길을 걸어 다른 부족과 살려 하지만, 그 부족도 말살당한다. 죽음에 다다른 구답과 유당은 땅과 함께 살고자 하는 희망이 있지만, 백인들의 살기는 그 넓은 호주 대륙을 뒤덮고 있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지리산에서 1박을 했다. 산과 물과 비에 젖은 길도 멋있었지만, 산길에서 마주치는 흙냄새, 풀내음, 안개의 축축한 습기의 향기, 짙은 고동의 흙빛의 포근함을 맛보면서 걸을 때, 우리가 기댈 곳은 대자연 어머니밖에 없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메리컨 원주민들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살던 자연과 동화된 삶, 자연과 하나된 삶, 정령의 큰 힘을 믿던 고결한 정신이 백인들의 문명이란 이름에 파괴되고, 말살되던 피냄새, 죽음의 빛으로 뒤덮인 인류 최대의 반문명이 황톳빛 흙위에 오버랩 되었다.

십여년 전 텔레비전에서 보던 '뿌리'를 보면서 치를 떨던 생각이 났다. 남부의 농업 정책에 반기를 든 북부의 공업 정책의 승리로 자유를 얻은 검둥이 노예들은 자유로운 신분이 되어 제 발로 공장의 노예로 전락하던 시기, 살상당하고 파괴당하던 흑인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잃었던 그 영화.

자신을 잃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되살리기란 얼마나 불가능한가를 생각하게 하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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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7-1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동화가 좋다고 생각해요.예전처럼 권선징악 이나 뭐 이런거 말고.....내가 클때도 외국에는 다양한 동화가 있었을텐데....우린 맨날 콩쥐팥쥐나 읽고.^^
그래도 요즘은 우리작가들의 수준도 높아져서 요즘 애들은 좋겠어요.
 
죄와 벌 - 삼성만화명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삼성출판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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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있는 대형 할인점에 가면, 만화를 주로 읽는다. 집중도 안 되고 자리도 불편해서 긴 글을 읽기엔 적합하지 않지만, 만화 정도라면 충분히 소화할 만하다.

요즘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공포 만화를 보다가, 오늘은 세계 명작으로 눈을 돌렸다. 아빠가 읽어야 아이도 읽을 거 아닌가.

내가 지겨워하며 읽었던 이야기를 만화로 잘 그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는 역시.. 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부모들이여, 고전을 만화로 읽히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고전에 드러난 작가의 사상과 문체와 시대적 상황들이 만화에서는 제대로 읽히기 어려운 법인데,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는 실패하고 있다. 줄거리는 얽어내고 있지만, 러시아의 어려운 시기에 부패한 관리들과 가난한 민중들의 처참한 삶의 모습을 리얼하게 드러내기엔 만화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중학교 때 적과 흑을 읽고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상당히 도덕적이었던 중학생인 내게 주인집 마님과 나전어(그 당시 라틴어인줄도 모르고 읽었던) 가정 교사 사이의 사랑이 이해될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 명작이 되어야 할 이유를 난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른이 읽고 같이 비평해 주지 못하는 세계 명작은 이처럼 초라하다.

세계 명작을 읽히고자하는 어른들이여. 그대들이 먼저 책을 읽으라. 그리고 시대와 분위기를 충분히 아이들에게 이해시켜 가면서 책을 읽히기 바란다. 그리고 상당 수의 책들은 정말 세계 명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편협한 생각들을 담고 있거나, 지금의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가리지 않고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먹이는 음식은 아이들에게 독이 될 지도 모른다. 이번 여름 방학엔 아들 녀석이랑 독서 삼매와 토론에 푹 빠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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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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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힘은 형상화를 통해 진실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임철우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모티프로 하여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썼다. 시의 상징적 표현이 가진 상상력의 날개를 소설의 진실성을 무기로 치환한 것이다.

곽재구의 관심은 늘 낮은 데 있다. 현대 고속철의 위용을 자랑하는 역사에 있지 않고 시골 작은 완행 열차나 서는 '사평역'과 '널'을 타고 맛조개를 잡는 사람과 자연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이문도 남지 않는 팥죽 파는 포구 사람들 사이에 그의 시선이 머문다. 그런데, 뭔가 감동이 없다. 맛깔스레 보이지만 한입 떠먹고 나니 숟가락을 대기 싫은 물김치같은 야릇한 맛.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의 민중성에 결여된 그 무엇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낭만적 추상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일단 결론 지었다. 그의 시선이 끊임없이 집착하는 낮은 곳에는 그의 삶이 없었다. 문학의 진실성과 삶은 별개가 아니므로.

그는 포구에서 포구로 '글을 쓰러' 다니는 지식인이었지, 포구에 사는 얼굴과 개흙이 분간도 안 되는 진솔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낭만적인 접근이 그의 글을 추상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사평역에서'가 시로써 누릴 수 있었던 추상성의 여유 공간을 '포구'는 산문이어서 누릴 수 없었다고나 할까. 이런 글은 은행에서, 병원에서 대기 중에 읽어버릴 잡지 속의 테마 여행이라 할 만하다. 책으로 묶어 사람의 고독과 떠돌이의 바람기를 시린 언어로 전달할 것 까지는 없어 보인다.

'시'로써 만족시켰더라면 '신비감'의 영역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뒷맛.

참,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서귀포여자고등학교'에서 내려다 본 바다란 데 나도 동의한다. 그 학교의 교사에서 내려다본 은빛 바다와 섬 하나는 충분히 그 학교 여고생들을 시심에 홀리게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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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온할 수가 없다.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미래를 위한 시간, 미래를 위한 비행, 거기에는 일정 부분 짙은 꿈의 냄새가 배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새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맞바꿀 만한 가혹한 비행을 통해 스스로의 유전자 내부에 꿈에 대한 기록들을 저장하고, 그 추억들은 쌓이고 쌓여 설령 지금보다 가혹한 삶의 현실이 지상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힘을 갖추는 것이다. 가혹한 자연의 재앙에 부딪쳤을 때 인간이 저 새들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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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07-04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부족한 리뷰 아랫단에 잘 영글은 포도 한 송이 달아주시는 님의 마음이 참도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참 잘했어요 도장 다섯 개 받은 기분이랍니다.
탁월한 글발이라니요. 정말 과찬이십니다.
제맘대로 쓰는 글을 부지런히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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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오면서 '왜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편집했을까, 2-3권으로 충분히 분책할 수 있는 책인데...'하는 생각이,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어메리칸 인디언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웅변이자, 그들 삶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분책한 경우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들은 특별한 종교도 문자도 갖지 않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그들의 영혼의 울림은 어떤 종교 경전도 갖지 못한 다원성과 상대성이 내포되어 있다. 900쪽을 넘는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논하고 있지만, 미타쿠예 오야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대로 '하나'의 영혼인 것이다.

불교의 진리를 찾으러 온 벽안의 스님에게, 지하철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치는 천민 자본주의 국가의 폐쇄적 이기주의 종교관을 가진 우리 종교인들이 떠올랐다. - 우리는 얼마나 미개한가.

딸년과도 같은 여고생의 몸을 돈을 주고 샀던 가장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던 사마리아란 영화가 생각났다. - 우리는 얼마나 야만인인가.

우리는 약소국이었다. 그래서 남을 짓밟아본 일이 별로 없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핏줄에 평화란 없었다. 베트남전에서 용감한 따이한으로, 동남아 해외연수생 노동자들에게는 공포의 압제자로, 이라크 파병까지 우리의 핏줄에 서린 거지 근성을 보았다. - 우리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새로 열리는 시대는 폭력, 전쟁, 강철이 지배하는 남성성의 시대를 넘어서, 평화, 사랑, 흙이 포용하는 여성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엔 늘 '사람'이 있었다. 6000만 마리의 들소가 있었음에도 늘 허락을 받고 잡던 자연 속의 사람들.

새로 펼쳐지는 시대는 웰빙의 열풍이 불 것임을 그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정기적인 단식과 '땀천막'을 읽으면 현대인의 무식한 피트니스와 웰빙 열풍이 얼마나 하잘것 없는 시스템인지를 본다.

그 들소들을 멸종에 가까이 말살시키고, 전-미국인, 전-캐나다인들을 말살한 얼굴 흰 사람들의 문명이 오히려 야만으로 평가될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다양한 주제로 행한 연설들의 모음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날줄이 되고 씨줄이 되어 장엄한 미래를 여는 심포니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이 책은 빌려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단편들을 아래 기록한다.

= = = = = = = = = = = = = = = = = = = = = =

미타쿠예 오야신 :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과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을 결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신은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인다.

젊었을 때 그대의 혀를 잘 지키라. 그러면 늙어서 그대의 부족에게 도움이 될 한 가지 생각이 그대 안에서 익어갈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부족 회의를 열 때 말하는 지팡이를 사용한다. … 누구든 말하는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그의 손 안에 신성한 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는 동안은 오직 그 만이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 그에게 진실되고 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 이해 말하는 지팡이에 독수리 깃털을 매달기도 했다. 지팡이 끝에 매단 토끼털은 그가 하는 말이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부드럽고 따듯한 말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지팡이에 매단 파란색 돌은 위대한 정령이 그가 하는 말뿐 아니라 그의 가슴이 하려고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지개 빛을 지니고 있으며 수시로 색깔이 달라지는 조개는 세상이 날마다, 계절마다, 해마다 변화하며 사람들과 상황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 가슴속에 있는 것을 말하는 순간 그가 자신의 손에 우주의 모든 힘을 쥐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대의 가슴 속에 죽음이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살라.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들의 시각을 존중하라. 그리고 그들 역시 그대의 시각을 존중하게 하라. 그대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그대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라. 오래 살되,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에 목적을 두라. 이 세상을 떠나는 위대한 이별의 순간을 위해 고귀한 죽음의 노래를 준비하라. 낯선 사람일지라도 외딴 곳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굴지 말라.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삶의 즐거움들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즉한 사람처럼 되지 말라. 슬피 울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 대신 그대의 죽음의 노래를 부르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디언 전사처럼 죽음을 맞이 하라.

그들 사회에는 거짓, 허위, 배신, 탐욕, 시기, 욕설을 의미하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풀잎들이 햇빛 속에 고요히 있듯이 대지는 내게 침묵을 가르쳐 주네. 오래된 돌들이 기억으로 고통받듯이, 대지는 내게 고통을 가르쳐 주네. 꽃들이 처음부터 겸허하게 피어나듯이 대지는 내게 겸허함을 가르쳐 주네. 어미가 어린 것들을 안전하게 돌보듯이 대지는 내게 보살핌을 가르쳐 주네. 나무가 홀로 서 있듯이 대지는 내게 용기를 가르쳐 주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들처럼 대지는 내게 한계를 가르쳐 주고, 하늘을 쏘는 독수리처럼 대지는 내게 자유를 가르쳐 주네. 가을이면 떨어져 생명을 마감하는 잎사귀들처럼 대지는 내게 떠남을 가르쳐 주고,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대지는 내게 부활을 가르쳐 주네. 눈이 녹으면서 자신을 버리듯이 대지는 내게 자신을 버리는 법을 가르쳐 주네. 마름 평원이 비에 젖듯이, 대지는 내게 친절을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 주네.

<나바호족 인디언들의 결혼식사>
이제 두 사람은 하나의 불을 피울 것이다. 이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과 이해, 지혜를 상징하는 하나의 불꽃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불이 두 사람에게 따뜻함과  음식과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이 새로운 불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가정을. 이 불은 언제가지나 타올라야 한다. 두사람은 언제까지나 함께 있으리라. 이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위한 불을 밝혔다. 이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늙음이 그대들을 갈라 놓을때까지.

<아파치족 인디언 식사>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모든 만물 속에서 움직이는 위대한 정령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데는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사람은 또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 생각이 만물을 통해 드러난 때까지. 전체 새들의 무리가 방향을 바꾸는 것은 똑같은 생각, 똑같은 힘 때문이다. 새떼 전체가 한 가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만 한다.

위대한 정령 와칸 탕카. 대지 전체가 살아있는 경전.

네가 삶의 길을 여행할 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 누구도 슬프게 하지 말라. 할수 있는 한 언제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라. … 조용한 삶을 살고, 모두에게 친절하라.

존중한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대지와 대지 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하라. 위대한 정령으로부터 멀어지지 말라. 동료 인간들을 존중하라.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하라.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라. 몸과 마음을 잘 돌보라. 보다 좋은 일에 자신의 노력을 쏟으라. 언제나 진실되고 정직하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소위 교육받은 바보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삶을 사랑하라 가르치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분임을 가르친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그것들을 배울 때, 아이들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온갖 것들을 암기할 뿐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창조성, 꿈꾸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속에 큰 약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는 폭력을 기초로 세워져 있다. 폭력을 숭배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폭력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랑으로 폭력과 맞서는 것 역시 무의미한 파괴로 끝이 난다. 미국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라. 미국은 전쟁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쟁에 개입할 때마다 미국 정부는 언제나 과잉 살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며,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가루로 만둘어 버린다. 항의를 해도 수그러드는 법이 없다. 베트남 전쟁을 보라. 미국은 2차 세계 대전때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을 떨어뜨렸다. 과잉 살상의 대표적인 예다.

환경은 이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저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이 곧 환경이다.

지혜라는 것은 그것을 찾는 것을 중단하고 신이 그에게 바라는 진정한 삶은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

그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절대로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가진 종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으라. 설령 그가 하는 말이 무가치하게 느껴질지라도, 마음을 담아서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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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인용하신 부분.. 퍼갑니다. 실은 사보려고해요. 두꺼운 책 겁나지만... 글샘님의 리뷰에 용기를 얻어 시도해보려구요. ^^

비로그인 2005-10-1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