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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피천득의 <오월> 중에서 -

 

그러나,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오월은'

오월하늘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이런 슬픈 가락의 섬찟한 노래와 겹쳐지는 최루성 추억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앞산이 온통 아카시아로 하이얗게 덮일 무렵이면

하숙집들도 온통 최루가스로 뒤덮이고,

우리 마음도 온통 최루와 넝마가 되어 버리던 그 오월.

나는 이제 이십년이 지난 이 오월을 어떻게 흘리고 있는가.

그때 그 오월과 오늘의 오월 사이의 간격을 떠올리며 스스로 반성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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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스테판 M. 폴란 지음, 조영희 옮김 / 명진출판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이 2막이다.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서막이었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인다.

어제 내게 있었던 것으로 여기던 머리카락과 세포들은 오늘 아침에 세면대를 향해서 쿨컥쿨컥 소리를 내며 죽어갔으니, 내게 있던 같은 것이 아닌 새 것이 나를 대신해 간다. 먼 훗날 내 얼굴에 늘어난 주름과 희어진 머리칼을 헤아리며 제2막을 준비한다면 이미 그 새로운 막은 내 인생에 큰 충격일 것이다.

그러나,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런 걸 적고 싶을 때가 있다.

피아노를 정말 그럴 듯하게 연주하고 싶고, 플룻도 잘 불고 싶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서 맘껏 걷고 싶다. 한비야처럼. 그들의 삶은 누추할수록 안심될지도 모른다. 난 별 달린 호텔에서 자는 게 너무 아깝다. 전에 경주 힐튼 호텔의 물 500cc가 4000원에 부가세 400원 붙은 걸 보고 4400원이면 가난한 사람들 수십명이 끼니를 때울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많이 걷고 싶고, 자유를 느껴 보고 싶다. 물론 불안하겠지만, 돌아오고 싶겠지만, 열사의 사막 비슷한 데라도 가고 싶다.

가족이 가로막을지도 모르고, 돈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십계명에 나온대로 가족과 아내가 가로막는 길은, 의심하지 말고 가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서슴지말고 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도 싶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아침에 새벽반 영어회화반에 다니고 싶다. 수영장도 다니고 싶고. 그리고 다섯 시에 퇴근해서 가끔은 커피 마시면서 지는 해도 보고 싶고, 아들과 자전거도 타고 싶다.

매일매일 새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매일매일 피곤에 찌든 수동적이고 즉자적인 내 형이상학적 피로는 오늘도 2막을 읽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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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절은 정말 좋다.  " ... 열린 문을 통과했을 때 나타나는 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막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문을 통과하든 반드시 다른 문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안심해도 좋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는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만 찾아온다. 우리가 인생을 돌이켜볼 때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도 들어가 보지 못한 문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에서 기회가 좀더 적어야 했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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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1
카미오 요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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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화가 났다.

이유없는 신경질은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를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여러 핑계로 안 읽다가 요즘 책도 손에 잘 안 잡히고 해서 우연히 보았는데, 읽는 동안 내내 기분이 나쁘다.

이지메를 아무 생각없이 저지르는 인간들. 그들은 정말 인간적이지 못한 것들이다. 약자의 사물함에 레드 카드를 꽂고 상댈 계속 괴롭히는 저질 인간들. 이 만화가 우리 나라에 이지메를 수입한 게 아닐까?

그리고 제일 화가 났던 건, 이 만화를 읽으면서 계속 눈에 밟히는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전에 그놈... 을 읽고 귀여니는 싹수가 있는데 차근차근 글공부 좀 하라고 충고를 했지만, 그 아이에겐 그런 충고를 해 줄 것이 아니라, 표절은 범죄임을 가르쳐 줬어야 했다. 부잣집 도련님들로 이루어진 F4와 지은성의 사대천왕은 표절이다. 그리고 가난한 집의 츠쿠시와 부유한 츠카사는 표절이다. 귀여니가 작가로 거듭 나길 은근히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순응한 멍청한 돈벌이에 감탄했다니. 우물안 개구리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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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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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에게서 나는 현학을 느낀다.

그는 잡학박식하다. 물론 깊이와 학문적 고집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도올이라는 현상 앞에서 나는 학문의 차분한 자연스러움을 찾을 수 없다. 왠지 불편하고 밸이 꼬이다가 결국은 졸린다.

특히나 이 책은 그의 현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불교에 대한 이해나, 인도에 대한 이해나 다른 이들의 맛깔스런 글에 비해 입맛이 텁텁하다. 내가  입맛이 까다로운 탓일게다. 아니라면 불교 이론을 설파하면서, 세상에 너무 발을 깊숙이 들여 놓은 문화일보 기자이자, 노무현 대통령을 독대하였다가 저지른 해프닝 들이 내 머리속에 너무 강하게 자리잡은 탓일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가 한 지인을 잃었다. 영안실에서 그리고 그분의 무덤 자리에서도 부처님은 찾을 수 없었다. 부처는 세상 어디에도 없더라. 그리고, 어디서나 찾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의 육신을 바라보는 장례의 냉혹함. 거기도 부처는 우리 어깨를 짚으며 서 있었다. 하루라도 바르게 살고 가라고. 어차피 숨 나가면 짐짝 신세일 우리에게 하루라도 즐겁게 살다 가라고 보람있게 살다 가라고, 나답게 살고 가라고 부처는 일깨우고 있었다.

신불산 아늑한 양지녘에 누우신 선배님. 이제 새 환경에 적응 되셨나요. 시간 나면 한 번 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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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sticmd 2006-09-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찡하네요.

아폴리네르 2007-01-1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렇군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