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분위기에 잘 휩쓸리고 말도 많지만 익숙한 사람들 틈에서 일뿐 낯선 사람, 새로운 환경에서는 소심해져 버린다. 그래서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귀거나 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인간관계는 협소해져가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나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있게 된다. 그러다 운 좋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와 뭔가 통하는 게 없으면 금방 시들해져 버리고 더 이상 사귈 마음이 들지 않는 단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나이기에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라고 한다면, 아니 친구가 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단박에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과 동물은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과 동물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천적끼리라면? 글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천적끼리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을까?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생쥐와 고양이가 친구가 되는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막스와 고양이 믹스. 막스가 성인이 되어서도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 탓인지 어쩐지 어느 날 믹스는 실명을 한다. 막스가 집을 비우게 되면 믹스는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집에서 생활한다. 그런 믹스 앞에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생쥐를 생포하자 눈이 안 보인다는 걸 알고 이런저런 거짓말로 빠져나가려고 하다 결국엔 실토를 하게 된다. 쫑알쫑알 말도 많고 요구사항도 더러 있는 생쥐지만 믹스에게는 혼자 있는 것보다 그런 생쥐일지라도 함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가 된다.


  이름이 없다는 생쥐에게 믹스는 멕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때부터 멕스는 믹스가 시력을 잃은 후로 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천적의 관계가 될 수도 있었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막스가 믹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준다. 이리저리 얽혀가는 막스와 믹스와 멕스를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형제 같았다. 자신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내리사랑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믹스에게 친구 멕스가 생겼다는 걸 알고 공평하게 챙겨주는 막스. 막스가 집을 비울 때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믹스와 멕스. 나에게 있는 평범함이 누군가에게 필요가 되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아마 이들의 모습일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어 버린 믹스와 멕스 이야기의 백미는 그들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을 서로를 통해서 할 때였다. 믹스는 눈이 보였을 때 지붕과 지붕 사이를 맘껏 날아다녔다. 멕스는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런 멕스에게 믹스는 자신의 눈이 되어줄 것을 제안했고 시력을 잃은 후로 하지 못했던 지붕타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믹스의 등에 탄 멕스는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모험 같은 이야기지만 그들에겐 특별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봤을 땐, 함께 지붕타기를 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스와 믹스가 그랬던 것처럼 믹스와 멕스의 관계도 특별했다. 그런 특별함을 오해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시선이 얼마나 될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믹스와 멕스의 행동을 보았더라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한 일로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의 틀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었던 건 믹스와 멕스 덕분이었다. 그리고 내 기준에 맞춰 친구를 사귀려는 마음만 갖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타인을 대하다보면 진정한 친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삶이라는 건 길이가 아니라, 고양이와 생쥐처럼 서로 마음을 열고 얼마나 따뜻한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략) 진정한 친구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서로 나눌 줄 아는 법이니까. (79쪽)


  막스와 믹스와 멕스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았다고 하니 나 역시 행복한 기분이 든다. 참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책 읽고 반했던 작가! 이 작가도 알림해놔야겠군! 신간 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와 학교를 향해가는 궤도, 저녁 찬거리를 사러 혹은 친구나 연인을 만나러 나가는 궤도. 그것은 전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번 어긋나면, 부럽고도 그립게 바라볼 뿐이라는 것을 이렇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78쪽)


인생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낼수록, 내 맘대로 되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내 맘대로 하려고 억지로 용을 쓸 때 부작용이 고스란히 나에게 온다는 사실도 말이다. 마음을 비우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앎에도 인간인지라 종종 감당 못할 욕심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묵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현재에 감사하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자고 하지만 며칠씩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욕심에 대한 종류는 여러 가지겠지만 생명에 대한 부분은 다가갈 수 없는 영역으로 느껴지기에, 내가 만약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교통 사로고 잃고 자신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유령이 보이는 주인공 사요코.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공포소설 같지만 사요코가 보는 유령의 형태는 무서운 대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 형상이 좀 두루뭉술하고 보통의 인간처럼 일상을 보내는 유령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요코는 연인을 잃음과 동시에 큰 부상을 입고 회복한 뒤라 삶을 통달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주 가는 술집의 사장은 그런 사요코에게 얼이 빠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고현장에 얼을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연히 매일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는 유령의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된 아타루와도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고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사요코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인의 부모님과 계속 연락하면서 그가 남긴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연인이 곁에 없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신체를 가질 수 없기에 영혼까지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외모와 옷차림으로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사요코를 볼 때마다 생각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요코의 입장이었다면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비극적으로 받아들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했을 것이며 변해버린 외모와 영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요코는 잘 견디고 있었다. 이 세상을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간직하되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이전과는 좀 더 다른 삶을 기꺼이 살아가고 있었다.

섞이는 건 간단한 일이야. 저세상과 이 세상이. 원래 섞여 있잖아. 과도하게 섞이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무상한 생활 속에서 자신을 갈고닦는 거지. (155쪽)


사요코는 저세상과 이 세상의 섞임을 경험했다. 그리고 ‘과도하게 섞이지 않도록 자신을 갈고닦’고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이 저자의 문체에서 우울하거나 극도의 침잠을 경험하지 않도록 뭔가 앙증맞으면서도 적당한 무게감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이 아홉 번째로 만나는 저자의 작품인데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특유의 소소함과 아기자기한 문체로 잘 녹여낸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일본 대지진 사건을 겪고 나서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 이 불안한 나날 속에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이 소설을 썼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문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일로 타인을 위로하는 행위가 경건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입장이 다 다르겠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인지 조금은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저자의 말처럼 이런 문인들의 행위가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닿길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만에 야외로 나와보는지 모르겠다. 완연한 여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필명으로 쓴 시리즈는 현재 출간 된 것까지 다 모았다.

읽은 건 < 봄에 나는 없었다> 뿐이지만 곧 다 읽어주리라! ㅋ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lanca 2015-05-1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주문해야 하는데 벌써 받으셨군요! 저는 이 필명으로 펴내는 마지막 책이라 아까워 못 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