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톡, 톡툰
샤이보이 (Shyboy)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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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40대가 되는 게 두렵지 않다고. 40대가 되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것이고 그럼 좀 더 자유로워질 테니 40대가 너무 기다려진다고.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는 현재 내 나이도 징그럽지만 40대는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진다. 지인의 육아에 대한 고충을 듣고 나니 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나도 40대가 되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아니면 지금의 생활을 더 그리워하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움으로만 바라보는 것보단 무언가 희망을 품고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훗날 나이 먹은 내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허무함을 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당신과 나는 결코, 거저 이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다! 모든 고개에서 값을 톡톡히 치른 것이다. 그렇다. 나이란 그 사람이 힘겨운 삶의 고난들을 얼마나 많이 이겨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빛나는 훈장인 것이다. (145)

  그런 면에서 40대 아저씨(?)의 이런저런 속내를 담아 낸 이 웹툰에 내가 빠져들 줄은 몰랐다. 40대는 나에게 먼 이야기고 아줌마도 아니고 아저씨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도, 공감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만화가를 꿈꾸며, 치열한 직장에서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 가정에서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쩌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웹툰에는 감성이 있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현재를 살아내는 모습과 좀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가 힘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지금 안아주어야 한다. 지금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오래 전에 용서했다고 말해야 한다. 찾아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136)

  저자가 일상에서 뭔가 허황된 것을 꿈꾸고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지 않았다면 이런 글에서 멈칫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경험을 통해, 톡톡히 치른 연륜에서 삶에서 얻어냈다고 생각하니 그의 빛나는 훈장의 이면을 존중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들 옆에 오래 있어줄 수 있을까? 이들이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줄까 하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이 들 때마다 바로 표현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늘 뒤로 미루고 있다. 저 글을 보는 순간 남편에게,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혼자 되뇌었지만 얼굴을 보며 자주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순간을 모면해버리면 후회와 번민만이 남을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일상과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참 열심히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육아를 핑계로 열심히 살고 있지 않으며 이런 글을 보면서 뭔가 기록을 남겨 보고 싶으면서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또 다른 지인은 내게 일상이든 뭐든 꾸준히 남겨보라고 충고한다. 지금은 육아 때문에 정신도 없고 여유도 없겠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났을 때 허무하지 않게, 그런 글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글을 남겨보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 마음을 덜어내고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웹툰을 보면서 나는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어서 아쉽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함을 앎에도 실행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여전히 자투리 시간에 책 읽기 바쁘고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벅차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좀 더 진솔한 나를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현실감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기대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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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6
이홍섭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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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는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무기력감과 권태가 나를 짓눌렀고 친구들을 만나면 수다스러웠지만 가족이나 낯선 이들 앞에서는 침묵했다.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었고 내가 그 곳에 속하게 되면 고향이란 공간의 진부함을 털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향했고 6개월 만에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잃은 게 더 많은 채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고향에서의 삶은 더 무기력해지고 참담했다는 게 내 기억이다.

  그 실패 이후로 다시는 고향을 떠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 내가 20대도 아닌 30살 여름,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때 그렇게 갈망했던 대도시가 30대의 나에겐 두려움의 대상이고, 적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살 곳, 내가 일할 곳이 확실해 환경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마음의 어려움이 늘 잠재했다. 일을 하면서 이 직장을 떠나면 아무런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 내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그 뒤 얼마 안가 직장을 관두게 되었고, 임신으로 찾아 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견디지 못해 남편과 함께 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고향에 돌아온 것은 // 순전히 자작나무숲을 지나온 바람 때문이란 걸 // 이 아침은 깨우쳐주네

<자작나무숲을 지나온 바람> 중

  저자처럼 내가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던 또렷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고향이 주는 안락함과 가족이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대도시의 치열함을 달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과 가족이 30대가 되어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고, 고향에 돌아오자 마음 깊숙이 자리한 그리움의 불안감은 사라졌다. 이 모든 기억이 저자의 시를 읽으면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대도시와 나는 어울리지 않았으며 그곳의 치열함을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향에 돌아와 소소하게 살고 있는 현재의 내 모습에 만족하기로 했다.

누군가 떠나고 // 누군가 다시 돌아오는 이 터미널

<터미널 5> 중

  고향으로 돌아올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고향의 문턱을 밟은 나의 감회가 분명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수없이 이용한 버스터미널. 기차역과는 달리 버스터미널이라는 공간의 애잔함과 쓸쓸함과 남겨진 자와 떠나간 자의 발걸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 왜 그런지 내가 경험한 고향의 버스터미널은 그런 느낌이었다. 20대에 장거리 연애로 버스터미널을 들락날락하며 하루의 다양한 시간의 터미널을 경험해서인지 버스터미널은 나에게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다. 저자의 시를 통해 내가 막연하게 느낀 감정들이 배어나오는 것을 보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다. 저자의 시선과 표현들이 나의 느낌과 완벽히 맞닿아 있다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터미널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느낌은 어느 정도 통한 것 같았다.

나 후회하며 당신을 떠나네 // (중략) // 지친 배였다고 생각해주시게 // 불빛을 잘못 보고 // 낯선 항구에 들어선 배였다고 생각해주시게 <등대> 중

  이 구절을 읽으며 떠나간 사랑, 떠나 온 사랑에 대한 회한을 담기도 했다. ‘불빛을 잘못 보고 낯선 항구에 들어선 배’였을 내가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한 배가 되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사랑이 아닌 내 삶을 대입해보면 내가 현재 낯선 항구에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또렷하지 않지만 방향이 잘못 되진 않았는지 자주 점검하는 편이다. 그런 점검의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내용물이 없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는 마음만이라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시집이 그 역할에 약간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시는 늘 나에게 어렵고 저자가 그려놓은 이미지에 늘 겉돌기만 했었는데 자신의 삶을 작은 목소리로 묵묵히 드러내는 이 시집의 서정성이 나의 마음까지 위로해 주었다. 이 시집을 읽으며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 과거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꼭 어려운 시들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용기를 북돋워주어서 다른 시집에도 기웃거릴 여유까지 만들어 준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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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의 흔적이 배어있는 문장, 저는 이런 시를 좋아합니다. 시인의 성함이 생소한데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

안녕반짝 2015-02-10 23:18   좋아요 0 | URL
저도 생소한 시인이었는데 그나마 서정시여서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시는 여전히 어려운 분야지만 이런 시집을 만날 때면 시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열리는 것 같아요^^

2015-05-06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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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르 콩데'는 삶의 단조로움에서 예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내가 언젠가는 놓아둘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일부-가장 좋은 일부-가 그곳에 있으리라. (30쪽)

 

  나의 공간적 피난처를 굳이 꼽아 보라면 집 근처의 스타벅스다. 거리가 가장 가깝기도 하고 수많은 카페의 체인점 중에서 분위기나, 커피맛이 가장 입맛에 맞기도 해서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가장 좋은 내 일부를 놓을 만큼 편한 곳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에다 늘 사람이 북적이고, 철저히 개인주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 콩데'에 나 자신의 가장 좋은 일부가 그곳에 있을 거라는 말이 참 부러웠다. 나에겐 그런 공간이 없을뿐더러 나 자신의 가장 좋은 일부가 무엇인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작품은『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은 게 전부다. 결코 녹록한 책이었노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안개에 휩싸인 듯 몽롱한 분위기에 저자의 작품을 더 탐독해보고 싶다는 열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면서 그의 작품이 국내에 더 출간이 되었고 그 작품들 가운데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먼저 읽게 되었다. 뭔가 사색적이면서도 사연이 깃든 추억이 있을 것 같은 카페. 그 카페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고 그 안에 펼쳐진 이야기 또한 궁금했다. 얇은 책이었지만 가볍게 페이지를 넘길 만큼 부담 없는 책은 아니었다. ‘르 콩데’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루키라 불리는 한 여인의 정체. 자클린 들랑크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도 했고 남편에게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통보를 한 채 집을 나온 여인. 그 여인의 과거가 각각 다른 화자에 의해 드러나자 그 여인의 실체가 궁금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당겨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문득 최근에 읽은 히라노 게이치로의『나란 무엇인가』에서 얘기한 여러 모습의 ‘나’, ‘분인’이 이 여인과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명의 화자로부터 드러나는 루키이자 자클린 들랑크라는 여인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옮긴이는 ‘단편적인 기억의 파편을 통해 과거를 정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네 명의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보고 생각하는 바를 종합하여 전체적인 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작품의 큰 구도를 이룬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지닌다.’라고 말하고 있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전자의 구도를 취하고 있는 작품임을 경험했기에 각기 다른 화자로 드러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르 콩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매력적인 여인으로,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갔으며, 미성년자일 때 보호자 없이 밤거리를 헤매다 경찰서 조사를 받은 일, 다른 여인과 친구가 되었지만 무언가에 홀리듯 마약에도 손을 뻗은 일. 이 모든 게 한 여인의 이야기였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네 명의 화자의 이름도 섞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도 섞여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파리의 수많은 지명들, 지리적인 위치들도 그런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런 요소들이 자칫 ‘기억의 파편’들일까봐 긴장을 하기도 했고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삶을 한 부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길 바랐다. 그녀의 현재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켜봤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길 원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갖기도 전에 그녀는 네 명의 화자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 본 독자의 눈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화자들과 얽혀있는 그녀의 이야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던 그녀의 사라짐은 허망감을 주기도 했다. ‘르 콩데’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이 송두리째 날아간 기분까지 들었다. ‘오직 도망치는 순간에만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103쪽)’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관계를 만든다는 것, 안정적이 된다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 일상의 안온함 속에 마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란 옮긴이의 말이 그녀의 사라짐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그녀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한 마디로 말하긴 힘들다. 나 자신도 한 마디로 정의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정의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며 때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녀의 행위를 지켜보면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혹시 놓쳐버린 게 있는 건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또렷하진 않지만 이룩한 것보다 놓쳐버린 게 더 많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여전히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무언가가 나를 붙들고 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침울한 기분이 들어 루키이자 자클린 들랑크의 삶이 내 안으로 침잠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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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뜻한 기억들
박정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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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가 잠들면 후다닥 컴퓨터를 켠다. 나의 유일한 쉼터 공간인 블로그에 머물러있기도 하고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 시간이 더 생기면 잠깐 책을 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이 나에겐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충족되지 못하면 아이가 잠든 깊은 밤에 나머지 일들을 한다. 낮에 보지 못한 책을 더 집중해서 읽거나 밀린 리뷰를 쓰거나. 그렇게 간단한 일만 해도 시간은 훌쩍 가고 늘 수면부족으로 아침에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만다. 그렇더라도 나만의 유일한 이 시간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곧 둘째가 태어나면 절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도 한 몫하고 있지만 그런 시간을 갖고 있을 때 민낯으로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 그래서 밤마다 이렇게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쏟아낸 그림들과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들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고,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갑자기 삐- 소리가 나면서 그 시간이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 내가 책을 읽거나 리뷰를 쓰고 있을 때 경험해본 것이라 마냥 신기했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도 그런 시간을 소중해하며 행복해 한다는 것에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기에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이 시간들이 쌓이다보면 아주 먼 훗날 나에게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란 막역한 희망을 가끔 품어보기도 한다. 그런 희망이 민망해서 금세 배시시 웃어버리며 생각을 털어버리지만 저자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꼭 창작물로 이어지지 않아도 내 일상은 소중하고 내가 하는 생각들이 헛되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어쩌면 기억을 그리는 행위는 멀게만 느껴지는 그리움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지도 모른다. 닿지 않는 곳을 향해서 있는 힘껏 손을 뻗고 또 뻗어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6쪽)

 

  내가 책을 읽고 소소한 리뷰를 남기는 순간이 어쩌면 ‘멀게만 느껴지는 그리움의 순간으로 나를’ 이동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새로운 생각이나 내 안에 약간은 미화되어 기억되고 있는 과거의 추억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에 반드시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망들이 현재 내가 바라고 있는 그리움의 총체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 과거나 미래의 것에 얽매어 그리워만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긍정적인 그리움을 드러낸다면 그것 또한 일상의 활력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일상과 생각들을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만 간직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저자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꼭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말이 아니라 내면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맴돌 때 그것을 드러내는 행위. 그런 행위의 드러냄으로 미지의 타인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행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고, 소소한 결혼생활을 드러내며,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모습이 나와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기에 더 나의 모습과 대입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삶의 모습은 누구와 꼭 닮을 순 없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대신 들을 때도 있기에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내 삶에 접목시켜 나만의 색깔을 드러낸다면 그것보다 더한 효과는 없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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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쓰기도 일상의 모습을 사진 찍고 블로그에 공개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는 것도 무심코 흘러가는 일상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서평은 책 내용과 감상을 기억할 수 있는 활자로 이루어진 사진입니다. ^^
 
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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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 만에『미성년』을 완독했는지 모르겠다. 상, 하 권으로 나뉘어 있어서 상권을 꽤 오랫동안 읽었음에도 하권 또한 훨씬 나중에 집어 들었다. 그리곤 또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읽어냈다. 도끼 옹의 전집을 순서대로 읽겠다는 다짐을 한 뒤부터 읽는 속도가 더뎌 지더니 이제야 겨우『미성년』을 끝냈다. 이제 대망의『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만 남아 있는데 이 책을 펼치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기에 펼치는 것조차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럼에도 도끼 옹의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내 능력이 부족해 또렷한 의견도, 전문적인 고견도 드러낼 수 없지만 굉장히 소소한 이유로 나는 도끼 옹의 작품을 좋아한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완독했다고 했지만 몇 번의 끊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칠 때마다 집중이 잘 되었다. 앞의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등장인물이 정리된 면을 계속 들춰가며 읽었음에도 매일매일 도끼 옹의 책을 읽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작품은 도끼 옹의 5대 장편 중에서도 완성도도 떨어지고 산만하다는 이유로 문학적 평가가 절하되고 있는데도 잘 읽혔다. 물론 도끼 옹 첫 작품으로 이 책을 선택해서 읽는 이가 있다면 분명 이게 뭐냐며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도끼 옹 작품을 만나오면서 특유의 수다스러움과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잊어버릴 정도로 긴 대화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어 잘 읽힌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장편이고 사생아인 주인공 돌고루끼의 심경의 변화라든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것처럼 더 산만하게 만들긴 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서 듣고 있음에도 정갈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 200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또 지지부진하게 진도를 못 빼고 있다가 완독하고 싶어 우연히 꺼내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이 책이 그간 향해 온 결말을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갈등과 비현실적인 사랑 다툼, 그 외의 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이런저런 사건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아버지와 마주 앉아 아버지 내면 속의 이념을 전해 들으면서 돌고루끼는 극적으로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게 된다. 그 이념이라는 것이 독자인 나를 설득시킬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돌고루끼에게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살았던 세월을 납득시킬만한 내용이었음은 분명하다.

내 앞에 펼쳐지는 전혀 다른 삶, 새로운 지평이 바로 내 <이념>이다. 그것은 이전의 것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인식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971쪽)

  돌고루끼가 이런 이념을 갖게 된 건 여러 가지 일들과 시간의 흐름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의 영향도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주인공이 쓴 수기가 ‘혼란스럽던 지나간 시대를 그려 보려는 미래의 예술 작품을 위해서 적절한 소재가 될 것이’ ‘새로운 시대란 항상 그런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 의해서 창조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이 복잡다단하고 산만한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 옮긴이는 ‘일상적이고 평면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존재의 목적에 대한 개인적 성찰이나 존재의 의미 탐구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라고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런 주제를 또렷이 건져 올릴 재간이 없다. 어렴풋하게나마 옮긴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띄엄띄엄 끼워 맞췄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 붙였고 왜 나는 또끼 옹의 작품을 좋아하고 읽을 수밖에 없는지 정도만 겨우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인지라는 것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나면 금세 잊히기 일쑤지만『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꺼내서 완독하고 도끼 옹이 좋아 아주 오래 전 무선본으로 구입해 놓은 그의 전집을 재독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재독을 다짐하고 책을 펼칠 때는 부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게 계획할 생각이고 더 즐겁게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두 번 읽다 보면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도끼 옹 작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허황된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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