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안녕, 소르시에 1~2 - 전2권
호즈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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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름에 고흐를 넣을 정도로 고흐를 좋아하기에 고흐에 관련 된 책이라면 일단 시선이 간다. 책장에 고흐에 관한 책이 가득하지만 대부분 미술서들이다. 그런데 만화에서 다루는 고흐라니! 그것부터가 독특해서 이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흐를 그대로 그려내는 만화도 아닌 고흐가 전혀 연상되지 않는 표지의 만화에서는 과연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궁금증에 순식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은 아쉬운 감이 든다.

  고흐를 좋아하고 그에 관련된 책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또한 무언가에 열광하면 세세한 뒷조사와 지식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의대로 띄엄띄엄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고흐에 대해서 얘기해보라고 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가 남긴 수많은 그림에 대한 배경적인 지식도 고흐 자체에 대한 지식도 내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만화를 읽으면서도 어디까지가 실화를 참조했는지 명확하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고흐와 테오를 실제 모습과 비슷하게 그려낸다는 것도 좀 우습지만 조금은 오글거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고흐와 테오의 모습에 먼저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흐의 삶과 죽음까지가 모두 이 만화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감추려 할 때 드러난다는 사실 또한 낯선 감이 없지 않았다.

  고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겨우 그림이라는 안식처를 발견하긴 했지만 그 길 또한 평탄하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다. 구필화랑에서 일했던 테오가 아니었다면 고흐가 남긴 수많은 그림들이 과연 탄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테오를 중심으로 당시의 파리의 예술 세계의 화려함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면서 서서히 고흐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두 권의 만화를 읽는 동안 분명 고흐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테오가 더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러했던 것처럼 고흐는 테오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고 오로지 그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고흐는 어수룩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명작을 남긴 화가로 보이지는 않는다. 수많은 책에서도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정열을 쏟아낸 화가로 드러나기에 뭔가 두루뭉술하게 고흐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흐의 죽음(허구이긴 하지만) 뒤에 펼쳐진 꾸며진 삶의 모습이 진짜 고흐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틈틈이 등장하는 고흐의 실제 작품들,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실제인지 허구인지 분간할 능력이 내겐 없다.) 등의 요소들의 고흐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의 삶을 독특하게 그려낸다는 사실이 흥미롭긴 했다. 하지만 완벽한 분석 뒤에 나타난 뒤집음도 아닌, 해학적으로 그려낸 것도 아닌, 상상력으로 점철된 특이한 구성의 작품이라는 사실보다는 좀 어정쩡한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흐의 팬으로써 이런 구성의 작품을 보는 재미도 좀 쏠쏠하긴 해도 고흐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첫 책으로 택한다면 그건 좀 위험할 것 같다. 고흐의 삶과 그의 작품을 충분히 즐긴 후에 이 책을 읽으면 좀 독특한 느낌과 함께 신선 혹은 의문의 느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고흐에 대해 다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에 진열된 수많은 고흐 책들 가운데 한 권을 꺼내 읽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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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표지만 봐서는 제가 아는 고흐의 어두운 삶과 상반되는 약간 밝은 분위기일 것 같습니다. 고흐의 진짜 목소리를 알려면 그가 테오에게 쓴 편지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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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1권을 읽고 난 뒤 2권의 이야기도 무척 궁금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 요코의 향방 때문이었다. 당연히 요코의 이야기가 함께 이어질 거라 생각하고 2권을 펼쳤으나 요코는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숙명인 왕을 찾아 나서는 ‘기린’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요코를 찾아 나섰던 게이키가 재등장하긴 하지만 기린인 게이키의 이야기보다 다른 기린 다이키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다이키는 기린중에서도 독특한 인물이었는데 인간 세계에서 십 년을 보내다 그를 찾아 헤맨 인물들에 의해 원래 기린이 성장하는 봉래로 돌아온 것이다.

  다이키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지만 그 세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늘 할머니와 아버지의 꾸중을 들으며, 그런 자신을 감싸는 엄마는 항상 울었다. 자신은 왜 그런지 늘 알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이 원래 인간 세계의 아이가 아니었음을, 자신에게는 왕을 선택하고 모시는 운명이 정해진 기린이란 사실을 십이국기 세계로 들어오면서 그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요코처럼 다이키도 갑자기 자신의 운명과 마주해야 했다. 당황할 법도 한데 인간 세계에서 워낙 다른 존재로 여김 받았기에 금세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이키에겐 큰 문제가 있었다. 봉래에서 여선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야 할 십 년의 세월을 다른 세계에서 보내버렸으니 모든 게 혼란스럽고 자신 앞에 주어진 왕을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압박감처럼 다가왔다. 기린은 원래 사람과 기린의 모습으로 오가는 전변(轉變)을 해야 하는데 방법도, 자신의 내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초조해한다. 여선들은 친절하고 자신처럼 기린인 게이키의 도움을 받을 기회도 만들지만 게이키는 무뚝뚝하기만 하다.

 

  거기다 오랫동안 봉래를 떠나 있었으니 그곳의 생활과 규칙, 그리고 기린으로써 받아들여야 할 봉래의 이야기들과 앞으로 왕을 모시게 되면 갖춰야 할 일들이 모두 혼란스럽기만 했다. 다이키의 혼란은 그대로 독자인 나에게도 스며들어 그가 왕을 선택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최고조에 다랐다. 기린이 왕을 선택할 땐 그 사람을 보면 왕기가 느껴지고 천계가 온다고 하는데 왕이 되고 싶어 봉래에 오른 자들을 수없이 만났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전혀 오질 않았다. 오히려 그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다이키는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교소란 인물을 왕으로 모시고 만다. 어떠한 천계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다이키는 자신이 엄청난 죄를 지었다며 자책하게 된다.

  다이키가 교소란 인물을 왕으로 모실 때 나 또한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왕기가 느껴지지 않고 천계가 없었던 인물을 왕으로 모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이 되지 않았으며 진짜 왕기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키가 왕을 선택하고 그를 왕으로 모셔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들에서 덮쳐오는 괴로움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죄인이라 옥죄며 자신의 운명까지 탓하는 다이키를 보면서 기린의 운명이란 것도 참 복잡다단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 다이키가 자신의 괴로움을 게이키에게 털어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평생 괴로움 속에서 살며 왕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음은 자명했다. 하지만 천계에 대해 게이키에게 다시 설명을 듣고 나서 그의 선택이 틀린 게 아니었음을 알고 되레 내가 안심하게 됐다. 일단은 잘못 선택했다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 다이키와 그가 모시게 될 왕, 그리고 그들이 다스리게 될 나라의 운명이 그제야 궁금해졌다.

  『십이국기』란 제목처럼 12개의 나라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데 그 안에서 굉장히 다양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 나라를 구성하는 인물들이 복잡하기도 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틀을 놓고 볼 때 이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흥미로워지는 건 사실이다. 이제 2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1, 2권에서 만났던 인물들이 다른 이야기에서 또 어떻게 얽혀 들어갈지의 여부도 궁금하다. 오랜만에 만난 장편 장르소설. 어서 다음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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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야
리쯔룽 글, 쉬원치 그림, 김은신 옮김 / 키득키득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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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칼바람을 맞는 요즘이지만 나는 바람을 좋아한다. 겨울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좋아하지 않지만 아주 가끔 상쾌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각각의 바람 냄새를 알고 있다. 특히 비가 오기 전에 부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한다. 온갖 냄새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비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봄이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좋아 일부러 산책 삼아 걸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 길을 걸었던 곳은 대부분 시골이었고 지금은 조금만 걸어도 자동차 매연과 소음으로 그런 여유를 만끽할 수 없어 외출을 해도 볼 일만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바람을 한참 동안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이 책이 있는 책장을 훑어보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꺼내보았다. 그리고 글과 그림이 마음에 들어 이 책 좋네 라며 혼잣말까지 하게 됐다.

  아이들 책, 특히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주제와 이야기가 너무나 다양해 내 마음에 드는 책보다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 책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커 가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심산이 아닐까 싶은데 어른인 나의 시선에선 이러한데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늘 궁금하다.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어서 말을 해서 엄마랑 같이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자고 부추기지만 알아먹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꺼내서 읽은 이 책에서는 어른인 내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바람을 좋아했던 옛 추억까지 꺼내들게 되었다.

  바람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나무와 풀잎, 꽃, 구름, 호수 등이랑 장난을 치며 논다며 어떻게 노는 지 상세하게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즐거운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종종 우울할 때가 있다고 말하는 바람. 소리, 색깔, 향기, 모양이 없는 모습에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놓는다. 나는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실재하지만 종종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런 바람은 우울할 때 어느 창가를 찾아간다고 했다. 그 창가에는 우울한 표정의 아이가 있고 바람은 그 아이와 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유리창을 두드리고 꽃향기를 보내도 반응이 없다. 그러다 어느날은 아이가 열어 둔 문으로 잽싸게 들어가 그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낱낱이 드러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날리고 들고 있던 악보가 날렸지만 아이는 우울해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며 바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람아! 바람아 안녕! 가지 말고 기다려 줘! 나는 너랑 놀고 싶어!

  냄새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자신이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람은 기뻐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을 부르면 단숨에 달려가 아이의 미소를 따라 춤을 추고, 머리카락 사이에서 훌훌 장난을 치며 논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바람의 이야기와 함께 섬세한 수채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단순히 아이를 위해 억지로 읽고 마는 동화가 아니라 아이보다 오히려 내 맘 속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은 이야기로 느낀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 그 위에서 행복한 듯 노는 곤충들과 하늘이며 호수며 모두 바람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마치 저자와 그린이가 한 사람인 듯 글과 그림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글과 그림이 일치하는 책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더 오랫동안 바라봤고 글과 그림 모두 내 마음 속에 담으면서 바람을 좋아했던 내 모습을 기억해 냈는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내 뺨을 간질이던 바람. 그런 바람과 함께 스르르 잠이 들고, 그런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던 순간들. 왜 그런 순간들을 잊고 살았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바람이라고 하면 먼지를 일으키고 차가운 것이라고만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마음 속의 차가운 바람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이 책이 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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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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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인간 실격』을 읽은 게 전부다. 개인적으로 내용이 우울해서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우울한 작가라는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리 오가이의『아베 일족』을 읽게 되었고 일본 고전이 더 읽고 싶었다. 책장을 뒤져보니 다자이 오사무의 이 책이 있어 약간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저자의 다른 면모를 본 것 같아 신선했다. 모든 일에 그렇겠지만 책은 동기가 부여될 때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책장에 꽤 오래 묵혀뒀음에도 이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저자의 작품을 언제 꺼내들지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자 두툼한 책도 거리낌 없이 읽히는 걸 보며 다시 한 번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을 정도다.

  「쓰가루」는 저자의 고향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이라 정확히 어디쯤인지 알고 싶어 검색해 보았으나 바로 지명이 뜨지 않았다. 일본 전체 지도를 검색해서 대강 아오모리 현의 북단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읽어 나갔다. 의뢰 받아서 고향을 여행하긴 했지만 꼭 다시 한 번 고향을 둘러보고 싶었던 저자의 목적이 분명해서인지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종종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저자가 머문 곳의 역사를 꽤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지명이 낯섦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저자의 동선을 따라가며 읽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추억이 깃든 곳이라 인연이 있는 지인들을 만나고(지인과의 만남에서 빠지지 않고 과할 정도로 마시게 되는 음주가 눈에 띄었다!) 데면데면한 가족과의 조우, 그리고 어릴 때 자신을 길러 주었던 유모를 찾아가는 과정은 괜히 나까지 설레게 했다. 분명 나도 자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 나와 다르게 누군가를 기억하고 만나고 싶다는 목적으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저자의 행동이 과감하면서도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석별」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센다이 의학전문학교 유학생 시절이던 이야기를 수기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에는 루쉰이 아닌 저우 씨로 명명되는데 동기생이었던 ‘나’가 신문기자의 취재를 받으면서 그 시절 함께 보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루쉰의 소설을 몇 편 읽었지만 개인사는 거의 모르던 터라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는 사실 조차 생소했다. 그제야 검색을 통해 대략이나마 생애를 알게 되어서인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구별할 능력이 내게는 없지만 굳이 구분을 위한다기 보다는 당시의 일본 사회에 녹아든 듯 그 시절의 배경이 잘 드러났다. 소설이지만 왜 루쉰이 일본까지 유학을 왔는지, 의학 공부에 전념하다 중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작가가 됐는지, 또 그 시절의 일본과 중국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았다. 더불어 내가 역사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알게 되었고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역사에 대해 이런 문학작품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게 되었다.

문학이 없으면 세상은 빈틈투성이입니다. 문학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런 불공평한 빈틈을 자연스럽게 채워가는 것입니다. (314쪽)

  마지막으로 ‘옛날이야기’를 패러디 한「옛날이야기」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으로 시작된다. <우라시마>는 거북의 등을 타고 용궁을 여행한 인간의 이야기라 <혹부리 영감>의 재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원작을 잘 알고 있을 때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인지 두 이야기는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지만 <부싯돌 산> <혀 잘린 참새> <모모타로>는 일본에서 유명하다고 해도 나에겐 생소해서 패러디 문학의 묘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옛날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독특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해 나갔다.

  「인간 실격」과 같은 수기 형식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세 편의 이야기는 저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을 깨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저자가 이 작품들을 쓴 시기에 대한 통찰력을 내가 드러낼 순 없지만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책장에『달려라 메로스』가 있어서 이런 나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까지 마음에 들면 천천히 저자의 전작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요즘 일본 고전에 빠져 있는데 이 열기가 식기 전에 최대한 많이 흡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책은 묵혀야 제 맛이라는 엉뚱한 지론을 가진 탓에 책장에 일본 고전이 그래도 꽤 있는 것에 스스로 감탄(?)하며 그 책들을 차례차례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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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족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5
모리 오가이 지음, 권태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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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책장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 놀람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책 욕심으로 인해 읽은 책보다(오로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으로 봤을 때) 안 읽은 책이 더 많다는 것. 그러다보니 언제 내가 이 책을 들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우연히 다른 책을 통해서 내 책장에서 재발견 하는 경우다. 거기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똑같은 책을 또 사는 어수룩함도 놀람에 포함이 될게다. 모리 오가이 작가의 작품을 바로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책장에서의 재발견 때문이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를 읽다 또 다시 언급된 모리 오가이를 보며 그 순간 바로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책장에 들인지 꽤 됐음에도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보면서 내가 궁금해 하던 그 작가의 책이라는 사실을 내내 잊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이 책을 읽어 버렸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냥 읽어볼까 하고 책을 꺼내들었다면 언제 다 읽을 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를 통해 꽤 오래전부터 궁금해 하던 작가였고 다른 책에서도 그의 단편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면서 이번이 기회라는 것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갈증이 오랫동안 묵혀 빨아들이듯 책을 읽어나갔다. 오히려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는 잠시 제쳐두고 이 책을 먼저 읽었고, 이 책으로 인해 일본 문학이 궁금해 두툼한 다자이 오사무의 책까지 꺼내들었다. 거기다 욕심까지 더해져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까지 주문하고 말았다. 상당히 충동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으나 그만큼 이 책이 오랜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고 나름 좋았기에 이런 행보도 순식간에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총 네 편의 단편 중 다른 책에서 언급이 많이 되었던「무희」와「기러기」가 가장 궁금했다. 책을 순서대로 읽는 걸 좋아해 바로 그 단편들로 가지 않고 착실하게「아베 일족」부터 읽어 나갔다. 자신이 따르는 무사가 죽으면 할복으로 함께 따라죽는 무사들의 이야기에 절대적인 공감도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이름이 헷갈려 집중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무조건 이해할 수 없다고 무심코 넘겨버릴 수도 없었다. 그 당시의 문화와 풍습을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한 부분을 관찰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예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명예롭게 죽지 못했다고 수군대고,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한 가족의 몰살을 야기하는 이야기에서 비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절대 공감할 순 없지만 당시의 처지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비극을 말이다.

 

  「무희」와「기러기」는 조금은 신파라고 느낄 정도의 결말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무희」는 독일 유학시절이라는 배경의 신선함은 있었지만(저자의 경험이 바탕이 된 탓도 있겠지만 당시에도 그러한 배경으로 쓰인 작품은 신선했을 것 같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버리고 귀국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절망의 순간에서 딱 멈춰버린 듯 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정신을 놓아버리는 여자. 태어날 아기도, 여자도 지키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오는 남자의 이야기가 순수한 사랑으로 순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거기다「기러기」는 여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변화는 흥미로웠지만 고리대금업자의 첩이라는 사실, 첩을 들여놓고도 뻔뻔하게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순종하고 고마워하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지만 엇갈림으로 인해 고백조차 못하고 어긋나버리는 여주인공. 우연히 던진 돌에 목숨을 잃은 기러기가 등장함으로 인해 그간 공들여 읽고 있던 이야기와 분위기가 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듯 끝나 버렸다. 그래서 신파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흡인력만은 대단해서 저자의 다른 작품을 더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작품 중에 읽을 만한 작품이 없어 다른 일본 작가의 책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충동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꺼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을 주문했던 것이다.

 

 

  마지막에 실린 짤막한 단편「다카세부네」는 이 소설집의 마무리는 하는 느낌이 들었고, 유배되어 가는 죄인이 아니라 마치 이승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죄인, 딱 잘라 결론 낼 수 없는 진실, 그에 반해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인물로 인해 더욱 더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쓰인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국적이면서도 당시의 배경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라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역시 일본 문학도 고전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흥분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일본 문학이든 또 다른 나라의 문학이든 고전에 관한 관심이 진득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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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3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저는 일본, 중국문학 고전보다는 서양 쪽을 선호해요. 그래서 책 좀 읽는 사람들도 한 번쯤 읽었을 <삼국지>도 안 읽어봤어요. 오늘자 중앙일보에 삼국지 번역에 관한 기사에 반짝님의 글을 읽고나니 동양고전 쪽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안녕반짝 2015-02-01 07:51   좋아요 0 | URL
저도 <삼국지>는 여전히 읽지 않았는걸요. 전 웬만한 장편소설은 다 소장하고 있는데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고 특히 전 역사소설은 굉장히 약합니다. ㅜㅜ 전 해외소설을 더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나라별로 많이 읽긴 했는데 요즘은 그냥 책 속에서 많이 언급된 작품들 위주로 읽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