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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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로울 때도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문득, 나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태어남과 같이 죽음은 선택을 할 수 없기에 종종 불안하면서도 나에게 먼 이야기라고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화책임에도 책장을 덮고 나니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든다. 마치 유서를 쓰듯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건 아닌가란 물음이 올 정도로 내 삶,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오리는 얼마 전부터 누군가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죽음이라고 대답한다. 지금 자신을 데리러 온 거냐는 물음에 만일을 대비해서 죽 네 곁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 만일은 독감이나 사고 같은 거며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오리는 죽음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스스럼없이 말을 나누고 함께 연못을 가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죽음 위에 눕기도 한다. 오리는 그런 죽음과 함께 하면서 눈을 뜰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죽었다면 늦잠을 잘 수 없었을 거란 죽음의 말에 쌀쌀함을 느끼면서도 죽음과 함께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한다. 흔히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오리의 세계에 덧대어 나눈다. 하지만 죽음도 그 세계는 알지 못한다. 죽음 그 자체로 오리 곁에 있는 것뿐이지 오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는 목적은 아니다. 오리도 그걸 알기 때문에 죽음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 자신이 놀던 연못을 보며 자신이 죽으면 저 연못은 외롭고 쓸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오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죽음은 네가 죽으면 저 연못도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 말에 위로를 받은 오리는 괴상한 생각만 든다며 나무에서 내려온다.

  언젠간 오리가 맞이해야 할 죽음이었지만 그런 죽음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렵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들이 연속일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주가 흐르고 오리는 죽음을 맞이한다. 전처럼 죽음과 함께 연못을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고 춥다는 말과 함께 부드러운 눈이 내린 날 조용히 죽었다. 죽음은 그런 오리의 깃털을 매끄럽게 해주고 강 위로 데려가 오리를 뉘인 후 살짝 밀어준다. 그렇게 떠내려가는 오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밖에 죽음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슬퍼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란 문장과 함께 묵직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동화책을 처음 읽었을 땐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일까 의아해했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따뜻함과 표지의 오리가 조금 쓸쓸하긴 해도 뭔가 마음 뭉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서 구입하게 만든 지인에게 끝도 그렇고 이상하다고 말했었다. 지인은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책이며 죽음에 대해 곰곰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귓등으로 흘려듣다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제야 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동화임에도 정말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더불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에 대해서도 감사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언젠가 내게 다가올 테지만 죽음 자체를 겁내고 있다간 삶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오리가 처음에 죽음을 발견하고 놀랐었지만 이내 죽음의 시선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행복도 발견하고 자신의 빈자리를 가늠해 보면서 마치 죽음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어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삶이 이대로만 흘러갈 것 같은 착각에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삶을 유지하는 것. 때론 그렇게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날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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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리뷰보니까 삶과 죽음은 친구같아요
어머니가 죽음을 준비하시는 모습에 가끔 울컥하는데 오리가 하늘 쳐다보는게 그렇게 슬퍼보이지않고 오히려 의연해보이기까지하네요
누구나 피해갈수없는 죽음
그죽음이 우리 삶을 걱정해주며 친구해주고있다는 이야기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안녕반짝 2015-01-18 16:32   좋아요 0 | URL
정말 동화인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책이 좀 커서 그림도 더 와 닿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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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배 보배 반달문고 29
정연철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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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을 좀 더 어릴 때 인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다른 사람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는데 너그럽지 못함을 느낀다. 모든 사람이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상을 향한 모순 때문일까? 나와 좀 다르거나 조금 튀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내 불편함을 느낀다.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고 오직 나와 마음 맞는 사람만을 곁에 두려는 심보. 어쩌면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그런 갈림을 심하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나와 조금 다른 아이들을 향해 독한 말을 하거나 왕따를 시킨 경험, 물론 있다. 그리고 나도 피해자가 되어 왕따를 당해 본 기억이 있다. 동창이 8명뿐인 조그마한 분교에서도 왕따를 시키고 왕따를 당하곤 했는데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 일들이 얼마나 심할까? 왕따를 시키거나 무관심 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왕따를 시키는 일이 정말 별거 아닌 것에서부터 이유 없음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한 화상을 입고 엄마 아빠도 없이 할머니 집으로 온 보배는 어땠을까? 왕따를 당하기에 너무 많은 이유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동네에 여자 아이가 귀해 새로 여자 아이가 온대서 잔뜩 기대하던 경식이는 보배를 보고 실망한다. 예쁘지도 않고 화상을 입고 게다가 뚱뚱하기까지 하다. 그런 보배에게 경식이는 당연하단 듯이 못되게 구는데 그럼에도 자신을 따라다니자 경식이는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새침데기인 은조를 좋아하는 경식이. 은조 말이라면 깜박 죽는 경식이는 은조가 모범생 상호를 좋아하는 것이 영 마뜩찮다. 상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은조는 경식이에게 더 못 되게 굴고 경식이는 그걸 보배에게 되풀이하고 있다. 어른도 쉽지 않은데 나와 다른 아이를 인정하고 감싸주는 건 역시 아이들에게도 기대하기 힘든 일일까?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왕따를 목도하게 하면서도 그 아이들의 마음이 서서히 풀려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이 그래서 더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자주 마주치면 정이 든다고 했던가. 경식이는 보배에게 못되게 굴고 귀찮아하면서도 자신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는 보배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든다. 정말 처음 보배를 봤을 때 너무 놀라 그런 보배를 똑같이 싫어하는 은조를 더 좋아하면서도 바른 말만 하는 상호가 더 미웠었다. 보배를 그나마 있는 그대로 보려는 상호가 이해 안가는 건 경식이 뿐만 아니라 은조도 마찬가지였는데 상호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나 역시 쉽지 않음을 알고 많이 부끄러웠다. 나였다면 앞서서 보배를 두둔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보배를 싫어하는 일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중간한 상태로 이리저리 묻어 다니려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져보고 여전히 지니고 있기에 소설 속의 제각각인 아이들을 보면서 뭐라 비난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온전히 순수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른보다는 분명 더 순수하고 여린 마음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그래서 서서히 보배를 감싸고 보배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부끄러움도 느끼면서 뭔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단번에 나와 다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건 힘들지라도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다름을 인정하고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아이들도 풍부한 인관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에게 더 많은 점을 배우면서도 지난 과거에 나의 자잘한 잘못들도 떠올라 마음이 무거운 부분도 있었다. 늘 어이없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되뇌며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나와 좀 다른 삶을 살았거나 뭔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더 너그럽게 가지는 게 나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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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안녕반짝님 글로 맑아집니다
저도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순수하고 여린마음이 더많다고 생각하고 믿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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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쑥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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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차기작은 어떤 만화가 나올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런데 육아 만화를 출간하다니! 이렇게 상큼 발랄할 수가!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고 있다면 시큰둥하게 아이가 생기니 이런 만화를 그렸나 보다며 무심코 넘겨 버렸을지 모른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했던가. 아이를 낳아보니 정말 이 만화 속 이야기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 조금 덤덤해진 것 같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몇 억이 드네 어쩌네 그런 말들이 많지만 부모의 능력보다 부모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가진 게 많다면 더 좋은 거 더 나은 걸 해주겠지만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내가 가진 한도에서 꼭 필요한 것만 해주자고 다짐했다. 첫 고민이 산후조리였는데 아이를 빨리 낳는 바람에 병원에서 9일 정도 입원을 하고 홀로 퇴원을 해서 조리사를 불러 집에서 했다.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어서 비용은 10만 원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저자는 아내와 함께 고른 조리원에 들어가는데 그곳 원장님의 수유 마사지에 감탄하는 부분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원장님의 손길이라면 저자도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란!) 그리고 퇴원해서 올 아이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선물 받고 얻은 게 많아서 크게 들어간 건 젖병 소독기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괜히 기저귀용 백팩에 꽂혀 비싼 걸 주문하고 지금은 처박혀 있는 것만 빼면 육아용품을 사서 크게 실패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저자는 유모차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구입했음에도 실패했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비웃을 수 없는 게 육아용품을 구입하는 건 정말 신세계에 입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나 역시 받았기 때문이다. 검색만 하면 쉽게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종류도 많고 애매모호한 평들에 더 헷갈리게 했다. 첫 관문이 유모차였는데 아이가 10킬로그램이 넘어가자 도저히 아기띠로는 감당이 안 되고, 얻은 유모차는 주니어용이라 8개월 때 구입했다. 그것도 친구가 절반 보태줘서 구입했지 나라면 쉽게 구입하지 않았을 금액이었다. 유모차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금액도 천차만별이라 고심하던 끝에 국산에 그나마 저렴한 유모차를 구입했다. 나름 만족하며 쓰고 있고 이제는 유모차 없는 외출은 생각지도 않을 만큼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그 이외에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목돈이 들어가는 유모차를 구입했다면 그 다음은 카시트다. 카시트도 얻어서 쓰다 적립금을 받을 일이 있어 6만 원 정도 보태서 새로 구입했다. 그에 비해 옷은 거의 사지 않았던 게 물려받은 옷이 있어서 많은 부분이 절약됐다. 또 아이가 커 나갈 때마다 장난감에 고민하게 되는데 큰 금액을 넘지 않은 선에서 한 개씩 구입해주고 중간 중간에 선물로 받아서 그럭저럭 때워나가고 있다. 다행히 돌이 되기 전에 쓰는, 부피가 큰 타는 장난감부터 바운서까지 모두 얻어 써서 그 시기를 알차게 넘겼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아이 키우는 게 별거 아니다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더 커감에 따라 부차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아니라 아이 존재 자체에 대한 노력과 고민이 더 필요함을 알고 있다. 저자도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그 기쁨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이래저래 겪게 되는 육아에 관한 에피소드와 고민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부가 모두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일해야 하는 고충, 아이도 소중하지만 부부가 먼저여야 한다는 깨달음, 아이 존재 자체로 인해 밝아지고 다투기도 하는 관계 등 보통 부부라면 겪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기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고 고민해도 쉽지 않다는 것. 험한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셋이서 잘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그 모든 것이 어찌 저자만의 고민이겠는가.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계획 중이거나 이미 장성하게 키웠음에도 눈 감을 때까지 그런 고민을 놓지 못하는 게 부모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는 유쾌하고 찡하고 공감가기도 하는 다양함을 지니고 있다.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지만 아빠의 시선으로 녹아낸 게 더 마음에 들었고 내 남편에게도 읽히고 싶었다. 다른 아빠랑 비교하려는 게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표현해 달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 냄새가 폴폴 나서 그런지(아니면 아기 냄새?^^) 전작과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지만 나름 재밌고 마음 찡하게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아이를 낳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보이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부분은 완전 공감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인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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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10 - 번외편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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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을 읽긴 했지만 이 만화는 제대로 완독하지 못했다. 지금껏 출간된 시리즈 중에 두 세권을 읽은 게 전부다. 그것도 순서대로 읽은 것도 아니고 책이 생기는 대로 띄엄띄엄 읽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기에 그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꿰어 맞췄고 그러다 개봉된 영화도 보았다. 만화책을 제대로 읽지 않아 영화와 정확히 비교는 못하지만 굉장히 서정적이고 끝이 좀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태인데 번외편의 바로 앞 이야기인 9권을 읽은 것도 아니면서 번외편을 먼저 읽다니. 좀 이상한 읽기지만 그래도 번외편을 읽는 재미는 쏠쏠했다.

 

  번외편인 만큼 시간적 배경도 등장인물도 다양한 느낌이 들었다. 린이 다이키치 집으로 온지 얼마 안 된 이야기를 쓴 것도 있고 린의 엄마 마사코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그후’라는 소제목으로 최종 이야기를 다룬 것도 있다. 고향에서 만난 린, 다이키치, 코우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린과 다이키치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는 귀여웠고 코우키와 코우키의 엄마와 함께 어울릴 땐 어색하면서도 묘한 기류가 생기기도 했다. 후에 코우키는 린에게 차이고 코우키 엄마와 다이키치도 썸을 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린과 다이키치가 10년 세월을 함께 하고 사랑을 느끼는 일이 가장 핫하다. 어찌되었건 어린 이모를 키운다는 것도 낯설긴 하지만 오랜 세월 후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한다는 게 만화이기에 가능한 건지 현실감각을 일깨우기도 했다.

 

  시리즈를 완독 한 것이 아니기에 번외편을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긴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를 어서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시리즈의 초반을 읽으면서 어린 이모와의 기묘한 동거이며 육아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이 사랑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좀 경악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들게 되는 애정에 대해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특히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함께 하다 보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너무 만화속의 이야기로만 몰지 않고, 너무 현실적으로 끌어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린과 다이키치의 관계가 애정으로 변하는 걸 보며 만화 속 이야기니 가능한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육아 만화 같았던 초반을 생각해 보면 귀엽고 뭔가 마음이 뭉클해지는 감정이 지배적이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린도 커가고 둘의 감정에 변화가 생기면서 확실히 초반의 그 느낌은 사라졌다. 더 이상 린을 어린아이로 대할 수도 없고 다이키치도 나이를 먹고 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에 뭔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기분도 든다. 둘의 애정전선을 보며 잘됐다는 생각과 다른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여전히 교차하는 것을 보니 띄엄띄엄 읽은 만화를 다 채워서 완독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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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퍼 씨의 12마리 펭귄 반달문고 19
리처드 앳워터.플로렌스 앳워터 지음, 로버트 로손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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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면서부터 책이 가득한 방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다 책이 3면을 차지하는 방을 갖게 되자 책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거실과 방 하나에 책이 가득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과연 나는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책을 몽땅 사서 책들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차근차근 모으고 읽었음에도 책이 애물단지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사할 때, 읽어야 할 책이 읽은 책보다 넘칠 때, 책장 때문에 집이 좁아지고 먼지가 쌓일 때, 정작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 책들을 반드시 다 읽을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하기에 절망하기보단 인내를 키우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마음속에 하나쯤 자신이 꼭 바라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갖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 파퍼 씨에겐 추운 곳의 이야기가 그랬다. 페인트칠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그지만 결혼 전에 이런저런 모험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하면서도 추운 곳의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질려 하지만 파퍼 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넋을 빼고 이야기하거나 깊은 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추운 곳의 이야기를 읽곤 한다. 그러던 그에게 펭귄 한 마리가 배달되어 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퀴즈를 맞히고 선물로 받게 된 게 바로 펭귄이었다.

  파퍼 씨는 추운 곳에 직접 가지 못한 대신 펭귄을 키울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펭귄이 일반 가정집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게 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파퍼 씨는 자신의 안락함도 포기한 채 펭귄에게 최대한 그간 지내온 환경을 제공하려 애쓰지만 새끼를 낳아 펭귄이 12마리가 되었을 땐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만다. 거기다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펭귄들이 기운을 잃어가자 대책을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파퍼 씨는 늘 몽상에 빠져 있고 책임 있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진 않지만 천성적인 긍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알게 되자 이 이야기의 끝은 행복하게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집어 들게 된 책인데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도 있었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을 부지런히 넘겼다. 파퍼 씨가 펭귄들과 함께 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내게 전해지는 듯 했다. 분명 늘어난 펭귄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고 더 빠듯해진 살림과 엉망인 집, 아내의 잔소리가 있었음에도 파퍼 씨는 펭귄들과 떨어져 지내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펭귄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겠지만 어떻게든 함께 지내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가 얼마나 추운 곳을 갈망하며 그곳에서 온 동물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스런 펭귄들을 널리 알리고 지키긴 했지만 영원히 펭귄들과 살 수는 없었다. 파퍼 씨가 지켜야 할 가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환경이 펭귄들에게 맞지 않았다. 파퍼 씨는 펭귄을 선물 받은 항해를 떠나는 드레이크 제독에게 펭귄을 보내기로 한다. 펭귄을 보내면서 엉엉 울면서 인사하는 파퍼 씨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졌는데 드레이크 제독은 아무렇지 않은 듯 파퍼 씨에게 함께 동행 하자고 한다. 오로지 이 펭귄들이 주인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몇 년 동안 먹고 살 돈이 마련되어 있어 아내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고 파퍼 씨는 꿈에 그리던 탐험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파퍼 씨는 분명 북극 탐험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 할 것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이 이뤄졌을 때의 기쁨. 나이가 들면서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파퍼 씨는 오래 오래 간직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점점 속물처럼 변해가고 물질에 의존하고 어떤 것을 얻어도 쉽게 마음이 식어버리는 삶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파퍼 씨는 신선한 자극이 된 셈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없다고 해서 풀 죽어 있지 않는 것. 파퍼 씨가 탐험을 떠났던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기다려봄직하고 열심히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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