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세실 바즈브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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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다 햇살이 좋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마침 아이도 졸려 하기에 남편과 함께 나가기로 하고 챙기는데 별 것도 아닌 일로 남편이 짜증을 냈다. 나도 맞장구를 쳐서 그렇게 나가기 싫으면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자 정말 남편이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상황이 짜증이 나 한숨을 푹 쉬며 집 앞에 나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좀 더 멀리 산책을 나갔다. 지난 주말에는 함께 유모차를 밀며 느긋하게 산책을 했는데 아이와 둘만 나가려니 뭔가 처량해 보였다. 그렇게 복잡다단한 마음을 다스리면서 산책을 하는데 햇살이 좀 뜨거워도 바람이 불어 그럭저럭 상쾌했다.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스르륵 잠이 들고 바다는 눈앞에 펼쳐지고 잠시 유모차를 멈춰놓고 가져온 책을 읽었다. 지난밤에 조금 읽다 끝까지 읽어보고 싶어 가져온 책. 작가도 낯설고 책 내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지만 그래서 현재 내 상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관한 내용이 나와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이 아니었는데 묘하게 현장독서가 되고 말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어디가 수평선인지 구분이 안가는 넓고 먼 바다가 아닌 은빛 물결을 가까이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바로 섬과 연결되어 있는 작고 아담한 바다였다. 그래서 네 편의 단편에서 나오는 거대하고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거친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너무나 평온한 바다를 보고 있어서 작품 속에 드러난 이중적인 바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긴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런 반대되는 분위기였기에 어느 정도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거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곳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단박에 나는 우울감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글이 드러내는 분위기에 쉽게 매도되는 편이라 우울하거나 무서운 책은 절대 깊은 밤에 읽지 않는다. 이 작품 속에 드러나는 네 편의 단편은 죽음이 등장한다.(「등댓불」에서 주인공이 본 사람이 형체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여객선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다 침몰로 인해 동료도 잃고 자신의 삶의 방향이 더 복잡해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페리의 밤」, 가장 가까워야 하고 마음을 나눠야 할 아내와 원만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며 외로움을 켜켜이 쌓아가는 등대지기가 등장하는「등댓불」, 사고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에게 생일 때마다 편지를 쓴 병을 던지는 애틋한 노부부지만 실상 아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던「바다로 보낸 병」,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매주 일요일 바다에 동생과 함께 나갔다가 눈앞에서 동생을 잃고 엉켜있던 가족관계에서 벗어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실린「혼자라면」이었다.

 

  짧은 단편인데도 뭔가 긴 이야기를 읽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떠한 사건은 일어났고 그 배경이 모두 바다라는 점,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삶을 한 단계 뛰어넘어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초연하게 사건을 떠올리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체념도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바다를 미워하지도 않고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예고되어 있었기에 당연한 것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바다라는,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배경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늘 위험성이 뒤따랐다. 그리고 위험부담은 현실이 되었다. 남겨진 사람에겐 고통일 수밖에 없는 상실감. 그런 사람들의 내면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어 어떻게 보면 이미 숱하게 보아온 주제일지도 모르나 저자만의 문체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다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나는지 궁금해 검색해 보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작품인 이것뿐이었다.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똑같이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에서 읽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웠다.

 

  우연히 책장에서 꺼낸 책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맛볼 때의 독서는 행위자체로 만족감을 준다. 비록 이 책을 읽게 된 배경은 썩 유쾌하지 못했지만(집에 돌아와서 여전히 툴툴거리는 남편에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냐고 따지자 자기도 짜증낸 게 미안했는지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댔다. 내가 외출하기 직전에 큰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간 게 화근이었다나 어쨌다나. 자긴 화장실 들어가면 30분이 기본이면서! 하긴 외출 직전의 배우자의 오래 걸리는 화장실행은 그야말로 짜증 그 자체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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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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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정말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있다. 나랑 맞는 사람은 몇 마디만 나눠 봐도 딱 느낌이 오는데 싫은 사람은 그보다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나와 자라온 환경과 사고관이 다르다고 해도 상식을 벗어난 사람. 그런 사람과 하루 종일 붙어서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것만큼 고역도 없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일이 힘든 경우도 많지만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한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굉장히 소극적이면서도 타인이 싫은 말을 해도 실실 웃고만 있다 속으로 상처받는 타입이라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무척 많다. 수짱처럼 매일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 정말 싫어 출근하기 힘들었던 적이 많아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수짱이 싫어하는 사람은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무카이라는 직원이다. 남의 험담은 물론 권력을 이용해 아르바이트생들을 점장인 수짱 대신 맘대로 주무르려는 타입이다. 그것도 진지하게도 아니고 내키는 대로 하다 수짱이 지적하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버린다. 수짱은 그런 무카이 때문에 매일 괴로워한다. 점장으로써 중심을 잡고 최대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려고 하지만 정작 무카이가 험담을 하거나 자신에게 상처받는 말을 해도 제대로 대꾸를 못한다는 사실도 괴롭다. 장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싫은 사람의 장점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떡해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 고심한다.

 

  수짱의 사촌 아카네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직장을 관두고 싶어한다. 직장의 선배란 사람은 똑같은 걸 매번 물어보고 휴가도 자기 편할 대로, 사소한 규칙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면 지긋지긋한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데 정작 남자친구는 프로포즈 할 생각이 없다. 거기다 수짱이 일 얘기를 하다가 점원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을 흘렸는데 아카네의 남자친구가 그런 사람이었다. 사소한일지만 왠지 결혼상대로 정이 안가는(꼭 그 일 때문만이 아닌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랬다.)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럭저럭 무난해서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이 저런 단점이 발견된다고 해도 아카네처럼 기다렸던 프로포즈에 유예이간을 줄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는 내가 정말 싫어했던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이 무거운 다른 동료들에게 엄청난 험담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만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에 험담하고 난 뒤에 후회가 되면서도 기회가 되면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타인의 험담을 자주했고 허세가 있었으며 자신은 능력이 있다는 걸로 포장하려 든 사람이었다.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고 타인의 험담에 동조하지 않자 조금씩 나를 경계했다. 함께 일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뒤에 다른 일로 인해 그 사람을 극도로 미워하게 되었다. 사람을 미워하자 얼마나 내 삶이 피곤해지는지 깨닫게 되었는데 마주치지도 않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그 사람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 했던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의 단계에 이르자 마음이 평온해지는 반면 부질없이 내면의 힘을 낭비했다는 허망함도 찾아들었다.

 

  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나는 참 사귀기 힘든 타입이 아닌가 싶다. 붙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 삼자고 할 배짱도 없고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 하고만 교류를 하려고 하니 인간관계가 굉장히 협소할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일단 경계한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다 싶으면 순식간에 내 속을 다 털어 보일 정도로 얇다. 나를 포장하려 사람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떠들고 웃을 때가 많지만 천성적으로 부끄러움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이다. 그러면서 내면은 어찌나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지. 정말 사소한 일에도 마음 상해하고 쉽게 분노했다 포기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내가 사회 속에서 잘 적응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프리랜서를 하거나 그냥 집에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건데 이런 내 모습을 바꾸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늘 해결되지 않는 고민인 것이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죽도록 노력을 해서라도 바꿔야 하는지 늘 진퇴양난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떠올리며 맞장구도 치고 내 경험을 풀어놓긴 했지만 타인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누군가 나를 정말 싫어하고 실망하고 미워하기까지 한다면 내 자신이 신경쇠약에 걸려 어떻게 돼 버릴 것이다. 그래서 정말 나는 네가 싫다며 후련하게 말 하지 못하는 것이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 그건 정말 힘 빠지는 일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지 신경이 쓰인다면 그 사람에게 나의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하기 전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먼저 덜 싫어하고 덜 미워하는 것. 그것이 먼저고 그렇게 하다보면 많이 너그러워져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내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또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 어느 정도 순리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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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4-12-31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스다 미리를 저는 읽다 말아서
이글이 ˝ 안녕반짝˝님의 생각인지
원 글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책을 읽고 소통 하는 곳이니 저 나름의
대답을 하자면
예...역시 책을 빼고 갈 수 없겠네요.
95년에 제게로 와서 힘든 시기마다
같이 한 녀석인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고 로맹 가리 외 프랑스의 여덟명의
작가들 단편선이 실려 있어요.
최근 몇 년 시중에 나온 책과는 조금 다른것이 지금 제가 들려 드릴 작가의 단편
얘기이고 그건 요즘 버전엔 없는 듯 합니다.
아니면 읽어 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앙드레 도텔의「 인생의 어떤 노래 」
좀 모자란 남자가 찟어지는 듯한 여자의 악
쓰는 소리에 반한다는 간단한 안내의 문구를
김화영 님이 남겨주셨고, 작품속 그의 이름은
뱅상 포슈..잠시 잠깐도 주위를 기울여 일하는 것이 힘든 남잔데 힘은 좋고 늘 뭔가
재미있을 법한 것을 찾고자 하죠.대부분 그것은 부모를 괴롭게 하는 일들였구요.어느날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와선 제안을 하나 하는거죠. 자기네 목장에 와 일해 달라고.
그런데..마침 그곳이 아멜리라는 정말 심술보가 고약한. 처녀가 있는거죠.
얼마전부터 뱅상은 멀리서 그녀의 높고 찟기는 듯란 그 소리에 매료되서 그 근방을 맴돌고 있었거든요.아멜리는 단단히 벼르죠.
어쩐지 못났으니까.. 목소리도 이러니까
더 빙글 빙글 대며 놀려대는 애들 심보를 ..쭉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아마 체념하고 스스로를 사납게 갈고 닦지 않았을까요..
네게 상냥은 안 어울려..그럴게 뻔하니까..그래 심술 사나워 주마..뱅상과 만나고 어떻게든 분노를 표출해야지 하던 그녀..그런데..그는 번번히 그녀의 예상을 뒤업어요. 급기야는 죽겠다는 식의 엄포를놓기
까지..거기에 대고..뱅상이 말합니다.
-살아야 했다구.알아들었어?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니? 그래도 살아야 할 걸 그랬다고 .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도 아니지....그냥
여기 있기위해서라도.파도처럼, 자갈돌처럼,
파도와함께. 자갈돌들과 함께.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고백하자면 어느 한 때 세상이 온통 가시같다 느꼈어요.
용기를 줘도 될까한데 아무도 내 편은 없는 것 같았지요.불면이...
길어지고 음식을 먹고 하는 일련의 행위 조차 간신히 해내던 시기요.
저는 그 때 6살의 딸아이가 있었거든요.
엄마니까 마땅히 해내야 하는 일들이 ...그러니 제 괴로움과는
상관없이 일상은 말짱한 얼굴로 가면을 쓰고 살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당연히 받았죠.어디서 엄살이냐..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사무치더라구요.
그 때 그 불면의 밤들..물론 95년도에 사서 읽었던걸 무심코 꺼내 읽었을 거예요.다시 읽을 무렵엔 2010년 .
저 문장이 저를 살게 했어요.아무것도 아니어도 누군가에 무엇이되지 못해도 나는 나를 살아야 하는 구나...
아무래도 싫은 사람- 본능이 먼저 경보를 울리죠.
제 경우엔 그 첫시기를 잘 넘기면 그 사람과는 굉장히 오래 가는 사람이 되는 일이 대부분 였어요. 나와 너무 속속들이 닮아 진저리 쳐지게 싫은 내면의 나..라고 저는 그럴때 생각해요.
나와 거리가 먼것도 내가 결국 의식해 멀리둔 무언가 이니까..같은거라고..
나..내가 보이는 거라고 .. 초면이고 모르는 사이인데 너무 길었죠.
이건 얼굴이 안뵌다는 그런 익명성 의 장점.오지랖이라고 아무래도 싫은 사람..그리되는 걸까요?.. 진지하게 들었다..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답은없지만..말예요..공해가 아니기를 바랄 밖에..
새 해. 곧 입니다.
기억을 더듬고 책을 꺼내 그 부분을 찾느라 아침입니다.
모쪼록 마지막 12월의 끝 날을 잘 보내시고..ㅡ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테니까요...새 해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안녕반짝 님께...그장소에서..정성을 담아♥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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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깨가 결리도록 아이를 업고 있다가, 하기 싫은 설거지를 꾸역꾸역 하고 있을 때, 개켜야 할 빨래가 있음에도 모른 척 하고 싶을 때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이런 생각은 매 순간 찾아오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듯 나를 바라볼 때도 있고 심각하게 이렇게 살다 이렇게 인생이 훅 지나가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한다. 텔레비전만 켜도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는 충고가 넘쳐난다. 진정으로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줄 거라 말하는 책도 있다.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고 무언가가 되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좌절해야 했던, 지금껏 해결되지 않은 최대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직장을 관두고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일자리를 더 찾기 힘든 지방으로 내려와서 아이만 키우고 있자니 점점 내가 바라는 게 적어진다. 예전에는 내 책들을 넉넉하게 넣을 수 있는 큰 집을 바랐다면 지금은 큰 욕심 없이 먹는 거, 입는 거, 아이를 위해 조금씩 더 쓸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고 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그 기준이라는 게 모호해지지만 남편의 월급이 지금보다 조금 더 넉넉했으면, 마트에 가서 가격표보다 눈에 들어오는 걸 막 집는 호기를 누릴 수 있었으면,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느긋하게 거리를 누빌 수 있는 여유를 바라고 초첨이 맞춰지는 거 보니 나도 아줌마가 다 된 것 같다.

 

  존재감이 드러나길 바라는 전업주부 미나코의 고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행복한 고민이라는 부러움과 동시에 내가 저런 상황이었대도 미나코의 고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거란 걸 직감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고 속물근성은 수시로 바뀌어서 지금 현재 내가 당한 어려움만 해결되면 살겠다 싶다가도 막상 그 일이 해결되면 또 다른 걸 바라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나코는 주택대출도 끝나가고, 남편의 월급도 그럭저럭, 아이도 귀엽게 잘 자라고 있는 상황이라 꽤 괜찮은 결혼생활을 유지했다고 타인의 입장에서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기에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여유가 만들어지겠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그 상황이 되어봐야 타인을 비로소 이해하는 것 같다.

 

  반면 미혼인 다에코의 입장을 보자면 혼자서 모든 걸 꾸려나가야 하기에 늘 빠듯하고 미래에 대한 보장을 바라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내 스스로가 힘들다면 결혼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도 가져보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새언니 미나코가 부럽고 약간은 경쟁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미나코와 다에코 모두 그런 경쟁심을 본의 아니게 드러내서 깊은 후회를 하지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섬세하기 때문에 그런 기복과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무르는 내면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두 여인의 속내가 남 얘기 같지 않았고 현재의 나는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원하며 살아가는 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점점 획일적으로 되어가는 어른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의 생각은 다르다는데서 오는 안도감이 있었다. 엄마가 마흔이 되는 걸 서글퍼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에 후회를 하자 아이는 질문이 많아진다. 그게 나쁜 거냐고,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말이다. 나 또한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되고 싶지도 않은 직업을 대강 에둘러 말한 적이 많았음이 떠올랐다. 어릴 때는 무언가 되고 싶다기보다 어떤 사람이 될까란 것에 더 마음이 쏠렸었는데 아이의 시선에서 본 어른의 모습을 통해 내 유년기도 그 아이와 비슷했음이 퍼뜩 생각난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특히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내 인생은 여기서 단절된 것 같고 끊겨버린 것 같아 잿빛 미래만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상실감이 든다. 꿈을 갖지 말란 법도, 새로운 직장을 갖지 말란 법도 없지만 미나코가 직업을 가지려고 하자 가정과 남편에 해가 되지 않을 선이라는 규격이 생긴 것처럼 내가 당면한 현실에도 마찬가지다. 육아에 해가 되지 않은 선, 가정에 소홀히 하게 되지 않는 선. 그런 일을 찾을 수 있긴 한 걸까?

 

  최근에서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일이었음에도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소소하게 느낌을 남기는 것. 누가 시켜서도 보여주기 위함도 아닌 오로지 내가 좋아서 하게 되는 일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타인이 시켜서라면 아이를 재워놓고(이 말은 리뷰에 늘 빠지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행위를 이토록 열심히 할 리가(타인이 시켜서 열심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내 성향을 볼 때)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이라는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책 읽고 리뷰 쓰는 것임을 인정하니 참 싱거우면서도 마음이 편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활동까지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경제활동 뒤엔 그에 따른 애로사항과 하기 싫은 일들이 따라오므로 아무런 드러남이 없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당분간 궁상을 떨며 살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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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 2014-12-2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이 어렸을때 많이 했던 생각이에요..
이러다가 내인생이 끝나버릴것 같은 불안감과
고립감...근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서 제몫을 해내더라구요.
오히려 지금은 그시간들이 그립기까지 하답니다.
그래도 안녕반짝님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으셨다니 부럽네요..

안녕반짝 2014-12-31 02:19   좋아요 0 | URL
금방 자란다는 것에는 동조하지만 괜히 조급증을 갖고 있나봐요.
지금도 아이가 너무 빨리 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ㅜㅜ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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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짱의 연애』를 읽고 나면 이 책이 궁금해진다. 바로 수짱이 오랜만에 연애 감정을 느끼는 쓰치다의 속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과연 수짱과 쓰치다는 연애를 하게 될까 말까 궁금하던 터라『수짱의 연애』를 읽고 바로 펼쳤는데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쓰치다가 밀당을 했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 수짱과 쓰치다의 연애사를 바로 드러내기보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보여주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간 수짱의 내면과 고민들을 들여다봤다면 이번에는 쓰치다의 고민과 속내를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평범하지만 괜찮아 보이는 남자 쓰치다.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낱낱이 들어 있다.

 

  지금도 책을 좋아하지만 서점에 가면 내가 읽지 않은 수많은 책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방에서는 한가하게 책을 들여다보며 고르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책을 구입하러 온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했고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찾는 책 있냐는 질문이 들려올 정도로 작은 서점들 뿐이었다. 그러다 서울의 대형 서점에 가자 그야말로 신기루를 만난 것 같았다.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책들이 즐비했고 꽤 괜찮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간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얼마나 허황된 생각들을 품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였다.

 

  서점 이야기를 한 건 쓰치다 때문이다. 쓰치다 역시 책을 좋아하고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소개팅을 나갔다가 책 이야기가 통한다 싶으면 상대방을 마음에 담는 순수한 청년이다. 그런 쓰치다는 책 이야기도 하고 자신의 연애, 편찮으신 큰 아버지 이야기, 직장 동료들, 손님들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쓰치다의 섬세한 속내가 드러나는데 월급날이면 서점이 붐비는 걸 보고 감동을 했다는 부분을 보며 나도 멈칫했다. 책에 한참 빠져들 때의 나는 책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책을 소유물로 그리고 책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기보다 빨리 읽고 리뷰를 남기며 읽은 책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생각하고 있다. 묵직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들은 책장 높은 곳에 묵혀 둔 채 현재 내 욕망을 풀어줄 책들만 줄기차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반성으로 쓰치다의 이야기를 채울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쓰치다를 통해서 책을 처음 좋아하게 된 마음, 20대 중후반부터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모습을 되새겨보자 뭔가 허무한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서점에 전시할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책 리스트도 말해주고(무라카미 하루키의『먼 북소리』는 완전 동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건 아닌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한다. 한때 나도 훅 불면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떨던 때가 있었다. 그런 고민에 대한 결과가 드러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꽤 질긴 먼지라는 게 증면된 셈일까?(^^)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다 보면 인생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고민들이어서 그런지 대입이 잘 되는 것도 있고 꼭 인생을 이런 고민으로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묘한 생각들이다. 지금까지 정한대로 살아지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삶에도 어떤 날들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타인의 생각에 그대로 묻어가기보다 타인의 생각에 비추어 나의 모습은 어떤지,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인생관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자세를 잡는 것. 어쩜 그것이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관통하는 중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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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의 연애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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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가진 채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의 설렘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다. 연애를 막 시작할락 말락 할 때의 설렘은 정말 잘 태어났다고 생각될 정도로 기쁘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상대방도 나에게 싫지 않은 감정을 보내올 때, 그때부터 연애는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에 정점에 올랐다가 사귀고 난 뒤 백일쯤 되면 처음에 그 감정은 조금은 시들해지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연애 대부분이 그랬고 그 뒤로는 서로를 안다는 익숙함과 편안함, 애정에 애증이 더해져 사랑을 지속시켜 가는 것 같다. 연애를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시작한 이후보다 시작 전의 설레고 떨리던 기억이 많아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사랑의 기억이 스쳐지나 가는 걸 그냥 내버려 두었다.

  수짱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손님으로 오던 서점 직원 쓰치다 신지를 우연히 만나고 다시 호감을 갖게 된다. 그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어떤 답장이 올지 기대하는 모습, 너무 속 보이는 건 아닌가 하고 책상에 얼굴을 묻는 모습 등 연애 초기에 한번쯤 겪어봤을 행동들이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벌러덩 누워서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곤 했는데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나의 행동은 극과 극이 되었다. 상대에게 반응이 괜찮으면 나의 몸부림은 더 격렬해졌고 반응이 시큰둥하면 침대에 얼굴을 묻고 ‘미쳤어, 미쳤어’ 하며 혼자 있음에도 부끄러워 한참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극히 충동적인 행동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수짱과 신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청승을 떨고 말았다.

  신지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 수짱보다 네 살 연하이고 애인이 있음에도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뭔가 불안하기보다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수짱이 애인과 헤어지고 자신을 만나라고 할 사람도 아니고, 신지도 충동적인 마음으로 경솔한 행동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직장이 가까워 자주 봤을 당시부터 마음에 조금씩 담아두던 사람을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니 더 극적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설렘과 고민, 조금씩 서로를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과 함께 각자의 직장 이야기가 얽혀 들어가는 게 현실감을 주었다.

  수짱은 어린이집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이를 낳는 인생과 낳지 않은 인생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 종종 심란할 때도 있지만 나 또한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면서 심각하게 했던 생각이라(가능하다면 아이를 먼저 낳고 싶었다. 20대가 좀 더 건강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 수짱의 고민이 낯설지가 않았다.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내 아이가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또 다른 고민들이 쏟아지지만 말이다.

  수짱과 신지는 서로 호감을 가지면서도 신지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짱 혼자서 신속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이런 만남을 지속시키면 안 되겠다는 좀 섣부른 결론을 말이다. 수짱의 마음이 백분 이해가 가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안쓰러웠다. 신지에게 애인이 있다고 해서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호감을 갖는다고 해서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기에(뭘 했어야 말이지!)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둘의 사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뭔가 잘 될 것 같은 긍정적인 향기가 폴폴 느껴져 그냥 안심이 된다.

  타인의 연애를 보며 설렐 수 있다는 게 좋은 걸까? 아니면 타인의 고민을 들으며 공감하고 내 상황을 대입하며 곁들일 수 있다는 게 건강하다는 증거일까? 결혼 2년차를 향해가는 나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남편과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을 꾸리고보니 현실에 치여 서로에게 시큰둥하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 외출할 때 손이라도 좀 잡고 다녔으면 좋겠다. 한사코 귀찮다는 남편을 졸래졸래 따라가며 손을 잡는 내가 비참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남편도 나와의 연애시절을 좀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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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 2014-12-2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2년차라면 반짝님도 아직 풋풋하신걸요??
수짱의 연애 저도 참 잼나게 읽었어요.

안녕반짝 2014-12-31 02:18   좋아요 0 | URL
아직 풋풋한데 전 왜 10년 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