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기차 속 깊은 그림책 5
제르마노 쥘로.알베르틴 글.그림,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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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곳은 두 군데예요. 하나는 도시에 있는 우리 집이고요. 또 하나는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이에요.”

 

  한 아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정교하게 그려진 도시에 사는 아이. 기차만이 오로지 그 아이를 도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여행에 대한 갈망을 갖게 한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을 여행이라 생각하고 그 여행을 통해 온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던 아이. 그런 아이에게 엄마와 할머니는 모든 곳을 여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치기 어린 마음에 한 말일 테니 나라면 그러라고 했을 텐데 왜 여행할 수 없는지 조근조근 설명해 준다.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고 내 안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만 해도 아주 어렵다는 조금은 모호한 이유를 들려준다. 아이는 엄마와 할머니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에도 모든 배경이 흑백인 가운데 오로지 기차만은 형광색으로 힘차게 빛나며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마치 흘러가는 풍경처럼 아이의 마음도 계속 흘러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엄마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아이는 독자에게 들려준다. 결국 엄마와 할머니의 결론은 ‘크면 다 알게 돼.’ 였다. 나도 참 많이 들어본 이야기였고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역시나 그런 말을 종종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경험자의 이야기를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였으면서 내가 경한 이야기를 고리타분하게 하고 있다. 그 아이들도 내 이야기를 고리타분하게 듣다 경험하고 나서야 내 이야기를 조금은 수긍하게 될 텐데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내 기준에서 단정 짓지는 않았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두루뭉술하게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세상 일을 더 잘 알 수 있으니 크는 게 좋다고도 말하고 삶이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런 고백은 형광색 기차가 지나가는 광경과 흡사해 마치 한 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할머니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꼭 온 세상을 여행할거란 다짐을 한다. 그리고나서 엄마와 할머니에게 말할 거란다. ‘보세요! 할 수 있잖아요!’ 라고.

 

  어쩌면 아이가 생각한 것처럼 나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게 분명’ 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다는 것에는 무한한 것이 들어갈 수 있는데 과연 나는 그럴 수 있는 것에 무엇을 망각하며 살고 있었을까? 이제 30대 초반을 갓 넘었는데 내 삶을 포기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잠시 멍해진다. 충분히 꿈을 꿀 수도 있고 꿈이 없다면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며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도 괜찮은데 과연 나는 내 삶에서 어떤 환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잊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더 답답하다. 내가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퍼뜩 떠오른다면 다시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련만. 나는 아이의 생각을 따라 기차여행을 하며 아이가 성장하고 마주하게 될 세상을 미리 보았으면서도 내 마음은 결국 아무것도 따라가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음에 나는 내 아이에게 무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다시 그 세계에 뛰어들 용기가 없는 나인데 과연 내 아이에게 가능성이 크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말을 쉽게 못해주더라도 나보다 강인한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의 나보다 더 심지가 곧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무언가 확실한 꿈이 없어도 되니 올바르게 자라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이로 커 갔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역시 부모의 마음일까? 내가 그러지 못해서인지 아이에게 벌써 이런 마음을 심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책 속의 아이와 한 기차 여행이 좋았다. 아이가 세상 구석구석을 다 돌아볼 거란 다짐을 미리 보여주듯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면서 나 역시 많은 곳을 여행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나는 나중에라도 저렇게 다른 세상을 보면서 여행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져본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함께 세상을 보는 눈을 더 키우고 더 넓게 보는 마음을 갖길 바라본다. 그래야 다른 세상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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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고 동맹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1
미타 마사히로 지음, 심정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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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교에 다니던 나에게 중학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졸업 동기가 8명에 불과했던 초등학교와 달리 무려 반이 두 개나 되었고 1학년은 80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또래 아이들을 만나본 것도 처음이었고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철없던 나는 단박에 짝사랑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자주 짝사랑 하는 사람이 바뀌었고 꼭꼭 숨기거나 너무 티 나게 드러내거나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기억나는 아이가 한명 있었다. 나와 장난치다 코피를 터트렸던 아이, 내가 짝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전학 가버렸던 아이. 그런 아이를 6년 뒤 19살의 끄트머리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나는 또 바보 같이 짝사랑에 빠져버렸다.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 아이와 잘 된 다거나 뭐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데 내 짝사랑은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 아이 생일에 맞춰 고백하기 며칠 전, 다른 여자아이에게 고백을 받고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단박에 그 아이와 연락을 단절하고 절망에 빠져버렸다. 몇 개월이 지나서 나에게도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 아이는 무려 8년의 연애를 했지만 결국 헤어졌다. 그 아이의 이별 소식이 들렸을 땐 나에게 남자친구가 없었다. 서로 뜻이 맞았다면 잘 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풋풋한 20살의 내가 아니었기에 더 이상 그 아이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틈틈이 연락을 하며 지냈고 서로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출산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됐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지난 이야기를 들춰낸 것일까? 아마도 이 책 속의 사춘기 아이들의 연애와 우정 이야기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나에게 혼자만의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할 수 있는 연애였다면. 결과가 어찌 되었던 간에 숨통이 트였을 것 같다. 나를 잘 몰라도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뜬금없이 내게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가 있었더라면 당시의 나도 덜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느날 갑자기 료이치 앞에 나타난 데쓰야. 야구부인 데쓰야는 료이치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시합을 비디오로 찍어 달라고 한다. 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료이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급기야 암 투병중인 나오미라는 여자아이까지 만나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묘하게 친구가 된 세 아이들의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맑게 그려지고 있었다. 암 투병중인 나오미에 대한 연민을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춘기의 순수한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연애와 우정에 관해서만 그려냈다면 지금껏 종종 만나온 청춘소설로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픈 이가 등장하는 소설도 만나봤지만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딱 고만한 사춘기 아이들 같으면서도 때론 인생을 거의 다 살아버린 애 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목도하고 있고 어쩌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상대방에 가 닿지 않더라도 그 행위만으로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적이 내게도 있었을까? 자연스레 마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조건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마음.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친한 친구가 좋아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드러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과정에서 도리어 내가 힘을 얻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쩜 행운이기도 하면서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료이치는 데쓰야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나오미 또한 데쓰야를 통해 료이치를 알게 되고 데쓰야는 료이치를 통해 나오미를 또 새롭게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만남이 어떠한 결과를 낳던지 간에 이렇게 손을 내밀어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요즘은 친구 만들기가 얼마나 힘들던가. 기존의 친구도 지키기 힘든 요즘에 내가 손을 내민다고 아무렇지 않게 덥석 손을 잡아 줄 타인.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친구를 갈망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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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스다 미리 만화 4종 세트 1 - 전4권 -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 주말엔 숲으로 +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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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남자들! 문학동네 청소년 10
이현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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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에 위치한 중학교를 다니면서 종종 친구들과 주말에 시내에 나와 돌아다닐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람도 많았고 돌아다닐 곳도 많았다. 지금 그 시내를 가보면 정말 작은 곳이라 특별히 할 일이 없을 정도인데 그 당시에는 뭐가 그리 좋아 깔깔거리며 다녔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그렇게 시내에 나오면 꼭 들르는 곳이 노래방이었다. 지금처럼 시간제가 아니라 곡 수를 따지는 곳이라 신중하게 노래를 골라 불렀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만 간추려서 끝까지 불렀고, 중간에 누군가 음악을 끊는다던가 끼어들어서 함께 부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상대방이 선택한 곡을 존중해야 했고 진중하게 들어주며 호응을 해줘야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마무리했다.

 

  이 책을 읽으니 수없이 갔던 노래방 중에서도 중학교 때 갔던 노래방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노래방이라는 신세계를 만났던 때이기도 했고 한참 서태지를 좋아할 때라 그곳에서 서태지 노래를 뽐낼 수 있다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오로지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갔던 노래방. 회식 후에 들르는 노래방과 절대 같을 수 없는 그야말로 질적으로 꽉 찬 시기였었다. 책 속의 주인공 나금영이 노래방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자부하던 시기가 시시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노래방이 삶의 터전인 아이가 있다. 노래방에 가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이름 금영. 노래방 딸 이름치곤 너무 뻔한 이름 같지만 나름대로 노래방에 대한 인생철학이 있다. 기분에 따라 자유자재로 노래방 선곡을 하는 것은 물론 17살의 희노애락이 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금영처럼 신나게 때론 슬프게, 철학적이게 노래방에서 놀진 못했지만 노래방이란 장소에 얽힌 추억들이 떠올랐던 건 사실이다. 나금영의 나이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나금영이 강동원에 빠져 있는 것처럼 나도 서태지에 열렬히 빠져 있었고 모든 기준이 서태지였다. 그런 부분에서 당시의 나와 나금영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고, 만화 캐릭터 같은 친구들이 곁에 있진 않았지만 그 당시 꼭 붙어 다녔던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은 애 엄마가 되어버린 내 친구들.

 

실력 있는 반주자와 신이 내린 목소리가 어우러진 전문가의 음악이 실용이라면, 노래방의 음악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다. 잡음 섞인 반주에 불안한 음정으로 질러대는 그 노래야말로 100퍼센트 순수한 예술인 것이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실용적 음악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나를 위한 진정한 예술이라고나 할까. (14쪽)

 

  나금영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노래방에 얽힌 추억 때문에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지만 나금영의 친구들과 함께 얽혀 들어가는 고민들과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고등학교 시절도 떠오른다. 진로에 대한 고민, 이성에 대한 호기심, 외모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등 나에게도 그런 고민을 하고 부끄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들이 말이다.

 

노래방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빠져 순식간에 읽어버렸지만 무엇보다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덧 주인공 나이의 2배가 되어버린 내가 여전히 어색하긴 하지만 그때의 나도 또 다른 모습의 일부분이었다고 인정하면 이제야 그런 적도 있었다며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담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세월의 힘이라는 생각에 괜히 이런저런 추억들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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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화 구두 세트 - 전4권
박윤영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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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글자가 빽빽한 소설책을 읽다 보면 가끔은 눈의 피로가 덜한 만화책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느긋한 금요일 저녁이나 긴 연휴의 첫 날 그런 책이 당긴다. 달달한 케이트와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을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환상적인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책도 그럴 때 꺼냈었다. 직장을 다니던 금요일 저녁 텅 빈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조금만 읽다 가자며 꺼냈다가 1권을 순식간에 읽고 2~4권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섭렵해 버렸다.

 

  그때는 연애를 하기 전이라 오글거리는 대화와 장면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나도 이럴 때가 있었나 싶어 동시에 함숨을 쉬기도 했다. 평범한 직장 여성 신지후.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직장 선배 오대리. 어쩌면 거리감이 먼 인물이 아닌 직장 내 상사를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좀 더 편하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또 공감하는 사실이, 직장엔 오대리 같은 남자가 흔하지 않다는 것, 아니 아예 그런 남자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겪는 마음의 변화에 마음을 빼앗길 수 없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기대하게 되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오해도 잘하고 착각도 잘하고 혼자서 울고 웃는 날이 많아진다. 짝사랑이든 마주보는 사랑이든 타인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것에 연애만한 것도 없다. 사랑이 시작 될락말락 할 때의 미칠 듯한 설렘.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서로가 통했을 때의 기쁨.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때론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이런 감정의 변화를 느꼈던 적이 언제던가. 그 감정에서 멀어졌다고 해도 한번쯤 경험한 적이 있는 감정이기에 두 주인공의 희비에 나 또한 그대로 따라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가 만화의 주인공인 듯 한껏 빙의되어 마음이 설fp다가도 오글거림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던 한마디는 ‘이런 게 현실에 어디 있어!’였다. 서른이 넘어서 읽게 된 만화여서 그런지 이미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가 괜히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 속에서 이런 사랑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내가 경험하지 못하면 부정해버리는 아이러니. 한껏 빠져들었음에도 결국은 현재를 인식하며 빠져 나와서인지 만화의 끝이 조금은 씁쓸했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더라고 결국 해피엔딩이라면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왠지 끝이 불안할 것 같아 내가 마음을 졸이다 긴장감이 풀려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사랑을 꿈꾸며 이런 사랑을 해보려는 용기라도 품었을까? 명확한 대답을 할 순 없지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 것 같다. 아프더라도 사랑을 하는 게 더 행복하고 나를 발견하는 게 더 쉽다는 사실. 아픈 게 두려워 사랑을 피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사랑하지 않은 날보다 사랑하며 사는 날이 더 행복했다며 이제야 정의를 내려 본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난 지금은 왜 그런 행복감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일까? 사랑이 멈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침체. 남편과 데이트라도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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