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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 엄마 없이 먹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맷 매컬레스터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임신을 하고 입덧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먹는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루 종일 멀미하는 기분이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후각의 고통에 시달리며 몇 주 동안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입덧으로 기력이 쇠해져가자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임신 때문에 감정기복이 심해 엄마가 보고 싶어 며칠을 울었고 엄마가 끓여주던 시래기 된장국이 너무 먹고 싶었다. 장거리 여행을 조심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6시간을 달려 엄마가 있는 집에 도착했다. 미리 언질을 해놔서 먹고 싶었던 시래기 된장국이며 꽃게탕, 오징어무침 등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집에 머무르니 기력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을 경험하고 나자 엄마를 자주 볼 수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계신 시골집에 가면 엄마표 밥상은 물론 돌아올 땐 반찬을 한가득 싸 짊어지고 온다. 그리고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는 늘 용돈을 챙겨주신다. 안 받으려 하지만 어떻게든 내 손에 쥐어주는 엄마. 그런 엄마가 없는 집, 엄마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하기도 싫은 먼 미래의 일이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와의 이별이 올 테고, 누구나에게 엄마는 푸근하고 가슴 사무치고 고마운 존재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엄마의 죽음을 목도하고 보니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한 남자가 있다.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저널리스트리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이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병으로 시들어가는 엄마를 오랫동안 바라봤다면 한번쯤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늘 술에 절어 엄마와 자주 다투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저자의 그런 마음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을 땐 마음이 홀가분한 것이 아니라 저자처럼 뼈아픈 후회가 먼저 들었다. 당시 고3이던 나는 아버지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더라면 사회생활을 시작해 효도를 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 때문이었다. 저자 또한 오래전부터 엄마의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을 잃게 한 원인인 엄마가 막상 세상을 뜨자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봐야 얼마나 사랑한지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엄마에게서 멀어지고자 전쟁터를 누볐던 그 시간들. 저자는 그곳에서 보아온 끔찍함 보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상실감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런 엄마의 빈자리가 버거워 심리치료도 받고 기자란 직업을 내려놓기도 하고 엄마의 흔적을 좇기도 하지만 우연히 엄마의 요리책으로 인해 요리라는 세계에 입문 아닌 입문을 하게 된다. 네 가족이 단란했던 시절,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떠올리며 엄마의 레시피를 기억하고 찾아보면서 곁에 없는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되새긴다. 책 제목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저자가 요리를 시작할 때 엄마의 굉장했던 요리 솜씨라던가 식탁에서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마구 쏟아질 거라 생각했다.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느끼기 위해 엄마의 요리를 따라하고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추측처럼 무언가 굉장한 요리가 나온다거나 마법의 레시피를 건져 올리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엄마의 요리를 따라하고 추억을 더듬으면서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치유한 건 사실이나, 그 과정 속에는 저자의 내면에 감추어둔 가정사를 들춰내고 엄마를 재조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마음속의 상처를 들춰내며 치유해가는 매개물이 되어 주었다. 또한 자신을 비롯한 가족조차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엄마의 삶을 되짚었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엄마의 삶을 되짚어보면서도 그 형식에 따라 집요하게 취재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방적인 과정으로 번질 수도 있었으나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오가는 구성으로 인해 균형을 맞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전기문 같기도 한 이 책의 흐름은 수차례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진료기록을 들여다보면서 절정을 이루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외면하고 부정하며 드러내기조차 꺼렸을 내용들을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나 동정심, 혹은 우울함이 들지 않도록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요리가 엄마를 기억하기 위한 행위의 시작이었지만 나중에는 요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며, 엄마의 흔적을 좇으면서 정작 엄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어릴 적 엄마는 다정하고 발랄했지만 병을 앓게 되면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그런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알려는 시도를 해보았을까? 그 방법이라는 게 엄마를 피해 전쟁터로 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엄마가 떠난 후에야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엄마는 분명 내면의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가족마저 외면해 버리는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고통 속에 있는 엄마를 누가 제대로 알려고 했을까? 병원에서나마 제대로 된 진단이 있었다면, 어쩜 다시 정상적인 엄마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란 의구심이 들지만 곁에 없는 엄마, 오랜 세월동안 가족에게 짐이기만 했던 엄마를 떠올리면 그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무하며 고통스럽기만 했다. 저자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엄마 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될 줄' 몰랐다고 했듯이 오랜 시간 엄마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를 드러낸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얽혀 들어가는 자신의 삶과 서서히 변해가는 일상의 변화들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읽고 난 후의 감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마치 좁은 입구를 지나 넓은 공간을 맞이하는 유리병처럼 저자는 엄마를 되찾으려는 과정을 통해 엄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엄마를 잃은 상실감, 엄마를 지키지 못하고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후회를 많이 떨쳐 낼 수 있었다. 흔히 하는 말로 하늘나라가 아닌 곁에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의 요리책을 덮을 수 있을 때, 또한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내 마음의 책을 덮을 수 있을 때, 그래서 나 스스로 터득한 것에, 내 본능에 , 내 창의력에,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내 의지에만 의존하게 될 때, 오로지 그럴 때만 나는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테니까...... (293쪽)
저자는 이미 자신의 삶을 진전시켰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엄마를 다시 알게 되었고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다리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앞으로 맞이해야 할 삶에 목표들이 생겼다. 그런 변화가 자포자기 한 말투로 '산 자는 살아야지!'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의 삶도 소중하고 자신의 삶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런 엄마를 오랜 시간 방치했다는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엄마란 존재를 잊지 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은 충분히 사그라질 것이다. 그 과정은 철저히 자신만의 것이지만 타인의 경험을 통해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위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