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롭지만 좋은 날 1
영춘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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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학교 때부터 홀로 자취를 해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못견뎌하는 양면성이 생겨버렸다. 그때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주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분명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고, 음악을 좋아하긴 했으나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당시에는 독서가 취미가 되기 전이었기에 분명 멀뚱멀뚱 누워서 온갖 상념에 빠져드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럴 때 내 마음을 조금이나 대변해 주는 책들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세상엔 혼자가 아님을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들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덜 외로웠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처럼 사사로운 일들의 기록이 좋은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10대의 나는 외모 콤플렉스와 하기 싫은 공부로 인해 늘 고민에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로 돋보이고 싶고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우쭐해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내 안의 열등감을 누군가가 위로해 주었다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에 빠져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보면 내가 가진 열등감보단 심하진 않지만 젊을 때 할 수 있는 고민과 소소한 행복들을 소박하게 그리고 있어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누군가를 짝사랑 하던 일, 어떤 물건이 갖고 싶어 열망하고, 미래의 불안함으로 한숨 쉬고, 이별에 아파하고 절망하던 일 등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일들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책장을 휙휙 넘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옛 생각으로 찡하기도 하고 덜컹거리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조금만 방향을 틀었더라면 지금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내게 왔던 몇 번의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좀 더 행복했을까? 20대의 불안했던 미래는 30대에 들어서면서 왜 사그라져 버렸으며 나의 미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또 다른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문학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 이런 고민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끌어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대한 편견을 허물자 더 다양한 장르가 나에게 다가왔고 오히려 문학보다 글이 없는 만화를 더 읽기 힘들어 하던 내가 이제는 이런 저런 생각을 연결시킬 줄도 알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내가 미워하는 감정을 타인이 몰라줄 때 억울하다며 펄펄 뛰며 험담하던 일들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이 책에서도 한 선배를 미워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별히 미운 행동들을 하거나 못되게 굴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사람도 누군가에겐 귀한 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마음이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 스스로가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미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러운데 이런 아이가 사회에 나가 이런저런 일을 겪을 걸 생각하니 이 책 속에 담긴 소소하면서도 있을 법한 상황들에 괜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이 앞일을 지배하지 않도록 매일 매일의 쌓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걱정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충실히 살아가며 너무 큰 것을 넘보지 않는 것. 요즘 내가 내 스스로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무언가 특별한 일은 갑자기 행운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노력과 인내, 부지런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나에게도 좋은 날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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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읽은 책 중에서 열 권의 책을 뽑아봤다.

 

 

 

1. 에브리맨 - 필립 로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책 읽는 기쁨을 다시 상기시켜 본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꼭 그랬다. 필립 로스란 작가에 대해 익히 알고 있고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없어 그냥 읽었다. 책 제목처럼 보통 남자, 죽음을 맞이했고 젊은 사람도 아닌 노인의 내면이 드러나고, 때론 삶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 덤덤하게 이어갔던 이야기들. 왜 나이든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 했는지, 나도 늙어가고 있는데 왜 부정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미 생을 마감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정신 팔지 않아서 씁쓸하면서도 덤덤한 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책장에서 얼마나 묵혀 있었을지 모를 책이다. 100페이지 넘게 읽다가 만 책이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 영화가 내리기 직전이라 만삭에 가까워져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음에도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관객이 별로 없어서 더 느긋하게 볼 수 있었고 바다 위에서의 영상은 백미였다. 보통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이미지가 박혀 상상이 가지 않는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일러스트와 비교하자 더 생생하게 다가와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태평양을 호랑이와 건널 수 있을 거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바다 위에서의 공포와 좌절, 절망이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졌지만 주인공도 말했듯이 리처드 파커가 없었더라면 절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린 리처드 파커의 뒷모습이 내게도 아직 생생하다.

 

 

 

3. 샬롯의 거미줄 - 엘윈 브룩스 화이트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그나마 여기에서 큰 서점에 가는 일이었다. 막상 가보니 서점은 더 크기가 작아졌고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서가를 몇 바퀴 돌다 지켜 나올 때쯤 어린이 책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싶었던 터라 냉큼 집어왔는데 정말 마음이 뭉클해져서 혼났다. 윌버를 최고의 돼지로 만들어 주기 위한 샬롯의 눈물겨운 사투와 우정이 가슴속에 여전히 맴돈다. 혼자라고 느낄 때 누군가 다가와 손 내밀었던 적이 있었을까? 분명 있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허투로 살아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샬롯 앞에 서면 꼭 그런 느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떠난 샬롯. 돼지와 거미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정말 훈훈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다. 

 

 

 

 

 

4. 양을 쫓는 모험 - 무라카미 하루키

 

 

작년 3월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만 읽어댔다. 지인과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초기작이 읽고 싶어졌고 그렇게 시작된 읽기가 절정에 달해 9일 동안 9권의 책을 읽어 버렸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갑작스런 출산이 아니었다면 아마 모든 작품을 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지만 크게 공감가거나 좋아지지는 않았다. 지인의 애정 어린 추천으로 초기작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 <1Q84>의 시작을 본 것 같았다. 이 작품에서의 독특하고 흡인력 있는 상상력이 <1Q84>에서 절정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란 작가와 첫 대면을 해서 내게는 썩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그 뒤로 몇몇 작품을 읽어도 첫 대면의 충격은 크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초기작을 통해 하루키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보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고 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이 작품이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1Q84>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5. 그저 좋은 사람 - 줌파 라히리

 

 

단언컨대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조금만 읽어본다면 단박에 마음에 들 거라 장담한다. 이상하게도 여류작가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꼽을 수 없었는데 줌파 라히리는 단박에 좋아졌다. 이민자의 삶을 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을 보고 있으면 이질감과 동시에 누구나 한번쯤 집을 떠나 느꼈을 그 낯섦과 적응,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저자처럼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도록 섬세하게 쓰는 작가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생각들, 너무 빨리 스쳐지나가 버려서 잡을 수 없었던 생각들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 섬세함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6. 여덟 단어 - 박웅현

 

저자는 두 달여 간 이십여 명의 20,30대와 함께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놓았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었는데 30대의 나에게 와 닿는 것이 무척 많았다. 얼핏 보기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주제일지 모르나 막상 저자의 글을 만나보면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에 촘촘히 박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다 갖추며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들므로 이 가운데 나에게 와 닿는 몇 가지만이라도 건져내서 집중한다면 조금은 풍부한 마음을 가지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음악도 찾아보게 되고 집필한 다른 책을 검색하게 될 정도로 호소력 있는 문체에 반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글쓰기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음을 알기에 더 애정이 가는 책이다.

 

 

 

 

 

7. 모래 그릇 - 마쓰모토 세이초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음에도 저자의 작품은 여태껏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두 권임에도 쉽게 놓을 수 없는 흡인력과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배경은 1960년대라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발로 뛰는 수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검색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전화도 발달하지 않았고 다른 경찰서에 협조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굉장히 느린 수사임에도 끈질긴 인내를 가진 형사 이마니시로 인해 끝끝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자극적인 사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밋밋할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장르소설을 만나서 정말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8. 도자기 박물관 - 윤대녕

 

 

해외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국내문학 작품에 많이 소홀하고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체에 지칠 때면 국내문학을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글의 익숙함과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오랜만에 마주한 윤대녕 작가의 단편집을 읽고 보니 그간 국내문학을 소홀히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질 정도였다. 우리 문학의 단편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고 문체의 편안함 속에 진정한 이야기를 만난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작품을 통해 단면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박에 저자의 글에 반해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 몇 권을 구비해 놓았다. 우리 문학이 그리워질 때 이 느낌을 잊지 않고 만나 보려 한다.

 

 

 

 

 

 

 

9.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 이런 책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어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했는데 정말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글들을 만났다. 그림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설 작품과 문화,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내가 읽은 작품들이 다르게 해석되고 대입되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작품이라고나 할까? 천천히 느긋하게 읽고 싶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어 버린 게 아쉬울 정도다.

 

 

 

 

 

 

10. 징비록 - 유성룡

 

그간 나는 임진왜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겨우 이순신 장군의 활약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그대로 알게 해주었다. 당시의 재상 유성룡이 보고 느낀 임진왜란은 너무나 처참했다. 관군들이 자신의 자리를 조금만 더 지켰더라면 일본군이 수도를 탈환하는 데 그렇게 짧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나라를 지키겠다는 백성들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처참했을 전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화도 나고 안타깝고 한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자연스레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책 속에 등장한 여수의 지명에 괜히 더 마음이 찡해진다. 임진왜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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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 엄마 없이 먹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맷 매컬레스터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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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신을 하고 입덧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먹는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루 종일 멀미하는 기분이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후각의 고통에 시달리며 몇 주 동안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입덧으로 기력이 쇠해져가자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임신 때문에 감정기복이 심해 엄마가 보고 싶어 며칠을 울었고 엄마가 끓여주던 시래기 된장국이 너무 먹고 싶었다. 장거리 여행을 조심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6시간을 달려 엄마가 있는 집에 도착했다. 미리 언질을 해놔서 먹고 싶었던 시래기 된장국이며 꽃게탕, 오징어무침 등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집에 머무르니 기력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을 경험하고 나자 엄마를 자주 볼 수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계신 시골집에 가면 엄마표 밥상은 물론 돌아올 땐 반찬을 한가득 싸 짊어지고 온다. 그리고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는 늘 용돈을 챙겨주신다. 안 받으려 하지만 어떻게든 내 손에 쥐어주는 엄마. 그런 엄마가 없는 집, 엄마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하기도 싫은 먼 미래의 일이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와의 이별이 올 테고, 누구나에게 엄마는 푸근하고 가슴 사무치고 고마운 존재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엄마의 죽음을 목도하고 보니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한 남자가 있다.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저널리스트리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이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병으로 시들어가는 엄마를 오랫동안 바라봤다면 한번쯤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늘 술에 절어 엄마와 자주 다투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저자의 그런 마음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을 땐 마음이 홀가분한 것이 아니라 저자처럼 뼈아픈 후회가 먼저 들었다. 당시 고3이던 나는 아버지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더라면 사회생활을 시작해 효도를 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 때문이었다. 저자 또한 오래전부터 엄마의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을 잃게 한 원인인 엄마가 막상 세상을 뜨자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봐야 얼마나 사랑한지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엄마에게서 멀어지고자 전쟁터를 누볐던 그 시간들. 저자는 그곳에서 보아온 끔찍함 보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상실감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런 엄마의 빈자리가 버거워 심리치료도 받고 기자란 직업을 내려놓기도 하고 엄마의 흔적을 좇기도 하지만 우연히 엄마의 요리책으로 인해 요리라는 세계에 입문 아닌 입문을 하게 된다. 네 가족이 단란했던 시절,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떠올리며 엄마의 레시피를 기억하고 찾아보면서 곁에 없는 엄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되새긴다. 책 제목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저자가 요리를 시작할 때 엄마의 굉장했던 요리 솜씨라던가 식탁에서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마구 쏟아질 거라 생각했다.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느끼기 위해 엄마의 요리를 따라하고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추측처럼 무언가 굉장한 요리가 나온다거나 마법의 레시피를 건져 올리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엄마의 요리를 따라하고 추억을 더듬으면서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치유한 건 사실이나, 그 과정 속에는 저자의 내면에 감추어둔 가정사를 들춰내고 엄마를 재조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마음속의 상처를 들춰내며 치유해가는 매개물이 되어 주었다. 또한 자신을 비롯한 가족조차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엄마의 삶을 되짚었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엄마의 삶을 되짚어보면서도 그 형식에 따라 집요하게 취재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방적인 과정으로 번질 수도 있었으나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오가는 구성으로 인해 균형을 맞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전기문 같기도 한 이 책의 흐름은 수차례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진료기록을 들여다보면서 절정을 이루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외면하고 부정하며 드러내기조차 꺼렸을 내용들을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나 동정심, 혹은 우울함이 들지 않도록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요리가 엄마를 기억하기 위한 행위의 시작이었지만 나중에는 요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며, 엄마의 흔적을 좇으면서 정작 엄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어릴 적 엄마는 다정하고 발랄했지만 병을 앓게 되면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그런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알려는 시도를 해보았을까? 그 방법이라는 게 엄마를 피해 전쟁터로 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엄마가 떠난 후에야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엄마는 분명 내면의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가족마저 외면해 버리는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고통 속에 있는 엄마를 누가 제대로 알려고 했을까? 병원에서나마 제대로 된 진단이 있었다면, 어쩜 다시 정상적인 엄마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란 의구심이 들지만 곁에 없는 엄마, 오랜 세월동안 가족에게 짐이기만 했던 엄마를 떠올리면 그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무하며 고통스럽기만 했다. 저자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엄마 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될 줄' 몰랐다고 했듯이 오랜 시간 엄마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를 드러낸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얽혀 들어가는 자신의 삶과 서서히 변해가는 일상의 변화들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읽고 난 후의 감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마치 좁은 입구를 지나 넓은 공간을 맞이하는 유리병처럼 저자는 엄마를 되찾으려는 과정을 통해 엄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엄마를 잃은 상실감, 엄마를 지키지 못하고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후회를 많이 떨쳐 낼 수 있었다. 흔히 하는 말로 하늘나라가 아닌 곁에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의 요리책을 덮을 수 있을 때, 또한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내 마음의 책을 덮을 수 있을 때, 그래서 나 스스로 터득한 것에, 내 본능에 , 내 창의력에,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내 의지에만 의존하게 될 때, 오로지 그럴 때만 나는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테니까...... (293쪽)

 

  저자는 이미 자신의 삶을 진전시켰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엄마를 다시 알게 되었고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다리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앞으로 맞이해야 할 삶에 목표들이 생겼다. 그런 변화가 자포자기 한 말투로 '산 자는 살아야지!'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의 삶도 소중하고 자신의 삶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런 엄마를 오랜 시간 방치했다는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엄마란 존재를 잊지 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은 충분히 사그라질 것이다. 그 과정은 철저히 자신만의 것이지만 타인의 경험을 통해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위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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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아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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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밤하늘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부모님이 모두 잠든 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슬그머니 빠져나와 캄캄한 마당을 서성였다. 당시에 짝사랑 하던 동네 오빠네 집을 보며 불이 켜졌는지를 확인하고 혼자 배시시 웃으며 마당으로 돌아와 하릴없이 서성이다 밤하늘을 보았다. 시골이라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별자리라곤 북두칠성밖에 몰라 7개의 별을 세어보고 고개를 푹 꺾고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보며 나는 다음에 커서 무엇을 할까, 나는 누구를 만나 결혼을 할까(초등학생 때 이미 이런 징그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집 앞 공터 울타리에 떨어진 걸로 착각될 만큼 가까이에서 별똥별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랍기도 하고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다가 정말 내가 본 것이 별동별이 맞나 하는 의심과 함께 소원은 빌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굉장히 억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우연히 바람을 불어 넣는 별자리 공 하나를 얻게 됐다. 그 공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새어도 굉장히 소중해 고등학교 때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뒤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 공을 보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별자리 공과 하늘을 번갈아 가면서 확인했는데 기억나는 거라곤 머리털자리 밖에 없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해서 밤하늘의 별을 볼 때나 그에 관한 책을 볼 때면 늘 마당을 서성이던 초등학생의 내가 떠올려진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을 읽고 비슷한 분위기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펼쳤는데 일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우주 이야기와 우주관에서 근무하는 분의 해설 칼럼이 있어 색다른 묘미를 느꼈다. 상세한 사진도 없고 만화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한데 두루뭉술할지언정 이상하게도 충분히 상상이 갔다. 쉽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문외한이라 어려운 것도 있었고 흥미롭게 알아가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별과 별 사이를 행성이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떠올려주세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84쪽)

 

  다른 행성의 중력이로 인해이나 궤도에서 튕겨져나가버렸다는 떠돌이 행성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 떠돌이 행성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런 행성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떠올려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 행성들이 은하계에 수천억 개가 존재한다고 하니 외롭고 힘들 때 종종 밤하늘을 쳐다보았던 것이 본능적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나 보다. 그 행성들에 대해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답답할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았던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우주관에서 일하는 안도 카즈마의 칼럼 해설이 가끔 끼워 맞춰지지 않을 때도 있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가끔 하늘을 보고 사는 입장에서의 저자와 매일 하늘을 관찰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의 시선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균형은 맞춰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우주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 새삼 나라는 존재, 내가 상상하지 못한 광활한 우주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존감이 바닥일 때 나는 우주의 먼지 한 톨만도 못하다고 내 스스로를 비하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나의 존재조차 모를 거라고 말이다. 그러다 종교를 갖게 되니 우주란 곳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였다.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안에서의 우주와 종교 안에서의 우주가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구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지만 우주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나면 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고 대단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런 우주의 이야기만 계속 듣고 있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정말 작게 느껴지는 반면 아름다운 별 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보는 별 빛이 몇 년 전, 혹은 몇 백 전 전에 출발해 우리에게 와 닿은 것처럼 굉장한 거리에 서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알자 뭔가 감미로우면서도 어릴 적 밤하늘을 보면서 가졌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좋았다. 지금은 너무나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내 안의 어딘가에 스쳐지나갔던 많은 생각들 가운데 특별한 것도 있었다고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순 없지만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을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특별한 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도 감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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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래빗 시리즈 10 : 티미 팁토스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10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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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10권이 나왔군요^^ 얼릉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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