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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부터 별거 아닌 일로 남편과 다투고 말았다. 새 모자를 사고 싶다는 말에 얼마 전에 구입한 운동화 샀음 됐지 또 뭘 사려고 하냐고 대꾸하다 서로 기분이 상해 버린 것이다. 서로 말 걸지 말라고 토라져 각방으로 들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마음이 그렇게 많이 상한 건 아닌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조금 난감했고 먼저 사과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잠시 외출한 남편이 검은 봉투를 들고 오더니 라면을 끓이며 점심 준비를 했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오더니 아침엔 미안했다고 점심을 먹자고 했다. 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은 터라 못 이기는 척 같이 점심을 먹으며 풀었다. 날씨가 좋아 집 근처 시장까지 다녀오고 나니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을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 한 이유는 별거 아닌 일상의 무게들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부부의 정이 되고 인식하지 못한 행복이 될 수 있겠다는 의식 때문이었다. 순전히 치에코 씨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책 제목처럼 소소하다 못해 세세한 치에코 씨의 부부의 일상은 간과하기 쉬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기를 쓰듯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러저러하다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는 식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속에 스쳐가는 감정들까지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도시락을 혼자 먹는 할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먼저 죽고 남편이 홀로 남으면 저렇게 쓸쓸하게 밥을 먹을까 이런 생각부터,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상상력이 과해 먼저 죽지 말라는 둥 평소의 나라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처럼 나란히 놓여 있는 빨래를 볼 때마다 행복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43쪽)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나열이라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닮아있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성찰과 돌아봄, 현재 인식의 과정에서 행복이란 게 거창하고 먼 것이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치에코 씨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 생각해보니 나 역시 거창한 일들이 있어야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오기 전에 넉넉히 시간을 가지고 저녁 준비 하는 시간, 청소기를 밀고 거실을 정리한 다음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그런 아이를 보면서 잠깐 독서 하는 시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셋이 나란히 누워 낮잠 자는 시간들이 내가 느끼는 행복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치에코 씨의 부부의 남다른 정이 부럽기도 했다. 치에코 씨가 퇴근하면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하루 일과를 나누며 데이트 를 하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가고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고 때로는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면서도 서로에게 소홀하지 않는 모습이 부러웠다. 결혼하고 주부로 집에 남게 되면 개인의 삶이 철저히 사라져버리는 우리네 모습과는 많이 달라 문화 차이와 인식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이질감을 떠나 나의 모습과 대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 그런 생각의 바다에서 나는 무엇을 건져내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행동으로 이어가는가. 치에코 씨가 느끼는 행복을 지켜보는 것도 지켜보는 거지만 그런 생각의 바다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나자 덜 외로웠다.
또한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이상형은 곧 이상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남편과 살다 보니(결혼 전과 결혼 후는 정말 천지 차이인 것 같다.^^) 치에코 씨 부부처럼 다정다감하게 지낼 수는 없더라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부부의 정을 쌓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혼한 지 10년 넘어 권태기를 겪는 부부 같지만 워낙 서로 무뚝뚝하고 애교가 없어 치에코 씨 부부의 이야기가 먼 달나라 이야기 같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치에코 씨 부부가 겪는 이야기에도 공감이 가기도 하고 다른 점도 느끼지만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이 해봄직 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힘든 것보다 행복할 때가 더 많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그래,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멀리서 찾으려 할 뿐, 늘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