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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상뻬 글.그림, 배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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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뻬 할아버지 신간이!!! 너무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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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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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이 아닌 더 많은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주어진 시간이 타인에게 똑같이 주어진 게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만 주어진다면 평소에 못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보게 된다. 학창시절 시험 기간만 되면 시간이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 왜 시간이 주어진다면 성적하고만 연결 짓는지 과거에 대한 연민은 늘 씁쓸하기만 하다.

 

어느 날 누군가 시간을 살 수 있다고 말해준다면 어떨까? 초등학교 5학년인 윤아는 우연히 전단지를 보고 시간을 살 수 있는 가게에 들어가 행복한 기억과 바꾸는 거래를 한다. 1등을 하고 싶었던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시간이 10분씩 멈춰져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을 번다. 처음에 윤아는 학원에 늦을까봐 10분을 얻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일들에 10분을 쓰고 만다. 시간을 멈춰놓고 시험 문제를 베끼고, 자신을 싫어하는 친구를 골탕 먹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10분에 대한 효과를 보면 볼수록 아무렇지 않은 듯 행복한 기억과 10분을 교환해 버린다.

 

행복한 기억이 과거형이듯이 윤아는 과거의 일은 연연해하지 않는다. 늘 앞만 보며 공부, 공부, 공부만 외치는 엄마의 영향도 컸다. 아빠를 여의고 윤아를 제대로 키워보고자 동분서주하는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싫다고 내색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엄마에게 행복은 윤아가 1등을 하는 것이고 더 좋은 성적을 받아오는 것이기에 윤아는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부정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처음엔 달콤하게 다가왔지만 행복한 기억이 지워지고 더이상 떠오를 기억이 없자 부작용이 일어난다.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고 친구와의 약속도 자꾸 잊어 먹는다. 그제야 행복한 기억의 소중함을 알게 된 윤아는 시간을 샀던 가게에 가서 새로운 거래를 한다. 행복한 기억을 빼앗기지 않는 대신 윤아의 시간이 하루에 10분씩 사라졌다.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어야지. 행복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99쪽)

윤아는 10분을 얻기 위해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과 교환했다. 행복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당시에는 알지 못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고 결단을 내리게 된다.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과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 과연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빼앗기는 대신 타인의 기억이 들어오자 그제야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친한 친구와의 수다, 외할머니와의 추억, 돌아가신 아빠와의 기억들이 윤아에게 더없이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윤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 교육 현장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공부만이 성공하는 길이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잘한 결혼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파고들어 버린 것이다. 부모들이 경험을 했기에 자녀들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는 것. 내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과 공교육이 받쳐주지 못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윤아에게 좋은 학원을 보내주고 일일이 스케줄을 확인하며 쉴 틈 없이 몰아대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윤아 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낙오자가 될 거라는 생각. 어떤 부모가 그런 불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아이를 낳고 보니 지금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부탁을 하지만 아이에게 교육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나의 욕망을 집어넣진 않을까 걱정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 걷지도 못한 아이에게 내가 공부를 못했기에 공부를 강요하진 않을 거라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마음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현재 흘러가는 공교육의 방향성과 그에 맞서며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나가는 극성 부모들을 비판하면서도 나 또한 뚜렷한 의지와 방법을 찾아내고 있지 못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윤아의 나약한 자립심과 자기주장,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환경이 답답했다. 또한 이 작품을 마주하고도 행복한 기억과 10분의 시간을 교환하는데서 오는 잃어버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불안했다. 오히려 시간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면 우르르 몰려가 행복한 기억 따윈 져버릴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두려움. 행복한 기억의 소중함을 모른 채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거래를 서슴지 않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만든 건 나이고 우리들이다.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럼에도 그런 아이들 하나 보듬어 줄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떠한 책임도, 행동도 하지 않는 내가 많이 부끄럽다. 이 소설을 통해 얻게 된 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내 아이가 만날 세상도 지금과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일 것 같지 않다.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해 이제야 평범하고 솔직한 아이로 변모되어 가려는 윤아를 제대로 응원해 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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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5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스물네 시간만 있기에
우리는 더 즐겁고 아름답게
삶을 누리지 않나 싶기도 해요.
 
플로베르의 앵무새 열린책들 세계문학 56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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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러시아 여행을 꿈꾼다. 단연 도스또예프스끼 때문인데 그의 흔적을 느끼며 여행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온 몸이 떨려온다. 어쩌다보니 어렵고 힘든 작가로 인식된 도스또예프스끼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러시아를 궁금해 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내가 아는 도스또예프스끼는 작품 속에서 만나는 게 전부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의 일대기나 사소한 생활들을 낱낱이 알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 이외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이 올 때면 아는 게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많았다.

 

 

  굳이 러시아 여행을 입에 올리고 도스또예프스끼까지 엮는 이유는 이 작품속의 플로베르 때문이다.『보바리 부인』밖에 읽지 않은 나로서도 작품으로 만난 플로베르는 물론이고 부수적인 것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보바리 부인』의 몽롱한 우울함 때문에 다른 작품을 읽을 엄두를 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나고 보니 플로베르란 작가에 대해 더 헷갈리고 말았다. 주인공 제프리 브레스트웨이트는 플로베르의 작품『순박한 마음』에 모델로 등장하는 박제 앵무새를 찾아가지만 두 곳의 박물관에서 서로 자기네 앵무새가 모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새가 진짜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우리가 자주 마주했던 평범(?)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통해 앵무새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플로베르는 어떤 사람이고 그의 전반적인 작품활동과 배경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나의 이런 예상뿐만 아닌 글의 형식, 구성까지도 철저히 부숴버린다. 친절하며 질서정연하게 플로베르에 대해 알려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온갖 정보들로 넘쳐난다. ‘이야기 대신 연보, 전기, 자서전, 동물 우화, 철학적 대화, 평론, 어록, <열차 파수꾼>의 안내, 심지어는 시험지 등 플로베르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플로베르와 연관되어 있지만 정작 플로베르의 이야기는 별로 없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느꼈을 혼란이 결말까지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며 끝을 맺는 가운데 이 작품을 통해 과연 내 안에 자리한 것은 무엇인지, 플로베르란 작가에 대해서 얼마큼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당연함이다.

 

그물을 정의할 때, 관점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중략) 논리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이미지를 뒤집어, 어떤 익살맞은 편집자가 그랬듯이 그물을 끈으로 엮은 구멍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일도 그와 같다. 저인망 그물에 자료들이 가득 차면, 전기 작가는 그물을 끌어올려 포획물을 분류하여 도로 놓아 주기도 하고, 저장했다가 살을 발라내어 팔기도 한다. 그러나 그물 속에 걸리지 않는 자료들을 생각해 보라. 항상 그물에 걸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들이 더 많다. (47쪽)

 

 

  그물에 대한 비유가 이 작품에 실린 플로베르란 인물을 색다른 방법으로 알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안내한다. 저자는 그물에 걸린 자료보다 ‘결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류하고 제시하고 있다. 전기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파격적인 형식의 이 작품을 보면서 저자의 애정이 묻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플로베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플로베르에 관한 이야기는 없어도 자신의 아내를 회상하며 플로베르의 소설과 엮어 나가는 과정이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시사했다. 아무 상관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그의 남다른 플로베르의 관심과 애정이 아내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그가 가진 상처와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 사실조차 또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 모든 것이 이 독특한 소설에 녹아 있었다.

 

책이란 아무리 우리가 그것이 곧 삶이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삶 그 자체는 아니다. (106쪽)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책을 읽을 때면 그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저자의 능수능란함에 깜박 속아 이 책 속의 플로베르 이야기가 온전한 그 자체의 플로베르라고 믿을 뻔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이기를 따지며 구분하기보다 플로베르란 인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열정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계기로 타인이 내 삶 속에 들어와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날 수 있는 상황. 온 몸으로 체득한 일이라면 결말이 또렷하지 않은 게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물 밖의 세상을 알았다면 그 세계에 정신이 팔리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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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써요, 뭘 쓰라고요? - 김용택 선생님의 글쓰기 학교
김용택 지음, 엄정원 그림 / 한솔수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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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일들이 처음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걸어갈 길을 스스로 내는 일, 그게 글쓰기입니다.

(책 머리글 중에서)

 

나에게 글쓰기란 책을 읽고 느낌을 남기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과연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늘 부끄러워 하다가 언제부턴가 그 시간이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문장력이 는다거나 어휘력이 자유스러워 지는 것이 아닌, 내 안의 감추고 싶던 상처와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용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글쓰기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간추리고 정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섞여드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느라 놓쳐 버린 순간과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글쓰기라면 일기조차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했던 기억 때문에 늘 내 중심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이 서툴렀고 그런 행위가 글쓰기의 기초적인 마음인 것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 타인을 신경 쓰느라 감추기에 급급했던 내 마음의 흔적이 보여 가슴 찡하면서도 애틋했다. 나도 어릴 적 내 주변에 펼쳐진 것들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쏟으며 말을 걸고 지켜보았다면 적어도 나를 감춰왔던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김용택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 아이들에게서 보아온 것들을 이 책 속에 남겼다. 모두 제각각인 아이들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것을 끌어내는 건 비슷했다. 순수함.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그대로 쓰며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는 아이들의 글을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잘 써보려고 기를 썼던 순간을 떠올리면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지도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그냥 저절로 나와 주기를 기대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시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쓸 수 있는 그런 글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관찰하고 보는 시각을 기르고 생각하다 보니 순수하면서도 진실한 글이 나왔던 것이다.

 

풀꽃 _나태주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정말 예쁜 시다. 광화문 교보문고 빌딩에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삭막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과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시다. 이런 시선과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우면서도 부끄럽다. 나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세히, 오래 보았는지 반성하게 만드는 시였다. 동시에 자세히, 오래 보면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그제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쳐다보면 마음속 깊이 사랑이 맺히는 것처럼 내 주변의 것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을 내 손에 쥘 때의 심정은 이 책으로 인해 좀 더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고 조카들에게도 읽혀보며 그대로 시켜볼 작정이었다. 마음을 담기보다 방법을 더 알고 싶어 들여다 본 책이었는데 더 큰 것을 얻은 기분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도 분명 있겠지만 그에 앞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써 보는 것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때보다 더 진솔한 글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당장 시도해 보려고 한다. 맞벌이로 인해 방학임에도 텅 빈 집 대신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조카들과 함께 김용택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해보려고 한다. 물론 조카에게 시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시를 써보려고 한다. 조카들과 함께 낭독하며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 것.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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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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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남매 중의 막내다 보니 내가 30대 초반임에도 엄마의 나이는 일흔이 넘었다. 나와 꼭 서른아홉 살 차이 나는 엄마.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종종 아이를 일부러 엄마 품에 안겨 놓고 사진을 찍곤 한다. 핸드폰으로 찍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진에 불과하지만 다음에 아이가 이 사진을 보고 외할머니가 너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싶었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엄마.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그 사실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책 제목을 보고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끌어 낼 수 있는 온갖 감정이 난무하는 책인 줄 알았다. 분명 엄마를 떠올릴 때면 기쁨보다 애잔함과 미안함, 고마움이 교차하는데 그런 기분을 끌어내는 책을 만나면 괜히 가라앉아 버린다. 엄마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늘 상주하고 있는 죄책감은 더 짓눌려져 더 미안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과 우려로 책을 펼쳤는데 정말 소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 엄마도 저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은 사진과 글이 가득했다.

 

  일흔을 앞둔 딸이 아흔이 넘은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아흔이 넘은 저자의 엄마는 방 밖으로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해 대부분이 방에서 찍은 사진이며 공간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집 밖의 사진은 거의 없다. 아흔이 넘은 노모(老母)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쁜 모습을 볼 때면 예전에 잠깐 들었던 사진 교실에서의 사진 찍는 법이 생각이 났다. 외형적인 조건도 필요하지만 대상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찍을 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자도 엄마의 사진을 찍으면서 ‘대상을 혼신의 힘으로 사랑하는 데서’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고백했다. 현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채워진데서 이 사진집은 지극히 은밀한 사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기쁨이든 아픔이든 그 안에 나의 엄마를 대입하지 못한다면 나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이 등장한다는 거리감을 좁힐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준 엄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97쪽)

 

  초등학교 때는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 때문에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집은 비어 있었다. 내 위의 언니와 오빠들이 학교 때문에 객지로 나가 나 혼자가 되었을 때의 그 썰렁함과 허전함은 늘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란 상상으로 채워지곤 했다. 결혼한 언니와 10년을 살면서 조카를 떼어놓고 일하면서 겪는 온갖 고충을 목도했고, 그 곁에서 강제와 자진으로 조카들을 돌보면서 나는 절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는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고 아이에게도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쩌다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나의 바람대로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늘 아이 곁에 있어서 마음만은 편하다. 하지만 내가 아이 곁에 오래도록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앞에 종종 눈물짓곤 한다. 아이가 나를 보며 웃어 줄때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아이가 나를 늘 같은 곳에 있어 준 엄마로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우리 엄마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이다.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

내 머리 위로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그것이 부모를 잃는 경험이 아닐까.(20쪽)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막내들은 부모랑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고. 그것이 막내의 숙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 딸아이가 외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낯간지러운 소리는 못했을 텐데 조금씩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되어 보니 생각날 때마다 엄마에 대한 사랑고백(?)은 미루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여전히 서툰 고백은 가끔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꼭 말이 고백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방이라는 한 정된 공간, 엄마라는 동일한 피사체’로 인해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엄마를 바라보면서 품었을 사랑의 감정은 사진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와 상관없는, 혹은 나를 밀쳐내기만 한 세상의 온갖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를 사랑해주고 기다려준 엄마를 마음속에 품었던 적은 얼마나 될까? 말로 하는 고백이 서툴다면 저자처럼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거라는 사실을 알며 오늘도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나중에 내 아이에게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최고의 찬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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