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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죽고 못 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열정을 다해 그 친구를 좋아했고, 다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질라치면 질투도 하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고 징징댈 만큼 친한 친구. 그런 친구와 지금은 연락이 닿질 않는다. 수소문해보면 연락을 할 수 있겠지만 서로를 등질만한 사소한 오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려버렸다. 그때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해 져 버렸다. 누군가 그 친구를 찾아가 오해를 풀라고 하면 과연 나에게 용기가 생길까? 아마도 이젠 괜찮다고, 그러기엔 우린 각자 너무 오랜 시간을 다르게 살아왔다고 씁쓸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다자키 쓰쿠루는 무려 16년 전에 함께 지냈던 친구들에게 절교를 당했다. 본인 스스로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친구들도 정확한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혼자서 깊은 상처에서 죽음의 직전까지 갔다가 고독하지만 어떤 불편도 느끼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는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51쪽)다며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여자 친구의 권유와 도움으로 네 명의 친구의 소식을 듣고 하나씩 만나가는 과정. 다자키 쓰쿠루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봉사활동을 같이 하면서 뭉치게 된 아카, 아오, 시로, 구로 그리고 쓰쿠루. 그의 이름에만 색채가 없어 스스로 묘한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다섯 명의 친구는 돈독한 우정을 쌓아간다. 네 명의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고향인 나고야에 남아있던 반면 쓰쿠루는 기차역이 좋아 전공을 살리다 보니 홀로 도쿄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틈틈이 만나게 되는 다섯 명의 친구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쓰쿠루만 그룹에서 소외당하고 단절 되어 버렸다.
내가 만약 당시의 쓰쿠루였다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이유를 분명하게 물었을 것이다. 왜 4명의 친구들이 갑자기 자신에게 절교를 선언했는지, 16년이나 마음속에 담아둘 거라면 묻고, 악다구니를 쓰고, 필요하다면 머리채라도 잡았을지도 모른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상처가 조금씩 나를 갉아먹어 절대 버틸 수 없을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쓰쿠루 또한 살이 7kg이나 빠져 나갈 정도로 심한 후유증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묻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지금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간다면, 그들은 과연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을까?
아카와 아오는 고향인 나고야에 여전히 살고 있어 쓰쿠루는 먼저 그들을 만나러 간다. 단절된 16년 동안 그들도 많이 변했고, 당시의 일을 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시로라는 것. 그 이유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와 가까웠던 구로를 찾아 정확하게 들어야 했는데 그녀는 핀란드에서 살고 있었다. 기꺼이 핀란드로 날아간 쓰쿠루는 구로에게서 시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들어야만 했다.
이 모든 흐름이 마치『상실의 시대』를 읽는 것처럼 익숙했다. 꼭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하루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악, 기이한 이야기, 현대 문명에서 편리한 것들을 가졌지만 마음은 공허한 인물, 자연스럽지만 뭔가 조금은 불편한 성(性)적 묘사,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흡인력 등이 이 소설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전작『1Q84』를 떠올려보자면 환상적인 면과 함께 촘촘히 얽혀 들어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초기작부터 꾸준히 그려온 세계가『1Q84』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났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하루키의 초기작을 읽는 듯한 느낌, 이미 출간되었지만 내가 아직 만나지 않은 작품을 만난 것 같은 익숙함이 지배적이었다. 쓰쿠루가 자신의 친구들로부터 단절되어 16년이 지난 이후 그들을 만나고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지만, 조급해 하지 않아도 차근차근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임을 알게 하는 흐름이었다. 그래서 쓰쿠루가 구로를 찾아가서 듣게 될 진실보다 그 과정을 즐기고 그가 마주한 풍경에 잠시 시선을 뺏길 수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이야기지만 계속 내 머릿속에 예고 없이 소설이 떠오르곤 했다. 핀란드의 풍경이 불쑥 드러날 때도 있고, 쓰쿠루가 들었던 기이한 이야기며, 그가 살고 있는 집, 들었던 음악들이 연결 없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친구들이 쓰쿠루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16년이 지나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마음의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이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쓰쿠루에겐 자신이 거절당했던 이유와 당시의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과거를 되짚는 여행을 통해 그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을 곁에 두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지켜야 하는지 시간이 필요하다. 쓰쿠루가 당시에 그 이유를 알았던, 16년이 지난 후에 알았던 간에 그에게 흘러들어온 삶에 여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조금은 허무할 수도 있는, 혹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그저 다시 한 번 회기 한 사건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찾아 나설 용기가 없다. 힘들었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쓰쿠루처럼 깊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숨을 토하면 컥, 하고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외면해 버릴 때도 시간을 되짚는대도 쓰쿠루처럼 덤덤할 자신도, 내게 주어진 삶을 향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갈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바람으로 그 친구를 떠올릴 뿐, 우리가 지나 온 시간이 너무 깊고 다름을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쓰쿠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