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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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오는 일에서 나는 탄성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날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함부로 혹은 지속적으로 잡아당겨지더라도 조금쯤은 다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안녕 다정한 사람』 17~18쪽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속한 곳에서는 못 떠나서 안달하면서도 막상 여행을 떠나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충전을 얻기도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멀어졌다 되돌아오는 것. 비단 거리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기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읽은 『그저 좋은 사람』을 읽고 배낭여행을 가고 싶은 욕망이 심하게 일었다. 목적지는 늘 가보고 싶었던 프랑스. 파리가 아닌 고흐의 흔적을 좇아 남쪽으로 여행하고 싶어졌다. 고흐가 프랑스에서 활동했을 때의 작품들이 강렬했기에 고흐라면 네덜란드가 아닌 늘 프랑스가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다녀오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프랑스를 선택했을 것이다. 고흐에 흔적을 좇아 느리게 여행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실린 열편의 여행기는 참 부럽다. 열 명의 유명인들의 여행기를 보는 것도 설레지만 개인적으로 이 모든 여행에 동행하고 사진을 찍은 이병률 시인이 가장 부러웠다. 평소에 좋아하던 분들과의 동행이었다고 하니 그 설렘이 어땠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듯 했다. 첫 여행기는 은희경 작가의 호주 여행기였는데 여행에 관한 문구를 보고 나서 단박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드넓은 호주에서 와인에 흠뻑 취하면서도 마음속의 들뜸과 감상을 나긋하게 들려주어서 마음이 무척 평안해졌다. 그래서일까. 직접 갔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었다.

 

  이 여행은 가고 싶은 곳을 누비는 여행이었기에 10명의 여행가들에게서 이곳을 잘 설명하고 전달해야겠다는 느낌보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가 만끽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마음을 두었던 곳을 골라 그곳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좋아하는 배우가 그리워 걷는 이도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의 흔적을 따라 거닐기도 하며, 식도락 여행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여행기를 보고 있자니 서툰 면도, 생각을 전달하려는 애씀도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여행의 목적이 다양하겠지만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떠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종종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여행의 목적을 가진 글들을 만나기도 한다. 혹시 그런 글들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 책을 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과 느낌에 다소 생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42쪽)'라는 말처럼 낯섦 속에서 또렷한 자신을 만나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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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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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아나?”

“아뇨.”

“그 사람을 잃는 것이네.”(1권 293쪽)

 

  그 사람을 잃지 않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늠’할 수 있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와 번민도 없고 다른 운명을 생각해 보지 않은 평안함이 함께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순간, 사랑 때문에 눈이 멀고 귀가 어두워지고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사랑 때문에 남게 된 후회와 번민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날, 놀라가 해리 쿼버트를 만나러 가는 그 순간, 조금만 만남이 빗나갔어도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처음이 아닌 끝에서 바라보자면 무척 안타깝고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1975년 8월 30일 그날 하루의 사건만 놓고 봤을 때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나열했다면 독자는 쉽게 싫증내고 주변에 일어나는 이야기로 치부하며 그 안에 사랑이 과연 존재했는지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평면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치밀하게 구성해서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했다. 9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쉼 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저자의 이러한 능력이 충분히 발휘됐음이다.

 

  소설은 열다섯 살 소녀 놀라가 실종되고 그로부터 33년 후 그녀의 유해가 해리 쿼버트 정원에서 발견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왜 놀라는 피투성이로 숲속에서 쫓겨야 했으며 하필 해리 쿼버트와 떠나기로 한 날 실종되어 버린 것일까? 그리고 왜 해리 쿼버트 정원에 묻혀 있었던 것일까?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해리 쿼버트는 놀라의 유해와 함께 발견된 자신의 원고 때문에 살해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마커스는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녹록치 않음은 900페이지라는 분량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33년 전의 일을 들춰내는 것부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일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쉽지 않았다. 모두가 해리 쿼버트를 죄인으로 몰고 있을 때 마커스만이 그의 말을 믿어주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의 진실로 향했다. 진지하게 임하기도 하고 유머와 능청스러움이 소설 곳곳에 묻어나 결말을 향해 감질맛 나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나의 입에서는 허무하다는 고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마커스. 책의 마지막 내용만으로 좋은 책의 여부가 결정되는 건 아니네. 이전의 내용들과 어우러져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지. 책을 읽고 난 독자는, 그러니까 책의 마지막 단어를 읽고 난 바로 그 순간 아주 강렬한 느낌에 젖게 되네. 지금까지 읽은 책의 내용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상태로 한동안 책표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게 되지. 그 미소 한구석에는 슬픔이 어려 있을 걸세. 이제 책 속의 인물들이 그리울 테니 말이야. 마커스, 좋은 책이란 다 읽은 게 아쉬워지는 그런 책이라네.” (2권 409쪽)

 

  좋은 책의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의 몫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강렬한 느낌에 젖었던 건 사실이다. 놀라의 죽음 뒤에 감추어진 그날의 사건의 진실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란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사건의 얽힘 속에는 인물들의 흐름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놀라가 목사인 아빠와 함께 먼 곳으로부터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해리 쿼버트의 명작『악의 기원』의 숨겨진 저자, 놀라가 살해 된 진짜 이유들의 개연성이 조금 아쉬웠다. 이 사건의 중심인 해리 쿼버트와 놀라의 사랑이 어긋나고 틀어져버린 그들의 인연이 결말로 인해 단정되지 않길 바랐다.

 

  마음이 짐이라는 게 있다. 어떤 일을 후회하거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좋았을 거란 탄식. 그것을 되돌릴 수 없을 때 마음의 짐은 더 무거워진다. 이 작품 속의 여러 인물들에게 마음의 짐이 있었다. 33년 전 죽은 놀라로 인해 생긴 마음의 짐이 그대로 묻혀 버렸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까? 진실이 드러났을 땐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웠지만 분명 마음의 짐은 덜어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꼭 밝혀지는 법이고 무언가를 숨기며 살아가기엔 인간은 참 연약하다. 그 연약함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이 작품을 통해 낱낱이 확인했으므로 이런 범죄와 후회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거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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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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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이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책장에서 이 책을 묵혀뒀을 지도 모른다. 오래 전 지인에게 『파이 이야기』 일반판과 일러스트 판을 동시에 선물 받았으면서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부랴부랴 일러스트 판으로 읽다 영화를 보고 마저 읽어버렸다. 평상시의 나라면 책을 읽기 전에 절대 영화를 먼저 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바뀐 순서가 오히려 이 책을 더 풍부하게 만나게 해준 기분이다.

 

  일러스트도 만나고 영화도 만났기 때문에 활자로 읽는 주인공의 모습과 묘사해내는 풍경이 그대로 각인되었을 거란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만났기 때문인지 광활한 태평양의 단조로움이 아닌 보이지 않은 이면까지 샅샅이 만끽한 기분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가족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머무르게 된 보트 안에는 온갖 동물들, 특히 벵골 호랑이와 함께 탄 소년 파이의 운명은 가혹했다. 다른 동물들이 사라지고 벵골 호랑이와 남게 된 상황에서 구조의 손길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곧 죽음을 맞이할 거란 두려움과 절망감만이 가득했다. 

 

  긴 사연을 가진 파이의 이름만큼이나 사람 이름을 갖게 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호랑이와 한 보트 안에 그것도 구조의 손길이 불투명한 망망대해 앞에 마주할 운명이 얼마나 될까? 극히 드문 상황인 만큼 이 이야기는 특별하다. 그리고 슬픔과 감동이 가득하다. 무려 227일이나 함께 한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삶과 죽음 그 이상을 맛보았다. 구조될 거란 희망보다 죽음의 위협(굶어 죽든, 호랑이에게 잡혀 죽든)이 더 강한 상황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버텼던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바다 위에서의 하루하루가 처절할 정도로 낱낱이 그려졌다. 바다라는 또 다른 죽음의 위협 앞에 노출 된 파이는 급기야 리처드 파커에게 사랑 고백까지 하게 된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324쪽)

 

  늘 파이를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 리처드 파커였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파이가 호랑이에게 고백을 하다니. 뼛속까지 스며드는 좌절과 공포와 외로움 앞에 리처드 파커의 존재만으로도 버텨낼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는 것이다. 나라면 진작 포기해 버렸을 삶을, 파이는 그렇게 벵골 호랑이리처드 파커와 함께 견뎌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리처드 파커 뿐이었기에 그 과정이 더 처절했고 간절했으며 마음 아팠다. 책을 펼칠 때마다 펼쳐지는 파이의 고통이 현실의 나와 괴리를 만들었지만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 까란 생각에 파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과연 이 표류가 끝날까란 의문이 가득한 가운데도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이별은 찾아왔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육지에 도달했을 때 리처드 파커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린 리처드 파커의 뒷모습을 보면서 파이는 절규하는데 그간의 긴장과 고통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리처드 파커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이별이 예정되어 있음을 감지했으면서도 그들의 이별 앞에 나 역시 팽팽하게 당겨지던 긴장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것은 안도이기도 했으며 허무이기도 했다. 또한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의 경지를 맛본 소년 파이와 함께 한 과정의 마무리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파이처럼 남들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일을 경험하고,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채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남아 리처드 파커의 존재를 알려주었고 망망대해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삶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리처드 파커 같은 존재가 있을 지도 모른다. 나를 위협하지만 그랬기에 존재만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된 존재. 사람일 수도, 꿈일 수도, 욕망일 수도 있지만 그런 존재에 자극을 받기 보다는 순응하고 따라가며 감사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이처럼 경험해서 파이 같은 삶을 살 수 없듯이 타인을 통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 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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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
앙투안 갈랑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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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지. 그런데 나는 굳이 왜 독자들을 짜증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상세히 이야기하는 걸까? 125~126쪽

 

  이 책의 부제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를 보고 안일하게도 어쩌면 주변에서 익히 들어온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저자가 말한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에, 그야말로 타인으로서 개인적인 소견을 가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미안해졌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 타인의 고통의 무게를 알 수 없듯이 무관심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글로 만날 수밖에 없는 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 가정의 이야기. 전적으로 모든 것을 체감하고 공감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만나게 타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 가정이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불행’을 어떻게 말하고 전해야 할까? 아직도 우리의 시선이 성숙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저자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입을 빌려 ‘행복은 잘 견뎌낸 불행일 뿐인지도 모른다’ 라며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모호하게,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게 만든다. 오히려 사랑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어 마주하는 이가 치유되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장애를 지니지 않았더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아이를 선택할 수 없듯이 저자는 그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받아들임의 바탕엔 사랑이 있었고, 아이로 인해 변해버린 평범한 일상과 체득한 것들을 담담히 드러낸다. 소아과 의사지만 아들을 고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7통의 편지를 아들에게 쓴다. 마흔 살이지만 아직도 아이인 아들은 이 편지를 읽을 수 없지만 그간의 고통, 환희, 슬픔 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긴 편지에는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다. 아들이 편지를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사랑을 듬뿍 담아 정성스레 써 내려갔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특별하기에 아이에게 들려주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적었다. 처음 장애를 겪었던 일부터,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갈수록 사랑스러워지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다양한 시선으로 풍부한 편지가 되게 만들었다. 책, 미술, 음악 이야기도 나오고 수많은 추억들을 글을 통해 아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떠한 시선과 경계를 신경 쓰지 않은 오로지 아들을 위한 편지였다. 그 담담함 때문에 익숙하게 봐왔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어떤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왜 이런 어리석은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마음이 커 갈수록 아이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글쓰기는 묻혀 있는 기억들을 수면으로 다시 솟아오르게 하지.(152쪽)

 

  묻혀 있는 기억들 가운데 결코 행복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모든 기억을 드러낸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행복할 수도 있지만 저자 스스로도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할 수 있는 이유는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늘 불행하다고 느꼈다면 이런 편지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걱정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듯이 인생의 말년을 맞이하는 부모의 사랑과 걱정이 그대로 묻어있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저자의 아내는 사랑만이 생명의 근원임을 깨닫고 아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저자는 그것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지만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아들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이 편지 속에 녹아들었다. 때론 자신의 세계에 너무 도취되어 철학적인 부분을 드러낼 때는 이해를 못하고 갸우뚱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스스럼없이 드러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장애를 지닌 아버지는 이러이러한 편지를 썼을 것이란 편견 없이(그런 편견을 기준을 과연 누가 알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족 간의 얽힌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았다. 아버지의 꼼꼼한 편지만큼이나 꼼꼼한 번역 덕에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하다 꺼내서 읽어도 좋을 만큼 사랑과 긍정이 있었다. 지나온 세월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지레짐작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꼬깃꼬깃하게 펼치지 않고 온유함으로 광활하게 펼쳐 주어서 도리어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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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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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죽고 못 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열정을 다해 그 친구를 좋아했고, 다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질라치면 질투도 하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고 징징댈 만큼 친한 친구. 그런 친구와 지금은 연락이 닿질 않는다. 수소문해보면 연락을 할 수 있겠지만 서로를 등질만한 사소한 오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려버렸다. 그때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해 져 버렸다. 누군가 그 친구를 찾아가 오해를 풀라고 하면 과연 나에게 용기가 생길까? 아마도 이젠 괜찮다고, 그러기엔 우린 각자 너무 오랜 시간을 다르게 살아왔다고 씁쓸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다자키 쓰쿠루는 무려 16년 전에 함께 지냈던 친구들에게 절교를 당했다. 본인 스스로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친구들도 정확한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혼자서 깊은 상처에서 죽음의 직전까지 갔다가 고독하지만 어떤 불편도 느끼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는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51쪽)다며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여자 친구의 권유와 도움으로 네 명의 친구의 소식을 듣고 하나씩 만나가는 과정. 다자키 쓰쿠루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봉사활동을 같이 하면서 뭉치게 된 아카, 아오, 시로, 구로 그리고 쓰쿠루. 그의 이름에만 색채가 없어 스스로 묘한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다섯 명의 친구는 돈독한 우정을 쌓아간다. 네 명의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고향인 나고야에 남아있던 반면 쓰쿠루는 기차역이 좋아 전공을 살리다 보니 홀로 도쿄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틈틈이 만나게 되는 다섯 명의 친구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쓰쿠루만 그룹에서 소외당하고 단절 되어 버렸다.

 

  내가 만약 당시의 쓰쿠루였다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이유를 분명하게 물었을 것이다. 왜 4명의 친구들이 갑자기 자신에게 절교를 선언했는지, 16년이나 마음속에 담아둘 거라면 묻고, 악다구니를 쓰고, 필요하다면 머리채라도 잡았을지도 모른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상처가 조금씩 나를 갉아먹어 절대 버틸 수 없을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쓰쿠루 또한 살이 7kg이나 빠져 나갈 정도로 심한 후유증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묻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지금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간다면, 그들은 과연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을까?

 

  아카와 아오는 고향인 나고야에 여전히 살고 있어 쓰쿠루는 먼저 그들을 만나러 간다. 단절된 16년 동안 그들도 많이 변했고, 당시의 일을 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시로라는 것. 그 이유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와 가까웠던 구로를 찾아 정확하게 들어야 했는데 그녀는 핀란드에서 살고 있었다. 기꺼이 핀란드로 날아간 쓰쿠루는 구로에게서 시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들어야만 했다.

 

  이 모든 흐름이 마치『상실의 시대』를 읽는 것처럼 익숙했다. 꼭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하루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악, 기이한 이야기, 현대 문명에서 편리한 것들을 가졌지만 마음은 공허한 인물, 자연스럽지만 뭔가 조금은 불편한 성(性)적 묘사,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흡인력 등이 이 소설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전작『1Q84』를 떠올려보자면 환상적인 면과 함께 촘촘히 얽혀 들어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초기작부터 꾸준히 그려온 세계가『1Q84』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났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하루키의 초기작을 읽는 듯한 느낌, 이미 출간되었지만 내가 아직 만나지 않은 작품을 만난 것 같은 익숙함이 지배적이었다. 쓰쿠루가 자신의 친구들로부터 단절되어 16년이 지난 이후 그들을 만나고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지만, 조급해 하지 않아도 차근차근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임을 알게 하는 흐름이었다. 그래서 쓰쿠루가 구로를 찾아가서 듣게 될 진실보다 그 과정을 즐기고 그가 마주한 풍경에 잠시 시선을 뺏길 수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이야기지만 계속 내 머릿속에 예고 없이 소설이 떠오르곤 했다. 핀란드의 풍경이 불쑥 드러날 때도 있고, 쓰쿠루가 들었던 기이한 이야기며, 그가 살고 있는 집, 들었던 음악들이 연결 없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친구들이 쓰쿠루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16년이 지나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마음의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이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쓰쿠루에겐 자신이 거절당했던 이유와 당시의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과거를 되짚는 여행을 통해 그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을 곁에 두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지켜야 하는지 시간이 필요하다. 쓰쿠루가 당시에 그 이유를 알았던, 16년이 지난 후에 알았던 간에 그에게 흘러들어온 삶에 여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조금은 허무할 수도 있는, 혹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그저 다시 한 번 회기 한 사건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찾아 나설 용기가 없다. 힘들었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쓰쿠루처럼 깊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숨을 토하면 컥, 하고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외면해 버릴 때도 시간을 되짚는대도 쓰쿠루처럼 덤덤할 자신도, 내게 주어진 삶을 향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갈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바람으로 그 친구를 떠올릴 뿐, 우리가 지나 온 시간이 너무 깊고 다름을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쓰쿠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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