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와 클라라
필립 라브로 지음, 박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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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되면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더 쓸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기도 한다. 나이 서른에 아직도 그런 꿈을 꾸냐며 면막을 주는 지인들이 있지만 나의 내면에는 여전히 그런 로망이 남아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잘 건드려 주었던 소설은 『프란츠와 클라라』였다. 쓸쓸한 이 겨울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와 준다면, 소설속의 인물처럼 그것이 어린 소년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의 소통이 그리워지는 계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사한 봄 날,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클라라는 혼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음악당 근처의 호숫가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후, 사람들을 피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그녀의 지정석인 벤치에 앉아 간단한 점심을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년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지만 그녀를 지켜보았다며 조금은 당돌하게 말을 건네 오는 애 어른 같은 소년 프란츠. 근처의 학교에 다니는 프란츠는 그렇게 점심시간마다 그녀의 벤치로 찾아온다.

 

  분명 그런 프란츠가 달갑지 않았지만 클라라는 조금씩 프란츠를 궁금해 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때로는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진지함, 자신만만한 모습 뒤에는 12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스무 살인 클라라도 왜 이 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때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마음의 상처가 가득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클라라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실연이 있었고, 프란츠에게는 어두운 가족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공통점이 있었기에 나이차를 느끼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때론 얘기치 않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 놓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건드려주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숨겨왔던 마음을 펼쳐 놓게 된다. 클라라도 아마 처음엔 어려 보였던 프란츠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 어른 같은 프란츠의 진정함에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프란츠가 사랑 고백을 해 오자 그를 밀어낸다. 아무리 마음을 잘 다독여주었다고 해도 이제 막 소년으로 접어든 프란츠를 밀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클라라는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솔리스트 길을 밟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녀는 보스턴에서 솔리스트로서 성공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 도중 객석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을 느끼는데, 아니나 다를까 분장실로 찾아온 건실한 청년은 프란츠였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찾아와준 프란츠를 보면서 빤한 스토리일지언정 괜히 내가 더 가슴이 뛰었다. 이제 나이차로 프란츠를 밀어내는 일도 없을 것이고, 12살의 모습이 아닌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프란츠도 당당했다. 그들의 재회가 내심 기뻤고, 행복한 결말로 어서 달려 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프란츠가 클라라의 마음을 향해 던졌던 말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지금을 위한 말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애 어른 같은 프란츠가 좀 더 다른 상황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랐고, 그런 바람은 십년 후에 이뤄졌다. 그리고 그들을 방해할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십년 후에 재회할 수 있었던 것에는 마치 영혼이 통하듯 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치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결말은 한참을 책장을 붙들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그들의 재회를 바라보면서 내가 10년 전에 만났던 어린 소년이 지금 나타나준다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아픔. 그래도 그들이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잘 견뎌주길 바랐다.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사랑소설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프란츠와 클라라가 빚어내는 독특하지만 평범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다. 그랬기에 나의 철없는 로망을 충족시켜주었다는 것보다 이러한 사랑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당장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 사랑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 생각을 얻어낸 것만도 감사해하며, 마지막 장의 여운을 남긴 채 조용히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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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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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장르의 특성상 한 편 정도는 꼭 읽게 되는 것 같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나에게 그 한 편의 무척 중요하게 다가오는데,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좀 특별했다. 추리소설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탄탄한 스토리를 만난 탓이다. 저자는 국내에서 이미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특별히 관심에 둔 작가는 아니었다. '밀실 트릭 3부작'이란 타이틀에 끌려 읽게 되었고, 3부작 모두가 색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어 재미와 높은 완성도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생존자, 1명> <관館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일본에서는 문고본으로 발행 된 세 편의 단편을 공통된 테마로 인해 한 권으로 묶었다고 한다. '눈보라 치는 날의 산장, 먼 바다의 외딴섬, 서양식 관' 이 배경이 되는 작품들이다. 배경만 보더라도 '밀실 트릭 3부작'이란 카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밀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배경과 해결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개인적으로 3부작 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생존자, 1명>이었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먼저 읽고 만나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즈음 빈틈없는 스토리로 트릭의 세계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읽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이유는 생각지 못한 반전 때문이었다. 보통 탐정이라고 하면 정의를 향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인데, 이 단편에 등장하는 탐정은 스타일 좋고 명석함을 드러내지만 명탐정은 어디까지나 공상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생계형 탐정이었다. 어느 날 기업의 행사에 초대받아 간 산장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그동안의 경험과 지혜로 그와 그의 조수는 나름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갔는데, '눈보라 치는 날의 산장'이라는 트릭에 걸려 정작 그가 맞이하는 운명과 그 뒤의 이야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독자를 한 눈 팔게 만든 뒤 예상지 못한 빈틈을 노리고 들어와 반전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소설이 끝나도 되나 싶었고, 이런 반전이 있다는 것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생존자 1명>의 단편을 이어서 읽게 되었는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쏙 빠져들었다. 신흥종교집단의 명령으로 지하철 폭파 테러를 일으키고 무인도로 도피한 네 남녀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교단에서 해외로 도피시켜 주겠다는 말만 믿고 무인도에서 시간을 견뎌보려 하지만, 교단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서히 식량도 떨어져간다. 그런 그들에게 동료의 죽음이 다가오고 서서히 그런 공포는 고조되어 간다. 처절함 속에서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가지만, 최후의 생존자 1명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반전이면서도 그들에게 처해진 운명이 씁쓸했다.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두 편의 단편에 비해 무척 서정적인 느낌이 났다. 대학 시절 탐정소설 연구회 동료에게 네 명의 중년 신사는 초대장을 받는다. 으리으리한 관館으로 초대받은 그들은 적이 놀라지만, 초대한 당사자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추리극을 연기해 보자며 자신이 지은 집을 그 공간으로 이용하게 된다. 서정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진짜가 아닌 추리극을 연기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장면에서 설명이 많이 뒤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서술 트릭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게임을 하고 있나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비교적 잔잔하게 그려지긴 했으나 역시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고, 밀실트릭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세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를 인식하게 되었음은 물론, 밀실 트릭의 묘미를 만끽하게 되었다. 처음엔 반전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했으나 저자가 펼쳐놓은 추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추리소설에 관심 갖게 해주었고, 그래서인지 추리 소설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할지 몰라도 내게는 밀실 트릭이라는 자체가 무척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책 읽기의 필요성과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새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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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 미친 여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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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기사를 보니 한 아이돌 가수가 치파오를 입은 모습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자연스레 쑤퉁의 『다리 위 미친 여자』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여자가 치파오 때문에 싸우는 사건을 지켜보았으니 어찌 인식되지 않았겠는가. 아이돌 가수가 입은 섹시한 치파오는 아닐지라도, 그 치파오를 뺏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것만은 책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친 여자는 하얀 벨벳 치파오를 입고 다리 위에서 딸을 기다렸다. 그러나 ‘꽃을 기다리는데 나비가 먼저 온다’(21쪽)는 말처럼 기다리는 딸은 오지 않고 보건소 의사가 다가와 그녀가 입고 있던 치파오에 반한다. 결국 의사의 꼬임에 넘어가 미친 여자는 양복점에 가서 자신의 치파오의 본을 뜨게 된다. 하지만 치파오에 집착한 두 여자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인해 미친 여자의 운명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뻗어나간다. 치파오를 입은 미친 여자, 그리고 그 치파오를 갖고 싶어 하는 의사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름다움을 사로잡고 싶어 탐닉할 수 없는 욕망을 소유하려 했던 그녀들. 판이하게 다른 그녀들의 운명을 보면서 씁쓸할 욕망의 이면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는 총 14편의 단편이 등장한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국내에 소개되는 쑤퉁의 첫 단편집으로, 장편소설의 작가로 인식되어 있는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써왔던 단편들을 저자가 직접 골라 엮은 만큼 자신의 단편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4편의 단편들은 모두 색다른 분위기와 재미, 근현대로 바뀌는 중국의 혼란과 시민들의 정서 등을 드러내며 단편 하나하나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맴도는 단편들이 있다. 『토요일』은 기차에서 만난 라오치와 샤오멍의 특별한 우정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토요일마다 찾아오는 라오치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흘러간다. 눈치 없는 라오치는 샤오멍 부부의 주말을 계속 방해했고, 결국 그들은 모르는 척 하는 사이로까지 변하게 된다. 샤오멍의 아내가 라오치가 면도하는 소리를 싫어했던 부분부터 어긋나면서 저자는 이 단편을 통해 일상의 흐름,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술자리』는 성공한 학자 바오칭이 명절을 지내러 고향에 갔다가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깡패와의 곤욕스런 술자리를 갖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거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수만은 없는데, 바오칭은 이 술자리로 인해 그런 이미지를 더 굳히고 만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불쾌한 끈적끈적함이 기억에 자리한 단편인 만큼 씁쓸함이 짙었다.

 


  고향에 대한 단편은 이 외에도 『대기 압력』 『집으로 가는 5월』과 연관시킬 수 있다. 『대기 압력』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샤오멍이 너무 변해버린 모습에 당황하고 있을 때, 중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의 언변에 속아 허름한 숙소에 묵게 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물리 선생님은 삐끼였고, 끝내 샤오멍은 알은체를 하지 않았지만 결코 좋은 추억을 만들지는 못하고 쓸쓸히 고향을 떠난다. 『집으로 가는 5월』은 폐허가 된 고향을 찾아가는 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향을 추억하려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짜증이 잔뜩 난 아들 사이에  '오단 서랍장' 이 매개물로 드러나지만, 결국 그 서랍장도 그들이 마주한 고향처럼 버려지고 만다.

 


  이렇듯 쑤퉁의 단편을 읽고 있노라면 한바탕 꿈을 꾸고 난 것 같은, 옛날이야기를 깊은 밤에 들은 생경함이 묻어난다. 어릴 적 추억, 고향, 흘러간 세월들과 바래지는 이야기들이 맞물려 드러나서인지 공허함이 단편이 끝날 때마다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우울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쑤퉁의 단편을 읽는다는 즐거움, 도시화로 인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맛깔스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옮긴이는 '단편소설은 기발한 사건이나 기막힌 반전을 필요로 한다. 짧은 글 안에 인생을 담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작가의 인생관을 한눈에 보여줄 의미심장하지만 찰나적인 사건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편소설은 한편의 시에 더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칫 장편소설 작가로 인식하고 단편의 존재를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쑤퉁의 단편소설을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너무 반가웠다. 정말 오랜만에 단편의 매력에 푹 빠져 달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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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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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마주할 때만 해도 책을 읽다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1995년 3월 20일, 일본의 지하철역에 옴 진리교 소행으로 사린이라는 독가스가 뿌려져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나오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을 읽어나가다 보면 내가 눈물을 흘릴 이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랬기에 뜻하지 않은 눈물은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얻게 된 다양한 감정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엔 당시의 사건 상황으로, 그다음엔 피해자들의 제각각인 사연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그래도 희망으로 점철되는 결말(이 사건에 결말이 있을까 싶지만)로 다가간 기분이다. 벌써 15년 전 사건이라고, 나와는 동떨어진 과거의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지 않고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건져 올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TV에서 연일 속보로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사건이 일어난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도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남아있다. 충격적인 사건이긴 했으나 당시에 지하철을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내게는 먼 얘기로만 느껴졌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일본에서는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뒤 그 사건을 다시 마주하게 되니 이런 만남이 신기하면서도 철없었던 당시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게 된 주요 장소가 지하철이었고, 책을 읽는 도중에 지하철이 고장 나서 목적지까지 운행되지 않는다는 방송을 듣기도 했다. 그제야 당시 사린사건을 만났던 사람들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무방비했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가 느껴졌다.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있어 과민반응을 했을 수도 있으나, 바로 지하철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갈아타면서 피해자들이 불특정 다수였다는 점, 특정 종교집단이 계획적으로 노렸다는 점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읽으면서 정작 저자가 이 책을 쓰기로 한 출발점(다른 이유들도 있었지만)이 되었던 이 질문을 나는 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 상황이 궁금하긴 했으나 단순하게 사망자가 별로 없다는 것에 나름 안도했던 것 같다. 12명의 사망자 뒤에는 수백 명의 사상자가 있었음에도 그들이 겪는 고통은 표면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정황만 알려고 기를 썼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이어지는 똑같은 증언들이 별 특징 없이 느껴졌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고, 증언한 사람들도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이 끝을 향해 갈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있노라니 그 사건이 그들에게 미친 영향이 실로 방대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분노를 떠안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고충이 느껴졌다. 15년이 지난 후에 그 사람들의 사연을 읽었다고 해도, 생생한 사건의 경험은 15년 동안 축적되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대부분 멀리서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이 대부분이라 늘 복잡한 지하철에 대한 고충이 가득했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날따라 일이 생겨 우연히 타게 된 사람들, 평소와는 다르게 몇 분 차이로 사린이 뿌려진 지하철을 탄 사람들, 늘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사린가스를 마신 사람들. 사린가스로 인해 중상을 입게 된 아카시 시즈코 씨의 오빠는 '운이 나빴다는 걸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라고 말한다. 사건을 당하기 전날 여동생과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이런 걸 행복이라고 하는 거야.' 말했는데 다음 날 여동생은 사린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저자는 그런 시즈코 씨를 인터뷰 하러 가면서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이 취재를 해 낼 수 있을까?' 란 고민을 하게 된다. 시즈코 씨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저자의 고민이 이해가 갔다.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인생도, 생각도, 증상과 후유증도 제각각인 것을 보며 그들에게 이 사건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 진리교에 대한 분노를 대부분 드러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목숨을 잃지 않고 이 정도인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 등 불특정 다수였던 만큼 다양한 생각과 인생들이 엉켜있었다. 저자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해 가면서 짧은 질문들을 던졌고, 대부분 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나 그날의 상황, 현재의 상황에 대해 듣는 편이었다. 처음엔 이 사람들이 살아온 삶이 길게 펼쳐지는 것을 보고, 이것이 사린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린 사건이 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을 느끼고, 저자는 그것을 온전히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 증언자의 말처럼 사린사건을 통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희생당했는가.' 라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사린 사건을 지켜보는 독자에게 수많은 의문과 질문을 던지지만, 정작 명확한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문제제기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이 치안이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안심하는 사이 그것을 노리고 사건을 일으킨 옴 진리교,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체계적이지 않은 시스템, 그 전에 옴 진리교가 사린 사건을 한 번 더 일으켰는데 그걸 철저히 조사하지 않아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사람들. 자신은 이제 괜찮으니 별 상관없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후유증 가운데도 의식이 깨어있고 그것을 개정하길 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자신과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는 사람들, 후유증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와 가족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까지 삭막하게 바꿔놓지는 못했다는, 어쩌면 섣부른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고 와다 에이지 씨의 부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와다 에이지 씨의 부모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와다 요시코씨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후에 혼자 딸을 낳았다. 남편을 만나게 된 이야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하면서 사건이 일어났던 당일 유난히 다정했던 남편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딸에게 아빠 이야기를 해주며 잠들기 전에 아빠 사진을 보며 인사하는 딸에게 가련함을 느끼는 보통 여인이었다. 남편을 잃어버려 옴 진리교의 교주에 대한 분노는 강했지만, 딸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 또한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돋보여 담담한 그녀의 말투와 고백에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와다 요시코 씨가 안됐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남편을 잃은 상황을 견뎌내고 스스로 일어서려 하는 모습이 너무 처연했다. 그랬기에 와다 요시코씨의 인터뷰가 마지막에 있었던 것이 이 사건을 극단적으로 끌어내지 않고 위로를 받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찾아볼 수도 있었으나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사건을 검색해 보았다. 사람들이 묘사했던 대로 아수라장이었던 당시의 사진을 보면서 인터뷰 한 사람들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도  와다 요시코 씨의 딸이 이제 내가 사린 사건 소식을 들었던 나이쯤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만감이 교차했다. 아빠를 잃어버린 아이, 남편을 잃어버린 아내, 아들을 잃어버린 부모. 그들의 증언은 마음 아프고 슬펐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모습에 도리어 힘을 얻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에 단순히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해 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훗날 『1Q84』를 쓰게 된 계기가 된 것만큼 저자는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삭막해져 가는 도시의 불안한 사람들을 그렸고, 어떠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지표를 삼게 된 것 같다. 하루키 마니아를 가르는 기준이 <언더그라운드>라고들 하는데,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분명함이 드러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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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반딧불이』 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던 내게 여름밤에 흔히 볼 수 있는 게 반딧불이었다. 캄캄한 밤길을 걷다보면 듬성듬성 나타나는 반딧불이 들이 약간 무서워진다. 그러다 반딧불이와 함께 몇 번 밤길을 걷다보면 시골의 또 다른 매력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환상적인 분위기가 짙었던 『반딧불이』를 읽으면서 밤길의 그 묘한 특별함이 내내 생각났다.


  『상실의 시대』 의 모티브가 된 중편이 『반딧불이』 라고 하니,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대학시절 살던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에게 받은 반딧불이를 날려 보내며 그녀를 생각한다. 절친의 여자친구였던 그녀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택하자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런 그녀와 재회해 데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진 듯 했으나 그녀는 잠적하고,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 모든 추억들을 룸메이트가 건네 준 반딧불이에 덧입혀, 그녀에 대한 기억을 덜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딧불이』 에 등장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나 그의 여자친구, 반딧불이를 건네 준 룸메이트 등, 평범을 가미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은 특별하다.  『헛간을 태우다』 에 등장하는 내연녀인 그녀의 새 남자친구, 『춤추는 난쟁이』 속의 기묘한 운명을 가진 난쟁이,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의 귀가 아픈 사촌과 친구의 여자친구의 병문안을 갔던 경험의 나열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듯 하면서도 연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 가지의 독일 환상』 처럼 상상속의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일상이 빚어내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함을 잘 끌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추억하고, 이야기를 듣고, 계기를 끌어내는 소재들이 그러했고, 그것을 적절히 섞어낸 저자의 기발함이 돋보였다. 나였다면 헛간을 태우는 남자,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귀가 아파 자신과 종종 병원을 가는 사촌,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이토록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야기의 힘을 빌려 생생함을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어딘가 끊기고, 개인적인 감정이 잔뜩 들어간 뭉뚱그려진 이야기를 전달했을 것이다. 저자의 능력에 굳이 나의 보잘것없는 언변을 덧붙이자는 것이 아니라 하루키이기에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들을 밤에 읽어서인지, 책 제목을 보고 유년시절에 보았던 반딧불이와 함께 걷는 밤길을 떠올려서인지, 환상적인 분위기가 감돌았음에도 이야기와 나 사이에 큰 강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은 덜했다. 소설이라고 인식하고 읽는 작품보다, 현실을 인식하되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불가능할 것 같은 세계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반딧불이』 는 그런 부분에서 나의 충족감을 채워주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태엽감는 새』 의 모티브가 되었던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처럼, 역시 『상실의 시대』 의 모티프가 된 『반딧불이』 를 읽을 수 있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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