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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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풍경, 감미로운 음악, 기분 좋은 산책을 할 때면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곤 잠시 마음을 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런 떠올림도 잠시, 설핏 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황망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어떠한 확신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해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깊은 열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든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22살에 읽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기보다 어렵게 생각했던 작품이 쉽게 읽혔다는 것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미 같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그 사이 베르테르의 선택을 극단적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누그러트렸고, 인간의 내면이 사랑에 의해 열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에 위대함을, 절망감이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있다는 것에 위험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베르테르의 순정에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게 무척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오고,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오랜만에 만끽한 휴가를 더 빛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당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며 산책을 하다가도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워져 살짝 쓸쓸해지려 했다. 베르테르였다면 이런 고즈넉함 속에서 로테를 떠올렸을 테고, 환희보다 가슴 아픈 고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그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 로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그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선택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리면, 마당을 거니는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첫 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노라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먼저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이고, 주변에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랑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원하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나약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녀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드높이는 베르테르 앞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에도 겁내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총 82편으로 구성된 베르테르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그의 삶은 온통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뒤덮여 있었다. 로테가 곁에 있을 때 그의 삶은 빛이 났고,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던 그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로테를 향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대하고 숭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면 세상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 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고통에 찬 편지를 보낸다. 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이 가미한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마음 아팠던 구절이었다. 로테가 자신의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베르테르의 독백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한 쪽만 부풀려 진다고 해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이미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떠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로테였고,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 베르테르. 한 발짝도 물러 설 곳이 없는 그의 처지가 잔인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지 그의 편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베르테르는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고,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 버리는’ 알베르토와의 논쟁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견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을지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겐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은 여전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남겨진 사람들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슬픔 가득한 베르테르를 최후가  마음 아플 뿐이다.

  사랑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고통 받는 베르테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얻고 말았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의 일환으로 시를 읽어줄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닮고 싶긴 하나, 그것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과 사랑의 고통으로 범벅된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 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절망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기보다, 환희에 찬 사랑의 릴레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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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풍경, 감미로운 음악, 기분 좋은 산책을 할 때면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곤 잠시 마음을 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런 떠올림도 잠시, 설핏 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황망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어떠한 확신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해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깊은 열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든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22살에 읽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기보다 어렵게 생각했던 작품이 쉽게 읽혔다는 것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미 같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그 사이 베르테르의 선택을 극단적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누그러트렸고, 인간의 내면이 사랑에 의해 열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에 위대함을, 절망감이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있다는 것에 위험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베르테르의 순정에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게 무척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오고,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오랜만에 만끽한 휴가를 더 빛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당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며 산책을 하다가도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워져 살짝 쓸쓸해지려 했다. 베르테르였다면 이런 고즈넉함 속에서 로테를 떠올렸을 테고, 환희보다 가슴 아픈 고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그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 로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그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선택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리면, 마당을 거니는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첫 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노라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먼저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이고, 주변에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랑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원하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나약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녀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드높이는 베르테르 앞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에도 겁내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총 82편으로 구성된 베르테르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그의 삶은 온통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뒤덮여 있었다. 로테가 곁에 있을 때 그의 삶은 빛이 났고,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던 그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로테를 향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대하고 숭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면 세상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 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고통에 찬 편지를 보낸다. 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이 가미한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마음 아팠던 구절이었다. 로테가 자신의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베르테르의 독백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한 쪽만 부풀려 진다고 해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이미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떠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로테였고,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 베르테르. 한 발짝도 물러 설 곳이 없는 그의 처지가 잔인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지 그의 편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베르테르는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고,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 버리는’ 알베르토와의 논쟁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견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을지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겐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은 여전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남겨진 사람들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슬픔 가득한 베르테르를 최후가  마음 아플 뿐이다.

 

  사랑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고통 받는 베르테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얻고 말았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의 일환으로 시를 읽어줄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닮고 싶긴 하나, 그것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과 사랑의 고통으로 범벅된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 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절망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기보다, 환희에 찬 사랑의 릴레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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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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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20대 초반에 읽은 『상실의 시대』가 전부였고, 6년 만에 선보인 신작 『1Q84』로 조우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많이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많이 읽었다고도 할 수 없었다.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있던 찰나, 마치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듯 하루키 단편집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일명 ‘하루키 3종 세트'로 불리는 단편집이었다. 책도 얇고 겉표지도 너무 예뻐 하루키의 장편이 아닌 단편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많이들은 『빵가게 재습격』을 먼저 읽었다. 세 권의 단편집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제목과 겉표지여서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하루키의 단편집은 처음 마주하는 터라 『빵가게 재습격』의 전에 『빵가게 습격』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빵가게 습격』도 무척 궁금했는데, 『빵가게 재습격』에서 내용을 말해주어 일단의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빵가게 재습격』에서는 새벽 두시 잠을 깬 부부가 심한 공복감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빵가게를 습격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 주고 두 번째 빵가게 습격에 나서는 내용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에 맞는 빵가게가 없어 결국 맥도날드를 습격하게 된다. 차라리 돈을 털어가라는 점원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빅맥 30개를 챙긴 그들은 미친 듯이 공복을 메운다. 마침 깊은 밤에 책을 읽던 나도 공복을 느껴 빅맥이 먹고 싶어 어찌나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우리동네에는 맥도날드도 없고, 먹을 것을 사러 나갈 자동차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질 정도였다.

 

  『빵가게 재습격』을 시작으로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는 내내, 정말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해 ‘나는 늘 배고프다.’라는 유행어가 절로 나왔다. 하루키의 소설을 대부분 읽은 지인에게 푸념을 했더니, 에세이를 읽어보면 더 심하단다. 음식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밥을 먹은 뒤라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을 때는 늘 배를 두둑하게 채워두었다. 음식 얘기가 맛깔나게 펼쳐지니 배가 고프더라도 포만감을 내세워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맥도날드를 지나칠 때마다 소설속의 부부가 생각나 슬그머니 미소가 머금어졌 는데, 며칠 전 정말 새벽에 맥도날드에 갈 일이 생겼다. 사정상 빅맥이 아닌 사이다를 마시면서도 점원들이 소설속의 점원으로 보이고, 빅맥 30개를 만들어 달라고 소리쳐도 그대로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주인공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느라 혼났다.

 

  『빵가게 재습격』 단편집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는데, 모두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특히나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하루키의 대표작인 『태엽감는 새』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니, 장편이 탄생하기 전에 쓴 단편을 만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모르는 여자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부터 시작해 기묘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드러낸 소설이었는데, 조금은 특별하면서도 평이한 하루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저자의 저력을 맛보기도 한 작품이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와타나베 노보루’란 이름이 연속으로 등장하는데, 그 이름을 찾아 다른 단편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에서는 사육사로, 『패밀리 어페어』에서는 여동생의 남자친구로,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는 동업자로,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고양이로 등장하는 이름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름 하나로 소설들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서인지, 다른 이야기면서도 같은 이야기인 착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빵가게 재습격』에 등장한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가 ‘상실과 소멸’ 이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위기의 ‘상실과 소멸’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에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마을의 축사 코끼리와 사육사의 소멸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파티에서 만난 여자에게 코끼리가 사라지던 날을 목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끼리의 소멸은 불가사의 하면서도 왠지 모를 현실감을 띠고 있어 현대인의 위치와 존재감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다. 『패밀리 어페어』는 비교적 사이가 좋은 여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을 다루고 있었다. 남매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끼어들면서 무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고 믿는 주인공은 비교적 잔잔하게 상실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도 번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쌍둥이의 사진으로 그녀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사진 속에서 만난 그녀들의 모습이 낯선 만큼 주인공에겐 그녀들과 정말 같이 살았는지에 대한 여부도 희미할 정도다. 이미 상실해 버린 것을 다시 끌어 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현재를 느끼며 존재했던 시간들에 추억이라는 더께를 입힐 뿐이었다. 


  이렇듯 『빵가게 재습격』으로 시작한 조금은 명랑(?)한 ‘소멸과 상실’은 다양한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을 엿보게 되는 것은 물론 단편 소설의 매력도 만끽하게 되었다. 두 편의 장편소설밖에 만나지 않은 나로서는 단편 소설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빵가게 재습격』과 함께 나온 『반딧불이』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바로 나머지 단편집을 읽어 보겠노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연속적으로 하루키의 작품과 계속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어떤 작가를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만남으로 이어나가는 바탕에는 그의 많은 작품을 섭렵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을 이미 읽어본 듯한 착각이 일지만, 조금은 더디더라도 이렇게 차근차근 만남을 이어갔으면 한다. 장편소설, 단편소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역량을 발휘하는 작가이기에, 앞으로 나와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기대가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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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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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을 만끽할 수 있는 소설집! 14편의 독특한 소설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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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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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면 밖의 날씨를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에 따라서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은 안개가 뿌옇게 내려앉아 하루의 시작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 안개가 하루의 시작을 가로막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날씨도 가늠할 수 없고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들처럼 몽환적인 분위기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 얼마 전에 만난 위화의 소설 『4월 3일 사건』이 자연스레 생각이 났다. 


  겉표지의 소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면 큰 비밀이 밝혀지기라도 하듯 『4월 3일 사건』을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4월 3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소년은 얼굴을 가리고 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4월 3일 사건』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 되었다. 소송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의 죽임을 당한 주인공이 생각났다. 한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4월 3일 사건』도  기이하기만 했다. 어른들은 모두 4월 3일을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심스레 준비하기도 하고, 이웃은 누군가에게 쫓기기도 한다. 소년은 그 음모가 자신을 향해있다 생각하고, 나름대로 음모에 맞서려 하지만 결국 4월 3일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정체를 들어 내지 않은 『4월 3일 사건』은 인간의 불안한 내면과 공포,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년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은 규명되어지지 않은 사건들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했다. 저자 또한 “왜 이렇게 많은 죽음과 폭력적인 상황들이 삶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한 바 있으니, 『4월 3일 사건』이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4편의 중편은 다양한 색깔을 지닌 채 비교적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름 태풍>은 자연재해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군상을 다루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 날거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 사람들은 천막을 짓고 대피한다. 사람들은 지진을 피해 방수포 안으로 대피했지만 정작 그들을 찾아온 것은 장마였다. 방수포 안의 장마는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 우울로 내 몰아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장마보다 지진을 더 걱정했다. 지진을 측정하는 바이수란 소년과 장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의 모습이 병행으로 그려지면서 혼란은 절정에 달했다.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무너짐의 시작이었다. 장마가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이, 지진을 측정했던 바이수의 진실이 밝혀질듯 하다가도 모호하게 소설은 끝이 난다. 인간의 내면에 늘 현재진행형인 불안을 드러내듯 딱 부러진 결말을 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지주의 죽음>은 중일 전쟁이 배경이 되고 있었다. 일본군이 중국 양민들을 무차별로 살해하고 있을 때, 한 지주의 아들은 일본군을 일부러 엉뚱한 길로 안내한다. 애국심이라기보다 기본적인 도덕심에 의한 자발적인 안내와 죽음을 불러온 행동이었다. 그런 만큼 더 애잔하고 어느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는 슬픔과 분노, 안타까움이 함께 따라왔다. 일본군의 괴롭힘은 잔인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졌고, 그런 상황에서 누구도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무리일 정도로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죽음 앞에서 마음 싸한 슬픔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처연할 정도로 전쟁은 사람들을 메마르게 만들어 갔다. 


  <조상>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나타난 괴수를 아이의 시선으로 다루고 있었는데, 아이에게 호의적인 괴수를 어른들은 처치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아이를 납치해 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납치당한 아이를 제때 구하지 못한 아버지를 몰아세우는 것부터 시작해 괴수를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을 납치해간 괴수에 대해 아이는 그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결국 아이 앞에 다시 나타난 괴수를 마을 사람들은 낫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 괴수의 고기를 조각내 나눠먹는 모습을 보면서 끔찍함을 느꼈다. 그 괴수가 자신들의 조상이었다며 한탄하는 마을 선생의 말에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느끼지 못한 채 두려움을 향해 여전히 낫질을 할 뿐이었다. 


  이렇듯 모호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네 편의 독특한 중편들은 저자가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쓴 작품 가운데 직접 선정해서 묶었다고 한다. 과감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색깔을 지닌 소설들이었다. 오늘 아침 내가 목도한 안개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이 가득 내제되어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두려움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과 폭력을 어쩌지는 못했으나 접근과 시도가 색다름을 전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명확히 알 수 없더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의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라도, 나 혼자만 동떨어진 두려움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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