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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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어령님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딸로 인해 종교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최근에 출간된 저자의 첫 시집의 제목이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였기에 제목만 보고 그대로 받아들인 탓도 있었다. 그만큼 저자가 신앙을 가지고 안가지고의 여부에 대해 큰 의의를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자가 가진 사회적 위치와 그동안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단순하게 치부하고 지나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일흔이 넘어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 딸의 기도가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과 무엇보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써 낸 수많은 글들이 그동안의 내적 영성을 증거 함에도 현재의 중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자의 책을 그다지 많이 읽은 것은 아니기에 신앙에 관한 에세이를 만나게 된 것이 자못 당황스러웠다. 나 또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신앙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 그간의 저자의 행보와 신앙이 일치가 안 되는 낯섦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신앙을 가지는 것에 대한 내 시선 또한 이러할진대, 저자가 당면했을 시선들이 그제야 조금씩 느껴졌다. 현재를 이루고 있는 밑바탕이 과거가 되더라도, 현재가 더 중요한데 왜 그렇게 과거의 행보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지식인으로써의 인식되어 있었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았다. 그 묵은 감정을 벗겨내고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볼 때에 저자의 진심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초반에는 저자에 대한 인식을 벗기기는 힘들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점차 마음을 열게 되었고 신앙에 대한 경험과 저자의 생각, 농도까지 모두 알아갔다. 교토, 하와이, 한국에서의 일들과 딸과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 속에는 신앙이 중심이 되었지만 저자만의 집약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글에서 밝혔듯이 기독교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독자적인 생각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실재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니 세례를 받는 것부터 이슈가 되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례를 받겠다고 말해놓고, 국내에서 받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것 같아 '러브소나타' 도쿄 대회 현장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5천 명이 넘는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바람에 더 크게 일을 벌이게 되었노라고 회상했다.

 

  세례를 받는 것부터 그 뒤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 목도하면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것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에도 제안을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된 셈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녀들의 모습은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더라도 똑같은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데도 저자는 보통 사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딸의 기도가 육신의 아버지에게 닿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이 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시련이 저자의 딸에게 연속으로 다가왔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암을 앓는 것도 모자라 재발까지 했고, 아이 중 한명은 자폐증상과 함께 과잉행동증상으로 오랫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거기다 총명하던 큰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하는 일까지 그야말로 시련은 끊이질 않았다.

 

  암을 이겨낸 것만도 힘겨웠을 텐데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와이까지 거처를 옮기는 고난이 안쓰러웠다. 그곳에서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소식까지 겹쳐 저자는 급히 하와이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런 딸을 보며 딸을 낫게 해준다면 앞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가겠다고 기도를 드린다. 딸의 눈은 국내에서 진료를 받은 뒤 기적처럼 나았고, 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이미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가 신앙을 가지기 전과 후에 쓴 시들을 읽으면서 변화된 내적 영성을 보면서 하나님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에 온전히 들어가시는 것부터 기도로 변화시키는 것까지 저자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을 낱낱이 보게 되면서 살아계신 그 분의 섭리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광범위한 지식 때문에 잠시 책의 내용이 혼동되기도 했다. 신앙과 자신의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드러낼 때는 장황한 것 같아 생각이 흩어지곤 했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 같았으나 개인적으로 신앙에 대한 주제로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신앙을 사람이 판단할 수 없고, 믿음의 척도를 비교할 수 없듯이 오로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겠지만 부족한 나의 눈으로 보여지는 여러 가지 것들에 생각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저자가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고, 딸의 눈물겨운 기도와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그들의 모습이 있었다. 거기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나를 부끄럽게 하면서도 너무나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는 내 모습이 교차됐다.

 

  저자도 저자지만 딸의 절절한 편지와 간증, 기도가 마음을 더 애달프게 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떠한 시선으로 쳐다보는지와 신앙의 여부를 떠나 삶에 대한 시각이 보통 사람과 좀 더 다를 뿐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녀를 보면서 부모를 위해 자식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모습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저자는 일흔이 넘어 세례를 받는 것과 시집을 낸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망령 났다고 수군댔다 했지만 오히려 그 나이에도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글로 표현하고, 감사해 할 수 있는 모습 속에는 아픔, 절망, 환희, 성스러움 등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날로 날로 깊어지고 짙어지는 믿음을 보면서 그 믿음을 닮아가야겠다고, 감사할 수 있을 때 맘껏 감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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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2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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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소설이어서 덥석 집었는데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덮어 버렸다. 말을 못하는 여주인공 순지와 바보인 오빠, 그런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남동생, 세 자녀를 홀로 키워온 엄마가 등장하는 초반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사투리까지 섞인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발랄함을 기대했던 마음이 순간 사라져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책을 방치하다 겨우 다시 읽게 되었는데, 묵혀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버렸고 안타까움에 마음이 싸해지고 말았다.

 

  현재와 과거를 나눠 훑어가는 구성은 읽기를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말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현재의 순지가 그렇게 된 과정을 알아가는 것이 괴롭다면 괴로웠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농사를 지어야하는 순지의 처지가 안타까웠고, 그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나, 서울에서 일하는 동네 친구들을 향한 부러운 시선 모두가 나를 괴롭혔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디선가 저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때문에 괜히 마음이 가라 앉아 버렸다. 꿋꿋하고 순박한 순지였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즐거울 리 없었다. 명절 때 만나는 동네 친구 은영과 정애는 서울 물에 푹 절어 순지를 유혹하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던 순지는 엄마에게 서울로 보내달라고 조르게 된다.

 

  자신의 고집대로 서울에 가게 되었지만 그곳 생활은 꿈에 그리던 생활이 아니었다. 비좁은 자취방과 고단한 공장생활은 순지에게 공부는커녕 도시의 호락하지 않음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은영과 정애가 있었지만 오히려 정애 때문에 공장에서 난처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순지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한 사물에 불과했다. 그런 서울생활과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순지의 이야기는 어지럽게 흩어져 어떤 모습을 더 지켜봐야 할지 몰라 겁이 나기도 했다. 말 못하고 병약한 현재의 순지의 모습이 처음에는 답답했으나, 조금씩 서울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지면 오히려 시골속의 순지가 평안했다. 반대로 서울에서의 경험이 이어지면 힘겨워도 무언가 희망이 보이기도 하다가, 심상치 않은 결말로 좁혀 들어갈 때면 마주하기 싫어 피하고만 싶었다. 저렇게 발랄했는데 순지는 왜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자꾸 은영과 정애만 찾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순지를 비롯한 친구들과 공장에 모여든 수많은 여공들은 십대가 많았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을 앞둔 시기였지만 당시의 팍팍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순지가 공부를 한다는 꿈은 꿀 수도 없었다. 시골만 벗어나면 대학도 다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꿈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만 깨달아갈 뿐이었다. 집에도 가고 싶고, 가족들도 보고 싶고, 자신이 좋아하는 정태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하루하루가 고역 같은 나날이었다. 그런 일상도 감당하기 힘든데, 급기야 공장에서 싸우다 잘리고 만다. 그런 상황에 내던져진 순지가 너무나 막연해 두려움이 일었다. 열일곱이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데, 그런 쓰디쓴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방직공작으로 일자리를 옮긴 순지를 따라 친구 정애와 은영도 같은 공장에 다니게 되었고, 지하 기숙사일망정 생활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치와 구박 속에서도 무료로 야학을 해주는 곳에서 공부를 하며 희망을 부여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공장 생활에서 힘들어도 공부가 활력이 되어 주었으며, 현재를 견디면 보다 나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고 불행의 그림자는 서서히 아이들을 덮치고 있었다. 순지가 그런 상태로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이유에는 정애와 은영의 죽음이 있었다. 순지는 분명 그 기억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고, 고통 받고 있었음에도 엄마는 정애와 은영의 귀신이 순지를 괴롭힌다 생각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말에 순지 엄마는 질겁을 하고, 굿을 해 귀신을 쫓으려 하고 그런 순지를 도와주려 정태가 나타난다.

 

  정애와 은영의 목숨을 비롯한 다른 소녀들의 삶을 모조리 뺏어간 사건은 불이었다. 셔터가 내려진 지하 기숙사에서 잠든 사이 불이 났고, 아이들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빠져 나가려 했지만 창살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어갔다. 22명의 사망자를 낸 그 사건은 실화였으며 순지만이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난 사람이었다. 그 사건을 향해 순지의 과거가 펼쳐졌고, 아이들의 생은 끝을 달리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하게 읽어나가고 있었다. 순지가 저런 모습으로 고향에 내려온 진실의 이면에 이런 내막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오만이었다. 순지의 내면에는 그날의 고통과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이 맞물려 말문을 막고 있었고, 치료가 없이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없었다.

 

  동생을 잃은 정태나 은영과 정애의 엄마는 순지를 보는 것이 괴로웠고, 그들 간의 벽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나마 순지에게는 자신을 생각하는 가족이 있었고, 마음의 치료가 아닌 엉뚱한 굿을 벌이다 다시 화해하는 사건이 만들어졌으며, 정태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다. 순지의 고통을 알아주는 의사와 정태의 도움으로 순지는 그간의 고통을 조금씩 털어내며 말문을 여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나지만, 그것으로 순지를 안심하고 바라볼 수는 없었다. 물론 힘든 시간을 거쳐 왔으니 좀 더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미 지나온 시간도 고통으로 얼룩져있어 무조건적인 희망을 던져주기가 미안했다.

 

  1988년에 일어난 사건을 소설화 시키는 사실을 모르고 읽어서인지, 열일곱의 시선으로 시시콜콜 늘어놓는 감정의 나열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억지로 들어가려는 경향으로 보이기도 했고, 고리타분한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타박을 했다. 순지가 겪은 일이 드러나고 저자의 말을 읽고 나니 그제야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또한 내가 그들의 삶을 짓밟은 것 같아 죄책감에 마음은 얼룩져갔다. 1988년 당시 그들보다 어렸지만 어른이 된 현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삶을 짓밟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줄 수 없다면 최소한 짓밟지는 말아야 한다. 지켜줄 수 없다면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고 그 아이들이 '어쩌자고 우린' 하며 현실과 나이를 탓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어른의 욕심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면 더 이상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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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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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보편적으로 소설가 이외수를 별로 탐탁지 않은 인간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가 문명인으로서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지극히 비과학적이며 지극히 비위생적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산출된 평가다.(95쪽)' 이외수란 작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그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나 또한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보이는 그대로 왜곡해서 보고 들려오는 풍문으로 그를 판단했다. 그의 작품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했고, 지인이 이외수의 책을 몇 권 건네주었음에도 책장에 방치하고 있었다. 어제도 박스 가득 도착한 책 가운데서 이외수의 <외뿔>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을 주려고 훑어보다 읽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순전히 깔끔한 겉표지와 글씨가 많지 않은 내용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뿔>이라는 책을 통해 이외수란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벗겨냈다. 다른 작품을 읽고 나서도 이 마음이 유지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닥치지도 않은 걱정거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외뿔>을 보면서 오랜만에 상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현대소설에서 걸쭉한 말 빨로 유발시키는 억지웃음이 아닌 뼈아픈 유머가 있으면서도 호쾌하게 뱉어내는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겪인 물벌레가 그런 웃음을 던져 주었는데, 저자의 우화 속에서 여러 역할을 자처하곤 했다. 물속의 미국계 조폭인 베스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물벼룩 앞에서는 자존심을 세워 센 척 한다. 물벌레의 인생은 우리네 인생과 빗대어져 있었고,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뭔가 묵직한 느낌을 동반했다.

 

  우화집인 만큼 저자는 그림과 짤막한 글로 수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었다. 화두는 인간을 향한 것들이 많았지만 우화 속에는 인간보다 자연이 더 많이 등장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물벌레와 물풀 등을 등장시켰듯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는 미미한 존재들이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탐욕에 물들고,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며, 세상 때에 찌들대로 찌든 모습으로 등장하기 일쑤였다. 양심을 져버리는 정치인, 성공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외국 문물에 물든 젊은이,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들로 비춰졌다. 그런 인간세계를 물벌레를 비롯한 다른 물고기들이 자기네 세상에서 표현해 주었기에 너무나 잘 와 닿았다. 그 모습에 맘껏 웃고 씁쓸해 했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갔다.

 

  물벼룩이 전반적으로 고루 등장하기에 물벼룩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만 주인공이 누구이며 이러이러한 분위기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인생, 사랑, 미물, 환경, 종교, 도(道) 등 실로 방대하고 다양한 우화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때론 정신없게 보이기도 한다. 등장 소재들이 뒤죽박죽 거릴 때도 있고, 웃겼다가 깨달음을 줬다가 분노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쏙 빼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고, 짤막한 글 속에 담긴 진리를 만날 때면 오랫동안 글을 응시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의 마음을 울리는 글들을 만날 때면 몇 번씩 읽어보며 이면을 보려 애썼고, 현실의 나를 마주 보는 글을 만날 때면 괜히 한숨이 지어지며 서글퍼지기도 했다. 진정한 사랑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대는 진실로 거룩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글 앞에서 어찌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움을 뱉어내는 달팽이를 보면 인생의 고독을 깨닫게 되고, 세상과 조화가 아름다움이라고 설파하는 물벼룩을 보며 현재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채 살아가는 방법 하나로 일체의 갈등과 욕망에서 사라진 생명체'인 물풀 앞에서 내 존재가 미미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고기들 간에 먹고 뜯기는 살벌함 앞에서 움츠러들기도 하고, 개량변이 되어 등장하는 도깨비를 실감나게 그려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라보기도 했다. 다양한 분위기 속에 빠져 여기저리를 헤매다 보면 어느새 책은 끝나가고 있었고, 열등감에 시달리고 절망감에 좌절하던 물벌레도 하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생의 축약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외뿔>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언저리가 모두 똑같을 수 없고, 순간순간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부분이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았지만 여전히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미물들을 보면서 세상은 아직 인간의 흔적으로 때 묻지 않은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치에서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다 그보다 못한 미물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물처럼 느껴졌다고 자괴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미물의 위치에서도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귀한 진실을 말이다.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채워 거룩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와 고개를 돌려 다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진실 된 마음을 갖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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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7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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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꺼낸 <아리랑>의 읽기가 더뎌져 흐름이 끊길 때면 이번만은 절대 방치하지 말자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4년 만의 해후이기도 하고, 다시 손을 놔버리면 해후를 안한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리랑>을 한권씩 읽을 때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권 당 묵직한 페이지수도 한 몫 하겠지만, 분량으로 따질 수 없는 한(恨)이 서려있기에 한 호흡에 읽는다는 것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자꾸 도망치고 싶어 책을 덮어버리고픈 마음을 끌어당겨 7권을 읽었다. 마음을 새롭게 먹어서인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려있는 한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버렸다.

 

  6권에서 3·1 만세운동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7권에서는 일본인들의 악랄함이 더 심해졌다. 그에 상응하듯 독립군들의 활동도 거세졌지만, 보복은 힘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두만강 건너에서 독립군들에 의해 일본군이 당했다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죽어간 조선인들이 너무 많았고 여러 조직으로 나뉜 독립군들 사이에서도 파장이 일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새로운 사상과 맞물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내외향적인 사상이 구식으로 점철된 이들 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속박을 피해 만주와 이남으로 길을 떠났고, 그곳이라고 해서 조선인들을 편하게 만들어 줄 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해봤자 입성만 남루해졌고 일본인들의 배만 채워줬기 때문이다.

 

  일본이 발표한 산미증식계획으로 더 많은 쌀을 거둬들이기 위해 간척 사업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농부들이 불리한 조건임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입에 풀칠하기 힘든 형편과 간척사업이 끝난 뒤 소작땅을 분배해 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고, 힘없고 나약한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조선인 감독들과 일본의 음모가 맞물려 살기가 팍팍해질 뿐이었다. 바다를 메워 논을 만들어 놓자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게 되었고, 북향의 땅을 나눠주고 그곳에 판잣집만도 못한 집을 짓게 했으며, 약속과 다른 양의 소작땅을 나눠준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분노해 보았자 그들의 억울함과 나라를 뺏긴 설움을 달래 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빌어먹지 못한 세상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부여잡다 책을 놓고 싶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저자가 흩뿌려놓은 인물들의 삶은 파란만장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세키야에게 쫓겨난 보름이는 수국이를 범한 죄로 한쪽 눈을 잃은 백남일에게 보복을 당했지만, 서무룡의 덫으로 인해 백남일은 더 난처해지고 말았다. 세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보름이에게 장사밑천을 대어주는가 하면 서무룡은 보름이를 그런 식으로 옥죄어 들었다. 한편 양치성의 계획대로 엄마를 잃은 수국이는 그와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차렸는데, 경찰 끄나풀이라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된 수국이는 양치성을 칼로 찌르고 남동생과 송수익 선생, 필녀가 있는 곳으로 간다. 송수익 선생이 중심이 된 조직은 일본군들을 피해 북쪽으로 터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허 스님은 여전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고, 기차에서 만난 장칠문으로 인해 잡힐 뻔 했지만 무사히 빠져 나온다. 옥녀는 어렸을 때 헤어졌던 꿈에 그리던 오빠를 찾아 나서게 되고,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미처 기억하지 못한 자잘한 인물들의 행보까지 저자는 촘촘하게 엮어갔다.

 

  그런 와중에 만주나 연해주, 러시아,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 사이에 은밀하게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고 있었다. 일본군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고, 공산주의를 퍼트리는 조선인들에게 더 핍박이 가해졌지만 인력으로 막을 수 없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조선인들에게는 공산주의사상이 너무도 적합했다. 먼저 지식인들에게 퍼져나갔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서서히 민중에게 퍼져나갔다. 그 시작이 정도규가 결성한 소작회였고, 그 일을 시발점으로 해서 나라도 되찾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많은 사람이 꿈꿔갔다.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공산주의의 이념의 개입은 앞으로 독립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일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세세함에 귀를 기울에 만들었다.

 

  나라 안은 이미 일본인들의 차지라 독립군들이 활동하기 힘들었기에, 더 위쪽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데 두만강 건너에서 2500리 떨어진 하바로프스크까지 건너온 조선인들도 허다했다. 낯선 땅에서의 성과라면 조선 독립군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합심해 일본군을 쫓아낸 것이었다. 협약까지 어겨가며 러시아 땅까지 넘보던 일본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농민들의 반란과 독립군들의 투쟁을 빌미로 더 완악하게 조여들 것을 예감하게 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가 끝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겪어보지도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럴진대, 당시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투정조차 미안해진다.

 

  불편한 역사를 재생하고 있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다고 할 수 없다. 분위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단면이기에 수긍하면서도 자잘한 삶의 단상에 위로를 받곤 했다. '그래도 삶을 이어간다.'는 체념에서 우러나온 모습을 지켜보며 도리어 위로를 받았고, 그 가운데 발생하는 위트와 농거리, 걸쭉한 입담이 여과 없이 드러나 역사소설로 단락 짓게 되는 섣부름을 이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과 일본의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견했다. "조선땅이 빌수록 왜놈덜만 좋아지는 것잉게. 거그서 고상덜 험서 사는 것도 조선땅얼 지키는 것이고 왜놈덜하고 싸우는 것이란 말이시." 자꾸 조선땅을 비워가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독립군들이 했던 대화가 내 마음을 찌른다. 비단 독립군들만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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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서른이 되서도 여전히 성장 소설을 즐겨 읽는다. 성장 소설을 보면서 유년 시절의 나를 떠올리기도 하고, 이럴 때 이런 소설을 만났다면 현재의 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만큼 다양하게 그린 성장 소설들이 많은데, 그 소설들을 보면서 내가 지나온 유년 시절을 추억하면서 대리만족하게 이른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들로 인해 현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혹은 그 이외의 자잘함들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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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각달
로즈메리 웰스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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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모래 폭풍이 지날 때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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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래 폭풍이 야속할 정도로 가슴 아프지만 꿋꿋함에 희망적인 소설.
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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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입양해서 키워준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하다.
여름이 준 선물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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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남자 아이들이 한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겪은 우정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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