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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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은 보편적으로 소설가 이외수를 별로 탐탁지 않은 인간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가 문명인으로서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지극히 비과학적이며 지극히 비위생적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산출된 평가다.(95쪽)' 이외수란 작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그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나 또한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보이는 그대로 왜곡해서 보고 들려오는 풍문으로 그를 판단했다. 그의 작품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했고, 지인이 이외수의 책을 몇 권 건네주었음에도 책장에 방치하고 있었다. 어제도 박스 가득 도착한 책 가운데서 이외수의 <외뿔>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을 주려고 훑어보다 읽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순전히 깔끔한 겉표지와 글씨가 많지 않은 내용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뿔>이라는 책을 통해 이외수란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벗겨냈다. 다른 작품을 읽고 나서도 이 마음이 유지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닥치지도 않은 걱정거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외뿔>을 보면서 오랜만에 상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현대소설에서 걸쭉한 말 빨로 유발시키는 억지웃음이 아닌 뼈아픈 유머가 있으면서도 호쾌하게 뱉어내는 웃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겪인 물벌레가 그런 웃음을 던져 주었는데, 저자의 우화 속에서 여러 역할을 자처하곤 했다. 물속의 미국계 조폭인 베스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물벼룩 앞에서는 자존심을 세워 센 척 한다. 물벌레의 인생은 우리네 인생과 빗대어져 있었고,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뭔가 묵직한 느낌을 동반했다.

 

  우화집인 만큼 저자는 그림과 짤막한 글로 수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었다. 화두는 인간을 향한 것들이 많았지만 우화 속에는 인간보다 자연이 더 많이 등장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물벌레와 물풀 등을 등장시켰듯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는 미미한 존재들이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탐욕에 물들고,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며, 세상 때에 찌들대로 찌든 모습으로 등장하기 일쑤였다. 양심을 져버리는 정치인, 성공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외국 문물에 물든 젊은이,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들로 비춰졌다. 그런 인간세계를 물벌레를 비롯한 다른 물고기들이 자기네 세상에서 표현해 주었기에 너무나 잘 와 닿았다. 그 모습에 맘껏 웃고 씁쓸해 했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갔다.

 

  물벼룩이 전반적으로 고루 등장하기에 물벼룩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만 주인공이 누구이며 이러이러한 분위기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인생, 사랑, 미물, 환경, 종교, 도(道) 등 실로 방대하고 다양한 우화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때론 정신없게 보이기도 한다. 등장 소재들이 뒤죽박죽 거릴 때도 있고, 웃겼다가 깨달음을 줬다가 분노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쏙 빼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고, 짤막한 글 속에 담긴 진리를 만날 때면 오랫동안 글을 응시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의 마음을 울리는 글들을 만날 때면 몇 번씩 읽어보며 이면을 보려 애썼고, 현실의 나를 마주 보는 글을 만날 때면 괜히 한숨이 지어지며 서글퍼지기도 했다. 진정한 사랑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대는 진실로 거룩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글 앞에서 어찌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움을 뱉어내는 달팽이를 보면 인생의 고독을 깨닫게 되고, 세상과 조화가 아름다움이라고 설파하는 물벼룩을 보며 현재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채 살아가는 방법 하나로 일체의 갈등과 욕망에서 사라진 생명체'인 물풀 앞에서 내 존재가 미미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고기들 간에 먹고 뜯기는 살벌함 앞에서 움츠러들기도 하고, 개량변이 되어 등장하는 도깨비를 실감나게 그려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라보기도 했다. 다양한 분위기 속에 빠져 여기저리를 헤매다 보면 어느새 책은 끝나가고 있었고, 열등감에 시달리고 절망감에 좌절하던 물벌레도 하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생의 축약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외뿔>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언저리가 모두 똑같을 수 없고, 순간순간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부분이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았지만 여전히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미물들을 보면서 세상은 아직 인간의 흔적으로 때 묻지 않은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치에서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다 그보다 못한 미물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물처럼 느껴졌다고 자괴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미물의 위치에서도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귀한 진실을 말이다.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채워 거룩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와 고개를 돌려 다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진실 된 마음을 갖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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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7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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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시 꺼낸 <아리랑>의 읽기가 더뎌져 흐름이 끊길 때면 이번만은 절대 방치하지 말자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4년 만의 해후이기도 하고, 다시 손을 놔버리면 해후를 안한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리랑>을 한권씩 읽을 때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권 당 묵직한 페이지수도 한 몫 하겠지만, 분량으로 따질 수 없는 한(恨)이 서려있기에 한 호흡에 읽는다는 것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자꾸 도망치고 싶어 책을 덮어버리고픈 마음을 끌어당겨 7권을 읽었다. 마음을 새롭게 먹어서인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려있는 한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버렸다.

 

  6권에서 3·1 만세운동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7권에서는 일본인들의 악랄함이 더 심해졌다. 그에 상응하듯 독립군들의 활동도 거세졌지만, 보복은 힘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두만강 건너에서 독립군들에 의해 일본군이 당했다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죽어간 조선인들이 너무 많았고 여러 조직으로 나뉜 독립군들 사이에서도 파장이 일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새로운 사상과 맞물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내외향적인 사상이 구식으로 점철된 이들 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속박을 피해 만주와 이남으로 길을 떠났고, 그곳이라고 해서 조선인들을 편하게 만들어 줄 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해봤자 입성만 남루해졌고 일본인들의 배만 채워줬기 때문이다.

 

  일본이 발표한 산미증식계획으로 더 많은 쌀을 거둬들이기 위해 간척 사업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농부들이 불리한 조건임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입에 풀칠하기 힘든 형편과 간척사업이 끝난 뒤 소작땅을 분배해 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고, 힘없고 나약한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조선인 감독들과 일본의 음모가 맞물려 살기가 팍팍해질 뿐이었다. 바다를 메워 논을 만들어 놓자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게 되었고, 북향의 땅을 나눠주고 그곳에 판잣집만도 못한 집을 짓게 했으며, 약속과 다른 양의 소작땅을 나눠준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분노해 보았자 그들의 억울함과 나라를 뺏긴 설움을 달래 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빌어먹지 못한 세상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부여잡다 책을 놓고 싶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저자가 흩뿌려놓은 인물들의 삶은 파란만장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세키야에게 쫓겨난 보름이는 수국이를 범한 죄로 한쪽 눈을 잃은 백남일에게 보복을 당했지만, 서무룡의 덫으로 인해 백남일은 더 난처해지고 말았다. 세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보름이에게 장사밑천을 대어주는가 하면 서무룡은 보름이를 그런 식으로 옥죄어 들었다. 한편 양치성의 계획대로 엄마를 잃은 수국이는 그와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차렸는데, 경찰 끄나풀이라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된 수국이는 양치성을 칼로 찌르고 남동생과 송수익 선생, 필녀가 있는 곳으로 간다. 송수익 선생이 중심이 된 조직은 일본군들을 피해 북쪽으로 터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허 스님은 여전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고, 기차에서 만난 장칠문으로 인해 잡힐 뻔 했지만 무사히 빠져 나온다. 옥녀는 어렸을 때 헤어졌던 꿈에 그리던 오빠를 찾아 나서게 되고,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미처 기억하지 못한 자잘한 인물들의 행보까지 저자는 촘촘하게 엮어갔다.

 

  그런 와중에 만주나 연해주, 러시아,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 사이에 은밀하게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고 있었다. 일본군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고, 공산주의를 퍼트리는 조선인들에게 더 핍박이 가해졌지만 인력으로 막을 수 없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조선인들에게는 공산주의사상이 너무도 적합했다. 먼저 지식인들에게 퍼져나갔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서서히 민중에게 퍼져나갔다. 그 시작이 정도규가 결성한 소작회였고, 그 일을 시발점으로 해서 나라도 되찾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많은 사람이 꿈꿔갔다.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공산주의의 이념의 개입은 앞으로 독립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일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세세함에 귀를 기울에 만들었다.

 

  나라 안은 이미 일본인들의 차지라 독립군들이 활동하기 힘들었기에, 더 위쪽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데 두만강 건너에서 2500리 떨어진 하바로프스크까지 건너온 조선인들도 허다했다. 낯선 땅에서의 성과라면 조선 독립군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합심해 일본군을 쫓아낸 것이었다. 협약까지 어겨가며 러시아 땅까지 넘보던 일본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농민들의 반란과 독립군들의 투쟁을 빌미로 더 완악하게 조여들 것을 예감하게 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가 끝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겪어보지도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럴진대, 당시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투정조차 미안해진다.

 

  불편한 역사를 재생하고 있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다고 할 수 없다. 분위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단면이기에 수긍하면서도 자잘한 삶의 단상에 위로를 받곤 했다. '그래도 삶을 이어간다.'는 체념에서 우러나온 모습을 지켜보며 도리어 위로를 받았고, 그 가운데 발생하는 위트와 농거리, 걸쭉한 입담이 여과 없이 드러나 역사소설로 단락 짓게 되는 섣부름을 이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과 일본의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견했다. "조선땅이 빌수록 왜놈덜만 좋아지는 것잉게. 거그서 고상덜 험서 사는 것도 조선땅얼 지키는 것이고 왜놈덜하고 싸우는 것이란 말이시." 자꾸 조선땅을 비워가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독립군들이 했던 대화가 내 마음을 찌른다. 비단 독립군들만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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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서른이 되서도 여전히 성장 소설을 즐겨 읽는다. 성장 소설을 보면서 유년 시절의 나를 떠올리기도 하고, 이럴 때 이런 소설을 만났다면 현재의 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만큼 다양하게 그린 성장 소설들이 많은데, 그 소설들을 보면서 내가 지나온 유년 시절을 추억하면서 대리만족하게 이른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들로 인해 현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혹은 그 이외의 자잘함들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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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각달
로즈메리 웰스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0년 2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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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모래 폭풍이 지날 때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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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래 폭풍이 야속할 정도로 가슴 아프지만 꿋꿋함에 희망적인 소설.
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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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입양해서 키워준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하다.
여름이 준 선물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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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7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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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남자 아이들이 한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겪은 우정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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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집을 지은 악어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47
양태석 지음, 원혜진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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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해 보니 온라인 서점에서 박스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책을 주문한 적이 없는데 웬 박스지?'하고 열어보니,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책이 도착한 것이었다. 막상 도착한 살펴보니 내가 볼 책은 한 권도 없고, 아이들 책만 가득했다. 조카들에게 인심 쓰기 좋겠며 훑어보다 <책으로 집을 지은 악어>에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책'이라는 단어와 책으로 집을 지었다니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나 보다. 짧은 동화책이라서 순식간에 읽고는 조카에게 꼭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장해도 좋을 책이지만 아이들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악어 아저씨는 어떤 사연으로 책으로 집을 짓게 되었을까?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고 있던 악어 아저씨는 친구가 없었다. 말도 더듬고, 사교성도 없어 늘 혼자였다. 그러나 악어 아저씨는 외롭지 않았다. 바로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아저씨의 집에는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책이 쌓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욕을 해도 아저씨는 책이 있어 행복했고, 책이 너무 좋아 책을 모으기 바빴다. 쓰레기통에서 줍기도 하고, 사람들이 두고 간 책을 가져오고 심지어는 전화부 책까지 모았다. 그렇게 책을 모으니 집은 점점 책으로 넘쳐났고,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인 줄 알고 악어 아저씨네 집에 책을 맘껏 버렸다.

 

  사람들이 책을 버려주니 악어 아저씨는 신이 났다. 책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책이 자연적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악어 아저씨를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원혜진님의 그림이었는데, 사람들이 던지는 책 제목들이 센스 그 자체였다. '던지는 기술', '다 가져' 등 사람들이 버리는 책 제목만 보아도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버리는 책으로 더 지저분해진 악어 아저씨네 집을 사람들은 참다못해 시청에 신고를 하게 된다. 철거해 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조사를 나온 시청 직원은 그곳이 무허가인 것을 알고 판잣집을 무너뜨리고 악어 아저씨를 쫓아낸 것도 모자라 높은 울타리를 치고 가버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울타리 너머로 계속해서 책을 던지기 시작했고, 쌓여 가는 책들을 본 악어 아저씨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책들로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열심히 책을 쌓아 2층 집을 만들고, 각각의 방을 만들어 기분에 따라 책을 구별하고는 스스로 만족해 재미나게 책을 읽었다. 악어 아저씨가 쫓겨났다는 것을 알고 있던 몇몇 아이들은 호기심에 울타리에 구멍을 뚫고 구경하다 깜짝 놀라고 만다. 책으로 만들어진 집을 보고 감탄하고, 소문은 퍼져 어른들까지도 구경을 오게 되었다. 어른들은 멋진 집을 보고 시청에 울타리를 철거해 달라는 항의를 하게 되고, 울타리를 쳤던 직원도 집을 보고는 놀라게 된다. 책으로 지은 집은 금세 유명해져 방송도 타게 되고,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책을 빌려가게 되었다.

 

  악어 아저씨네 집을 방문한 시장님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악어 도서관'이라 이름 짓고 악어 아저씨를 도서관장으로 임명한다. 아저씨는 도서관이 문을 열던 날 훌륭하게 연설을 했고, 더 이상 말을 더듬지도 않았으며 책을 좋아하는 수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책들로 집을 만들고, 책을 열심히 읽은 덕분에 유명해졌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자칫 쌓여 있는 책들이 쓰레기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에게 사랑을 쏟은 악어 아저씨는 책으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악어 아저씨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이 가면서도, 다른 사람과 책 읽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악어 아저씨가 부러웠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악어 아저씨였지만, 결국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런 악어 아저씨를 보면서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용기를 얻고, 꾸준한 열정을 이어 간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꼭 성공에만 결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마음을 나눠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보람된 삶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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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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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를 둘러쓰고,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꿰어 신고 집을 나섰다. 잔잔하면서도 밝은 분위기의 피아노 음악이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고, 오랜만에 산책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 들떴다. 바람이 좀 차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내가 집 근처일지언정 산책을 나가게 된 것은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때문이었다. 책 가운데서도 '가까운 교외를 도보로 걸으며 청량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나는 현재를 살아가노라." 라고 읊조릴 수 있는 지혜는 어떨까?' 란 구절을 읽고 나서였다. 안 그래도 몸도 마음도 답답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것이다. 장소는 얕은 바다가 보이는 집 근처로 정하고, 그곳에서 한 시간 가량 앉아서 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가 좀 아파오긴 했어도, 잔디밭에 앉아 햇볕을 쬐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으니 평온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앉아 있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을 꺼내 메모지를 붙여놓은 곳만 훑어보았다. 이미 읽은 뒤라 수십 장의 메모지가 붙어 있어 그곳만 읽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급할 것은 없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산책도 할 겸 책 내용을 정리도 할 겸, 또 내 마음의 어지러움을 털어 버릴 겸 옮긴 걸음이라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나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부분을 펼쳐놓고 여러 번 반복해 읽기도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기도 했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붙들었던 구절은 팡세가 <파스칼>에서 언급 한 "진정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란 부분이었다. 그 구절을 수도 없이 보면서 원하는 것을 비워내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서러워 눈물을 조금 흘리기도 했다.

 

  그 구절을 벗어나지 못해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내게 와 닿는 구절들은 죄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이별의 아픔이 가시질 않아서인지 사랑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통곡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스무 살의 사랑'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었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 서른 살의 나는 얼마나 잘못 된 사랑의 과오를 저질렀는지를 알려 주는 것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나를 아프게 찌르는 구절들을 보며 내 자신과의 대면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큰 맘 먹고 산책을 나온 이유였고, 읽은 책을 들고 나온 이유였으며, 다시 새롭게 나를 다듬어가고 싶은 욕망이었다. 나와 대면해야 하는 순간은 무척 두려웠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더 이상 나와의 대면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권의 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다. 읽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런 스타일의 책들은 비교적 빠르게 읽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중심 메시지만 잊어먹지 않으면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인데, 아무런 기대 없이 펼친 이 책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얻고 문제제기를 할 줄은 몰랐다. 정독하며 읽은 것은 물론이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메모지를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구절들을 보며 나를 대입하며 오랜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읽기는 자꾸 더뎌졌다. 샅샅이 읽었다는 후련함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발견된 나의 고민과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하던 차에 책 구절이 떠올라 산책을 나간 것이다. 저자의 충고대로 따라해 보니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되었고, 아직도 이 책을 들여다보며 실천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음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이 책 내용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발견된 내 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동떨어진 얘기일지라도, 이 기회를 통해 갇혀 있던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면 책 내용을 전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책 속에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내가 느낀 대로 드러내기만 해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 비친 셈이 될 터였다. 그러나 스무 살을 겨냥해 철학과 접목시켜 자신과 만나기를 권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책 제목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쉬웠다. 서른 살의 내가 읽어도 뒤통수를 치는 듯한 격렬함이 많았는데, 스무 살에 국한시켜 그들의 시선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부분 때문이었다. '나를 만나는 젊음의 철학'이나 '나를 만나는 철학'이라고 지었다면, 좀 더 포괄적인 독자들을 끌어 들일 수 있겠다란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저자가 스무 살을 겨냥한 것은 방황하고 불안한 청춘인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의 방황과 서른 살의 방황은 가능성부터 다르기 때문에(서른 살의 방황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스무살 때의 방황에 가능성의 농도가 더 짙다는 것이다.) 저자만의 깨달음으로 충고를 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여러 책들의 문구를 언급하면서도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흡인력 있는 글을 써 내려갔다. 무엇보다 저자의 독서가 밑바탕이 되어 주는 다양한 책들의 삽입이 자연스러운 것이 인상 깊었고, 그에 따르는 현실의 적절함을 드러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드러내면서도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었으며, 인생을 전반적으로 두고 봤을 때 한번쯤 돌아봐야 할 것들에 대한 격려와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스무살 뿐만이 아닌 다양한 연령층을 포섭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고, 수많은 지혜와 경험들이 넘쳐 남을 볼 수 있었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섞었기에 교통정리를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인용과 경험을 통한 문제제기를 해주었지만 그에 따른 이면의 세계를 펼쳐 보여 양면성의 해결방안 안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내 상황에 맞고 옳으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들을 대입하며 읽다가 '이런 것이 문제였구나!'하고 뒷장을 넘기면, 반대의 상황을 말하고 있어 어떤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섣불리 가를 수 없었다. 책 제목에 '철학'이 들어간 만큼, 독자들이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으면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해 소요학파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니, 현재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철학적 사유라고 해서 나와 동떨어진 세계를 놓고 생각에 생각만을 거듭한 것이 아니라, 내게 당면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어김없이 건드려 주었다. 드러남에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닌, 진지하게 나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긴 힘들지만, 이 책을 통해 내 몸 구석구석이 뒤집어지고 엎어져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과정이 된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혼란스럽다.

 

  내게 들어온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싶은 욕망만 앞서 두서없이 풀어놓긴 했으나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응어리는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책 내용을 정리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기에, 얼마 동안은 혼란스러움을 간직한 채 책의 도움을 받아보려 한다. 책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책의 도움은 받되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 지으며, 현실에 적절히 대입해 보는 것이 최선책일 것이다. 더 이상 방에만 갇혀 은둔하지 않을 생각이고, 책 속으로 도피하지 않을 것이다.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오더라도 산책을 자주하며, 날이 더 따뜻해지면 달리기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열려진 바깥세상이 얼마나 넓고 무한한지를 깨달았다. 이제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이다. 이 발걸음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내 자신에게 당당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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