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이별>은 오래 전 지인에게 받은 책이었다. 이 책을 받을 당시만 해도 이별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책장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리고 이 책을 꺼내야 할 일이 닥쳤음에도 마주하기가 겁났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이별을 잘 견디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고,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언가 위로가 필요했다. 그제야 이 책을 꺼내면서 나의 마음이 달래지 길 바랐고, 한 구절 한 구절 소중하게 읽으면서 이별의 아픔을 견디고자 했다. 실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이별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서정주 시인의 <신부>에 나오는 신부처럼, 이별을 맞닥뜨리면 '모든 감정을 조용히 내려놓은 채, 날마다 낡아가는 것. 그것 말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나 역시 이별을 한 후에 내가 낡아가기를 기다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 될 거라 생각했다. 그 과정이 힘겹다는 것은 알았지만 견디는 것 외엔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삶에서 익숙한 감정에 속함에도, 우리 정서에 투영된 이별은 늘 의젓해야 한다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애도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고, ''애도 작업'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뿐 아니라 슬픔과 관련된 감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틀어 이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에겐 이 책을 읽는 것이 애도 작업의 한 과정이었다.

 

  이별을 잘 하지 못하고 묵혀 둘 때, '새롭게 만나는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하며', '애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모든 감정이 일시에 솟구쳐 오르는 것에 대해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별을 외면하고 지나간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래왔고, 또 다시 그 일을 반복하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책과의 만남은 숨통을 조금이나마 트이게 했다. 내가 닥친 이별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면 얼마의 시간동안 절망해야 하며, 내 자신을 방치해야 하는지 두려웠다. 저자가 말한 이별은 여러 가지여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에 초점을 맞춰 읽어나갔다. 저자의 경험과 많은 책들의 인용, 심리학자들의 연구 등 많은 사례로 이별과 애도 작업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저자도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애도 작업에 대해 깨달아가고, 치유해 가는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이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고 나자 나를 엄습하는 슬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가 밀려왔다.

 

  저자는 경험과 많은 사례들로 좋은 이별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한 편, 꼭지의 마무리에는 이별 레시피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그 모든 방법이 나에게 맞는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방법들이었기에 도움이 되는 것들도 많았다.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주는 방법과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 각자의 상황에 맞게 골라서 대입하면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독서와 음악듣기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서 어느 정도 이별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별'이라는 포괄적인 의미 안에서 내게 맞는 상황만 찾으려고 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광범위한 이별에 관한 나열 때문인지 이 책이 온전히 내게 들어왔다고 할 수 없었다. 무언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분명 위로가 되고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큰 울림은 없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실패나 슬픔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경험을 살렸기 때문에 더 와 닿는 것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내면의 어둠을 더 많이 봐버려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독서는 도피하기 위한 방책의 의미가 더 짙은데, 피하고자 하는 마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많은 부분 극복하고, 많은 독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었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아쉬워하는 것일까. 아마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이 온전히 위로되고, 슬픔이 싹 가시길 바라는 넘치는 기대 때문이었나 보다. 고통을 맞이하고 이겨내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고, 저자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이별의 고통을 너무 가볍게 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의 모서리를 보면 메모지가 수십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움이 되겠다 싶은 부분과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체크해 두다 보니, 책을 덮었을 때는 온통 메모지 투성이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이 책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이별과 순리적인 이별에 당면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꺼내서 도움을 받는다면 지금과 다른 울림이 다가 올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별한 후에도 충분한 애도 작업을 통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발견만으로도 내가 겪고 있는 이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제대로 애도하지 않고 억지로 꿰어 맞추듯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 책에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슬픔을 담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애도 작업 중에 있다. 저자가 알려 준 방법들도 시도해 보고,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생각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결코 혼자가 아니며 이런 감정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과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내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마음을 많이 울리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푸념이 뒤섞여도, 이 책을 통해 애도 과정에 대한 개념을 깨닫지 못했다면 나의 일상은 더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애도 작업이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므로 건강한 방법으로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좋은 이별일 것이고, 그 과정 뒤에는 좋은 날들이 올 거라 믿기 때문에 오늘도 억지로라도 용기를 쥐어 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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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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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분을 바꾸고 싶을 때는 마음과 반대인 것들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가령 기분이 우울하다면, 밝은 곳을 산책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런 억지가 통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현재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방법을 통해 나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한껏 만끽한 뒤 빠져나오곤 한다. 요즘 나의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아 퇴근 후에는 오로지 독서에만 집중하고 있다. 현실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독서에 열중한다는 것을 앎에도 쉽게 책을 놓지 못하는 것은 아직 우울한 기분에서 빠져 나올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중에 내게 다가온 책들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테헤란의 지붕>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장소설이라는 말에 혹해서 읽게 된 책인데, 성장 소설 안에 국한되는 그 이상의 것을 만나고 말았다. 성장통의 아픔과 함께 정치적 상황까지 맞물린 암울함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었다. 암울함만 드러냈대도 전혀 탓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을 내세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함은 물론 역사의 현장을 처절할 정도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몸부림을 쳐봐도 그들이 마주한 현실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열일곱 살 소년 파샤는 단짝 친구인 아메드와 지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테헤란에서는 무더위를 피해 지붕에서 자는 것이 흔하다고 한다. 해마다 지붕에서 떨어진 사망자가 급증해도 그들에게 지붕은 또 다른 삶의 공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희로애락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파샤와 아메드가 매일 밤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곳도, 짝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만나는 곳도 지붕이었다. 그만큼 테헤란에서는 지붕이라는 공간이 집이라는 한정된 곳을 벗어난 오픈 된 공간으로써, 모든 것을 바라보며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파샤조차도 지붕에서 보내게 될 수많은 시간들이 그렇게 고통스러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공간의 특이성과 삶의 흐름은 이상하리만치 맞물리고 있었다.

 

  파샤가 당면한 현실을 이해하려면, 소설의 배경이 된 1970년대의 이란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이란은 친미 정권 팔레비 왕조가 비밀경찰 사바크를 앞세워 반정부활동을 철저히 탄압하던 암흑의 시기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인권 탄압이 있었음에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파샤의 동네에서, 테헤란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인 '닥터'라고 불리는 청년의 죽음이었다. 현 정권에 대항하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시바크에게 붙잡혀 주검이 되어 돌아온 사건은 파샤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닥터가 잡혀 가던 날, 지붕위에서 그의 약혼녀 집에 있는 닥터를 바라봄으로써 경찰에게 알려줬다는 죄책감이 파샤를 괴롭혔다. 닥터가 잡혀가기 오래전부터 약혼녀 자리를 짝사랑해 온 파샤는 많은 감정이 내면을 흔들고 있었음에도, 닥터를 존경하고 좋아했기에 자리에게 어떠한 고백도 할 수 없었고 그런 처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닥터가 잡히기 전, 파샤는 아메드와 그의 여자 친구 파히메의 도움으로 자리의 집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치 꿈을 꾸듯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파샤는 닥터가 죽은 뒤 미안함과 죄책감이 날로 커져갈 수밖에 없었고, 늘 꿈에서 닥터를 만나 모든 것을 고백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터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힘겨웠는데, 닥터의 부모님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무엇보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자리가 분신자살 하는 것까지 봐야 했다.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하던 자리가 그런 일을 자행했다는 것은 파샤에게 닥터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책의 시작은 파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어떻게 조각난 기억을 더듬어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의 중간 중간 병원에서의 파샤의 모습을 따로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암울함을 예측할 수 있었는데, 기억의 조각은 자리가 분신자살 하던 날로 맞춰진다. 그러나 기억을 되찾은 파샤에게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를 짝사랑했던 애틋한 마음, 닥터의 죽음, 거기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자리의 죽음까지 열일곱 살 소년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었다. 고통의 드러남은 처절했고, 온전히 독자에게 전해져 함께 울며 가슴 아파 하며 팍팍하고 부당한 현실에 애통해 했다. 그럼에도 자리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고통이었다. 힘겹게 이어 온 실이 툭 끊기듯, 자리의 죽음은 파샤에게 앞으로 남아 있을 삶의 희망을 꺾을 만큼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 파샤에게, 힘겨운 일을 당한 닥터의 부모님이나, 자리를 잃은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동네 이웃이었다. 삶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움츠러들면서도 끈끈해져 갔고, 그 안에서 인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파샤가 닥터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피를 흘렸던 곳에 장미나무를 심어 줄 때도 동네 사람들이 함께 돌봐 주었고, 당면한 현실에 울분을 토할 때마다 자상한 아버지는 파샤에게 에둘러서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또한 파샤에게 아메드가 가장 큰 힘이 될 정도로 둘의 우정은 깊었고,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부러울 만큼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 것이 감사했다.

 

  그런 와중에도 소설과 독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 준 것은 아메드였다. 언제 어디서나 익살로 사람들을 웃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아메드를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좀 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그 나이에 걸맞은 고민을 하면서 즐겁게 보내면 좋으련만, 보통 어른들이 겪기에도 힘에 부치는 일들은 그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그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저자는 너무나 글로 잘 풀어내서 가슴이 절절하면서도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사건과 내면이 촘촘히 엮어가는 과정이 너무도 충실해 대충대충 읽을 수 없었고, 마치 파샤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뛰어난 묘사와 표현력은 내가 당면한 절망감과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파샤가 바라는 그 한 가지는 독자의 내면을 뚫고 올라와 나의 희망이 될 정도였다. 목숨을 내 놓아도 아깝지 않을 자리를 다시 찾아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것. 하지만 현실은 파샤의 꿈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소설이 끝나 버렸다면 절절한 가슴을 부여안은 채 몇날 며칠을 마음 아파했을지 모르겠다. 암울하고 팍팍했던 역사의 한 시기를 읽느라 한껏 늙어버린 기분이 들 정도로 절망감을 맛보았기에, 저자가 파샤에게 준 선물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것은 파샤에게 희망을 넘어 앞으로 펼쳐질 캄캄한 인생에 한 줄기 햇살을 비춰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예기치 못한 반전을 바라보며 그동안 촘촘히 엮어온 흐름에 약간의 구멍이 생겨 버린 것 같다고 못된 마음을 품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며칠 후, 상실감에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잠시 파샤에게 가졌던 냉소가 얼마나 나쁜 마음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인생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지, 내 경험과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저자가 파샤에게 준 선물은 나에게도 큰 희망이 되었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이 같이 싹트고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셈이다. 이런 많은 깨달음에도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고 싶다. 뜨거웠던 청춘을 상징하는 사랑. 그 사랑이 온전히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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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꼬마 니콜라 세트 - 전3권 앙코르 꼬마 니콜라
르네 고시니 지음, 장 자크 상뻬 그림, 이세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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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꼬마 니콜라 시리즈를 순서대로 만나지 못해 뒤죽박죽되고 말았지만, <앙코르 꼬마 니콜라>로 인해 대장정이 마무리 되었다. 시리즈의 첫 책인 <꼬마 니콜라>를 해적판으로 먼저 만나, 제대로 된 책으로 다시 구입했다. 그 책만 다시 읽으면 <꼬마 니콜라> 시리즈는 온전히 틀이 갖춰지는 것 같다. 순서대로 읽지 않아서 조금 헛갈리긴 해도, 어느 책에서건 니콜라의 모습은 한결 같아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앙코르 꼬마 니콜라>에서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고, 니콜라는 변함이 없는데도 내게 닿은 마지막 시리즈라서 그런지 괜히 성숙해진 느낌이 들곤 했다.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앙코르 꼬마 니콜라>에서도 니콜라는 익살맞고, 철없고, 장난꾸러기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니콜라의 주변 상황에 익숙해서 인지 학교, 집,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변인물도 이쯤 되면 이름과 특징을 외울 수 있었고, 어느 장소에 가면 무엇이 있고, 어떤 이가 등장하면 대충 이런 일이 일어나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니콜라를 비롯한 책 속의 등장인물들과 배경이 되는 곳이 무척 친숙하게 느껴져, 책을 덮을 때는 아쉬움이 일었다.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니콜라와 주변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음에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나를 엄습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만나온 니콜라와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든지 내키는 대로 책장에서 꺼내 보면 되지만, 어떤 책을 꺼내 보아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흥분과 재미는 다시 살아나지 않을 것 같다. 얼른 읽어 버리고 싶으면서도 아껴 읽고 싶은 모순이 존재하는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한 권씩 정독하며 읽었는데, 니콜라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주변의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푹 빠지게 된다. 니콜라다움에 웃고, 니콜라와 친구들의 어쩔 수 없는 익살에 황당해 하고, 주변 어른들의 진부함에 괜히 통쾌해 지기도 했다. 니콜라와 친구들이 있으면 어디서나 말썽이 일어났고, 그들이 학교를 벗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학교 밖으로 나가 현장학습이라도 할라치면 골치 아파 하는 어른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천진난만한 아이들에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지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걸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해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웃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헛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어른 나름대로 가진 생각의 틀에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어른들이 이상해 보였다. 나도 그런 유년시절을 지나왔고, 어른인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에 두 상황이 모두 수긍이 가면서도 어느 편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니콜라와 친구들의 시선에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유년시절에 터트리지 못한 억압을 대신 터트려 준다는 거창한 의미가 포함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이 어떠한 협박을 해도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떼를 쓰는 모습이 당차보이면서도 어린애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맘껏 뛰어놀고, 자신들이 가진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이웃, 선생님과 또 다른 가족들과 함께 엉켜 지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듯 독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또래집단에서의 자존감도 내세우고, 늘 싸우고 비방하다가도 금세 친해지는 모습도 그들다웠다. 니콜라가 친구들 중에서도 먹보인 알세스트를 가장 좋아한다는 말을 빼뜨리지 않고, 잘난 척 하는 아냥이 밉다고 하면서도 그의 익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조차도 보기 좋았다.

 

  르네 고시니의 스토리 속에 인물들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그런 인물들에 독특한 매력을 집어넣어 가상의 인물로 창조해 낸 상페의 만남은 자꾸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글로만 그들을 상상하려 했다고 생각하면 무척 밋밋했을 이야기가, 상페의 데생으로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타지 않으며, 언제 어느 때 들여다보아도 그대로 간직되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책 속의 어른들도 언제나 주어진 삶에 진부해 하면서도 아이들의 시선으로 비춰지는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되곤 한다. 그들이 변하는 것보다 현재의 자리에서 생활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 더 즐거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니콜라 시리즈에 어떠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어떤 분위기였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줄거리를 읊어댄다고 해서 그들의 모습을 다 드러낼 수도 없거니와 니콜라 시리즈를 읽으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뒤엉켜 두루뭉술한 분위기밖에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일상생활 도중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기도 했고, 이런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도리어 힘이 나곤 한다. 책을 펼쳤을 때 변함없는 그들처럼, 내 마음 속에도 그들의 모습은 책 속에서 만난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해준 니콜라 시리즈가 존재해 준다는 것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이 마음이 오래 간직되어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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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르 브뢰헬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47
로제 마리 하겐 지음, 김영선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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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직 아트 시리즈를 한 권씩 읽다보니 내용이 알차서 전 권을 다 모으고 싶었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 언제 다 모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미술책을 구입하게 되면 꼭 이 시리즈를 중점으로 구입한다. 그래봤자 이제 네 권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그 안에 포진되어 있는 많은 화가들 중에서 선택되는 경우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기보다, 대부분 책을 읽다 언급되면 구입하는 식이다. 피테르 브뢰헬도 마찬가지였다. 브뢰겔로 익숙한 화가인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해보거나 그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다른 책을 읽다가 심심찮게 언급되는 것을 보고 먼저 구입하게 되었다.

 

  베이직 아트 시리즈의 책들은 무척 얇지만 두께에 비해 풍부한 견해와 그림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어 갈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책이다. 똑같은 화가에 대한 책이라도 새로움을 발견하게 해준다고나 할까.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소개된 화가들을 모두 만나보겠노라는 포부를 가진 채, 피테르 브뢰헬을 만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이름만 들어본 화가였기에 그가 어느 나라 화가인지도 몰랐다. 출생연도도 분명하지 않아 1525년에서 1530년 사이로 추정하는 네덜란드 화가였고, 말년에는 종교전쟁을 겪기도 했다. 그 싸움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중 어느 쪽을 지지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자신의 시대를 배경으로 성서의 사건을 그리는 것이 흔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종교그림을 보고 있으면 종교적, 정치적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어 자신의 의중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브뢰헬의 성서 사건을 그린 그림을 살펴보면 사건의 중심 메시지 외에도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주로 배경인물들을 통해 어떠한 사건이 중심이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새로운 통치자를 빗댄 '검은 알바'라는 느낌을 살려 그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성서의 사건이지만 브뢰헬이 살았던 브뤼셀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성서의 인물들은 다른 그림과는 좀 다른 면이 있었다. 보통 종교그림이라고 하면 인물들을 신성화 시키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브뢰헬의 그림에서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도 특별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렸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기에 종교검열에서 분명 걸렸을 거라는 추측까지 하고 있었다. 설명이 깃들지 않으면 이 그림이 종교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평범함 때문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브뢰헬이 어떠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화풍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알 수 있었다.

 

  거기다 16세기의 네덜란드와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나 브뢰헬의 그림이 가치가 있는 것은 네덜란드의 풍습을 그대로 드러난 그림 때문이었다. 특히나 재미있게 들여다 본 그림은 <네덜란드의 속담>이었다.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이어서 처음에는 정신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가가 자주 언급하는 '뒤죽박죽인 세상'에 걸맞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않고 간과하려는 찰나, 그림에 번호를 붙여 속담을 일일이 설명하고 있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그림 안에 100개가 넘는 속담이 들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속담을 표현하고자 섬세하게 그린 브뢰헬의 인내와 표현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림을 보면서 속담을 유추하니 그제야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간단히 그릴 수 없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라는 설명에 부합되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계절을 생생히 재연해 내는 그림도 그렸는데, 풍경 속에 녹아든 평범한 사람들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나 농부의 등장이 두드러졌고, 당시에 농부는 대접받지 못한 존재였기에 그의 그림에 등장한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익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브뢰헬에게 자연의 변화를 이렇게 설득력 있게 표현해 낸 화가가 없다고 말하면서, '세계에 대한 철학적 개념에 영향을 받고 자연사 및 하나의 전체로서의 지구에 대한 당대의 관심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 새로운 세계관이 드러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화라는 느낌 때문에 별 특징을 잡아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브뢰헬이 활동했던 시대를 감안한다면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시대를 표현하는 그림,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으로까지 확대 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브뢰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오래 된 그림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 이외에 독자적인 메시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브뢰헬의 그림과 당시의 배경을 해석해주는 설명을 통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브뢰헬의 생애보다는 그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당시의 생활 풍습이나 중요 사건들을 중점으로 책이 엮어져 있었다. 그림을 통해서 브뢰헬을 내면을 어느 정도 이해해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개인적인 생애가 결여되어 있어 조금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의 화가라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면, 브뢰헬이 활동했던 당시의 생생함과 그림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달랑 그림만 보는 것에 부족함을 느낀다면 이런 책들을 통해서 열심히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드는 경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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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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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집중할 거리가 필요했다. 마음은 자꾸 궁지에 몰리고, 좁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극단적인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움틀 것 같았다. 이미 손에 책을 쥐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 책에 집중할 수 없어 책장에 시선을 돌렸다. 정신을 쏙 빼놓을 책을 골라서 읽을 작정이었다. 그러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발견했다. 이미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독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탄 책이었고,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 책이다 싶었다. 현재의 정신적인 고통에서 나를 잠시라고 구해주길 바라며 책을 펼쳐 들었다.

 

  입소문은 사실이었다. 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갔고,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으며, 졸려서 눈이 감기는데도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순간에는 고스란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책장 정리가 하고 싶어, 어지러운 책장을 골라 장르를 구분하고 책을 재배치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을 마무하는 계기가 되었고, 훨씬 마음이 차분해져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있는 책을 본 순간,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왔다. 파란만장한 이야기였지만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허무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늦게까지 책을 읽은 탓에 뻐근한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내 마음을 휘감는 낯선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재미나게 읽었음에도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었나 하는 진지한 질문을 아침나절부터 하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끈기, 정직함,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열의를 닮아야 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도 어떠한 것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슬럼가의 웨이터인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퀴스쇼에 출현해 모든 문제를 맞혀 10억을 벌게 되었다는 사건이 이 소설의 중점이었다. 하지만 그가 퀴즈쇼에서 문제를 하나씩 맞춰갈 때마다 남다른 감동이 밀려오거나, 그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는 진부함이 묻어 날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퀴즈쇼에 참가한 목적은 마지막에 드러나고, 한 문제씩 정답을 맞춰나갈 때마다 그가 어떻게 그 답을 알 수 있었는지 알려주는 람의 인생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람은 퀴즈쇼의 어두운 배후 때문에 우승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그가 모든 문제를 맞췄다는 것에 사기성을 부여해 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람에게 고문이 행해지고 있을 때, 한 여성 변호사가 그를 구해주고 어떻게 12문제를 다 맞출 수 있었는지 진실을 말해 달라고 한다. 그로 인해 람의 인생이 순차적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퀴즈의 문제에 따라 과거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고, 그냥 모든 답을 다 알고 있었다는 람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퀴즈쇼에서 12문제를 다 맞췄다고 해서 머리가 비상할 것이라는 편견을 벗기는 사건이었고,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일반상식을 뛰어넘는 경험과 지혜를 얻으며, 그것이 판에 박힌 퀴즈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람의 파란만장한 과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도의 배경은 물론 방치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에 놀라게 될 것이다. 인도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꼭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가 인도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교관의 신분으로 자국을 바라본 시선이 더 냉철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의 시선을 통해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는 람은 종교 갈등과 인종차별, 성(性)의 문란함, 자본주의의 이면을 알게 되었고,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중성까지도 모두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도의 실상일지도 모르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세상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삶의 끈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 처절한 희망이라면 희망이었다.

 

  람은 감당하기 힘든 좌절과 고난, 아픔, 상처를 모두 이겨내고 있었다. 유명 배우의 집에서 일하게 된 것, 타지마할에서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다 니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강도를 만나 돈을 뺏기고 그에게 총을 쏜 일 등 20살도 안된 청년이 갖고 있기에 너무나 버거운 삶의 흔적이었다. 고아로 태어나 바텐더의 자격으로 퀴즈쇼에 참가하게 된 과정은 줄거리를 언급하기조차 벅찰 정도다. 18년의 인생이 그렇게 화려할(?) 수 있다는 것에 연민을 느꼈고, 나라면 진작 좌절하고 낙심해 버렸을 거라는 자기비판까지 튀어 나왔다. 진흙 구덩이 같은 삶에서 충실하게 살아온 람이 마냥 대견해 보였다. 그렇기에 퀴즈쇼에서 어떻게 답을 맞혔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퀴즈쇼는 그야말로 쇼에 지나지 않았고, 하나의 과정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람이 풀어내는 문제들과 함께 그의 삶은 낱낱이 드러났지만 람의 체포로 시작된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결론지어질 거라는 기대를 품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았고, 그가 만들어 가는 삶인지 주어진 운명에 충실한 것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또 다른 고난이 그의 앞에 닥칠 것 같았고, 상금의 지급여부도 투명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늘 반전이 있었고, 람의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으며 인연의 지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만난 변호사가 예전에 자신이 도와준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가 퀴즈쇼에 참여하게 된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나의 염려와는 달리 조금은 안정된 삶을 살게 되는 그의 모습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었으며, 행운의 동전을 버림으로써 행운은 내면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삶의 보상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삶의 충실하게 살아온 희망의 증거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알아 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도무지 한 사람이 겪었다고 생각되어 지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이야기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룻밤이 지나자 그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 삶의 주인공이 나임에도 이제껏 도피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내 삶을 방관하며 살아왔고, 타협하기 쉽다는 이유로 무엇 하나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현재 나의 모습이기에 람의 삶을 보면서 느꼈을 당황스러움은 불 보듯 뻔했다. 희망과 용기, 끈기, 삶에 대한 사랑은 배재한 채 오로지 현재에 안주하려는 내 모습과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허무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무언가 석연치 않다고 무시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람의 인생은 한동안 내 삶과 충돌을 일으키며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 괴롭힘 속에서 진정한 나를 뚫고 나오길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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