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주는 그림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함정임.박형섭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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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늘 실감하게 된다. 전시회를 가도 그렇고, 미술에 관련된 책을 구입해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내가 아는 그림일수록 알은체를 하며, 더 이상 알기를 거부하는 것이 사실이다. 똑같은 그림이라도 해석에 따라,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리 보임에도 불구하고 틀 안에 그림을 가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떨 때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화가의 생애에 더 초점을 맞춰 진정성을 부인해 버릴 때도 있다. 화가의 생애가 그림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더라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좀 더 소중히 다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내게 익숙한 그림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게 되는 책들을 만나면 반갑다. 내가 갖지 못한 넓은 시각을 보길 원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움을 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행복을 주는 그림>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심리학 관련 저자 중 한명이 쓴 책이라고 했다. 심리학에 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처음 듣는 저자임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그림'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함께라면 낯선 저자의 글이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편한 마음이 섣불렀는지, 책을 끝까지 읽는 동안 마음이 열리지 않았음을 실감했고 아쉬움으로 책장을 덮어 버렸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열어 주지 못하고, 그림과 함께 어우러지는 글을 감상하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뚜렷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고, 다만 내가 저자의 글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는 노력과 그림에서 심리학을 끌어내려는 진부하면서도 익숙한 소재의 시도가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사실만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편의 그림은 화가와 그림이 낯설더라도, 전혀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평온함과 일상의 눈부심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일상의 눈부심이 조금 이질적인 해도 그림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숙한 화가와 반가운 그림이 많음에 금세 마음이 편안해 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독자에게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독자도 그림을 쓱 둘러보기 위한 목적이 이 책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림을 통해 내면을 꿰뚫어 보고, 표면에 드러난 상처나 자신이 알지 못한 어두운 부분이 그림과 글을 통해서 위로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끝내 내 마음 속으로 어느 것도 파고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면, 6개의 주제로 그림을 묶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전달하고자 했다. 화가의 그림을 특정 부분을 확대시킨 첫 페이지와 그림과 어우러지는 저자의 간략한 느낌이 실려 있다. 그 다음에는 한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이 실려 있고, 명언과 화가 소개, 저자 나름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내면의 감정을 아우르는 글이 실려 있다. 이런 구성으로 25편의 그림을 보게 되는데, 여러 단락씩 나뉘는 구성 때문에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첫 페이지에 실린 그림에 대한 저자의 간략한 느낌 이외에 여러 가지 해석을 덧붙이려는 저자의 노력을 알 수 있었으나, 하나 되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묵상하듯 글을 읽고, 그림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책을 읽지 않고 너무나 순식간에 독파하려 했던 나의 시도가 무모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통해서 내면을 보고, 인간이 느끼는 또 다른 감정을 살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못 미쳐서 무엇을 읽고 느낀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수밖에 없으나, '행복'이라는 것을 타인의 눈으로만 보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읽는 이에 따라서, 보는 이의 심리 변화에 따라서 책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림을 통해서, 아니면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이미지를 변화시켜 현존하는 세계에서 다양함을 느낄 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게 된다면, 그것이 이 책의 숨은 뜻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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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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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침대에 갇혀 있는 기분, 그 비참함을 아주 조금 안다. 머리가 마비되면 마음도 마비되고, 일상의 자잘한 행동들이 제약을 받게 된다. 먹는 것도 일상을 파고들었던 자잘한 생각들도 모두 멈춰 버리고, 자신의 괴롭히는 문제가 지배해 버리고 만다. 최근 나를 괴롭힌 어떤 문제 때문에 며칠을 고민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보니,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일상의 마비를 알게 되었고, 그 순간에도 한 여인이 떠올랐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 불리는 덕혜 옹주. 그녀의 일생 중에서도 모두에게 잊힌 채,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경험한 느낌과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글로 읽는 그녀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껴서인지 깊은 고뇌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람이 모든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없더라도, 잊어서는 안 될 사람까지 잊어버릴 때의 그 쓸쓸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인생의 단면이라고 어느 정도 털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너지는 한 나라의 왕이라면 어떠했을까. 모든 치욕과 아픔을 낱낱이 겪고, 지켜봐야 했던 가족이라면 어떠했을까. 한 권의 소설로 인해서 그녀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을지라도, 그 이후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덕혜 옹주의 출현은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언급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그러했다.

 

  <덕혜 옹주>를 읽고 나서 많은 사실에 씁쓸함과 충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그녀에 관한 책이 단 한 권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저자는 이 책의 원고를 완성하고 났을 때, 덕혜 옹주의 일생을 쓴 일본인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거의 책을 다시 쓰다시피 했다고 한다. 덕혜 옹주에 관한 책이 한 권도 없던 때에, 그 일본인은 우리나라의 여러 도서관에 책을 기증했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책이 번역된 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잊고 지낸 우리가 무심해서 부끄러웠다. 일본인이 쓴 덕혜 옹주의 생애, 국내 작가가 쓴 소설 한 권이 전부라고 하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그녀의 존재가 아니라 자국민으로서의 존재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혜 옹주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나니, 나의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는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일본에서 강제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에게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그녀의 일생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추적해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단지 일본의 속국이 되어 버린 조선 땅을 바라보면 한탄하고,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의 놀음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뿐이었다. 고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고종의 죽음을 지켜보고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망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혔다.

 

  황녀로서의 위엄과 영민함, 대담함까지 모두 지녔지만 그 힘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펼칠 수도 없는 것이 그녀의 운명이었다. 미처 뜻을 세우기도 전에 유학을 가장한 볼모로 끌려갔을 때부터 이미 그녀의 희망은 거기서 끝나 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복형제인 영친왕이 일본에 있었으나, 어느 것도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조선 땅에서 살고 싶었고, 지금 겪고 있는 치욕을 되갚아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운명은 짓궂게도 그녀의 의중을 모두 피해갔다. 일본에서의 강제 결혼이 그러했고, 평범하지 않은 자신과 결혼한 남편의 애정이 식어가는 모습, 하나뿐인 딸이 조선인이라는 자체를 거부하며 그녀를 벌레 보듯 하던 일, 그녀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버린 남편, 그리고 모두에게 잊힌 일들이 그랬다.

 

  그렇게 그녀의 삶이 무너지는 사이에도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마웠다. 덕혜 옹주를 따라 온 유모나 덕혜 옹주와 혼인을 맺을 뻔 했던 박무영,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구국청년단들이 있었다. 모두가 덕혜 옹주를 잊어가고, 조선의 흔적을 지워 갈 때까지 그들은 타국에서 조선을 기억하고, 운명의 장난에 꺾인 사람들을 구하고자 했다. 덕혜 옹주보다 영친왕의 구출에 초점이 더 맞춰진 상황에서도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때까지 헌신을 다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실화가 바탕이 된 소설이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없지만 기본적인 밑바탕은 사실일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덕혜 옹주의 존재와 함께 조선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울림이 들리는 듯 했다.

 

  조금 두툼한 책이어서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호흡에 소설을 읽어 버린 것과 읽고 나서 다스려지지 않는 감정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덕혜 옹주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소설의 구성이 넓게 펼쳐지지 못하고 촘촘히 짜인 느낌은 덜했다. 덕혜 옹주의 내면과 그 주변의 상황들이 좀 더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쓰인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덕혜 옹주의 존재감이고, 그녀의 존재가 소설로 인해 되살아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게 된다면 이 소설은 출간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덕혜 옹주의 생애를 그린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동안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그녀가 조선의 마지막 황녀여서가 아니라, 조선의 국민으로 조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엿보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그녀의 재발견이 이루어져 그녀 이외에 묻혀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든다. 타국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우리의 국민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하겠는가. 씁쓸함만이 공허한 가슴을 휩쓸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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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 - 미술문고 208
장소현 / 열화당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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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이 도착했다. 저자의 이름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의 작품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했던 내가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뭉크 때문이었다. 불현듯 책장을 뒤적거리다 꺼내들었는데, 2년 전 한 온라인 서점에서 창고 대방출 할 때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한 책이었다. 먼지를 탈탈 털고 읽고 보니,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뿌듯함보다 내용의 충실함에 만족하게 된 책이었다. 같은 시리즈의 <툴루즈-로트렉>을 읽고 나서, 저자와 시리즈의 구성에 반했는데 더 많은 시리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뭉크에 관해서 별반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화가여서 그런지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유명한 몇몇 작품만 보고 암울할거라는 생각으로 더 알기를 거부했던 화가에 속했다. 겉표지의 <절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나 또한 이 그림의 분위기만 보고 '암울함'으로 그를 덧입혔다. 화풍을 보고 뭉크의 작품을 추측할 뿐, 더 이상 그의 작품도 그의 삶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책으로 뭉크를 알기를 원했고, 그의 그림에 녹아든 삶의 이면을 알고 싶었다. 책이 작아 많은 내용이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펼친 책이었는데 기대이상의 결과를 만났다.

 

  뭉크의 대표작을 살펴보더라도, 어둡고 음산하고 죽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뭉크의 그림속의 색감이 무조건 어둡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첫인상은 밝거나 쾌활한 이미지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어두운 감정이 가득 들어찬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저자는 '뭉크의 예술에 있어서 색채가 갖는 의미는 '색채의 서정시인' 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면세계의 핵심은 극명하게 표현하는 데에서는 색채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색채가 있는 그대로의 현상세계이기 때문에 사물을 흑백으로 환원시키면 단숨에 사물의 의미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예로 뭉크의 판화를 들었는데, 지금껏 색채로 인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생각했던 뭉크의 그림들이 '사물의 의미에 도달하는 경험'을 나 또한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에 죽음과 슬픔, 고통이 들어찬 작품들이 많은 것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한 그에게는 죽음이 주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삶에서나 예술 세계에서나 죽음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죽음을 통해 생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뭉크의 삶의 방식이요 예술의 원천이었다.'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죽음이 주는 이미지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나, 뭉크 안에 내재된 죽음의 무게와 의미를 이해하고 나니 그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 안에 잠식해 있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것, 그것으로 인해 인생을 차지하고 있는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뭉크가 가진 사명이었다.

 

  지금은 뭉크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뭉크가 활동할 당시만 해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전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을 알렸으나, 그에 따른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그의 작품에 찬사를 던지는 사람은 적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의 작품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베를린을(베를린에서 보낸 기간 동안 그의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다.) 비롯해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 전시회를 갖으면서 그는 더 유명해졌으나, 유명세는 꼭 긍정적인 결과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낯 뜨거운 비판이 늘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지만, 뭉크는 꿋꿋하게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는지 내면과 함께 어우러지는 그림을 대조해서 볼 수 있어, 그를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느낌이다.

 

  <불안의 개념>을 구입하게 된 것은 뭉크가 키에르케고르의 작품 가운데서 여러 번 읽은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다고 해서였다. 그의 삶을 돌아볼 때, 죽음이 늘 그의 내면에 잠식해 있듯 불안도 어둠 속에서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키에르케고르의 저서를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영감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내면에 동참하고자 구입하긴 했으나,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뭉크를 알고, 그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작품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본 시간은 무척 소중했다.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새롭게 알았던 사실들이 산산이 흩어지더라도, 뭉크라는 화가는 더 이상 음산하며 암울한 화가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얻은 셈이다. 어느 작가가 뭉크의 그림을 보며 "평소에 집에 걸어 놓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일상을 떠나 내적으로 의식을 집중시키려 할 때 살며시 꺼내 음미하게 되는 그림" 이라고 했다. 뭉크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서 알고 나니, 종종 그의 작품을 꺼내 음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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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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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소한 작가의 경우라도 나와 조우한 첫 작품이 맘에 들면 전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만난 작가들 중에서 전작이 진행 중인 작가도 있고, 전작 가능성을 엿본 작가도 많다. 그 가운데서도 좀 특별한 작가가 있다면, 아마 루이스 세풀베다가 아닐까 싶다. 남미 문학에 관해서 무지했던 내가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전작을 하기로 마음먹고, 다음 작품으로 <지구끝의 사람들>을 읽었다. 그 책을 통해 <모비딕>까지 연결되는 독서를 경험하고 나서 루이스 세풀베다의 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의 책을 모두 소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흐름이 한 번 끊기자 다시 잡기가 힘들었는데,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그의 책을 꺼내게 되었다. 순식간에 그의 책을 읽어버렸고, 이 만남으로 인해 멈춰졌던 전작에 대한 흐름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모두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읽고 나서야 다른 책들을 꺼내 살펴보게 되었고, 다양한 장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기행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의 경험이 어우러져 있어 생생함과 소설적인 느낌을 모두 내포하고 있었다. 크게 4부로 나뉜 책의 구성은 읽어 나갈수록 점진적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1부는 할아버지의 추억이 녹아있는 유년시절을 시작으로 정치범으로 구속되어, 출감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작가에 대해 익숙한 것도 아니고, 남미의 분위기,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도 내게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1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저자의 문체는 덤덤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상태로 바닥으로 더 내려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2부는 감옥에서 출감하여 자유의 몸이 되어 칠레 주변국을 전전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망명자 신세라서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지 못했다. 국경을 넘을 때도, 한정된 일을 하며 여비를 얻을 때도 고뇌의 빛이 보였고, 다행히도 글에서 묻어나는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절망이 아니었기에 그의 글을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었으며, 그런 생활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무언의 장담이 보였기에 그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듯, 3부에서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이곳저곳 여행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2부와 3부의 돌아다님이 어떻게 보면 별 다를 바 없게 느껴졌더라도, 글에서 주는 색깔이 확연히 달랐으므로 3부에서는 맘 편하게 저자의 기행을 만끽할 수 있었다.

 

  3부에서 저자의 기행을 맘껏 만끽하고 보니, 왜 이 작품을 기행문학이라고 하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1, 2부를 읽으면서도 충분한 기행문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나, 저자에게 처해진 억압된 분위기가 독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저자가 자유의 몸이 된 직후에야 독자인 나도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밑바탕은 여행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저자가 경험한 것들과 수없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기행의 원천이 되었고, 생소한 남미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특징이 두드려졌던 곳이 3부였고,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한 독자가 지켜보기에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넘쳐났다. 저자가 경험한 이야기와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덧대어져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내겐 전혀 생소한 나라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생경함이 묻어나는데, 저자는 무척 담담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런 차분함이 오히려 화려한 묘사보다 몰입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내가 현재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지 잊게 만드는 묘함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3부의 신비로움이 끝나고 '마지막 부 도착노트'에서는 새로운 감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1부에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녹아있었다고 말했는데, 할아버지는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주며 '네 스스로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가지 약속을 던져주는데 첫 번째는 여행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르토스'에 가야한다고 한다. 그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자는 할아버지와의 두 번째 약속을 향해 마르토스에 가는데,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동생을 만난다. 그 만남이 얼마나 뜨겁고 감격적인지 담겨 있지 않지만, 만남을 향해가는 전조로 보아 충분히 그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내 책장에 꽂힌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꺼냈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이 책은 위대한 여행의 초대장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저자의 행보를 보아 위대한 여행의 초대장이 되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으므로, 이젠 내가 그 책을 읽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 책으로 나를 초대해 준 것만으로 뜨거운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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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읽은 책

 

 

1.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2. 타샤의 열두 달 - 타샤 튜더

3. 거창한 꿈 - 장 자끄 상뻬

4. 시차의 눈을 달랜다 - 김경주

5. 나하고 얘기 좀 할래? - 울리케 담

6.~10. 꼬마 니콜라 시리즈 1~5 - 르네 고시니/장 자끄 상뻬

11. 노 맨스 랜드 - 에이단 체임버스

12. 공항에서 일주일을 - 알랭 드 보통

13. 뉴욕 스케치 - 장 자끄 상뻬

14. 너는 모른다 - 정이현

15. 갈매기의 꿈 - 리차드 바크

16.~17. 프로즌 파이어 1~2 - 팀 보울러

18.~22. 돌아온 꼬마 니콜라 시리즈 - 르네 고시니/장 자끄 상뻬

23.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 김세진 외

24. 4월의 물고기 - 권지예

 

------------------------------------------------------24권

 

 

2월에 읽은 책

 

 

25. 무도회가 끝난 뒤 - 레프 톨스토이 외

26.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임영태

27. 열린다 성경 생활 풍습 이야기 (상) - 류모세

28. 몽해항로 - 장석주

29.~31. 안나 카레리나 1~3 - 레프 톨스토이

32. 각별한 마음 - 장 자끄 상뻬

33. 덕혜옹주 - 권비영

34. 행복을 주는 그림 - 크리스토프 앙드레

35. 에드바르크 뭉크 - 장소현

36.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 루이스 세풀베다

 

--------------------------------------------------- 12권

 



- <안나 카레니나>를 정말 오래 붙잡고 있느라 2월에는 많은 책을 못 읽었다.

무기력감 때문에 못 읽은 탓도 있었다.

3월에는 편한 독서를 해 보련다.

 



 

 

2010년도에 생긴 책!!(안 읽은 책 목록)

 

 

691.~693. 앙코르 꼬마 니콜라 세트 - 르네 고시니/장 자끄 상뻬 

694. 메두사의 시선 - 김용석

695. 이름 뒤에 숨은 사랑 - 줌파 라히리

696.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697. 축복 - 장영희

698. 생일 - 장영희

699.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 - 가와시마 고타로

700. 안네의 일기 - 안네 프랑크

701. 천사 바빌론에 오다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702. 비밀성서 - 시배스천 배리

703. 야생초 편지 - 황대권

704. 볼랴뇨, 로베르토 볼라뇨 - 호르헤 볼피 외

705.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구드룬 파우제방

706. 다산의 아버님께 - 안소영

707.~711. 꼬마 니콜라 1~5 - 르네 고시니/장 자끄 상뻬

712. 구덩이 -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713. 세상의 혼 - 크리스토퍼 듀드니

714. 소셜노믹스 - 에릭 퀼먼

715.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 김진

716. 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 - 뱅상 드 스와르트

717. 정성 - 김철호

718.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 호시노 미치오

719.~720. 빌레트 1~2 - 샬럿 브론테

721.~722. 불린가의 유산 1~2 - 필리파 그레고리

723. 책탐 - 김경집

724. 다산어록청상 - 정민

725. 심플 스토리 - 잉고 슐체

726. 붉은 조각달 - 로즈메리 웰스

727. 에디슨도 반해버린 엉뚱한 발명 연구소 - 김현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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