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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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 읽기와 동시에 내용이 사라져 버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맴도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4월의 물고기>는 후자에 속했고, 불편한 생각들이 함께 따라왔다. 한 편의 소설을 읽었지만, 그 소설을 어떻게 희석시켜 내 안으로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했다. 이래서 현대소설을 읽기 싫은 거라고 억지를 부려보아도, 소설의 내용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깊은 새벽까지 한 호흡에 소설을 읽어버린 탓일까? 책 전체의 느낌이 변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는데, 초반에는 여자라면 한 번쯤 기다리게 되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 것 같아 도리어 내가 흥분을 했다. 그러다 서서히 의문을 갖게 하는 중간부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닌 스릴러가 가미되어 흘러가는 것 같았고, 통속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빤하게 흘러가는 결말 앞에 툭 끊어져 버린 기대감은 이내 씁쓸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그 내용이 멋대로 뒤섞여 기시감이 느껴지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4월의 물고기>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뒤덮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 때문인지 <물고기자리>란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다중인격을 지닌 타 소설의 인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온통 상처로 뒤덮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의 아픈 과거만이 나를 뒤덮을 뿐이었다. 남겨진 이에게 한 줄기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긍정적인 시선도 던질 수 없을 만큼, 사랑과 상처가 뒤엉킨 타인의 삶이었다.

 

  요가 강사이자 틈틈이 소설을 쓰는 서인과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선우의 등장은, 언젠가 만나 남들과 다른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예견하게 했다. 한번 쯤 꿈꾸게 되는 첫 눈에 반짝이는 사랑, 육체를 비롯해 영혼까지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을 그 두 사람이 할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의 내면에 떠도는 공허는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고, 비워둔 내면을 채우듯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런 속도감이 어지러운 듯, 서인은 선우를 생각할 때마다 그에 대해서 정작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되뇌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게 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면서도, 말을 통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진실이 없다는 모순 앞에 당면하게 되는 것이 연애할 때의 감정이다.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서인의 것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테지만, 선우에 관한 모순은 서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선우에게 깃든 알 수 없는 감정과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서인은 그가 자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선우와 서인을 조여오고 있었고, 선우는 속 시원히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명 둘은 깊이 사랑하고 있음에도,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지는 선우 앞에 서인은 속수무책이었다. 선우의 제자가 실종되면서 경찰이 찾아오고, 형사와 친구 혜경을 통해 알게 되는 선우의 과거는 의뭉스러운 것 투성이었다. 상처가 있다면 그것을 털어놓고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서인이 선우에게 바라던 것도 그것이었을 테고, 서인 자신 또한 선우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

 

  자라온 배경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 둘을 통해 철저히 느끼게 되었다. 서인과 선우에게 남겨진 유년시절의 기억은 현재와 이어져 철저히 고립시키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당한 성폭행, 낙태, 유부남과의 사랑 끝에 남겨진 아이 다빈, 10살 때 사라져 버린 엄마가 서인에게 남겨진 상처였다. 그리고 그것을 선우가 품어주길 바랐다. 반면 선우가 가진 상처도 서인 못지않았다. 고아로 태어나 동생과 함께 프랑스로 입양되었지만, 이내 파양(罷養)되어 한국으로 돌아왔고 여동생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평탄치 않았음을 예감했지만, 선우가 살인을 하게 되는 피해의식과 내면의 악한 힘이 그때 형성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씁쓸함만이 몰려왔다. 여동생의 죽음의 원인과 시체로 발견된 제자, 또 다른 의문의 사건들에 대한 실마리가 서서히 풀릴 때쯤, 서인의 기억을 맴도는 과거의 일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서인은 선우의 내면에 알 수 없는 악의 힘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당한 몹쓸 짓이 선우와 관계있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서서히 밝혀질 때쯤엔 통속적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나의 내면을 지배한터라, 운명의 장난이라도 이렇게 짓궂을 수 없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당사자인 서인은 많이 혼란스러웠겠지만, 자신을 괴롭혀온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선우를 통해 듣게 되는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 와의 묘한 인연에 더 마음이 쏠린다. 선우의 너덜너덜해진 내면의 싸움으로 인해 삶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과 함께 자신의 몸속에 자라나는 선우의 씨앗, 드러난 궁금증에 관한 모든 진실만이 서인에게 남겨진 것들이었다. 선우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던 나의 강퍅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을 다 짊어지기엔 서인의 삶이 너무 처절하다고, 운명의 장난이 너무 심하다는 타박조차도 할 수 없었다.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엔 생생한 묘사가 현실감 있게 만들었고, 반대로 그런 현실감은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이상(理想)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연재 하면서 각기 다른 장소에서 쓰게 되었노라고 고백했다. 혹시 내가 띄엄띄엄 이 소설을 읽었다면, 한 호흡에 읽으면서 갖게 된 일련의 흐름을 좀 다른 시선에서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저자 특유의 흡인력은 밤이 깊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끌어당겨 도무지 중간에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그런 읽기가 일련의 흐름을 느끼게 해, 내게 독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한 편의 꿈처럼 다가온 이야기는 여전히 내 안을 맴돌고 있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 끼어 버둥대면서도 태연히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소설. 소설뒤에 내게 남겨진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하성란 소설가가 말했듯이 '시작과는 너무도 다른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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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즌 파이어 2 - 눈과 불의 소년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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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메산골에서 자란 탓에 어릴 때 눈을 참 많이 보고 자랐다. 폭설이 내리면 고립이 되고 마는 동네라, 초등학교 때는 마냥 좋았었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인 곳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하루 종일 뛰어 다녔다. 그러다 눈이 녹으면 그렇게 서운했고, 눈 속에 파묻혀있던 실체가 드러나면서 소리도 다시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눈으로 덮여있을 땐, 오로지 고요만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사라지면 온갖 잡다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기억 가운데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 추억 하나가 있는데, 눈으로 덮인 앞산에서 대금 비슷한 소리가 들렸던 경험이었다. 이른 아침이었고, 눈이 쌓여 좋다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그 소리가 들렸다. 세상은 온통 고요했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것이 과연 진짜였는지 착각이었는지, 종종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억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열다섯 살 소녀 더스티가 경험한 것처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눈 덮인 세상에서 고요를 느끼고 악기 소리로 인해 조금은 몽환적으로 기억되고 있는 나에 비해, 더스티는 끔찍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어떤 소년으로부터 받게 된 전화 한통으로 더스티의 삶은 모조리 흔들려 버리고 만다. 번호를 조합해서 전화를 걸었다는 소년은 자신의 정체를 모호하게 밝힌 채, 더스티의 마음 가운데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는 조쉬 오빠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을 조쉬로 부르고 싶으면 부르라는 말부터, 조쉬 오빠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되뇐다. 더스티는 정체모를 이 소년이(느낌으로 소년으로 짐작하고) 오빠에 대해서 알고 있다 생각하고, 독촉하지만 죽고 싶다는 말만 들려올 뿐이었다. 소년을 찾아 눈으로 뒤덮인 숲을 헤매다 더스티는 흰색 밴을 가진 사람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당한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만끽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기억이 아닐 수 없었다.

 

  더스티에게 일어난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과 자신을 위협했던 괴한, 오빠의 가출, 그로 인해 엄마는 집을 나갔고,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 아빠까지 더스티가 감당하기에 벅찬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아빠를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운데, 소년의 전화는 예고 없이 걸려왔고, 여전히 답답한 말들만 들려올 뿐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조쉬 오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의 번호와 자신의 마음을 읽는 말들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 묻고 또 물었지만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둘의 대화는 현실의 대화가 아니라 꿈속을 헤매듯, 정상적인 소통이 되지 않고 있었다. 더스티의 진전되지 않는 일상과 내면의 심경, 소년의 두문불출이 1권의 전반적인 내용을 뒤덮고 있어, 조금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다. 거기다 오빠인 조쉬가 왜 가출을 했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오로지 그 소년에게서 조쉬 오빠의 흔적을 강하게 느낄 뿐이었다.

 

  더스티에게 처해진 현실과 피폐해진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심히 불편한 일이었다. 가족이 힘이 되어줘야 하는 상황에서 더스티는 기댈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와 오빠의 부재가 무엇보다 힘들었고, 아빠가 큰 힘이 되어 주었지만 자신의 고민을 모두 털어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툭하면 다퉜고, 점점 조쉬 오빠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오빠가 더 그리울 뿐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다가온 소년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임으로 더스티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소년이 더스티에게 전화한 흔적이 발견됨으로써, 더스티가 소년을 숨겨주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그 소년의 불편한 행적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었다. 더스티네 학교에 전학 온 안젤리카에게 들은 내용으로 신비로운 소년은 온통 투명에 가까운 하얀 형상을 하고 있었고(더스티 자신도 목격한 것과 같았다),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그 소문으로 인해 소년을 쫓는 무리, 더스티와 소년을 함께 묶어 위험에 빠뜨리려는 무리들이 점점 더스티를 향해 올 뿐이었다.

 

  더스티는 그 신비스런 소년에게 오로지 오빠의 소식을 알고 싶었다. 어떠한 형상을 하고 있든, 소년의 정체가 무엇이든 오빠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이 위기에 처해질수록 더스티도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졌고, 소년은 더스티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온통 하얀 모습을 간직하고, 불꽃을 만들며, 더스티의 내면을 알고 있고, 많은 위기에서 구해주었던 소년. 자신을 힘들게도 했지만 가장 큰 위로를 던져주고 고독을 알아주었던 소년. 결국 경찰과 안젤리카의 의붓아버지로부터 오해를 받고 쫓아온 무리를 뒤로 한 채 호수로 차를 몰고 뛰어들고 만다. 그리고 호수 안에서 소년의 흔적은 어느 것 하나 남아 있지 않았고, 밴 근처에서 조쉬의 사체가 발견이 된다.

 

  더스티는 소년이 성폭행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과 조쉬 오빠가 왜 자살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소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더스티의 내면을 헤집고 다니며, 자신을 이해해주고, 마음 아프게 하고, 위기에 처하게도 하고 구해주기도 했던 그 소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소년인지 소녀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가운데, 더스티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면을 갖추고 있으면서 신비로운 모습을 내내 보여주었던 소년. 무엇보다 조쉬 오빠의 흔적을 찾게 해주었기에 더스티는 그 소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소년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오긴 했으나, 엄마와 아빠를 되찾았고, 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오빠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조쉬 오빠가 한 행동이 더스티에게는 큰 짐으로 남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오빠의 부재의 이유와 함께 이미 과정으로 충분히 보아왔다.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짧게 밝혀진 조쉬 오빠의 죽음에 결정적인 원인이 나왔듯이, 더스티는 그것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었다. 오빠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 온 몸을 휘감아 돌 때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은 더스티에게 오빠를 잃은 상실감을 치유해 주었다. 온전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보다, 힘든 과정을 통해 더스티 스스로가 상처 안에서 빠져 나오며 그 고통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었다. 뿐만 아니라 상처를 안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도 나타나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런 정황을 비추어 볼 때, 소년은 자신 안에 상처로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독자들은 그 소년이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스티를 통해 많이 배웠을 거라 생각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경험이 눈 덮인 배경과 함께 한 소년이 우리에게로 찾아왔다. 책 내용이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현상 하나하나에 사실적인 면을 되짚기보다, 과정을 되새기며 더스티에게 자신을 대입시킬 때 더스티의 내면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는 정작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그 주체는 자신이라는 것을 더스티를 통해 알아가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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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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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내린 비 탓인지 안개가 온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좁아 출근시간 내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엇엔가 둘러싸여 있는 기분은 하루 종일 나를 지배했고, 여전히 넓어지지 않은 가시거리 때문에 마음까지 답답해졌다. 이런 날이면 으레 뜨뜻한 방바닥에 누워 재미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사무실에서 종일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퇴근 후 안개를 뚫고 종종걸음 치며 집으로 돌아가 나의 바람대로 뜨뜻한 곳에 누워 한 권의 책을 펼쳤다. 하루 종일 안개에 갇힌 마음을 걷어내고자 펼친 책이었건만, 내가 마주한 안개처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설을 만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너는 모른다>의 절반은 서울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읽었다. 다섯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 했기에 올라가는 길에 모두 읽어 버렸는데, 책을 덮으니 강남터미널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버스를 타고 있는지,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어느 곳에도 동화될 수 없는 상황에 몸서리 처지는 이질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막상 서울에 도착하고 보니, 이 소설 속의 한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 강남터미널에서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구절이 생각이 났다. 유지가 집을 나와 제일 먼저 도착했던 곳. 내가 도착한 곳이 그 터미널이었고, 그곳에서 유지는 지하철을 타고 사라졌다. 잠시 나의 목적지에서 발을 돌려 20분만 걸어간다면, 유지네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집으로 당도할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안개를 보며 이 소설을 떠올렸고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드나들었던 곳을 다녀와서 그런지,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 끈적끈적하게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 든다. 정이현 작가의 작품은 <달콤한 나의 도시>밖에 읽지 않았는데, 도시의 삭막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아 그다지 유쾌한 소설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했는데, 띠지에 적힌 '눈부신 비상'이라는 단어가 책을 읽고 나니 그제야 나를 뚫고 들어왔다. 만약 나의 선입견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 작가는 한 작품으로 평가된 채 나의 주목을 못 끌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등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묻혀버린 작가와 작품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11살 소녀 유지가 사라져 버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닿았을 절망감이 내게는 그런 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의자를 들썩이고 싶은 간질거림, 책의 뒷부분을 열어 결말을 읽고 싶은 조바심이 나를 지배해도 꿋꿋이 책을 읽어 나갔다. 글자 하나가 나의 몸을 훑고 지나가도록 훈련을 시키듯, 꼼짝없이 소설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속독이 붙지 않아 페이지를 술렁술렁 넘기지 못해 정독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상황을 내가 처한 상황이라고 착각하며 읽어 나갔다.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하나로 융화될 수 없는 제각각인 다섯 명의 이야기였다. 가족 중에 가장 어린 유지가 사라지는 사건으로 인해 가족의 고통과 내면은 복식구조로 어지럽게 드러났고, 그런 서술방식 때문에 결말을 쉽게 짐작할 수 없어 지난했다. 한없는 답답함에 종종 숨을 쉬어주지 않으면 내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드러나는 가족의 내면은 낱낱 했으면서도, 속 시원히 보여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를 찾는 것이 가족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사안이긴 했지만, 각각 살아가던 한 가족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떠한 몸짓을 해야 하는지 방법이 숨어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장기 밀매 업을 하는 가장 김상호, 화교출신의 부인 진옥영, 전처 아이인 아들 김혜성, 딸 김은성, 그리고 재혼 후 태어난 김유지가 가족의 구성원이었다. 유지가 사라져버리기 전까지, 평범하다면 평범하달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정작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아빠와 첫 부인의 아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나머지 구성원들도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평행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삶이었다. 은성만 유난히 되바라지고 삐뚤어져가는 모습을 드러냈을 뿐, 모두의 내면에 감추어진 상처나 분노, 고통은 철저히 숨겨져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유지가 사라진 것이 어떻게 다가올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가출인지, 유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가족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은 독자에게도 고통 그 자체였다. 

 

  그동안 무심했던 가족들 모두가 그 아이의 부재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과 상실감이 뒤범벅되어 가는 모습은, 당해본 자만이 알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당면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아이 하나를 찾는데 만 온 힘을 쏟아도 소설의 무게가 가중될 법 한데,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모습은 처절하고 가엾었다. 유지가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던 데는 김상호의 직업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어느 누구도 김상호가 장기 밀매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일단 경찰에 신고하면 그의 사업은 소상이 밝혀지고 만다. 그런 사연 때문에 김상호는 탐정을 고용했고, 사설탐정이 이 가족을 조사해가는 과정 속에 얽혀 들어가는 가족 개개인의 모습은 녹록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심정을 다 드러낸다고 생각했지만, 퍼내고 퍼내도 밑이 보이지 않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말하는 저자의 문체는 낭랑했다. 유추하며 넘어갈 수밖에 없는 뜻 모를 단어의 나열은, 오히려 한 가족이 처한 상황을 빗겨가듯 신선하고 명랑했다. 그 언어 가운데 유지는 사라졌다 나타났고,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구성원들이 모습을 되찾아가고, 조금씩 가족이라는 형태를 만들어갔다. 그 가운데서도 가족과 독자를 괴롭혔던 것은 유지의 생사확인이었다. 사건의 발단을 만들었듯이 유지가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드러나야 그들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지가 사라진 날, 그 아이의 일정이 하나씩 베일을 벗겨 갈 때마다 숨죽였고, 그 끝이 드러났을 때 허망하고, 안타깝고, 부질없음을 느꼈다. 유지가 살아 돌아온 것에 무조건 감사를 던질 수 없었던 것은, 그 아이의 본래의 모습의 잃어버림으로 인해 비로소 가족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 같은 희생이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옥영의 말대로 ''가족'의 문제라는 것을.(271쪽)'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였지만, 어느 누구와도 상관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무게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치밀한 구성과 혼신을 다해 쓴 티가 역력한 이 소설로 인해 저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내의 말 못할 사연이 어느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의 부재가 얼마나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지, 하나로 융화되지 못한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힘든 과정을 겪어왔고 앞으로 얼마나 큰 시련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였다는 것에 안심하게 되었다. 처음 보였던 그들의 모습보다 훨씬 상처 입은 모습일지라도, 그때보다 더 진솔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서로가 마주 내민 손을 다시는 놓지 않길 바라며, 어찌 되었건 그들이 속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이 일부러 연을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는 끈끈함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본능에 충실한 채 서로를 보듬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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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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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뻬를 좋아하기 전에 <뉴욕 스케치>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읽으려고 책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선물하려고 구입해놓곤 잠깐 본다는 것이 끝까지 보고 말았다. 선물하는 사람에겐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때 상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본 책이라서 다시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상뻬의 다른 작품을 통해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 터라 무조건 다 모으고 싶었다. 막상 다시 구입해서 <뉴욕 스케치>를 읽어 보니, 재구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첫 번째 이유는 이미 본 책임에도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은 망각이었다. 짧은 글과 데생으로 구성된 책이다 보니,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전혀 생소하게 다가왔다. 당시에 쓴 내 리뷰를 찾아서 읽어보아도, 기억의 끌어냄을 만나지 못해 그냥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상뻬의 데생 집은 느낌을 남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그의 책을 볼 때마다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데생과 짧은 글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느낌의 데생집도 있지만, 대부분 도시 속의 사람들을 익살과 유머, 풍자로 비유하기 때문에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는 것은 늘 벅차다. 그럼에도 가벼운 필치와 능수능란하게 그려진 데생의 매력 때문에 자꾸 그의 작품을 찾게 되는 것이리라. 비슷한 듯 하지만 늘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상뻬의 작품은 <뉴욕 스케치>에서 좀 색다른 맛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모습과 그곳의 사람들, 사람들 삶 속에 퍼져있는 생각과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던 내게 뉴욕은 생경하게 다가왔다. 내가 곧장 뉴욕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으로 뉴욕을 경험한 느낌을 만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장 폴 마르티노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르네에게 편지를 한 통 남긴다. 그리고 폴은 자신이 겪은 뉴욕의 모습을 르네에게 세세히 알려준다. 그렇기에 프랑스인인 폴의 시선에서 보이는 뉴욕, 르네에게 전해지는 뉴욕, 그 모습을 직접 봐야 하는 독자의 시선은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 얽힘이 초반에는 혼란을 주었지만, 프랑스인이 보는 뉴욕이라는 생각보다 뉴욕 그 자체,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좀 더 친근하게 뉴욕이 다가왔다. 폴은 르네에게 이곳 사람들은 늘 연락을 끊임없이 하고 지낸다는 말을 자주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끝은 '연락을 하고 지낸다.'로 끝날 정도로 뉴욕 사람들은 인연을 이어가는 것에 끈질김을 보이는 것 같을 정도로, 과분한 정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폴은 그런 뉴욕사람들을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면을 드러낸다. 자기네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색다른 사람들로 표현하기보다, 그들 안에 들어가서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폴은 르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식으로 남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네.' 라고 말한다. 내가 미국인을 보았을 때도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상황을 무척 크게 만들어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낯섦이 여기에서도 드러났다. 누군가가 전화만 해도 그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말해주며, 결재를 받으러 갈 때도 연신 응원을 던져주는가 하면, 칭찬을 먼저 해준 다음에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러나 그 안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과장이 들어있거나, 다른 마음을 품고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색한 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껴갔다. 다른 문화권에서 무조건 낯설다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느낀 것을 그대로 드러내며 조금씩 동화되어 가는 것이 느껴져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 이외에도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느끼는 감상들이 데생과 함께 펼쳐졌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상뻬의 데생과는 조금 색다른 터치로 그려진 것도 인상 깊었다. 좀 더 섬세하면서도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살린 데생이어서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글 속에 녹아 있는 뉴욕사람들을 생각하며 살펴보니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장황하게 상황을 알리는 글에서 종종 헤매기도 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정서가 같이 녹아들 때는 적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상뻬의 데생집이 주는 기본적인 편안함에서 뉴욕 체험기를 맛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상뻬가 세계 곳곳을 데생으로 표현하면 어떠한 모습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좀 더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독자에게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다른 작품을 손꼽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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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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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은 나오는 족족 구입하면서도, 읽은 책보다는 읽으려고 대기 중인 책이 더 많다. 책장에 거의 전 작품이 꽂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읽지도 않고 신간을 무조건 모으고 있다. 이번에도 신간이 나왔다는 광고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구입해 놓고, 도대체 언제 읽을 것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며 책장에 쌓아 놓는 찰나, 묘한 끌림으로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저자의 다른 책들에 비해 책이 좀 얇다는 것도 있었고, '공항'이라는 소재로 글을 쓴 것이 독특했다. 거기다 공항 소유주로부터 초대를 받아,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낸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는 사실도 흥미를 자극했다. 공항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다고 할 수 없는 공간을 그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펼친 책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저자는 '2009년 여름, 공항을 소유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아 히드로 공항의 '터미널 5에 작가 한 명을 일주일 동안 초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에 수락을 한다. 그 회사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출발 대합실 구역에서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게 될 것이라는 제안을 들었다. 거기다 어떠한 조건도 없이 '공항의 여러 사업에 관하여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분명하게 확인까지 해 주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자는 일주일동안 특별히 마련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나가고, 특별히 공항의 직원들을 비롯해 공항의 여러 구역을 돌아볼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졌다. 그가 이용할 식당 쿠폰까지도.

 

  공항을 자주 이용하지 않다 보니, 공항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얼핏 생각나는 것은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과 비행기 연착에 대한 우울한 상념들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공항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 저자의 눈으로 비춰진 공항의 모습만을 그려냈다면, 여전히 공항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항이라는 유기적인 공간 안에서 저자가 곳곳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솔직함과 능청스러움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거대한 공항 한가운데를 작가 한 명이 소소한 몸짓을 놀려 둘러보고 그에 대한 느낌을 남긴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전체를 아우르는 성찰이 돋보여 다양한 시각을 맛보았다. 룸서비스 메뉴에서 하이쿠를 빗댄 시구를 찾아내는 익살, 공항 CEO를 만나고 나서 출판계와 비교하며 '둘 다 순이익이 아니라 영혼을 흔드는 능력으로 인류의 눈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활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현실 인정이 그랬다. 작가로서의 위트와 이면을 볼 줄 아는 시선, 한정된 장소에서 익힌 생각들을 성찰하듯 드러내는 능력이 알랭 드 보통에게는 내제해 있었다.

 

  네 가지의 주제로 분류해 놓았지만, 그 안에 보통이 드러내는 생각은 주제에 내포된 사람들, 건물, 이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접근>에서는 저자가 공항에서 머무는 것에 대한 초대와 생각이 담겨 있었다면, 그 이외의 주제에 대한 글에서는 위에서 나열한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공항 자체가 주는 단정적인 느낌을 나열할거라 단정 지었던 나의 선입견을 깨뜨리듯, 있는 그대로를 말하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공항의 곳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공항의 숨겨진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공항에서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소소한 공간과 사물에 드러내는 생각들로,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공항에서 마련해 준 사람들이 자신을 모두 볼 수 있는 책상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 뒤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가 따르고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단조로운 공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사진과 글이 일치되는 느낌은 쉽게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을 낸다거나 과장하는 사진, 진부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사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과 무척 잘 어울렸고, 사실적이면서도 공항의 모습을 돋보이는 사진이 많아 구석구석을 살펴본 것 같았다. 오로지 글로만 저자가 머물렀던 곳,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 지켜본 광경들이 담겨있는 공항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글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 사진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잘 조화시킨 책이 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내가 속해있는 공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일주일을 머무르면, 어떤 느낌일까란 생각을 끊임없이 들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공항의 첫 상주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저자처럼 소소한 눈길로, 날카로운 필치로 글을 써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와 평소에 느꼈던 것들을 소상하게 밝히지 못했을 터인데, 저자는 그 기회를 맘껏 누렸고 한껏 써내려갔다. 또한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저자는 공항을 통해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끌어내며 사고를 덧붙였다. 그랬기에 중심무대가 공항이 되기는 했지만, 오로지 공항에서 보이는 모습만 펼쳐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의 삶에 뻗어있는 유기적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의 일주일간의 기록이 삶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 보여 줄 것이므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생각하고 저자가 머물렀던 공항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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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낸 까닭은?
    from 미도리의 온라인 브랜딩 2010-01-23 00:24 
    누군가 일주일간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머무르면서 한 권의 책을 써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공간을 선택할 것 같은가?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별과 만남의 공간,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공항'을 선택했다. 그가 집필한 장소인 히드로 공한 5번 터미널 알랭 드 보통이라는 걸출한 작가와 그의 후원자이기도 한 영국의 히드로 공항의 소유주인 BAA사의 최고경영자의 부탁으로 아무런 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일주일만 공항의 터미널 5에서 머물면서 책을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