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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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어깨가 움츠러들면서, 동시에 마음도 더 휑해진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늘 그렇듯,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인가 보다. 거리를 걸으면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온통 쓸쓸함뿐이다. 꿈속에서조차 쓸쓸함을 이기지 못한 나를 보면서 나는 현재 어디로 향하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가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아마도 한 여인이 10살 때 사랑했다던 사람을 29살이 되도록(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내 나이다.)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신세한탄이 더 늘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오마메란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여인은, 상대방(덴고)이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에 개의치 않고, 언젠간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하는 것인지, 나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에 한탄하는 것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아오마메 덕분에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여지를 마련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아오마메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5년 만에 내 놓은 소설의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의 작품을 읽는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라 그의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나름대로의 평가가 있을 법도 하지만, 내가 읽은 작품은 7년 전에 만난 <상실의 시대>가 전부다. 무척 흡인력 있었으나 일본문학이 지금처럼 국내에 번성하지 않은 때라 이질적인 낯섦이 지배적이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마주하고도 편견 없이 읽어 낼 자신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그대로 드러내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기억으로 인한 편견은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기 마련이라 깨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 평정을 유지하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나가려고 했고, 막상 <1Q84> 1권을 읽고 나니 긴장의 터널을 차분하게 지나온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5년 만의 신작이라곤 하지만, 내게는 7년 만의 해후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모든 것이 나를 곤두서게 만들었다. 소설의 구성은 물론이고, 묘사와 어휘 하나에도 하루키란 작가의 내면을 느끼려 애를 썼다. 그러나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그의 문체, 소설 속의 인물과 흐름은 자연스레 내게 덧입혀 졌다. 꼼꼼히 읽다 보니, 신선한 어휘에 빙그레 웃음을 짓기도 하고(어떻게 번역체에 이런 어휘를 썼을까 싶을 정도로 상큼했다.), 쉼 없이 빨려 들어가는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었다. 단락을 나눠 처음부터 끝까지 아오마메와 덴고의 시선을 따라가는 구성도 무척 독특했다. 아오마메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단락이 끝나면 아쉬워했고, 덴고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오마메를 잊은 채 그를 따라가기 바빴다. 아오마메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덴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오마메에 관한 아쉬움을 덴고가 채워주는 식이었다.

 

  또한 둘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소설의 중점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언젠가는 만나고 사랑을 할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을 읽어나가도 그들이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져만 갔고, 아오마메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듯 조금씩 현실에서 비켜가고 있었다. 1984년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점차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사회의 흐름을 알게 되고, 자신의 또 다른 일(살인 청부)로 인해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이던 두 사람의 삶은 덴고의 기억의 펼쳐짐으로 인해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한 소녀를 보고 10살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속의 소녀가 아오마메였다는 것을 후에 그녀의 회상으로 알게 된다. 그들이 만나게 될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 만남은 여전히 더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으며(그럴 틈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만나게 될 것인가에 대해 아오마메 못지않은 기대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가능성을 미리 엿보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방향 때문이었다. 입시학원 수학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는 덴고와, 스포츠클럽에서 일하면서 은밀한 살인 청부업자이기도 한 그녀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내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다. 공통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닮은 점이나 그들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는 암시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들의 내면은 낱낱이 공개되어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두 개의 이야기를 읽는 듯 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이여서인지(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그런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조금씩 간격이 좁아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덴고는 자신이 쓴 소설로 신인상 응모를 하다 알게 된 편집자 고마쓰에게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된다. 신인상을 주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강렬한 끌림을 갖는 17세 소녀 후카에리가 쓴 <공기 번데기>란 작품을 고쳐 쓰라는 제안이었다. 덴고는 큰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소설을 고쳐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결국 덴고가 고쳐 쓴 소설은 신인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후카에리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후카에리의 삶과 그의 부모, 부모가 속한 코뮌 형태의 공동생활을 알아갈수록 후에 어떠한 파문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반면 스포츠클럽에서 만난 노부인의 부탁으로 인간쓰레기 같은 남자들을 제거하던 아오마메는 처참한 몰골을 한 10살 소녀를 알게 된다. 노부인은 그 소녀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없애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그가 바로 후카에리의 부모가 중심이 된, 지금은 교단으로 탈바꿈을 '선구'의 리더였다. 그러나 덴고가 알아가는 '선구'와 아오마메가 알아가는 '선구'의 실체는 거의 드러난 것이 없었다(리더가 여전히 후카에리의 아버지인지도 조차). 단지 <공기 번데기>로 인해 그들이 만나게 되고,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짐작만 있을 뿐이다. <공기 번데기>에서 나오는 기이한 현상들이(이를테면 리틀 피플이 공기 번데기를 만들 때 달이 두개 떠오르는 장면. 그게 사실일까 싶지만 소설 속에 리틀 피플이 몸을 키우는 장면이 묘사된다.) 아오마메 눈에 보였다는 것이 바탕이 되어 주었다.

 

  줄거리를 간추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책의 배경이 된 1984년에서 현재와의 간격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얽혀 있었다. 비현실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냄새를 풍기는 종교와 과거의 정치적 혼란, 두 사람의 암울한 어린 시절은 결코 밝은 빛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둠의 나락으로도 데려가지 않으면서도 수긍할 수도 없고, 구경꾼의 위치에서 바라볼 뿐 존재의 이입이 되지 않는 소설이었다. 거기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연결고리로 '나'란 존재는 물론 현실 세계를 하찮게 만들기도 했다. 덴고가 연상 녀와 섹스를 즐기는 것, 아오마메가 종종 섹스 상대를 물색해 쾌락을 즐기는 것과 노골적인 묘사들이 언짢으면서도,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의 견고함에 깊은 푸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2권에서 그들의 행보가 어떻게 펼쳐질지, 또한 내년 여름으로 출간이 예정된 3권에 대한 기다림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걱정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이슈를 낳고, 인기를 끄는 작가와 작품이 아닌, 단 한 사람의 독자인 '나'에게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가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키란 작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이 고대되고, 책 속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거기다 편집자(고마쓰)와 작가 지망생(덴고)을 통해 일러주는 글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과 노하우가 내게 흡수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쏟아내고 쏟아내도, 그가 펼쳐놓은 세계의 발치에도 못 닿는 느낌을 어찌해야 하는지 나는 감당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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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Special edition - 내일의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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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서를 할 때 편독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구미에 안 당기는 장르가 있기 마련이다. 문학에 비중을 두고 다른 장르에 조금씩 접근하는 터라 자기계발서는 내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자기계발 서적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제대로 끄집어 내지 못한 내 탓도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읽은 자기계발 서에서 비슷한 방법 제시와 반복되는 말들은 나의 흥미를 여전히 끌어내지 못했고,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인기를 끌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종종 만나게 되는 책들이 있게 마련인데, <꿈꾸는 다락방 스페셜 에디션>이 그랬다.
 

  책을 펴자마자 꼼짝 않고 읽어 버렸지만, 이 책을 꼼꼼히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다 읽고 난 후에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의 내면을 어지럽혔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느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꿈을 그려보고 그것을 위해 꿈꾸며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자기 최면적인 발상에 대한 의심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란 생각이 나를 더 괴롭혔다. 노트를 꺼내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그것들이 현실화 되려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를 써보아도 뚜렷한 한 가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고민을 하다 무엇에 홀린 듯 공부를 하고, 벌떡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날이 밝은 후 어젯밤에 품었던 마음들을 떠올렸지만 생경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잡으려 했던 것일까. 나의 꿈을 시각화하고(vivid) 생생하게 꿈꾸면(dream), 현실(realization)이 된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였음에도 현재의 내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좌절케 했다. 저자는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늘 시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것만으로 어떠한 변화가 찾아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꿈에 이르는 그 치열한 과정은 개개인이 이겨내야 할 자신과의 싸움이 뒤따른다.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늘 누구나 아는 사실과 실천하기 쉬운 것을 들이대는 자기계발 서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 쉬운 실천을 직접 해 본 적이 얼마나 될까. 나 또한 실천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평소 같았으면 이 책의 메시지를 대수롭게 흘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 책을 만나서인지, 그 메시지는 나의 내면을 계속 맴돌았다.

 

  <꿈꾸는 다락방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VD를 이끌어 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VD를 이끌어 내려는 동기가 가득한 책이었다. 자기계발 서에서 가장 중점 적인 것은 독자들이 동기유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고, 그 다음은 독자들이 행동할 수 있는 실천의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자기 최면에 걸려 착각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면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종종 보이기도 했다. '자기계발은 대가지불 없는 성공을 다루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결과만 드러낸다면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나의 꿈을 시각화 시키고 꿈꾸며 된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책의 초반에 VD=R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알려 주지 않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나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거기다 수많은 성공사례들을 나열해서 내가 저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지 못한 것이 나의 노력의 부족과, 꿈 꿀 열정을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 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시키고자, 안타까운 마음에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 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뭔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되레 용기를 꺾는 것은 아닌지 노파심 깃든 걱정도 되었다. 눈앞에 VD를 통한 성공사례가 충분함에도 의심부터 하고, 난 꿈이 없다고 좌절하며, 노력하기를 귀찮아하는 나의 마인드가 잘못 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을 듣고,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뜻을 관철시킨 뒤, 주변 사람들에게 품은 생각을 말하며, 그것을 향해 노력 하는 것. 그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기도로 신(神)과 대화하는 방법과 왠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듯, 저자는 책의 끄트머리에 '성경에서 예수가 말씀하시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 즉 성령' 이라고 했다. 자기계발이나 성공이 아니며, 진리를 그르치는 일이 될 것이므로 이런 이야기가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것으로 내가 생각한 VD와 기도의 차이점을 이해했고, 두 가지가 나의 삶에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인가에 조금이나마 중점을 둘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침대에 누워 몸을 뒤틀며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책의 내용을 알겠는데, 그것이 나의 현실과 접목되지 못한 것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콕 찍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내가 이룬 VD는 하나도 없다며 한숨을 쉬고 있는 찰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난여름에 새롭게 정리한 책장이었다. 그 책장을 바라보면서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20대 초반부터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늘 머릿속에 상상한 것이 현재 내 방이었다. 내가 이룬 VD가 이렇게 떡 하니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른 것만 생각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이 책장을 만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고, 현실이 될 때까지 늘 시각화하며 꿈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권씩 책을 그러모을 때마다 나의 기분이 어땠는지, 책들이 늘어감에 따라 책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모든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제야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낮은 가능성 하나를 내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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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평전 - 삶, 사랑, 열정 그리고 정신세계
마리안네 잠머 지음, 나혜심 옮김, 이석규 감수 / 자유로운상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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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 하면 그녀의 삶이 이러했다는 인식보다, 장례식의 한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벌써 12년 전의 일인데도, TV에서 보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관중 속에서 조심스레 마더 데레사가 누워 있는 투명 관을 옮기던 일. 특히나 인도 사람들에게 마더 데레사는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장례식을 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경건했었던 기억이 난다. 더군다나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평온함 때문에, 그녀를 잃었다는 슬픔이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더 데레사의 평온함이 그대로 전달되었을 거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마주하게 된 이유는 마더 데레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유명한 인물일수록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깨뜨리고 싶었고, 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의 정신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헌신을 베풀고 간 모습을 더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책을 처음 마주한 순간 평전 치고는 좀 얇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해 조금 당황스러웠다.

 

  책의 서문에 보면 '이제까지의 관행과는 달리 좀 더 확실한 사료적 근거에 기초해서 마더 데레사의 인생과 정신세계 그리고 업적을 서술하게 될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마더 데레사를 신화화하고 성인전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에서 배제시키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다. 정확한 정보들만을 싣겠다는 의미인 것은 알았으나, 책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평전이라는 것이 아무리 객관화 시킨다고 해도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뜻에 얼마만큼의 신뢰를 가졌는지 나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을 하기도 전에 마더 데레사란 인물이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책을 읽는 내내 애를 먹어야 했다.

 

  책의 시작은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녀가 생전에 세워놓은 업적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달리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그녀의 출생이 인도라고 알고 있던 나는, 마케도니아의 스코페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울 뿐이었다. 세간에는 그녀의 성장과정과 몇몇 일화들이 잘못 전해지고 있었는데, 그런 점을 뒷받침하기에 적합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에 비해 비교적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마더 데레사는, 성당에서 진보적인 예수회 신부 잠브레코빅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선교사의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수녀가 되어 콜카타로 내려가서 그 힘든 과정을 모두 이겨냈던 것도, 평생을 약자를 위해 봉사했던 것도 12살 무렵에 가졌던 소명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사랑의 공동체를 세계 곳곳에 세워 병든 자들, 여성, 아이들 등을 위해 봉사한 것은 그녀의 크나큰 업적 가운데 하나다. 업적을 따지기 전에 한 사람의 힘으로(물론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기부금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거기다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그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런 연유로 마더 데레사란 인물이 가진 영향력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약자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까지 미쳤으므로 그녀 존재는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더 데레사는 언론에 나오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노벨상을 이용해서라도 어떻게 하면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마더 데레사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인물에 가까웠고, 자신의 몸이 부서지도록 사랑과 열정을 바쳤다. 그런 마더 데레사를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봉사를 위해, 다른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가난한 자들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늘 바쁘게 세계 곳곳을 돌아 다녔다. 한 사람의 업적이 이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고, 더 열심히 봉사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의 삶을 좇아가며, 그녀의 흔적을 보았음에도 마더 데레사란 인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서술의 방식 때문인지, 아니면 종교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어가서인지, 마더 데레사의 삶이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간 것은 알겠는데,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마더 데레사란 인물에 무엇이 덧붙여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마더 데레사의 평전은 그녀의 삶의 진행 방향에 따라 주변의 것들과 함께 맞물리는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의 마더 데레사는 중점에서 빗겨가 요소에 포함된 느낌이었다. 제대로 정독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있더라도, 진정한 마더 데레사를 만나기를 갈망했던 터라 책의 구성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가 생존에 이뤄놓은 업적과 실천은, 그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녀 자체만으로 벅찰 뿐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내가 기억하는 것이 TV에서 본 장례식의 단편적인 모습일지라도, 그녀를 알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아직 내게 남아 있다. 그녀의 삶을 내가 판단한다는 것은 여전히 벅찬 일이므로, 짧게나마 이런 인물과 동시대를 살았던 것에 대해 감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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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 눈빛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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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결정권은 대부분이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 이뤄진다. 그 이외는 다른 경로로 선택된 책들인데, 그 가운데 가장 실천하기 힘든 경로는 타인의 추천인 것 같다. 읽어본 사람에게 추천을 받는 것이 내가 그러모은 정보로 책을 고르는 수고를 줄이는 지름길임에도, 나의 취향과 그 외의 자잘한 상황들에 대부분 묻혀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필립 퍼키스의 책이 그랬다. 사진은 문외한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나의 관심에서 벗어난 분야인데도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이 책과 비슷한 책의 리뷰에 달린 댓글 때문이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란 책을 읽고 리뷰를 올렸는데, 어떤 분이 이 책도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렇게 추천을 해주어도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존 버거의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언젠가는 꼭 읽어 보고 싶었다.
 

  그랬음에도 이 책이 내게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거기다 책을 구입한 지 반 년이 지나서야 읽게 되었으니, 한 권의 책이 내게 읽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음에 조금은 신기함마저 든다.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 새로 정리한 책배치 때문에 눈에 띄어 읽게 되었는데, 내가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임에도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책의 겉모습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나 보다. '사진 강의 노트'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부제목은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이다. 그렇기에 사진에 문외한이고, 사진 찍기를 즐겨하지 않는 나에게도 어느 정도 읽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짐작과 함께 책을 펼쳤음에도 나의 예상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음은 물론 기대를 넘어 내 마음에 쏙 드는 글로 채워져 있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사진을 가르쳐 온 지 어느덧 40년이 흘렀'고, '어쩐 입장을 옹호하거나 사진 개념과 기술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보다는 생각과 논쟁을 불러오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란 뜻을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 내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진의 개념을 설명해도 어차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사진 찍는 법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책을 찍을 때만 쓰는 디지털 카메라밖에 가지고 있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저자가 40년 간 가르쳐 온 사진에서 삶의 단상을 지켜볼 수 있다면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관철한 듯 사진과 삶이 엉켜들어 간 글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사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개념이나, 사진을 현상하는 자잘한 것들까지 사진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분위기가 연신 흘러나왔다. 사진을 가르쳐 오고, 비평한 가운데의 글 들을 모았다고는 하지만 예술에 대한 시각이라든가 타인의 명언들이 종종 실려 있어 나의 생각을 많이 틔워주었다. 저자는 예술과 예술 간의 통로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어 독자에게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려운 글이라고, 사진에 무지하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자칫 시선을 분산시킬 위험도 있다. 자신의 취향과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한 권의 책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흡수 할 수 없듯이 이 책에서도 각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소화해 낼 수 있는 것들만 받아들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게 책을 읽어갔기에 기억하고 싶거나, 괜찮은 문장에 메모지를 붙였는데도 책을 다 읽고 보니 꽤 많은 메모지가 붙여 있는 것에 놀랐다. 대부분 예술에 대한 단상과 나의 처지에 걸맞은 말들에 공감이 많이 갔지만, 무엇보다 사진에서 이끌어내는 삶에 대한 연속성이 마음에 와 닿았다. 잔더 촬영 방식을 말하면서 저자는 '사회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 그 역할을 맡은 인간의 내면을 동시에 눈앞에 드러냈다.'고 했다. '타인의 인간성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의 인간성을 느끼며, 그 순간 우리의 세계는 확장되기 시작한다.'는 설명의 이어짐을 듣고 있으면 눈에 보일 듯 말듯 뜬구름 잡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곰곰이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듯 한 장의 사진, 사진기의 부속품, 사진 찍는 방법에서 저자가 이끌어 내는 사고는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자도 이미 밝혔듯이 이 책을 읽고 사진에 관한 개념이라든지 기술에 대해서 터득하거나, 사진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진에 대한 무지는 여전했고, 사진으로 인해 삶에 통찰력을 지닌 저자의 시선을 샅샅이 뒤지고 온 느낌이었다. 저자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말로 터져 나오지 않는 간질거리는 느낌에 몸을 배배 꼬이기도 했다. 사진에 관련된 책임에도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을 트기보다 사진으로 인한 삶의 시선을 재조명 한 느낌이기에 여전히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달라진 느낌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특별한 시선이 사진을 찍는 뷰어에 의해 파인더를 통과해 내는 과정이 여전히 신기할 뿐이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세계로 온전하게 들어가지 못했더라도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보아온 한 사진가에 의해 나의 시선이 많이 트인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의 작업 과정에 대한 이 모든 생각과 설명들은 사진을 찍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얻게 된 것임을 밝혔다. 그때까지 자신은 진흙탕물 속에서 무언가를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사진은 말보다 앞선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되는 반면, 이 과정 또한 충분히 즐길 여지가 있음에 용기를 얻고 나에게 찾아온 작은 책 한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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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달빛 - 타샤 할머니의 할로윈 이야기 타샤 튜더 클래식 9
타샤 튜더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윌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타샤 할머니의 책을 구입할 때마다 늘 검색을 통해서 산다는 말을 언급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타샤 튜더 클래식' 시리즈는 동화책이라서 거의 홍보가 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검색을 통해 출간 소식을 알게 되는데, 얼마 전에는 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출간 알리미 서비스를 오픈 한 것을 보고 나를 위한 서비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구입하는 작가가 10명이 넘다보니(거기다 신간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 검색이 귀찮기도 하고, 출간 소식을 몰라 적절한 때에 구입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서비스가 생겨 너무 신기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주르륵 등록하고 보니 괜히 뿌듯했다. 당연히 타샤 할머니도 등록시켜 놓았고, 이제 메일과 문자를 통해 출간 여부를 알 수 있다 생각하니 무척 든든했다.
 

  <호박 달빛>은 타샤 할머니의 책 소개란에서 많이 들어봤던 제목이었다. 할로윈 데이를 맞이해서 실비라는 소녀가 호박 달빛을 만드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곧 돌아오는 할로윈 데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하게나마 책의 뒷면에 할로윈 데이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어, 나도 잘 몰랐던 할로윈 데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옛날 아일랜드 사람들은 10월 마지막 날에 나쁜 귀신들이 찾아와 나무나 꽃, 열매가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사람들을 병들게 만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령이나 마녀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분장해서 귀신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려오던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풍습은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고 있기에, 할머니 집에 놀러온 실비는 호박 달빛을 만들어 할로윈 데이를 즐겁게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옥수수 밭까지 개의치 않고 올라갔으며, 털북숭이 위기를 데리고 옥수수 밭에 도착한 실비는 밭 한가운데서 통통하고 근사한 호박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호박은 너무 무겁고 커서 굴려서 옮겼는데, 농장으로 이어지는 밭 가장자리까지 왔을 때 그만 호박이 떼구루루 굴러 가 버리고 말았다. 농장으로 들어간 호박은 염소, 암탉, 거위들을 놀래고 화나게 한데 이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들고 가던 헴멜스캠프 아저씨와 부딪히고 만다. 실비와 위기가 호박을 따라 쫓아왔지만 너무 빨리 굴러가는 호박을 제어할 틈이 없었다.

 

  실비는 아저씨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 드린 후 동물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가서 자조지종을 말하자,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호박의 윗부분을 잘라내고 씨를 모두 파냈다. 그리고 호박에 구멍을 뚫어 눈과 코, 이빨을 내보이며 웃는 입까지 만들었다. 저녁이 되자 실비와 할아버지는 촛불을 켜서 호박 안에 넣었다. 무시무시한 호박 달빛을 한 호박을 보고 있자니 할로윈 데이 기분이 나는 것 같았다. 실비와 할아버지는 호박 달빛을 울타리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려 덤불 뒤에 숨었다. 그 일로 인해 실비와 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실비는 봄이 되자 호박씨를 심었다. 그 호박들은 잘 자라 수많은 호박이 달렸고, 맛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호박 달빛이 되기도 해 실비 같은 꼬마 아가씨를 기쁘게 할 거라며 책은 끝이 난다.

 

  <호박 달빛>은 최근에 읽은 타샤 할머니 동화책 가운데 비교적 이야기가 긴 편이었고, 함께 실린 그림들도 뚜렷하고 세세하기보다 수채화 분위기가 물씬 낫다. 책을 다시 검색해 보니 타샤 할머니가 1938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동화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에서 보아온 분위기와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나보다. 이후로도 꾸준히 동화책을 쓰고, 그림을 그린 타샤 할머니였기에 후에 나온 작품과 첫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타샤 할머니는 4살짜리 조카 실비의 이야기를 이 책에 그대로 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 사랑스럽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이 책에 그대로 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책장에 가장 희박한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화책이 아닐까 싶은데, 타샤 할머니 덕분에 어느새 10권을 향해 가고 있다.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책장이 아닌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현재진행형 전작주의를 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이번에 새로 나온 <호박 달빛> 덕분에 한 권이 더 늘어난 것을 보며 벌써 다음 동화책을 기다리게 된다. 사랑스러운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을 만날 수 있어서 어찌나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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