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 the World : 힐 더 월드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지구행복 프로젝트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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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꿈꾼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도울 때 머뭇머뭇 거리다 작은 것 하나도 도와주지 못한 나를 발견하면서도, 그런 일을 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해 지는 것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 않냐' 는 사람들 말에, 국내에서는 내가 누릴 것을 다 누리느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합리화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두고 전혀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용기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한 때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는데, 종종 그런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TV를 보다가도 그런 나라의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아프다는 핑계로 피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내게 도착한 한 권의 책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온갖 생각들을 다시 다 끄집어 내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내가 보지 못한 세계,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세계의 이야기는 처절할수록 더 피하고 싶어진다. 어느 정도 심각성을 알면서도 제대로 알기를 거부하고,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우울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쉽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같은 인간이면서 그렇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것은 그네들의 탓이 아니냐고 되레 성을 낼 때도 있다. 이 책에서 만난 그들이 그랬다. 갖가지 이유로 굶주리고, 질병에 힘들어하고, 생명이 천시되는 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빽빽하지 않은 글은 사진보다 더 처절했다. 그곳의 상황을 분노에 차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차분하지만,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하는 글이었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쉬어서 읽을 정도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글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것을 조사하고, 봐오는 과정 속에 있었으면서도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감동이 일 정도였다. 독자에게 호소를 하고 있지만 감정의 밑바닥으로 끌고 가지 않고 자발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글에서 드러나는 실상은 믿지 못할 정도였다.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굶주림과 질병의 실태는 심각할 정도지만 원인은 너무나 어이없었다. 어리석은 싸움, 선진국에 의한 짓밟힘,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원조가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너무나 쉽게 파괴하고 있었다. 정말 그런 일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날까 싶을 정도로 믿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내용들이었다. 당장 내가 과연 이런 사람들의 실체를 보고 있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그 무기력감에 자칫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는 찰나, 그들을 돕는 단체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여지고 있었다. 나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자신만 닦달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듯,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고 구호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거기다 환경과 동물, 자원, 변화하는 자연현상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하게 실려 있어 죄의식은 덧입혀진 반면, 내가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오존층 파괴가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멋을 내기 위해 입는 밍크코트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살상하는지, 공정무역을 통한 상품을 구입할 때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 나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현장에 뛰어들 수도 없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휩쓸리게 버려두지 않고 작은 실천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고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 생각하니 끊임없는 자극이 나를 에워쌌다. 예전에 음식점을 갈 때마다 남은 반찬을 싸오는  한 의사의 사연을 TV에서 보고 난 후(북한을 방문한 그 의사는 땅을 파먹은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절대 음식을 못 버리겠어서 반찬통을 들고 싸 오는 것이라고 한다.), 나 또한 음식을 함부로 못 버리게 되었다. 거기에 물 아껴 쓰기, 공정무역을 거친 상품 구입하기, 육류 섭취 줄이기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실현해 나가면 책을 읽는 내내 죄스러웠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천은 강요가 아니지만 어떠한 현상을 보고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이성을 가진 인간임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닐까. 인간이 단독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 함께 주어진 것들을 다른 생명체와 나누며 돕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작은 실천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실천은 개개인의 의지에 달렸지만,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마음 아픔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작은 움직임에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아침마다 양치할 때 물을 컵에 받아쓰고, 이 책을 읽은 다른 이가 그것을 따라한다면 작은 움직임이 모여 적지 않은 효과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보면 '내 생애 가장 친환경적인 일주일'이란 코너가 있다. 일주일동안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보낸 후기가 실려 있는데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과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씁쓸한 자유를 주는 지에 대해 나와 있다. 그만큼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 자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을 때 더 이상 인간을 비난하지 않으며, 내 자신을 자책하지 않고, 가진 자에 대한 분노가 그것을 바꾸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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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3 (양장) -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시리즈 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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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가고, 주변은 시끄럽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꺼내기 좋은 책은 역시 추리소설인 것 같다. 책장 꼭대기에 있는 셜록 홈즈를 하나씩 꺼내 읽고 다시 꽂는 일은 최근 들어 또 다른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2권까지 무난하게 읽었으므로 3권도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꺼냈다. 어떤 분이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개>가 인상 깊었다고 해서 나름 기대를 하고 있던 터라 약간은 손놀림이 초조했는지도 모르겠다. 홈즈와 왓슨의 행보에 주목하면서 어떠한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했기에 나에게 처해진 상황은 모두 잊은 채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책을 펼쳤을 때 약간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삽화였다. 1, 2권에서는 조금은 선명하지 않은 삽화가 실려 있어 그다지 큰 도움이 못 되었는데, 좀 더 세밀하고 깔끔한 삽화가 그려져 있어 찾아보니 전 권과는 다른 삽화가였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삽화와 비교해 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라면 재미인데, 3권에서는 나의 상상력과 삽화가 비교적 잘 맞아 떨어져서 삽화를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여전히 셜록 홈즈와 왓슨의 외모는 정착이 안 되어서 낯설었지만 두 사람만은 나의 상상 속에서 키워가고 싶었다. 왓슨은 사건 의뢰인이 남기고 간 지팡이를 통해 홈즈처럼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추리를 하는 식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홈즈의 칭찬 가운데 나름대로 추측하지만, 의뢰인이 등장했을 때는 빗나간 결과에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사건들을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오래 전 바스커빌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과 관련된 사건이라서 흥미로웠지만 어디에 중점을 둬야할지 약간 헷갈리기도 했다. 바스커빌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처럼 흉악한 개가 나타나 사람을 죽였는지, 아니면 다른 존재가 살인을 했는지 단서가 없는 가운데 홈즈는 왓슨을 바스커빌관으로 내려 보낸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모티머 선생은 홈즈와 왓슨에게 고문서 하나를 보여 주었다. 바스커빌 가에 내려오는 전설의 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못된 일을 저지른 휴고 바스커빌이 어떤 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바스커빌 가에 내려온 오랜 전설로 치부될 수 있었지만, 최근에 찰스 바스커빌 경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터라 그 전설이 다시 회부되었던 것이다. 찰스 경이 죽음으로써 유일한 상속자인 미국에 살고 있는 헨리 바스커빌 경이 오기로 했는데, 목숨이 위태롭기에 모티머 선생은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홈즈는 런던에서 다른 사건을 맡았다는 이유로 직접 헨리 경을 따라가지 않고, 왓슨을 딸려 보낸다. 그러나 헨리 경을 만난 순간부터 의문의 사건들이 발생한다. 헨리 경을 뒤쫓은 마차를 발견하고, 헨리 경의 구두가 없어지고, 당장 떠나라는 경고의 편지가 숙소로 날아온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왓슨이 헨리 경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홈즈가 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면서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홈즈는 왓슨에게 보고서로 그 곳에서 알아낸 것들을 전보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렇게 홈즈가 빠진 채 왓슨은 헨리 경과 함께 바스커빌관으로 내려간다. 모티머 선생이 보여준 편지에서는 절대 밤에 집 근처 황무지를 돌아다니지 말라고 경고했었는데, 그런 위험과 런던에서의 자잘한 사건들로 인해 홈즈는 왓슨에게 헨리 경을 절대 혼자 두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모티머 선생은 찰스 경의 시신 근처에서 엄청나게 큰 개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고 진술했으므로 찰스 경의 죽음 뒤에 정말 바스커빌 가문의 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세력이 있는 것인지 의문은 자꾸 증폭되었다. 홈즈의 충고대로 왓슨은 찰스 경을 혼자 두지 않으며, 주변 인물들을 탐색해 가는데 그 중에 독특한 남매를 발견한다. 박물학자 스태플턴과 그의 여동생 스태플턴 양이었다. 왓슨은 그 남매와 모티머 선생, 그리고 바스커빌관의 하인들을 나름대로 조사한 바들을 홈즈에게 보고서로 올린다. 그곳에서 관찰하고 일어난 사건의 정황은 왓슨의 보고서와 개인적인 일기로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상한 일들은 연이어 일어난다. 왓슨과 홈즈는 전설의 개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황무지에서 들려온 개 울음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며 전설을 믿게 했다.

 

  왓슨은 나름대로 바스커빌관에 머물면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조금씩 사건의 경위를 밝혀갈 때마다 많은 의문과 궁금증, 긴박감이 넘쳐흘렀다. 거기다 탈옥수가 황무지에 흘러들어 오면서 묘하게 꼬여가는 가운데 왓슨은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무지에서 홈즈와 비슷한 인물을 보게 된다. 탈옥수가 처남으로 밝혀진 바스커빌 관의 하인의 고백으로 인해 왓슨은 황무지에서 지내는 또 다른 사람의 은신처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홈즈를 만나게 된다. 몰래 조사를 해야 했던 홈즈는 그간 왓슨이 조사한 것들에 참착하여 나름대로 사건을 풀어가고 있었다. 그가 알아온 정보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헨리 경과 스태플턴양이 사랑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홈즈의 정보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범인을 잡기 위해 헨리 경을 밤의 황무지로 불러내야 했던 만큼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는데, 찰스 경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개의 정체가 드러나므로써 바스커빌 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저주받은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범인은 스스로 자신을 죽음을 자초했고, 그 뒤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은 모두 홈즈가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기에 홈즈가 자리를 비운 빈자리를 충분히 보상해 준 셈이었다.

 

  왓슨의 시선에서 씌이다 보니 종종 주인공이 홈즈가 아니라 왓슨과 사건의 정황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도 홈즈가 바스커빌관에 내려가지 않았기에,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내심 서운해 하고 있던 터였다. 따로 황무지에서 조사를 하며 홈즈다운 날카로움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어 주어서 비교적 골고루 중점을 둔 내막을 만날 수 있었다. 홈즈에게 치우쳐 있거나 사건과 왓슨에게 치우쳐 있었다면 독자의 시선도 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인데, 결국에는 그런 쏠림을 막아주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홈즈에게 가장 관심이 가며, 그가 펼쳐놓는 논리 정연함과 추리가 명쾌할 뿐이다. 그가 있으면 어떠한 사건도 두렵지 않고, 미궁에 빠질 리 없다는 믿음이 생겨나기에 다른 사건 속의 홈즈가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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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2 (양장) -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시리즈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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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중 1권을 읽고 나니, 9권까지 쭉 읽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밀려왔다. 첫 권이 두껍지 않았고 홈즈와 왓슨의 만남과 사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큰 부담 없이 완독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나 할까. 1권을 읽고 며칠이 지난 뒤 2권을 꺼내서 읽었는데, 역시나 순식간에 빠져들게 되었고 셜록 홈즈의 명쾌한 추리에 감탄사를 터트리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셜록 홈즈에 왜 빠져 드는지 조금씩 이해해가는 가운데 셜록 홈즈 전집 마지막 권까지 무난하게 탐독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1권에서 명쾌하게 모르몬교도의 대이동에서 벌어진 병폐와 비극을 파헤치고 난 뒤, 사건이 없어 지루해하는 셜록 홈즈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홈즈는 사건이 없으면 무료함에 빠져들었고, 코카인을 흡입하게 된다. 왓슨은 그런 홈즈를 만류하지만 홈즈는 사건이 없을 땐 딴 사람으로 변한 듯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지, 또한 홈즈와 왓슨이 어떠한 활약을 하게 될지 궁금했으므로 홈즈가 코카인을 즐긴다는 사실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몇몇 독자들은 그것을 비중 있게 끌어내는 것을 보고 관찰의 다양성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홈즈를 달래듯, 모스턴이라는 여성이 찾아와 홈즈에게 사건해결을 부탁한다. 무척 교양 있는 아가씨였는데 훗날 왓슨은 모스턴 양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잠시 홈즈가 주인공이 아니라 왓슨의 연애 담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은 홈즈가 나서서 모두 처리해 주었으므로 그런 불평은 잠시 밀쳐둔 채 사건 속으로 빠져 들기로 했다.

 

  모스턴 양은 실로 기이한 일을 홈즈와 왓슨에게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10년 전에 실종이 되었는데, 6년 전 모스턴 양의 주소를 물어보는 광고가 실린 뒤부터 일 년에 한 번씩 비싼 진주가 배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홈즈와 왓슨을 찾아온 날 아침 기이한 편지를 받았는데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당신도 피해자니 라이세움 극장으로 나오라는 전갈이었다. 그렇게 기이한 사건은 시작이 되고 편지를 쓴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는데, 그는 새디어스 숄토로 모스턴 양의 아버지의 친구인 존 숄토 소령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인도에서 큰 보물을 발견한 사건 경위부터 모스턴 양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까지, 그리고 보물의 일부를 모스턴양이 가질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숄토 소령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새디어스 숄토의 형이 보물을 발견했는데, 그 보물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새디어스 숄토의 형인 바솔로뮤 숄토를 찾아가지만 형은 이미 죽어있었고, 보물도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네 사람의 서명>이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먼저 홈즈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새디어스 숄토가 어떻게 사망했냐는 것이었다. 타살의 흔적이 전혀 없었지만 시신의 머리에 박힌 바늘과 보물이 숨겨져 있었을 법한 천장의 들보까지 조사한 후 기이한 살인자들이 다녀갔다는 것과 공범자의 특징이 좀 별나다는 것을 알고 추적해 나간다. 화약 약품을 밟은 흔적을 남긴 공범자 덕에 추적이 좀 용이해졌다 싶었는데, 그들은 배를 타고 사라져서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잠시 미궁에 빠진 홈즈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조사를 하다 그들이 타고 간 배가 어디에 있는지를 추측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경비정을 타고 추격에 나선다. 이 책에서 가장 긴박한 추적이 그려진 장면이었는데, 결국 용의자를 잡지만 공범자이자 위험한 인물인 원주민은 바다에 빠져 죽고, 보물도 그와 함께 묻히고 만다. 보물이 사라져서 모스턴 양에게 돌아갈 것이 없자 왓슨은 되레 기뻐한다. 모스턴 양을 사랑하고 있던 왓슨은 그녀가 보물로 인해 큰 부자가 되면 그들 사이에 장벽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용의자는 조너선 스몰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인도에서 농장에서 일하는 쿨리들을 감독으로 일하던 중 세포이 항쟁을 만나 성을 관리하다 큰 보물을 가진 자를 만나게 된다. 한 군주가 보물을 숨기기 위해 보낸 하인의 이야기를 듣고 조너선을 비롯한 네 명의 사람들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죽였다. 결국 살인 사건이 밝혀져 모두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된고 조너선은 복역하던 중 숄토 소령, 모스턴 대위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비밀을 말한다. 그런데 숄토 소령이 보물을 가지고 인도로 사라져버렸고, 모스턴 대위는 그런 숄토를 찾아가 얘기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조너선은 원주민과 함께 숄토를 찾아갔지만 숄토는 숨을 거둔 뒤였다. 그래도 보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천장을 뒤지다 그곳에 남아있는 바솔로뮤 숄토를 원주민 통가가 살해해 버린 것이다. 조너선에 의해 사건의 전말은 풀렸지만 보물에 얽힌 이야기는 그야말로 비극일 뿐이었다.

 

  셜록 홈즈의 활약, 왓슨의 연애(?), 그리고 보물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의 전말은 흥미롭게 펼쳐졌다. 홈즈가 너무나 완벽하고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했기에 사건의 전말이 첨가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권씩 책을 읽어나갈 때마다 홈즈와 왓슨 콤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에 빠지는 것 같아 다른 책에 펼쳐질 이야기가 무척 궁금할 따름이다. 홈즈와 왓슨, 새로운 사건의 이야기를 좇다보니 책 속의 다른 것들을 발견할 수 없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당분간은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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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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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국내외로 유명 인사들이 숨을 많이 거둔 해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전 대통령 두 분이 돌아가셔서 그런 생각과 허전함이 더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본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죽음이었기에 서민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크리라 생각된다. 그나마 그 분들의 삶의 흔적을 남긴 책들이 출간 되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위로가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서 읽을 정도의 열정이 내게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안타까움이 더해지리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지인이 선물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 한 권이 도착했다. 책을 보기만 해도 안타까움 때문에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을 모두 그려나간 것이 아닌 잠언집이라고 하기에 편안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들기 전 펼친 책이었는데,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정독을 하게 만드는 힘을 만나고 말았다.
 

  잠언집이라고 하기에 구구절절한 한 사람의 삶이 단편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짧은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는 경험이 바탕이 된 깨달음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것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감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견주어 볼 수도 없지만,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엉겁의 세월을 살아온 흔적 앞에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인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경지는 경험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을 해야만 깨닫고, 타인의 충고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경험으로 인해 알아차린 깨달음이 많았다.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힘겨운 삶의 과정을 거쳐 왔음에도 그때마다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과 출발선이 달랐고, 과정도 달랐기에 굳이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업적을 충분히 알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겉으로만 알아온 그 분의 삶이 중심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남달랐다. 삶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 분의 내면을 파고드는 짧은 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펼친 책장의 첫 장부터 나를 멈추게 하고, 그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지를 붙이게 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는 말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슴을 울리는 말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진과 인내, 초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회만을 일삼는 내게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단락은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이란 부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그런 만큼 이 책 중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들어 주었던 단락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현재 품고 있는 고민과 번뇌들을 명쾌하게 일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동질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지낸 분도 이런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용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삶을 바탕으로 일궈낸 경험이 있었기에 무심하게 훑어 내려가며 읽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하고,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너무나 먼 거리의 삶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될 때는 다시 읽어 보기로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짧은 책이었음에도 읽는 시간이 꽤 걸렸다.

 

  단편적인 글들로 깨달음을 응축해 놓은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책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청아한 울림을 받았다. '스스로 믿고, 나를 돌아보며, 하나의 가족으로, 더불어 사는' 의미를 전해 준 글이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본 분이 깨알 같은 메모들을 엮어서인지 더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엮은이도 그 메모를 보며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인생의 진실한 조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한 사람이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기록해 놓은 가까운 깨달음이기에 이 책에 실려 있는 시기와 때에 맞춰서 다시 꺼내 읽어도 느낌이 새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이란 단락에서는 부부에 대한 깨달음이 많았으므로 결혼을 앞뒀을 때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읽어도 좋지만 앞서 살아간 분이 흘려 놓은 삶의 흔적을 좇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너무나 많은 메모지가 붙어 있어서 그 문구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이 벅찰 정도다. 개인의 삶의 방향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듯이 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에 관한 글들이 좋았기에 틈틈이 다시 읽어보며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읽을 때마다 다르고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책을 꺼내보며 고인을 생각하며 구절 속에 갇힌 숨은 뜻들을 파악해 보면 나보다 먼저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자의 지혜를 빌려올 수 있을 것 같다. 짧지만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고 경험이 바탕으로 된 진실한 깨달음에 관한 책임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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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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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금씩 아파오는 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약국을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이미 옷을 갈아입은 뒤라 조카들에게 약 이름을 알려주고 심부름을 보냈다. 집 근처에 약국에 세 군데 있어서 설마 못 사올까 싶어서 내심 안심하고 보냈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모두 문이 닫혔다며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비슷한 위치의 약국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으면 다급한 사람은 어쩌라는 건지 잠시 푸념을 한 뒤, 헐레벌떡 뛰어온 조카들에게 수고비 500원을 쥐어 주고(배분은 알아서 하겠지.), 읽다만 책을 펼쳤다. 굳이 안가도 되겠다 싶은 약국을 조카들을 시켜서 가게 한 것은 존 버거의 소설에 나오는 아이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곳에서 아이다의 환영을 보게 될까봐, 조카의 손을 거쳐 내게 도착한 약에서 혹시나 그녀의 손길을 느낄까봐 그녀를 나의 현실로 끌어 내렸지만, 그런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다른 약국을 간다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진탕 아파 버렸다. 데굴데굴 구르고, 토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나니 정신이 몽롱했다. 오전 근무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 내리 몇 시간 동안 잠만 잤는데도 아픔은 가시지 않고, 배는 고프고, 생각들이 한정되어 버리는 것에 상실감을 느꼈다. 누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기에 책을 꺼내 읽었다. 손에 쥔 책을 다 읽었음에도 그 책에 대한 느낌을 남겨야겠단 생각보다, 어제 읽은 존 버거의 소설 속의 아이다란 인물이 자꾸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 속의 인물이었음에도 쉽게 간과할 수 없었던 아이다는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 그녀가 한 남자에게 쓴 편지들이 묻힌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이다는 감옥에 갇힌 한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테러리스틀 결성했다는 혐의로 이중종신형(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고, 그후에도 죽을 때 나이만큼의 기간 동안 시신을 감옥밖으로 내올 수 없다는 형벌.)을 받은 사비에르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새 교도소가 들어서면서 73호 감방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수감자였고, 협소한 수납 칸에서 아이다가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이 책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도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경위는 밝히지 않고 사비에르가 정리한 순서를 존중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아이다는 비교적 차분한 어투로 사비에르에게 편지를 썼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서 쓴 편지는 종종 붙이지 않았지만, 이중종신형을 당한 남자에게 쓴 편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차분하고 기다림이 서린 편지들이었다. 자신의 일상을 토대로 그와의 추억을 기록해 가는 그녀는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다양한 언어로 애칭을 바꿔가며 애정을 표시하고, 편지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사랑해요'라는 표현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연애편지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고, 유일한 교류 수단은 편지 밖에 없었다.
 
  돌아올 수 없는 이에게 쓰는 편지란 어떤 기분일까. 오래 전,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그리움을 가득 담아 편지를 쓴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이다가 갖는 먹먹한 기분이 조금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휴가, 면회, 제대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반면 아이다는 그 모든 것이 단절된 상태였고, 강제로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밖에 전할 길이 없었다. 편지 안에 그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그리움만 내제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데, 거기에는 아이다와 사비에르에게 처해진 현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사비에르가 어떠한 연유로 잡혀갔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았지만 혼란스러운 국가, 억압당하고 강제성을 띠는 인권,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두려움이 늘 감지되었다. 그녀도 어떤 활동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저자의 설명대로 숨겨진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사비에르를 향한 그리움, 거대한 집단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한 인간과 무리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오랜 기간 사비에르에게 보내졌던 편지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녀의 그리움은 배가 되어 내 안에 맴도는 타인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잠시 책을 덮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아이다의 상실감에 어느 것도 비할 바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연덕스럽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상세히 기록해가는 아이다, 큰 사건을 일상처럼 말해야 하는 아이다, 처절할 정도로 사랑하는 이의 온기를 느끼고자 자신의 손을 그려 나가는 아이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갈라놓은 보이지 않는 힘에 저항심이 생겼다. 그런 아이다의 편지에 수긍하는 사비에르의 편지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보낸 편지의 뒷편에 사비에르의 메모가 있었는데, 난해하고 그의 해설이 필요한 짤막한 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글은 아이다에 대한 글이 아니었고, 세계 곳곳에 행해지는 반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개탄과 상대성을 그린 것이 많았다. 그 낯선 이질감에 몸을 떨면서도 사비에르가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그는 아이다의 편지의 뒷편에 세상의 곳곳을 누비며 보이지 않는 활동가다운 호소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더라도 사비에르가 아이다에게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 상세히 알 수 없었기에(아이다의 언급으로 조금 알게 되었지만, 소소한 것에 불과했으므로), 답답하기도 해서 그런 아이다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했다.
 
  아이다가 보낸 편지의 무게가 가벼웠더라면, 사비에르의 메모가 아이다를 향한 것이었다면 편지를 읽는 나의 마음이 어떻게 변모되어 갔을까. 아마 조금은 특별한 연애편지로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현재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저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지만.) 그냥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가 없다. 약국에서 일하는 아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전하며, 때로 활동가로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진부하게 늘어놓기도 하지만 사비에르 앞에서만큼은 한 사람의 여자이고 싶은 마음 또한 감추지 않았다. 아이다의 편지를 읽으며 사비에르의 메모가 무심하다 싶다가도 그가 한두 마디씩 흩뿌려 놓은 아이다를 향한 마음을 볼 때면 둘의 단절됨이 피부에 와 닿아 안타까웠다.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단절이 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세계화를 빌미로 이루어진 폭력과 자본세계의 병폐와 만인에게 가격되어 지는 불편한 진실을 파악할 힘이 내게 남아있을 리도 없었다.
 
  그 두 연인의 단절된 상황으로 나머지 배경을 파악해 나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이다의 절절한 편지, 사비에르의 개탄과 비난이 섞인 메모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과연 나는 행복한 것일까, 저들의 모습을 무시해도 괜찮을 것일까란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지만 그 둘의 단절 앞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이다가 얼마를 기다려야 사비에르가 돌아올지 알 수 없었고, 사비에르가 과연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편지의 뒷면에 그려진 '오늘 밤의 탈출 경로'를 통해 둘의 재회를 잠시나마 꿈꿔보게 되었지만, 그 또한 먹먹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들의 목숨이 내재하든 내재하지 않던 그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자의 말처럼 신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그들이 처한 상황들이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크지만, 그 바람은 아주 먼 얘기로만 느껴져서 내 존재가 너무나 미미하게 다가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존 버거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라 그의 신간이 나왔나 정기적으로 검색해 본다. 우연히 신간이 나온 것을 보고 바로 구입했는데, 그의 소설은 처음이거니와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고,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산문과 시, 평론을 주로 읽다 소설을 마주하게 되니 다시 한 번 그의 역량에 감탄하면서도 허공을 향해 흐릿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나를 자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아이다의 편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사비에르의 메모에 동감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존 버거가 그려낸 세계는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을 계기로 그의 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먹먹한 가슴앓이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다른 작품을 탐독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당분간은 아이다란 인물이 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을 갈망하며 그의 새로운 작품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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