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3 (양장) -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시리즈 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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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가고, 주변은 시끄럽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꺼내기 좋은 책은 역시 추리소설인 것 같다. 책장 꼭대기에 있는 셜록 홈즈를 하나씩 꺼내 읽고 다시 꽂는 일은 최근 들어 또 다른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2권까지 무난하게 읽었으므로 3권도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꺼냈다. 어떤 분이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개>가 인상 깊었다고 해서 나름 기대를 하고 있던 터라 약간은 손놀림이 초조했는지도 모르겠다. 홈즈와 왓슨의 행보에 주목하면서 어떠한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했기에 나에게 처해진 상황은 모두 잊은 채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책을 펼쳤을 때 약간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삽화였다. 1, 2권에서는 조금은 선명하지 않은 삽화가 실려 있어 그다지 큰 도움이 못 되었는데, 좀 더 세밀하고 깔끔한 삽화가 그려져 있어 찾아보니 전 권과는 다른 삽화가였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삽화와 비교해 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라면 재미인데, 3권에서는 나의 상상력과 삽화가 비교적 잘 맞아 떨어져서 삽화를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여전히 셜록 홈즈와 왓슨의 외모는 정착이 안 되어서 낯설었지만 두 사람만은 나의 상상 속에서 키워가고 싶었다. 왓슨은 사건 의뢰인이 남기고 간 지팡이를 통해 홈즈처럼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추리를 하는 식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홈즈의 칭찬 가운데 나름대로 추측하지만, 의뢰인이 등장했을 때는 빗나간 결과에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사건들을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오래 전 바스커빌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과 관련된 사건이라서 흥미로웠지만 어디에 중점을 둬야할지 약간 헷갈리기도 했다. 바스커빌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처럼 흉악한 개가 나타나 사람을 죽였는지, 아니면 다른 존재가 살인을 했는지 단서가 없는 가운데 홈즈는 왓슨을 바스커빌관으로 내려 보낸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모티머 선생은 홈즈와 왓슨에게 고문서 하나를 보여 주었다. 바스커빌 가에 내려오는 전설의 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못된 일을 저지른 휴고 바스커빌이 어떤 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바스커빌 가에 내려온 오랜 전설로 치부될 수 있었지만, 최근에 찰스 바스커빌 경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터라 그 전설이 다시 회부되었던 것이다. 찰스 경이 죽음으로써 유일한 상속자인 미국에 살고 있는 헨리 바스커빌 경이 오기로 했는데, 목숨이 위태롭기에 모티머 선생은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홈즈는 런던에서 다른 사건을 맡았다는 이유로 직접 헨리 경을 따라가지 않고, 왓슨을 딸려 보낸다. 그러나 헨리 경을 만난 순간부터 의문의 사건들이 발생한다. 헨리 경을 뒤쫓은 마차를 발견하고, 헨리 경의 구두가 없어지고, 당장 떠나라는 경고의 편지가 숙소로 날아온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왓슨이 헨리 경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홈즈가 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면서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홈즈는 왓슨에게 보고서로 그 곳에서 알아낸 것들을 전보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렇게 홈즈가 빠진 채 왓슨은 헨리 경과 함께 바스커빌관으로 내려간다. 모티머 선생이 보여준 편지에서는 절대 밤에 집 근처 황무지를 돌아다니지 말라고 경고했었는데, 그런 위험과 런던에서의 자잘한 사건들로 인해 홈즈는 왓슨에게 헨리 경을 절대 혼자 두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모티머 선생은 찰스 경의 시신 근처에서 엄청나게 큰 개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고 진술했으므로 찰스 경의 죽음 뒤에 정말 바스커빌 가문의 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세력이 있는 것인지 의문은 자꾸 증폭되었다. 홈즈의 충고대로 왓슨은 찰스 경을 혼자 두지 않으며, 주변 인물들을 탐색해 가는데 그 중에 독특한 남매를 발견한다. 박물학자 스태플턴과 그의 여동생 스태플턴 양이었다. 왓슨은 그 남매와 모티머 선생, 그리고 바스커빌관의 하인들을 나름대로 조사한 바들을 홈즈에게 보고서로 올린다. 그곳에서 관찰하고 일어난 사건의 정황은 왓슨의 보고서와 개인적인 일기로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상한 일들은 연이어 일어난다. 왓슨과 홈즈는 전설의 개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황무지에서 들려온 개 울음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며 전설을 믿게 했다.

 

  왓슨은 나름대로 바스커빌관에 머물면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조금씩 사건의 경위를 밝혀갈 때마다 많은 의문과 궁금증, 긴박감이 넘쳐흘렀다. 거기다 탈옥수가 황무지에 흘러들어 오면서 묘하게 꼬여가는 가운데 왓슨은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무지에서 홈즈와 비슷한 인물을 보게 된다. 탈옥수가 처남으로 밝혀진 바스커빌 관의 하인의 고백으로 인해 왓슨은 황무지에서 지내는 또 다른 사람의 은신처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홈즈를 만나게 된다. 몰래 조사를 해야 했던 홈즈는 그간 왓슨이 조사한 것들에 참착하여 나름대로 사건을 풀어가고 있었다. 그가 알아온 정보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헨리 경과 스태플턴양이 사랑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홈즈의 정보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범인을 잡기 위해 헨리 경을 밤의 황무지로 불러내야 했던 만큼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는데, 찰스 경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개의 정체가 드러나므로써 바스커빌 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저주받은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범인은 스스로 자신을 죽음을 자초했고, 그 뒤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은 모두 홈즈가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기에 홈즈가 자리를 비운 빈자리를 충분히 보상해 준 셈이었다.

 

  왓슨의 시선에서 씌이다 보니 종종 주인공이 홈즈가 아니라 왓슨과 사건의 정황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도 홈즈가 바스커빌관에 내려가지 않았기에,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내심 서운해 하고 있던 터였다. 따로 황무지에서 조사를 하며 홈즈다운 날카로움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어 주어서 비교적 골고루 중점을 둔 내막을 만날 수 있었다. 홈즈에게 치우쳐 있거나 사건과 왓슨에게 치우쳐 있었다면 독자의 시선도 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인데, 결국에는 그런 쏠림을 막아주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홈즈에게 가장 관심이 가며, 그가 펼쳐놓는 논리 정연함과 추리가 명쾌할 뿐이다. 그가 있으면 어떠한 사건도 두렵지 않고, 미궁에 빠질 리 없다는 믿음이 생겨나기에 다른 사건 속의 홈즈가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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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2 (양장) -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시리즈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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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중 1권을 읽고 나니, 9권까지 쭉 읽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밀려왔다. 첫 권이 두껍지 않았고 홈즈와 왓슨의 만남과 사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큰 부담 없이 완독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나 할까. 1권을 읽고 며칠이 지난 뒤 2권을 꺼내서 읽었는데, 역시나 순식간에 빠져들게 되었고 셜록 홈즈의 명쾌한 추리에 감탄사를 터트리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셜록 홈즈에 왜 빠져 드는지 조금씩 이해해가는 가운데 셜록 홈즈 전집 마지막 권까지 무난하게 탐독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1권에서 명쾌하게 모르몬교도의 대이동에서 벌어진 병폐와 비극을 파헤치고 난 뒤, 사건이 없어 지루해하는 셜록 홈즈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홈즈는 사건이 없으면 무료함에 빠져들었고, 코카인을 흡입하게 된다. 왓슨은 그런 홈즈를 만류하지만 홈즈는 사건이 없을 땐 딴 사람으로 변한 듯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지, 또한 홈즈와 왓슨이 어떠한 활약을 하게 될지 궁금했으므로 홈즈가 코카인을 즐긴다는 사실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몇몇 독자들은 그것을 비중 있게 끌어내는 것을 보고 관찰의 다양성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홈즈를 달래듯, 모스턴이라는 여성이 찾아와 홈즈에게 사건해결을 부탁한다. 무척 교양 있는 아가씨였는데 훗날 왓슨은 모스턴 양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잠시 홈즈가 주인공이 아니라 왓슨의 연애 담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은 홈즈가 나서서 모두 처리해 주었으므로 그런 불평은 잠시 밀쳐둔 채 사건 속으로 빠져 들기로 했다.

 

  모스턴 양은 실로 기이한 일을 홈즈와 왓슨에게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10년 전에 실종이 되었는데, 6년 전 모스턴 양의 주소를 물어보는 광고가 실린 뒤부터 일 년에 한 번씩 비싼 진주가 배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홈즈와 왓슨을 찾아온 날 아침 기이한 편지를 받았는데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당신도 피해자니 라이세움 극장으로 나오라는 전갈이었다. 그렇게 기이한 사건은 시작이 되고 편지를 쓴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는데, 그는 새디어스 숄토로 모스턴 양의 아버지의 친구인 존 숄토 소령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인도에서 큰 보물을 발견한 사건 경위부터 모스턴 양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까지, 그리고 보물의 일부를 모스턴양이 가질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숄토 소령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새디어스 숄토의 형이 보물을 발견했는데, 그 보물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새디어스 숄토의 형인 바솔로뮤 숄토를 찾아가지만 형은 이미 죽어있었고, 보물도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네 사람의 서명>이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먼저 홈즈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새디어스 숄토가 어떻게 사망했냐는 것이었다. 타살의 흔적이 전혀 없었지만 시신의 머리에 박힌 바늘과 보물이 숨겨져 있었을 법한 천장의 들보까지 조사한 후 기이한 살인자들이 다녀갔다는 것과 공범자의 특징이 좀 별나다는 것을 알고 추적해 나간다. 화약 약품을 밟은 흔적을 남긴 공범자 덕에 추적이 좀 용이해졌다 싶었는데, 그들은 배를 타고 사라져서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잠시 미궁에 빠진 홈즈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조사를 하다 그들이 타고 간 배가 어디에 있는지를 추측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경비정을 타고 추격에 나선다. 이 책에서 가장 긴박한 추적이 그려진 장면이었는데, 결국 용의자를 잡지만 공범자이자 위험한 인물인 원주민은 바다에 빠져 죽고, 보물도 그와 함께 묻히고 만다. 보물이 사라져서 모스턴 양에게 돌아갈 것이 없자 왓슨은 되레 기뻐한다. 모스턴 양을 사랑하고 있던 왓슨은 그녀가 보물로 인해 큰 부자가 되면 그들 사이에 장벽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용의자는 조너선 스몰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인도에서 농장에서 일하는 쿨리들을 감독으로 일하던 중 세포이 항쟁을 만나 성을 관리하다 큰 보물을 가진 자를 만나게 된다. 한 군주가 보물을 숨기기 위해 보낸 하인의 이야기를 듣고 조너선을 비롯한 네 명의 사람들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죽였다. 결국 살인 사건이 밝혀져 모두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된고 조너선은 복역하던 중 숄토 소령, 모스턴 대위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비밀을 말한다. 그런데 숄토 소령이 보물을 가지고 인도로 사라져버렸고, 모스턴 대위는 그런 숄토를 찾아가 얘기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조너선은 원주민과 함께 숄토를 찾아갔지만 숄토는 숨을 거둔 뒤였다. 그래도 보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천장을 뒤지다 그곳에 남아있는 바솔로뮤 숄토를 원주민 통가가 살해해 버린 것이다. 조너선에 의해 사건의 전말은 풀렸지만 보물에 얽힌 이야기는 그야말로 비극일 뿐이었다.

 

  셜록 홈즈의 활약, 왓슨의 연애(?), 그리고 보물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의 전말은 흥미롭게 펼쳐졌다. 홈즈가 너무나 완벽하고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했기에 사건의 전말이 첨가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권씩 책을 읽어나갈 때마다 홈즈와 왓슨 콤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에 빠지는 것 같아 다른 책에 펼쳐질 이야기가 무척 궁금할 따름이다. 홈즈와 왓슨, 새로운 사건의 이야기를 좇다보니 책 속의 다른 것들을 발견할 수 없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당분간은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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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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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국내외로 유명 인사들이 숨을 많이 거둔 해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전 대통령 두 분이 돌아가셔서 그런 생각과 허전함이 더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본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죽음이었기에 서민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크리라 생각된다. 그나마 그 분들의 삶의 흔적을 남긴 책들이 출간 되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위로가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서 읽을 정도의 열정이 내게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안타까움이 더해지리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지인이 선물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 한 권이 도착했다. 책을 보기만 해도 안타까움 때문에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을 모두 그려나간 것이 아닌 잠언집이라고 하기에 편안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들기 전 펼친 책이었는데,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정독을 하게 만드는 힘을 만나고 말았다.
 

  잠언집이라고 하기에 구구절절한 한 사람의 삶이 단편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짧은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는 경험이 바탕이 된 깨달음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것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감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견주어 볼 수도 없지만,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엉겁의 세월을 살아온 흔적 앞에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인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경지는 경험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을 해야만 깨닫고, 타인의 충고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경험으로 인해 알아차린 깨달음이 많았다.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힘겨운 삶의 과정을 거쳐 왔음에도 그때마다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과 출발선이 달랐고, 과정도 달랐기에 굳이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업적을 충분히 알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겉으로만 알아온 그 분의 삶이 중심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남달랐다. 삶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 분의 내면을 파고드는 짧은 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펼친 책장의 첫 장부터 나를 멈추게 하고, 그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지를 붙이게 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는 말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슴을 울리는 말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진과 인내, 초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회만을 일삼는 내게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단락은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이란 부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그런 만큼 이 책 중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들어 주었던 단락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현재 품고 있는 고민과 번뇌들을 명쾌하게 일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동질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지낸 분도 이런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용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삶을 바탕으로 일궈낸 경험이 있었기에 무심하게 훑어 내려가며 읽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하고,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너무나 먼 거리의 삶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될 때는 다시 읽어 보기로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짧은 책이었음에도 읽는 시간이 꽤 걸렸다.

 

  단편적인 글들로 깨달음을 응축해 놓은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책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청아한 울림을 받았다. '스스로 믿고, 나를 돌아보며, 하나의 가족으로, 더불어 사는' 의미를 전해 준 글이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본 분이 깨알 같은 메모들을 엮어서인지 더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엮은이도 그 메모를 보며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인생의 진실한 조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한 사람이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기록해 놓은 가까운 깨달음이기에 이 책에 실려 있는 시기와 때에 맞춰서 다시 꺼내 읽어도 느낌이 새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이란 단락에서는 부부에 대한 깨달음이 많았으므로 결혼을 앞뒀을 때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읽어도 좋지만 앞서 살아간 분이 흘려 놓은 삶의 흔적을 좇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너무나 많은 메모지가 붙어 있어서 그 문구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이 벅찰 정도다. 개인의 삶의 방향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듯이 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에 관한 글들이 좋았기에 틈틈이 다시 읽어보며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읽을 때마다 다르고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책을 꺼내보며 고인을 생각하며 구절 속에 갇힌 숨은 뜻들을 파악해 보면 나보다 먼저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자의 지혜를 빌려올 수 있을 것 같다. 짧지만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고 경험이 바탕으로 된 진실한 깨달음에 관한 책임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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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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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금씩 아파오는 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약국을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이미 옷을 갈아입은 뒤라 조카들에게 약 이름을 알려주고 심부름을 보냈다. 집 근처에 약국에 세 군데 있어서 설마 못 사올까 싶어서 내심 안심하고 보냈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모두 문이 닫혔다며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비슷한 위치의 약국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으면 다급한 사람은 어쩌라는 건지 잠시 푸념을 한 뒤, 헐레벌떡 뛰어온 조카들에게 수고비 500원을 쥐어 주고(배분은 알아서 하겠지.), 읽다만 책을 펼쳤다. 굳이 안가도 되겠다 싶은 약국을 조카들을 시켜서 가게 한 것은 존 버거의 소설에 나오는 아이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곳에서 아이다의 환영을 보게 될까봐, 조카의 손을 거쳐 내게 도착한 약에서 혹시나 그녀의 손길을 느낄까봐 그녀를 나의 현실로 끌어 내렸지만, 그런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다른 약국을 간다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진탕 아파 버렸다. 데굴데굴 구르고, 토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나니 정신이 몽롱했다. 오전 근무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 내리 몇 시간 동안 잠만 잤는데도 아픔은 가시지 않고, 배는 고프고, 생각들이 한정되어 버리는 것에 상실감을 느꼈다. 누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기에 책을 꺼내 읽었다. 손에 쥔 책을 다 읽었음에도 그 책에 대한 느낌을 남겨야겠단 생각보다, 어제 읽은 존 버거의 소설 속의 아이다란 인물이 자꾸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 속의 인물이었음에도 쉽게 간과할 수 없었던 아이다는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 그녀가 한 남자에게 쓴 편지들이 묻힌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이다는 감옥에 갇힌 한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테러리스틀 결성했다는 혐의로 이중종신형(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고, 그후에도 죽을 때 나이만큼의 기간 동안 시신을 감옥밖으로 내올 수 없다는 형벌.)을 받은 사비에르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새 교도소가 들어서면서 73호 감방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수감자였고, 협소한 수납 칸에서 아이다가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이 책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도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경위는 밝히지 않고 사비에르가 정리한 순서를 존중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아이다는 비교적 차분한 어투로 사비에르에게 편지를 썼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서 쓴 편지는 종종 붙이지 않았지만, 이중종신형을 당한 남자에게 쓴 편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차분하고 기다림이 서린 편지들이었다. 자신의 일상을 토대로 그와의 추억을 기록해 가는 그녀는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다양한 언어로 애칭을 바꿔가며 애정을 표시하고, 편지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사랑해요'라는 표현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연애편지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고, 유일한 교류 수단은 편지 밖에 없었다.
 
  돌아올 수 없는 이에게 쓰는 편지란 어떤 기분일까. 오래 전,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그리움을 가득 담아 편지를 쓴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이다가 갖는 먹먹한 기분이 조금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휴가, 면회, 제대라는 기다림이 있었던 반면 아이다는 그 모든 것이 단절된 상태였고, 강제로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밖에 전할 길이 없었다. 편지 안에 그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그리움만 내제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데, 거기에는 아이다와 사비에르에게 처해진 현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사비에르가 어떠한 연유로 잡혀갔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았지만 혼란스러운 국가, 억압당하고 강제성을 띠는 인권,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두려움이 늘 감지되었다. 그녀도 어떤 활동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저자의 설명대로 숨겨진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사비에르를 향한 그리움, 거대한 집단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한 인간과 무리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오랜 기간 사비에르에게 보내졌던 편지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녀의 그리움은 배가 되어 내 안에 맴도는 타인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잠시 책을 덮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아이다의 상실감에 어느 것도 비할 바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연덕스럽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상세히 기록해가는 아이다, 큰 사건을 일상처럼 말해야 하는 아이다, 처절할 정도로 사랑하는 이의 온기를 느끼고자 자신의 손을 그려 나가는 아이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갈라놓은 보이지 않는 힘에 저항심이 생겼다. 그런 아이다의 편지에 수긍하는 사비에르의 편지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보낸 편지의 뒷편에 사비에르의 메모가 있었는데, 난해하고 그의 해설이 필요한 짤막한 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글은 아이다에 대한 글이 아니었고, 세계 곳곳에 행해지는 반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개탄과 상대성을 그린 것이 많았다. 그 낯선 이질감에 몸을 떨면서도 사비에르가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그는 아이다의 편지의 뒷편에 세상의 곳곳을 누비며 보이지 않는 활동가다운 호소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더라도 사비에르가 아이다에게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 상세히 알 수 없었기에(아이다의 언급으로 조금 알게 되었지만, 소소한 것에 불과했으므로), 답답하기도 해서 그런 아이다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했다.
 
  아이다가 보낸 편지의 무게가 가벼웠더라면, 사비에르의 메모가 아이다를 향한 것이었다면 편지를 읽는 나의 마음이 어떻게 변모되어 갔을까. 아마 조금은 특별한 연애편지로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현재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저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지만.) 그냥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가 없다. 약국에서 일하는 아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전하며, 때로 활동가로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진부하게 늘어놓기도 하지만 사비에르 앞에서만큼은 한 사람의 여자이고 싶은 마음 또한 감추지 않았다. 아이다의 편지를 읽으며 사비에르의 메모가 무심하다 싶다가도 그가 한두 마디씩 흩뿌려 놓은 아이다를 향한 마음을 볼 때면 둘의 단절됨이 피부에 와 닿아 안타까웠다.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단절이 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세계화를 빌미로 이루어진 폭력과 자본세계의 병폐와 만인에게 가격되어 지는 불편한 진실을 파악할 힘이 내게 남아있을 리도 없었다.
 
  그 두 연인의 단절된 상황으로 나머지 배경을 파악해 나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이다의 절절한 편지, 사비에르의 개탄과 비난이 섞인 메모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과연 나는 행복한 것일까, 저들의 모습을 무시해도 괜찮을 것일까란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지만 그 둘의 단절 앞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이다가 얼마를 기다려야 사비에르가 돌아올지 알 수 없었고, 사비에르가 과연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편지의 뒷면에 그려진 '오늘 밤의 탈출 경로'를 통해 둘의 재회를 잠시나마 꿈꿔보게 되었지만, 그 또한 먹먹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들의 목숨이 내재하든 내재하지 않던 그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자의 말처럼 신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그들이 처한 상황들이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크지만, 그 바람은 아주 먼 얘기로만 느껴져서 내 존재가 너무나 미미하게 다가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존 버거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라 그의 신간이 나왔나 정기적으로 검색해 본다. 우연히 신간이 나온 것을 보고 바로 구입했는데, 그의 소설은 처음이거니와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고,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산문과 시, 평론을 주로 읽다 소설을 마주하게 되니 다시 한 번 그의 역량에 감탄하면서도 허공을 향해 흐릿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나를 자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아이다의 편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사비에르의 메모에 동감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존 버거가 그려낸 세계는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을 계기로 그의 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먹먹한 가슴앓이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다른 작품을 탐독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당분간은 아이다란 인물이 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을 갈망하며 그의 새로운 작품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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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뱀파이어 연대기 1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뱀파이어 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완독하고,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를 두 권 읽고 보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또한 낯설지 않았다. 먼저 읽은 책의 소재는 같았지만 내용은 달랐기 때문에 뱀파이어 연대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면서도 21권까지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거기다 이 책을 읽은 지인에게 듣자하니 내가 읽은 두 종류의 뱀파이어 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두 소설의 원조 격인 <뱀파이어 연대기>는 철학적이고 심오하다고 했다. 그 말에 기대를 하면서도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오하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하면 인간의 피를 마시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고,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를 따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읽은 소설들 속에서도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 주요 쟁점이어서 그들의 고뇌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는 인간에서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의 존재감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대부분 뱀파이어가 된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바쁜데 자신의 의지와 달리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한 젊은이가 뱀파이어 루이스의 고백을 녹음하면서 인터뷰하는 식으로 시작이 되는데, 뱀파이어가 된 과정부터 이야기해 나간다. 뉴올리언스 저택에서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던 루이스는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다. 삶을 포기한 채 죽음만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뱀파이어인 레스타가 찾아와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린다. 그때부터 루이스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며 끊임없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자기와 같은 동족은 과연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레스타가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이유는 죽고 싶어 하는 루이스의 나약해진 정신세계와 레스타의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서 루이스의 저택이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레스타는 루이스를 뱀파이어로 만든 후 종 부리듯 대한다. 뱀파이어가 된 후에 인간적인 면을 거의 잃어버린 레스타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적인 생각과 고뇌가 가득한 루이스에게 레스타는 절대 살갑지 않은 존재였다. 레스타가 좀 더 깊이 있는 내면을 가지고 행동하며 자신의 고뇌를 알아주었다면 루이스는 레스타를 증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복수하듯 인간의 피를 마시며, 물질에 욕구를 떨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득의양양한 모습은 루이스에게 절대 호감을 사지 못했다. 그럼에도 피를 마셔야만 생존할 수 있는 뱀파이어이기에 루이스 또한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스는 그런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다른 종족을 만날 수 없어 레스타 곁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의 시초가 어디서부터인지, 신은 과연 뱀파이어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 대지만 레스타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 문제부터 늘 레스타와 부딪히던 중 레스타는 어린아이를 뱀파이어로 만들게 된다. 피에 대한 욕구에 혐오감을 느끼고 방황하던 루이스는 죽은 엄마 곁에 울고 있는 아이 클라우디아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마신다. 그런 루이스를 지켜보던 레스타는 루이스에게 보란 듯이 클라우디아를 뱀파이어로 만들고, 루이스도 어느 정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세 명의 뱀파이어가 함께 했지만 그들의 생활이 평탄할 리가 없었다. 아이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레스타에 대한 생각이 루이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클라우디아는 좀 더 과감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루이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레스타를 혐오하게 된다. 그러다 레스타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독을 먹인 아이를 유인해 레스타를 죽여 늪에 수장 해 버린다. 그리고 루이스와 클라우디아는 자신들의 동족을 찾아 유럽으로 떠난다. 레스타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클라우디아의 행동을 탐탁지 않았던 루이스도 일이 그렇게 돼버린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다른 뱀파이어를 찾아 헤매는데, 그 과정이 좀 진부하게 이어진다. 영혼 없는 뱀파이어를 만나다 파리에서 드디어 자신과 같은 동족을 만나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생각하고, 그들의 우두머리에 속하는 아르망에게 시원한 답변을 요구하지만 되레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루이스가 늘 고뇌하던 존재의 근원에 대해 아르망도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아르망은 루이스를 본 순간 자신과 함께 할 동반자라는 것을 확신할 뿐이었다. 아르망은 클라우디아의 죽음을 예견하고, 클라우디아를 떠나 자신과 함께 하자는 충고를 한다. 그러나 과연 루이스가 클라우디아를 떠날 수 있을지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루이스와 클라우디아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으며, 뱀파이어를 만들어 준 이가 누구인지 숨기고 있었기에 다른 뱀파이어들은 그들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클라우디아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루이스를 놓아주기 위해 자신을 돌봐줄 만한 여인을 뱀파이어로 만든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루이스를 사랑하는 클라우디아는 좀 더 컸을 때 뱀파이어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고 레스타와 루이스를 원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운명 앞에 다가온 또 다른 죽음을 예비하지 못했다. 바로 레스타가 나타난 것이다. 루이스와 클라우디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다른 뱀파이어를 선동해 레스타는 클라우디아의 목숨을 노렸다. 루이스에게는 돌아오라는 부탁을 하지만 결국 클라우디아와 그녀의 보호자인 신생 뱀파이어는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클라우디아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던 루이스는 다시 뉴올리언스로 돌아가서 레스타를 만난다. 복수를 위해서라기보다 레스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찾아가지만 이미 죽음이 레스타를 점령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모든 이야기, 루이스의 이야기부터 그가 뱀파이어가 된 이후의 삶과 사랑, 고뇌는 끝이 났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청년은 루이스의 이야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루이스는 그 길고도 고통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도 뱀파이어가 되길 원하는 젊은이의 목을 깨물지만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루이스가 다른 연대기에도 등장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좀 더 긴박한 스토리를 원했던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지지부진함을 느꼈다. 줄거리를 잡아내기에도 복잡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루이스와 고뇌와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 반복되는 고뇌가 독자인 내게는 진부했고, 뱀파이어의 삶을 이렇게 알아갈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간직한 루이스란 인물에 어느 정도 기댔으면서도 그의 우유부단함과 방황에 지칠 때가 많았다. 인간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늘 고민하기에 뱀파이어의 고뇌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 루이스는 뱀파이어란 존재에 적응 못한 자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생각한다. 인간들 삶에 동화되어 가려는 다른 뱀파이어 소설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존재에 대한 고뇌가 가득했던 소설인 만큼, 루이스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들이 던진 해답 없는 질문을 나 또한 던짐 셈이었다. 그러나 결코 녹록치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것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필요한 성찰도 반복되면 피하고 싶어지듯 진부함을 깨고 나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그 뒤에 이어질 뱀파이어 연대기가 조금 더 유쾌해지길 바라며 잠시 떠난 뱀파이어 세계의 여행을 마치려 한다.

 

 

오탈자

 

440쪽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과 솟국치는 연기가 내 감각을 마비시킬 것 같았다. -> 솟구치는

 

452쪽

 

그래, 나는 그를 사랑하다. ->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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