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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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퇴근한 뒤 집에서의 내 행동을 보면 그날의 심경을 알 수 있다. 책을 바로 펼치면 나의 마음이 가장 평온할 때이고, 책도 보지 않은 채 인터넷 서핑만 하며 시간을 때울 때는 분명 내가 피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어제가 그랬다. 월요일은 몸이 아파 누워버렸다 치더라도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화요일,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보냈다. 머릿속으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울려대는 데도 무시하고 멍하니 인터넷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순간 이렇게 하루가 무심히 흘러가는구나, 오늘도 영락없이 허무하게 시간을 때워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져 버렸다. 컴퓨터를 끄고 누워서 뒹굴 거리니 새로 정리한 책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책을 보고 있어도 손이 쉽게 뻗어지지 않아 무거운 마음에 무게만 더한 채 여전히 뒹굴 거리는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번 주는 대대적인 책장 정리를 하느라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1,100권의 책을 빼고, 새로운 책장에 책들을 나눠서 정리하니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게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책장을 정리할 때, 침대 옆의 책장에 누워서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닿는 곳에 읽다 만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을 배치했다. 순전히 게으른 나의 성향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젯밤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자니 내 손이 뻗치는 곳들의 책들이 계속 눈에 아른 거렸다. 마음이 몹시 무거웠음에도 멍하니 그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손이 뻗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 최근에 읽다 만 책을 추려내니 장영희 교수님의 책이 손에 잡혔다. 아껴서 읽을 정도로 좋아한 책이었는데, 책장 정리한답시고 읽기의 흐름이 끊겨 버린 터라 서운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책을 꺼내 들었는데, 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는지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이 책 속의 수필들은 모두 샘터에 연재된 원고들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글이 많았는데, 저자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한 터라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연재한 것들을 묶다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는데 그야말로 재미나고, 슬프고, 감동적이고, 공감 가는 글까지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이 있었다. 그러다 "괜찮아" 란 글을 읽다 눈물이 나고 말았다. 저자가 어린 시절 불편한 다리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지 못하고, 집 앞 계단에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깨엿 장수가 와서 엿 두개를 주며 "괜찮아"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담긴 글이었다. 그 이야기도 마음이 찡해졌는데, "괜찮아"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곳에서 펑펑 울어 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이 말을 늘 내게 해주던 지인이 생각나서였다. 분명 일상을 피하고 있는 나에게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늘 엄습해 있었는데,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어디선가 나를 향해 그런 말을 해 주는 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모른체하려 했던 내 마음을 들켜 버린 양 감정이 무너져 버렸다.

 

  그 전까지는 저자의 글이 바로 내 주변에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달착지근하게 들렸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마치 내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착각이 일어 한 없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당면한 내면을 파고드는 글을 만나면서부터 저자의 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어갔다. 그냥 흘려버리는 글들이 아니라 그 글을 쓰고 있는 저자의 내면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저자는 늘 마감일에 쫓겨 글 소재를 찾느라 분주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저자를 떠올리니 마치 그녀의 일기를 읽는 것만 같아 마음이 저릿해지곤 했다. 암 환자로 불리기 싫어했으나 암 투병을 하면서 죽음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아련함 또한 다르게 다가왔다. 글을 쓸 당시에 언젠가 올 죽음을 배제한 채 썼다 하더라도, 저자의 죽음 뒤에 만난 글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이 그녀를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는 상실감보다,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일상의 지루함과 자신을 다독이는 내면의 갈등 속에서 생활해 가는 모습이 처연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죽음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녀가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다 간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일상이므로 그것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글 쓸 소재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 털털한 자신의 성격, 황당한 에피소드, 마음을 찡하게 하는 자잘한 사건들은 저자의 내면을 거쳐 왔음에도 별 다른 꾸밈없이 독자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교수라는 타이틀도, 장애인이라는 덧씌워진 시선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인간 장영희를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글들이 많았다. 그런 모습 때문에 독자인 나도 맘 놓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버릇이나 소소한 내면을 토로할 때면 맞장구 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저자가 겪은 경험으로 인해 간접경험 할 수 있어 색다른 묘미를 느끼기도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이야기, 학교 이야기, 틀에 박힌 일상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런 글 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영문학 교수이며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만으로 나름대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시선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지난한 희망을 말 할거라고, 어쩌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 생기 없는 눈빛으로 대하다가 5월에 소천 하셨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이제야 내게 손길이 닿은 그녀의 작품은 나의 편견을 철저히 깨어 주었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글에 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꾸밈없음, 솔직함, 더불어 독자를 평안히 이끄는 글 솜씨까지 그녀의 글 속에 녹아있는 모습은 순수한 저자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찔러댔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내 자신과 진실 되게 당면해 본 적이 있는 가란 질문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쉰이 넘은 교수도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냐?" 란 소제목의 글이 나의 생각을 더 관철시켜 주었고, 토마스 머튼이라는 신학자가 했다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 때 마침 내 마음에 안착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를 알았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무엇을 발견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은 셈이다. 읽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답을 얻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문학의 매려이지만, 이 책에서 내가 찾은 질문은 내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글을 통해 29살인 내가 이제야 내 자신을 찾으려 한다는 말이 철딱서니 없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저자도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온 삶의 과정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냈으므로 나도 용기를 얻어 본다.). 부디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길 바라며, 좋은 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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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책장이 도착한다. 월요일에 주문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지낸 날들하며, 책들이 쌓여 갈 때마다 답답했던 마음을 싹 날려 버릴 수 있는 날이다. 책장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 침대 옆에다 넣다 보니, 집에 도착해서 바로 침대를 빼고 바닥을 청소했다. 침대가 15년 전 언니가 신혼 때 사온 침대라 무척 구식이다. 나사를 풀어서 해체하고 조립해야 하는데, 침대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진땀을 뺐다. 침대를 빼고 보니 바닥에 먼지가 장난이 아니어서(몇 년 간 청소한 일이 없다. 그 먼지를 내가 다 먹었다 생각하니 바로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청소하는데 만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침대를 거실에 빼놓고 빈 벽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지저분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역시나 10년 전에 이사 오면서 도배, 장판을 안해서인지 무척 우중충했다.
 

  4시 반에 도착한다는 책장이 6시가 되서야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책장이 3개였는데, 아저씨 혼자서 낑낑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작아 책장이 들어오지 않아 아저씨는 계단으로 올라오셨다. 그래도 2개가 남자 엘리베이터 천장을 뜯어내고 책장을 겨우겨우 실을 수 있었다. 나도 따라 내려가서 책장을 실고 내리는데 약간 도왔다. 드디어 내 방으로 옮기는데 집에 어른은 나뿐이라서, 배송 온 아저씨와 둘이서 날랐다. 책장을 나르다 발등에 영광의 상처를 입었지만, 책장이 들어온 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대충 반창고만 붙여 두고 계속 도왔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들이고 보니, 집이 오래돼서인지 수평이 맞지 않았다. 바닥과 벽이 삐뚤어서 나무판 얇은 것을 대어 책장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켰다. 그렇게 십 분여를 실랑이를 하고나서 책장이 드디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말복인 오늘, 땀을 뻘뻘 흘리며 책장을 날라다 준 아저씨가 고맙고 미안해서 물 한잔과 땀 닦을 수건, 아저씨도 발가락을 다치셨기에 대일밴드를 드렸다. 아저씨는 가시기 전에 거실의 책장과 내 방의 책장을 보시더니, 온 집에 책뿐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아,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장 정리만 남았다.
 

 

 

원래는 책장을 천장까지 맞추고 싶었으나 거실 책장 높이를 2.2m을 한 바람에 계단으로 옮긴 기억이 있어서인지 형부가 급구 말리셨다. 그래서 10cm를 줄인 2.1m로 했는데 위 공간이 조금 보기 싫게 남아 버렸다. 칸을 막기가 그래서 오픈 형으로 했는데, 저기에 무엇을 올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급한 건 그것이 아니라 저 책장 안에 쌓인 책들을 내 맘에 들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책꽂이에 넣을 책은 약 600권 정도였고, 장르별로 구분해서 넣고 싶었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나의 손길이 자주 가는 곳에, 안 읽는 책들은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넣고 싶어 책이 장르별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한 권씩 꽂을 때마다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선은 책장에 책을 넣으면서 분류를 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는데, 맘에 드는 곳에 꽂아도 옆 칸과 책들이 맞지 않거나 분류할 장르가 너무 많아 계속 책장 안에서만 헤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오늘 다 못 끝낼 것 같아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책이 절반 쯤 들어갔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다름이 아니라 책장에 책이 많이 꽂혀 있음에도 꽂아야 할 책이 너무 많이 남아 버린 것이 아닌가. 거기다 제일 아래 칸은 침대 높이 때문에 일부러 가장 크게 만들어서 책을 꽂을 수가 없어 공간은 더 줄어들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책을 꽂다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못 꽂을 것 같았고, 세분화된 책 정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정말 고대하던 책장을 주문하고, 이렇게 책이 왔건만 다 못 꽂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기존에 있던 책장에서 빼 버린 책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책장은 동네 책방이 폐업할 때 얻어온 <CCTV 작동 중>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장이었다. 기존의 책장을 25cm 옆으로 당기는 바람에 너무 답답해서 빼 버린 책장이었는데, 책장이 부족하다 보니 그 책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궁리 끝에 침대의 머리가 들어올 곳에 넣어봤는데, 침대 높이 때문에 책장 3칸을 고스란히 쓰지 못함에도 위로 5칸을 쓸 수 있어 그대로 넣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침대와 책장 사이의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그 책장이 들어와도 문제가 없었다. 그 책장까지 포함해서 책들을 넣으니 공간이 얼추 맞아, 멈췄던 책 분류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책장 정리를 위해 집에 좀 빨리 퇴근해 4시가 조금 못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책장 정리를 끝내고 보니 11시 반이었고, 저녁은 대충 책장 정리하면서 때운지라 고스란히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7시간 이상을 쏟아 부은 셈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대충 정리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고대하고 기다린 만큼 내가 만족하는 책장의 모습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교적 느긋하게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책장을 보니 너무 뿌듯했다. 발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왔지만, 책장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온통 책들뿐이라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당분간은 소원이 없어도 될 정도로 뿌듯하고 기쁘고, 자극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나만의 책장이 드디어 완성 되었다.


 

 

이것이 7시간을 투자한 완성된 책장이다. 청소하는 데 1시간 이상, 고심하고 이리저리 책장을 재보는데 시간이 꽤 걸렸으므로 온전히 책 정리만으로 7시간이 든 것은 아니었다. 제일 아래 칸은 침대 매트리스가 들어오면 어차피 쓰지 못할 칸이므로 그동안 내 방에 굴러다니던 짐들을 모두 넣었다. 어찌나 깔끔한지 오히려 책장 덕에 다른 짐들도 수납이 되어 내 방이 단순하고 정리가 잘 된 방으로 변모해 갔다. 

 

 

 

매트리스를 넣었다. 이것이 완성된 나의 방 모습의 최종이다. 그야말로 내가 상상했던 방 그대로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이고 가운데 침대가 있는 방. 방이 넓지 않아 책장을 먹고 들어가지만, 침대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이런 모습으로 완성 된 내 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리 굴러도 저리 굴러도 온통 책뿐이니 부지런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장에 원래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이 같이 있었는데, 안 읽은 책들을 모두 빼버리고 읽은 책들만 새롭게 정리했다. 이 책장 정리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안 읽은 책이 더 많아서 빈 책장들이 보인다. 그 책장에는 오늘 새로 들어온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이사 올 예정이다. 어떠한 책들이 이사 올지 나 역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젠 책장이 디카에 다 찍히지도 않는다. 아, 정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다. 내가 원하는 방이었고, 내가 꿈꾸었던 방이었다. 너무 좋다! 형부는 내 방을 보시더니 "완전 책판이군!" 하셨지만 난 그 소리도 듣기 좋다. 이 책들을 이제 잘 관리하고, 읽고, 사랑하며, 동고동락 할 생각을 하니 몸은 부서질 것처럼 피곤해도 기분은 끝내준다. 책들에게 제대로 된 집을 선물해 주었고,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이 책들이 무척 고맙고 살갑다. 앞으로도 책이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잠잘 곳을 줄여서라도 너희들을 편안하게 해줄 테니, 책들아 내게로 오렴!
 

 

  책장 정리 체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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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짱 2012-06-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하세요!!
진정한 애서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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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의 시 154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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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지인의 집에 놀러갔다. 간 김에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는데, 놀다 보니 12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그 시간에 잠을 자도 다음 날 피곤할 것을 앎에도 적막한 분위기가 좋아 책을 펼쳤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라서 고요한 가운데 풀벌레 소리를 들으니 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가져간 책이 그런 분위기에서 읽기 좋은 시집이라서 몹시 피곤함에도 눈을 부릅뜨고 시를 읽어 나갔다.
 

  적막한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신현림 시인의 시집은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흐트러져 버릴 시가 아닌 주변의 소음을 삼킬 정도로 내면을 울리는 시들이 많았다. 시집을 좋아하면서도, 책장에 읽지 않은 시집이 즐비하면서도 쉽게 손을 뻗을 수 없던 이유는 시의 난해함 때문일 것이다. 문학의 꼭대기에 위치한 장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선뜻 즐겨 읽을 수 없었던 장르인 시를, 신현림 시인을 통해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마치 일기를 읽는 듯 시인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며, 내면 깊숙이에 자리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세계를 기꺼이 보여줬음으로 인한 동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리라.

 

  그녀의 시를 접한 적은 없지만, 6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꾹꾹 눌러 담은 흔적이 자연스레 배어나왔다. 아픔, 상실, 사랑, 고통 들이 마치 춤을 추듯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음에도 독자의 감정을 바닥으로 끌어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인의 내면을 보면서 내 안에 숨겨 두었던 어두운 감정들이 쏟아져 깨끗해진 기분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잠이 오지 않는 날 우울함에 발버둥 치던 나의 모습, 사랑의 아픔으로 슬픔에 빠졌던 나날, 왠지 모를 상실감에 울적해진 마음을 한 권의 시집에서 모두 만난 느낌이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같은 감정들도 나 혼자만이 가지는 느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되레 위로를 받고 있었다. "변하는 관계, 유통기한의 세계가 낯설어 적응 못하는 나/지루한 삶을 못 바꾸는 내가 싫어 몸에 불 지르고 싶거나/(중략)/정말 속의 씨앗도 못 보고 탄식하는 내가 싫어<아직도 가야 할 길>" 란 시구는 나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움찔하면서도 한 번 더 음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집 안에는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들과 여행 시들도 실려 있었다.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무언가 글로 남겨보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도 쉽지 않았는데,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짧은 시로 이처럼 맛깔나게 표현해 내는 것에 감탄을 하곤 했다.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장황하거나 거창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시로 포현해 내는 솔직함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 이외에도 시에 대한 갈망, 사랑에 대한 열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신현림 시인의 키워드가 '솔직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면의 바닥까지 샅샅이 드러낸 그녀의 시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나라면 이토록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질 정도로 진솔한 그녀의 시는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읽은 시집임에도 다른 문학 장르만 읽어댔던 공백기를 깨트려 주기에 충분한 시집이었다. 시에게 한껏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은 신현림의 시를 통해서였고, 그녀의 시집을 처음 접함에도 낯섦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침대를 통한 그녀의 고백도 공감이 갔고, 사랑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도(나 또한 아직 연인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세상을 향한 시이면서도 자신을 향한 시이기도 한 신현림의 시집 <침대를 타고 달렸어>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보이지 않은 위로를 던져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이든, 사람이든 "다시 못 만날 때를 생각하며 사랑해라/영영 다시 못 만날 때가 오니 깊이 사랑해라<엄마의 유언, 너도 사랑을 누려라>" 라고 말한 저자처럼 사랑을 통한 희망을 가져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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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카프카 전집 3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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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펼친 책은 카프카의 <소송>이었다. 26살 생일에 선물 받은 책인데 2년을 묵혀 두다 꺼냈음에도 결국 완독을 못하고 말았다. 기차 안에서 읽은 양 그대로 책장에서 또 1년을 묵히고 올 여름 또 다시 <소송>을 꺼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여름에만 꺼내게 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기보다 여름이란 계절이 가져다주는 더위와 진부함, 육체의 늘어짐에 대한 보상을 이런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계절과 반대되는 분위기의 책을 찾는 것보다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통해 함께 나아가는 것. 카프카의 <소송>이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를 의심치 않았다. 그의 작품은 <성>밖에 읽지 않았지만, 무척 힘겹게 읽은 작품이었음에도 미완성으로 끝나 좌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경험 덕에 카프카의 작품이 녹록치 않음을 알기에 여름에 느껴지는 진부함을 묻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작년에 읽은 절반 정도의 양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을 용기가 없어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읽어 가면서 앞의 내용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처음에는 새로운 소설을 읽는 듯 낯섦이 가득해 혼란스러웠다. 어느 정도 읽어 나가자 상세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떤 분위기였는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여전히 주인공 요제프 카의 소송은 진행 중이었고, 소송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으며, 왜 소송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토로하기도 하며, 충고를 받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소송의 원인에 대해서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책의 시작은 카가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30살의 생일을 맞은 날 아침, 자신의 침대에서 체포된 카는 아무런 잘못도 없기에 누군가가 자신을 모함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받아들이며, 소송의 실체가 드러나면 자신의 무혐의는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소송의 진위는 모호했고, 카가 아무리 노력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도 소송의 원인의 밝혀짐은 물론 과연 소송의 중심에 카가 온전히 서 있는지에 여부도 의심이 되었다. 소제목을 달고 있는 사건들 사이에 늘 카가 있었지만, 소송과는 무관해 보이는 일도 많았고 소송의 진부함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을 뿐이었다. 카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은행에서도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자신을 옥죄고 드는 소송에 휘말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카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주려는 손길이 있음에도 소송의 실체를 모르고, 자신이 노력해 봐도 '법'의 언저리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카의 그런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보면, 소송의 중요성이 크게 와 닿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진부하긴 하지만 언젠가는 진위 여부가 밝혀질 것이라 생각하고, 카가 맞이하는 일상과 생각들을 별 부담 없이 읽어 나갔다. 때론 카를 비롯한 타인과의 대화가 이질적이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하는 비유에서 문화의 차이를 느껴 소송의 중요성을 망각할 정도였다. 소송 때문에 찾아간 곳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카를 둘러싸고 있는 소송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면서도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카와 함께 보냈음에도 결말 앞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의 진부하고도 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는 두 명의 사형 집행인들에게 의해 잔인하게 처형되고 만다. 카가 어떤 잘못을 해서 소송에 휘말렸는지 설명을 해 주지도 않은 채, 카가 당면한 지난함만 보여 주고 '개' 같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어쩌면 책 내용 가운데 카가 당면하고 있는 소송의 이면인 법의 무자비함과 법의 테두리 밖에 머물러 있음을 이미 알려 줬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충고 속에 카가 당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 몇몇 장면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카가 잔인하게 처형당할 정도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모함이든 장난이든 원인을 규명해 주어야 하는데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카는 형장의 이슬도 아닌, 개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 그랬다. 옮긴이는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정신적, 영혼적 세계와 그와 상반되는 현실세계가 만나는 중간 상태를 시작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서로 괴리되어 있던 두 세계를 동시에 접하게 한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에겐 그런 괴리의 접함이 당황스러울 뿐,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 카프카의 <소송>은 원전 텍스트 비판 문제로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막스 브로트판이 유일한 것이었으며 카프카에게 직접 원고를 건네받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수정, 보완해서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다 브로트의 사후 카프카의 유족들에게 원고가 돌아갔고, 영국 독문학자 M. 패슬리에 의해 학술 비판본이 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패슬리의 비판본으로 원고 그대로 실려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완성의 장들도 있는데, 그 장들도 역시 원본에 충실했다. 소설을 읽고, 미완성 된 부분까지 읽는 경험 또한 독특했지만 <소송>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 아쉬웠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이렇게 모호했음에도 카프카의 다른 작품은 여전히 궁금하다. 오래 전에 선물 받은 카프카의 다른 작품이 있지만, 카프카의 가장 난해한 3대 소설을 완성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실종자>를 읽어보려 한다. 카프카와의 만남이 더디긴 하지만 저자와의 만남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에, 당분간은 만남 자체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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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타락천사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A. M. 젠킨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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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겉표지의 섬뜩한 소년과 책 제목은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읽을까 말까를 몇 번 망설이다 책이 내게로 왔음에도 쉽게 손길이 가지 않았다. 내면에 있는 타락함을 그렸게니 생각해봐도 혹시나 우울하게 만들어 버릴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망설이다 책을 집어 들었건만, 너무나 흡인력 있게 다가오고 전혀 우울하지 않는 내용에 잠시 멍해졌다. 이런 내용이었다면 진작 읽었을 텐데, 오히려 겉표지와 책 제목이 거리감을 두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반대로 인간의 타락을 만끽(?) 하려 책을 펼쳤다면, 역시나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 이야기를 타락이라고 할 수 있을지 쉽게 결론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락천사 키리엘은 십대 소년인 숀의 육체를 훔쳤다. 훔쳤다고 표현이 적절한 것은 교통사고로 영혼이 빠져나간 그 사이에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들어오면서 진짜 숀의 영혼은 떠나갔지만(그것을 숀의 죽음이라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육체는 그대로 남아 겉의 숀은 여전히 존재했다. 물론 키리엘의 행동은 그들 세계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지옥에서 감독을 해야 하는 키리엘이 인간 세계로 내려온 것도 그렇고, 육체 탈환을 한 것도 그랬다. 키리엘의 목적 또한 불순했기에 나의 섣부른 짐작으로 결코 고운 시선을 던질 수 없는 내용들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론상으론 모든 것을 알지만 경험이 부족한 키리엘에겐 인간세계는 그야말로 호기심을 맘껏 충족할 수 있는 세계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깨달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갔다.

 

  키리엘은 십대인 소년의 육체에 들어온 만큼 그 나이 대에 생각할 수 있는 불순한 것들을 생각하고 실행해 보기로 한다. 섹스를 하고 싶어 하고, 자위를 경험하며,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십대인 만큼 숀의 관심사는 성적인 것들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는데, 키리엘 또한 경험해 본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그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키리엘이 하는 행동들과 생각들이 숀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느끼는 생리욕구라든가 자연스레 갖게 되는 다양한 인간의 조건들이 오로지 키리엘의 의지대로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숀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숀은 평상시와는 좀 달라 보일 뿐, 숀 이외의 존재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없었다. 고양이 피너츠와 숀을 좋아하는 레인 정도가 숀의 변화를 감지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키리엘의 불손했던 마음들을 하나하나 실행시키기 위해 숀의 육체를 빌어 계획을 하나씩 세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키리엘이 가장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은 섹스였는데, 자신을 좋아하는 같은 학교 학생인 레인에게 접근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는다. 오히려 레인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인간세계에서 시간마다 느끼는 모든 경험들을 만끽하는 것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옷의 느낌, 시각, 음식의 맛 등 키리엘은 인간에게 적응하기보다 이론상으론 빠삭한 것들을 경험해보는 데에 더 치중했다. 그러나 키리엘의 내면은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자신의 신분은 타락천사이고, 자신을 분명 데리러 '보스(타락천사의 우두머리)'가 나타날 것이며, 영원히 숀의 육체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숀의 육체에서 하루를 보내도 자신에게 복귀하라는 명령도, 숀이 아니라는 비난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키리엘은 숀이 살아왔던 세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숀은 함께 살고 있는 엄마와 남동생 제이슨,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베일리와 자신을 좋아하는 레인에게 초점을 맞춰 생활해 간다. 이 책은 키리엘이 숀의 몸을 빌려 3일 동안 체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정말 인간세계로 내려온 적이 없는 것 같은 타락천사가 적응해 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세했다. 또한 인간에게 느껴지는 감정에도 충실했다. 숀의 원래 모습은 그다지 살갑지도 않고, 동생과 잘 지내지 못하며,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친구라곤 베일리뿐인 평범하지만 별 특징 없는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의 몸에 키리엘이 들어갔으니, 키리엘의 인격과 습관들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숀과는 전혀 다른 행동과 생각들로 키리엘은 인간세계에서의 3일을 빠듯하게 보낸다. 3일이라는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화 되어 가는 키리엘을 보는 것은 그만큼 흥미로웠다.

 

  숀의 변화는 인간관계에서 바로 나타났다. 평상시에 잘 지내지 못했던 제이슨과 엄마를 마음 써 주며, 불순한 마음으로 접근했지만 정말 레인을 좋아하고, 학교의 말썽쟁이에게 훈계를 하는 등 평소의 숀 답지 않은 행동들을 한다. 오히려 그런 키리엘을 지켜보면서, 타락천사가 아닌 원래의 숀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원래의 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들어왔을 때는 몸의 주인보다 더 나쁜 행실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숀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상대방을 배려하고, 충고하고, 조금씩 정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육체를 잃어버린 숀에 대한 안타까움은 들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키리엘이 계속 내면에 머물러 그렇게 주위 사람들과 성실하게 얽혀가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고, 불법을 저지른 채 인간세계로 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키리엘이 보여준 모습과 행동들은 10대 소년이 가질법한 것들이면서, 추락천사인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신에게 관심 받고 싶어 하며, 불평하고, 비난하고 힐난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세계에서 느끼는 작은 것들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신에 대한 감탄 일 수도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책의 제목을 '내 안의 타락천사'(악행을 저지르는 존재가 아닌 숀 안에 자리한 키리엘 자체로도 볼 수 있지만)가 아닌 '타락천사의 인간세상 체험기' 정도로 바꿔도 될 정도로 긍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체험한 인간세계는 3일에 불과했고(3일이라는 시간이 부활과 연관 있어 보였다. 누구의 부활일까.), 처음 먹었던 불순한 마음들을 실행하지 못한 채 숀의 육체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가 숀의 육체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숀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렸는데, 천사가 나타나 숀의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려 했다.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들어왔던 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키리엘의 인간 세계 체험기를 끝내려 했다.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들려주지 않은 채 책은 끝이 나지만, 키리엘이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에서 과정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하므로 결론에 와서 큰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키리엘이 '타락천사'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세계를 살아가 주었으면 하는 갈망은 여전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숀의 정체성은 잃어버린 채, 키리엘이 들어와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자리(삶)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내 안에 들어와 평상시의 나보다 더 잘 살아간다면, 질투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기에 그것만으로 특별하므로 여전히 '나'여야 했다. 그런 것들을 따져본다면 키리엘이 경험했던 인간세계의 3일의 소중함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조금은 진부한 깨달음이 나를 지배했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현재도 내게는 무척 과분한 시간임을 감사해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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