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That Dog 아주 특별한 시 수업 일공일삼 53
샤론 크리치 지음, 신현림 옮김,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그림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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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신현림님 시집 제목을 검색하다 보니 이 책도 같이 검색대에 올라왔다. 왜 검색됐을까 하고 살펴보니, 신현림님이 옮긴이로 되어 있어서였다. 그러다 이 책의 저자를 보게 되었는데 청소년 문학 작가로 좋아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저자가 아닌가. 이런 발견이 너무 기뻐 망설임 없이 구입해서 책을 받고 보니 너무 예뻤다. 책도 얇아 아껴서 읽으려고 했는데, 잠들기 바로 직전에 머리맡에 놓아 둔 책을 집어 들고 말았다.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리는 깊은 밤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쌓아둔 책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느낌은 바로 이런 책을 만날 때일 것이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시 수업' 이라고 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집을 종종 읽긴 해도 여전히 내게는 어려운 장르이며, 거기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썼다고 하니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잭이란 소년이 스트렛치베리 선생님에게 쓴 '시 쓰기 싫어요/시는/여자애들이나 쓰지/남자애들은 안 쓰거든요' 란 시가 나를 맞이했다. 그렇게 잭의 시는 이어지고, 시 속에서 스트렛치베리 선생님의 지도가 드러난다. 잭은 시에 흥미를 갖지 못한 소년이었고, 수업과정에 있으므로 시를 억지로 써본다. 그런 잭을 도와 선생님은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읊어준다. 그러면 잭은 그 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을 토로하기도 하고, 숙제를 내주니 어쩔 수 없이 모방을 하면서 비슷하게 시를 써보기도 한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잭이 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우면서도 즐겁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잭이 지어내는 시를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잭은 그런 모든 과정을 시로 쓴다. 때때로 선생님은 잭의 그런 시를 게시판에 잭의 부탁으로 '익명'으로 붙이기도 하고, 잭이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재치 있는 방법으로 알려준다. 그 가운데 저자가 직접 지은 '사과'라는 시를 본 순간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잭에게 시의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저자는 사과 모양의 시를 만들어 낸다. 꼭지, 냠냠, 벌레, 우웩, 사과, 맛있어 이런 단어로 사과 모양의 글자를 넣어 사과를 표현한 시였다. 잭은 그 시를 보며 감탄한다. 시를 그렇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재미있어 하면서 자신도 선생님을 따라 모양 시를 만든다. 잭은 자신이 키웠던 개 모양을 따라 시를 만들어 내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잭에게는 시를 짓는 즐거움도, 자신이 키웠던 개에 대한 추억을 꺼내는 계기가 된다.

 

  그러다 선생님이 읊어주는 시 중에서 '월터 딘 마이어스'의 <그 소년을 사랑한다>란 시를 보며 잭은 여태껏 읽은 시들 중에서 최고라고 말한다. 시인이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시였는데, 잭은 그 시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이 사랑했던 개를 끄집어낸다. 시의 마지막에 나왔던 "어이, 우리 아들!" 은 잭의 아빠가 아침마다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고, 노란 개 스카이에게 잭이 매일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잭이 마이어스 시를 좋아하자 선생님은 시인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한다. 잭은 망설이다가 직접 시인에게 편지를 쓴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 방문해서 게시판에 붙은 시들을 봐줬으면 한다고, <그 소년을 사랑한다>란 시가 참 좋다고 말한다. 그 사이 잭은 시를 통해서 스카이의 기억을 펼쳐 놓는다.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온 스카이와 함께 한 추억과 자신이 스카이를 불렀던 호칭들과 스카이가 어떻게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되었는지를 시로 쓴다. 잭은 선생님이 시에 대해 마음을 열게 해 준 덕분에 자신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던 스카이에 관한 아픈 기억을 털어 놓으며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마이어스 씨에게 답장이 오고 잭은 흥분에 휩싸인다. 시인이 직접 방문한 일은 잭에게 무척 영광스런 일이었고, 잭은 최고의 날을 보낸다. 그리고 마이어스씨에게 감사 편지를 쓰며, 마이어스씨 시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그 개를 사랑한다>라는 시를 동봉하며 독자에게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시는 공개된다. 그 시는 스카이를 잃은 슬픔보다 스카이를 추억할 수 있게 씌여졌다. 스카이가 잭 곁에 없어도, 추억할 수 있는 시가 있으므로 더 이상 잭이 슬프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는 시였다. 잭은 선생님과 시를 쓰는 수업을 받으며, 마이어스씨의 시를 읽고 그를 직접 만남으로써 이미 치유를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시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함께 마음 속에 숨겨 두었던 상처까지 꺼내고 위로를 받았으니 이 수업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고, 잭에게 시를 가르쳐 준 스트렛치베리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29살인 내가 읽어도 무척 좋은 책이었고, 시를 쓰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사이에 싹튼 우정과 존경심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잠들기가 아쉬워 펼쳤던 책인데, 나를 웃음 짓게 만들고 책을 통해 얻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흔하지 않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 어디에선가 스트렛치베리 선생님 같은 분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독자로써 이런 광경을 바라봐도 뿌듯한데, 현장에서는 어떠한 스파크가 일어나며 기분이 느껴질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우연히 내게로 온 한 권의 책 <아주 특별한 시 수업>은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또 다른 감동으로 똬리를 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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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 2022-08-0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르누아르 : 인생의 아름다움을 즐긴 인상주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7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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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중순 쯤, 서울에 일이 있어 간 김에 전시회나 보자 싶어 르누아르 전(展)을 관람하고 왔다. 전시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다 평일이여서 그나마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국내에서 열리는 유명 전시회를 몇 번 다녀봤지만, 늘 사람에 치여 그림보단 사람구경을 더 많이 하고 온 기억밖에 없다. 소란스럽고 복잡하기만 한 전시회의 풍경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싶었는데, 비교적 한산해서 여유롭게 그림들을 보고 왔다. 그러나 12,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내가 관람한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미술관에 사람이 정말 눈에 띌 정도로 없었다면 3시간이고 보고 왔겠지만,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에 약간의 답답함을 느껴 후다닥 보고 나와 버렸다. 거기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는 것을 싫어하므로, 그야말로 그림에 눈도장만 찍고 온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을 관람하고 왔다. 그럴 거면 뭐 하러 비싼 입장료 내고 전시회를 가냐 묻겠지만, 사람들이 가까이서 그림을 들여다 볼 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그림의 맛을 잊을 수 없기에 가는 거라고 억지스런 핑계를 대 본다.
 

  그 때 보고 온 그림들의 아른거림이 희미해 질 때쯤, 이 책이 내게로 왔다. 르누아르 전시회를 다녀 온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아 괜찮은 연결이 되겠다 싶어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미술책이므로 그림이 많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소책자였다. 나 또한 전시회에서 본 그림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책의 구조에 질려 책을 읽다말다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림을 많이 실어야 하는 책의 구조상 여기저기 글들을 펼쳐놓아야 함을 이해한다. 그리고 작은 책에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싣고 싶었음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상, 그림들이 조각조각 실려 있고 글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는 구조가 르누아르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는데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는데도 거슬렸던 것이다.

 

  이 책에 당연히 르누아르의 그림과 생애, 그리고 그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그림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가 실려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르누아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시대에 같이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묶기도 하고, 비슷한 화풍의 화가들을 묶어서 독자들을 이해를 도왔다. 거기다 르누아르가 활동했던 시대의 배경도 알려주고 있어 거시적 시점을 키워주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겐 오히려 그런 시점이 초점을 흐리게 했고 이해를 분산시켰다. 르누아르의 그림세계를 느끼기도 전에 다양한 정보들이 동시에 드러나니 집중력 약한 내가 그것을 견뎌낼 리 없었다. 미술책일지라도 활자에 중독된 나로서는 글씨에 먼저 관심이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글을 모조리 읽어야 그림이 보였기에, 글을 읽고 그 다음에 다시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쉽게 지쳐 버렸다.

 

  미술 책을 미술 책으로 보지 않고, 읽기에 치중한 나의 시각이 어리석었을 수도 있다. 책에 따라 읽는 방법을 달리 하고, 미술 책일 때는 그림을 보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미술 책이라도 눈에 확 들어오는 동시에 그림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책들도 있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감정의 이입으로 르누아르의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긴 푸념을 읊어대고 있는 것이다. 전시회에서 본 그림들이 종종 나왔음에도 현실감이 떨어졌음은 당연했다. 책의 끝까지 그 과정을 뚫고 나오지 못한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르누아르의 화풍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고흐만 보더라도 시기에 따라 그림이 사뭇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기마다 드러나는 특징을 조금씩 감지해 내며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내는 재미가 있는 고흐 그림을 보다보니, 르누아르의 그림들을 보면서도 그런 변화를 조금씩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유명한 화가를 기억할 때는 역시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그림들을 먼저 보게 되며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보면 그 외의 작품들이 낯설 수밖에 없고, 초기작이라든가 경지에 오르기 전의 과정을 짐짓 놓쳐버릴 수도 있다. 고흐를 통해 그 과정을 다져 놓아서인지 이 책에서 그 흐림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냐에 따라, 어떠한 시대에 살아가며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성향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 화가다. 모든 화가들을 이 조건에 결부시킬 수는 없지만, 르누아르 또한 그러한 변화를 뚜렷이 드러냈으므로 화가의 탄생에는 많은 것들이 시기적절해야 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런 시기적절함을 만나지 못한 화가들도 많고, 시기적절했다 하더라도 더 큰 잠재력을 뚫고 오지 못한 화가들도 많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을 뚫고 온 화가라고 생각한다. 마치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 그림에 온 열정을 쏟은 그의 그림을 시대별로 나눠보면 뚜렷한 개성이 드러난다. 그의 화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모든 것이 순탄한 듯 보이다가도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는 조금씩 어두워지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때는 인상주의의 화풍을 따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지만, 인상주의가 시들해지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며 자신을 자극시켜 줄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등 그림으로 자신을 내면을 표현해 내는 것에 진솔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붓 터치의 미세한 변화에도 여러 감정에 휩쓸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가 그려낸 그림들과 변화시켜 가는 그림들 속에서 르누아르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이면에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과 인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들은 것 같다. 그의 그림을 보는 내내 그런 이끌림을 끌어낼 수 있는 화가들이 현 시대에도 많이 나타났으면 하고 바랐다. 거기다 획일화된 시각 속에 갇혀 자유로운 내면을 표현해 내는 화가들이 묻히지 않도록, 넓은 시각을 가진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런 생각을 하며 르누아르와의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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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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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 문학이 너무 좋다. 청소년에 관한 책을 보면서 마치 내가 다시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된다. 이 책도 나오자마자 관심이 갔다.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국외문학에 치우쳤던게 사실이었고, 이번 계기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제목까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남들처럼 심하게 공부에 치여 학창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의 양이 다를 뿐, 분명 나를 괴롭히는 요인 중의 하나였고 내면으로 치열함을 달고 살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고뇌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다 성적에만 열을 올리고, 자신이 정해놓은 길로 자녀가 가야만 안심이 되는 부모는 우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책 속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고뚱땡 은비, 꽃미남에 사족을 못 쓰는 지형, 꼬마라고 하면 까칠함이 극에 달하는 소울, 예쁘고 착하지만 머리가 텅 빈 혜지까지 네 소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발랄하면서도 처절했다.

 

  은비는 의대에 가라는 엄마의 성화를 견뎌내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 '모란반'에 속해 있지만 은비가 하고 싶은 것은 연기였다. 살이 찌기 전에 연기 학원을 다녔고 재능도 있었다. 그러나 살이 찌고 부터는 그 꿈을 접어야 했고, 은비 엄마도 의사를 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 같았다. 지형이도 '모란반' 이었다가 성적이 떨어져 짤렸다.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지형이를 부모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형은 그야말로 꽃미남만 봤다 하면 사족을 못쓰고, 근처의 남고의 얼짱 팬클럽에 가입해서 활약을 할 정도다. 10년만에 소울을 얻었다는 부모는 소울을 아기 취급 했고, 키가 작아 '꼬마'라고 놀리면 은비에게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 까칠하고 정의에 불타는 아이다. 혜지는 성격도 좋고,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좋고, 집도 부자인데 반에서 꼴지다. 각각 다른 이 네 아이들은 학교 생활과 자신들의 고민, 그리고 세상과 어우러져 가는 모습을 은비의 시선을 통해 그려 나간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일상은 어쩌면 여고생들이 만들어내는 평범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그 아이들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물론 자녀가 잘못 되라고 나무라는 부모는 없겠지만,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기에는 아이들에겐 각자의 꿈이 있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희망차야 했다. 그랬기에 연기자를 꿈꾸는 은비를 힘껏 도와주는 다른 친구들은 그런 은비만큼이나 자신들이 존재감을 알리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늘 외모 때문에 힘들어 하고, 성적에 민감한 엄마와 맞서야 하는 은비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혜지네 외삼촌이 영화감독이었고, 혜지와 친해지면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고 친구들이 설득한 것이다. 혜지의 부모는 혜지가 반에서 30등을 못하면 미국으로 보내버린다고 협박했고, 혜지의 공부를 도와주며 외삼촌을 만나려는 은비, 혜지의 꽃미남 동생 영민을 보려는 지형, 혜지네에 구비된 영화 DVD를 보려는 소울까지 각자의 목적은 충분했다.

 

  외삼촌의 도움으로 연극 오디션을 보고 온 은비는 남들이 비판하던 외모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합격한다. 그런데 공연과 '모란반' 수업이 겹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 은비를 돕기 위해 아이들이 마련한 방법이란, 바로 모란반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이 처음 간구한 방법은 귀신소문을 내서 아이들을 해체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마저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닌자 모습으로 분장하고 옥상에 오른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던 그들은 경찰과 부모까지 출동하는 사태에 맞서면서도 당당히 자신들의 요구를 말한다. 그 뒷일은 감당하기 힘들지라도.

 

  네 명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혹은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부인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것처럼 내면 묘사가 좋았고, 거기에 재미를 가미했다. 각자의 개성을 부여하고, 그들이 세상과 맞서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시선에서 비춰지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성장소설에서 어떠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계속 성장중이므로 어느 정도 모습을 비춰줄 수는 있어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서(내면과 외적인 면이든) 결론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재미 위주로만 치우지는 모습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에서 충분히 아이들의 고민과 그들 눈에 비춰지는 학교와 세상의 모습을 잘 그려넣었지만, 조금 더 무게있고 여운을 남겨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발랄함이 아이들에게 부족한 요소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부에 억압되는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청소년들이 동화될 수 있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미 유년시절을 넘겨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이 또래의 아이들이 읽으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비슷한 또래의 내면을 그려내는 책들보다 시험 문제에 나오는 책들을 읽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내면을 대신할 수 있는 청소년 문학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책으로나마 자신들의 모습을 고민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책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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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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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시, 꿈이라고 말하기도 뭣할 정도로 '사서'라는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문헌정보학과를 나와야 하고, 일자리가 별로 없고, 우리나라의 사서는 바코드 맨과 바코드 걸로 불린다는 편견을 집어넣어 생각에서 밀어 내 버렸다. 그러나 종종 도서관을 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사서들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곤 한다. 상상을 해 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은 가운데 한 사서가 쓴 책이 내게로 왔다. 이 책을 통해서 사서란 직업이 어떨지, 도서관에서 생활이 어떨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조금 마음에 설랬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잠시, 뭐든지 너무 적나라하게 알게 되면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저자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도서관 생활을 내 보였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정식 사서가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도서관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얽혀있었다. 내게 익숙한 공간이기도 한 도서관의 이야기가 이렇게 색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무척 즐거웠다. 내가 도서관을 이용할 때는 이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봤기에 사서가 어떠한 시선으로 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사서의 입장에서 바라본 도서관과 이용자, 그리고 도서관 안에서의 자신의 역할은 생각했던 것보다 광범위했다. 잘못된 정보라고 확인할 길이 없는 한 가지 소문은 '우리나라 사서는 바코드만 찍어대고, 외국의 사서는 굉장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서가 된다.'였다. 그래서 저자는 어떻게 사서가 되었으며, 다른 사서들의 모습이나 사서로써의 사명감 등이 어떨지 많은 관심이 갔다.

 

  사서하면 책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책을 좋아하며, 책을 많이 읽고, 책에 관해서 직장동료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출근해서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있자 다른 직원들이 보인 반응을 보며 기겁을 하고 말았다. 사서니까 책을 많이 읽고, 출판계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책을 읽지 않으며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은 환상을 깨기 충분했다. 그 단편적인 이야기로 모든 사서들이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저자만큼이나 사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지만 책에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된다면 즐겁게 독서를 하지 못할거라는 확신은 늘 있었다. 그러나 이정도 일 줄이야. 그냥 평범한 독자로써 책 읽기를 즐긴다는 사실이 순간적으로나마 감사했다.

 

  저자가 도서관에서 생활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대부분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으며, 그러다보니 그곳이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을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은 도서관 내에서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고, 내가 이용하는 동선 안에서 존재했던 도서관이었다. 저자는 사서로써, 사서보조로써 바라본 도서관의 풍경을 담아냈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아주 거대하게 되살려낸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도서관에 대한 환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도서관 안에서도 일어났고, 이용자라는 특수한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그들이 빚어내는 이야깃거리 또한 무척 다양했다. 사서라는 자리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옮긴이는 저자가 '사회복지사' 비슷한 일들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연령층, 사서들은 공무원이라는 위치까지 겹쳐 애매모호한 상황들을 많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나야 책 빌리러 가거나, 공부하러 가는 것이 전부고 내가 이용하는 공간도 무척 협소했기에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십대, 노인, 노숙자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아도 먼저 한숨이 내 쉬어진다. 그런데 그들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소외된,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나 미친 사람들까지 상대해야 했으니 사서라는 위치가 무엇인지 되뇌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종종 저자가 그런 고뇌를 하는 것이 보였는데, 그가 풀어 놓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일에 어려움이 없겠냐만, 도서관에는 사회의 구성원을 축약해 놓은 듯 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방문했기에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사서가 하는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 또한 자신의 일이기에 앞으로 계속 일 할 거라면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 비슷한 것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형성되지 않았다. 저자가 도서관에서 생활하고 정식 사서가 되며, 타인과 얽히며 살아가는 동안 경험으로 쌓이게 되었다. 그 경험들을 통해 저자가 얻게 된 것이 바로 사서로써 할 역할들이었다. 구체적으로 그것들이 무엇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지만, 저자의 일상 속에 녹아든 생각을 엿보다 보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님을, 그러나 쉬운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책을 다 읽어갈 즘에는 이 책이 도서관과 얽힌 에피소드라고 봐도 무관하겠지만, 그보다 저자의 어른 성장기(?)로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이 배경이고, 그 안에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저자도 함께 그들과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성장을 유감없이,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어떤 가려짐을 느끼지 못해 때로는 감정이 바닥까지 내려간 느낌이라 마음이 헛헛해졌다.

 

  저자는 이 책에 도서관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중간 중간 '소곤소곤'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쉬어가는 식으로 짧은 정보를 제공한다. 도서관에 파묻혀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이 지쳐올 때쯤 쉬어가는 코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거침없이 드러내는 저자의 내면과 도서관의 일상 속에서 뭔지 모를 기운 빠짐을 느낄 때, 이 코너로 인해 개인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 위로라는 것이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며(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오던지), 책과 관련된 일은 그래도 할 만 하다라는 아주 협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내용으로 모든 도서관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마다, 동네마다 도서관이란 형태는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기 충분하기에 그냥 미국의 한 동네의 도서관을 살펴보았다는 범위 축소를 해야 한다. 도서관을 훑어 본 것이 다른 도서관을 상상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 책에 실린 도서관의 모습은 저자가 겪고, 생각하는 독자적인 도서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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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의 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신간이 나올 때마다 지나칠 수 없는 작가 공지영. 블로그에 연재 됐을 때도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다가 책으로 출간되자 그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약간의 책 소개만 접하고 책을 손에 쥐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다. 불편한 책 내용과 저자의 문체에 대한 기억이 얽혀 기분 좋은 출발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을 방치하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정면으로 마주했다. 책을 꺼낸 시각은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책을 덮었을 때는 새벽 3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에서 손을 떼는 순간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이상야릇한 안도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좋아할 수 없는 작가라는 데는 변함이 없었고, 우울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것에 성공했다는 안도감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불편한 내용을 불편하게 풀어냈다는 데서 오는 불편함과 답답함은 새벽의 고요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휘감았다. 불쾌한 감정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결국 꿈자리까지 어지럽게 만들었고 차라리 한바탕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일었다. 그러나 머리맡에 놓인 흔적으로 남겨진 책을 보니, 아무런 해결책 없이 모든 것을 독자에게 떠넘겼다는 또 다른 불쾌감(저자에 대한 억지스런 불쾌감)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불편한 감정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서 오는 약자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농아들이,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인권을 부르짖고, 잘못됨을 알고 공공연히 떠들어 봤자 권력과 돈 앞에 진실이 무너진 과정만 보아왔는데. 그 사건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어둠의 세계와 예고 없이 맞닥트려 버린 불편함도 한 몫 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었을 성폭력과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받은 고통을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그런 자격도 없음을) 확신했다.

 

  책의 시작은 안개와 한 남자가 등장한다. 생계를 위해 가족은 서울에 두고 홀로 무진 시에 내려온 남자 강인호. 실직상태를 보다 못한 부인의 주선으로 특수학교 기간제교사로 일하기 위해 내려오는 길이었다. 거리는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강인호가 무진에서 겪게 될 일의 전말을 알리기라도 하듯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함이 서려 있었다. 그 안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과 자애학원. 결국은 첫 날 만나게 되는 안개의 여운을 떨쳐내지 못하고 안개 속만 거닐다 그는 서울로 떠난다. 책의 시작에서 나타난 안개, 중간 중간 무진의 특징을 제시하듯 등장하는 안개. 그 안개의 숨은 의미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한 진실의 감추어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만큼은 안개의 두터움을 느낄 새도 없이 한 가닥의 엷은 안개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이 가려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고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강인호는 자애학원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세상에 드러나기 위한 매체 물로 등장한다. 출근 첫 날부터 모욕적이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학교에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기에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의 말을 믿어 주었다. 그로 인해 무진에서 인권 센터 간사로 있는 서유진과 함께 자애학원의 문제를 언론에 폭로한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진실이 드러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바로 수그려 들것이라는 예감을 만들어 주는 과정에 불과했다. 뒤로 드러나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또 다른 선생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가한 성폭력의 진실은 그들이 가진 세상의 권력과 물질 앞에 나뒹굴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실감하게 했다. 그들의 뒷수습도 영향이 있었지만, 뻔 한 상식 앞에서도 상식을 뒤엎는 그들의 행태가 묵과되는 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인간 말증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붓다가도 멈칫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자살하고, 세상을 향한 두려움에 쌓여있어도 도와주는 사람보다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이 고백한 사실 앞에 분노를 터트리며 앞장을 서려다가도 조금씩 뒷걸음질이 쳐지고 말았다. 홀연히 서울로 떠나버린 강인호는 소설 속에 등장한 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무엇인가 끓어오를 듯 치솟다가도, 삶의 권태를 느끼며, 현실에 순응해 가는 인물. 어쩌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사람들보다 과감하게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속내를 확실히 드러내지 않은 강인호에게(또 다른 나에게) 실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도피자라고 외칠 수 있을까. 지금껏 고통당한 아이들의 입장보다 지켜보는 내 입장만을 밝힌 것만 보더라도 내 위치도 그렇게 떳떳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가해자의 편으로 돌아선 세상은 피해학생과 그들을 도왔던 몇몇 인물들만 덩그러니 놓아둔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이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온통 우울하고 어두운 책 내용 앞에 저자도, 그 일이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도, 뒷걸음질 쳐버린 강인호란 인물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았었다. 그러나 진정한 가해자들이 비난의 화살 밖에 서 있는 것에 놀랐고, 쉽게 잊혀 버렸다는 사실 앞에 당황할 뿐이었다. 진실이 드러나도 진실을 들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싸잡아 몰아 붙여 버렸지만, 아이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고 도우며 가해자들을 묵과하지 않으려는 소소한 세력이 있다. 서유진, 최목사, 연두엄마, 통역청년. 서유진의 편지로 소식을 접하게 된 강인호도 어쩌면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은 이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그들만큼은 무진에서 아이들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몹시 게으르다'고 했던 저자의 말처럼, 그 진실이 언제 제 모습을 드러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이 결국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진실의 드러남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피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 없다면 이 소설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므로(알 수 없는 권태와 죄책감에 시달릴게 뻔하다.), 되레 그들에게 내가 위로 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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