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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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녀의 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신간이 나올 때마다 지나칠 수 없는 작가 공지영. 블로그에 연재 됐을 때도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다가 책으로 출간되자 그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약간의 책 소개만 접하고 책을 손에 쥐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다. 불편한 책 내용과 저자의 문체에 대한 기억이 얽혀 기분 좋은 출발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을 방치하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정면으로 마주했다. 책을 꺼낸 시각은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책을 덮었을 때는 새벽 3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에서 손을 떼는 순간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이상야릇한 안도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좋아할 수 없는 작가라는 데는 변함이 없었고, 우울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것에 성공했다는 안도감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불편한 내용을 불편하게 풀어냈다는 데서 오는 불편함과 답답함은 새벽의 고요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휘감았다. 불쾌한 감정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결국 꿈자리까지 어지럽게 만들었고 차라리 한바탕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일었다. 그러나 머리맡에 놓인 흔적으로 남겨진 책을 보니, 아무런 해결책 없이 모든 것을 독자에게 떠넘겼다는 또 다른 불쾌감(저자에 대한 억지스런 불쾌감)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불편한 감정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서 오는 약자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농아들이,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인권을 부르짖고, 잘못됨을 알고 공공연히 떠들어 봤자 권력과 돈 앞에 진실이 무너진 과정만 보아왔는데. 그 사건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어둠의 세계와 예고 없이 맞닥트려 버린 불편함도 한 몫 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었을 성폭력과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받은 고통을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그런 자격도 없음을) 확신했다.

 

  책의 시작은 안개와 한 남자가 등장한다. 생계를 위해 가족은 서울에 두고 홀로 무진 시에 내려온 남자 강인호. 실직상태를 보다 못한 부인의 주선으로 특수학교 기간제교사로 일하기 위해 내려오는 길이었다. 거리는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강인호가 무진에서 겪게 될 일의 전말을 알리기라도 하듯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함이 서려 있었다. 그 안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과 자애학원. 결국은 첫 날 만나게 되는 안개의 여운을 떨쳐내지 못하고 안개 속만 거닐다 그는 서울로 떠난다. 책의 시작에서 나타난 안개, 중간 중간 무진의 특징을 제시하듯 등장하는 안개. 그 안개의 숨은 의미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한 진실의 감추어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만큼은 안개의 두터움을 느낄 새도 없이 한 가닥의 엷은 안개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이 가려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고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강인호는 자애학원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세상에 드러나기 위한 매체 물로 등장한다. 출근 첫 날부터 모욕적이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학교에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기에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의 말을 믿어 주었다. 그로 인해 무진에서 인권 센터 간사로 있는 서유진과 함께 자애학원의 문제를 언론에 폭로한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진실이 드러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바로 수그려 들것이라는 예감을 만들어 주는 과정에 불과했다. 뒤로 드러나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또 다른 선생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가한 성폭력의 진실은 그들이 가진 세상의 권력과 물질 앞에 나뒹굴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실감하게 했다. 그들의 뒷수습도 영향이 있었지만, 뻔 한 상식 앞에서도 상식을 뒤엎는 그들의 행태가 묵과되는 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인간 말증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붓다가도 멈칫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자살하고, 세상을 향한 두려움에 쌓여있어도 도와주는 사람보다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이 고백한 사실 앞에 분노를 터트리며 앞장을 서려다가도 조금씩 뒷걸음질이 쳐지고 말았다. 홀연히 서울로 떠나버린 강인호는 소설 속에 등장한 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무엇인가 끓어오를 듯 치솟다가도, 삶의 권태를 느끼며, 현실에 순응해 가는 인물. 어쩌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사람들보다 과감하게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속내를 확실히 드러내지 않은 강인호에게(또 다른 나에게) 실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도피자라고 외칠 수 있을까. 지금껏 고통당한 아이들의 입장보다 지켜보는 내 입장만을 밝힌 것만 보더라도 내 위치도 그렇게 떳떳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가해자의 편으로 돌아선 세상은 피해학생과 그들을 도왔던 몇몇 인물들만 덩그러니 놓아둔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이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온통 우울하고 어두운 책 내용 앞에 저자도, 그 일이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도, 뒷걸음질 쳐버린 강인호란 인물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았었다. 그러나 진정한 가해자들이 비난의 화살 밖에 서 있는 것에 놀랐고, 쉽게 잊혀 버렸다는 사실 앞에 당황할 뿐이었다. 진실이 드러나도 진실을 들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싸잡아 몰아 붙여 버렸지만, 아이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고 도우며 가해자들을 묵과하지 않으려는 소소한 세력이 있다. 서유진, 최목사, 연두엄마, 통역청년. 서유진의 편지로 소식을 접하게 된 강인호도 어쩌면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은 이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그들만큼은 무진에서 아이들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몹시 게으르다'고 했던 저자의 말처럼, 그 진실이 언제 제 모습을 드러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이 결국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진실의 드러남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피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 없다면 이 소설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므로(알 수 없는 권태와 죄책감에 시달릴게 뻔하다.), 되레 그들에게 내가 위로 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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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의 하이쿠 기행 3 -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 바쇼의 하이쿠 기행 3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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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의 계절 여름에는 많은 것들이 나를 현혹한다. 여행 책에서부터 쇼핑, 휴가 계획,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맨스까지 그야말로 한 없이 들뜨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미 휴가는 수련회로 정해져 버렸고, 읽을 책은 책장에 가득이며, 쇼핑도 오래전에 다 한터라 무엇 하나 기댈 것이 없는 요즘이다. 여행 책을 읽어봤자 마음만 들뜰 테고, 여름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여름의 한창을 지나고 있는데 마음이 이유 없이 들뜬다면 차분히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대리만족이나 하자 싶어 좀 특별한 여행 책을 읽어보고 싶어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펼쳤다. 1, 2권은 읽고 3권을 읽지 않아 늘 마음에 걸렸는데, 충분한 계기가 되어 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처음에는 이 책을 하이쿠 시집으로만 생각했다가 점차 하이쿠가 가미된 기행문으로 시선을 넓혀갔다. 1권에서는 낯섦과 주석 때문에 힘들어 했고, 2권에서도 1권의 행보를 이어가느라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3권을 읽을 시점이 되자 그제야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바쇼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여행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바쇼가 하이쿠 기행을 하게 된 목적과 여행한 장소들도 꼼꼼히 살피며 읽어도 좋지만, 말 그대로 '하이쿠 기행'에 중점을 두며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바쇼는 기행을 하면서 하이쿠와 간단한 글로 기록을 남겼지만, 스스로도 기행문을 왜 써야 하는지 생각하며 여행을 했다. 평범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며, '저 중국의 시인 황산곡이나 소동파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진기함과 새로움이 없다면 기행문은 쓰지 말아야 하리.'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글과 하이쿠에 딸린 주석을 보며 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말이었다.

 

  빈 몸으로 나서 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쿠에 기초를 둔 여행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따라줘야 한다. 건강부터 여행의 여정 과정에 담긴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도 바쁠 터인데, 하이쿠 시인으로써 근본정신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바쇼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계절에 민감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많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쇼는 '하이쿠에 몸을 두는 사람은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친구 삼아, 그것을 시로 표현해 간다.' 라고 말했듯이 여행을 하는 동안 하이쿠 시인으로써 사명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일까. 바쇼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그런 의미가 들어간 하이쿠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 안에 아름다움은 물론,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또 다른 의를 가미하는 것에 감탄할 뿐이었다. 1, 2권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주석이 3권에서는 큰 도움이 되어 바쇼의 기행을 편히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 기행문은 바쇼가 1687년 음력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정도의 여행을 소재로 쓴 하이쿠 여행기라고 한다. 그가 아끼던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도코쿠를 위로 차 방문하는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고 한다. 막상 제자를 찾아가서 여행의 쓸쓸함을 달래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인간미가 넘쳐나는 모습을 보니 혼자 하는 여행의 쓸쓸함이 잠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여행을 다녔지만, 종종 밀려오는 자질구레한 걱정들과 고독감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날그날의 소운 두 가지가 있을 뿐. 오늘 밤 좋은 숙소를 빌릴 수 있었으면, 그리고 짚신이 발에 맞았으면 하는 것.' 이라고 말하며 소박한 여행을 하는 그를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일 년에 한 번뿐이라는 생각에 고생해서 일했음에도 호화 여름휴가를 꿈꾸는 요즘 시대에, 이런 두 가지만 바라며 여행하는 바쇼가 훨씬 더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한없이 들떴던 마음은 바쇼 따라 나선 기행으로 인해 많은 위로와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되었다. 차분한 여행도 독자에게 충분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하이쿠와 어우러진 기행문은 문학적인 매력도 잃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고 구구절절한 기행문이었기에 바쇼가 머무르는 곳마다 기록을 남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 후 4년이 지난 1691년쯤 집필 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원고도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제자 오토쿠니에게 맡기고 에도로 돌아갔지만, 1694년 바쇼가 죽은 후에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것을 1709년 오토쿠니가 간행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욱더 애절하게 다가오는 바쇼의 하이쿠 기행은 덧없이 왔다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신분을 뛰어넘어 하이쿠를 나누는 모습에서 훨씬 더 많은 의의를 둔 하이쿠 기행이었다.

 

  거기다 부록까지 꼼꼼하게 챙겨준 옮긴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명이 없이는 옮기기 힘든 책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바쇼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연히 책에서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알고 나서 읽어보려 했지만, 절판이 된 상태였는데 다시 재출간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제 3권을 모두 읽음으로써 마치 내가 하이쿠 기행을 마친 기분이다. 그가 남겨준 하이쿠가 내 마음 속에 남아, 에도시대를 살았던 바쇼와 나를 엮어 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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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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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가면 책을 고르는 손길이 이상해진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가의 책이 있어도 사오는 경우가 있다. <정체성>이 그랬다. 밀란 쿤데라 책 한 권을 읽고, 질려버려 애독하는 작가가 아님에도 이 책을 발견하자마다 구입해 버렸다. 다행히 책도 얇고 깨끗해서 데려왔지만, 수많은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져 내가 발견한 책들에 한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진다.
 

  이런 경험 때문에 평소에 즐겨 읽지 않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좀 더 두꺼웠더라면 분명 숨이 막혔을 테지만, 밀란 쿤데라 울렁증이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 적당한 두께였다. 게다가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약간의 긴장감이 배가 되어 읽는 속도를 높여 주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면 두 남녀의 사랑의 밀고 당김(?)에 정체성을 가미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정체성의 여부에 대해서는 결코 간략하게 말할 수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정체성을 쉽게 잃어버리고 쉽게 되찾는 변덕이 사랑할 때의 모습만 할까. 이 책에는 두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쓴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부터, 뚜렷한 모습으로 정착시켜 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다 무언가가 일치되지 못하고 감정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개인의 정체성은 독자적인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샹탈의 애인 장 마르크는 <남자들이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샹탈을 통해 그녀의 존재감과 더불어 자신이 샹탈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가진다. 그 문장을 태연히 말하는 샹탈을 장 마르크는 어이없어 했다. 그렇지만 장 마르크도 그녀가 사람들과 섞일 때 혼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자신은 무엇이며, 또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세월의 흐름에 안타까워하는 샹탈을 위해 그녀의 모습은 그 문장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그녀를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샹탈은 장 마르크보다 나이가 많지만 경제, 미모, 직업에 관해서 하등 부족할 것이 없기에 그녀의 고독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다. 아이를 잃고, 이혼을 하고 장 마르크와 동거를 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샹탈. 그녀에게 부족함이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매력과 진부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만족감에 대등하는 진부함이 어우러지는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우편함에 그녀 앞으로 익명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이 쓰인 연애편지는 갈수록 과감해지며 샹탈에 대한 찬사가 그득하다. 샹탈은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만, 그 편지를 장 마르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숨기려는 것보다 자신에게 온 편지인 만큼 자신과 익명의 사람과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의 얘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 지지부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 사색이 깃든 말들을 섞음으로서 느껴지는 무겁고 깊이 생각해 보고 싶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책을 읽어도 나를 울리는 깨달음이 없었고, 그들로 통해 내가 메시지를 발견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와 그의 삶에는 깊고도 이질적인 언어와 생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흐름에 긴장감을 갖게 한 것이 샹탈에게 도착한 편지였다. 샹탈은 자신에게 오는 편지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곧 그 편지를 쓴 자가 누구인지 깨닫게 됨으로써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다. 장 마르크 또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익명의 편지를 썼건만, 급기야 자신의 편지에 자신이 질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샹탈은 곧 돌아온다는 말과 함께 런던으로 떠나고, 그녀를 따라 장 마르크도 같은 기차를 탔지만, 일은 꼬이고 꼬여 샹탈이 위험에 빠지고 만다. 그런 순간에도 진부한 대화와 생각은 그칠 줄 몰랐고, 다행히 위기의 절정에 그들은 서로의 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바탕 꿈같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잇고, 잘라야 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는 사실만 인지할 수 있었다.

 

  줄거리를 이렇게 건져 냈지만, 관계의 사이사이에 무수히 박힌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들의 뇌리 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진부할 정도로 늘어놓고 마지막에 가서는 색다를 바 없는 결론을 드러냈다. 물론 그들이 다시 재회할 수 있기를, 두 개의 존재감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바랐으면서도 그들의 결합으로 인해 되레 나의 정체성을 묻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그들은 사랑을 말하기위해 먼 길을 돌아왔겠지만, 내게는 안락함을 느낄 상대의 품도 다시 찾은 안정감도 없었다. 그들의 얘기를 통해 나야말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에 사로잡혀 미처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샹탈이 느꼈던 이기적이고 히스테릭 했던 감정의 일부분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진부함을 내제한 채 삶을 살아가며 사랑을 하지 않을 뿐,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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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식탁 - 시간을 담은 따뜻한 요리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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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할머니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었지만, 유독 <타샤의 식탁>만큼은 망설여졌다. 요리에 젬병인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타샤 할머니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와는 거리가 먼 책을 읽을 이유 또한 발견하지 못해서였다. 그렇게 구입을 망설이고 있을 때 타샤 할머니에 관한 읽을거리가 떨어져 가고 있었고, 모두 소장하고 싶다는 열정이 극에 달할 때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그러나 역시 구입을 해놓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요리 방법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을 어떻게 읽기로만 끝낼 것인가가 가장 큰 쟁점사항이었다.
 

  그러다 타샤 할머니 1주기를 기념해서 큰 딸 베서니 튜더가 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읽을거리가 사라져 버렸다. 책장에 남아있는 <타샤의 식탁>이 떠올라 여운을 이어가고자 펼쳤건만 여전히 헤맬 수밖에 없었다. 타샤 할머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레시피가 실려 있더라도, 요즘 같이 사진 찍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방법만 채워진 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타샤 할머니도 종종 낡은 요리책을 발견해서 알게 되거나, 어머니나 유모에게 배운 요리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런 의의만으로도 특별한 요리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타샤 할머니를 깊이 사모하지 않고서는 읽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샤 할머니의 요리책에는 다양한 요리가 실려 있었다. 에피타이저, 수프, 빵, 주요리, 곁들일 요리, 음료까지 그야말로 타샤 할머니가 알고 있는 요리들이 총 동원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이 확실히 특별한 이유는 요리 방법이 주류이긴 하지만 요리마다 얽혀있는 추억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요리 방법만 읊어댔다면 타샤 할머니가 알려 줬다고 해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책에서 들어온 이야기들이 요리에 초점이 맞춰 있었기에 먼저 그런 추억을 떠올린 후, 요리 방법을 읽으며 타샤 할머니가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요리에 큰 관심이 없어 요리방법은 술렁술렁 읽고 넘어갔지만, '요리와 정원 가꾸기에 대해서 겸손을 모른다.'는 타샤 할머니의 말처럼 찬사와 감탄이 잔뜩 들어간 요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타샤 할머니는 나와 국적도 생활방식과 문화도 다르기에 책에 실린 요리방법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나를 절망시켰던 것들 중 하나는 타샤 할머니가 쓰는 요리재료와 주방기구들이었는데, 가까운 우리 집만 해도 도무지 일치되는 것이 없었다. 꼭 타사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책이 요리책인 만큼 한 가지쯤은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두 생소한 재료에 조리 기구라곤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밖에 없는 실정이라 무얼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나를 떠난 상태였다. 거기다 가끔 김치찌개 하나만 끓여도 재료 다듬기와 끓이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인식한 터라 맛있는 음식을 위해 그만한 수고로움과 시간을 투자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요리는 8시간씩 구어야 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타샤 할머니라면 느긋하게 다른 일을 하면서 살펴보겠지만, 가스레인지에 물 주전자 하나만 얹혀 있어도 안절부절 못하는 나이기에 그런 인내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이 책에 담긴 조리법을 모두 시험해준 친구 캐롤 존스턴도 타샤 할머니만큼이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타샤 할머니의 추억 속에 담겨진 요리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맛을 상상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음에도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코기들과 고양이들이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걔네들은 타샤 할머니의 요리를 충분히 맛보면서 커갔다.). 타샤 할머니가 워낙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으니 거기에 굳이 나를 대입시켜 비교할 필요가 없으므로(배교 대상도 되지 않을 뿐더러), 그냥 즐기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요리법이 쓰인 글만으로 심심하기도 하고, 상상력이 바닥날 때쯤 중간 중간에 등장한 타샤 할머니의 그림은 많은 추억을 실어다 주었다. 타샤 할머니가 들려준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 삶이 나에게 그대로 추억이 되듯이, 타샤 할머니의 그림 한 장으로 그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이때쯤 이런 요리가 있었겠다 싶어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채워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더라도 타샤 할머니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음식점에서 비슷한 음식을 맛볼 기회는 있겠지만). 책의 마지막에는 타샤 할머니의 요리를 따라한 분의 짤막한 글과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분도 재료를 구할 때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경험 또한 특별하고 흥미로웠다고 하니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통해 타샤 할머니가 요리를 통해 주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직접 기른 야채들로 요리하는 기쁨, 정성들여 한 요리를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대접하는 마음. 그 과정 속에 타샤 할머니는 일상의 행복을 맛봤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음식을 통해 인생의 작지만 큰 기쁨을 전해주었다. 그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나에게 요리 솜씨가 없다면 다른 것으로라도 기쁨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보기를 조심스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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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5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문학을 물으면 '19세기 러시아 문학'이라고 대답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학의 분위기를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다. 장르를 나눈다는 것도 경계가 모호했을 뿐더러 좋아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찾아보려는 노력도 해 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지인과 나누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의 분위기를 설명하자 순문학을 좋아하는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한마디에 내가 모호하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던 장르들의 갈림길이 정해지는 듯 했고, 좋아하는 분야를 뚜렷이 알게 되어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사실을 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만지 출판사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이 갔다. 제인 오스틴의 명성에 대해서 익히 들었고, <오만과 편견>도 구입해 두었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 그의 소설에 대해 할 말은 많지 않다. 번역 된 6권의 소설 중 <설득>을 먼저 선택했다. 순전히 서정적이라는 설명 때문에 선택한 것인데 책을 읽는 내내 그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고, 순문학을 좋아한다는 개인적인 발견에 충족시켜 주는 소설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 작품의 특징을 비교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무(無)에서 만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듯 내 안으로 흠뻑 들어왔다. 책의 분위기는 주인공 앤의 시선으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써내려가면서도 섬세한 묘사를 잊지 않았다.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도 크게 부각되기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그 사실을 책의 초반부터 파악한 터라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력이 좋을 때 읽으면 무척 서정적이지만, 그 반대일 때는 겉돌기 십상인 소설이었다. 그래서 깊은 밤 사위가 고요할 때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의외로 잘 읽히고 묘사에 푹 빠져 현실을 잊을 정도였다. 앤이 가족 안에서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나를 드러낼 필요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앤은 특별히 눈에 띠지 않는 존재였다.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고 허영심과 낭비벽이 가득한 아버지와 큰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준남작이란 칭호에 무척 애달아했고, 언니 엘리자베스도 아버지와 만만치 않았다. 셋째 메리는 시집을 가서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다. 허영심에 가득한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살고 있던 켈린치 홀을 떠나야 했다. 지출이 너무 많아 빚더미에 앉게 될 위기에 처해 해군 제독에게야 집을 임대하고 그들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앤은 바로 식구들을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의 친구이자 조언자인 레이디 러셀, 동생 메리네 집, 다시 켈린치로 돌아와 바스로 이동한다. 공간의 이동에 따라 앤의 내면도 사건도 모두 달라지는데, 처음에는 그런 흐름이 굴곡이 있었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설에서 이 소설은 로맨스라고 했기 때문에 앤의 내면에 초점을 더 맞춰가며 읽어 나갔다. 

 

  앤은 8년 전 앤트워스 대령과 약혼을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인해 파혼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앤의 내면은 많이 닫혀 있었고, 한 번의 청혼을 거절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섬세한 만들어간다. 그런 그녀 앞에 앤트워스 대령이 다시 나타났는데, 다름 아닌 켈린치 홀로 들어온 해군 제독의 처남이었다. 앤트워스 대령은 한 번의 결혼을 하긴 했지만 다시 혼자가 되었고, 어느 정도의 부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런 앤트워스 대령이 등장했으니 딸을 둔 부모들과 젊은 처자들도 앤트워스 대령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실제로 두 자매 사이에서 앤트워스 대령은 갈팡질팡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앤은 혼란스러웠다. 그와의 대면이 어색하고, 그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마음 저편에는 그에 대한 애정이 싹트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했다.

 

  앤트워스 대령의 내면에 대해서 거의 드러나는 것이 없어 앤의 시선에 비춰진 그의 행동들로 추측할 수 있었다. 모호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그의 행동으로 앤은 8년 전 자신의 행동을 용서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남자들에 대해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 시원히 대화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앤이 공간 이동을 할 때마다 곁에 있거나 근거리에서 머물렀던 앤트워스 대령과 직접 대면했을 때, 앤트워스 대령이 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다시 돌아온 것이 앤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많은 심경의 변화 가운데서 앤트워스 대령에 대한 애정을 확신한 앤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대령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둘은 행복한 결혼을 앞두게 된다.

 

  앤과 앤트워스 대령의 결합 과정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대부분 앤의 가족이나 친인척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서 앤은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앤의 노력으로 인해서가 아닌 현실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통해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깨어 나오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앤트워스 대령과의 파혼 이후로 쭉 그를 사랑했다고 볼 수 없지만,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과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어찌되었든 앤과 앤트워스 대령은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줄거리를 잡고 보면 그들의 사랑이 매우 구구절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앤트워스 대령이 이 책에서 앤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앤의 생각을 엿봄으로써 그 시대의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더 많았다.

 

  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여성에게 치명적인 미래가 있는 모습이 짙었다. 결혼이야말로 여성의 종착지이며, 훌륭하고 넉넉한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것만이 성공한 모습으로 비춰지는(이렇게 적고 보니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여성들이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갖춰가지만, 결혼이 삶의 종착지로 비춰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결혼 자체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부정적인 면을 보았을 때 드는 생각일 뿐이다.) 시대였다. 앤트워스 대령과의 결혼을 반대한 것도 그의 능력의 부족함 때문이었으니 앤이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자신 안에 갇혀 지낸 것도 어쩜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지만지 출판사에서 원본의 절반 분량으로 다시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책이 그다지 두껍지 않아서 좋아했었는데, 읽다보니 분량을 줄여서인지 곳곳에 흐름이 끊기고 어색한 부분들이 드러났다. 앤의 내면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기에 완역된 책을 찾아서 한 번 더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내가 만난 제인 오스틴의 첫 작품이기에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오탈자

 

* 그녀를 일으켰지만 생기가 보이지 없었다. -> 않았다. <116쪽>

 

* 그렇지만 내가 엘리엇 씨에게 큰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하만 나를 그저 엘리엇 씨의 친척으로 생각해줘요. -> 다만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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