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3 -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 바쇼의 하이쿠 기행 3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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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의 계절 여름에는 많은 것들이 나를 현혹한다. 여행 책에서부터 쇼핑, 휴가 계획,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맨스까지 그야말로 한 없이 들뜨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미 휴가는 수련회로 정해져 버렸고, 읽을 책은 책장에 가득이며, 쇼핑도 오래전에 다 한터라 무엇 하나 기댈 것이 없는 요즘이다. 여행 책을 읽어봤자 마음만 들뜰 테고, 여름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여름의 한창을 지나고 있는데 마음이 이유 없이 들뜬다면 차분히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대리만족이나 하자 싶어 좀 특별한 여행 책을 읽어보고 싶어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펼쳤다. 1, 2권은 읽고 3권을 읽지 않아 늘 마음에 걸렸는데, 충분한 계기가 되어 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처음에는 이 책을 하이쿠 시집으로만 생각했다가 점차 하이쿠가 가미된 기행문으로 시선을 넓혀갔다. 1권에서는 낯섦과 주석 때문에 힘들어 했고, 2권에서도 1권의 행보를 이어가느라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3권을 읽을 시점이 되자 그제야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바쇼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여행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바쇼가 하이쿠 기행을 하게 된 목적과 여행한 장소들도 꼼꼼히 살피며 읽어도 좋지만, 말 그대로 '하이쿠 기행'에 중점을 두며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바쇼는 기행을 하면서 하이쿠와 간단한 글로 기록을 남겼지만, 스스로도 기행문을 왜 써야 하는지 생각하며 여행을 했다. 평범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며, '저 중국의 시인 황산곡이나 소동파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진기함과 새로움이 없다면 기행문은 쓰지 말아야 하리.'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글과 하이쿠에 딸린 주석을 보며 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말이었다.

 

  빈 몸으로 나서 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쿠에 기초를 둔 여행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따라줘야 한다. 건강부터 여행의 여정 과정에 담긴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도 바쁠 터인데, 하이쿠 시인으로써 근본정신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바쇼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계절에 민감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많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쇼는 '하이쿠에 몸을 두는 사람은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친구 삼아, 그것을 시로 표현해 간다.' 라고 말했듯이 여행을 하는 동안 하이쿠 시인으로써 사명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일까. 바쇼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그런 의미가 들어간 하이쿠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 안에 아름다움은 물론,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또 다른 의를 가미하는 것에 감탄할 뿐이었다. 1, 2권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주석이 3권에서는 큰 도움이 되어 바쇼의 기행을 편히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 기행문은 바쇼가 1687년 음력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정도의 여행을 소재로 쓴 하이쿠 여행기라고 한다. 그가 아끼던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도코쿠를 위로 차 방문하는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고 한다. 막상 제자를 찾아가서 여행의 쓸쓸함을 달래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인간미가 넘쳐나는 모습을 보니 혼자 하는 여행의 쓸쓸함이 잠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여행을 다녔지만, 종종 밀려오는 자질구레한 걱정들과 고독감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날그날의 소운 두 가지가 있을 뿐. 오늘 밤 좋은 숙소를 빌릴 수 있었으면, 그리고 짚신이 발에 맞았으면 하는 것.' 이라고 말하며 소박한 여행을 하는 그를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일 년에 한 번뿐이라는 생각에 고생해서 일했음에도 호화 여름휴가를 꿈꾸는 요즘 시대에, 이런 두 가지만 바라며 여행하는 바쇼가 훨씬 더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한없이 들떴던 마음은 바쇼 따라 나선 기행으로 인해 많은 위로와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되었다. 차분한 여행도 독자에게 충분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하이쿠와 어우러진 기행문은 문학적인 매력도 잃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고 구구절절한 기행문이었기에 바쇼가 머무르는 곳마다 기록을 남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 후 4년이 지난 1691년쯤 집필 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원고도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제자 오토쿠니에게 맡기고 에도로 돌아갔지만, 1694년 바쇼가 죽은 후에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것을 1709년 오토쿠니가 간행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욱더 애절하게 다가오는 바쇼의 하이쿠 기행은 덧없이 왔다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신분을 뛰어넘어 하이쿠를 나누는 모습에서 훨씬 더 많은 의의를 둔 하이쿠 기행이었다.

 

  거기다 부록까지 꼼꼼하게 챙겨준 옮긴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명이 없이는 옮기기 힘든 책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바쇼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연히 책에서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알고 나서 읽어보려 했지만, 절판이 된 상태였는데 다시 재출간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제 3권을 모두 읽음으로써 마치 내가 하이쿠 기행을 마친 기분이다. 그가 남겨준 하이쿠가 내 마음 속에 남아, 에도시대를 살았던 바쇼와 나를 엮어 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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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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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가면 책을 고르는 손길이 이상해진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가의 책이 있어도 사오는 경우가 있다. <정체성>이 그랬다. 밀란 쿤데라 책 한 권을 읽고, 질려버려 애독하는 작가가 아님에도 이 책을 발견하자마다 구입해 버렸다. 다행히 책도 얇고 깨끗해서 데려왔지만, 수많은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져 내가 발견한 책들에 한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진다.
 

  이런 경험 때문에 평소에 즐겨 읽지 않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좀 더 두꺼웠더라면 분명 숨이 막혔을 테지만, 밀란 쿤데라 울렁증이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 적당한 두께였다. 게다가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약간의 긴장감이 배가 되어 읽는 속도를 높여 주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면 두 남녀의 사랑의 밀고 당김(?)에 정체성을 가미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정체성의 여부에 대해서는 결코 간략하게 말할 수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정체성을 쉽게 잃어버리고 쉽게 되찾는 변덕이 사랑할 때의 모습만 할까. 이 책에는 두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쓴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부터, 뚜렷한 모습으로 정착시켜 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다 무언가가 일치되지 못하고 감정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개인의 정체성은 독자적인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샹탈의 애인 장 마르크는 <남자들이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샹탈을 통해 그녀의 존재감과 더불어 자신이 샹탈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가진다. 그 문장을 태연히 말하는 샹탈을 장 마르크는 어이없어 했다. 그렇지만 장 마르크도 그녀가 사람들과 섞일 때 혼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자신은 무엇이며, 또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세월의 흐름에 안타까워하는 샹탈을 위해 그녀의 모습은 그 문장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그녀를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샹탈은 장 마르크보다 나이가 많지만 경제, 미모, 직업에 관해서 하등 부족할 것이 없기에 그녀의 고독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다. 아이를 잃고, 이혼을 하고 장 마르크와 동거를 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샹탈. 그녀에게 부족함이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매력과 진부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만족감에 대등하는 진부함이 어우러지는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우편함에 그녀 앞으로 익명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이 쓰인 연애편지는 갈수록 과감해지며 샹탈에 대한 찬사가 그득하다. 샹탈은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만, 그 편지를 장 마르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숨기려는 것보다 자신에게 온 편지인 만큼 자신과 익명의 사람과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의 얘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 지지부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 사색이 깃든 말들을 섞음으로서 느껴지는 무겁고 깊이 생각해 보고 싶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책을 읽어도 나를 울리는 깨달음이 없었고, 그들로 통해 내가 메시지를 발견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와 그의 삶에는 깊고도 이질적인 언어와 생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흐름에 긴장감을 갖게 한 것이 샹탈에게 도착한 편지였다. 샹탈은 자신에게 오는 편지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곧 그 편지를 쓴 자가 누구인지 깨닫게 됨으로써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다. 장 마르크 또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익명의 편지를 썼건만, 급기야 자신의 편지에 자신이 질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샹탈은 곧 돌아온다는 말과 함께 런던으로 떠나고, 그녀를 따라 장 마르크도 같은 기차를 탔지만, 일은 꼬이고 꼬여 샹탈이 위험에 빠지고 만다. 그런 순간에도 진부한 대화와 생각은 그칠 줄 몰랐고, 다행히 위기의 절정에 그들은 서로의 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바탕 꿈같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잇고, 잘라야 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는 사실만 인지할 수 있었다.

 

  줄거리를 이렇게 건져 냈지만, 관계의 사이사이에 무수히 박힌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들의 뇌리 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진부할 정도로 늘어놓고 마지막에 가서는 색다를 바 없는 결론을 드러냈다. 물론 그들이 다시 재회할 수 있기를, 두 개의 존재감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바랐으면서도 그들의 결합으로 인해 되레 나의 정체성을 묻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그들은 사랑을 말하기위해 먼 길을 돌아왔겠지만, 내게는 안락함을 느낄 상대의 품도 다시 찾은 안정감도 없었다. 그들의 얘기를 통해 나야말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에 사로잡혀 미처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샹탈이 느꼈던 이기적이고 히스테릭 했던 감정의 일부분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진부함을 내제한 채 삶을 살아가며 사랑을 하지 않을 뿐,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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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식탁 - 시간을 담은 따뜻한 요리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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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할머니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었지만, 유독 <타샤의 식탁>만큼은 망설여졌다. 요리에 젬병인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타샤 할머니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와는 거리가 먼 책을 읽을 이유 또한 발견하지 못해서였다. 그렇게 구입을 망설이고 있을 때 타샤 할머니에 관한 읽을거리가 떨어져 가고 있었고, 모두 소장하고 싶다는 열정이 극에 달할 때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그러나 역시 구입을 해놓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요리 방법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을 어떻게 읽기로만 끝낼 것인가가 가장 큰 쟁점사항이었다.
 

  그러다 타샤 할머니 1주기를 기념해서 큰 딸 베서니 튜더가 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읽을거리가 사라져 버렸다. 책장에 남아있는 <타샤의 식탁>이 떠올라 여운을 이어가고자 펼쳤건만 여전히 헤맬 수밖에 없었다. 타샤 할머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레시피가 실려 있더라도, 요즘 같이 사진 찍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방법만 채워진 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타샤 할머니도 종종 낡은 요리책을 발견해서 알게 되거나, 어머니나 유모에게 배운 요리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런 의의만으로도 특별한 요리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타샤 할머니를 깊이 사모하지 않고서는 읽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샤 할머니의 요리책에는 다양한 요리가 실려 있었다. 에피타이저, 수프, 빵, 주요리, 곁들일 요리, 음료까지 그야말로 타샤 할머니가 알고 있는 요리들이 총 동원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이 확실히 특별한 이유는 요리 방법이 주류이긴 하지만 요리마다 얽혀있는 추억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요리 방법만 읊어댔다면 타샤 할머니가 알려 줬다고 해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책에서 들어온 이야기들이 요리에 초점이 맞춰 있었기에 먼저 그런 추억을 떠올린 후, 요리 방법을 읽으며 타샤 할머니가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요리에 큰 관심이 없어 요리방법은 술렁술렁 읽고 넘어갔지만, '요리와 정원 가꾸기에 대해서 겸손을 모른다.'는 타샤 할머니의 말처럼 찬사와 감탄이 잔뜩 들어간 요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타샤 할머니는 나와 국적도 생활방식과 문화도 다르기에 책에 실린 요리방법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나를 절망시켰던 것들 중 하나는 타샤 할머니가 쓰는 요리재료와 주방기구들이었는데, 가까운 우리 집만 해도 도무지 일치되는 것이 없었다. 꼭 타사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책이 요리책인 만큼 한 가지쯤은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두 생소한 재료에 조리 기구라곤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밖에 없는 실정이라 무얼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나를 떠난 상태였다. 거기다 가끔 김치찌개 하나만 끓여도 재료 다듬기와 끓이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인식한 터라 맛있는 음식을 위해 그만한 수고로움과 시간을 투자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요리는 8시간씩 구어야 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타샤 할머니라면 느긋하게 다른 일을 하면서 살펴보겠지만, 가스레인지에 물 주전자 하나만 얹혀 있어도 안절부절 못하는 나이기에 그런 인내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이 책에 담긴 조리법을 모두 시험해준 친구 캐롤 존스턴도 타샤 할머니만큼이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타샤 할머니의 추억 속에 담겨진 요리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맛을 상상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음에도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코기들과 고양이들이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걔네들은 타샤 할머니의 요리를 충분히 맛보면서 커갔다.). 타샤 할머니가 워낙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으니 거기에 굳이 나를 대입시켜 비교할 필요가 없으므로(배교 대상도 되지 않을 뿐더러), 그냥 즐기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요리법이 쓰인 글만으로 심심하기도 하고, 상상력이 바닥날 때쯤 중간 중간에 등장한 타샤 할머니의 그림은 많은 추억을 실어다 주었다. 타샤 할머니가 들려준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 삶이 나에게 그대로 추억이 되듯이, 타샤 할머니의 그림 한 장으로 그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이때쯤 이런 요리가 있었겠다 싶어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채워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더라도 타샤 할머니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음식점에서 비슷한 음식을 맛볼 기회는 있겠지만). 책의 마지막에는 타샤 할머니의 요리를 따라한 분의 짤막한 글과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분도 재료를 구할 때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경험 또한 특별하고 흥미로웠다고 하니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통해 타샤 할머니가 요리를 통해 주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직접 기른 야채들로 요리하는 기쁨, 정성들여 한 요리를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대접하는 마음. 그 과정 속에 타샤 할머니는 일상의 행복을 맛봤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음식을 통해 인생의 작지만 큰 기쁨을 전해주었다. 그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나에게 요리 솜씨가 없다면 다른 것으로라도 기쁨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보기를 조심스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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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5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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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문학을 물으면 '19세기 러시아 문학'이라고 대답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학의 분위기를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다. 장르를 나눈다는 것도 경계가 모호했을 뿐더러 좋아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찾아보려는 노력도 해 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지인과 나누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의 분위기를 설명하자 순문학을 좋아하는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한마디에 내가 모호하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던 장르들의 갈림길이 정해지는 듯 했고, 좋아하는 분야를 뚜렷이 알게 되어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사실을 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만지 출판사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이 갔다. 제인 오스틴의 명성에 대해서 익히 들었고, <오만과 편견>도 구입해 두었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 그의 소설에 대해 할 말은 많지 않다. 번역 된 6권의 소설 중 <설득>을 먼저 선택했다. 순전히 서정적이라는 설명 때문에 선택한 것인데 책을 읽는 내내 그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고, 순문학을 좋아한다는 개인적인 발견에 충족시켜 주는 소설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 작품의 특징을 비교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무(無)에서 만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듯 내 안으로 흠뻑 들어왔다. 책의 분위기는 주인공 앤의 시선으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써내려가면서도 섬세한 묘사를 잊지 않았다.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도 크게 부각되기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그 사실을 책의 초반부터 파악한 터라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력이 좋을 때 읽으면 무척 서정적이지만, 그 반대일 때는 겉돌기 십상인 소설이었다. 그래서 깊은 밤 사위가 고요할 때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의외로 잘 읽히고 묘사에 푹 빠져 현실을 잊을 정도였다. 앤이 가족 안에서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나를 드러낼 필요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앤은 특별히 눈에 띠지 않는 존재였다.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고 허영심과 낭비벽이 가득한 아버지와 큰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준남작이란 칭호에 무척 애달아했고, 언니 엘리자베스도 아버지와 만만치 않았다. 셋째 메리는 시집을 가서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다. 허영심에 가득한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살고 있던 켈린치 홀을 떠나야 했다. 지출이 너무 많아 빚더미에 앉게 될 위기에 처해 해군 제독에게야 집을 임대하고 그들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앤은 바로 식구들을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의 친구이자 조언자인 레이디 러셀, 동생 메리네 집, 다시 켈린치로 돌아와 바스로 이동한다. 공간의 이동에 따라 앤의 내면도 사건도 모두 달라지는데, 처음에는 그런 흐름이 굴곡이 있었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설에서 이 소설은 로맨스라고 했기 때문에 앤의 내면에 초점을 더 맞춰가며 읽어 나갔다. 

 

  앤은 8년 전 앤트워스 대령과 약혼을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인해 파혼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앤의 내면은 많이 닫혀 있었고, 한 번의 청혼을 거절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섬세한 만들어간다. 그런 그녀 앞에 앤트워스 대령이 다시 나타났는데, 다름 아닌 켈린치 홀로 들어온 해군 제독의 처남이었다. 앤트워스 대령은 한 번의 결혼을 하긴 했지만 다시 혼자가 되었고, 어느 정도의 부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런 앤트워스 대령이 등장했으니 딸을 둔 부모들과 젊은 처자들도 앤트워스 대령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실제로 두 자매 사이에서 앤트워스 대령은 갈팡질팡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앤은 혼란스러웠다. 그와의 대면이 어색하고, 그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마음 저편에는 그에 대한 애정이 싹트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했다.

 

  앤트워스 대령의 내면에 대해서 거의 드러나는 것이 없어 앤의 시선에 비춰진 그의 행동들로 추측할 수 있었다. 모호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그의 행동으로 앤은 8년 전 자신의 행동을 용서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남자들에 대해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 시원히 대화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앤이 공간 이동을 할 때마다 곁에 있거나 근거리에서 머물렀던 앤트워스 대령과 직접 대면했을 때, 앤트워스 대령이 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다시 돌아온 것이 앤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많은 심경의 변화 가운데서 앤트워스 대령에 대한 애정을 확신한 앤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대령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둘은 행복한 결혼을 앞두게 된다.

 

  앤과 앤트워스 대령의 결합 과정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대부분 앤의 가족이나 친인척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서 앤은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앤의 노력으로 인해서가 아닌 현실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통해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깨어 나오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앤트워스 대령과의 파혼 이후로 쭉 그를 사랑했다고 볼 수 없지만,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과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어찌되었든 앤과 앤트워스 대령은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줄거리를 잡고 보면 그들의 사랑이 매우 구구절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앤트워스 대령이 이 책에서 앤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앤의 생각을 엿봄으로써 그 시대의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더 많았다.

 

  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여성에게 치명적인 미래가 있는 모습이 짙었다. 결혼이야말로 여성의 종착지이며, 훌륭하고 넉넉한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것만이 성공한 모습으로 비춰지는(이렇게 적고 보니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여성들이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갖춰가지만, 결혼이 삶의 종착지로 비춰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결혼 자체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부정적인 면을 보았을 때 드는 생각일 뿐이다.) 시대였다. 앤트워스 대령과의 결혼을 반대한 것도 그의 능력의 부족함 때문이었으니 앤이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자신 안에 갇혀 지낸 것도 어쩜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지만지 출판사에서 원본의 절반 분량으로 다시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책이 그다지 두껍지 않아서 좋아했었는데, 읽다보니 분량을 줄여서인지 곳곳에 흐름이 끊기고 어색한 부분들이 드러났다. 앤의 내면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기에 완역된 책을 찾아서 한 번 더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내가 만난 제인 오스틴의 첫 작품이기에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오탈자

 

* 그녀를 일으켰지만 생기가 보이지 없었다. -> 않았다. <116쪽>

 

* 그렇지만 내가 엘리엇 씨에게 큰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하만 나를 그저 엘리엇 씨의 친척으로 생각해줘요. -> 다만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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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타이거 8집 - Feel gHood Muzik : the 8th wonder [2CD]
드렁큰 타이거 (Drunken Tiger)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 반갑다! 드렁큰 타이거!!

 

 

  약 2년 만에 드렁큰 타이거의 새 음반이 발매 되었다. 2년 동안 드렁큰 타이거에게 가장 큰 이슈는 '타샤'와의 결혼이 아닐까 싶다. 아들 조단도 얻었고, 6년간 난치병인 척수염을 앓다 건강도 되찾았으니 타이거 JK의 최근 근황은 이 보다 더 반가울 수 없다. 샤인의 탈퇴로 많이 서운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새로운 음반이 나왔다는 말만 들어도 마냥 즐거울 뿐이다. 이번 음반은 2년 동안 준비한 결과물 치고는 과분한 음반이다. 두 장의 CD가 수록되어 있고, 그만큼 기다려온 팬들에게 충분한 보답이 되리라 생각한다.

 

  잠시 앨범의 겉모습을 살펴보자면, 개인적으로 이렇게 사이즈가 큰 CD를 좋아하지 않는다. CD 정리함에 제대로 들어가지 뿐 아니라 드렁큰 타이거 음반을 주르룩 한꺼번에 꽂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번 앨범 재킷이 무척 독특하다. Feel Hood Side 표지는 멋있는 반면, Feel Good Side는 머리를 빗어주고 싶을 정도다. 강아지 귀 같은 긴 머리도 떼어주고 머리를 묶어 얼굴을 되찾아 주고 싶다. 아무리 좋아하는 래퍼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요?ㅋㅋ(그러나 앨범 커버는 약과다. 앨범 자킷을 봐보라! 음악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Oi Dirty Bastadr를 패러디 했다나?)

 

# Feel Good Side 들어보자!

 

  어디가 앞면이냐 뒷면이냐를 따지기 전에 'Good'이 들어가 있어서인지 이 CD를 먼저 들어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껏 들어왔던 앨범과는 사뭇 다른 밝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최근에 'Feel Good Music' 란 곡에서 '박사들도 답 못 내린 난치병, 내 희망의 산소탱크 박지성은 뛰고 또 뛴다/ 난 계속 움직여, 뭐라고 말하든 절대 숨기지 않아/ 기적이란 존재의 산 증인 희망은, 절망 끝에 서 있던 나의 은인'이란 가사 때문에 맨유 스폰서 업체에서 듣고, 맨유 친선 경기에 Tiger JK를 초대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Tiger JK가 응할지 박지성과의 만남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만큼 밝고 희망적인 노래로 포문을 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곡들도 Tiger JK의 그루브는 유지한 채 비교적 밝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음악만 듣고 있어도 괜히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들의 연속이여서 잠시 드렁큰 타이거 음반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축하해!'란 곡은 Tiger JK와 타샤의 아들 조단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다. 'Feet. 조단' 이라고 되어 있어서 어떻게 갓난아이가 피처링을 했을까 했더니, 태어났을 때의 울음소리와 귀여운 웃음소리가 담겨 있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표현이 다를 뿐, 음악을 하는 부모니 음악을 통해 아이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으리라. 괜히 듣고만 있어서 흐뭇해지는 곡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 음반이여서 그런지 멜로디가 강한 곡보다는 Tiger JK의 랩으로 주도되는 곡이 대부분이다. <두두두왑바바루>란 곡은 마치 치어리더가 응원하는 피처링으로 시작되는데 노래의 제목을 불러대는 Tiger JK의 목소리가 신나고, 귀에 감기는 곡이다. Tiger JK의 랩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며, 얼마나 자연스럽게 랩을 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어 더 정이 가는 음반이다.

 

  타샤와 결혼을 하기 전에도 서로의 음반에 피쳐링을 많이 해 주었는데, 이 음반에서 타샤의 피처링이 비교적 자주 나오는 편이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도 여전히 잘 어울리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여담이지만 조단이 태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단의 능력을 기대했던 것처럼 조단이 취미로라도 랩을 하면 어떻게 할지 정말 궁금하다.^^

 

  솔직히 드렁큰 타이거를 무척 좋아하고, 음반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6,7집은 개성이 너무 강해서 접근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두 음반은 드렁큰 타이거 음반 중에서 나의 사랑을 거의 못 받은 음반이여서 8집은 어쩔지 불안해졌다. 8집마저 내 귀에 감기지 못한다면 드렁큰 타이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그런 만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음반을 열었는데 먼저 들은 'Feel Good Side' 가 괜찮아서 안심이 된다.

 

 

# Feel hood Side 는 어떨까?

 

  드렁큰 타이거의 6,7집을 사랑해주지 못했다고 고백을 했듯이, 'Feel Good Side' 가 밝은 분위기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Feel hood Side'는 6,7집의 분위기가 강한 음반이었다. 첫 곡인 <Moster>가 강렬하게 포문을 열었는데, 가사가 무척 독특하다. '떡볶이에 고추장을 발라버려/삼겹살에 쌈장을 발라버려' 이런 가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웃긴 가사만큼이나 특이하게 랩을 하고 있다. 독특한 사운드와 많은 피처링이 돋보이며 힙합의 사운드를 가득 담고 있는 음반이다. 예전에는 피처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Tiger JK의 목소리만으로 충분하지만, 샤인이 빠진 만큼 다양한 피처링을 삽입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혼자서 읊다보면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약간의 지루함을 줄 수 있는데, 실력 있는 힙합인 들의 피처링이 곡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내가 특히 기억하는 피처링은 'T' 음반에서 발견한 바비 킴이었다. 바비 킴이 데뷔하기 전에 목소리를 듣고 무척 독특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바비 킴이 데뷔하자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종종 누가 피처링을 하냐에 따라서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명성보다는(이 음반에는 너무나 유명한 뮤지션이 많이 참여한 관계로) 직접 들어보면서 나름대로 평가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Feel hood Side'에서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만큼 좀 더 강한 힙합음악을 접할 수 있다. 'Feel Good Side' 에서 그렇게 부드럽고 신났던 Tiger JK의 목소리는 때론 분노를 뿜어내기도 하고, 격렬한 래핑으로 그의 능력을 한껏 끌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드렁큰 타이거의 힙합다움을 원했던 팬이라면 이 음반을 더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무게감 있고,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재량을 맘껏 뿜어내고 있으니 진정한 힙합 마니아라면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작업을 했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노력과 정성으로 채워진 음반이라고 칭찬할 수밖에 없다. 'Feel Good Side'에 수록된 곡을 새로운 버전으로 부른 곡들도 보이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멜로디가 강한 곡들도 보인다. <Die Legend 2>란 곡이 멜로디가 돋보였는데, 다이나믹 듀오가 피처링을 해주어서 더 반갑고 좋았다.

 

# 쌩유! Tiger JK!!

 

  이번 앨범은 그동안 의심을 품었던 나의 귀를 착착 감는 음악들로 채워져 있어서 무척 만족한다. 드렁큰 타이거 1집부터 음악을 들어오며 변화의 굴곡을 함께 해 온 사람으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국내 힙합 뮤지션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는 래퍼이고,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만큼 이번 음반은 심혈을 기울여서 작업했음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으므로 팬들과 함께 그런 일들까지 나누며 앞으로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음악적인 성숙을 가장 기대하는 것은 당연함으로 그를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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