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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5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ㅣ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9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1권부터 3권까지 정말 넋을 빼고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흡인력 있게 다가왔고, 야구와 함께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무척 호기심이 갔다. 그러나 4권부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책을 띄엄띄엄 읽었다면 스토리에만 집중해서 눈치 채지 못했을 변화는, 하루에 한권씩 읽어나가다 보니 분위기의 쇄신이 바로 전달되었다. 이야기를 질질 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스케일이 작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야구경기에 대한 깊은 속내를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4권을 읽으면서 희미하게 나의 내면을 흔들던 이런 생각들은 5권을 접하고 나서 수면위로 정확히 떠오른 문제가 되어 버렸다.
도무지 이야기의 진척이 없다. 다쿠미와 고가 시원스레 마주하고 다시 똘똘 뭉쳤으면 하는 바람이 내내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장면을 저자는 연출해 주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친구들을 잔뜩 집어넣어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성장기인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야구가 아니면 얘깃거리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농담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빈도가 남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사내아이들끼리 있으면서 상대를 이성으로 바꿔 바라보고 장난치는 모습이 잦다 보니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한 아이들 틈바구니에 있다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자주 등장하는 모습에 일본의 정서에 대한 또 다른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쯤, 이야기의 진척이 없는 것도 아이들의 자극적인 발언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변화가 일기도 했다. 성장은 우리가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것처럼 현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그 더딘 발걸음을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다쿠미의 위력적인 공과 고의 안정된 포수라는 포지션을 멋지게 드러내어 주지 않아 아쉬웠다. 둘의 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를 통해 아니면 연습경기를 통해 둘의 호흡을 보여주지 않아 내심 뽀로통 할 수밖에 없었다. 봄으로 예정된 요코테와의 경기를 준비하기도 하고, 야구부원들과 즐겁게 야구를 하기도 한다. 다쿠미의 공을 내내 받지 않았던 고도 복귀를 했고, 시원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올 둘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너무 긴 기다림이 독자에게 전해졌다. 성장의 더딘 발걸음에 함께 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진척이 없는 스토리에 힘이 빠지는 것은 여전했다. 아이들은 대단한 공을 던지는 투수를 보고, 대단한 타구력을 가진 타자를 보면서 굉장한 승부욕을 느꼈다. 승부욕이 솟구친 만큼 상대방에 대한 애증과 이겨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반복적인 장면의 이어짐은 충돌을 만들 뿐이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야구에 대한, 승부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에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틀대로 제각각의 그릇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밖에 도리가 없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다쿠미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에서 타인을 향해 조금씩 손을 뻗치는 것도, 다쿠미의 공에 반했지만 두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도,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또래의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느껴가는 다른 선수들이 그랬다. 그런 변화는 너무 더뎌서 소설 속에서 나의 위치를 망각하고 길을 잃기 일쑤였다. 야구에 미쳐있던 아이들의 열망도 느껴지지 않았고, 다쿠미와 고가 뻔 한 감동을 안겨 줄 거라는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들을 비롯한 야구를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 마음 상태가 어떻든 간에 상대를 뛰어 넘으려 연습에 몰두했고, 나를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자신만만해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중학생이란 신분을 잊지 않도록 때때로 주변으로 관심을 돌리는 모습(특히 다쿠미에게 필요한 모습)도 보여 현실의 아이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든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부하다고, 필력이 떨어진 게 아니냐고 뱉어내는 푸념들도 어쩌면 내 안에 이미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보며 대리만족하려 했던 나는 진정한 성장과정을 밟아 나가길 원치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가 바라는 모습대로 성장하고, 독자인 나에게 환희를 안겨주길 바랐다. 그 환희를 보며 열광하며 현재의 나를 잊어 가려는 얄팍한 생각을 들켜버린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면서 한가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 멍해질 뿐이다. 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을 이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고 있었다. 야구와 얽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이 자라고 있다고 성장해 간다고 충분히 느끼며 만끽하고 있다. 과연 나의 유년시절에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현재의 나 자신에게도 뚜렷한 해답을 얻을 수 없어 내 스스로에게 진부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