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6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2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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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나 완결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6권을 읽기만 하면 모든 이야기가 꿰어 맞춰진다는 흥분 때문에 다음 권을 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리뷰를 썼다. 읽은 내용을 정리를 해야만 다음 이야기를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6권을 손에 쥐니 1권부터 펼쳐졌던 내용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4권부터 조금씩 진부해지는 흐름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다짐하고 6권을 펼쳤건만, 결말을 읽고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책장을 '탁' 소리 나도록 덮어 버렸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렇게 책이 끝나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만 자꾸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옮긴이의 글을 읽어봐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해 보아도 다음 권이 나온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것이 결말이라는 말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6권의 책을 읽어 온 보람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닛타히가시 중학교와 요코테 중학교의 경기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경기로 부상했다. 다쿠미의 실력을 보여 줄 기회를 더 큰 대회에서 만날 거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여서 요코테와의 경기에서라도 다쿠미와 고의 실력을 충분히 보여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의 진척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경기를 기다리며 나 또한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기가 열렸고, 다쿠미와 가도와키의 승부는 물론 어떤 경기가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소설은 멈춰 버렸다. 그리고 다쿠미가 어떤 공을 던졌는지, 가도와키가 어떤 공을 쳤는지 끝끝내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열린 결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더 많이 남겨주고, 각자의 생각에 또 다른 모습으로 각인시키는 것이야말로 소설을 쓰는 사람의 보람이 아닐까란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배터리>의 결말 앞에서는 열린 결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쿠미가 소속된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는 요코테와의 경기를 무척 진지하게 준비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에 열린 만큼, 3년 동안 야구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졸업생들에게는 중학교의 마지막 경기이자(가도와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올려보기 조차 힘들었던 요코테 중학교와의 중요한 경기였다. 요코테 중학교는 닛타히가시 중학교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비교도 안 되는 팀이었지만, 다쿠미의 존재로 이미지는 확 바뀐다. 다쿠미의 공을 본 사람이나, 타석에 서 본 사람은 위력을 알기에 꼭 승부를 가르고 싶어 했다.

 

  그 과정은 5권에서부터 진부할 정도로 언급이 되었었다. 요코테의 가도와키 뿐만 아니라 최고의 팀이라 자랑하던 다른 선수들도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다쿠미에 대해 닛타히가시의 야구부에 대해 재조명하게 된다. 가도와키의 승부욕이 다른 선수들을 부추기기도 하고, 질투의 시선을 만들기도 한다. 가도와키의 절친한 친구였던 미즈가키는 가도와키와 다쿠미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품게 된다. 시샘과 승부욕이 범벅된 감정은 폭발하기도 하고, 안 좋은 방식으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다쿠미와 고에게도 미즈가키의 위험한 행동이 영향을 끼칠 뻔 했지만 나름 잘 이겨낸다. 한편 닛타히가시 야구부는 중요한 경기인 만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새로운 주장, 조금씩 보강되는 수비, 각자의 개성이 잘 어울리는 팀워크를 내세워 요코테에게 결코 뒤떨어진 팀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지금껏 다쿠미와 고에게만 의지해 경기를 이기려 해왔다면, 요코테와의 경기를 준비함으로써 야구부는 새로운 팀으로 거듭난다. 다쿠미와 고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생긴 어려움을 역으로 이용해 다양한 선수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두 팀은 많은 준비를 했고,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다쿠미와 고가 여전히 삐걱대기도 하고, 풀릴 듯 말듯 시원스런 감정의 솟음이 없는 가운데 아주 조금씩 둘은 서로를 알아간다. 그 느낌이 확실하지 않을 때에 두 팀의 경기는 진행된다. 선수들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오래 기다렸기에 그 경기가 무척 긴장되었다. 그러나 다쿠미와 고, 가도와키의 승부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에 저자는 쓰기를 멈췄고, 아무리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아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미트, 돌아간 배트만으로 경기를 가늠하기엔 너무 허무했다. 팽팽한 경기인 만큼 쉽게 써내려갈 수 없을 거라 짐작했지만, 열린 결말이 아니라 그 상황을 저자가 도피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구에 얽힌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하지만, 4권부터 매끄러운 흐름은 무너져 버렸고 결말에 와서도 썩 내켜할 수 없었다. 충실한 과정을 보여주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를 끝내 버린다는 것은 맞설 자신이 없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고 많은 생각들을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작품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읽기 직전의 느낌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배터리>는 느낌이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겨진 결말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미쳐 독자에게 그려주지 않은 모습에 많은 가능성을 품고,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해도 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맞아 떨어지는 메시지가 없었다. 성장과정, 야구에 대한 열정, 야구로 인해 삶을 배워가는 아이들이란 메시지는 채 그려내지 못한 결말과 잘 어우러지지 못했다. 그 사실이 아쉬워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는 내가 감정에 치우쳐 버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과 함께 한 과정 속에 너무 큰 경기로 각인된 경기여서 이렇게 푸념을 해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은 여전히 중학생으로 남아있고, 아이들이 펼쳐낼 가능성과 좌절과 성장과정은 여전히 채워질 수 없다. 책에서 마련해준 결말의 상태를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그들에 대한 이미지를 나 또한 변화시킬 수 없음에 망연자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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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5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9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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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권부터 3권까지 정말 넋을 빼고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흡인력 있게 다가왔고, 야구와 함께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무척 호기심이 갔다. 그러나 4권부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책을 띄엄띄엄 읽었다면 스토리에만 집중해서 눈치 채지 못했을 변화는, 하루에 한권씩 읽어나가다 보니 분위기의 쇄신이 바로 전달되었다. 이야기를 질질 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스케일이 작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야구경기에 대한 깊은 속내를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4권을 읽으면서 희미하게 나의 내면을 흔들던 이런 생각들은 5권을 접하고 나서 수면위로 정확히 떠오른 문제가 되어 버렸다.

 

  도무지 이야기의 진척이 없다. 다쿠미와 고가 시원스레 마주하고 다시 똘똘 뭉쳤으면 하는 바람이 내내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장면을 저자는 연출해 주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친구들을 잔뜩 집어넣어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성장기인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야구가 아니면 얘깃거리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농담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빈도가 남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사내아이들끼리 있으면서 상대를 이성으로 바꿔 바라보고 장난치는 모습이 잦다 보니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한 아이들 틈바구니에 있다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자주 등장하는 모습에 일본의 정서에 대한 또 다른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쯤, 이야기의 진척이 없는 것도 아이들의 자극적인 발언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변화가 일기도 했다. 성장은 우리가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것처럼 현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그 더딘 발걸음을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다쿠미의 위력적인 공과 고의 안정된 포수라는 포지션을 멋지게 드러내어 주지 않아 아쉬웠다. 둘의 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를 통해 아니면 연습경기를 통해 둘의 호흡을 보여주지 않아 내심 뽀로통 할 수밖에 없었다. 봄으로 예정된 요코테와의 경기를 준비하기도 하고, 야구부원들과 즐겁게 야구를 하기도 한다. 다쿠미의 공을 내내 받지 않았던 고도 복귀를 했고, 시원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올 둘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너무 긴 기다림이 독자에게 전해졌다. 성장의 더딘 발걸음에 함께 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진척이 없는 스토리에 힘이 빠지는 것은 여전했다. 아이들은 대단한 공을 던지는 투수를 보고, 대단한 타구력을 가진 타자를 보면서 굉장한 승부욕을 느꼈다. 승부욕이 솟구친 만큼 상대방에 대한 애증과 이겨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반복적인 장면의 이어짐은 충돌을 만들 뿐이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야구에 대한, 승부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에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틀대로 제각각의 그릇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밖에 도리가 없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다쿠미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에서 타인을 향해 조금씩 손을 뻗치는 것도, 다쿠미의 공에 반했지만 두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도,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또래의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느껴가는 다른 선수들이 그랬다. 그런 변화는 너무 더뎌서 소설 속에서 나의 위치를 망각하고 길을 잃기 일쑤였다. 야구에 미쳐있던 아이들의 열망도 느껴지지 않았고, 다쿠미와 고가 뻔 한 감동을 안겨 줄 거라는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들을 비롯한 야구를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 마음 상태가 어떻든 간에 상대를 뛰어 넘으려 연습에 몰두했고, 나를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자신만만해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중학생이란 신분을 잊지 않도록 때때로 주변으로 관심을 돌리는 모습(특히 다쿠미에게 필요한 모습)도 보여 현실의 아이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든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부하다고, 필력이 떨어진 게 아니냐고 뱉어내는 푸념들도 어쩌면 내 안에 이미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보며 대리만족하려 했던 나는 진정한 성장과정을 밟아 나가길 원치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가 바라는 모습대로 성장하고, 독자인 나에게 환희를 안겨주길 바랐다. 그 환희를 보며 열광하며 현재의 나를 잊어 가려는 얄팍한 생각을 들켜버린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면서 한가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 멍해질 뿐이다. 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을 이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고 있었다. 야구와 얽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이 자라고 있다고 성장해 간다고 충분히 느끼며 만끽하고 있다. 과연 나의 유년시절에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현재의 나 자신에게도 뚜렷한 해답을 얻을 수 없어 내 스스로에게 진부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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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4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8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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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하루 일과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배터리 시리즈를 한 권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다. 시리즈가 곧 끝나가니 하루 일과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만큼 나의 관심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책이다. 이제 4권을 읽고 5권을 향해 가고 있어 완결이 눈앞에 다가옴을 느낄 수 있는데 괜히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든다. 4권의 책을 읽는 동안 야구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에 대해, 그들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동고동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으로 벌써부터 기운 빠지기 보다는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그들이 펼쳐놓은 세계를 맘껏 누려볼 생각이다.
 

  다쿠미는 요코테의 에이스인 가도와키에게 퍼펙트게임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기에 그 경기를 치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교 측의 허락 없이 9월의 어느 일요일, 공원에 모여 그들은 야구 경기를 펼쳤다. 중요한 경기인 만큼 저자가 그 경기를 어떻게 펼쳐낼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쿠미가 승리투수가 된다면 그의 천재성은 증명되는 셈이고, 또한 저버린다면 이야기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쪽으로도 쉽게 마음을 결정짓지 못한 때에 경기의 과정을 보여주기에 앞서 다쿠미는 그 경기에 졌음을 인정했다. 그 경기로 인해 또 다시 야구부는 활동정지를 먹었고, 다쿠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달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다쿠미는 왜 요코테 중학교와의 경기에서 졌던 것일까.

 

  3권의 마지막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기의 승패는 이미 갈려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쿠미는 가도와키가 경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일대 일 승부를 할 때 삼진을 시킬 수 있는 마지막 공을 최선을 다해 던지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고는 다쿠미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다쿠미 자신도 의문을 가진 사이에 고가 무척이나 화를 내고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에게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원래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다쿠미라고 해도 고에게 사과하지 않고 대화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짜증이 솟구쳤다. 그동안 다쿠미를 참고 봐준 것은 어쩌면 다쿠미가 던지는 공에 대한 위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런 다쿠미의 공을 인정해주고, 다쿠미와 야구를 위해 마음을 써 준 고에게 다쿠미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 진부해지고 말았다.

 

  그랬으니 요코테와의 경기에서 이길 리가 없었다. 배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도 이길까 말까인데, 둘은 서로를 믿지 못했고 앙금이 남아 있었다. 다쿠미는 가도와키와를 삼진 시킴으로써 정면승부를 잘 치렀을지 몰라도, 가도와키에게 던진 공을 받은 후 고가 흔들리므로 써 다쿠미도 함께 무너져 버린다. 요코테 감독에 의해 경기가 중단 된 만큼, 닛타히가시 중학교가 이겼다고 인정하기도 꺼림칙한 가운데 가도와키는 재경기를 요청한다. 시기는 내년 봄으로 정하고,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경기에 대한 앙금을 풀려고 한다. 그러나 다쿠미와 고의 사이가 좋지 않은 만큼 그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다. 다쿠미와 고는 끝내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고, 그 사이 오토무라이 감독은 고가 다쿠미의 공을 받지 않는다면 다른 포수를 붙이려고 한다. 감독의 이면에 고를 끌어내려는 것인지, 정말 다쿠미의 실력을 7할만 끌어내서 팀을 승리로 이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도 다쿠미와 고는 여전히 껄끄러웠다.

 

  그런 둘의 사이를 좁혀주려 같은 야구팀 친구들이 애쓰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중학교 1학년에 지나지 않은 아이들이 너무 진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들도 감독도 야구에 모든 것을 걸기에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야구에 미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천진난만한 모습도, 그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내용 앞에서도 도무지 야구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 즈음 가도와키와 미즈카키가 다쿠미를 찾아와 다음 경기를 제안하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야구를 통해 놀이를 한다. 그동안 승부욕에만 치우쳤던 야구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하는 모습은 조금은 진부하고, 지루했던 4권의 내용에 대한 저자의 특별 보너스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다쿠미와 고가 서로를 신뢰하고 다시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 있을 때, 가도와키와의 경기를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 거라 본다. 다쿠미는 여전히 자신밖에 믿지 않고, 고는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지만 주변에 그들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다쿠미가 고를 자신의 공을 받아 줄 사람으로 밖에 생각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쿠미의 공을 받아줄 사람은 고 밖에 없다. 그들이 어떻게 뭉치느냐에 따라서 가도와키와의 경기, 그들의 야구에 대한 미래가 결정지어지는 만큼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야구를 잘한다고 해서 그들을 더 높은 곳으로 격양 시키지 않고, 삶의 다양한 모습과 접목시켜 가는 저자의 역량에도 감탄하고 있다. 야구가 중점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내면을 파고들며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 하며, 청소년 문학답지 않게 섬세한 묘사와 진지한 내면의 드러남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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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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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여름을 맞이해서 특별히 읽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추리 소설을 읽어대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보면 미묘한 상관관계에 의해 비슷한 책들을 찾아 읽게 되는데, 최근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 덕에 비슷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꺼내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내게 인식될 무렵 꺼내들었던 <붉은 손가락>은 사건의 내용이 우울해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그러다 추리 소설의 열기를 이어가고 싶어 꺼내들었는데, 그 손길이 마냥 고마울 뿐이다.

 


  내가 책 읽기를 그만두었던 시점은 14살 소년 나오미가 7살 여자아이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 이후부터다. 살해 동기도 어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무척 짜증이 났다. 그렇게 큰 일이 일어났으니 당황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무조건 아이만 감싸 도는 엄마, 모든 것이 짜증스러운 아빠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 사건의 결말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나의 뇌리에 한 구석에 머물고 있었는데, 다시 꺼내든 손길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이야기는 완성되어 갔다.

 


  나오미의 아빠는 자수를 하자고 설득했지만, 나오미의 엄마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의논한 끝에 시체 유기를 하기로 하고, 화단에 놓여 있는 아이의 시신을 골판지 상자에 싸서 공원 화장실에 버린다.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사촌 지간인 가가와 마쓰미야 형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상태에서 추적한다는 사실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뛰어난 감각을 가진 가가 형사는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범인의 흔적을 유추해 낸다. 아이의 몸에 묻어 있던 잔디와 스티로폼 조각으로 인해 아이가 어떤 상태에서 옮겨 왔는지를 추측하고 초동수사로 근처에 잔디가 있는 주택들을 조사한다.

 


  한편 경찰이 자신의 집에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오미의 가족은 살해된 아이의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방문하자 큰 위기에 몰린다. 잔디체취의 목적으로 또다시 경찰이 방문하자 나오미의 부모는 들킬 것에 대비해 다른 스토리를 짜게 된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제멋대로인 나오미 외에도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존재의 드러남으로 이들 부부가 노모를 이용할 것으로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눈치를 채고 있음을 안 부부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경찰을 불러 범인이 노모라고 말한다. 상태가 저렇다 보니 아이를 죽여 놓고도 사실을 알지 못하며, 시체 유기는 자기가 했노라고 밝힌다.

 


  나오미 부부는 아이의 몸에 붙어 있던 잔디의 성분으로 범행을 유추했다고 생각했지만, 가가형사는 두어 번 들른 나오미의 집에서 전혀 다른 것으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 간다. 하나씩 조각을 맞춰가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의 전말을 살펴가는 가가형사의 능력에 감탄을 금한 것도 잠시, 사건의 해결은 독자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가 형사는 그들이 사건의 모든 경위를 밝히도록 유도하고, 스스로가 진실을 토로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노모가 수갑에 채워 끌려갈 상황에 처하자 모성을 빌미로 그들의 자백을 받아낸다. 나오미가 아이를 죽였으며, 어머니는 죄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가가형사는 진실로 사죄해야 할 사람은 어머니라며 그들이 전혀 알 수 없었던, 독자인 나도 방심하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낸다. 사건이 일어난 날 죽은 아이의 동선을 살핀 결과 범인이 이미 나오미라고 안 가가형사는 나오미 부부가 회개할 여유를 준 것인데, 단순히 어머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가형사를 통해 저자는 인간으로써 잊고 있던 양심을 뛰어 넘어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근본적인 도리를 깨우치게 만든다. 가정 안에서 곪아터진 문제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던 나오미 가족이 충격적이었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제의 화살은 우리에게도 향한다. 드러내지 않은 우리의 내면에도 나오미 가족의 기이한 행태가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부정할 수 없다. 결말에 가서야 폭포수처럼 많은 메시지를 전해 주는 <붉은 손가락>은 소설 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내가 속해 있는 곳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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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3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5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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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뷰를 쓰는 속도보다 책 읽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다 읽어야 책을 놓게 만드는 흡인력 덕분에 리뷰를 위해서 숨을 돌리기가 힘겨울 정도다. 그대로 쭉쭉 읽어나가고 싶지만, 다음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읽기 위해서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다. 더욱 더 흥미진진해져 가는 야구와 함께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기에.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가 활동 중단된 것 때문에 다쿠미와 고 뿐만 아니라 감독인 마코토 선생님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3학년 선배들이 마찰을 일으킨 것 때문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다쿠미와 고는 조금씩이나마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토무라이(마코토 선생님 별명이니 그렇게 부르도록 하자!) 감독은 뜬금없이 둘 가운데 나타나 포수로써 다쿠미의 공을 받아 본다. 그 일로 활동 중단에 대한 약간의 마찰이 다쿠미와 오토무라이 감독 사이에 있었지만, 다행히도 교장은 여름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활동 재개를 허락해 주었다. 아이들도 오토무라이 감독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활동에 임하는데 오토무라이 감독은 첫 연습에서 이상한 제안을 한다. 갑작스런 홍백전을 펼치고 홍군은 3학년을 중심으로 한 주전 팀, 백군은 1,2학년을 중심으로 게임을 하라는 것이다.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가 그렇게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오토무라이 감독은 홍백전을 통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아이들이 경기를 통해 실력과 잠재력은 물론 경험을 쌓아보는 계기를 노린 것도 있었다. 3권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는 홍백전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3학년과 1,2학년으로 팀을 나눠 놨으니 실력 차가 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과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고, 여전히 다쿠미와 마찰을 일으킨 3학년 선배들은 껄끄러웠다. 그러나 모두 성실하게 게임에 임했고, 경기는 예상을 뒤집으며 백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경기로 인해 같은 팀끼리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토무라이 감독은 또 다시 이상한 제안을 한다. 전국대회 4강까지 나간 요코테 중학교 야구부와 연습게임을 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교장도 허락하지 않고, 물의를 일으킨 3학년 아이들이 야구부를 탈퇴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주장 가이온지는 요코테 쪽에서 연습게임을 제안하도록 유도한다. 요코테의 에이스인 가도와키를 다쿠미의 실력으로 자극해서 제안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가도와키는 다쿠미와 고를 만나 간단히 게임을 해 본 후, 연습게임을 해준다면 퍼펙트게임을 하겠노라는 다쿠미의 말에 승낙을 한다. 그러나 다쿠미가 고를 믿지 못한 일이 생기고 고는 다쿠미와 또 사이가 틀어진다. 투수가 포수를 믿지 못하는 것, 투수 혼자서 팀워크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공만 내세우는 것으로 잔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들 앞에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요코테와의 경기를 해야 하고 퍼펙트게임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홍백전을 통해 자신감이 충만해진 아이들은 상대가 요코테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내게도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중학생인 아이들이 야구에 빠져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부럽고 기특했다. 국어 담당인 여교사가 야구부의 팬이 될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은 열정으로 넘쳐났다. 그 열정이 너무 뜨거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트러블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야구에 모든 것을 걸려는 아이들을 더 단단하게 해줄 거라 믿는다. 무언가에 그토록 빠져본 경험이 없는 터라 나이를 불문하고 열정이 부러웠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삶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 흥분되고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중학생 소년들이 알아간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직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쿠미와 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니타히가시 중학교의 야구부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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