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레이킹 던 - 나의 뱀파이어 연인 완결 ㅣ 트와일라잇 4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6월
평점 :
얼마나 완결을 기다려 왔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행복함과 기대감, 아쉬움 감정이 섞인 기다림이었다. 번역본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까지 합치자면 꽤 오랜 시간이었음에도 책이 출간되고 나서도 바로 만날 수 없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완결 <브레이킹 던>은 만감이 교차한, 그야말로 모든 감정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커다란 만남이 되어갔다.
800페이지가 넘는 완결의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한 때 나를 사로잡았던 이야기였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식상한 주제를 저자만의 색다른 색깔로 버무려 냈기에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한 권씩 읽어 나갈 때마다 느낌보다 개인적인 감정들로 채워졌던 리뷰를 떠 올려 보면, <브레이킹 던>을 어떤 식으로 남겨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봉 될 영화가 남아 있긴 하지만,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은 한 가지의 감정으로 독자를 끌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시리즈를 감정에 치우쳐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이 책은 철저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정의 이입보다 지켜보는 입장이었고, 내면에 흐르는 감정들이 낯설 정도였다.
<이클립스>에서 벨라가 에드워드와 제이콥 사이에서 방황하긴 했어도 에드워드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상기시키듯 벨라와 에드워드의 약혼, 결혼식이 초반에 등장한다. 벨라의 선택으로 인해 제이콥이 괴로워하며 잠시 벨라 곁을 떠나지만, 결혼식 날 제이콥이 돌아오고 벨라는 완벽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에드워드와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신혼여행지에서 벨라는 임신을 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육체관계가 흔치 않기 때문에 임신할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벨라와 에드워드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독자도 마찬가지였다. 벨라의 임신이 가능한가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뱃속의 아이는 '괴물'이라 불릴 정도로 빠른 성장과 함께 벨라를 고통스럽게 했다. 벨라를 괴롭히는 아이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은 에드워드였다. 아이를 얻기 위한 희생은 벨라가 죽어갈 정도로 너무 컸기 때문이다.
벨라의 임신 때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할 수 없었다.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시점을 시작으로 부모님과 주변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인간일 때의 권리를 누리는 것 등, <이클립스>에서 괴롭혔던 문제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벨라가 임신한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뱃속의 아이는 빠르게 성장했고 벨라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로인해 이야기의 흐름의 감각은 사라졌고, 에드워드가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고, 벨라도 어느 정도 안정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의외의 곳에서 찾아내지만 그 방법이란 피를 섭취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식성은 뱀파이어에 더 가까웠고, 피를 섭취하자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벨라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벨라의 임신은 지금껏 일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출산이 가장 큰 난관이었고,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벨라의 생명이 위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벨라의 뼈를 부러뜨리고, 배를 찢고 나온 아이(르네즈미) 때문에 벨라는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 순간 뱀파이어가 된다. 벨라와 에드워드를 그렇게 괴롭혔던 뱀파이어가 되는 시점은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어쩔 수 없는 대목에서 착지한다.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시점이 궁금했을 뿐,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것이 에드워드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인간으로 남겨지는 벨라의 가족과 친구들, 못 견뎌 하는 제이콥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니,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덮치며 이질적이고 낯선 상대로 벨라를 만들어 버렸다. 충분히 동조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뱀파이어가 됐음에도 벨라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당연히 뱀파이어는 죽은 존재이므로). 그것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나를 괴롭혔는데, 뱀파이어가 됨으로써 벨라가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음을 깨닫자 어느 정도 감정이 다스려졌다.
그러나 벨라를 괴롭히는 것은 여전히 많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르네즈미의 존재를 지켜보는 것도 그랬고, 자신을 노리고 있는 볼투리 가와의 대면, 뱀파이어로써의 생활들이 그랬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르네즈미의 존재였다. 벨라의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지만, 볼투리 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르네즈미를 빌미로 컬렌 가를 찾아오는 모습을 앨리스가 미래를 통해 보게 되고, 그때부터 긴박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볼투리 가는 르네즈미가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닌, 아이의 모습일 때 뱀파이어로 만든 일명 '불명의 아이'로 오해하고 있었다. '불멸의 아이'의 전적을 알고 있는 터라 볼투리 가는 없애려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능력 있는 뱀파이어들을 흡수하고 싶어 했다. 앨리스를 가장 노렸고, 막상 마주하고 보니 벨라와 르네즈미 또한 탐이 났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컬렌 가가 넘어갈 리 없었다.
벨라가 르네즈미를 지키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자신의 생명과 바꾼 르네즈미의 존재가 두렵기도 했지만(아이 또한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보단 에드워드를 닮아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으로 이뤄낸 가족의 울타리를 볼투리 가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르네즈미를 통한 볼투리 가와의 또 다른 마찰 때문에 주변의 것들은 묻혀가는 것이 아쉬웠다. 벨라의 존재를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벨라가 인간에서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이 충분함에도 인간세계에서 너무 빨리 벗어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뱀파이어가 된 벨라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벨라는 다른 세계로 편입해 버렸다. 에드워드와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있었지만, 사랑을 쟁취하고 뱀파이어가 되자 그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문제들을 따라 가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언제까지고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랑타령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사랑이 간단히 묻혀 지는 것 같아 서운했다.
그들이 영원한 사랑을 하게 되고 르네즈미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것, 르네즈미를 지키기 위해 컬렌 가는 물론 다른 뱀파이어들까지 힘을 합치고 심지어 늑대인간들까지 힘을 보탰다는 것은 놀랄 만한 사건이다. 그만큼 볼투리 가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고 많은 뱀파이어들의 도움이 있어도 승산에 확신은 없었다. 볼투리 가의 방문이 한 달 뒤로 다가온 것을 안 시점에서 모든 것을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다른 뱀파이어를 설득하고 힘을 보태게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벨라의 특별한 능력이 드러나고, 예기치 못한 구원 군과 르네즈미를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증인들이 나타난다. 큰 싸움 없이 르네즈미를 비롯한 다른 뱀파이어들의 목숨도 지켜졌을 뿐 아니라 벨라와 에드워드는 새로운 세대에게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르네즈미 또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짧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 르네즈미의 미래가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자신과 같은 존재로 나타난 남미의 뱀파이어, 르네즈미에게 각인된 제이콥. 이 셋의 관계만 생각해도 충분히 여운을 주는 결말이었고, 후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자는 한낱 구경꾼에 불과하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모든 인물들의 존재를 다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주인공의 변화와 주변의 상황들이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벨라와 에드워드는 이 시리즈의 변함없는 주인공이며, 영원히 함께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존재감은 서서히 와해되고(특히 에드워드가 그랬고, 펼쳐놓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어쩔 수 없는 흐름임에도), 전체적인 맥락의 틀이 많이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초반의 벨라와 에드워드의 관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연스런 흐름을 인지하지 못한 나의 무지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벨라의 존재가 변한 시점부터 급격하게 밀려오는 낯섦은 독자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아빠에 대한 존재감이 너무 가볍게 정리된 것이나 르네즈미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된 것을 인지하기에 사건의 흐름이 너무 빠를 정도였다. 충분히 정독하며 비교적 긴 시간동안 읽어나간 완결임에도 이질적인 느낌, 편입되지 못하고 철저히 독자로 남겨진 고독감을 끝끝내 채워주지 못했다.
책을 읽기 전 '충격적인 결말이다'라는 몇몇 독자들의 말에 내내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말의 압박감에 편하게 읽지 못했다는 것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드러났고, 나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 맥이 풀릴 정도였다. 그만큼 나를 사로잡았던 시리즈인 만큼 결말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랑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함에, 에드워드와 '나'와의 환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에 치중해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헤어짐이 아쉬워 그들이 영원한 사랑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이렇게 이야기를 놓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말에 와서야 맞닥뜨리는 되살아난 현실감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영원히 행복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주문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쓸쓸하게 책을 덮을 줄 몰랐기에 여전히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엄습했던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리라.